1. 개요
조베르트 아라우주 마르칭스 (Joubert Araújo Martins조베르트 아라우주 마르칭스포르투갈어)는 흔히 베투(Beto베투포르투갈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다. 1975년 1월 7일 쿠이아바에서 태어난 그는 주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보타포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며 유망한 모습을 보였고, 1995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보타포구 FR, CR 플라멩구, 플루미넨시 FC, CR 바스쿠 다 가마 등 리오데자네이루의 4대 명문 클럽에서 모두 뛰었으며, 플라멩구에서는 끈질긴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클럽 경력에서는 1995년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과 여러 차례 주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199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베투는 경기 외적인 논란으로도 유명했는데, 파티를 즐기고 음주하는 습관으로 인해 "Beto Cachaça" (Beto Cachaça베투 카샤사포르투갈어)와 "Beto Balada" (Beto Balada베투 발라다포르투갈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경력은 감독과의 갈등, 폭행 혐의, 무단 이탈 등 잦은 징계 문제로 얼룩져 있었다.
2. 생애 초기 및 경력 시작
조베르트 아라우주 마르칭스는 1975년 1월 7일 브라질 마투 그로수 주의 쿠이아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였고, 1986년부터 1993년까지 CE 동 보스코의 유소년 클럽에서 기량을 닦았다. 이후 1993년에 보타포구 FR 유소년 팀에 합류하며 프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보타포구에 입단할 때, 그는 50켤레의 축구화를 받는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알려져 있다.
보타포구에서의 초기 프로 경력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는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1995년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러한 인상적인 활약은 그를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게 했고, 1995년 코파 아메리카 준결승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리우 자갈루는 베투의 뛰어난 신체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인 볼란테로 포지션을 전환시켰다. 그는 또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올림픽 본선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3. 클럽 경력
베투는 브라질, 이탈리아, 일본의 여러 클럽에서 광범위한 클럽 경력을 쌓았으며, 중요한 리그 및 주 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하여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여러 논란과 사건들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띠기도 했다.
3.1. 브라질 클럽 경력
베투의 클럽 경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브라질에서의 활동이다. 그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보타포구 FR에서 활약하며 1995년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이라는 중요한 업적을 달성했다. 이후 1997년에는 그레미우로 이적하여 잠시 뛰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CR 플라멩구에서 첫 번째 기간을 보냈으며, 2001년에 다시 복귀했다. 플라멩구에서 그는 리오데자네이루 주 리그를 1999년, 2000년, 2001년 3년 연속으로 우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000년과 2001년 CR 바스쿠 다 가마와의 결승전에서 보여준 그의 끈질긴 플레이는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는 상파울루 FC로 잠시 이적했고, 2002년에는 플루미넨시 FC로 이적하여 그해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추가했다. 이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CR 바스쿠 다 가마에서 뛰며 2004년 타사 리우 우승에 기여했다.
말년에는 여러 클럽을 거쳤는데, 2007년에는 이툼비아라 EC와 브라질리엔시에서 뛰었다. 2008년에는 로마리우의 강력한 요청으로 친정팀인 바스쿠 다 가마로 다시 돌아왔으나,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이 외에도 그는 미스투 EC (2008년), AD 콘피안사 (2009년), CFZ 임비투바 (2009년) 등 브라질의 하부 리그 클럽에서도 활약했다. 베투는 리오데자네이루의 4대 명문 클럽(보타포구, 플라멩구, 플루미넨시, 바스쿠 다 가마)에서 모두 뛴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3.2. 해외 클럽 경력
베투의 해외 클럽 경력은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SSC 나폴리에서 한 시즌 동안 뛰었다.
2003년에는 J리그 J2 리그의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하며 J1 리그 승격의 중요한 카드이자 핵심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는 향수병에 시달렸고, 일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불과 두 달 만에 팀을 무단으로 이탈하는 논란을 겪으며 계약을 해지했다.
같은 해 7월, 세자르 삼파이우의 이탈로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찾던 J리그 J1 리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했다. 히로시마에서 베투는 공격과 수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활약했다. 하지만 2006년 미하일로 페트로비치 감독 체제 이후 출전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3.3. 주요 사건 및 논란
베투의 클럽 경력은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여러 논란과 사건들로 인해 순탄치 않았다.
1998년 CR 플라멩구 소속 시절, 그는 세바스티앙 라자로니 감독과 조엘 산타나 감독 재임 기간 동안 팀 내에서 선수들의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두 감독이 해고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2003년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했을 때는 일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향수병으로 인해 불과 두 달 만에 팀을 무단으로 떠나 계약이 해지되는 사건을 겪었다.
2006년 9월 28일, 일본 히로시마시에서 브라질인 지인을 폭행하여 경미한 부상을 입힌 혐의로 상해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에 대해 당시 소속팀이었던 산프레체 히로시마는 "선처의 여지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며 같은 해 10월 5일 베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2008년에는 CR 바스쿠 다 가마 소속이었을 때 무단으로 훈련에 불참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같은 해 8월 구단과의 계약이 해지되었다. 이후 2009년 AD 콘피안사와 CFZ 임비투바 등 브라질의 하부 리그 클럽에서 뛰었으나, 이 두 클럽에서도 그의 잦은 규율 위반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사생활과 통제되지 않는 성향이 그의 선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4. 국가대표팀 경력
베투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주요 국제 대회에 참여하며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했다.
4.1. 성인 대표팀 데뷔 및 출전
베투는 1995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소집되었다.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1-0으로 승리했다. 그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총 12번의 국제 A매치에 출전하여 무득점을 기록했다.
4.2. 주요 국제 대회 및 국제 타이틀
베투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 함께 여러 권위 있는 국제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그는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여 브라질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 대회에서 2경기에 출전했다. 또한 1996년 프리 올림픽 토너먼트에서 브라질의 우승에 일조했다. 같은 해 1996년 CONCACAF 골드컵에도 참여하여 팀의 준우승을 함께했다.
베투의 국가대표팀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과는 199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이다. 그는 이 대회에 참가하여 3경기에 출전했으며, 브라질이 파라과이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 외에도 199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참가하여 브라질이 준우승을 기록하는 데 일조했다.
5. 플레이 스타일 및 특징
베투는 미드필더로서 경기장 내에서 뛰어난 기술, 체력, 그리고 끈기를 보여주었다. 초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나, 마리우 자갈루 감독에 의해 그의 높은 신체 능력이 높이 평가되어 수비형 미드필더인 볼란테로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2000년과 2001년 CR 플라멩구와 CR 바스쿠 다 가마 간의 주 리그 결승전에서 보여준 불굴의 투지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사적인 생활은 그의 대중적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베투는 파티를 즐기고 음주하는 습관으로 인해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때문에 라이벌 팀 팬들 사이에서는 그를 조롱하는 의미에서 "Beto Cachaça" (Beto Cachaça베투 카샤사포르투갈어) 또는 "Beto Balada" (Beto Balada베투 발라다포르투갈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카샤사"는 브라질의 전통 증류주를 의미하며, "발라다"는 파티를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이러한 별명들은 그의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경기 외적인 행동으로 인한 그의 불안정한 명성을 반영한다.
6. 경력 통계
베투는 그의 프로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클럽과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며 아래와 같은 통계를 기록했다.
6.1. 클럽 통계
| 클럽 기록 | 리그 |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 | 총합 |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브라질 | 리그 | 코파 두 브라질 | 리그 컵 | 남미 대회 | 총합 | |||||||||||||
| 1994 | 보타포구 | 세리이 A | 22 | 0 | 22 | 0 | ||||||||||||
| 1995 | 23 | 0 | 23 | 0 | ||||||||||||||
| 1996 | 0 | 0 | 0 | 0 | ||||||||||||||
| 이탈리아 | 리그 | 코파 이탈리아 | 리그 컵 | 유럽 대회 | 총합 | |||||||||||||
| 1996-97 | 나폴리 | 세리에 A | 22 | 4 | 22 | 4 | ||||||||||||
| 브라질 | 리그 | 코파 두 브라질 | 리그 컵 | 남미 대회 | 총합 | |||||||||||||
| 1997 | 그레미우 | 세리이 A | 14 | 3 | 14 | 3 | ||||||||||||
| 1998 | 플라멩구 | 세리이 A | 19 | 6 | 19 | 6 | ||||||||||||
| 1999 | 16 | 1 | 16 | 1 | ||||||||||||||
| 2000 | 상파울루 | 세리이 A | 18 | 3 | 18 | 3 | ||||||||||||
| 2001 | 플라멩구 | 세리이 A | 20 | 2 | 20 | 2 | ||||||||||||
| 2002 | 플루미넨시 | 세리이 A | 15 | 3 | 15 | 3 | ||||||||||||
| 일본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아시아 대회 | 총합 | |||||||||||||
| 2003 | 콘사도레 삿포로 | J2 리그 | 7 | 1 | 0 | 0 | - | - | 7 | 1 | ||||||||
| 브라질 | 리그 | 코파 두 브라질 | 리그 컵 | 남미 대회 | 총합 | |||||||||||||
| 2003 | 바스쿠 다 가마 | 세리이 A | 17 | 2 | 17 | 2 | ||||||||||||
| 2004 | 3 | 0 | 3 | 0 | ||||||||||||||
| 일본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아시아 대회 | 총합 | |||||||||||||
| 2004 | 산프레체 히로시마 | J1 리그 | 14 | 2 | 1 | 0 | 1 | 0 | - | 16 | 2 | |||||||
| 2005 | 28 | 1 | 2 | 0 | 5 | 0 | - | 35 | 1 | |||||||||
| 2006 | 13 | 0 | 0 | 0 | 6 | 0 | - | 19 | 0 | |||||||||
| 브라질 | 리그 | 코파 두 브라질 | 리그 컵 | 남미 대회 | 총합 | |||||||||||||
| 2007 | 이툼비아라 | 세리이 C | 0 | 0 | 0 | 0 | ||||||||||||
| 2007 | 브라질리엔시 | 세리이 B | 7 | 0 | 7 | 0 | ||||||||||||
| 2008 | 바스쿠 다 가마 | 세리이 A | 4 | 0 | 4 | 0 | ||||||||||||
| 국가 | 브라질 | 178 | 20 | 178 | 20 | |||||||||||||
| 이탈리아 | 22 | 4 | 22 | 4 | ||||||||||||||
| 일본 | 62 | 4 | 3 | 0 | 12 | 0 | - | 77 | 4 | |||||||||
| 총합 | 262 | 28 | 3 | 0 | 12 | 0 | 0 | 0 | 277 | 28 | ||||||||
- J리그 첫 출장: 2003년 3월 15일 요코하마 FC전 (삿포로 돔)
- J리그 첫 득점: 2003년 3월 22일 몬테디오 야마가타전 (야마가타현 종합 운동 공원 육상 경기장)
6.2. 국제 통계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전 | 득점 |
| 1995 | 2 | 0 |
| 1996 | 2 | 0 |
| 1997 | 0 | 0 |
| 1998 | 0 | 0 |
| 1999 | 8 | 0 |
| 총합 | 12 | 0 |
| 팀 | 대회 | 등급 | 출전 | 득점 | 팀 기록 |
|---|---|---|---|---|---|
| 브라질 | 1995년 코파 아메리카 | 성인 | 2 | 0 | 준우승 |
| 브라질 | 1999년 코파 아메리카 | 성인 | 3 | 0 | 우승 |
7. 수상 기록
베투는 그의 클럽 및 국가대표팀 경력 전반에 걸쳐 다음과 같은 타이틀과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 클럽
- 보타포구 FR
- 브라질 전국 리그: 1995
- CR 플라멩구
- 리오데자네이루 주 리그: 1999, 2000, 2001
- 타사 과나바라: 1999, 2001
- 타사 리우: 2000
- 코파 메르코수르: 1999
- 코파 두스 캄페온이스: 2000
- 플루미넨시 FC
- 리오데자네이루 주 리그: 2002
- CR 바스쿠 다 가마
- 타사 리우: 2004
- 국가대표팀
- 브라질
- 프리 올림픽 토너먼트: 1996
- 코파 아메리카: 1999
- 브라질
- 보타포구 FR
8. 은퇴 후의 삶
프로 축구에서 은퇴한 이후, 베투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브라질에서 어린이를 위한 뷔페 사업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 선수로서의 화려했지만 논란 많았던 경력을 뒤로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9. 유산 및 대중적 평가
베투는 브라질 축구계에서 뛰어난 재능과 더불어 논란 많은 명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경기장에서의 끈기와 투지로 CR 플라멩구의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브라질 전국 리그와 코파 아메리카 우승 등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리오데자네이루의 4대 명문 클럽(보타포구, 플라멩구, 플루미넨시, 바스쿠 다 가마)에서 모두 활약한 흔치 않은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잦은 징계 문제와 사생활 논란으로 얼룩져 있었다. 경기 외적인 음주와 파티를 즐기는 습관으로 인해 "Beto Cachaça" (Beto Cachaça베투 카샤사포르투갈어)와 "Beto Balada" (Beto Balada베투 발라다포르투갈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는 그의 통제되지 않는 성향을 상징하게 되었다. 감독과의 갈등으로 인한 해고 사태, 일본에서의 폭행 혐의로 인한 체포, 그리고 무단 훈련 불참으로 인한 계약 해지 등은 그의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빛나는 축구 재능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사생활이 그의 선수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며, 베투의 유산은 그의 뛰어난 축구 실력과 논란 많은 개인적 행보가 복합적으로 평가되는 양면성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