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젤코 콤시치(Željko Komšić젤코 콤시치크로아티아어, 1964년 1월 20일 출생)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치인으로, 2018년부터 현재까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통령 평의회의 크로아티아계 구성원으로서 여섯 번째이자 현직 의원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는 국회 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도 대통령 평의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2018년 총선에서 세 번째 임기로 선출되어 보스니아계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에 이어 두 번 이상 대통령 평의회 의원을 지낸 두 번째 인물이며, 크로아티아계 의원으로는 유일하다. 2022년 총선에서는 네 번째 임기로 재선되었다. 콤시치는 한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민주당의 주요 인물이었으나, 2012년 탈당 후 2013년 민주전선을 창당했다. 그는 보스니아계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크로아티아계 의원으로 선출되었기에, 많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합법적인 대표로 여기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주주의, 인권, 사회 발전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단일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고, LGBT 권리를 지지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국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젤코 콤시치는 그의 개인적인 배경과 군 복무 경험을 통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복잡한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2.1. 출생 및 가족
젤코 콤시치는 1964년 1월 20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사라예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마르코 콤시치는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인이었고, 어머니 다니차 스타니치(1941년 ~ 1992년 8월 1일)는 보스니아 세르비아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라예보 포위전 중 1992년 8월 1일 아파트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스릅스카 공화국군의 저격수에 의해 사망했다. 이 사건은 당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군에 입대해 있던 콤시치에게 큰 전환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 마리얀 스타니치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체트니크였으며, 콤시치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사망했다. 스타니치 가족은 도보이 근처의 코스타이니차 마을 출신이다. 콤시치의 친가족은 키셀랴크 출신이며, 그의 친삼촌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실종된 우스타샤였다. 콤시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세례를 받았으나, 스스로는 불가지론자라고 밝히며 가톨릭 교회를 떠났다. 그의 아내 사비나는 보스니아인이며, 부부에게는 라나라는 딸이 있다.
2.2. 교육
콤시치는 사라예보 대학교 법학부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변호사이다. 2003년에는 조지타운 대학교의 선별적인 연례 리더십 세미나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표로 참여했다.
2.3. 보스니아 전쟁 및 군 복무
보스니아 전쟁 동안 콤시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군에 복무했으며, 당시 보스니아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군사 훈장인 황금 백합 훈장을 수훈했다. 그는 소대장으로 복무했으며, 흐라스노 영토방위군, 제101 차량화 여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군 제1군단 소속이었다.
3. 정치 경력
젤코 콤시치는 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치 지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3.1. 초기 정치 활동
전쟁 이후 콤시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민주당(SDP BiH)의 일원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노보 사라예보 시의회 의원과 사라예보 시의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2000년에는 노보 사라예보 시 정부의 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2년간 사라예보 부시장을 지냈다. 1998년 "민주 변화를 위한 동맹" 연합이 집권했을 때, 콤시치는 당시 존재했던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주재 대사로 베오그라드에 파견되었다. 그는 SDP가 야당으로 돌아선 2002년 총선 이후 이 직책에서 사임했다.
3.2. 민주전선(DF) 창당
콤시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민주당이 크로아티아 민주 동맹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과 연방 의회 다수당 형성에 합의하자 이에 반발하여 2012년 7월 사회민주당을 탈당했다. 이후 2013년 4월 7일 다른 탈당파 인사들과 함께 민주전선(DF)을 창당했다. 민주전선은 주로 보스니아인과 친보스니아 성향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활동하며, 단일 국가를 지향하는 사회 민주주의 및 시민 민족주의적 중도좌파 정당으로 평가받는다.
3.3. 대통령 평의회 의원 (2006-2014)
콤시치는 2006년과 2010년 총선을 통해 대통령 평의회 크로아티아계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국내외적으로 여러 중요한 사안에 관여했다.
3.3.1. 2006년 총선
콤시치는 2006년 보스니아 총선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민주당의 대통령 평의회 크로아티아계 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116,062표, 즉 39.6%를 득표하여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은 크로아티아 민주 동맹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HDZ BiH) 당의 분열에 크게 기인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콤시치가 주로 보스니아계 유권자들의 표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많은 크로아티아인들은 그를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인의 합법적인 대표로 여기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는 2006년 11월 6일 취임했다.
3.3.2. 2010년 총선

2010년 보스니아 총선에서 콤시치는 337,065표를 얻어 총 득표율의 60.6%를 기록하며 재선되었다. 그의 재선은 크로아티아계 정치 대표자들로부터 심하게 논란이 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선거 사기로 간주되었다. 특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의 모든 시민은 보스니아계 또는 크로아티아계 대표 중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보스니아계가 연방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크로아티아계는 22%에 불과하기 때문에, 크로아티아계 대표로 출마한 후보는 크로아티아 공동체 내에서 다수표를 얻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보스니아계 유권자들이 크로아티아계 투표용지에 투표하면 효과적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2006년과 2010년에 발생했으며, 다민족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민주당의 지지를 받은 크로아티아계 콤시치는 크로아티아계 유권자의 표를 거의 얻지 못하고 당선되었다.
2010년 선거에서 그는 크로아티아계 다수 또는 복수 지역의 단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으며, 이들 지역의 거의 모든 표는 보리야나 크리슈토에게 돌아갔다. 콤시치가 받은 표의 대부분은 주로 보스니아계 지역에서 나왔으며, 시로키 브리예그, 류부슈키, 치틀루크, 포수셰, 토미슬라브그라드와 같은 서부 헤르체고비나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유권자의 2.5% 미만의 지지를 얻는 등 크로아티아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매우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또한, 전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내 크로아티아계 인구는 당시 약 495,000명으로 추정되었으나, 콤시치 혼자 336,961표를 얻었고, 다른 모든 크로아티아계 후보들은 합쳐서 230,000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크로아티아인들은 그를 비합법적인 대표로 간주하고 일반적으로 그를 대통령 평의회의 두 번째 보스니아계 의원으로 취급했다. 이는 크로아티아인들 사이에서 좌절감을 불러일으키고 연방 기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으며, 그들만의 독립적인 정치적 실체 또는 연방 단위를 요구하는 주장을 강화시켰다.
3.3.3. 국내 정책 (2006-2014)

2008년 5월, 당시 대통령 평의회 보스니아계 의원이었던 하리스 실라이지치는 워싱턴 D.C. 방문 중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하나의 언어만 존재한다고 발언했다. 그의 발언은 크로아티아계 정당들과 당시 스릅스카 공화국 총리였던 밀로라드 도디크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콤시치는 실라이지치에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몇 개의 언어가 사용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2010년 미국 민주주의 국제 연구소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콤시치는 보스니아계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3.4. 대통령 평의회 의원 (2018-현재)
2018년 이후 콤시치는 대통령 평의회 의원으로서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주요 정책 결정과 논란에 관여해왔다.
3.4.1. 2018년 총선
콤시치는 2018년 1월 11일 보스니아 총선에서 크로아티아계 대표로서 보스니아의 3인 대통령 평의회 의원직에 다시 출마할 것을 발표했다. 2018년 10월 7일 실시된 총선에서 그는 52.64%의 득표율로 다시 대통령 평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현직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 대통령 평의회 의원인 드라간 초비치는 36.14%로 2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그는 보스니아계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에 이어 두 번 이상 대통령 평의회 의원을 지낸 두 번째 인물이며, 크로아티아계 의원으로는 유일하다.
3.4.2. 국내 정책 (2018-현재)

2019년 3월, 콤시치는 세르비아 정치인이자 사업가인 체도미르 요바노비치를 자신의 고문으로 임명했다. 2019년 9월, 콤시치는 수도 사라예보에서 열린 LGBT 프라이드 퍼레이드인 첫 번째 BIH 프라이드 행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라고 언급했다.
2021년 5월 22일, 콤시치와 보스니아계 대통령 평의회 의원 셰피크 자페로비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바냐루카 남쪽 마냐차산에서 미국 육군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군 간의 군사 훈련에 참석했다. 반면 세르비아계 대통령 평의회 의원인 밀로라드 도디크는 참석을 거부했다.
2021년 11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의 일자리 및 임금 삭감 계획에 대한 광부들의 시위에 대해 콤시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력공사 이사는 진디치 장관과 파딜 노발리치 총리가 사임하는 즉시 사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2022년 총선에서 콤시치는 55.80%의 득표율로 대통령 평의회 의원에 기록적인 네 번째 임기로 재선되었다. 크로아티아 민주 동맹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HDZ BiH) 후보인 보리야나 크리슈토는 44.20%로 2위를 차지했다. 그는 2022년 11월 16일 새로 선출된 데니스 베치로비치 및 젤리카 츠비야노비치와 함께 네 번째로 대통령 평의회 의원으로 취임했다.
2022년 총선 이후, 무소속 사회민주주의자 동맹(SNSD), HDZ BiH, 그리고 자유주의 연합인 트로이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새로운 정부 구성을 위한 합의에 도달했으며, 보리야나 크리슈토를 새로운 각료 이사회 의장으로 지명했다. 12월 22일, 대통령 평의회는 공식적으로 그녀를 의장 지명자로 지명했으며, 데니스 베치로비치(SDP BiH)와 젤리카 츠비야노비치(SNSD)는 찬성표를 던졌으나, 콤시치는 반대했다. 콤시치는 반대표를 던진 이유로 "크리슈토가 지명자로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3.4.3. 외교 정책

2018년 총선과 콤시치의 당선 이후, 주로 보스니아계 다수 지역의 표에 의한 그의 당선에 대해 크로아티아 총리 안드레이 플렌코비치는 "한 구성 민족의 구성원들이 다른 민족, 즉 크로아티아 민족의 대표를 선출하는 상황이 다시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콤시치는 이에 대해 크로아티아 정부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그 주권을 훼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콤시치는 또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펠레샤츠 다리 건설에 대해 크로아티아를 고소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주로 EU 자금으로 건설된 이 다리는 크로아티아 영토를 연결하기 위해 2018년 7월 30일에 착공되었으며, 콤시치의 주요 선거 경쟁자였던 드라간 초비치가 지지했다.
2020년 12월,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의 국빈 방문 직전, 콤시치는 라브로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대한 무례를 보였고, 먼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인 밀로라드 도디크만 방문한 후 나중에 셰피크 자페로비치, 밀로라드 도디크, 콤시치로 구성된 대통령 평의회를 방문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방문에 불참을 선언했다. 얼마 후 셰피크 자페로비치도 콤시치와 같은 이유로 라브로프의 방문에 불참했다.
2021년 9월, 콤시치는 뉴욕 시의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그는 9월 2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및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9월 22일, 콤시치는 총회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치적 도전, 코로나19 범유행,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했다. 9월 23일, 그는 몬테네그로와 코소보의 대통령인 밀로 주카노비치와 뵤사 오스마니를 만났다.
2021년 11월, 콤시치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했으며, 그곳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환영을 받았다.
2022년 1월 17일, 그는 바티칸 시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회담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콤시치를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2022년 2월 9일, 콤시치는 마드리드로 가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양자 회담을 가졌고, 펠리페 6세 국왕과도 대화를 나눴다.
러시아가 2월 21일 돈바스 지역의 분쟁 영토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자, 콤시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공격"을 강력히 규탄했다.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침공을 명령했으며, 이는 2014년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극적인 확대를 의미했다. 침공과 관련하여 콤시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후, 콤시치는 하마스의 행동이 절박한 사람들의 행동이며, 그들의 행동은 더 넓은 맥락에서 관찰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각료 이사회 의장인 보리야나 크리슈토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을 "성급하고 이기적인"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주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사 갈리트 펠레그는 콤시치의 발언을 비판하고 크리슈토를 옹호했으며, 이에 대해 콤시치는 이스라엘 대사를 "악의적인 거짓말쟁이 바보 또는 조작되었지만 악의적인 바보"라고 부르며, "당신을 이 거짓말과 어리석음에 설득한 그 변태"는 "당신이 내 발언을 보거나 듣지 않았음이 분명하며, 돈이 당신 민족의 홀로코스트에 참여했던 같은 정책과 이념의 추종자들과 함께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신 나라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3.4.4. 유럽 연합 관계

2020년 9월, 콤시치와 그의 동료 대통령 평의회 의원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성공적인 개혁을 이행한다면" 2021년에 EU 후보국 지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9월 30일, 콤시치, 셰피크 자페로비치, 밀로라드 도디크는 사라예보의 대통령부 청사에서 유럽 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을 만났다. 이는 폰데어라이엔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방문의 일환으로, 그녀는 몇 시간 전 국제적으로 중요한 범유럽 회랑 회랑 Vc과 연결되는 스빌라이 국경 검문소와 인근 사바강의 다리를 개통했다.
2021년 12월 1일, 콤시치와 셰피크 자페로비치는 미하엘 로트 독일 유럽 담당 국무장관을 만났으며, 주요 논의 주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치 상황, 개혁 과정, 그리고 EU 가입을 위한 국가의 활동이었다.
2022년 12월, 유럽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유럽 연합으로부터 가입 후보국으로 인정받았으며, 콤시치는 이를 강력히 지지했다. 2024년 2월 8일, 대통령 평의회는 EU와의 협상 개시를 위한 주요 조건 중 하나인 프론텍스와의 협상 개시 결정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24년 3월 21일,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유럽 이사회를 대표하는 27개 EU 회원국 지도자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각료 이사회가 두 개의 유럽 법률을 추가로 채택한 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EU 가입 협상 개시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협상은 더 많은 개혁이 이행된 후에 시작될 예정이다.
3.4.5. 코로나19 팬데믹
2020년 3월 코로나19 범유행이 시작되자, 대통령 평의회는 귀국하는 보스니아 시민들을 위한 국경 검문소에 군대 설치 격리 텐트를 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입국하는 모든 보스니아 시민은 입국일로부터 14일간 자가 격리해야 했다. 텐트는 크로아티아와의 북부 국경에 설치되었다.
2021년 3월 2일,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사라예보를 방문하여 콤시치와 다른 대통령 평의회 의원들인 셰피크 자페로비치, 밀로라드 도디크를 만나 코로나19 범유행을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10,000회분을 기증했다. 사흘 뒤인 3월 5일, 보루트 파호르 슬로베니아 대통령도 사라예보를 방문하여 콤시치, 셰피크 자페로비치, 밀로라드 도디크를 만났으며, 슬로베니아도 코로나19 범유행을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4,800회분을 기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3.4.6. 발칸 비공식 문서 논란
2021년 4월, 콤시치는 EU 외무장관들에게 각서를 보내, 민족주의 성향의 보스니아 정당인 SNSD와 HDZ BiH에 대한 EU 대표단의 지나치게 우호적인 태도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의 각서는 러시아의 영향력,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정 간섭, 그리고 HDZ BiH와 SNSD 간의 관계 조합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EU의 미흡한 행동에 대한 비판도 포함했다. 같은 달, 콤시치는 슬로베니아 총리 야네즈 얀샤가 보낸 서부 발칸 지역의 국경 변경 가능성에 대한 비공식 문서에 대해 "이 모든 것이 이미 조율되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라고 반응했다.
3.4.7. 2022년 총선
2022년 총선에서 콤시치는 55.80%의 득표율로 대통령 평의회 의원에 기록적인 네 번째 임기로 재선되었다. 크로아티아 민주 동맹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HDZ BiH) 후보인 보리야나 크리슈토는 44.20%로 2위를 차지했다. 그는 2022년 11월 16일 새로 선출된 데니스 베치로비치 및 젤리카 츠비야노비치와 함께 네 번째로 대통령 평의회 의원으로 취임했다.
3.5. 대통령 평의회 의장
젤코 콤시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통령 평의회 의장직을 여러 차례 역임했다. 이 직위는 대통령 평의회 구성원들이 8개월마다 순환하며 맡는 자리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기간 동안 의장직을 수행했다.
- 2007년 7월 6일 ~ 2008년 3월 7일 (전임: 네보이샤 라드마노비치, 후임: 하리스 실라이지치)
- 2009년 7월 6일 ~ 2010년 3월 6일 (전임: 네보이샤 라드마노비치, 후임: 하리스 실라이지치)
- 2011년 7월 10일 ~ 2012년 3월 10일 (전임: 네보이샤 라드마노비치, 후임: 바키르 이제트베고비치)
- 2013년 7월 10일 ~ 2014년 3월 10일 (전임: 네보이샤 라드마노비치, 후임: 바키르 이제트베고비치)
- 2019년 7월 20일 ~ 2020년 3월 20일 (전임: 밀로라드 도디크, 후임: 셰피크 자페로비치)
- 2021년 7월 20일 ~ 2022년 3월 20일 (전임: 밀로라드 도디크, 후임: 셰피크 자페로비치)
- 2023년 7월 16일 ~ 2024년 3월 16일 (전임: 젤리카 츠비야노비치, 후임: 데니스 베치로비치)
4. 이념 및 철학
젤코 콤시치의 정치적 이념과 철학은 그가 창당한 민주전선(DF)의 성격에 잘 나타나 있다. 민주전선은 단일 국가를 지향하는 사회 민주주의 및 시민 민족주의적 중도좌파 정당으로 평가받는다. 콤시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통합과 주권을 강조하며, 민족적 분열보다는 시민적 통합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의 이러한 이념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민주당을 탈당하고 민주전선을 창당한 배경이 되었으며, 특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복잡한 민족 구성 속에서 크로아티아계 대표로서 보스니아계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권과 사회 정의를 중시하며, LGBT 권리 지지, 광부 시위 관련 발언 등에서 그의 진보적이고 사회 민주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5. 개인 생활
콤시치는 1996년 사비나 콤시치와 결혼하여 라나라는 딸을 두었다. 그의 아내 사비나는 보스니아인이다. 그는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보스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을 위한 공통 언어 선언의 서명자 중 한 명이다. 또한 그는 사라예보를 연고로 하는 FK 젤레즈니차르 사라예보 축구 클럽의 열렬한 팬이다.
6. 수상 및 서훈
젤코 콤시치는 보스니아 전쟁 중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군에 복무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 군사 훈장을 수훈했다.
훈장 또는 표창 | 국가 | 수여자 | 연도 | 장소 | |
---|---|---|---|---|---|
![]() | 황금 백합 훈장 |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 1995 | 사라예보 |
7. 평가 및 논란
젤코 콤시치의 정치적 행보는 그의 당선 방식과 관련하여 지속적인 논란에 휩싸여 왔다.
7.1. 선거 관련 논란
콤시치는 2006년, 2010년, 2018년, 2022년 총선에서 대통령 평의회 크로아티아계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그의 당선은 주로 보스니아계 유권자들의 표에 의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의 선거 시스템상, 유권자는 보스니아계 또는 크로아티아계 대표 중 누구에게든 투표할 수 있는데, 연방 내 보스니아계 인구가 크로아티아계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크로아티아계 유권자의 지지 없이도 보스니아계 유권자의 표만으로 크로아티아계 대표가 당선될 수 있는 구조이다.
이로 인해 많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인들은 콤시치를 자신들의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를 "두 번째 보스니아계 의원"으로 간주한다. 2010년 선거에서는 콤시치가 크로아티아계 다수 지역에서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했으며, 그의 득표 대부분이 보스니아계가 우세한 지역에서 나왔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크로아티아계 인구가 20명에 불과한 칼레시야라는 보스니아계 다수 지방자치단체에서 콤시치는 7,000표 이상을 얻었다. 이러한 선거 결과는 크로아티아인들 사이에서 좌절감을 심화시키고, 연방 기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으며, 크로아티아인들만의 독립적인 정치적 실체 또는 연방 단위를 요구하는 주장을 강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2021년 8월 헤르체고비나에서 발생한 산불 진압을 위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군 헬리콥터 사용에 대한 밀로라드 도디크의 동의 거부로 인해, 콤시치와 셰피크 자페로비치가 도디크를 제외하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보안부에 소방 활동 지원을 지시한 사건은 대통령 평의회 내의 민족 간 갈등과 의사 결정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8. 영향
젤코 콤시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치 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민주당을 떠나 민주전선을 창당함으로써 보스니아 정치에 새로운 중도좌파 시민 민족주의적 흐름을 도입했다. 그의 오랜 대통령 평의회 의원 재임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복잡한 민족 기반 정치 시스템 내에서 시민적 통합과 단일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특히, 그가 보스니아계 유권자의 지지에 힘입어 크로아티아계 대표로 당선된 것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선거 제도와 민족 간 대표성 논란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데이턴 협정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치적 안정과 민족 간 화합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국내적으로는 LGBT 권리 지지와 같은 진보적인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의 지지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의 변화와 인권 증진에 기여했다. 외교적으로는 유럽 연합 가입을 위한 개혁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등 국제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제적 위상과 외교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활동은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 발전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며, 복잡한 발칸 지역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논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9. 관련 항목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치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통령 평의회
- 민주전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민주당
- 보스니아 전쟁
- 황금 백합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