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의 생애는 어린 시절부터 스키에 대한 열정을 키우고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1.1. 출생 및 유년 시절
스텐마르크는 1956년 3월 18일 스웨덴 베스테르보텐주 스토루만시의 요에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4세가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 국경 근처의 테르나뷔로 이주했습니다. 테르나뷔에서는 훗날 1983년 월드컵 회전 종목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스티그 스트란드와 어린 시절 이웃으로 지냈습니다. 스텐마르크는 5세 때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8세 때 처음으로 스웨덴 국내 스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찍이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1.2. 초기 경력
스텐마르크는 1973년 12월 8일 17세의 나이로 프랑스 발디제르에서 열린 1973-74년 월드컵 대회전 종목에 출전하며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 경기에서 그는 전체 46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듬해인 1974년 3월, 그는 노르웨이 보스에서 열린 1973-74년 월드컵 대회전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구스타프 퇴니와 오스트리아의 한지 힌터제어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하며 생애 첫 월드컵 포디움에 올랐습니다.
2. 주요 활동 및 업적
스텐마르크는 알파인 스키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특히 기술 종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2.1. 알파인 스키 경력
스텐마르크는 월드컵 데뷔 이후 회전과 대회전 종목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수많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2.1.1. 월드컵 경력
스텐마르크는 선수 경력 동안 총 86회의 월드컵 우승(대회전 46회, 회전 40회)을 기록하며, 은퇴 당시 최다 월드컵 우승 기록을 보유했습니다. 이 기록은 2023년 미케일라 시프린에 의해 경신되었지만, 남자 선수 중에서는 여전히 깨지지 않은 기록입니다. 그는 활강이나 슈퍼대회전과 같은 고속 종목에는 거의 출전하지 않았으며, 시속 120 km/h 이상의 속도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에 오직 회전과 대회전 두 가지 기술 종목에만 집중했습니다. 그의 코치 헤르만 노글러는 "그는 항상 게이트를 통과하는 더 나은 방법, 더 부드러운 방법, 더 빠른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스텐마르크는 1976년 월드컵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스칸디나비아 선수 최초로 이 영예를 안았고, 1976년부터 1978년까지 3년 연속 월드컵 종합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1979년 2월 4일 야스나에서 열린 월드컵 알파인 스키 경기에서 2위 보얀 크리자이를 4.06초 차이로 따돌리며 월드컵 알파인 레이스 사상 가장 큰 우승 격차 기록을 세웠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그의 압도적인 기량을 두고 "스텐마르크 다음으로 2위는 우승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으며, 그를 "역사상 최강의 천재 슬로머"라고 칭했습니다.
1977-78 시즌과 1978-79 시즌에는 출전한 모든 대회전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79-80 시즌에도 11번의 대회전 경기 중 10번을 우승했습니다. 회전 종목에서도 1975-76 시즌 7전 전승, 1976-77 시즌 10전 9승, 1981-82 시즌 9전 8승 등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했습니다. 1979년부터 FIS 월드컵에 도입된 새로운 종합 포인트 규정(활강, 회전, 대회전, 복합 4개 종목의 각 3개 레이스 결과로 종합 점수 산정)에 따라, 그는 단 한 번 키츠뷔엘에서 복합 종목 포인트를 얻기 위해 활강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그는 복합 3위, 활강 단독 39명 중 34위를 기록한 후 다시는 활강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코치에 따르면 그에게 활강 재능이 있었지만 연습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81-82 시즌부터 회전 종목에 도입된 가도식 폴(collapsible pole)에도 빠르게 적응했으며, 현재는 일반적인 기술인 "정강이로 폴을 쓰러뜨려 최단 거리로 진행하는" 주법을 일찌감치 도입했습니다. 1982년 키츠뷔엘 대회에서는 2위와 3.16초 차이로 월드컵 회전 역사상 가장 큰 시간차 우승을 거두며 그 해 세계 선수권 대회 회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 시즌에는 종목별 종합 2위를 기록했지만, 이듬해에는 다시 종목별 종합 우승을 탈환했으며, 1987-88 시즌까지 회전 종합 3위 이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데뷔 때부터 당시 무명이었던 엘란 스키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 사용했습니다.
시즌 | 나이 | 종합 | 회전 | 대회전 | 슈퍼대회전 | 활강 | 복합 |
---|---|---|---|---|---|---|---|
1974 | 17 | 12 | 6 | - | 미개최 | - | 미시상 |
1975 | 18 | 2 | 1 | 1 | - | ||
1976 | 19 | 1 | 1 | 1 | - | - | |
1977 | 20 | 1 | 1 | 1 | - | 미시상 | |
1978 | 21 | 1 | 1 | 1 | - | ||
1979 | 22 | 5 | 1 | 1 | - | ||
1980 | 23 | 2 | 1 | 1 | - | - | |
1981 | 24 | 2 | 1 | 1 | - | 15 | |
1982 | 25 | 2 | 2 | 2 | - | - | |
1983 | 26 | 2 | 1 | 2 | 미시상 (대회전 포함) | - | 23 |
1984 | 27 | 2 | 2 | 1 | - | - | |
1985 | 28 | 6 | 3 | 10 | - | 25 | |
1986 | 29 | 5 | 2 | 2 | - | - | - |
1987 | 30 | 6 | 2 | 7 | - | - | - |
1988 | 31 | 21 | 16 | 9 | - | - | - |
1989 | 32 | 17 | 21 | 4 | - | - | - |
종합 | 회전 | 대회전 |
---|---|---|
1976 1977 1978 |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 1981 1983 |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 1981 1984 |
3 | 8 | 8 |
종목 | 1위 | 2위 | 3위 | 합계 |
---|---|---|---|---|
회전 | 40 | 29 | 12 | 81 |
대회전 | 46 | 13 | 13 | 72 |
평행 | 0 | 1 | 0 | 1 |
복합 | 0 | 0 | 1 | 1 |
합계 | 86 | 43 | 26 | 155 |
2.1.2. 세계 선수권 대회
스텐마르크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78년 서독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린 세계 알파인 스키 선수권 대회에서 회전 종목에서 2/3초 차이로, 대회전 종목에서 2초 이상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1980년 동계 올림픽 (당시 세계 선수권 대회를 겸함)에서도 두 종목의 세계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1982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 대회전에서는 첫 번째 런에서 부진하여 미국의 스티브 마레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회전 종목에서는 다시 기량을 회복하여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동일 종목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25세의 나이에 획득한 이 메달은 그의 주요 대회 마지막 메달이었습니다.
연도 | 나이 | 회전 | 대회전 | 슈퍼대회전 | 활강 | 복합 |
---|---|---|---|---|---|---|
1974 | 17 | DNF | 9 | 미개최 | - | - |
1976 | 19 | DNF2 | 3 | - | - | |
1978 | 21 | 1 | 1 | - | - | |
1980 | 23 | 1 | 1 | - | - | |
1982 | 25 | 1 | 2 | - | - | |
1985 | 28 | 4 | DNF | - | - | |
1987 | 30 | 5 | 10 | - | - | - |
1989 | 32 | DNF2 | 6 | - | - | - |
2.1.3. 올림픽 참가
스텐마르크는 총 세 번의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1976년 동계 올림픽 대회전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1980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회전과 대회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습니다. 회전 종목에서는 미국의 필 마레와 스위스의 자크 뤼티를, 대회전 종목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의 안드레아스 벤첼과 오스트리아의 한스 엔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1984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1984년 동계 올림픽에는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FIS는 스텐마르크가 국가 스키 연맹을 통하지 않고 직접 홍보 대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를 실격 처리했습니다. 이는 당시 스웨덴 팀의 메달 기대에 큰 타격이었습니다. 1980년 올림픽 2관왕이었던 한니 벤첼과 당시 1983-84 시즌 최고의 회전 선수였던 마르크 기라르델리 또한 비슷한 이유로 출전이 금지되었습니다.
스텐마르크는 1988년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1988년 동계 올림픽에 복귀했으나, 전성기를 지나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대회전에서는 완주에 실패했고, 회전 종목에서는 5위를 기록했습니다. 비록 메달은 얻지 못했지만, 회전 경기 두 번째 런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우며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1989년 3월, 33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월드컵에서 은퇴했습니다.
연도 | 나이 | 회전 | 대회전 | 슈퍼대회전 | 활강 | 복합 |
---|---|---|---|---|---|---|
1976 | 19 | DNF2 | 3 | 미개최 | - | 미개최 |
1980 | 23 | 1 | 1 | - | ||
1984 | 27 | 출전 금지 | ||||
1988 | 31 | 5 | DNF2 | - | - | - |
2.2. 스키 스타일 및 경기 운영
스텐마르크는 기술 종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배적인 스키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경기 중 2위 선수와 큰 격차를 벌이며 우승하는 경우가 많아 "천재 슬로머"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코치 헤르만 노글러는 스텐마르크가 항상 게이트를 통과하는 더 부드럽고 빠른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또한 1981-82 시즌부터 도입된 가도식 폴에 빠르게 적응하여, 현재는 일반적인 기술인 "정강이로 폴을 쓰러뜨려 최단 거리로 진행하는" 주법을 선구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스텐마르크는 미디어 질문에 짧지만 정중하게 답변하는 조용한 챔피언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3. 수상 및 영예
스텐마르크는 그의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수많은 상과 영예를 받았습니다.
- 홀멘콜렌 메달: 1979년 (에리크 호케르와 라이사 스메타니나와 공동 수상)
-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 금메달: 1975년, 1978년 (1978년에는 테니스 선수 비외른 보리와 공동 수상. 이로써 스텐마르크와 보리는 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남자 선수가 되었으며, 여자 알파인 스키 선수 안야 페르손은 2006년과 2007년에 수상했습니다.)
- 예링상: 1979년, 1980년
- 국왕 메달: 1978년
그는 또한 회전과 대회전 두 종목 모두에서 각각 8개의 월드컵 종목별 타이틀을 획득한 유일한 남자 스키 선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4. 개인사
스텐마르크는 1984년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독일인 승무원인 안 우프하겐과 결혼했지만, 1987년에 이혼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984년에 태어난 딸이 한 명 있습니다. 그는 1980년에 세금 문제로 모나코로 이주했으며, 2006년까지 모나코에 거주했습니다. 이후 10년간 교제한 핀란드 출신 타리아 올리와 2016년에 결혼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2008년에 태어난 딸이 한 명 있습니다. 현재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스톡홀름 근교의 백스홀름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5. 은퇴 후 활동
스텐마르크는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그는 테니스 선수 비외른 보리와 함께 스웨덴의 국민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40세가 되던 1996년에는 스웨덴 슈퍼스타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습니다.
2004년 12월 26일, 그는 태국에서 휴가 중 인도양 지진 해일을 겪었으나, 고지대로 대피하여 무사히 생존했습니다. 2015년에는 스웨덴의 유명 댄스 경연 프로그램인 '렛츠 댄스 2015'에 유명인 참가자로 출연하여 전문 댄서 세실리아 에를링과 팀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또한 2022년 ALS로 사망한 절친한 친구이자 스웨덴 아이스하키 선수인 뵈리에 살밍의 이름을 딴 뵈리에 살밍 ALS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4년, 68세의 나이로 세계 마스터스 육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3 m를 뛰어넘어 전체 8위를 기록하며 여전한 운동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6. 유산 및 영향력
잉에마르 스텐마르크는 알파인 스키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스웨덴 스포츠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역사상 최강의 천재 슬로머"로 평가받으며, 특히 기술 종목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기량은 후대 선수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가도식 폴 도입 이후 "정강이로 폴을 쓰러뜨려 최단 거리로 진행하는" 주법을 선구적으로 사용하며 알파인 스키 기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월드컵 최다 우승 기록은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금자탑이었으며, 비록 2023년 미케일라 시프린에 의해 경신되었지만 여전히 남자 선수 중에서는 독보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텐마르크는 스웨덴 국민들에게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선 국민적 영웅이자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