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이반 클라스니치(Ivan Klasnić이반 클라스니치크로아티아어)는 1980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크로아티아의 전 축구 선수로, 주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는 FC 장크트 파울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한 후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우승을 경험하며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특히 클라스니치는 선수 경력 중 두 차례의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도 UEFA 유로 2008에 참가하여 주요 국제 대회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라는 독특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경력은 부상과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의지로 복귀한 불굴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2. Early life and youth career
이반 클라스니치는 1980년 1월 29일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보스니아 출신 크로아티아인이고 어머니는 독일인입니다. 클라스니치는 어린 시절 SC 우니온 03 함부르크 (1984~1992)와 TSV 슈테링겐 88 (1992~1994) 유소년 팀에서 뛰었으며, 1995년부터 1997년까지 FC 장크트 파울리 유소년 팀에서 활약했습니다. 1998년 1월, 그는 FC 장크트 파울리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며 본격적인 축구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3. Club career
이반 클라스니치는 여러 클럽을 거치며 프로 선수로서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였습니다. 그의 클럽 경력은 초기 장크트 파울리에서의 인상적인 활약부터 베르더 브레멘에서의 전성기, 그리고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의 도전까지 다채로운 여정을 포함합니다.
3.1. FC St. Pauli
클라스니치는 1998년 1월부터 FC 장크트 파울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2. 분데스리가에서 세 시즌 반 동안 스트라이커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2000-01 시즌에는 10골을 기록하며 팀이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장크트 파울리 입단 전에는 SC 우니온 03 함부르크와 TSV 슈테링겐과 같은 아마추어 팀에서 뛰었습니다.
3.2. Werder Bremen

2001년 여름, 클라스니치는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했습니다. 그의 키는 1.86 m였습니다. 처음 두 시즌 동안은 불안정한 경기력과 두 차례의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분데스리가 36경기에서 단 3골만을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부터 괄목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2003-04 시즌 베르더 브레멘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DFB-포칼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즌 그는 13골을 넣었고, 브라질인 공격 파트너 아일톤에게 11개의 어시스트를 제공했습니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여러 클럽의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 브레멘에 잔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에는 벨기에 팀 RSC 안데를레흐트와의 두 차례 조별리그 경기에서 5골을 기록했으며, 홈 경기 5-1 승리에서는 해트트릭을 달성했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팀은 토너먼트 단계에 진출했으나, 강호 프랑스 팀 리옹에게 합계 10-2로 대패하며 탈락했습니다.
2006-07 시즌 초반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에네르기 코트부스와의 홈 경기에서 1-1로 실망스러운 무승부를 기록한 후에서야 첫 리그 골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2007년 초, 클라스니치는 신부전 진단을 받으며 10개월 이상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2008년 4월, 베르더 브레멘의 의료진이 2002년에 이미 자신의 병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브레멘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병을 제때 진단하지 못한 의료진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이유로 베르더 브레멘과의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08년 5월 14일, 베르더 브레멘은 클라스니치가 팀을 떠나는 것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3.3. FC Nantes
2008년 7월 8일, 클라스니치는 프랑스 FC 낭트로 이적했습니다. 처음에는 임대 이적이었으나 이후 4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는 28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며 어려운 한 시즌을 보냈고, 낭트는 리그 2로 강등되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5경기에서 4골을 넣는 등 단기간에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3.4. Bolton Wanderers
2009년 여름 이적 시장 마감일, 클라스니치는 볼턴 원더러스에 1년 임대 계약으로 합류하며 개리 맥슨 감독의 마지막 영입 선수가 되었습니다. 맥슨 감독은 "이반은 오랫동안 추적해온 선수다. 그의 득점 기록은 매우 뛰어나며,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과 유럽 클럽에서 훌륭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며 그의 영입에 대한 기대를 표했습니다.
2009년 9월 12일, 클라스니치는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여 볼턴 데뷔전을 치렀고, 팀의 3-2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10월 25일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으며, 이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8골을 넣었습니다.
2010년 8월 4일, 클라스니치는 임대 생활을 마치고 볼턴과 2년 정식 계약을 맺었습니다. 8월 24일 사우샘프턴과의 풋볼 리그 컵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두 번째 볼턴 생활의 첫 골을 기록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첫 정식 계약 후 골은 스토크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을 때 나왔지만, 이 경기에서 퇴장당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3월 5일, 아스톤 빌라를 상대로 막판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5월에는 선덜랜드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동점골을 넣었으나, 팀은 추가 시간에 결승골을 허용하며 1-2로 패배했습니다. 이 시즌 그는 리그에서 단 한 번도 선발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회를 통틀어 7골을 기록했습니다.
2011-12 시즌 개막일, 클라스니치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골을 넣으며 팀의 4-0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다음 주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넣었지만 3-2로 패배했습니다. 그는 한때 프리미어리그 득점 선두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11년 9월 18일,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마크 티어니에게 박치기를 하여 퇴장당했으며, 이후 팀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퇴장 후 첫 선발 출전은 11월 6일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였으며,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5-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어서 웨스트 브로미치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골을 넣었으나 팀은 2-1로 패했습니다. 시즌 7번째 골은 몇 주 뒤 아스톤 빌라와의 홈 경기에서 나왔지만, 다시 2-1로 패했습니다. 동료 공격수 다비드 은고그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후, 3월 10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후반 86분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볼턴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된 후, 5월 16일 클라스니치는 자신의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클럽을 떠났음을 확인했습니다.
3.5. 1. FSV Mainz 05
2012년 9월, 클라스니치는 자유 계약 신분으로 독일 클럽 1. FSV 마인츠 05에 합류하여 1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3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습니다.
4. International career
이반 클라스니치는 독일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혈통을 따라 크로아티아 국가대표로 뛰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4.1. Youth and early senior appearances
클라스니치는 1998년부터 1999년까지 크로아티아 U-19 대표팀에서 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습니다. 2001년 봄에는 크로아티아 U-21 대표팀에서 3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넣는 등 유소년 대표팀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당시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루디 푈러의 독일 대표팀 발탁 제안을 거절하고,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국제 데뷔전은 운명적으로 2004년 2월, 독일과의 친선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독일이 2-1로 승리했습니다. 2004년 4월 28일 마케도니아 공화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첫 국가대표팀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4.2. Major tournaments (Euro 2004, 2006 World Cup)
클라스니치는 UEFA 유로 2004 크로아티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대회 내내 교체 명단에 머물렀습니다.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으며, 언론에서는 클라스니치의 미기용 등이 패인 중 하나로 지적되었습니다.
2006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8경기에서 단 1골만을 기록하며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유일한 골은 2004년 9월 헝가리와의 개막전에서 나왔는데, 크로아티아는 이 경기에서 3-0으로 쉽게 승리했습니다. 2005년 2월, 이스라엘과의 친선 경기에서는 두 골을 넣으며 3-3 무승부를 기록했고,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2006년 3월 1일에는 아르헨티나와의 또 다른 친선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2006년 5월, 클라스니치는 예상대로 2006 FIFA 월드컵 본선에 참가할 크로아티아 23인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뛰어난 컨디션을 보였는데, 베르더 브레멘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3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2005-06 시즌을 총 15골로 마감했습니다. 이어서 5월 23일 오스트리아와의 월드컵 준비 친선 경기에서는 두 골을 터뜨리며 팀의 4-1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이 다가오면서 그의 컨디션은 점차 하락했고, 남은 세 차례의 준비 경기와 본선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에서 2무 1패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습니다.
4.3. UEFA Euro 2008
2006-07 시즌에는 UEFA 유로 2008 예선 개막 두 경기에서 부진한 활약을 보인 후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안도라와의 경기에서는 7-0 대승 중 한 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잉글랜드와 이스라엘과의 다음 두 경기에서는 교체 명단에만 이름을 올렸습니다.
UEFA 유로 2008 본선에서는 크로아티아의 조별리그 첫 두 경기에서는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6월 16일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 선발 출전하여 후반 53분 골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고, 크로아티아가 조 1위로 완벽하게 토너먼트 단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터키와의 8강전에서는 다시 벤치에 앉았으나, 연장 전반 시작과 함께 이비차 올리치와 교체되어 출전 기회를 잡았습니다. 연장 후반 118분, 루카 모드리치가 제공한 패스를 헤딩으로 연결하여 크로아티아의 결정적인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터키는 불과 2분 뒤 세미흐 셴튀르크의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터키가 승리하며 크로아티아는 탈락했습니다. 이반 클라스니치는 이 대회에서 신장 이식 수술 후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하여 두 골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강한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5. Health issues and legal dispute
이반 클라스니치의 선수 경력은 신장 질환과의 힘겨운 싸움으로 점철되었으며, 이로 인해 오랜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5.1. Initial kidney failure and transplants
2007년 1월, 클라스니치가 신부전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2007년 1월 25일, 그는 어머니 시마(Šima)로부터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그의 몸이 새로운 장기를 거부했다는 소식이 곧 전해졌습니다.
2007년 3월 23일, 그는 거부 반응이 나타난 신장을 교체하기 위한 두 번째 수술을 받았고, 이번에는 아버지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았습니다. 두 번째 이식은 성공적이었으며, 클라스니치는 의사들이 자신에게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2007년 8월, 베르더 브레멘의 의료진은 그의 몸이 심한 신체적 부담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훈련을 금지했습니다. 약 6개월간 훈련을 하지 못했던 그는 9월이 되어서야 의사들의 허락을 받아 전체 훈련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팀에 합류하여 구단 컵 대회와 2군 경기 몇 차례에 출전했습니다.
마침내 2007년 11월 24일, 클라스니치는 2006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베르더 브레멘의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에네르기 코트부스와의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65분간 활약했습니다. 2007년 12월 15일, 그는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며 팀의 5-2 승리에 기여하고 85분간 뛰며 완벽하게 복귀했습니다.
2008년 3월, 클라스니치는 1년 만에 국가대표팀에 재발탁되었습니다. 그는 UEFA 유로 2008에 출전하면서 신장 이식 수술 후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으며, 조별리그 폴란드전과 8강전 터키전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5.2. Recurrence and third transplant
2016년 9월, 클라스니치에게 이식된 신장이 다시 기능을 상실하여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2017년 10월, 그는 세 번째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5.3. Legal battle with Werder Bremen doctors
클라스니치는 베르더 브레멘 의료진의 초기 치료 과실에 대해 10년 동안 법적 분쟁을 이어왔습니다. 그는 의료진이 자신의 약해진 신장에 진통제를 잘못 사용하여 상태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2020년 12월, 그는 최종적으로 소송에서 승소하여 의료진으로부터 360.00 만 GBP의 배상금을 받았습니다.
6. Honours and achievements
이반 클라스니치는 선수 생활 동안 다음과 같은 팀 및 개인적인 영예를 얻었습니다.
6.1. Club honours
- FC 장크트 파울리
- 2. 분데스리가 승격: 2000-01
- 베르더 브레멘
- 분데스리가: 2003-04
- DFB-포칼: 2003-04
- DFL-리가포칼: 2006
6.2. Individual achievements
- DFB-포칼 득점왕: 2003-04
- DFL-리가포칼 득점왕: 2006
-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2005-06
- 키커 올해의 선수: 2007
- UEFA 유로 2008 조별리그 폴란드 대 크로아티아 경기 최우수 선수 (맨 오브 더 매치)
7. Career statistics
이반 클라스니치의 클럽 및 국가대표 경기 출장 기록과 득점 통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7.1. Club statistics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유럽 | 합계 | ||||||
---|---|---|---|---|---|---|---|---|---|---|---|---|
디비전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FC 장크트 파울리 | 1997-98 | 2. 분데스리가 | 8 | 0 | 0 | 0 | - | - | 8 | 0 | ||
1998-99 | 2. 분데스리가 | 24 | 8 | 0 | 0 | - | - | 24 | 8 | |||
1999-2000 | 2. 분데스리가 | 32 | 8 | 2 | 1 | - | - | 34 | 9 | |||
2000-01 | 2. 분데스리가 | 31 | 10 | 2 | 1 | - | - | 33 | 11 | |||
합계 | 95 | 26 | 4 | 2 | 0 | 0 | 0 | 0 | 99 | 28 | ||
베르더 브레멘 | 2001-02 | 분데스리가 | 23 | 1 | 2 | 0 | - | 2 | 0 | 27 | 1 | |
2002-03 | 분데스리가 | 13 | 2 | 4 | 3 | 0 | 0 | 3 | 2 | 20 | 7 | |
2003-04 | 분데스리가 | 29 | 13 | 6 | 6 | - | 1 | 0 | 36 | 19 | ||
2004-05 | 분데스리가 | 28 | 10 | 4 | 2 | 2 | 2 | 7 | 5 | 41 | 19 | |
2005-06 | 분데스리가 | 30 | 15 | 4 | 1 | 2 | 1 | 6 | 2 | 42 | 19 | |
2006-07 | 분데스리가 | 12 | 1 | 1 | 1 | 2 | 2 | 6 | 0 | 21 | 4 | |
2007-08 | 분데스리가 | 16 | 7 | 1 | 0 | 0 | 0 | 1 | 1 | 18 | 8 | |
합계 | 151 | 49 | 22 | 13 | 6 | 5 | 26 | 10 | 205 | 77 | ||
FC 낭트 | 2008-09 | 리그 1 | 28 | 6 | 0 | 0 | 0 | 0 | - | 28 | 6 | |
2009-10 | 리그 2 | 5 | 4 | - | - | - | 5 | 4 | ||||
합계 | 33 | 10 | 0 | 0 | 0 | 0 | 0 | 0 | 33 | 10 | ||
볼턴 원더러스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27 | 8 | 3 | 0 | 2 | 0 | - | 32 | 8 | |
2010-11 | 프리미어리그 | 21 | 4 | 5 | 2 | 2 | 1 | - | 28 | 7 |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29 | 8 | 3 | 1 | 1 | 0 | - | 33 | 9 | ||
합계 | 77 | 20 | 11 | 3 | 5 | 1 | 0 | 0 | 93 | 24 | ||
1. FSV 마인츠 05 | 2012-13 | 분데스리가 | 3 | 1 | 0 | 0 | - | - | 3 | 1 | ||
커리어 합계 | 359 | 106 | 31 | 18 | 11 | 6 | 26 | 10 | 428 | 140 |
7.2. International statistics
득점은 크로아티아의 골 수를 먼저 기록하며, 점수 열은 클라스니치의 각 골 이후의 점수를 나타냅니다.
번호 | 캡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1 | 3 | 2004년 4월 28일 | 스코페 시티 스타디움, 스코페, 북마케도니아 | 마케도니아 | 1-0 | 1-0 | 친선 경기 |
2 | 8 | 2004년 9월 4일 | 막시미르 스타디움,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 헝가리 | 2-0 | 3-0 | 2006 FIFA 월드컵 예선 |
3 | 11 | 2005년 2월 9일 | 테디 스타디움, 예루살렘, 이스라엘 | 이스라엘 | 1-0 | 3-3 | 친선 경기 |
4 | 3-2 | ||||||
5 | 17 | 2006년 3월 1일 | 장크트 야콥 파크, 바젤, 스위스 | 아르헨티나 | 1-0 | 3-2 | 친선 경기 |
6 | 19 | 2006년 5월 23일 |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 빈,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 | 1-0 | 4-1 | 친선 경기 |
7 | 2-1 | ||||||
8 | 27 | 2006년 10월 7일 | 막시미르 스타디움,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 안도라 | 5-0 | 7-0 | UEFA 유로 2008 예선 |
9 | 30 | 2008년 6월 16일 | 히포 아레나, 클라겐푸르트, 오스트리아 | 폴란드 | 1-0 | 1-0 | UEFA 유로 2008 조별리그 |
10 | 31 | 2008년 6월 20일 |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 빈, 오스트리아 | 터키 | 1-0 | 1-1 (1-3 p) | UEFA 유로 2008 토너먼트 |
11 | 35 | 2009년 4월 1일 | 에스타디 코무날 다'안도라 라 벨라, 안도라 | 안도라 | 1-0 | 2-0 | 2010 FIFA 월드컵 예선 |
12 | 37 | 2009년 10월 8일 | 칸트리다 스타디움, 리예카, 크로아티아 | 카타르 | 2-0 | 3-2 | 친선 경기 |
8. Legacy
이반 클라스니치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을 이뤄낸 선수로, 신장 이식 수술 후에도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며 축구계에 큰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는 특히 UEFA 유로 2008에 참가하여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후 주요 국제 대회에 출전하고 득점까지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불굴의 정신과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클라스니치가 남긴 "강한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은 그의 삶과 경력을 관통하는 메시지이자, 질병과 역경에 맞서 싸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복귀와 활약은 단순히 스포츠 분야를 넘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투혼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