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수 경력
요하네스 본프레러는 MVV 마스트리흐트에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다. 1963년부터 1985년까지 총 335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50골을 기록했다. 또한, 네덜란드 청소년 대표팀 선수로도 활약했다.
2. 감독 경력
본프레러는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긴 감독 경력을 쌓았으며,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1. 초기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본프레러는 자신의 친정팀인 MVV 마스트리흐트의 감독을 1983년과 1985년에 걸쳐 지내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1995년부터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축구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팀의 수석 코치였는데, 당시 감독이 사퇴하자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본프레러 감독의 지휘 아래 나이지리아는 조별 리그에서 브라질을 꺾고, 결승에서는 아르헨티나까지 제압하며 올림픽 축구 역사상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와 봉급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다가 결국 팀을 떠났다. 이후 중동으로 향하여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그리고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두 차례 맡았다. 또한 알 와흐다 FC 감독을 1998년부터 1999년, 2001년부터 2002년, 그리고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세 차례 역임했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집트의 명문 클럽인 알 아흘리에서는 2002-2003 시즌 동안 감독을 맡았으나, 리그 우승을 최종전에서 2점 차로 놓친 뒤 계약이 해지되기도 했다. 그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기도 했다.
2.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본프레러 감독은 2004년 6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다시 한번 축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사퇴로 사령탑이 공석인 상황이었고, 아시안컵과 2006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을 앞두고 있었다. 브뤼노 메취 감독과의 계약이 불발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대한축구협회는 후순위 후보였던 본프레러에게 제안했고, 그는 이를 수락하여 2004년 6월 21일 공식 부임했다.
2.2.1. 감독 부임과 초기 성과
부임 직후 본프레러 감독은 매우 엄격하고 강도 높은 훈련 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한때 잊혀져가던 스트라이커 이동국이 데뷔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하며 부활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그의 지휘 아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4년 12월 부산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서 발라크와 칸 등 월드컵 스타들이 포함된 강팀을 상대로 3대1 완승을 거두며 높은 평가와 기대감을 받았다. 이 경기는 본프레러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경질 여론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계기가 되었다.
2.2.2. 2004년 AFC 아시안컵 및 2006년 월드컵 2차 예선
2004년 AFC 아시안컵 본선을 한 달 앞두고 급하게 팀을 재정비한 탓에, 팀의 수비는 여전히 불안했고 공격력도 문제를 드러냈다. 조별리그 첫 경기인 요르단전에서는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어진 아랍에미리트전에서는 2대0으로 승리했고, 약 20년 동안 한국을 괴롭혀온 쿠웨이트를 4대0으로 대파하며 저력을 보여주었다. 8강전에서는 이란과 난타전 끝에 3대4로 석패하며 아시안컵을 마무리했다. 비록 수비 문제가 노출되었지만, 공격력에서는 희망적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재개된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도 본프레러 감독은 쉽지 않은 경기를 이어갔다. 2004년 9월 8일 베트남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전반에 이렇다 할 공격을 보여주지 못하고 후반 시작과 동시에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간신히 2골을 넣어 2대1 역전승을 거두었다. 본프레러 감독은 이 경기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지만, 10월 13일 레바논 원정 경기에서는 1대0으로 앞서다가 수비 실책으로 1대1 무승부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체면을 구겼다.
당시 대한민국은 레바논과 승점 1점 차로 아슬아슬하게 조 1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무승부로 순위 변동은 없었으나 11월 17일 서울에서 열리는 몰디브와의 최종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특히 몰디브는 그해 3월 31일 원정 경기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던 상대였기에 최종 예선 진출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후반전에 2골을 넣어 2대0으로 승리하며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 지었고, 본프레러 감독은 "1차전 0대0 무승부의 아쉬움을 털고 최종 예선에 진출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하며 안도했다. 이 시점부터 본프레러 감독에 대한 경질 여론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2.3. 2006년 월드컵 최종 예선과 사임
2005년 2월 9일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첫 경기인 쿠웨이트전은 2대0 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나흘 전 이집트와의 친선 경기에서 0대1로 패하며 불안한 조짐을 보였으나, 쿠웨이트를 상대로는 전반과 후반에 한 골씩을 기록하며 공수 모두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3월 25일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서 0대2로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다시금 위기가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본프레러 감독이 경기 후 "우리는(We) 좀 더 효율적으로 경기를 했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 발언이 선수들을 향한 비난으로 보도되면서 경질론이 거세졌다.
다행히 3월 30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홈경기에서 2대1로 승리하며 한숨을 돌렸으나, 6월 3일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0대1로 뒤지다가 박주영의 A매치 데뷔골로 1대1 무승부를 기록하며 다음 쿠웨이트 원정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당시 쿠웨이트전에서 무승부만 기록해도 최소한 2위가 확정되는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상대가 지난 20년간 중요한 순간마다 한국을 괴롭혀온 쿠웨이트였고 원정 경기였기에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는 약 1년 전 아시안컵 조별리그와 동일한 4대0 완승을 거두며 대한민국은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하지만 2005년 8월 한국에서 개최된 동아시아컵에서 중국에 1대1 무승부, 북한에 0대0 무승부, 일본에 0대1 패배를 기록하며 최하위에 머물자 경질 여론이 다시 확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8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 홈경기에서 0대1로 패배하며 원정 경기 패배를 설욕하지 못하자 경질 여론은 극에 달했다. 본프레러 감독은 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며칠 후 자진 사임 형식으로 사실상 경질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또 다른 네덜란드인 감독인 딕 아드보카트가 선임되었다. 아드보카트는 자신이 "또 다른 거스 히딩크가 될 것이지, 본프레러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며 전임 감독을 불쾌하게 하기도 했다.
2.2.4. 이후 감독 경력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사임 이후 본프레러는 중국으로 무대를 옮겨 활동했다. 2007년에는 중국 슈퍼리그의 명문팀인 다롄 스더와 1년 계약을 맺고 감독을 맡았다. 팀은 리그 5위로 시즌을 마쳤으나,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어 계약 연장에는 실패했다. 2011년 6월 29일에는 또 다른 중국 슈퍼리그 클럽인 허난 젠예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의 슈퍼리그 잔류를 위해 노력했다.
2015년 2월, 그는 친정팀인 MVV 마스트리흐트의 유소년 팀 코치로 합류하기도 했다. 2017년 5월 25일에는 중국 갑급리그의 바오딩 잉리 ETS와 1년 계약을 체결하며 다시 중국 프로축구 무대로 복귀했다.
3. 주요 업적 및 수상 경력
본프레러 감독의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다.
- 하계 올림픽 금메달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나이지리아 U-23)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 : 2000년 (나이지리아)
4. 어록 및 대중적 평가
본프레러 감독은 직설적이고 강한 어조로 인해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의 언행은 때로는 선수들을 자극하고 동기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내가 서라면, 서라. 오른쪽으로 차라면 오른쪽으로 차고, 왼쪽으로 차라면 왼쪽으로 차라."
- 훈련 중 선수들이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자 화를 내며 했던 발언으로, 그의 엄격하고 직접적인 지도 방식을 잘 보여준다.
- "대표선수가 겨우 이 정도 플레이밖에 못 하나.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집에 가라."
- 선수들의 플레이가 느슨해지자 훈련을 중단시키며 질책했던 말로, 선수들에게 강한 집중력과 적극성을 요구했다.
- "아직 골이 들어가는 것을 못 봤다."
- 이춘석 코치가 슈팅 훈련을 마치려 하자 골이 들어갈 때까지 계속하라며 강조했던 발언이다.
- "나의 전략은 완벽했으나 선수들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 경기 후 기자 인터뷰에서 패배의 원인을 선수들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으로, 당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지금 자고 있는 거냐."
- 훈련에 집중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선수들에게 외쳤던 말이다.
-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
- 박주영을 국가대표팀에 발탁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답변했던 발언으로, 당시 박주영의 왜소한 체격을 빗대어 평가했던 말이다.
본프레러 감독의 이러한 직설적인 화법은 당시 한국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선수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팀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특히 "나의 전략은 완벽했으나 선수들이 따라주지를 않았다"는 발언은 선수와 감독 간의 신뢰 문제로까지 비화되며 경질 여론에 불을 지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5. 여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를 금메달로 이끈 후, 당시 사니 아바차 장군이 이끌던 나이지리아 정부는 본프레러에게 3베드룸 아파트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다가, 2018년 6월 7일이 되어서야 나이지리아 정부는 그에게 약속했던 아파트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