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에피파니 1세는 1979년 2월 3일에 태어난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종교 지도자로,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수좌주교이자 키이우와 전우크라이나의 관구대주교이다. 본명은 세르히 페트로비치 두멘코(Сергій Петрович Думен코세르히 페트로비치 두멘코우크라이나어)이며, 공식 칭호는 키이우와 전우크라이나의 에피파니 관구대주교(Епіфаній, Митрополит Київський і всієї України에피파니, 미트로폴리트 키이우스키 이 우시예이 우크라이니우크라이나어)이다.
그는 2018년 12월 15일 우크라이나 정교회 통합 공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정교회 (키이우 총대주교청)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가 통합하여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발족하면서 초대 수좌주교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의 종교적 자치권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종교적 정체성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회복을 위한 종교적 지도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국제 사회에 호소하고, 러시아의 침략을 강력히 규탄하는 등 국가적 단결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에피파니 1세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오데사주 보우코베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체르니우치주 스토로지네츠구의 스타라자도바 마을에서 보냈다. 그의 학업과 신학 수련은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2.1. 출생 및 성장 과정
세르히 페트로비치 두멘코는 1979년 2월 3일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베레지우카 라이온의 보우코베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은 체르니우치주 스토로지네츠 라이온의 스타라자도바 마을에서 보냈다. 1996년, 그는 스타라자도바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2. 학업 및 신학 수련
1996년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키이우 신학교에 입학하여 1999년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같은 해, 그는 키이우 신학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2003년에 "도니카 시대의 교회-정경적 수집품의 형성 및 그 특징"이라는 주제의 박사 학위 논문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는 그리스 아테네 국립 카포디스트리아스 대학교 철학부에서 인턴십을 수행하며 학문적 지평을 넓혔다. 2012년 8월 30일에는 "성스러운 조국의 연속성 맥락에서 구원에 대한 정교회의 교리"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 교회 경력
에피파니 1세는 사제 서품 이후 다양한 교회 직책을 수행하며 학문적 기여를 이어갔고, 우크라이나 정교회 (키이우 총대주교청) 내에서 중요한 인물로 성장했다.
3.1. 사제 서품 및 초기 사역
2003년 7월 1일부터 2005년 12월 31일까지 그는 리우네 교구 행정실의 비서 겸 리우네 및 오스트로흐 관구대주교의 개인 비서로 봉사했다. 2003년 8월 26일부터 2005년 12월 31일까지는 리우네 신학교의 교사로 재직했으며, 선임 조사관 직책을 맡았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리우네 정교회"(Рівне Православне리우네 프라보슬라우네우크라이나어) 인터넷 포털을 이끌었고, 종교 신문 《두호브나 니바》(Духовна Нива두호브나 니바우크라이나어, '영적 밭')의 편집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05년 12월에는 우크라이나 기자 연합회에 가입했다.
2007학년도부터 그는 키이우 정교회 신학 아카데미의 교사로 활동하며 어문학과 학과장으로 임명되었다. 2007년 12월 21일, 필라레트 (데니센코) 총대주교의 축복 아래 페레야슬라우흐멜니츠키의 디미트리 대주교로부터 키이우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삭발례를 받았다. 그는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를 기리며 '에피파니'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2008년 1월 20일, 필라레트 총대주교에 의해 수도사제로 서품되었다. 같은 달 1월 25일, 그는 키이우와 전루시-우크라이나의 총대주교인 필라레트의 비서로 임명되었다.
3.2. 우크라이나 정교회 (키이우 총대주교청)에서의 활동
2008년 3월, 에피파니는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에서 대수도사제로 서품되었다. 같은 달 3월 20일, 그는 키이우의 비두비치 수도원 관리인으로 임명되었다. 2008년 5월 30일에는 키이우 총대주교청의 사무국장으로 임명되었고, 2008년 10월 7일에는 키이우 정교회 신학 아카데미의 부교수 직함을 받았다.
2009년 10월 21일, 우크라이나 정교회 (키이우 총대주교청) 성 시노드 회의에서 그는 비슈호로드 라이온의 주교이자 키이우 교구의 보좌주교로 선출되었다. 2009년 11월 15일에는 주교로 서품되었다. 2010년 7월 27일, 우크라이나 정교회(키이우 총대주교청) 성 시노드의 결정에 따라 그는 키이우 정교회 신학 아카데미의 총장과 페레야슬라우흐멜니츠키 교구의 관리인으로 임명되었다. 2011년 11월 17일에는 키이우 정교회 신학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2012년 1월 23일, 그는 대주교로 승진했다. 2013년 6월 28일, 우크라이나 정교회(키이우 총대주교청)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그는 페레야슬라우흐멜니츠키 및 빌라체르크바의 관구대주교로 승격되었고, 교구 주교의 권한을 가진 총대주교 대리인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 12월 13일에는 페레야슬라우 및 빌라체르크바의 관구대주교로 지명되었다.
2019년 4월, 그는 우크라이나어 법률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2020년 8월 21일, 키이우 성 미하일 광장에서 그는 영웅 추모의 벽을 봉헌했다. 그는 또한 8월 20일 키이우주 후티르 야스니 마을에 있는 성 넥타리오스 교회를 봉헌했다. 8월 29일, 우크라이나 수호자 추모의 날에는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기렸다.
4.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좌주교로서의 활동
에피파니 1세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수좌주교로 선출된 이후, 교회의 자치권 획득과 운영, 그리고 사회적, 국가적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종교적, 국가적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4.1. 수좌주교 선출 및 통합 공의회

2018년 12월 15일, 키이우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정교회 통합 공의회에서 에피파니는 키이우와 전우크라이나의 관구대주교로 선출되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첫 번째 자치교회 수좌주교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공의회를 통해 우크라이나 정교회 (키이우 총대주교청)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가 통합되어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발족했으며, 에피파니는 이 통합 교회의 수장으로 취임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좌주교의 공식 명칭은 "축복받은 (이름), 키이우와 전우크라이나의 관구대주교"이다.
2018년 12월 16일 일요일,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선출 이후 첫 성찬예배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단결을 위한 기도를 촉구했다. 이 예배에서 그는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을 대입당 시 기념하는 형제 수좌주교 명단에서 제외했다. 에피파니는 이후 우크라이나 "다이렉트" TV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는 전쟁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모스크바 총대주교)를 기념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새로 선출된 수좌주교가 러시아 총대주교의 이름을 기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1월 7일 성찬예배 중, 1월 5일에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공식적인 자치교회 지위를 획득한 후,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대입당 시 키릴 총대주교의 이름을 기념했다. 에피파니는 나중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 1세가 그렇게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며, 필라레트 (데니센코)는 그에게 키릴을 언급하지 말라고 지시했었다고 덧붙였다.
4.2. 교회 자치권 획득 (토모스 수여)

2019년 1월 5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 1세와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이스탄불 성 게오르기오스 대성당에서 예배를 거행했다. 이후 같은 성당에서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자치교회 토모스가 서명되었다. 이 토모스는 "서명되는 순간부터 발효"되었다. 토모스의 서명은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자치교회 지위를 공식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토모스 서명 후,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연설에서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대통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대통령 각하의 이름은 우리 블라디미르 대공, 야로슬라우 현공, 코스탼틴 오스트로즈키 공작, 그리고 이반 마제파 헤트만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우크라이나 국민의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1월 6일, 에피파니 관구대주교와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가 거행한 예배 후,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토모스를 낭독한 다음 에피파니 관구대주교에게 전달했다. 2019년 1월 8일, 토모스는 세계총대주교청 성 시노드의 모든 구성원이 토모스에 서명할 수 있도록 이스탄불로 다시 가져갔다. 토모스는 2018년 1월 9일 세계총대주교청 시노드 모든 구성원에 의해 서명되었다. 세계총대주교청 시노드 모든 구성원이 서명한 토모스는 2019년 1월 10일 오전에 우크라이나로 다시 돌아왔다.
4.3. 착좌식 및 초기 교회 운영
에피파니 관구대주교의 착좌식은 그의 40번째 생일이기도 한 2019년 2월 3일에 거행될 예정이었다. 착좌식은 계획대로 2019년 2월 3일 키이우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필라레트 (데니센코)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으나, 수좌주교 에피파니에게 서면 축하 메시지를 보냈으며, 이는 예배 말미에 낭독되었다. 2019년 2월 1일 입원했던 아토스 산의 에프렘 대수도사제는 착좌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에프렘 수도원의 수도사제 한 명과 쿠틀루무시우 수도원의 스케테 수도사 한 명이 착좌식에 참석했다.
착좌식 이후,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 시노드의 첫 회의는 2019년 2월 5일에 열렸다.
4.4. 필라레트와의 관계 및 갈등
필라레트 (데니센코)와 에피파니 사이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통치 모델, 디아스포라 관리, 교회의 명칭 및 정관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했다.
필라레트에 따르면, 통합 공의회에서 합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좌주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UOC)의 대외적 대표를 담당하고, 총대주교는 수좌주교와의 협력 하에 우크라이나 내 교회 생활을 담당한다. 수좌주교는 총대주교의 동의 없이 교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총대주교는 단결 보존, 성장 및 확립을 위해 성 시노드 회의와 UOC 회의를 주재한다." 필라레트는 이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4.5.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교회의 "보수주의를 피하고", "교회가 개방적이 되도록" 교회 내의 자유주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특히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완화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음, 이는 우리가 여정의 초기에 제기해서는 안 될 어려운 질문과 같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우크라이나 사회가 이를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긴 여정이며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4.6.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역할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 이후, 미국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다니엘 대주교는 에피파니가 전투 중에도 우크라이나에 머무를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수좌주교로서 그는 러시아 총대주교 키릴에게 전사한 러시아 군인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을 요구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키릴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했다.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러시아의 행동을 반복적으로 비난하며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우크라이나에 저지른 범죄를 기소하기 위한 제2의 뉘른베르크 재판을 제안했다. 다른 지역 주교들과 함께 그는 폭격으로부터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교회들을 개방했다. 그는 또한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에게 우크라이나에 있는 사망한 러시아 군인들의 본국 송환을 주선해 줄 것을 호소했다.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자신이 러시아군의 살해 목록에서 5번째 표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5. 학문 및 사회 활동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학문적 연구와 사회적 참여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종교 교육 및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학술 전문지 《키이우 신학 아카데미 회보》와 《키이우 정교회 신학 아카데미 신학 회보》의 편집 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정교회 신학에 관한 여러 단행본을 포함하여 50편 이상의 출판물을 저술했다.
에피파니는 활발한 종교 지도자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그는 많은 과학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종교 교육과 과학 발전,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가의 발전과 강화에 상당한 개인적 기여를 했다. 이러한 공헌으로 그는 국가와 교회로부터 훈장 형태로 인정을 받았다.
6. 수상 및 명예
에피파니 관구대주교는 그의 공헌을 인정받아 다양한 훈장, 학술상, 명예 학위를 받았다.
6.1. 훈장
- 사도 요한 성인 훈장
- 사도와 동등한 자 블라디미르 대공 성인 훈장 3등급
- 대천사 미카엘 성인 훈장
- 몬테네그로 정교회 성 십자가 훈장
- 우크라이나 공로 훈장 2등급 및 3등급
- 우크라이나 내각 감사장
- 우크라이나 총리 감사장
-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감사장
- 우크라이나 국방부 표창
- 우크라이나 내무부 표창
- 우크라이나군 표창
- 드라호마노프 국립 교육 대학교 표창
- 우크라이나 인민 대사관 표창
6.2. 학술
2019년 3월, 그는 드라호마노프 국립 교육 대학교의 명예 박사로 임명되었다.
2019년 아테나고라스 인권상
7. 평가 및 영향력
에피파니 1세의 활동과 사상은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회, 그리고 국가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이끌고 교회를 통합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우크라이나의 종교적 주권과 국가적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러시아의 침공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평화와 단결을 호소하고, 러시아의 침략을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 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지도력은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민족 교회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국민적 단합을 도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피파니는 보수적인 교회 내에서 개혁과 개방성을 추구하며, 사회적 포용성을 강조하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어, 그의 사상은 우크라이나 사회의 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8. 관련 항목
-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
- 우크라이나 정교회
- 필라레트 (데니센코)
- 우크라이나 정교회 통합 공의회
- 필라레트와 에피파니 간의 갈등
- 우크라이나의 종교
9. 외부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Bu9tcgQmK74 자유 유럽 라디오: LIVE |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장 에피파니의 착좌식]
- [https://www.youtube.com/watch?v=pipU3l-A190 ZikTV: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장 에피파니의 착좌식 | 2019년 2월 3일]
- [https://www.youtube.com/watch?v=yjmBxaqgaXo 프랴미: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장의 착좌식]
- [http://www.cerkva.info/ 우크라이나 정교회 공식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