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Edgar Enrique Rentería Herazo에드가 엔리케 렌테리아 헤라조스페인어 (1975년 8월 7일 출생)는 콜롬비아 출신의 전 프로 야구 유격수로, 우투우타이다. 그는 "바랑키야 베이비"(The Barranquilla Baby)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플로리다 말린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보스턴 레드삭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신시내티 레즈 등 여러 메이저 리그 팀에서 활약했다.
렌테리아는 1996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며, 1997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11회 말 끝내기 1타점 안타를 쳐내며 말린스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 뛰는 동안 여러 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골드 글러브와 실버 슬러거를 동시에 수상하며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이후 여러 팀을 거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합류한 2010년, 2010년 월드 시리즈에서 결정적인 홈런들을 터뜨리며 팀의 우승을 견인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두 개의 다른 팀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안타를 기록한 최초의 선수이며, 콜롬비아 출신 최초의 월드 시리즈 MVP이기도 하다. 2013년 공식적으로 은퇴했으며, 은퇴 후에는 콜롬비아 야구 발전을 위한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에드가 렌테리아는 1975년 8월 7일 콜롬비아 바랑키야에서 태어났다.
2.1. 유소년 시절 및 교육
어린 시절, 그는 바랑키야에 위치한 Instituto Los Alpes High School인스티투토 로스 알페스 고등학교스페인어에 다녔다.
2.2. 선수 계약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92년, 렌테리아는 스카우트 Levy Ochoa레비 오초아영어에 의해 16세의 나이로 플로리다 말린스와 계약을 맺으며 프로 야구 경력을 시작했다.
3. 프로 경력
렌테리아는 1992년 마이너 리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1996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이후 2011년까지 16시즌 동안 활약했다.
3.1. 마이너 리그
렌테리아는 1992년 걸프 코스트 리그 말린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 해 43경기에서 타율 .288과 47안타를 기록했지만, 수비율은 .897에 24개의 실책을 범하며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1993년에는 케인 카운티 쿠거스에서 11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03을 기록했으나, 실책은 34개로 줄었고 수비율은 .934로 향상되었다.
1994년에는 브레바드 카운티 매너티스로 승격되었고, 타율은 .253, 수비율은 .959로 더욱 개선되었다. 1995년에는 포틀랜드 시 독스에서 타율 .289, 7홈런, 30도루를 기록하며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1996년 시즌을 앞두고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렌테리아를 말린스 구단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했다. 그는 시즌을 샬럿 나이츠에서 시작하여 28경기에서 타율 .278, 2홈런, 15타점을 기록했다.
3.2. 플로리다 말린스 (1996-1998)
1996년 5월 9일, 커트 애벗의 부상으로 인해 플로리다 말린스에 콜업되어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5월 10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9회에 더블 스위치로 출전하며 첫 경기를 치렀으나 타석에는 들어서지 못했다. 처음에는 알렉스 아리아스의 백업 내야수로 출전했지만, 5월 19일 시카고 컵스전부터 주전 유격수로 뛰기 시작했다. 이 경기에서 스티브 트락셀을 상대로 첫 타석에서 첫 안타(단타)를 기록했다. 6월 10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전에서는 처음으로 한 경기 4안타를 기록했고, 다음 날 엑스포스의 우게스 우르비나를 상대로 첫 홈런을 쳐냈다. 렌테리아의 활약으로 말린스는 애벗이 부상에서 복귀한 후 그를 2루수로 전환시켰다. 6월 23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으나, 7월 11일 복귀 후에도 주전 유격수 자리를 지켰다. 7월 25일부터 8월 16일까지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1989년 제롬 월튼의 30경기 연속 안타 이후 신인으로서는 가장 긴 기록이었다. 시즌을 타율 .309, 68득점, 16도루로 마쳤으며, 내셔널 리그 올해의 루키 투표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토드 홀랜즈워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997년 4월 5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생애 첫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기록하며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고, 11회에 1타점 단타로 4대3 승리를 이끌었다. 4월 27일에는 9회에 결승 단타로 다저스에게 4대3 승리를 안겼다. 5월 13일부터 29일까지 1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고, 7월 16일부터 18일까지는 3경기 연속 3안타를 쳐냈다. 8월 15일에는 9회에 1타점 단타로 피츠버그에 6대5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을 타율 .277, 171안타, 32도루로 마쳤다. 그 해 플로리다 말린스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와일드카드를 획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1997년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렌테리아는 9회 말 로베르토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1타점 단타를 쳐내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2대1 승리를 안겼다. 말린스는 자이언츠를 스윕하고 1997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꺾고 1997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맞붙었다. 7차전 11회 2아웃 상황에서 렌테리아는 찰스 나지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쳐내 크레이그 카운셀을 홈으로 불러들였고, 3대2 승리와 함께 말린스의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었다.
1998년에는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타율 .302를 기록했고, 말린스 선수 중 유일하게 MLB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5월 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11회에 1타점 단타로 말린스의 6대5 승리를 이끌었다. 6월 8일부터 22일까지 14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1998년 말린스 선수 중 가장 긴 기록이었다. 이 기간 중 6월 9일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생애 첫 대타 안타를 기록하며 데이브 버그를 홈으로 불러들여 5대4 승리를 만들었다. 6월 14일에는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결승 득점을 올렸다. 6월 8일부터 14일까지의 활약으로 내셔널 리그 이주의 선수 상을 수상했다. 7월 13일에는 엑스포스전에서 4득점을 기록하며 플로리다 구단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8월 24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2루 슬라이딩 도중 오른쪽 무릎 염좌 부상을 입었고, 다음 날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 9월 9일 복귀했다. 시즌을 타율 .282, 146안타, 그리고 개인 최고 기록인 41도루를 기록하며 133경기를 소화했다. 12월 14일, 그는 아르만도 알만자, 브레이든 루퍼, 파블로 오수나를 상대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3.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9-2004)
1999년 5월 16일, 렌테리아는 다저스의 이스마엘 발데스를 상대로 카디널스 이적 후 첫 홈런을 기록하며 5대4 승리에 기여했다. 5월 23일 로스앤젤레스전에서는 3타점을 기록했고, 5월 31일 플로리다전에서는 홈런 2개를 쳐냈다. 6월 1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는 14회에 결승타를 포함하여 3안타를 기록하며 8대7 승리를 거두었다. 6월 21일부터 7월 1일까지 1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그 시즌 개인 최장 기록이었다. 7월 9일 자이언츠전과 8월 31일 말린스전에서 각각 4안타를 기록했다. 9월 5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는 4도루를 성공시켰다. 9월 10일 피츠버그전에서 홈런을 쳐내며 처음으로 시즌 10홈런을 달성했다. 시즌을 타율 .275로 마쳤고, 154경기, 585타석, 161안타, 36 2루타, 37도루(내셔널 리그 7위)로 카디널스 팀 내 선두를 기록했다.
2000년에는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타율 .273을 기록했고, 부상당한 팀 동료 마크 맥과이어를 대신하여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4월 9일부터 11일까지 3경기 연속 홈런을 쳐냈고, 1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는 개인 최고 기록인 4타점을 기록하며 10대6 승리에 기여했다. 4월 16일 콜로라도전에서는 5번 출루했다. 8월 29일 말린스전에서 시즌 16호 홈런을 기록하며 솔리 헤머스의 카디널스 유격수 최다 홈런 기록을 깼다. 9월 4일 엑스포스전에서는 3루타로 3타점을 올리며 4대2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을 타율 .278, 150경기에서 156안타를 기록했다. 카디널스 팀 내 21도루로 선두를 기록했고, 76타점은 카디널스 유격수 중 1921년 닥 라반의 82타점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또한, 짐 에드먼즈의 108타점 다음으로 팀 내 2위 타점을 기록했고, 32 2루타로 팀 내 선두를 기록했다. 내셔널 리그 유격수 부문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카디널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스윕했지만,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뉴욕 메츠에게 5경기 만에 패배했다.
2001년 4월 4일, 쿠어스 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전에서 데니 니글을 상대로 432피트짜리 홈런을 포함하여 5타수 3안타를 기록했으나 팀은 9대13으로 패배했다. 4월 1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는 랜디 존슨의 폭투로 결승 득점을 올리며 3대1 승리에 기여했다. 5월 10일 피츠버그전에서는 대타 단타로 11대5 승리의 결승점을 만들었다. 7월 8일 클리블랜드의 존 로커를 상대로 1타점 단타를 쳐내며 4대3 승리를 이끌었다. 7월 26일까지 타율이 .226에 불과했지만, 이후 58경기에서 타율 .299를 기록하며 시즌 최종 타율을 .260으로 끌어올렸다. 이 기간 동안 8월 8일부터 17일까지 1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17도루로 카디널스 팀 내 선두를 기록했다. 2001년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브라이언 앤더슨을 상대로 생애 첫 포스트시즌 홈런을 기록했으나 팀은 3대5로 패배했다. 다이아몬드백스는 카디널스를 5경기 만에 꺾고 2001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에는 더 좋은 시즌을 보냈다. 4월 10일 밀워키전에서 9회 동점 단타를 포함하여 3안타를 기록하며 6대5 승리에 기여했다. 5월 6일 컵스전에서는 전년도 8월 20일 이후 첫 홈런을 기록했으나 팀은 5대6으로 패배했다. 4일 후에는 신시내티의 마무리 투수 대니 그레이브스를 상대로 결승 홈런을 쳐내며 4대2 승리를 거두었다. 6월 27일에는 시즌 19번째 2루타를 기록하며 2001년 시즌 전체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7월 26일 컵스의 존 리버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0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8대4 승리에 기여했다. 이틀 후 컵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에 6득점을 올린 카디널스의 대역전극의 정점인 3점 홈런을 쳐내며 10대9 승리를 만들었다. 이틀 후에는 말린스전에서 홈런 2개를 쳐내며 5대0 승리를 거두었다. 8월 18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는 생애 첫 만루 홈런을 쳐내며 카디널스의 5대1 승리를 이끌었다. 9월 4일에는 또 다른 만루 홈런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 기록인 5타점을 올렸고, 신시내티에 10대5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을 타율 .305, 166안타로 마쳤고, 두 번째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25세가 될 때까지 1,061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MLB 역사상 25세 선수 중 17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또한, 첫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하며 1992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 오지 스미스 이후 처음으로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 카디널스 유격수가 되었다. 렌테리아는 포스트시즌에서 타율 .194에 그쳤지만, 카디널스는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했고, 샌프란시스코에게 5경기 만에 패배했다.
2003년 4월 13일, 렌테리아는 휴스턴전에서 홈런 2개와 5타점을 기록하며 11대8 승리를 이끌었다. 4월 29일 뉴욕 메츠전에서는 4타점을 기록하며 13대3 승리에 기여했다. 6월 12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한 경기 5안타를 기록하며 8대7 승리를 거두었다. 다음 날, 뉴욕 양키스의 로저 클레멘스는 렌테리아를 삼진 아웃시키며 개인 통산 4000번째 탈삼진을 기록했고, 양키스는 카디널스를 5대2로 꺾으며 클레멘스는 300승을 달성했다. 렌테리아는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타율 .331을 기록하며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그는 1997년 델리노 드실즈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에 20도루를 기록한 카디널스 선수가 되었다. 9월 18일 밀워키전에서는 4안타와 5타점을 기록하며 13대0 승리에 기여했다. 9월 15일부터 21일까지 12타점을 기록하며 두 번째 이주의 선수 상을 수상했다. 9월 27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렌테리아는 애리조나전에서 3대2 승리의 결승 타점을 기록하며 1985년 휴비 브룩스 이후 처음으로 시즌 100타점을 기록한 내셔널 리그 유격수이자, 카디널스 유격수로는 최초로 이 기록을 달성했다. 시즌을 도루 34개(내셔널 리그 4위), 타율 .330(개인 최고 기록, 내셔널 리그 4위)으로 마쳤고, 194안타(개인 최고 기록)와 47 2루타(1963년 딕 그로트의 43개를 넘어서는 카디널스 유격수 단일 시즌 최다 2루타 기록)를 기록하며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또한,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실버 슬러거와 골드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카디널스 유격수가 되었다.
2004년 4월 10일, 렌테리아는 애리조나전에서 4안타를 기록하며 10대2 승리에 기여했다. 6월 9일 마크 프라이어를 상대로 생애 세 번째 만루 홈런을 쳐내며 컵스에 12대4 승리를 거두었다. 6월 22일부터 7월 3일까지 1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그 해 개인 최장 기록이었다. 이 기간 중 6월 26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는 10회에 1타점 단타로 카디널스의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7월 2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4득점을 기록하며 11대2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올스타전에 선정된 세 명의 카디널스 선수 중 한 명이었다. 7월 15일 신시내티전에서 4안타를 기록하며 7대2 승리에 기여했다. 8월 8일 메츠전에서는 5안타를 기록하며 6대2 승리를 거두었다. 8월 22일 피츠버그전에서는 5타점을 기록하며 11대4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을 타율 .287, 10홈런, 72타점, 84득점으로 마쳤다. 카디널스는 그 해 2004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보스턴에게 스윕패를 당했다. 렌테리아는 키스 폴크를 상대로 4차전 마지막 타자로 나서 땅볼 아웃되며 86년 만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레드삭스의 역사적인 순간에 마지막 아웃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그는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333을 기록하며 카디널스 야수 중 .250 이상을 기록한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시즌 후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4. 보스턴 레드삭스 (2005)

2004년 12월 19일, 보스턴 레드삭스는 자유 계약 선수 올랜도 카브레라를 대체할 유격수로 렌테리아와 2009년 옵션이 포함된 4년 4000.00 만 USD 계약을 체결했다. 2005년 4월 14일, 양키스의 랜디 존슨을 상대로 레드삭스 이적 후 첫 홈런을 기록했다. 이 경기 8회에 그의 2루타는 보스턴의 8대5 승리를 이끄는 결승타가 되었다.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4경기 연속 3안타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1976년 조지 브렛의 6경기 연속 기록 이후 가장 긴 연속 기록이었다. 이 기간 중 5월 28일에는 양키스전에서 만루 홈런과 5타점을 포함하여 3타수 3안타를 기록하며 17대1 대승에 기여했다. 다음 날에는 홈런을 포함하여 4안타를 기록하며 뉴욕에 7대2 승리를 거두었다. 이 주의 활약으로 그는 개인 통산 세 번째 이주의 선수 상을 수상했다. 8월에는 40안타를 기록하며 한 달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9월 2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B. J. 라이언을 상대로 결승 단타를 쳐내며 4대3 승리를 이끌었고, 이 승리로 레드삭스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선두 양키스와 동률을 이루었다. 9월 28일 토론토전에서 2득점을 기록하며 생애 처음으로 시즌 100득점을 달성했다. 시즌을 타율 .276, 172안타로 마쳤다. 그러나 수비에서는 어려움을 겪어 개인 최고 기록인 30개의 실책으로 메이저 리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4월에 타율 .228에 그치자 레드삭스 팬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렌테리아는 2005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타율 .231에 그쳤고, 레드삭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3경기 만에 디비전 시리즈에서 패배했다. 레드삭스 구단도 그의 활약에 실망했고, 12월 8일 그는 유망주 앤디 마르테를 상대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되었다.
3.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6-2007)

렌테리아는 2006년을 23경기 연속 안타로 시작했다(2005년 마지막 경기까지 포함하면 24경기). 2006년의 23경기 연속 안타는 그 해 두 번째로 긴 기록이자, 1976년 론 르플뢰르가 시즌을 30경기 연속 안타로 시작한 이후 가장 긴 기록이었다. 4월 15일 샌디에이고전에서 갈비뼈 부상으로 9경기를 결장했지만, 부상자 명단에는 오르지 않았다. 5월 8일 컵스전에서는 4안타와 홈런 2개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3년 이후 처음이었다. 7월 3일 앤서니 레예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번째 홈런을 기록하며 세인트루이스에 6대3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 전반기에 타율 .318, 9홈런을 기록하며 2006년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8월 17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는 24타석 만에 첫 안타를 기록하며 5대0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을 타율 .293, 14홈런, 70타점으로 마쳤다. 수비에서도 13개의 실책만을 기록하며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2007년 개막전인 4월 2일 필라델피아전에서 홈런 2개(10회 결승 홈런 포함)를 기록하며 5대3 승리를 이끌었다. 이는 프레드 맥그리프와 조 토레에 이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선수로는 세 번째로 개막전에서 홈런 2개를 기록한 것이었다. 4월 20일부터 5월 12일까지 18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7년 브레이브스 선수 중 가장 긴 기록이었다. 이 기간 중 4월 27일 콜로라도전에서는 개인 통산 20번째로 4안타를 기록하며 9대7 승리에 기여했다. 5월 15일 내셔널스전에서는 홈런 2개를 쳐내며 6대2 승리를 거두었다. 5월 30일 브루어스전에서는 4안타를 기록했다. 6월 16일 인디언스전에서는 2004년 이후 처음으로 5안타를 기록하며 6대2 승리를 이끌었다. 8월 3일에는 전날 발목 염좌 부상을 입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렌테리아는 8월 22일 복귀했지만, 다음 날 한 타석만 소화한 후 발목 부상이 재발하여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9월 7일 다시 복귀하여 다음 날 브레이브스 라인업에 복귀했다. 시즌을 타율 .332(내셔널 리그 3위, 개인 최고 기록), 12홈런, 57타점으로 마쳤다. 그는 2007년 메이저 리그 유격수 중 타율 .300 이상, 10홈런 이상, 50타점 이상을 기록한 네 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나머지는 데릭 지터, 핸리 라미레스, 미겔 테하다). 그러나 유망주 유격수 유넬 에스코바의 성장으로 인해 렌테리아는 10월 29일 자이르 주르젠스와 고르키스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되었다.
3.6.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08)

2008년 4월 16일, 렌테리아는 인디언스전에서 생애 다섯 번째 만루 홈런과 5타점을 기록하며 13대2 승리에 기여했다. 4월 22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는 4안타를 기록하며 10대2 승리를 거두었다. 5월 20일 시애틀전에서는 다시 4안타와 5타점을 기록하며 12대8 승리에 기여했다. 6월 7일 인디언스전에서는 생애 여섯 번째 만루 홈런을 쳐내며 8대4 승리를 이끌었다. 6월 17일 샌프란시스코의 조너선 산체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2000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5대1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을 타율 .270, 136안타, 10홈런으로 마쳤다. 시즌 후 타이거스는 10월 30일 그의 옵션을 거부했고, 12월 1일 연봉 조정을 제안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9-2010)
2009년 12월 4일, 렌테리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2011년 옵션이 포함된 2년 1850.00 만 USD 계약을 체결했다. 4월 21일 샌디에이고전에서는 5타점을 기록하며 제이크 피비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친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팀은 8대3으로 승리했다. 4월 29일 다저스전에서는 4안타를 기록하며 9대4 승리에 기여했다. 5월 14일 메츠전에서는 8회에 단타로 7대4 패배를 동점으로 만들었지만, 1루로 진루하는 과정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경기를 떠나야 했다. 이 부상으로 6경기를 결장한 후 5월 22일 라인업에 복귀했다. 5월 8일부터 6월 6일까지 타율은 .250에 불과했지만 20경기 연속 출루를 기록했다. 8월 30일 콜로라도전에서는 결승 만루 홈런을 쳐내며 자이언츠의 9대5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이두근 건염과 AC 관절 염좌로 시즌 마지막 20경기 중 19경기를 결장했고, 9월 26일에는 오른쪽 팔꿈치에서 뼈 돌기와 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부상으로 얼룩진 시즌을 개인 최저 타율 .250, 115안타, 48타점으로 마쳤다.

2010년 4월 7일, 렌테리아는 휴스턴전에서 5타수 5안타를 기록하며 10대4 승리에 기여했다. 4월 30일까지 타율 .320을 기록하며 시즌을 잘 시작했다. 그러나 4월 30일 콜로라도전에서 2이닝 만에 사타구니 부상으로 경기를 떠나야 했다. 4경기를 결장한 후 5월 6일 라인업에 복귀했지만, 2이닝 만에 사타구니 부상이 재발하여 다음 날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5월 22일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지만, 3경기 만인 5월 25일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다음 날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6월 19일 자이언츠에 복귀했다. 그러나 8월 11일 전날 밤 입은 이두근 부상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9월 1일 자이언츠에 복귀했지만, 자이언츠 감독 브루스 보치는 렌테리아를 대신하여 유격수로 잘 활약했던 후안 우리베가 주전 유격수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렌테리아는 백업 선수가 되었다. 9월 16일 다저스전에서 4안타를 기록하며 10대2 승리에 기여했다. 9월 23일, 자이언츠가 내셔널 리그 서부 지구에서 샌디에이고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렌테리아는 팀 미팅에서 동료들에게 이번 시즌이 자신의 마지막 시즌이 될 수 있으며, 자이언츠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를 원한다고 연설했다. 자이언츠는 샌디에이고를 제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렌테리아는 시즌을 72경기(개인 최저), 67안타(개인 최저), 3홈런(1998년과 동률), 22타점(개인 최저)으로 마쳤다. 시즌 중 그는 은퇴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렌테리아는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파블로 산도발이 벤치에 앉고 우리베가 3루수로 이동하면서 4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주전 자리를 되찾았다. 그는 시리즈에서 1안타만을 기록했지만, 3차전 3대0 승리에서 결승 득점을 올렸고, 2010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주전 자리를 유지했다. 월드 시리즈 2차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5회 C. J. 윌슨을 상대로 홈런을 쳐내며 1대0 리드를 만들었고, 8회에는 2타점 단타를 추가하며 자이언츠의 9대0 승리에 기여했다. 5차전 전, 자이언츠가 시리즈에서 3대1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렌테리아는 팀 동료 안드레스 토레스에게 홈런을 칠 것이라고 농담했다. 7회 2, 3루 2아웃 무득점 상황에서 렌테리아는 레인저스 투수 클리프 리를 상대로 3점 홈런을 쳐내며 자이언츠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었다. 이 홈런으로 그는 요기 베라, 조 디마지오, 루 게릭과 함께 역사상 두 번의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안타를 기록한 네 번째 선수가 되었고, 두 개의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이 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의 기여로 그는 2010년 월드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고, 콜롬비아 출신 최초의 월드 시리즈 MVP가 되었다. 자이언츠는 11월 5일 그의 옵션을 거부했지만, 렌테리아는 2011년에도 뛸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자이언츠는 그에게 1년 100.00 만 USD의 유틸리티 선수 계약을 제안했지만, 렌테리아는 거절했다.
3.8. 신시내티 레즈 (2011)

2011년 1월 7일, 렌테리아는 신시내티 레즈와 210.00 만 USD에 추가로 성과 보너스 90.00 만 USD가 포함된 1년 계약을 체결했다. 폴 재니쉬가 주전 유격수였기 때문에 그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시즌을 시작했다. 2011년까지 그는 통산 272개의 실책으로 현역 메이저 리그 유격수 중 최다 실책을 기록했다. 2012년에도 밀워키 브루어스를 포함한 여러 팀으로부터 관심과 제안을 받았지만, 렌테리아는 "은퇴 상태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4. 은퇴
2013년 3월 22일, 에드가 렌테리아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5. 통산 성적
렌테리아는 16시즌 동안 2,15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6(8,142타수 2,327안타), 1,200득점, 436 2루타, 29 3루타, 140홈런, 923타점, 294도루, 718볼넷, 출루율 .343, 장타율 .398을 기록했다. 그의 통산 수비율은 .970이었다. 66번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는 타율 .252(242타수 61안타), 37득점, 12 2루타, 3홈런, 23타점, 9도루, 24볼넷을 기록했다.
6. 주요 수상 및 업적
- 1997년 월드 시리즈 7차전 11회 말 찰스 나지를 상대로 끝내기 단타 기록
- 올스타 5회 선정 (1998, 2000, 2003, 2004, 2006)
- 골드 글러브 2회 수상 (2002-2003)
- 실버 슬러거 3회 수상 (2000, 2002-2003)
- 2005년 마지막 경기와 2006년 첫 23경기를 포함하여 24경기 연속 안타 기록
- 2008년 6월 18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조너선 산체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2000번째 안타 기록
- 2010년 월드 시리즈 2차전과 5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기록하며 월드 시리즈 MVP 수상. 그는 요기 베라, 조 디마지오, 루 게릭과 함께 여러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 결정타를 기록한 네 번째 선수이며, 두 개의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이를 달성한 최초의 선수이다.
7. 개인사 및 야구계 기여
에드가 렌테리아에게는 마이너 리그 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Edinson에딘슨영어과 Evert에버트영어라는 두 명의 형제가 있다. 1998년, 에드가와 그의 형 에딘슨은 콜롬비아 야구 발전을 돕기 위해 "Team Rentería팀 렌테리아영어"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콜롬비아 프로 야구 선수들에게 전문적인 지도를 제공하고 아마추어 유소년들을 위한 야구 클리닉을 개최했다. 1999년에는 팀 렌테리아가 콜롬비아 프로 야구 리그를 창설했다. 이 리그는 현재까지 존재하지만, 2010-11 시즌은 악천후로 인해 취소되기도 했다.
1997년 콜롬비아 대통령 에르네스토 삼페르는 렌테리아에게 콜롬비아 최고 훈장인 "San Carlos Cross of the Order of the Great Knight대기사 산 카를로스 십자훈장영어"을 수여했다. 2010년에는 그의 고향 바랑키야에 있던 에스타디오 토마스 아리에타를 대체할 야구 경기장이 렌테리아의 이름을 따서 에스타디오 에드가 렌테리아로 명명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이 경기장은 2018년에 개장하여 현재 콜롬비아 프로 야구 리그의 카이마네스 데 바랑키야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렌테리아는 또한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콜롬비아 야구 국가대표팀의 코치진으로 참여하며 콜롬비아 야구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8. 평가 및 영향
에드가 렌테리아는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클러치 히터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특히 1997년과 2010년 월드 시리즈에서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중요한 안타를 기록하며 그의 클러치 능력을 입증했다. 그는 콜롬비아 야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콜롬비아 출신 선수로서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보낸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팀 렌테리아"를 통한 그의 자선 활동과 콜롬비아 프로 야구 리그 창설에 기여한 점은 콜롬비아 야구의 발전을 위한 그의 헌신을 보여준다. 그의 고향 바랑키야에 그의 이름을 딴 야구장이 건설된 것은 콜롬비아 스포츠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