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데릭 샌더슨 지터는 미국의 전 프로 야구 유격수이자 사업가, 야구 경영인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20년간의 선수 경력을 뉴욕 양키스에서만 보냈으며, 5회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양키스 왕조의 핵심적인 기여자였습니다. 특히 그의 타격, 주루, 수비, 그리고 리더십은 팀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양키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안타 (3,465개), 2루타 (544개), 출장 경기 (2,747경기), 도루 (358개), 출루 (4,716회), 타석 (12,602타석), 타수 (11,195타수)에서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터는 2020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 자격을 얻자마자 투표 대상에 올라, 397표 중 396표 (99.7%)를 얻어 마리아노 리베라 (100%)에 이어 MLB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헌액되었습니다. 이는 포지션 선수 중 가장 높은 득표율입니다. 선수 시절의 수많은 업적 외에도 그는 14회의 올스타 선정, 5회의 골드글러브상, 5회의 실버슬러거상, 2회의 행크 에런상, 그리고 2009년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그는 3,000안타 클럽에 가입한 28번째 선수이자, 유격수 포지션 선수 중에서는 역사상 여섯 번째로 많은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2017년 양키스는 그의 등번호 2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지터는 선수 은퇴 후인 2017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마이애미 말린스의 CEO이자 공동 구단주로 활동하며 경영인의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그는 클러치 상황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캡틴 클러치(Captain Clutch영어)"와 "미스터 노벰버(Mr. November영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2. 어린 시절
데릭 지터는 뉴저지주 피카노 타운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2.1. 출생 및 가족 배경
데릭 샌더슨 지터는 1974년 6월 26일 뉴저지주 피카노 타운십에서 회계사인 어머니 도로시 (도리 콘너스Dory Connors영어)와 약물 남용 상담사이자 철학 박사 학위를 소유한 아버지 샌더슨 찰스 지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잉글랜드, 독일, 아일랜드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그의 부모는 독일에서 주독 미군으로 복무하는 동안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테네시주 피스크 대학교에서 유격수로 야구를 했으며, 지터의 여동생인 샬리 (1979년생)는 고등학교 시절 소프트볼 스타였습니다. 지터의 부모는 그에게 매년 허용되거나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명시한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고, 특히 어머니 도로시는 "할 수 없다(can't영어)"는 말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아들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심어주었습니다.
2.2. 어린 시절 및 초기 영향
지터 가족은 데릭이 4살 때 미시간주 캘러머주로 이주하기 전까지 뉴저지주에 거주했습니다. 지터와 샬리는 학기 중에는 부모와 함께 캘러머주에서 살았고, 여름에는 뉴저지주 웨스트 밀포드에 있는 조부모님 댁에서 보냈습니다. 조부모님과 함께 뉴욕 양키스 경기를 관람하면서 지터는 팀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특히 양키스의 스타 외야수 데이브 윈필드의 플레이는 그에게 야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꿈꾸게 하는 영감을 주었습니다. 지터는 5살 때부터 리틀 리그 야구를 시작하며 야구에 대한 흥미를 키웠습니다.

2.3. 고등학교 및 대학 야구
지터는 캘러머주 중앙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가을에는 크로스컨트리, 겨울에는 농구, 봄에는 야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그는 학교 야구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2학년 때는 타율 0.557을, 3학년 때는 0.508을 기록했습니다. 4학년 때는 타율 0.508, 23 타점, 21 볼넷, 4 홈런, 출루율 0.637, 장타율 0.831, 12 도루 (12회 시도 중 성공), 단 1개의 삼진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성적을 올렸습니다.
4학년 시즌 후, 지터는 여러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는 캘러머주 지역 학자 운동선수에게 수여하는 브나이 브리스(B'nai B'rith영어) 상, 미국 야구 코치 협회 선정 1992년 '올해의 고등학교 선수' 상, 게이터레이드 선정 1992년 '올해의 고등학교 선수' 상, 그리고 USA 투데이 선정 '올해의 고등학교 선수' 상을 받았습니다. 농구에서는 올-스테이트(All-State영어) 명예 언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캘러머주 중앙 고등학교는 2003년에 지터를 학교 운동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으며, 2011년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야구장의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지터의 뛰어난 야구 재능은 미시간 대학교의 주목을 받아, 미시간 울버린스 야구팀에서 대학 야구를 할 수 있는 야구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3. 프로 경력
데릭 지터는 1992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된 이래, 2014년 은퇴할 때까지 20년의 프로 경력을 모두 양키스에서 보냈습니다.
3.1. MLB 드래프트
1992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스카우트 핼 뉴하우저는 드래프트 전 지터를 광범위하게 평가했습니다. 뉴하우저는 지터가 장차 우승팀의 강타자가 될 것이라 확신하며 팀 경영진에게 지터를 지명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애스트로스는 지터가 프로 계약을 위해 최소 100.00 만 USD의 계약 보너스를 요구할 것이라 우려했고, 대신 캘스테이트 풀러턴 소속 외야수 필 네빈을 70.00 만 USD에 영입했습니다. 뉴하우저는 지터의 잠재력에 대해 너무나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드래프트 조언이 무시되자 항의의 의미로 애스트로스에서 사임했습니다.
6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뉴욕 양키스 역시 지터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양키스 스카우트 딕 그로치는 웨스턴 미시간 대학교에서 열린 올스타 캠프에서 지터의 플레이를 지켜봤습니다. 양키스 구단 관계자들은 지터가 프로 계약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할 것을 우려했지만, 그로치는 "데릭 지터가 갈 곳은 쿠퍼스타운(명예의 전당)밖에 없다"고 말하며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2순위부터 5순위 지명 선수들은 폴 슈이, B. J. 월리스, 제프리 해먼즈, 채드 모톨라였는데, 이들 다섯 명을 합쳐도 올스타전 출전은 2회(네빈과 해먼즈)에 불과했습니다. 양키스는 프로 전향을 택한 지터를 지명했고, 그는 80.00 만 USD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3.2. 마이너 리그 경력 (1992-1995)
지터는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에서 네 시즌 동안 활약했습니다. 1992년 시즌은 플로리다주 탬파에 기반을 둔 루키 레벨 걸프코스트 리그의 걸프코스트 양키스에서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 프로 경기에서 지터는 7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5번의 삼진을 당했습니다. 이후 시즌 내내 부진을 겪으며 47경기에서 타율 0.202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감독이던 게리 덴보는 그의 타율이 멘도사 라인 (0.200)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지터를 벤치에 앉히기도 했습니다. 성공 부재와 향수병으로 좌절한 지터는 매일 부모님과의 통화로 한 달에 400 USD에 달하는 전화 요금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양키스는 지터에게 더 많은 타석 경험을 주기 위해 클래스 A 사우스애틀랜틱 리그의 그린스보로 호니츠로 그를 승격시켰습니다. 그린스보로에서의 첫 11경기에서 그는 타율 0.247를 기록했고, 수비에서는 48번의 수비 기회에서 9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71 kg의 앙상한 체격은 양키스의 미래 리더라는 그의 평판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시즌 호니츠에서 함께 뛰었던 호르헤 포사다와 앤디 페티트는 처음에는 지터에 대한 과대평가를 의심했지만, 이내 그의 재능과 침착함을 인정했습니다.
지터는 다음 비시즌을 수비 훈련에 집중하며 보냈습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1993년 시즌 전 지터를 야구 유망주 상위 100인 중 44위로 평가했습니다. 1993년 호니츠로 복귀한 그는 첫 풀 시즌에서 타율 0.295, 5 홈런, 71 타점, 18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사우스애틀랜틱 리그 감독들은 그를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메이저리그 유망주"로 선정했습니다. 그는 3루타에서 리그 2위 (11개), 안타에서 3위 (152개), 타율에서 11위를 기록했으며, 포스트시즌 올스타 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비록 56개의 실책으로 사우스애틀랜틱 리그 기록을 세웠지만,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그를 '최고의 수비 유격수', '가장 흥미진진한 선수', '최고의 내야 어깨'로 선정했습니다.
1993년의 인상적인 시즌 후,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지터를 야구 전체에서 16번째로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했습니다. 지터는 1994년 시즌 동안 클래스 A-어드밴스드 플로리다 주립 리그의 탬파 양키스, 클래스 더블 A 이스트 리그의 올버니-콜로니 양키스, 그리고 트리플 A 인터내셔널 리그의 콜럼버스 클리퍼스에서 뛰며 세 개의 리그를 통틀어 타율 0.344, 5 홈런, 68 타점, 50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베이스볼 아메리카, 스포팅 뉴스, Topps/NAPBL로부터 '올해의 마이너 리그 선수' 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그는 플로리다 주립 리그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995년 시즌을 앞두고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야구에서 4번째로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하면서 지터는 양키스의 주전 유격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 정규 시즌 종료 후 애리조나 가을 리그에서 오른쪽 어깨에 경미한 염증을 겪었습니다. 양키스는 예방 차원에서 토니 페르난데스와 2년 계약을 맺었고, 페르난데스가 주전 유격수가 되자 지터를 트리플 A로 내려보냈습니다. 1994년-95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당시 양키스 단장이었던 진 마이클은 지터에게 1995년 시즌 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대체 선수들과 함께 메이저리그 팀 훈련에 참여할 기회를 제안했습니다. 지터는 이 제안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며 파업 경계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3.3. 메이저 리그 경력: 뉴욕 양키스 (1995-2014)
3.3.1. 초기 성공 및 왕조 시대 (1995-2002)

1995년 시즌 초, 토니 페르난데스와 내야수 팻 켈리가 부상을 당하면서 지터는 1995년 5월 29일 MLB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마이크 갈레고가 입었던 등번호 2번을 받았습니다. 9번 타자로 출전한 그는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한 차례 삼진을 당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의 첫 두 메이저리그 안타를 기록하고 첫 두 득점을 올렸습니다. 지터는 13경기에서 타율 0.234를 기록하고 두 개의 실책을 범한 뒤 트리플 A 콜럼버스로 강등되었고, 페르난데스가 다시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1995년 양키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지터는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채 팀과 동행했습니다. 양키스는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패했습니다.
1995년 페르난데스가 부상으로 인해 108경기 출장에 그치며 타율 0.245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하자, 새로 부임한 양키스 감독 조 토리는 1996년 시즌에 지터를 주전 유격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토리 감독은 지터에게 타율 0.250와 안정적인 수비를 기대했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양키스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스타인브레너의 측근인 클라이드 킹이 1996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이틀간 지터를 지켜본 후, 그가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페르난데스의 부상으로 유격수 포지션에 공백이 생기자, 스타인브레너는 마리아노 리베라 투수를 매리너스로 보내고 유격수 펠릭스 페르민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승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스카우팅 부사장이었던 마이클과 부단장 브라이언 캐시먼이 지터에게 기회를 줄 것을 설득하여 이를 막았습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1996년 시즌을 앞두고 지터를 야구 유망주 상위 6위로 평가하면서, 그는 개막전에 선발 출전했습니다. 이는 1962년 톰 트레시 이후 양키스 신인 유격수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날 자신의 첫 MLB 홈런을 쳤습니다. 지터는 자신의 빠른 발과 히트 앤드 런을 성공시키는 능력으로 리드오프 타자 팀 레인스의 보완 역할을 수행하며 9번 타순에 배치되었습니다. 시즌이 끝나자 지터는 타율 0.314에 10 홈런, 104 득점, 78 타점을 기록하며 토리 감독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공적인 신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상 투표에서 28표의 1위표를 모두 얻으며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50년 역사상 다섯 번째 만장일치 수상입니다.
양키스는 1996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토리 감독은 그의 시즌 전체 활약을 바탕으로 지터를 리드오프 타순에 배치했습니다. 1996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양키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4대3으로 뒤지고 있던 8회, 지터가 우익수 방향으로 날린 뜬공이 12세 팬 제프리 마이어가 담장을 넘어 공을 잡으면서 홈런으로 인정되는 오심이 발생했습니다. 이 공이 파울이 아니었다면 토니 타라스코에게 잡혔을 수도 있었지만, 홈런은 그대로 인정되어 동점이 되었습니다. 이는 지터의 포스트시즌 경력 첫 홈런이었습니다. 양키스는 이 경기를 이기고 오리올스를 5경기 만에 물리쳤습니다. 전체적으로 지터는 1996년 포스트시즌에서 타율 0.361을 기록하며, 웨이드 보그스, 폴 오닐, 티노 마르티네스가 부진한 가운데 버니 윌리엄스와 함께 양키스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양키스는 1996년 월드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꺾고 1978년 월드 시리즈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신인왕 시즌 이후, 지터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노마르 가르시아파라와 함께 떠오르는 MLB 유격수 '신흥 세대'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캘 립켄 주니어, 배리 라킨, 오지 스미스, 앨런 트래멜과 같은 노장 유격수들의 경력이 마무리되던 시점이었습니다. 1993년 MLB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 선수였던 로드리게스는 지터에게 먼저 연락하여 상위 드래프트 지명 선수로서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선수는 뉴욕 타임스의 저널리스트 잭 커리가 "이처럼 높은 명성을 가진 두 라이벌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평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로드리게스는 지터를 "마치 내 형제 같다"고 묘사하며, 필드 위에서는 경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유대감을 드러냈습니다.
1997년 시즌 전, 지터와 양키스는 성과 보너스를 포함한 54.00 만 USD 계약에 합의했습니다. 양키스의 리드오프 타자가 된 지터는 타율 0.291, 10 홈런, 70 타점, 116 득점, 190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그해 1997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두 개의 홈런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양키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3대2로 패했습니다.
지터는 1998년 시즌에 75.00 만 USD를 받았습니다. 그해 그는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선정되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는 타율 0.324, 리그 최다 127 득점, 19 홈런, 84 타점을 기록하며 114승을 거둔 양키스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이 팀은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널리 평가받고 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지터는 1998년 ALDS와 ALCS에서는 타율 0.176에 그쳤지만, 1998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타율 0.353을 기록하며 양키스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4경기 만에 꺾고 우승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시즌이 끝나자 지터는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에서 3위에 올랐습니다.
3.3.2. 주장 임명 및 개인 성과 (2003-2008)

1999년 시즌을 앞두고 처음으로 연봉 조정 자격을 얻은 지터는 500.00 만 USD의 연봉을 받았습니다. 그 시즌 지터는 219개의 안타로 아메리칸 리그 안타 1위를 차지했으며, 타율 (0.349)과 득점 (134개)에서 리그 2위를 기록하며 두 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습니다. 그의 시즌 타율, 득점, 안타, 타점, 2루타 (37개), 3루타 (9개), 홈런 (24개), 장타율 (0.552), 출루율 (0.438)은 모두 개인 최고 기록입니다. 지터는 또한 102 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 지터는 ALDS에서 타율 0.455, ALCS에서 타율 0.350, 그리고 1999년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0.353을 기록하며, 양키스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꺾고 다시 한번 우승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99-2000년 비시즌 동안, 양키스는 지터와 협상하여 7년, 1.19 억 USD 규모의 계약에 잠정적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역대 최대 계약 기록을 세우고 싶지 않아 후안 곤살레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보고된 8년, 1.43 억 USD 연장 계약을 협상하는 동안 기다렸습니다. 그 계약이 불발되자 지터의 잠정 계약도 무산되었습니다. 중재를 피하기 위해 지터와 양키스는 1000.00 만 USD의 1년 계약에 합의했습니다.

2000년 정규 시즌에서 지터는 팀 내 최고인 타율 0.339를 기록했으며, 15 홈런, 73 타점, 119 득점, 22 도루를 추가했습니다. 2000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서 그는 3개의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 중 2점 적시타는 팀에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활약으로 그는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으며, 양키스 선수로는 최초였습니다. 포스트시즌 동안 그는 ALDS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타율 0.211에 그쳤지만, ALCS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타율 0.318로 반등했고, 2000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뉴욕 메츠를 상대로 타율 0.409를 기록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 그는 2 홈런, 1 3루타, 2 2루타를 추가했으며, 특히 4차전 첫 타석에서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하고 이후 3회에는 3루타를 쳤습니다. 5차전에서 그의 홈런은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고, 그의 월드 시리즈 연속 안타 기록을 14경기로 늘렸습니다. 양키스는 메츠를 5경기 만에 꺾고 3년 연속 우승이자 지터의 첫 5개 풀 시즌 중 4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터는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같은 시즌에 올스타전 MVP와 월드 시리즈 MVP를 모두 수상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자유 계약 자격을 얻기 1년 전, 지터는 2001년 시즌 전 양키스와 10년, 1.89 억 USD 계약을 맺으며 잔류했습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그 시즌 초 텍사스 레인저스와 10년, 2.52 억 USD 계약을 맺으며 지터의 협상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지터는 팀 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로드리게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운동선수가 되었습니다. 지터 계약의 연평균 가치 1890.00 만 USD는 로드리게스 (2520.00 만 USD)와 매니 라미레스 (2000.00 만 USD)에 이어 야구에서 세 번째로 높았습니다.
2001년 지터는 21 홈런, 74 타점, 110 득점, 27 도루, 타율 0.311을 기록하며 또 다른 뛰어난 시즌을 보냈고, 4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습니다. ALDS 3차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지터는 결정적인 수비 보조를 기록했습니다. 제러미 잠비가 1루에 있던 상황에서, 오클랜드 우익수 테런스 롱이 양키스 투수 마이크 무시나를 상대로 우익수 라인으로 2루타를 쳤습니다. 잠비가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할 때, 양키스 우익수 셰인 스펜서가 공을 잡아 폭투를 던졌고, 공은 1루 선상을 따라 굴러갔습니다. 이때 유격수 지터가 달려와 공을 잡아 포수 호르헤 포사다에게 언더핸드가 아닌 백핸드로 플립 패스를 했습니다. 포사다는 잠비가 홈 플레이트를 가로지르기 직전 그의 다리에 태그아웃을 성공시켜 양키스의 1점 차 리드를 지켰습니다. "더 플립(The Flip영어)"으로 알려진 이 플레이는 나중에 Baseball Weekly의 '역대 가장 놀라운 플레이 10선'에서 7위로 선정되었으며, 2002년 최고의 플레이 ESPY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9.11 테러의 영향으로 플레이오프 시작이 연기되었고, 시즌 종료는 평소 10월을 넘어섰습니다. 양키스는 2001년 월드 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맞붙었습니다. 4차전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가 아닌 정규 경기가 11월에 열린 첫 사례였습니다. 연장전에서 지터는 김병현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쳤습니다. 전 양키스 선수 레지 잭슨의 별명인 "미스터 옥토버(Mr. October영어)"를 연상시키는 "미스터 노벰버(Mr. November영어)"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번쩍였습니다. 이 홈런에도 불구하고 지터는 타석에서 슬럼프를 겪었고, 부상은 요인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파울 볼을 잡으려다 사진 기자석으로 떨어지면서 이전 햄스트링 부상이 악화되었을 수 있습니다. 지터는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0.148에 그쳤고, 양키스는 7차전에서 패했습니다.
2002년 정규 시즌 동안 지터는 18 홈런, 75 타점, 124 득점, 191 안타, 그리고 개인 최고 기록인 32 도루와 함께 타율 0.297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도루 성공률 (91.4%)에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으며, 단 3차례만 도루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5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습니다. 2002년 포스트시즌에서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양키스를 ALDS에서 꺾고 2002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3.3.3. 주장 임명 및 개인 성과 (2003-2008)
2003년 시즌 개막전에서 지터는 3루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 포수 켄 허커비와 충돌하여 왼쪽 어깨를 탈구했습니다. 그는 6주 동안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36경기에 결장했습니다. 이는 이전 7개 풀 시즌 동안 148경기 미만으로 출전한 적이 없던 그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복귀 후 지터는 타율 0.324를 기록하며 타율에서 빌 뮬러 (0.326)에 이어 3위에 올랐고, 매니 라미레스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돈 매팅글리가 1995년 은퇴한 이후 8시즌 동안 주장이 없었던 양키스에서,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2003년 6월 3일 지터를 양키스 주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지터는 17번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2 홈런, 5 타점, 10 득점, 타율 0.314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2003년 월드 시리즈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3차전에서는 조시 베켓이 허용한 단 세 개의 안타를 모두 지터가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지터는 6차전 패배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고, 말린스가 6경기 만에 시리즈를 우승했습니다.
2003-04년 비시즌 동안 양키스는 텍사스 레인저스로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했습니다. 로드리게스는 당시 유격수로서 두 개의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했으며 야구계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았습니다. 당시 골드글러브 수상 경력이 없던 지터는 팀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유지했고, 로드리게스는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습니다. 로드리게스의 넓은 수비 범위는 지터가 자신의 오른쪽을 로드리게스에게 맡기고 자신의 왼쪽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스카우트들은 그의 왼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처리하는 것을 약점으로 지적했습니다. 2004년 시즌은 지터가 슬럼프에 빠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한때 36타석에서 단 하나의 안타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4월까지 그의 타율은 0.168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7월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그의 타율은 0.277로 향상되었습니다.
지터는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시즌을 타율 0.292, 개인 경력 두 번째로 많은 23 홈런, 78 타점, 111 득점, 그리고 개인 최고 기록인 44 2루타로 마쳤습니다. 그는 2004년 ALDS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꺾을 때 팀 최다인 4 타점을 기록하며 타율 0.316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ALCS에서는 타율 0.200에 1개의 장타만을 기록하며 부진했고, 양키스는 3경기 선승에도 불구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7경기 만에 시리즈를 내주었습니다.
2004년 7월 1일, 라이벌 레드삭스와의 동점 경기 12회에서 트롯 닉슨이 좌익수 라인으로 뜬공을 쳤습니다. 지터는 유격수 포지션에서 달려들어 몸을 날려 오버 더 숄더 캐치를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3루 쪽 난간과 관중석 두 줄을 넘어 몸을 던졌고, 이로 인해 턱이 찢어지고 얼굴에 멍이 드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양키스는 13회말에 이 경기를 승리했습니다. 이 플레이는 MLB.com 팬 투표에서 '올해의 플레이'로 선정되었습니다. 2004년 시즌 후, 지터는 그의 첫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했는데, 7월 1일의 다이빙 캐치가 수상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되었습니다. 비록 지터가 수비율과 실책이라는 두 가지 전통적인 수비 지표에서 유격수 중 4위였지만, 비판자들은 그의 낮은 레인지 팩터 및 UZR과 같은 더 진보된 세이버메트릭스 통계를 지적했습니다.
2005년 시즌에 지터는 득점(122개)에서 아메리칸 리그 2위, 타수(654개)와 안타(202개)에서 모두 리그 3위를 기록했습니다. 비판자들은 여전히 지터를 수비적으로 약점으로 보았지만, 그는 2005년 두 번째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에인절스의 올랜도 카브레라가 더 높은 수비율과 적은 실책을 기록했지만, 투표자들은 지터가 더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했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비록 지터는 2005년 ALDS에서 타율 0.333을 기록했지만, 양키스는 에인절스에게 패했습니다.

2006년 시즌을 위해 양키스는 조니 데이먼을 중견수와 리드오프 타자로 영입했으며, 지터를 타순 2번으로 이동시켰습니다. 2006년 시즌 동안 지터는 개인 통산 2,000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이 이정표에 도달한 8번째 양키스 선수가 되었습니다. 지터는 타율 (0.343)과 득점 (118개)에서 아메리칸 리그 2위, 안타 (214개)에서 3위, 출루율 (0.417)에서 4위를 기록하며 7번째 올스타전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2006년 ALDS에서 1 홈런과 타율 0.500을 기록했는데, 특히 1차전에서는 5타수 5안타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한 경기에서 5안타를 기록한 6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양키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게 3대1로 패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2006년 아메리칸 리그 MVP 수상을 지터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근소한 표 차이로 지터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저스틴 모노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습니다. MVP를 놓쳤지만, 그는 뛰어난 공격력을 인정받아 행크 에런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그는 3년 연속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했습니다.

양키스가 포스트시즌에서 계속해서 고전하는 동안에도 지터는 꾸준히 기여하는 선수로 남아있었습니다. 2007년 시즌 동안 지터는 203개의 안타로 아메리칸 리그 3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그가 2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세 시즌 연속이자 통산 여섯 번째였습니다. 그는 또한 타율 (0.322)에서 9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8번째 올스타전에 선정되었습니다. 수비에서는 개인 최고 기록인 104개의 병살타를 성공시켰습니다. 그러나 2007년 ALDS에서는 1타점, 타율 0.176 (17타수 3안타)로 부진했고, 인디언스에게 양키스는 패했습니다.
지터는 2008년 6월 27일 개인 통산 400번째 2루타를 쳤고, 7월 12일에는 200번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08년 시즌 지터의 장타율은 0.410으로 떨어져 199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지터는 9번째 올스타전에 주전 유격수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시즌을 타율 0.300으로 마쳤습니다.
2008년 9월 14일, 구 양키 스타디움에서 탬파베이 레이스 투수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상대로 홈런을 쳐 루 게릭의 양키 스타디움 최다 안타 기록 (1,269개)과 동률을 이루었습니다. 9월 16일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투수 개빈 플로이드를 상대로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양키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는데, 이는 지터의 메이저리그 경력 중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유일한 풀 시즌이었습니다. 구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경기 후, 지터는 양키스의 요청에 따라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에서 그는 구단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 그리고 팬들이 대대로 추억을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팬들을 "세계 최고의 팬들"이라고 칭했습니다.
3.3.4. 기록 경신 및 마지막 시즌 (2009-2014)
2009년 시즌을 위해 양키스 감독 조 지라디는 지터와 데이먼의 타순을 변경하여 데이먼은 2번으로, 지터는 다시 리드오프로 돌아섰습니다. 지터는 타율 0.334 (AL 3위), 출루율 0.406, OPS 0.871, 18 홈런, 66 타점, 35회 시도 중 30 도루, 107 득점, 72 볼넷, 212 안타 (MLB 2위)를 기록했습니다. 수비에서는 개인 경력 최저인 8개의 실책을 저질렀고, 그의 수비율 0.986은 개인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골드글러브상 수상자인 1루수 마크 테익세이라의 영입은 2루수 로빈슨 카노가 자신의 수비 초점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 지터에게 이점을 주었습니다. 시즌 동안 스포팅 뉴스는 지터를 현재 야구 선수 50인 중 8위로 선정했습니다.

지터는 2009년 시즌 후반기에 두 가지 중요한 안타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2009년 8월 16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지터는 우익수 라인으로 2루타를 치며 유격수로서 개인 통산 2,675번째 안타를 기록, 루이스 아파리시오의 메이저리그 종전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9월 1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투수 크리스 틸먼을 상대로 3회에 1루타를 치며 2,722번째 안타를 기록, 루 게릭을 넘어 양키스 역사상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9년 포스트시즌에서 지터는 타율 0.355를 기록했으며, 특히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타율 0.407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5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2009년 '올해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되었고,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행크 에런상, 4번째 골드글러브상, 그리고 4번째 실버슬러거상을 수상했습니다. 지터는 또한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에서 미네소타의 조 마우어와 양키스 동료 마크 테익세이라에 이어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은 앤디 페티트,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와 함께 "코어 포"로 불리는 이들 네 명에게도 다섯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이었습니다.
2010년, 지터는 포사다, 리베라와 함께 MLB, NFL, NBA, NHL 등 북미 4대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 같은 팀에서 16시즌 연속으로 함께 뛴 최초의 트리오가 되었습니다. 2010년 시즌은 통계적으로 지터에게 여러 면에서 최악의 시즌이었습니다. 양키스 주장은 타율 0.270, 출루율 0.340, 장타율 0.370을 기록했는데, 이는 모두 개인 최저 기록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더 많은 땅볼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터는 올스타전 유격수 선발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양키스 타격 코치 케빈 롱의 도움을 받아 스윙을 조정하며 마지막 79타석에서 타율 0.342로 반등했습니다. 롱과 함께 지터는 왼발의 보폭 방식을 바꿨습니다. 시즌 후 지터는 5번째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시즌 동안 6개의 실책을 저질렀는데, 이는 15개의 풀 시즌 동안 가장 적은 수치였습니다.
2010년 시즌 후, 지터는 경력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가 되었습니다. 36세의 지터는 기량이 쇠퇴하는 것처럼 보였고, Baseball Prospectus의 조 시한은 지터가 한때 "좋지만 위대하지는 않은" 유격수였으나 수비적으로 "평균 이하"로 떨어져 포지션 변경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 역시 지터가 장차 외야수로 전환해야 할 수도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지터는 양키스에 남고 싶다고 밝혔지만, 협상은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지터의 에이전트 케이시 클로스는 양키스의 협상 방식에 "당혹스럽다"고 말했고, 캐시먼 단장은 지터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시장을 시험해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응수하여 지터를 화나게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지터는 처음에 시즌당 2300.00 만 USD에서 2500.00 만 USD 사이의 4년 계약을 원했습니다. 그는 양키스와 4년째 옵션이 포함된 3년, 5100.00 만 USD 계약에 합의했습니다. 그는 비시즌 동안 롱과 함께 스윙 조정 작업을 했습니다.
스윙 조정은 지터를 좌절시켰고, 그는 2011년 시즌 첫 달에 타율 0.242를 기록했습니다. 그가 고전하면서 2011년 시즌은 지터의 기량 쇠퇴의 연속으로 보였습니다. 지터는 2011년 5월 28일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327번째 도루를 성공시키며 리키 헨더슨의 프랜차이즈 도루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그는 6월 13일 종아리 부상을 당해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는데, 이는 2003년 이후 처음이자 통산 5번째였습니다. 당시 그는 2011년 시즌 타율 0.260, OPS 0.649를 기록 중이었습니다. 탬파에서 부상 재활을 하는 동안 지터는 그의 전 마이너리그 감독이던 게리 덴보와 함께 스윙 연습을 했습니다. 덴보와 함께 지터는 마이너리그 시절에 사용했던 메커니즘으로 돌아갔습니다.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한 후, 그는 시즌 마지막 64경기에서 OPS 0.806에 타율 0.326을 기록했습니다. 지터는 시즌을 타율 0.297, 6 홈런, 61 타점, 84 득점, 16 도루로 마쳤습니다. 그는 이 반등을 덴보와의 작업 덕분이라고 했고, 롱 코치는 자신의 지터 스윙 조정 시도가 효과가 없었음을 인정했습니다.

2011년 7월 9일, 지터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상대로 홈런을 쳐 3,000안타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지터는 이날 5타수 5안타를 기록하며, 3,000안타를 달성한 날 5안타를 기록한 역대 두 번째 선수 (첫 번째는 크레이그 비지오)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1999년 웨이드 보그스에 이어 3,000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지터의 5번째 안타는 결승타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뉴욕 양키스에서만 3,000안타를 기록한 유일한 3,000안타 클럽 멤버입니다. 지터는 호너스 와그너에 이어 유격수로서 3,000안타 고지에 도달한 두 번째 정규 유격수였습니다. 타이 콥, 행크 에런, 로빈 야운트만이 3,000안타를 달성한 날 지터보다 어렸습니다. MLB와 HBO는 지터의 3,000안타 달성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데릭 지터 3K(Derek Jeter 3K영어)를 제작하여 2011년 7월 28일에 처음 방영했습니다.
3,000안타 달성 추적의 부담과 종아리 부상 회복을 위해 지터는 201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1년 7월 14일, 지터와 포사다는 함께 1,660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게릭과 토니 라제리가 세운 종전 프랜차이즈 기록인 1,659경기를 경신했습니다. 2011년 8월 29일, 지터는 양키스에서 2,402번째 경기를 치르며 미키 맨틀의 양키스 최다 출장 경기 기록을 깼습니다. 그는 2011년 시즌을 162안타로 마쳤는데, 이는 150안타 이상을 기록한 16번째 연속 시즌으로, 피트 로즈와 타이 기록이며 MLB 기록인 행크 에런에 1시즌 뒤진 기록입니다. 지터는 자선 활동을 인정받아 루 게릭 기념상을 수상했습니다.

나이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2년 시즌 초반 지터는 뜨거운 기세를 보였습니다. 4월 25일까지 타율 0.420를 기록했습니다. 로드리게스는 지터가 1999년처럼 플레이한다고 말했고, 지라디 감독은 지터가 25세처럼 보인다고 언급했습니다. 201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서 지터는 11번째 올스타전 안타를 기록하며 양키스 역사상 올스타전 최다 안타 기록에서 맨틀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이 경기에서 2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올스타전에서 최소 12타석을 기록한 선수 중 역대 4위의 타율인 0.458를 기록했습니다.
지터는 2012년 시즌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전체 최다 안타 (216개)로 마쳤습니다. 그해 9월 14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그는 내야 안타로 개인 통산 3,284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윌리 메이스를 넘어 역대 안타 순위 톱 10에 진입했습니다. 2012년 ALDS에서 타율 0.364를 기록한 후, 2012년 ALCS 1차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땅볼을 잡으려다 왼쪽 발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9월에 왼쪽 발에 골멍 치료를 위해 코르티손 주사를 맞았는데, 이것이 골절에 기여했을 수 있습니다. 지터는 10월 20일 골절된 왼쪽 발목 수술을 받았으며, 회복 기간은 4~5개월로 예상되었습니다.
재활 중이던 지터는 이전 발목 골절 부위에 작은 균열이 발견되어 2013년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습니다. 양키스는 2013년 7월 11일 지터를 복귀시켰지만, 한 경기를 뛴 후 대퇴사두근 부상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는 7월 28일 양키스 라인업에 복귀하여 탬파베이 레이스의 맷 무어를 상대로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습니다. 지터는 8월 5일 1도 종아리 염좌로 인해 다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잠시 복귀한 후 9월 11일 발목 문제로 세 번째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13년 9월 14일, 지터는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으로 이적되었습니다. 2013년 시즌 동안 그는 단 1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190을 기록했습니다.
3.3.5. 마지막 시즌 (2014)

지터는 2014년 시즌을 위해 양키스와 1년, 1200.00 만 USD 계약을 재계약했습니다. 지터는 2014년 2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2014년 시즌이 자신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시즌 동안, 각 상대 팀은 그들의 도시에서 지터의 마지막 방문 시 지터의 자선 단체인 턴2 재단에 기부하는 등 선물로 지터를 기렸습니다.
2014년 7월 10일, 지터는 개인 통산 1,000번째 멀티히트 경기를 기록하며 이 기록을 달성한 네 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2014년 올스타전에서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으며, 아메리칸 리그의 리드오프 타자로 나섰습니다. 2014년 올스타전에서 지터는 2타수 2안타를 기록하고 1득점을 올렸으며, 4이닝 동안 두 차례의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지터의 올스타전 통산 타율 0.481 (27타수 13안타)은 (최소 10타석을 기록한 선수 중) 역대 5위에 올랐습니다. 40세의 나이로 지터는 또한 올스타전에서 2개 이상의 안타를 기록한 최고령 선수가 되었습니다. 7월에는 유격수로서 2,609경기를 선발 출전하며 오마르 비스켈의 MLB 통산 기록을 깼고, 루 게릭의 프랜차이즈 통산 534개의 2루타 기록도 경신했습니다. 7월 17일, 지터는 개인 통산 1,900번째 득점을 올리며 MLB 역사상 10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7월 28일에는 칼 야스트렘스키를 넘어 MLB 통산 안타 7위에 올랐고, 8월 11일에는 호너스 와그너를 넘어 역대 안타 6위로 올라섰습니다.

양키스는 9월 7일 경기 전 트리뷰트 행사로 지터를 기렸습니다. 이날 경기부터 양키스는 시즌 남은 기간 동안 지터를 기리는 패치를 모자와 유니폼에 착용했습니다. 지터의 선수 경력 마지막 주에 버드 셀리그 MLB 커미셔너는 그에게 "역대 가장 뛰어난 유격수 중 한 명"임을 인정하며 커미셔너스 히스토릭 어치브먼트 어워드의 15번째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지터의 마지막 시리즈 동안, 루이빌 슬러거는 지터가 사용하는 배트인 "P72" 모델 야구 배트를 은퇴시키고, 지터를 기리기 위해 "DJ2"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9월 25일 지터의 마지막 홈 경기의 평균 티켓 가격은 암표 시장에서 830 USD에 달했습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지터는 오리올스 투수 에번 미크를 상대로 끝내기 1루타를 쳐 6대5로 경기를 승리했습니다.
지터는 자신의 유격수로서의 마지막 기억을 양키 스타디움에 남기고 싶어, 그의 경력 마지막 시리즈인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의 경기에서는 오직 지명타자로만 뛰기로 결정했습니다. 레드삭스는 칼 야스트렘스키, 짐 라이스, 프레드 린, 루이스 티안트, 리코 페트로셀리 등 은퇴한 레드삭스 스타들과 보스턴 브루인스의 바비 오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와이드 리시버 트로이 브라운, 보스턴 셀틱스의 폴 피어스를 포함한 경기 전 행사로 지터를 기렸습니다. 펜웨이 파크의 많은 보스턴 팬들도 지터에게 큰 환호를 보내고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의 마지막 타석에서 그는 클레이 뷰크홀즈를 상대로 타점 내야 1루타를 친 후 대주자 브라이언 매캔으로 교체되었고, 필드를 나설 때 레드삭스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3.3.6. 국가대표 경력: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지터는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유격수로 출전했습니다. 그는 6경기에서 타율 0.450 (20타수 9안타)를 기록하고 5득점을 올렸습니다. 팀 동료 켄 그리피 주니어 (0.524)와 쿠바의 요안디 가를로보 (0.480)만이 최소 20타석에서 더 높은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지터의 활약은 그를 '올-토너먼트 팀(All-Tournament Team영어)'의 유격수로 선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지터는 다시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습니다. 그는 데이비 존슨 감독에 의해 미국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8경기에서 타율 0.276 (29타수 8안타)을 기록했습니다. 지터와 미국 팀은 스타인브레너 필드에서 양키스와의 시범 경기를 치렀는데, 이는 지터가 양키스를 상대로 경기를 펼친 유일한 사례였습니다. 지터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창설을 지지한 최초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국제 야구 경쟁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회장인 짐 스몰(Jim Small영어)은 지터의 지지에 대해 "데릭 지터 같은 사람이 국제 야구, 국가 대 국가 챔피언십에 찬성표를 던져준 것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것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4. 선수 특징 및 경기 스타일
데릭 지터는 일관된 활약과 리더십, 그리고 독특한 경기 스타일로 유명했습니다.
4.1. 타격 스타일 및 클러치 능력
지터는 역대 가장 꾸준한 야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통산 162경기당 평균 204 안타, 113 득점, 21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그는 MLB 역사상 통산 안타 순위 6위에 올라 있습니다. 매우 경쟁심이 강했던 지터는 "경기할 거라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야구든, 보드 게임이든, 제퍼디!를 하든,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세대에서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졌습니다.
공격적인 타자였던 지터는 스트라이크 존 내의 대부분의 투구와 그 근처의 많은 투구에 스윙을 했습니다. 우타자들이 보통 공을 좌익수로 당겨 치는 경향이 있지만, "지터리언 스윙(Jeterian Swing영어)"으로 불리는 그의 독특한 인사이드-아웃 스윙은 대부분의 안타가 중견수와 우익수 방향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홈런 대부분은 중앙이나 좌익수 방향보다는 우익수 방향으로 날아갔는데, 그의 스윙은 양키 스타디움의 짧은 우익수 펜스를 활용했습니다.
4.2. 수비 플레이 및 비판

지터는 5개의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오마르 비스켈, 오지 스미스, 루이스 아파리시오, 데이브 콘셉시온, 마크 벨랭거에 이어 유격수 중 최다 수상 기록입니다. 그는 수비 위치 선정 능력과 빠른 송구 동작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수비 플레이 중 하나는 3루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1루로 점프하며 송구하는 "점프 스로(jump-throw영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터의 수비는 세이버메트릭스 분석가들, 특히 롭 나이어와 Baseball Prospectus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존 듀완의 2006년 저서 필딩 바이블(The Fielding Bible영어)에는 빌 제임스의 에세이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지터가 선수 경력 전체에 걸쳐 "어떤 포지션에서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수비수였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연구자들이 2008년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지터가 MLB에서 최악의 수비 유격수였다고 밝혔습니다. 고급 수비 통계를 사용하는 FanGraphs.com과 FieldingBible.com 두 웹사이트는 지터가 2010년 다섯 번째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비가 중간 이하라고 평가했습니다.
2007년 지터는 18개의 실책을 저질렀는데, 이는 2000년 24개 이후 가장 많은 수치였습니다. 시즌 후,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과 그의 스태프는 지터의 수비를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보았습니다. 양키스의 요청에 따라 지터는 나이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 측면 움직임과 첫 스텝 속도에 집중하는 강도 높은 훈련 프로그램에 착수했습니다. 지터의 UZR은 2007년 유격수 중 아메리칸 리그 최악에서 2008년에는 리그 평균 수준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자신의 수비에 대한 비판에 대해 지터는 "나는 뉴욕에서 뛴다. 비판은 경기의 일부이고, 당신은 비판을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지터는 더 나아가 많은 수비 요소들이 수치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지터의 수비에 대한 논란은 통계 분석과 주관적인 관찰 중 어느 것이 선수의 수비 능력을 평가하는 더 나은 방법인지에 대한 논쟁의 핵심이자, 골드글러브상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4.3. 리더십 및 프로페셔널리즘
지터는 프로페셔널리즘으로도 유명합니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종종 개인적인 스캔들에 휘말리던 시대에, 그는 뉴욕시에서 높은 명성을 가진 경력 속에서도 큰 논란을 피하며 강한 직업윤리를 유지했습니다. 커트 실링은 2009년 9월 14일 지터를 "그는 모든 면에서 늘 최고였다. 나처럼 수백 번 말실수하고 바보 같은 행동을 했던 사람에게 그는 상쾌하다. 그는 스포츠에서 가장 힘든 환경에서 나타나 경기를 했고, 명예의 전당 첫 투표 헌액 선수 경력을 남겼다"며 그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의 경기 스타일 덕분에 상대팀 선수들과 팀 동료들 모두 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클럽하우스의 리더였던 지터는 종종 팀 동료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기도 했습니다.
5. 은퇴 후 경력
데릭 지터는 선수 은퇴 후에도 야구계와 비즈니스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5.1. 사업 활동
2013년 부상으로 짧은 시즌을 보낸 동안, 지터는 사이먼 & 슈스터와 파트너십을 맺고 '지터 퍼블리싱(Jeter Publishing영어)'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이를 "선수 은퇴 후 경력의 청사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출판사는 성인용 논픽션, 아동용 그림책, 초등학생용 소설, 그리고 읽기를 배우는 어린이를 위한 책들을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파트너십은 영화 및 텔레비전 제작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2014년 10월 1일, 지터의 새로운 웹사이트인 ThePlayersTribune.com이 온라인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웹사이트는 "프로 운동선수들의 여과되지 않은 목소리를 전달하여 팬들을 그들이 사랑하는 경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연결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으로 홍보되었습니다. 2015년 3월 Tampa Bay Business Journal은 지터가 Concessions Tampa와 협력하여 탬파 국제공항 내 공간 입찰에 참여했으며, 그의 웹사이트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개업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지터는 또한 Luvo Inc.의 브랜드 개발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다채널 비디오 네트워크 회사인 Whistle Sports Network에도 투자했습니다. 그는 2014년 버펄로 빌스 미식축구팀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4월, 지터는 Rockefeller Capital Management 이사회에 합류했습니다.
5.2.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주 및 CEO
2017년 7월, 지터는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주 입찰에 참여했습니다. 2017년 8월, 지터와 브루스 셔먼은 마이애미 말린스를 인수하기 위한 계약을 최종 확정했습니다. 이 인수는 2017년 9월 나머지 29개 MLB 팀 구단주들의 만장일치 승인에 따라 완료되었습니다. 지터는 구단의 4% 지분만을 소유했지만, 팀의 CEO로 임명되었고, 지배적인 구단주인 셔먼은 그에게 팀의 일상적인 운영을 총괄하도록 위임했습니다.
2022년 2월 28일, 지터는 더 이상 말린스의 CEO로 활동하지 않고 구단의 주식도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4년 넘게 마이애미 말린스의 최고 경영자로 활동한 후, 그는 관계를 종료하고 팀의 4% 지분을 매각했습니다.
5.3. 현재 활동
2022년 9월 8일, 지터는 기업가 브라이언 리와 여러 벤처 캐피털 회사들과 함께 카드 등급 평가, 보관 금고, 그리고 마켓플레이스 플랫폼인 아레나 클럽(Arena Club영어)을 출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2023년 2월 12일 수퍼볼 LVII의 Fox Sports 프리게임 중계에서 지터는 MLB on Fox의 스튜디오 분석가로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6. 개인 생활
데릭 지터의 사생활은 그의 선수 경력 동안 타블로이드 신문과 연예 잡지의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6.1. 거주지 및 재정 문제
지터는 뉴저지주 말보로 타운십, 뉴욕주 그린우드 레이크, 그리고 플로리다주 탬파의 데이비스 아일랜드 지역에 주택을 소유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의 펜트하우스 아파트를 소유하기도 했습니다. 지터는 2008년 뉴욕주 세금재정부와 자신의 공식 거주지와 관련된 세금 분쟁을 해결했습니다. 뉴욕주는 지터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그가 2001년에 구매한 맨해튼 아파트에 거주했으므로 주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터는 1994년 플로리다주 탬파베이에 자신의 거주지를 정했으며, 당시에도 여전히 플로리다 거주자라고 주장했습니다. 플로리다주에는 주 소득세가 없습니다. 2020년 현재 지터와 그의 아내 (전 모델 한나 데이비스)는 마이애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20년 9월, 부부는 탬파의 워터프론트 주택을 2900.00 만 USD에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이후 2021년 3월에는 그린우드 레이크 자택도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2002년 12월, 양키스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지터가 2002년 시즌 중 생일 파티에서 새벽 3시까지 밖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그를 비판하며, 그의 스타 유격수가 "완전히 집중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그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둘은 2003년 5월 비자카드 광고에서 이 사건을 재치 있게 다루었으며, 이는 1970년대 스타인브레너와 전 양키스 감독 빌리 마틴이 밀러 라이트 광고에서 그들의 불화를 희화화했던 것과 유사했습니다.
6.2. 관계 및 가족
지터의 사생활은 1996년 신인 시절부터 가십 칼럼과 연예 잡지에서 자주 다루어졌습니다. 그는 1997년부터 1998년까지 가수-작곡가 머라이어 캐리와 공개적으로 잘 알려진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캐리는 그들의 첫 키스에 대한 노래 "더 루프(The Roof (Back in Time)영어)"를 공동 작곡했습니다. 지터는 또한 모델 비다 게라, 전 미스 유니버스 라라 두타, 가수 조이 엔리케즈, 텔레비전 진행자 바네사 민닐로, 그리고 배우 조다나 브루스터, 제시카 비엘, 밍카 켈리와도 교제했습니다.
지터는 가톨릭 신자로, 어릴 적부터 가톨릭 학교에 다니며 가톨릭 신앙 속에서 자랐고 양키스에서 뛰는 동안에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지터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수영복 특집 표지 모델인 한나 데이비스는 2012년부터 교제하여 2015년에 약혼했습니다. 2016년 7월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그들에게는 2017년 8월, 2019년 1월, 2021년 12월에 태어난 세 딸과 2023년 5월에 태어난 한 아들이 있습니다.
7. 자선 활동 및 대중적 이미지
데릭 지터는 선수 생활 동안 그리고 은퇴 후에도 활발한 자선 활동과 성공적인 대중적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7.1. 턴 2 재단
지터는 1996년 자선 단체인 턴 2 재단(Turn 2 Foundation영어)을 설립했습니다. 이 재단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약물 및 알코올 중독을 피하도록 돕고,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이는 이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2012년, 지터는 그의 재단 활동을 기리기 위해 시에나 칼리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9년부터 지터는 어린이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웹사이트인 위플레이(Weplay영어)의 홍보대사로 활동했습니다. 지터는 일본 야구 선수 마쓰이 히데키와 함께 2011년 도호쿠 지진 해일 생존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도쿄 돔에서 자선 야구 경기에 참여했습니다.
2018년, 지터는 허리케인 어마로 인해 이재민이 된 가족들에게 가구 및 가재도구를 기부했습니다. 2019년 7월, 지터는 턴 2 재단을 통해 캘러머주 공립 학교 학군에 320.00 만 USD를 기부하여 학교의 야구 및 소프트볼 시설을 개조했습니다.
7.2. 광고 및 미디어 출연
지터는 나이키, 게토레이, 플리트뱅크, 서브웨이, 포드, VISA, Discover Card, Florsheim, 질레트, Skippy, XM Satellite Radio 등 여러 기업의 전국 광고 캠페인에 출연했습니다. 그는 에이본과 협력하여 디자인하고 유통한 '드리븐(Driven영어)'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홍보했습니다. 지터는 자신의 점프맨 신발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터의 마지막 해를 기념하기 위해 조던 브랜드는 "#RE2PECT"라는 헌정 광고를 제작했는데, 이 광고에는 존 레스터와 같은 많은 야구 선수들과 유명인, 심지어 라이벌인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까지도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2006년, 지터는 일본에서 광고 계약을 맺은 스즈키 이치로에 이어 야구에서 두 번째로 높은 광고 수입을 올리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2003년, 2005년, 2010년 스포츠 비즈니스 서베이에서 야구에서 가장 시장성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습니다. 2011년 마케팅 회사 닐슨이 발표한 목록에서는 진정성, 친근함, 경험, 영향력 등 개인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지터가 야구에서 가장 시장성 있는 선수로 평가되었습니다.
7.3. 기타 출연
지터는 시트콤 사인펠드 에피소드 "디 앱스티넌스(The Abstinence영어)"와 심야 라이브 코미디 및 버라이어티 쇼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27시즌 7회에 게스트 배우로 출연했습니다. 그는 코미디 영화 성질 죽이기(Anger Management영어)와 디 아더 가이즈(The Other Guys영어)에 카메오로 출연했습니다. 지터는 TV 시사 매거진 60분(60 Minutes영어)의 2005년 특집 기사와 PBS 텔레비전 시리즈 파인딩 유어 루츠(Finding Your Roots영어)의 2014년 에피소드에서 다뤄졌습니다. 지터는 브로드웨이 연극 브롱스 밤버스(Bronx Bombers영어)에도 등장인물로 나옵니다. 2015년 2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40주년 기념 스페셜에서 지터는 페이튼 매닝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비디오 게임으로는 2K 스포츠의 MLB 2K5, MLB 2K6, MLB 2K7, Acclaim Entertainment의 All-Star Baseball 시리즈, 그리고 게임로프트의 무선 전화 야구 게임 데릭 지터 프로 베이스볼 2008(Derek Jeter Pro Baseball 2008영어)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습니다. 뉴욕 마담 투소 밀랍인형 박물관에는 지터의 밀랍 인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켄터키주 루이빌의 루이빌 슬러거 박물관 & 공장에는 그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2022년 7월 18일, 지터의 삶과 경력을 다룬 다큐멘터리 미니시리즈 더 캡틴(The Captain영어)이 ESPN에서 처음 방영되었습니다. 2023년 2월 12일 수퍼볼 LVII의 폭스 스포츠 프리게임 중계에서 지터는 MLB on Fox의 스튜디오 분석가로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8. 영예 및 수상
데릭 지터는 선수 경력 동안과 은퇴 후에도 수많은 영예와 상을 받으며 야구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8.1.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20년 1월 21일, 지터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2020년 헌액자로 첫 번째 투표 대상에 올라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397표 중 396표 (99.7%)를 얻어, 명예의 전당 역사상 마리아노 리베라 (100%)에 이어 두 번째로 만장일치에 근접한 선수이자 포지션 선수 중 가장 높은 득표율 (99.7%)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2021년 9월 8일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공식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8.2. 등번호 영구 결번 및 기념물
캘러머주 중앙 고등학교는 2003년 지터를 학교 운동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으며, 2011년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야구장의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2015년에는 뉴저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양키스는 2017년 5월 14일 경기 전 행사에서 지터의 등번호 2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고 모뉴먼트 파크에 그의 명판을 공개했습니다.
8.3. 주요 수상 및 인정


| 수상 / 영예 | 횟수 | 날짜(들) |
|---|---|---|
| AL 올스타 | 14 | 1998, 1999, 2000, 2001, 2002, 2004,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4 |
| 뉴욕 양키스 올해의 선수 | 5 | 1998, 1999, 2000, 2006, 2009 |
| AL 골드글러브상 (유격수) | 5 | 2004, 2005, 2006, 2009, 2010 |
| AL 실버슬러거상 (유격수) | 5 | 2006, 2007, 2008, 2009, 2012 |
| GIBBY 어워드 올해의 순간 | 2 | 2008, 2009 |
| 행크 에런상 | 2 | 2006, 2009 |
| GIBBY 어워드 올해의 퍼포먼스 | 1 | 2011 |
| GIBBY 어워드 올해의 순간 | 1 | 2014 |
| GIBBY 어워드 올해의 끝내기 | 1 | 2014 |
| 루 게릭 기념상 | 1 | 2010 |
| 스포팅 뉴스 2000년대 올스타 팀 (유격수) | 1 | 2009 |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2000년대 MLB 올스타 팀 (유격수) | 1 | 2009 |
|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 1 | 2009 |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올해의 스포츠맨 | 1 | 2009 |
| ESPY 어워드 최고의 MLB 선수 | 1 | 2007 |
| 캘러머주 중앙 고등학교 운동 명예의 전당 헌액 | 1 | 2007 |
| 베이스볼 다이제스트 올해의 선수 | 1 | 2006 |
| GIBBY 어워드 올해의 타자상 | 1 | 2006 |
| 베이스볼 아메리카 1군 메이저리그 올스타 (유격수) | 1 | 2006 |
| GIBBY 어워드 올해의 플레이 | 1 | 2004 |
| 선수 선택 상 올해의 신인 | 1 | 2004 |
| 스포팅 뉴스 "스포츠의 좋은 사람" 상 | 1 | 2002 |
| ESPY 어워드 최고의 플레이 ESPY 어워드 | 1 | 2002 |
| 베이브 루스상 | 1 | 2000 |
| 올스타전 최우수 선수상 | 1 | 2000 |
| 월드 시리즈 최우수 선수상 | 1 | 2000 |
| 조안 페이슨 상 지역 사회 봉사 | 1 | 1997 |
| AL 올해의 신인 | 1 | 1996 |
| 인터내셔널 리그 올스타 | 1 | 1995 |
| 플로리다 주립 리그 올스타 | 1 | 1994 |
| 플로리다 주립 리그 최우수 선수 | 1 | 1994 |
| 베이스볼 아메리카 올해의 마이너 리그 선수 | 1 | 1994 |
| 스포팅 뉴스 올해의 마이너 리그 선수 | 1 | 1994 |
| Topps/NAPBL 올해의 마이너 리그 선수 | 1 | 1994 |
| 뉴욕 양키스 올해의 마이너 리그 선수 | 1 | 1994 |
| 사우스애틀랜틱 리그 올스타 | 1 | 1993 |
| 사우스애틀랜틱 리그 최고의 수비 유격수, 가장 흥미진진한 선수, 최고의 내야수 어깨 | 1 | 1993 |
| 미국 야구 코치 협회 올해의 고등학교 선수 | 1 | 1992 |
| USA 투데이 올해의 고등학교 선수 | 1 | 1992 |
| 게이터레이드 올해의 고등학교 운동선수 | 1 | 1992 |
8.4. 경력 통계 하이라이트
데릭 지터는 메이저 리그 경력 동안 수많은 통계적 업적을 달성했으며, 특히 양키스 구단 역사상 여러 부문에서 선두를 차지했습니다.
- 리그 선두 기록**
- 단타 (1997, 1998)
- 득점 (1998)
- 안타 (1999, 2012)
- 리그 Top-10 기록**
- 안타 (1997-2002, 2004-2007, 2009, 2012)
- 득점 (1997-2006, 2009, 2012)
- 타율 (1998-2001, 2003-2007, 2009, 2012)
- 총 루타 (1999)
- AL MVP 투표 (1997-2001, 2003-2009)
- AL 타자 (1997, 1999-2000, 2003, 2009)
- 통산 포스트시즌 기록 (MLB 역대 1위)**
- 경기 출장 (158경기)
- 타석 (734타석)
- 타수 (650타수)
- 안타 (200안타)
- 단타 (143개)
- 2루타 (32개)
- 3루타 (5개)
- 득점 (111점)
- 총 루타 (302개)
- 삼진 (135개)
- 통산 포스트시즌 기록 (MLB 역대 상위)**
- 홈런 (20개, 4위)
- 타점 (61개, 4위)
- 볼넷 (66개, 5위)
- 도루 (18개, 6위)
8.5. 연도별 타격 성적 (정규 시즌)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95 | NYY | 15 | 51 | 48 | 5 | 12 | 4 | 1 | 0 | 18 | 7 | 0 | 0 | 0 | 0 | 3 | 0 | 0 | 11 | 0 | .250 | .294 | .375 | .669 |
| 1996 | 157 | 654 | 582 | 104 | 183 | 25 | 6 | 10 | 250 | 78 | 14 | 7 | 6 | 9 | 48 | 1 | 9 | 102 | 13 | .314 | .370 | .430 | .800 | |
| 1997 | 159 | 748 | 654 | 116 | 190 | 31 | 7 | 10 | 265 | 70 | 23 | 12 | 8 | 2 | 74 | 0 | 10 | 125 | 14 | .291 | .370 | .405 | .775 | |
| 1998 | 149 | 694 | 626 | 127 | 203 | 25 | 8 | 19 | 301 | 84 | 30 | 3 | 3 | 3 | 57 | 1 | 5 | 119 | 13 | .324 | .384 | .481 | .864 | |
| 1999 | 158 | 739 | 627 | 134 | 219 | 37 | 9 | 24 | 346 | 102 | 19 | 3 | 3 | 6 | 91 | 5 | 12 | 116 | 12 | .349 | .438 | .552 | .989 | |
| 2000 | 148 | 679 | 593 | 119 | 201 | 31 | 4 | 15 | 285 | 73 | 22 | 4 | 3 | 3 | 68 | 4 | 12 | 99 | 14 | .339 | .416 | .481 | .896 | |
| 2001 | 150 | 686 | 614 | 110 | 191 | 35 | 3 | 21 | 295 | 74 | 27 | 3 | 5 | 1 | 56 | 3 | 10 | 99 | 13 | .311 | .377 | .480 | .858 | |
| 2002 | 157 | 730 | 644 | 124 | 191 | 26 | 0 | 18 | 271 | 75 | 32 | 3 | 3 | 3 | 73 | 2 | 7 | 114 | 14 | .297 | .373 | .421 | .794 | |
| 2003 | 119 | 542 | 482 | 87 | 156 | 25 | 3 | 10 | 217 | 52 | 11 | 5 | 3 | 1 | 43 | 2 | 13 | 88 | 10 | .324 | .393 | .450 | .844 | |
| 2004 | 154 | 721 | 643 | 111 | 188 | 44 | 1 | 23 | 303 | 78 | 23 | 4 | 16 | 2 | 46 | 1 | 12 | 99 | 19 | .292 | .352 | .471 | .823 | |
| 2005 | 159 | 752 | 654 | 122 | 202 | 25 | 5 | 19 | 294 | 70 | 14 | 5 | 7 | 3 | 77 | 3 | 11 | 117 | 15 | .309 | .389 | .450 | .839 | |
| 2006 | 154 | 715 | 623 | 118 | 214 | 39 | 3 | 14 | 301 | 97 | 34 | 5 | 7 | 4 | 69 | 4 | 12 | 102 | 13 | .343 | .417 | .483 | .900 | |
| 2007 | 156 | 714 | 639 | 102 | 206 | 39 | 4 | 21 | 289 | 73 | 15 | 8 | 3 | 2 | 56 | 3 | 14 | 100 | 21 | .322 | .388 | .452 | .840 | |
| 2008 | 150 | 668 | 596 | 88 | 179 | 25 | 3 | 11 | 243 | 69 | 11 | 5 | 7 | 4 | 52 | 0 | 9 | 85 | 24 | .300 | .363 | .408 | .771 | |
| 2009 | 153 | 716 | 634 | 107 | 212 | 27 | 1 | 18 | 295 | 66 | 30 | 5 | 4 | 1 | 72 | 4 | 5 | 90 | 18 | .334 | .406 | .465 | .871 | |
| 2010 | 157 | 739 | 663 | 111 | 179 | 30 | 3 | 10 | 245 | 67 | 18 | 5 | 1 | 5 | 63 | 4 | 9 | 106 | 22 | .270 | .340 | .370 | .710 | |
| 2011 | 131 | 607 | 546 | 84 | 162 | 24 | 4 | 6 | 212 | 61 | 16 | 6 | 4 | 3 | 46 | 0 | 6 | 81 | 10 | .297 | .355 | .388 | .743 | |
| 2012 | 159 | 740 | 683 | 99 | 216 | 32 | 0 | 15 | 293 | 54 | 9 | 4 | 6 | 1 | 45 | 1 | 5 | 90 | 24 | .316 | .362 | .429 | .791 | |
| 2013 | 17 | 73 | 63 | 8 | 12 | 1 | 0 | 1 | 16 | 7 | 0 | 0 | 0 | 1 | 8 | 1 | 1 | 10 | 3 | .190 | .288 | .254 | .542 | |
| 2014 | 145 | 634 | 581 | 47 | 149 | 19 | 1 | 4 | 182 | 50 | 10 | 2 | 8 | 4 | 35 | 0 | 6 | 87 | 15 | .256 | .304 | .313 | .617 | |
| 통산: 20년 | 2747 | 12602 | 11195 | 1923 | 3465 | 544 | 66 | 260 | 4921 | 1311 | 358 | 97 | 97 | 58 | 1082 | 39 | 170 | 1840 | 287 | .310 | .377 | .440 | .817 | |
8.6. 연도별 타격 성적 (포스트 시즌)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96 | NYY | 15 | 67 | 61 | 12 | 22 | 3 | 0 | 1 | 28 | 3 | 3 | 0 | 1 | 0 | 4 | 0 | 1 | 13 | 1 | .361 | .409 | .459 | .868 |
| 1997 | 5 | 24 | 21 | 6 | 7 | 1 | 7 | 2 | 14 | 2 | 1 | 0 | 0 | 0 | 3 | 0 | 0 | 5 | 0 | .333 | .417 | .667 | 1.083 | |
| 1998 | 13 | 61 | 51 | 7 | 12 | 1 | 1 | 0 | 15 | 3 | 3 | 0 | 3 | 0 | 7 | 0 | 0 | 10 | 2 | .235 | .328 | .294 | .622 | |
| 1999 | 12 | 53 | 48 | 10 | 18 | 3 | 1 | 1 | 26 | 4 | 3 | 1 | 0 | 0 | 5 | 0 | 0 | 9 | 0 | .375 | .434 | .542 | .976 | |
| 2000 | 16 | 75 | 63 | 13 | 20 | 2 | 1 | 4 | 36 | 9 | 1 | 1 | 0 | 0 | 11 | 0 | 1 | 18 | 0 | .317 | .427 | .571 | .998 | |
| 2001 | 17 | 70 | 62 | 5 | 14 | 1 | 0 | 1 | 18 | 4 | 0 | 1 | 1 | 2 | 3 | 0 | 2 | 8 | 0 | .226 | .275 | .290 | .566 | |
| 2002 | 4 | 19 | 16 | 6 | 8 | 0 | 0 | 2 | 14 | 3 | 0 | 0 | 0 | 1 | 2 | 2 | 0 | 3 | 0 | .500 | .526 | .875 | 1.401 | |
| 2003 | 17 | 78 | 70 | 10 | 22 | 5 | 0 | 2 | 33 | 5 | 2 | 0 | 0 | 0 | 7 | 1 | 1 | 13 | 2 | .314 | .385 | .471 | .856 | |
| 2004 | 11 | 59 | 49 | 8 | 12 | 2 | 0 | 1 | 17 | 9 | 2 | 0 | 3 | 0 | 7 | 0 | 0 | 6 | 1 | .245 | .339 | .347 | .686 | |
| 2005 | 5 | 23 | 21 | 4 | 7 | 0 | 0 | 2 | 13 | 5 | 1 | 0 | 0 | 1 | 1 | 0 | 0 | 5 | 0 | .333 | .348 | .619 | .967 | |
| 2006 | 4 | 17 | 16 | 4 | 8 | 4 | 0 | 1 | 15 | 1 | 0 | 1 | 0 | 0 | 1 | 0 | 0 | 2 | 1 | .500 | .529 | .938 | 1.467 | |
| 2007 | 4 | 17 | 17 | 0 | 3 | 0 | 0 | 0 | 3 | 1 | 0 | 0 | 0 | 0 | 0 | 0 | 0 | 4 | 3 | .176 | .176 | .176 | .353 | |
| 2009 | 15 | 74 | 64 | 14 | 22 | 5 | 0 | 3 | 36 | 6 | 0 | 1 | 0 | 1 | 10 | 2 | 0 | 11 | 2 | .344 | .432 | .563 | .995 | |
| 2010 | 9 | 42 | 40 | 2 | 10 | 3 | 1 | 0 | 15 | 2 | 1 | 0 | 0 | 0 | 2 | 0 | 0 | 10 | 1 | .250 | .286 | .375 | .661 | |
| 2011 | 5 | 25 | 24 | 6 | 6 | 1 | 0 | 0 | 7 | 2 | 1 | 0 | 0 | 0 | 1 | 0 | 0 | 8 | 1 | .250 | .280 | .292 | .572 | |
| 2012 | 6 | 30 | 27 | 4 | 9 | 1 | 1 | 0 | 12 | 2 | 0 | 0 | 1 | 0 | 2 | 0 | 0 | 10 | 0 | .333 | .379 | .444 | .824 | |
| 통산: 16년 | 158 | 734 | 650 | 111 | 200 | 32 | 5 | 20 | 302 | 61 | 18 | 5 | 9 | 4 | 66 | 3 | 5 | 135 | 14 | .308 | .374 | .465 | .83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