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에드먼즈는 1970년 6월 27일 캘리포니아주 풀러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가 어릴 적 이혼했고, 공동 양육권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 집은 애너하임 스타디움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군 동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바의 다이아몬드 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 Professional career
짐 에드먼즈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18시즌 동안 활약하며 캘리포니아/애너하임 에인절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주로 뛰어난 수비와 강타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마이너리그 시절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후, 특히 골드 글러브를 여러 차례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중견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1. California / Anaheim Angels (1988-1999)
에드먼즈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소속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하여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팀의 핵심 파워 히터이자 뛰어난 수비수로 활약하며 초기 경력의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2.1.1. Minor leagues (1988-1993)
에드먼즈는 1988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의해 7라운드에 지명되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어깨 부상을 당하면서 드래프트 순위가 하락하는 요인이 되었다.
드래프트 이후, 그는 에인절스의 A-쇼트시즌 산하 노스웨스트 리그 소속 벤드 벅스에 배정되었다. 1988년 벅스에서 3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21을 기록하며 홈런 없이 13 타점을 올렸다. 이듬해 그는 팀의 클래스-A 산하 미드웨스트 리그의 쿼드 시티스 에인절스로 승격되었다. 3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1, 1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1990년, 에드먼즈는 에인절스의 하이A 산하 캘리포니아 리그의 팜 스프링스 에인절스로 진출했다. 그는 9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93, 3홈런, 56타점을 기록했다. 1991시즌에도 팜 스프링스에 머물며 60경기에서 타율 .294, 2홈런, 27타점을 기록했다. 1992년에는 더블A 산하 텍사스 리그의 미들랜드 에인절스로 승격되었다. 미들랜드에서 7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13, 8홈런, 32타점을 기록했다. 1992년에 다시 승격되어 트리플A의 에드먼턴 트래퍼스에서 50경기를 뛰며 타율 .299, 6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1993년, 에드먼즈는 새로운 에인절스 트리플A 산하 팀인 밴쿠버 캐내디언스에서 뛰었다. 그는 이 팀에서 9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15, 9홈런, 74타점을 기록했다.
2.1.2. MLB debut and emergence (1993-1996)
1993년 9월 7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는 에드먼즈를 처음으로 메이저리그로 승격시켰다. 그는 9월 9일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좌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MLB 데뷔전을 치렀지만, 4타수 무안타 2삼진을 기록했다. 9월 1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스카이돔에서 대타로 출전하여 듀안 워드에게서 9회에 2루타를 치며 첫 메이저리그 안타를 기록했다. 9월 14일 시애틀 매리너스 투수 로저 새클드를 상대로 채드 커티스를 단타로 불러들이며 첫 메이저리그 타점을 올렸다. 1993년 9월 콜업 시즌에 에드먼즈는 18경기 61타수에서 타율 .246을 기록했다.
보 잭슨과 드와이트 스미스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에드먼즈는 에인절스의 1994년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그는 시즌 전반기 동안 간헐적으로 출전하며 주로 대타로 나섰고 선발 출전은 드물었다. 1994년 5월 11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릭 헬링을 상대로 2점 홈런을 치기 전까지는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1994년 첫 50경기에서 에드먼즈는 타율 .328, 출루율 .405를 기록했다. 6월부터 에드먼즈는 보 잭슨이 벤치에 앉고 드와이트 스미스가 볼티모어로 트레이드된 후 주전 좌익수로 뛰면서 더 꾸준한 출전 시간을 얻기 시작했다. 시즌 중반에 에드먼즈는 언론에서 AL 올해의 신인상의 유력한 후보로 평가되었다. 출전 경기가 늘면서 높은 타율은 떨어졌지만, 1994-95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파업으로 단축된 시즌을 타율 .273, 5홈런, 37타점으로 마쳤다. 그는 AL 올해의 신인상 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다.
오프시즌에 채드 커티스가 떠나면서 에드먼즈는 1995시즌 에인절스의 주전 중견수가 되었다. 팀의 주전 중견수로 새로운 역할을 맡으면서, 에드먼즈는 강력한 파워 히터로 부상했다. 그는 마이너리그 6년 경력 동안 29홈런, 진정한 신인 시즌에 5홈런만을 기록했기에 처음에는 높은 타율과 함께 콘택트 히터로 인식되었다. 에드먼즈는 1995시즌 첫 17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5월 15일부터 5월 23일까지 8경기 동안 6홈런과 장타율 .857을 기록했다. 에드먼즈는 1995년에 첫 올스타 선발에 뽑혔고, 올스타 휴식기에는 타율 .291, 13홈런, 52타점을 기록 중이었다. 에드먼즈는 1995시즌을 타율 .290, 33홈런, 107타점으로 마무리했다.
1996년 에드먼즈는 팀 내 최고의 올라운드 타자 중 한 명으로 에인절스에 복귀했다. 3월 7일, 그는 에인절스와 5년차 팀 옵션이 포함된 4년 950.00 만 USD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5월 25일 서혜부와 복부 부상으로 한 달 동안 결장했다. 6월 10일 복귀했지만, 다음 날 엄지손가락을 삐어 다시 한 달 동안 결장하게 되었다. 그는 7월 1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2안타 1홈런을 기록하며 복귀했다. 에드먼즈는 1996시즌을 타율 .304, 27홈런, 66타점으로 마쳤다.
2.1.3. Gold Glove selections and team dynamics (1997-1999)
에드먼즈는 팀 새먼, 개럿 앤더슨, 대런 에스타드와 함께 1990년대 중반 에인절스의 핵심 외야수진을 구성했다. 이로 인해 팀 프런트는 이 네 명의 선수 모두에게 주전 출전 기회를 부여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 결과 에인절스는 1996~97년 오프시즌에 지명타자 칠리 데이비스와 1루수 J. T. 스노를 투수와 트레이드하여 네 명의 외야수 모두에게 출전 시간을 확보했다. 포지션 개편 속에서도 에드먼즈는 중견수 자리를 유지했고, 대런 에스타드는 1루수로 이동했다.
에드먼즈는 1997년에 뛰어난 수비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자주 하이라이트 영상에 등장했다. 1997년 6월 10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에드먼즈는 카우프만 스타디움 중견수 담장을 향해 뒤로 전력 질주하며 머리 위로 날아가는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다. 이 캐치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 플레이 중 하나로 널리 평가받고 있으며, 조 포스난스키는 디 애슬레틱에서 이 플레이를 야구 역사상 29번째로 위대한 순간으로 꼽았다. 1997년 시즌 에드먼즈는 타율 .291, 26홈런, 80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 그는 생애 첫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1998년 9월, 지구 선두를 달리던 에인절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에 뒤처지면서 결국 지구 우승을 놓치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에드먼즈는 그 달 타율 .340, 5홈런, 20타점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시즌 후반 탈락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로 일부 팀 동료들의 비판을 받았다. 한 인터뷰에서 에드먼즈는 에인절스가 수학적으로 탈락하더라도 "다음날 자살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에드먼즈는 개인 통산 최다인 15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07, 25홈런, 91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개인 통산 두 번째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1999년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동안, 에드먼즈는 웨이트 트레이닝 중 오른쪽 어깨의 관절와순이 찢어졌는데, 이는 몇 년 전부터 앓고 있던 부상이 악화된 것이었다. 그는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고, 시즌 전반기 동안 결장했다. 이 수술 외에도, 일부 팀 동료들이 에드먼즈의 무심하고 무시하는 태도에 반감을 품으면서 클럽하우스 내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에인절스가 1999시즌 이후 에드먼즈를 재영입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팀의 신입 선수였던 모 본은 에드먼즈와 아직 한 번도 함께 경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에드먼즈는 1999년 8월 2일 지명타자로 복귀하여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4타수 2안타 12루타를 기록했다. 그는 8월 7일 중견수로 복귀했다. 단축된 1999시즌을 55경기에서 타율 .250, 5홈런, 23타점으로 마쳤다.
2.2. St. Louis Cardinals (2000-2007)
에드먼즈는 200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된 후,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뛰어난 공격력과 수비력을 과시했다. 특히 그는 여러 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2004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의 극적인 활약과 2006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성공을 이끌었다.
2.2.1. Immediate production and All-Star selections (2000-2003)
2000년 3월 23일, 에인절스는 에드먼즈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2루수 애덤 케네디와 투수 켄 보튼필드를 받고 트레이드했다. 5일 전, 에인절스의 단장 빌 스톤맨은 에드먼즈에게 트레이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카디널스가 케네디를 영입할 수 있게 되면서 계획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에드먼즈는 2000년 4월 3일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카디널스 데뷔전을 치렀고, 3타수 무안타 2볼넷을 기록했다. 다음 날 카디널스 선수로서 첫 안타, 홈런, 타점을 기록했다. 첫 50경기 동안 에드먼즈는 타율 .371, 16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개인 통산 두 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부상당한 켄 그리피 주니어 대신 선발로 출전하여 데이비드 웰스를 상대로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에드먼즈는 이 해를 타율 .295, 42홈런, 108타점으로 마쳤다. 그는 개인 통산 세 번째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고, 내셔널 리그 최우수 선수상 투표에서 4위를 차지했다. 2000년 포스트시즌에서 에드먼즈는 8경기에서 타율 .361, 3홈런, 12타점을 기록했다.
2001년, 에드먼즈는 타율 .304, 30홈런, 110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2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이는 개인 통산 네 번째 골드 글러브였다. 2001년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에드먼즈는 타율 .235, 2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
2002년, 에드먼즈는 개인 통산 최고 타율인 .311을 기록했으며, 28홈런, 83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3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며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수상 기록을 세웠다. 2002년 포스트시즌에서 에드먼즈는 8경기에서 타율 .355, 2홈런, 6타점을 기록했다.
2003년, 에드먼즈는 개인 통산 세 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올스타 휴식기까지 그는 타율 .303, 28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에드먼즈는 올스타전에 중견수로 선발 출전하여 2번 타순에 배치되었고, AL 선발 에스테반 로아이자를 상대로 1회에 단타를 치며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올스타 휴식기 이후 에드먼즈는 타율 .214, 11홈런, 22타점으로 부진했다. 그는 시즌을 타율 .275, 39홈런, 89타점으로 마쳤다. 그는 4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며 개인 통산 여섯 번째 수상 기록을 세웠다.
2.2.2. Postseason success and World Series championship (2004-2007)
2004년 시즌은 에드먼즈에게 통계적으로 최고의 시즌 중 하나였다. 그는 타율 .301, 장타율 .643, 42홈런, 111타점을 기록했으며, 타율을 제외한 모든 기록이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그 결과 그는 실버 슬러거 상과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고, 내셔널 리그 MVP 투표에서 5위를 차지했다. 2004년 7월 19일 시카고 컵스와 카디널스의 리글리 필드 경기에서 투수 카를로스 삼브라노는 에드먼즈에게 공을 던졌다가 퇴장당했다. 삼브라노는 에드먼즈가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 때 그에게 소리를 질렀고, 이로 인해 5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에드먼즈는 앨버트 푸홀스와 스콧 롤렌과 함께 2004년의 뛰어난 시즌으로 "MV3"라는 별명을 얻었다. 에드먼즈는 2004년 비디오 게임 MLB 슬러그페스트의 표지 모델이 되었다. 에드먼즈 경력의 결정적인 순간은 2004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나왔는데, 6차전에서 12회말 끝내기 홈런을 쳐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7차전에서는 에드먼즈가 중견수에서 환상적인 수비 플레이를 펼쳐 카디널스가 페넌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005년, 에드먼즈는 타율 .263, 29홈런, 89타점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네 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2005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에서 에드먼즈는 8회에 필 쿠지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에드먼즈는 나중에 쿠지에게 "창피를 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으며, 쿠지가 욕설로 반응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논란이 없었다. 2005년 포스트시즌 9경기에서 에드먼즈는 타율 .267, 1홈런, 1타점, 32루타를 기록했다.
2006년 어머니날, 에드먼즈는 수잔 G. 코멘 유방암 재단을 돕기 위해 핑크색 야구 배트를 사용한 50명 이상의 타자 중 한 명이었다. 2006년 시즌 후반, 에드먼즈는 수비에 문제를 겪기 시작했고 이는 세인트루이스에서의 남은 기간 동안 그를 괴롭혔다. 6월 21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홈런성 타구를 잡으려다 U.S. 셀룰러 필드의 외야 담장에 충돌했다. 이후 몇 주 동안 간헐적으로 메스꺼움, 현기증, 시야 흐림 증상이 나타났고, 특히 다이빙 시도 시 증상이 심해졌다. 충돌 두 달 후, 그는 외상 후 뇌진탕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2006년 포스트시즌에서 에드먼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1982년 이후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으며, 16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여 2홈런 포함 총 13안타를 기록했다.
2007년 117경기에서 타율 .252, 12홈런, 53타점을 기록했다.
2.3. Later career and retirement (2008-2011)
에드먼즈는 카디널스를 떠난 후 여러 팀을 거치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 시기를 보냈고, 결국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했다.
2.3.1. San Diego Padres and Chicago Cubs (2008)
2007년 12월 14일, 카디널스는 에드먼즈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하고, 그 대가로 유망주 데이비드 프리즈를 영입했다. 이 거래의 일부로 카디널스는 에드먼즈의 2008년 연봉 일부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에드먼즈가 카디널스에서 기록한 241개의 홈런은 구단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2008년 5월 9일, 파드리스는 에드먼즈가 90타수에서 1홈런, 타율 .178만을 기록하자 그를 방출했다.

2008년 5월 14일, 왼손 타자가 필요했던 시카고 컵스는 에드먼즈와 1년 계약을 맺었으며, 컵스는 최저 연봉만 지불했다. 그는 다음 날 전 소속팀인 파드리스를 상대로 선발 출전하여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에드먼즈는 처음에는 시카고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컵스에 합류한 후 첫 6주 동안 타율 .300 이상, 8홈런을 기록했다. 2008년 6월 21일, 에드먼즈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4회에 두 개의 홈런을 쳤다.
에드먼즈는 2009년에 선수로 뛰지 않았는데, 그가 만족할 만한 제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10년 1월, 그는 메이저리그 복귀 의사를 밝혔으며, "지난해는 실수였다. 어디든 뛰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2.3.2. Milwaukee Brewers and Cincinnati Reds (2010)
2010년 1월 28일, 에드먼즈는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브루어스는 3월 25일 그를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추가했다.
2010년 8월 9일, 에드먼즈는 크리스 디커슨을 상대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다. 논-웨이버 트레이드 마감일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에드먼즈와 디커슨 모두 웨이버를 통과해야 했다.
2.3.3. Retirement
2011년 2월 4일, 에드먼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2010년 시즌 동안 겪었던 아킬레스건 염좌 증상이 계속되자 2011년 2월 18일 공식적으로 야구 선수 은퇴를 발표했다.
3. Broadcasting career
2013년 3월 14일, 폭스 스포츠 미드웨스트 (현 Bally Sports Midwest)는 에드먼즈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방송팀에 합류시켰다고 발표했다. 에드먼즈는 처음에는 카디널스 라이브 경기 전후 분석가로 활동했다. 그는 4년 동안 FSM에서 해설을 맡았던 전 카디널스 투수 캘 엘드레드의 후임으로, 엘드레드는 카디널스 구단의 특별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부터 에드먼즈는 "카디널스 라이브" 스튜디오 역할과 특정 경기의 해설자로 번갈아 활동하고 있다.
에드먼즈는 언젠가 카디널스 구단 소유주 그룹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밝히기도 했다.
4. Personal life
짐 에드먼즈는 여러 차례 결혼을 통해 자녀를 두었으며, 선수 은퇴 후에는 사업 활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현재는 세인트루이스 외곽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4.1. Family and relationships
에드먼즈는 첫 번째 부인인 리 앤 호튼과의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다. 리 앤 호튼은 2015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두 번째 부인인 앨리슨 제인 라스키와의 사이에서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을 두었으며, 이 결혼 생활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지속되었다.
에드먼즈는 2014년 10월 24일 메건 오툴 킹과 결혼했다. 그녀는 2015년 오렌지 카운티의 진짜 주부들 캐스트에 합류했으며, 에드먼즈도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들은 2016년 추수감사절에 딸을 맞이했고, 2018년 6월 5일에는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2019년 10월 25일, 결혼 5주년 다음 날, 에드먼즈는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에드먼즈는 2022년 코트니 오코너와 결혼했다.
에드먼즈와 그의 가족은 세인트루이스 외곽 지역인 프론테낵, 미주리주에 거주하고 있다.
4.2. Business ventures
에드먼즈는 사업 파트너인 마크 윈필드와 함께 여러 레스토랑을 열었다. 둘은 에드먼즈가 카디널스에서 뛰던 2007년에 첫 레스토랑인 짐 에드먼즈 15 스테이크하우스를 열었지만, 2013년 9월에 문을 닫았다.
몇 달 뒤, 그들은 같은 장소에 더 프리싱트라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었지만, 이 또한 2015년 5월에 문을 닫았다.
2015년에는 커크우드, 미주리주에 BBQ 스타일 레스토랑인 윈필즈 개더링 플레이스를 열었지만, 2016년 7월 2일 폐업했다.
5. Awards and honors

에드먼즈의 수비 능력은 메이저리그 코치들과 감독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1997년부터 2005년까지 9시즌 중 8시즌 동안 롤링스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했다.
ESPN의 롭 나이어는 에드먼즈를 21세기 첫 10년 동안의 상위 100명 선수 중 12위에 올렸는데, 이는 그의 타격 생산성과 중견수로서의 골드 글러브급 수비 기술 때문이었다.
2014년 8월 8일, 에드먼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2015년 11월 9일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후보로 발표되었으나, 2016년 1월 6일 첫 해 자격에서 2.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투표 용지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