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윌리엄 로저 클레멘스William Roger Clemens영어는 1962년 8월 4일 태어난 미국의 전직 야구 투수로, '로켓Rocket영어'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메이저 리그(MLB)에서 24시즌 동안 활약했으며, 특히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클레멘스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통산 354승, 3.12의 평균자책점, 역대 3위에 해당하는 4,672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11차례 MLB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역사상 그 누구보다 많은 7개의 사이 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클레멘스는 1984년 레드삭스에서 데뷔하여 12년간 팀의 핵심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1986년에는 아메리칸 리그(AL) 사이 영 상과 AL 최우수 선수상(MVP), 올스타전 MVP를 동시에 수상했으며, 한 경기 20탈삼진이라는 MLB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1996년 두 번째 20탈삼진 경기를 기록한 후 자유계약선수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합류했으며, 두 시즌 동안 투수 삼관왕과 사이 영 상을 두 차례 수상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9년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어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2003년에는 300승과 4,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최초의 투수가 되었습니다. 이후 2004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은퇴 후 복귀하여 7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양키스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뒤 은퇴했습니다. 그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350승 이상과 4,5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투수입니다.
클레멘스의 경력 후반기는 미첼 보고서에서 제기된 단백동화 스테로이드 사용 의혹으로 얼룩졌습니다. 그는 미국 의회에서 이 의혹을 부인했으나, 이후 위증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2012년 최종적으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러한 논란은 그의 명예의 전당 입회에 큰 영향을 미쳐 자격 10년 동안 입회에 실패했습니다. 그의 통계적 업적은 뛰어나지만, 약물 관련 논란은 스포츠의 진정성과 그의 유산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2. Early Life and Amateur Career
2.1. Birth and Family Background
로저 클레멘스는 1962년 8월 4일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빌Bill영어과 베스 리 클레멘스Bess Lee Clemens영어 사이에서 다섯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독일인 후손으로, 그의 증조부 조셉 클레멘스Joseph Clemens영어는 1880년대에 이민을 왔습니다. 클레멘스의 부모는 그가 갓난아기였을 때 헤어졌고, 그의 어머니는 곧 우디 부허Woody Booher영어와 재혼했는데, 클레멘스는 그를 자신의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부허는 클레멘스가 아홉 살 때 사망했으며, 클레멘스는 다른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유일하게 부러움을 느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1977년까지 오하이오주 밴달리아에서 살았고, 이후 대부분의 고등학교 시절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보냈습니다.
2.2. High School and College Baseball
클레멘스는 Spring Woods High School에서 오랜 기간 헤드 코치였던 찰스 마이오라나Charles Maiorana영어의 지도를 받으며 야구를 했습니다. 그는 또한 미식축구와 농구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스카우트되었지만,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1981년 San Jacinto College North에서 대학 야구 경력을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9승 2패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 진학하여 두 시즌 동안 올 아메리칸 선수로 25승 7패를 기록했습니다. 1983년에는 롱혼스가 칼리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마운드에 있었습니다. 그는 텍사스 대학교에서 야구 유니폼 번호가 영구 결번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미국 최고의 대학 야구 선수에게 수여되는 Rotary Smith Award가 Roger Clemens Award로 이름이 변경되어 최고의 투수를 기리게 되었습니다. 텍사스 대학 시절, 클레멘스는 35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NCAA 기록을 세웠는데, 이 기록은 2001년 저스틴 포프에 의해 깨질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3. Professional Career
3.1. Draft and Minor League Years
뉴욕 메츠는 1981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12라운드에서 클레멘스를 지명했지만, 그는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1983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의해 1983년 MLB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9번째로 지명되었고, 마이너 리그 시스템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1983년에 클레멘스는 두 개의 다른 리그와 두 개의 다른 레벨에서 두 개의 다른 팀에서 투구했습니다. 그는 플로리다 주 리그의 A-레벨 Winter Haven Red Sox와 AA 레벨 Eastern League의 New Britain Red Sox에서 뛰었습니다. 윈터 헤이븐에서 4경기를 모두 선발로 등판하여 3완투 1완봉을 기록했고, 홈런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3승 1패, 1.24의 평균자책점, 29이닝 동안 36탈삼진을 기록했으며, WHIP는 0.759였습니다. 뉴 브리튼에서는 7경기를 모두 선발로 등판하여 1완봉승을 기록했고, 홈런 1개를 허용했습니다. 그는 4승 1패, 1.38의 평균자책점, 52이닝 동안 59탈삼진을 기록했으며, WHIP는 0.827이었습니다. 1983년 그의 마이너 리그 통산 기록은 11경기 선발 등판, 4완투 2완봉, 1홈런 허용이었습니다. 그는 7승 2패, 1.33의 평균자책점, 81이닝 동안 95탈삼진, WHIP는 0.802를 기록했습니다.
클레멘스는 1984년 시즌을 인터내셔널 리그 AAA 레벨 Pawtucket Red Sox에서 시작했습니다. 7경기 중 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3완투 1완봉을 기록했습니다. 2승 3패와 1.136의 WHIP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평균자책점은 1.93이었고, 46과 3분의 2이닝 동안 5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3.2. Boston Red Sox (1984-1996)

1984년 5월 15일, 클리블랜드 스타디움에서 클레멘스는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습니다. 진단되지 않은 관절순 파열로 인해 그의 경력이 일찍 끝날 위기에 처했으나, 제임스 앤드루스 박사의 성공적인 관절경 수술을 받았습니다.
1986년 4월 29일 펜웨이 파크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3대1로 승리한 경기에서, 클레멘스는 개인 최다인 20탈삼진을 기록하며 MLB 역사상 9이닝 경기에서 20탈삼진을 달성한 최초의 투수가 되었습니다. 이 경기 이후 클레멘스는 'K의 제왕Lord of the K's영어'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클레멘스 외에 케리 우드와 맥스 슈어저만이 이 기록에 필적합니다. (랜디 존슨Randy Johnson영어은 2001년 5월 8일 9이닝 동안 20탈삼진을 기록했지만, 경기가 연장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9이닝 경기 기록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톰 체니는 어떤 경기에서도 21탈삼진을 기록하며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클레멘스는 1986년 올스타전(그의 고향 휴스턴 애스트로돔에서 열림)에 선발 등판하여 3이닝을 완벽하게 던지고 2개의 탈삼진을 잡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7개의 사이 영 상 중 첫 번째를 수상했습니다. 1986년 클레멘스는 24승 4패, 2.48의 평균자책점, 23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행크 애런이 투수는 MVP 자격이 없다고 말하자, 클레멘스는 "그가 아직 뛰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선수인지 보여주기 위해 그의 머리를 빈볼로 깨버렸을 것이다"라고 응수했습니다. 클레멘스는 1971년 비다 블루 이후 리그 MVP를 수상한 유일한 선발 투수였으며, 이는 2011년 저스틴 벌랜더가 수상하기 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클레멘스는 자신을 '투구하는 사람thrower영어'에서 '투수pitcher영어'로 바꾼 계기가 1986년 톰 시버가 레드삭스에서 보낸 시즌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1986년 ALCS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상대한 클레멘스는 1차전에서 부진한 투구를 보였습니다. 4차전 9회말에는 3대1 리드를 보스턴 불펜이 날려버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지만, 7차전에서 강한 투구를 펼쳐 보스턴의 시리즈 승리를 확정 지었습니다. 이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은 클레멘스의 첫 포스트시즌 승리였습니다. 그는 13년이 지나서야 두 번째 승리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5차전 승리 후 보스턴은 뉴욕 메츠와의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3승 2패로 앞서고 있었고, 클레멘스는 셰이 스타디움에서 6차전 선발 등판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5일 휴식 후 등판한 클레멘스는 4이닝 동안 무안타를 던지며 8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강한 시작을 보였습니다. 8회초, 보스턴이 3대2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존 맥나마라 감독은 로저 클레멘스 대신 신인 마이크 그린웰을 대타로 기용했습니다. 처음에는 클레멘스가 손가락에 생긴 물집 때문에 교체되었다고 알려졌으나, 클레멘스와 맥나마라 모두 이를 부인했습니다. 클레멘스는 1986년 포스트시즌에 대한 MLB 네트워크 프로그램에서 밥 코스타스에게 맥나마라가 자신이 더 던지고 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맥나마라는 코스타스에게 클레멘스가 경기에서 "빠져달라고 졸랐다"고 말했습니다. 메츠는 6차전과 7차전을 모두 이기며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레드삭스는 1987년에 78승 84패로 부진했지만, 클레멘스는 20승 9패, 2.97의 평균자책점, 256개의 탈삼진, 7개의 완봉승을 기록하며 두 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1979년과 1980년에 양키스에서 20승을 거둔 토미 존 이후 처음으로 AL에서 두 시즌 연속 20승을 거둔 투수였습니다. 보스턴은 1988년과 1990년에 성공적으로 재기하며 매년 AL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지만, 두 번의 ALCS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게 스윕당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포스트시즌 실패는 1990년 ALCS 마지막 경기 2회에 심판 테리 쿠니와 볼 스트라이크 판정으로 논쟁하다 퇴장당한 것으로, 이는 애슬레틱스의 레드삭스 4경기 스윕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1991년 시즌 첫 5경기 출장 정지와 1.00 만 USD의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클레멘스는 1988년 아메리칸 리그에서 291개의 탈삼진과 개인 최다인 8개의 완봉승을 기록했습니다. 1988년 9월 10일, 펜웨이 파크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1피안타 경기를 펼쳤습니다. 8회 1사 후 데이브 클라크의 단타가 클레멘스가 허용한 유일한 안타였습니다. 1989년 4월 13일 클리블랜드와의 9대1 승리 경기에서, 클레멘스는 2회 만루 상황에서 브룩 제이코비를 삼진으로 잡으며 통산 1,000번째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1990년 AL 사이 영 상 투표에서는 밥 웰치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웰치보다 평균자책점(1.93대 2.95), 탈삼진(209대 127), 볼넷(54대 77), 허용 홈런(7대 26), WAR(10.4대 2.9)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2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1991년 18승 10패, 2.62의 평균자책점, 241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세 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1989년 6월 21일, 클레멘스는 새미 소사의 609개 홈런 중 첫 번째를 허용했습니다. 1996년 9월 18일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4대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클레멘스는 두 번째 20탈삼진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 두 번째 20K 경기는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로서의 마지막 세 경기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타이거스는 그에게 삼진을 당한 모든 타자의 사인이 담긴 야구공을 선물했습니다.

레드삭스는 1996년 시즌 이후 클레멘스와 재계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는 AL에서 257개의 탈삼진으로 리그를 이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10승만을 기록했습니다. 단 댄 듀켓 단장은 "레드삭스 구단 역사상 선수에게 제시된 가장 많은 돈"을 제안했지만, 클레멘스는 팀을 떠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습니다. 듀켓의 1996년 "황혼기twilight영어" 발언은 클레멘스의 보스턴 이후 성공과 함께 회자되었고, 듀켓은 스타 투수를 놓아준 것으로 비난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클레멘스는 레드삭스를 떠난 후 남은 경력 동안 162승 73패를 기록했습니다. 클레멘스는 레드삭스에서 192승과 38개의 완봉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사이 영과 함께 구단 기록과 동률이며, 2,590개의 탈삼진으로 팀 역대 최다 탈삼진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보스턴에서 그의 포스트시즌 통산 기록은 1승 2패, 3.88의 평균자책점, 56이닝 동안 45탈삼진, 19볼넷이었습니다. 클레멘스가 1996-97 오프시즌에 팀을 떠난 이후로 어떤 레드삭스 선수도 그의 등번호 21번을 달지 않았습니다.
3.3. Toronto Blue Jays (1997-1998)
클레멘스는 1996년 시즌 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4000.00 만 USD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펜웨이 파크에서 첫 선발 등판했을 때, 그는 8이닝 동안 4피안타 1자책점만을 허용했습니다. 24개의 아웃 중 16개가 삼진이었고, 그를 상대한 모든 타자가 적어도 한 번은 삼진을 당했습니다. 마지막 이닝을 마치고 마운드를 떠날 때, 그는 구단주 스탠드를 향해 분노에 찬 눈빛으로 응시했습니다.
클레멘스는 블루제이스에서 두 시즌 동안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고, 두 시즌 모두 투수 삼관왕과 사이 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1997년: 21승 7패, 2.05 평균자책점, 292탈삼진; 1998년: 20승 6패, 2.65 평균자책점, 271탈삼진). 1998년 시즌 후 클레멘스는 다음 해에 블루제이스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며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그는 우승을 원한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3.4. New York Yankees (1999-2003)
1999년 시즌 전, 블루제이스는 클레멘스를 데이비드 웰스, 호머 부시, 그레이엄 로이드를 받는 조건으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그의 오랜 등번호 21번은 동료 폴 오닐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클레멘스는 처음에는 12번을 달았고, 시즌 중반에 22번으로 변경했습니다.
1999년 정규 시즌 동안 클레멘스는 14승 10패, 4.6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두 번의 승리를 기록했지만, 1999년 ALCS 3차전에서 레드삭스의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와의 맞대결에서 패했습니다. 이는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양키스의 유일한 패배였습니다. 클레멘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한 양키스의 4차전 승리 경기에서 7과 3분의 2이닝 동안 1점만을 내주며 승리했습니다.
클레멘스는 2000년 시즌에도 강세를 이어갔으며, 정규 시즌 13승 8패, 3.70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클레멘스는 오클랜드와의 ALDS에서 두 경기를 패했지만, 양키스는 나머지 세 경기를 승리하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습니다。 시애틀과의 ALCS 4차전에서 클레멘스는 1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15개의 탈삼진을 잡아 ALCS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0년 월드 시리즈 2차전에서는 뉴욕 메츠를 상대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2001년, 클레멘스는 MLB 역사상 최초로 시즌을 20승 1패(최종 20승 3패)로 시작한 투수가 되었고, 여섯 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클레멘스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2001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 양키스 선발로 등판하여 6이닝 동안 1실점만 내주며 커트 실링과 대등하게 맞섰습니다. 다이아몬드백스는 9회에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2003년 초, 클레멘스는 시즌 종료 후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2003년 6월 13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투구하던 클레멘스는 통산 300승과 4,000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며, 역사상 두 가지 이정표를 한 경기에서 모두 달성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300승은 네 번째 시도 만에 달성했습니다. 이전 두 번의 시도에서는 양키스 불펜이 그의 승리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그는 300승을 기록한 역대 21번째 투수이자 4,000탈삼진을 기록한 역대 세 번째 투수였습니다. (놀런 라이언, 랜디 존슨, 스티브 칼턴이 클레멘스보다 삼진 수가 많습니다.) 이 이정표를 달성했을 때 그의 통산 기록은 300승 155패였습니다. 클레멘스는 시즌을 17승 9패, 3.91의 평균자책점으로 마쳤습니다.
클레멘스의 2003년 시즌 말은 박수갈채를 받는 공개적인 작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AL 각 구장 마지막 경기들은 특별한 관심을 받았는데, 특히 그의 원정팀이자 오랜 라이벌인 레드삭스의 펜웨이 파크에서의 마지막 정규 시즌 등판에서는 그를 향한 기립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이 광경은 양키스가 2003년 ALCS에서 레드삭스와 맞붙게 되면서 클레멘스가 자신의 원래 홈구장에서 두 번째 '마지막 등판'을 하게 되면서 반복되었습니다.) 조 토레 감독의 전통에 따라 클레멘스는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양키스를 이끌도록 선정되었습니다. 클레멘스는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월드 시리즈에서 한 번 선발 등판했고, 7이닝 후 3대1로 뒤진 채 마운드를 내려왔을 때, 말린스 덕아웃에서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3.5. Houston Astros (2004-2006)

클레멘스는 2004년 1월 12일 그의 고향 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년 계약을 맺고 은퇴를 번복했으며, 절친한 친구이자 전 양키스 팀 동료인 앤디 페팃과 합류했습니다. 2004년 5월 5일, 클레멘스는 통산 4,137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며 역대 2위(놀런 라이언에 이어)에 올랐습니다. 그는 내셔널 리그 올스타팀의 선발 투수로 지명되었지만, 5피안타 6실점(알폰소 소리아노의 3점 홈런 포함)을 허용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클레멘스는 시즌을 18승 4패로 마쳤고, 42세의 나이로 사이 영 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고령 사이 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게일로드 페리, 페드로 마르티네스, 랜디 존슨과 함께 양대 리그에서 사이 영 상을 수상한 6명의 투수 중 한 명이 되었고, 이후 로이 할러데이와 맥스 슈어저도 이 기록에 합류했습니다. 클레멘스는 2004년 NLCS 7차전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6이닝 4실점을 허용하며 애스트로스의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잘 투구했지만 6회에 지쳐 4실점을 모두 허용했습니다。
클레멘스는 2005년 시즌 전에도 은퇴를 연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애스트로스가 연봉 조정을 제안하자, 애스트로스는 1350.00 만 USD를 제안했고, 클레멘스는 기록적인 2200.00 만 USD를 요구했습니다. 2005년 1월 21일, 양측은 1년 1800.00 만 USD에 합의하여 조정 절차를 피했습니다. 이 계약은 클레멘스에게 MLB 역사상 투수로서 가장 높은 연봉을 안겨주었습니다.

클레멘스의 2005년 시즌은 그가 기록한 최고의 시즌 중 하나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의 1.87의 평균자책점은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 가장 낮았고, 그의 22시즌 경력 중 가장 낮았으며, 1995년 그레그 매덕스 이후 내셔널 리그 투수 중 가장 낮은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13승 8패로 시즌을 마쳤는데, 승리 수가 적었던 것은 주로 득점 지원이 메이저 리그 최하위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애스트로스는 그가 등판한 경기에서 평균 3.5점만을 득점했습니다. 애스트로스는 클레멘스의 32번의 선발 등판 중 9번의 경기에서 완봉패를 당했고, 10번째 경기에서는 클레멘스가 교체된 후에야 득점했습니다. 애스트로스는 클레멘스의 선발 등판 경기 중 5경기를 1대0으로 패했습니다. 4월에는 클레멘스가 3경기 연속 무실점 투구를 했지만, 애스트로스는 이 세 경기를 모두 연장전에서 1대0으로 패했습니다.
클레멘스는 9월 15일 어머니의 사망 소식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005년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클레멘스는 4,500번째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10월 9일, 클레멘스는 1984년 이후 첫 구원 등판을 했습니다. 그는 15회에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후 3이닝을 던져 승리 투수가 되었고, 애스트로스는 NLDS 4차전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물리쳤습니다. 이 경기는 18이닝으로 MLB 역사상 가장 긴 포스트시즌 경기였습니다. 클레멘스는 2005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단 2이닝만을 소화했고, 애스트로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스윕당했습니다. 이는 애스트로스의 첫 월드 시리즈 진출이었습니다. 클레멘스는 9월부터 그의 경기력을 제한했던 햄스트링 부상을 악화시킨 상태였습니다.
클레멘스는 월드 시리즈 이후 다시 은퇴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2006년 3월에 열릴 초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을 대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회에서 8과 3분의 2이닝 동안 1승 1패, 2.08의 평균자책점, 1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미국이 탈락한 멕시코와의 2라운드 경기에서 투구한 후, 클레멘스는 메이저 리그 복귀를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5월 31일, 또다시 오랜 기간의 추측 끝에 클레멘스가 2006년 시즌 남은 기간 동안 애스트로스에서 뛰기 위해 세 번째 은퇴 번복을 할 것이라고 발표되었습니다. 클레멘스는 2200.00 만 USD (그의 등번호 22번) 상당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클레멘스는 풀 시즌을 뛰지 않았기 때문에, 약 1225.00 만 USD를 받았습니다. 클레멘스는 2006년 6월 22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복귀했으나, 상대팀의 신인 돌풍 프란시스코 리리아노에게 4대2로 패했습니다. 2년 연속으로 그의 승리 수는 경기력에 미치지 못했으며, 그는 7승 6패, 2.30의 평균자책점, 1.04의 WHIP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선발 등판에서 평균 6이닝을 채 던지지 못했으며 8회까지 투구한 적은 없었습니다.
3.6. Return to the Yankees (2007)

클레멘스는 2007년 5월 6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 7회말 도중 예상치 못하게 구단주 박스에 나타나 짧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그들이 저를 텍사스에서 데려왔습니다. 다시 돌아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곧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동시에 클레멘스가 양키스 로스터에 재합류했으며, 1년 동안 2800.00 만 USD의 비례 계약, 즉 한 달에 약 470.00 만 USD에 합의했다고 발표되었습니다. 계약 기간 동안 그는 총 1870.00 만 USD를 벌어들일 예정이었습니다. 이는 그 시즌 한 경기당 100.00 만 USD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클레멘스는 2007년 6월 9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고, 6이닝 동안 7개의 탈삼진과 3실점을 허용하며 승리했습니다. 6월 21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5회초에서 단타를 치면서 클레멘스는 뉴욕 양키스 선수 중 최고령으로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44세 321일). 6월 24일, 클레멘스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1이닝을 구원 등판했습니다. 그의 이전 정규 시즌 구원 등판 이후 22년 341일 만의 일로,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긴 구원 등판 간격이었습니다. 7월 2일, 클레멘스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8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만을 허용하며 통산 350승을 달성했습니다. 클레멘스는 라이브볼 시대에서 선수 생활 전체를 보내고 350승을 달성한 3명의 투수 중 한 명입니다. 나머지 두 명은 워런 스판 (그의 350승 당시 포수는 클레멘스의 350승 당시 감독이었던 조 토레였습니다)과 2008년에 350승을 달성한 그레그 매덕스입니다. 그의 마지막 정규 시즌 등판은 펜웨이 파크에서 레드삭스를 상대로 한 선발 등판이었는데, 6이닝 동안 2피안타 1비자책점을 허용하고 노 디시전no decision영어을 기록했습니다. 클레멘스는 2007년 정규 시즌을 6승 6패, 4.18의 평균자책점으로 마쳤습니다.
클레멘스는 햄스트링 부상이 악화되어 2007년 ALDS 3차전 3회에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투구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빅토르 마르티네스를 삼진 처리했고, 필 휴스로 교체되었습니다. 양키스 감독 조 토레는 그의 부상으로 클레멘스를 로스터에서 제외하고 론 빌론으로 교체했습니다. 양키스에서 클레멘스의 포스트시즌 통산 기록은 7승 4패, 2.97의 평균자책점, 102이닝 동안 98탈삼진, 35볼넷이었습니다.
4. Pitching Style
클레멘스는 특히 경력 초반에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전형적인 파워 피처였습니다. 클레멘스는 "두 가지 구질을 던졌다: 시속 158 km/h (98 mph)의 패스트볼과 강력한 브레이킹볼"을 던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3세의 클레멘스는 그저 뒤로 젖히고 타자들을 지나쳐 공을 던졌을 뿐"이었습니다. 경력 후반에는 스플릿핑거 패스트볼을 개발했습니다. 클레멘스는 이 구질을 "미스터 스플리티Mr. Splitty영어"라고 농담 삼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 은퇴할 무렵, 그의 포심 패스트볼은 시속 146 km/h (91 mph)에서 151 km/h (94 mph) 사이였습니다. 그는 또한 투심 패스트볼, 시속 80대 중반의 슬라이더, 스플리터, 그리고 가끔 커브볼을 던졌습니다. 클레멘스는 내구성 있는 투수였으며, 아메리칸 리그에서 3번의 완투와 2번의 이닝 선두를 기록했습니다. 클레멘스는 1987년에 18번의 완투를 기록했는데, 이후 어떤 투수도 이 기록에 필적하지 못했습니다. 클레멘스는 또한 탈삼진 투수로도 유명했으며, AL에서 5번의 삼진 선두와 3번의 9이닝 당 탈삼진 선두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현재 메이저 리그 역사상 20탈삼진 경기를 두 번 던진 유일한 투수입니다.
5. Post-Retirement Activities
2012년 8월 20일, 클레멘스는 Atlantic League of Professional Baseball의 Sugar Land Skeeters와 계약했습니다. 그는 2012년 8월 25일 7,724명의 관중 앞에서 브리지포트 블루피시를 상대로 스키터스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50세의 그가 마운드에 선 것은 거의 5년 만이었습니다. 클레멘스는 3과 3분의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전 메이저리거인 조이 개스라이트와 프렌티스 레드먼을 포함하여 2개의 삼진을 잡아냈습니다. 그는 또한 파이리츠, 블루제이스, 자이언츠에서 잠시 뛰었던 루이스 피게로아를 은퇴시켰습니다. 클레멘스는 스키터스의 1대0 승리 경기에서 37개의 공으로 단 1개의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클레멘스는 9월 7일 롱아일랜드 덕스를 상대로 스키터스에서 두 번째 선발 등판을 했습니다. 그의 아들 코비가 포수로 나선 가운데, 그는 4와 3분의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4회 마지막 아웃 카운트로 전 뉴욕 메츠 외야수 티모 페레즈를 은퇴시켰고, 공식 기록원에 의해 승리 투수로 기록되었습니다. 클레멘스의 패스트볼은 시속 142 km/h (88 mph)까지 측정되었으며, 애스트로스는 그 시즌에 그가 팀에 복귀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스키터스에서의 두 번의 등판에 스카우트를 파견했습니다.
로저 클레멘스는 2016년 내셔널 베이스볼 콩그레스 월드 시리즈에 참가하기 위해 24명의 은퇴한 메이저리거와 그의 아들 코비를 포함한 Kansas Stars 팀에 합류했습니다. 이 팀은 캔자스 출신인 애덤 라로시와 네이트 로버트슨이 조직했으며, 클레멘스를 포함하여 팀 허드슨, 로이 오스왈트, J. D. 드루와 같은 11명의 전 올스타들이 참여했습니다. 54번째 생일로부터 단 6일 후인 2016년 8월 10일, 클레멘스는 캔자스 스타스 소속으로 NJCAA 내셔널 팀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습니다. 그는 2와 3분의 2이닝 동안 3실점 1탈삼진을 기록하며 11대10으로 패했습니다. 2019년 8월 22일, 클레멘스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세인트 피터스 필드에서 열린 연례 자선 행사 '애벗 금융 관리 올드타임 야구 경기'에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등판했습니다. 2019년 경기는 2018년 12월 루 게릭 병으로 사망한 오랜 펜웨이 파크 감독 존 웰치John Welch영어를 기리는 ALS 동정적 돌봄 기금 마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로 젊은 대학 선수들을 상대한 클레멘스는 2이닝 무실점 투구를 한 뒤 1루로 포지션을 옮겼습니다.
6. Awards and Recognition
1999년, 그의 많은 활약과 이정표가 아직 남아있을 때, 클레멘스는 '더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위대한 야구 선수 100인 목록에서 53위를 차지했으며, 팬 투표를 통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에 선정되었습니다. 2005년, 업데이트된 '스포팅 뉴스' 목록에서는 클레멘스의 순위가 15위로 상승했습니다.
2005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클레멘스는 7개의 사이 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1986, 1987, 1991, 1997, 1998, 2001년 AL 수상, 2004년 내셔널 리그 수상). 또한 그는 MVP 1회, 투수 삼관왕 2회를 기록했습니다. 2004년 수상으로 그는 게일로드 페리,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함께 양대 리그에서 사이 영 상을 수상한 유일한 투수들이 되었고, 역대 최고령 사이 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Sporting News Pitcher of the Year Award'를 5회 수상했으며, 11회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1986년 올스타 MVP를 수상했습니다.
2006년 10월, 클레멘스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역대 최고" 팀에 선정되었습니다.
2007년 8월 18일, 클레멘스는 양키스 소속으로 1,000번째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두 개의 다른 팀에서 각각 1,000개 이상의 탈삼진을 기록한 9번째 선수입니다. 클레멘스는 레드삭스 소속으로 총 2,590개, 양키스 소속으로 1,0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토론토에서 563개, 휴스턴에서 50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클레멘스는 2014년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9년 6월 21일 포터킷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7. Personal Life
7.1. Family and Relationships

클레멘스는 1984년 11월 24일 데브라 린 갓프리Debra Lynn Godfrey영어(1963년 5월 27일 출생)와 결혼했습니다. 부부에게는 네 아들이 있습니다: 코비 애런, 코리 앨런, 케이시 오스틴, 코디 앨릭-모두 클레멘스의 탈삼진('K's)을 기리기 위해 'K'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코비는 한때 일부 MLB 구단의 마이너 리그 유망주였습니다. 케이시는 텍사스 롱혼스에서 대학 야구를 했습니다. 코디 또한 텍사스 롱혼스에서 대학 야구를 했고, 2022년 5월 3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습니다.
데브라는 한 번은 클레멘스가 다른 팀에서 투구할 때 레드삭스 경기를 떠나야 했는데, 그녀가 받은 야유 때문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댄 쇼네시의 베스트셀러 '밤비노의 저주' 개정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브라는 이 책에서 레드삭스 팬들의 좋지 않은 태도 때문에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팀이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전에 언급된 것입니다).
클레멘스는 공화당 소속이며, 2006년 선거 운동 동안 텍사스 하원의원 테드 포에게 돈을 기부했습니다.
데브라는 2003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수영복 특집'에서 남편과 함께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로저는 저지를 풀고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2006년 2월 27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훈련을 위해 로저는 애스트로스와 그의 아들 마이너 리그 팀 간의 시범 경기에 등판했습니다. 코비는 첫 타석에서 아버지의 공을 상대로 홈런을 쳤습니다. 다음 타석에서 로저는 코비에게 거의 맞을 뻔한 위협구를 던졌습니다. 코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웃으며 말했습니다.
7.2. Public Appearances and Media
클레멘스는 여러 영화와 텔레비전 에피소드에 본인 역으로 출연했으며, 가끔 영화에서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심슨 가족' 시즌 3 에피소드("Homer at the Bat") 출연일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그는 스프링필드 원자력 발전소 소프트볼 팀에 영입되지만, 실수로 최면에 걸려 닭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대사 외에도 클레멘스는 닭 소리를 직접 냈습니다. 클레멘스는 또한 TV 쇼 '희망 & 믿음', '스핀 시티', '아리시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본인 역으로 특별 출연했으며, 영화 'Anger Management'에도 출연했고, 영화 'Kingpin'에서는 스키드마크Skidmark영어라는 캐릭터로 짧게 등장합니다. 그는 또한 영화 'Boyhood'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으로 실제 경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1994년 영화 'Cobb'에서 미확인 필라델피아 A's 투수로 출연했습니다. 2003년에는 MLB 선수들인 켄 그리피 주니어, 데릭 지터, 새미 소사와 함께 Armour 핫도그 광고 캠페인의 일부였습니다. 2005년부터 클레멘스는 텍사스 기반 슈퍼마켓 체인 H-E-B의 많은 광고에도 출연했습니다. 2007년에는 '호기심 해결사'의 야구 관련 에피소드("Baseball Myths")에 출연했습니다. 그는 또한 은퇴 번복을 풍자하는 싱귤러 광고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는 아내 데브라 갓프리Debra Godfrey영어에게 전화하고 있었는데, 통화가 끊기자 양키스로 돌아왔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1987년에 피터 개먼스와 함께 쓴 초기 자서전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 이야기Rocket Man: The Roger Clemens Story영어'를 출간했습니다. 클레멘스는 또한 남부 텍사스에 있는 챔피언 자동차 딜러십의 대변인이기도 합니다. 2009년 4월, 제프 펄먼의 무단 전기 '지구로 추락한 로켓: 로저 클레멘스와 야구 불멸에 대한 분노The Rocket that Fell to Earth-Roger Clemens and the Rage for Baseball Immortality영어'가 출간되었는데, 이는 그의 어린 시절과 초기 경력에 초점을 맞추고 마이크 피아자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5월 12일, 클레멘스는 뉴욕 '데일리 뉴스'의 네 명의 탐사 보도 기자가 심층적으로 조사한 '아메리칸 아이콘: 로저 클레멘스의 몰락과 미국 야구에서의 스테로이드의 부상American Icon: The Fall of Roger Clemens and the Rise of Steroids in America's Pastime영어'이라는 책을 비난하기 위해 긴 침묵을 깼습니다. 클레멘스는 ESPN의 '마이크 앤 마이크Mike and Mike영어' 쇼에 출연하여 그 책을 "쓰레기"라고 불렀지만, '뉴욕 타임스'의 미치코 가쿠타니Michiko Kakutani영어는 이 책을 "매우 흥미롭다"고 평하며 밥 우드워드의 작품과 비교했습니다.
8. Controversies and Legal Issues
8.1. On-Field Behavior and Public Comments
클레멘스는 타자 가까이로 공을 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수라는 평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클레멘스는 1995년에 단 한 번 리그에서 몸에 맞는 볼 선두를 기록했지만, 다른 여러 시즌에서도 상위권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경력 초기에 더 두드러졌고 이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2000년 ALCS 경기에서 그는 미래의 팀 동료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쓰러뜨린 후 그와 논쟁을 벌였고,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 감독이자 전 양키스 선수였던 루 피넬라는 클레멘스를 "헤드헌터headhunter영어"라고 불렀습니다. 그해 초 마이크 피아자에게 빈볼을 던진 사건과 2000년 월드 시리즈에서 부러진 배트를 피아자에게 던진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클레멘스의 까다롭고 unapologetic한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2009년, 전 감독 시토 개스턴은 클레멘스를 "이중적인 말double-talker영어"과 "완전히 재수 없는 놈complete asshole영어"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클레멘스는 2020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몸에 맞는 볼 역대 14위를 기록했지만, 125타자당 1명의 몸에 맞는 볼 허용률로 놀런 라이언, 저스틴 벌랜더, 그레그 매덕스와 같은 시대 다른 투수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클레멘스는 공항에서 자신의 짐을 직접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한 불평이나 펜웨이 파크를 수준 미달 시설이라고 비판하는 등 솔직한 발언으로 수년간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6년 4월 4일, 클레멘스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기간 동안 일본과 한국 팬들의 헌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모욕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세탁소가 문을 열지 않았다, 모두 일본과 한국 경기장에 있었다." 경력 후반에는 그의 연례적인 "은퇴"와 "복귀"가 반복되면서 디바 같은 행동이라는 평판이 되살아났습니다.
클레멘스는 그와 계약하는 팀으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휴스턴에서 뛰는 동안 클레멘스는 원정 경기에 투구할 예정이 아니면 팀과 함께 이동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2007년 뉴욕 양키스와의 계약에는 "가족 계획family plan영어"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그가 선발 등판하지 않을 원정 경기에는 동행할 필요가 없었으며, 선발 등판 사이에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팀을 떠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이러한 특혜는 양키스 구원 투수 카일 판스워스로부터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클레멘스 팀 동료들은 그의 마운드에서의 성공과 클럽하우스에서의 소중한 존재감 때문에 이러한 특혜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양키스 팀 동료 제이슨 지암비는 그러한 선수들을 대표하여 "그가 마운드에 있는 한, 나는 그의 가방을 들어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8.2. Performance-Enhancing Drug (PED) Accusations
호세 칸세코의 책 'Juiced: Wild Times, Rampant 'Roids, Smash Hits & How Baseball Got Big'에서 칸세코는 클레멘스가 레드삭스를 떠난 후 그의 경기력이 향상된 것을 근거로 스테로이드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사용했다고 시사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클레멘스는 "나는 규칙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그의 친구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눴고, 발목에 전자팔찌를 차고 가택 연금 상태에 있을 때는 책을 쓸 시간이 많다고 놀렸다"고 말했습니다.
제이슨 그램슬리는 클레멘스와 앤디 페팃을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자로 지목했습니다. IRS 특별 요원 제프 노비츠키가 서명한 20페이지 분량의 수색 영장 진술서에 따르면, 그램슬리는 전 양키스 트레이너 브라이언 맥나미가 추천한 사람으로부터 암페타민, 단백동화 스테로이드, 성장호르몬을 얻었다고 수사관들에게 말했습니다. 맥나미는 1998년에 클레멘스가 고용한 개인 스트렝스 코치였습니다. 그램슬리 폭로 당시, 맥나미는 클레멘스와 페팃의 스테로이드 사용에 대한 지식을 부인했습니다. 초기 언론 보도와 달리, 진술서에는 클레멘스나 페팃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클레멘스의 이름은 야구계 스테로이드 사용에 대한 미첼 보고서에서 82번 언급되었습니다. 보고서에서 맥나미는 1998년, 2000년, 2001년 야구 시즌 동안 클레멘스에게 스타노졸롤을 주사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클레멘스의 변호인 러스티 하딘Rusty Hardin영어은 맥나미를 "문제가 많고 신뢰할 수 없는 증인"이라고 부르며 형사 기소를 피하기 위해 그의 진술을 다섯 번이나 바꿨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주장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클레멘스가 스테로이드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전 미국 상원의원 조지 미첼은 보고서에서 지목된 각 선수에게 혐의를 전달하고,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답변할 기회를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2008년 1월 6일, 클레멘스는 '60 Minutes'에 출연하여 의혹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그는 마이크 월리스에게 야구에서의 장수 비결은 불법 물질이 아닌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말하며, 맥나미가 자신에게 스테로이드를 주사했다는 주장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인했습니다. 1월 7일, 클레멘스는 맥나미가 기소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며 맥나미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맥나미의 변호인단은 그가 연방 관리들에 의해 협조를 강요받았으며, 따라서 그의 진술은 보호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연방 판사는 2009년 2월 13일 맥나미의 수사관 진술과 관련된 모든 주장을 기각했지만, 맥나미가 페팃에게 클레멘스에 대해 한 진술에 대해서는 소송을 진행하도록 허용했습니다.
2008년 2월 13일, 클레멘스는 브라이언 맥나미와 함께 의회 위원회에 출석하여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지 않았으며, 맥나미와 HGH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고, 스테로이드가 화제였던 호세 칸세코의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B-12와 리도카인만을 주사받았고, 페팃에게 HGH를 복용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선서했습니다. 이 마지막 주장은 페팃이 2008년 2월 4일 선서한 증언과 모순되었습니다. 페팃은 자신이 클레멘스와 나눈 대화를 맥나미에게 반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화에서 페팃은 클레멘스가 맥나미가 자신에게 성장호르몬을 주사했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페팃은 맥나미가 클레멘스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화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클레멘스가 출석한 초당적 하원 위원회는 클레멘스의 증언에서 7가지 명백한 불일치를 지적하며, 법무부에 클레멘스가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에 대해 선서 하에 거짓말을 했는지 조사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2월 27일 마이클 무케이시 법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하원 감독 및 정부 개혁 위원회 위원장 헨리 왁스맨과 공화당 서열 위원 톰 데이비스는 클레멘스의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나 인간 성장호르몬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증언이 추가 조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첼 보고서의 결과로 클레멘스는 4년간 주최해온 휴스턴의 '기프 닐슨 아동 골프 대회Giff Nielsen Day of Golf for Kids영어' 자선 행사 참여를 중단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또한 그의 이름은 휴스턴 기반의 로저 클레멘스 스포츠 의학 연구소Roger Clemens Institute for Sports Medicine영어에서 삭제되었고, 기념 헤르만 스포츠 의학 연구소Memorial Hermann Sports Medicine Institute영어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2008년 마지막 몇 달 동안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지면서", 2009년 1월에 클레멘스의 의회 위증 가능성에 대한 증거를 청취하기 위해 연방 대배심이 소집되었습니다. 대배심은 2010년 8월 19일, 클레멘스를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에 대해 의회에 허위 진술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기소장에는 클레멘스가 2008년 2월 증언과 관련하여 의회 모독 1건, 허위 진술 3건, 위증 2건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첫 재판은 2011년 7월 13일에 시작되었지만, 증언 이틀째에 검찰이 허용되지 않는 유해한 증거를 배심원에게 제시하자 판사는 검찰의 위법 행위를 이유로 오심을 선언했습니다. 클레멘스는 이후 재심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재판의 평결은 2012년 6월 18일에 나왔습니다. 클레멘스는 2008년 의회에 경기력 향상 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다고 증언한 것에 대한 6가지 혐의 모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2016년 1월, 클레멘스가 다시 명예의 전당 입회에 필요한 득표수를 채우지 못하자, 전 메이저 리그 스타 로이 할러데이는 약물 사용자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의 일부로 "클레멘스도, 본즈도 안 돼"라고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클레멘스는 이에 대해 할러데이가 선수 시절 암페타민을 사용했다고 비난했습니다.
8.3. Personal Conduct Issues
2008년 4월, '뉴욕 데일리 뉴스'는 클레멘스와 컨트리 음악 가수 마인디 맥크리디 사이에 그녀가 15세였을 때 시작된 장기적인 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도했습니다. 클레멘스의 변호사 러스티 하딘은 이 외도를 부인했으며, 이 주장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클레멘스의 변호사는 관계가 존재했음을 인정했지만, 맥크리디를 "가까운 가족 친구"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는 또한 맥크리디가 클레멘스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여행했으며 클레멘스의 아내도 그 관계를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데일리 뉴스'의 연락을 받은 맥크리디는 "기사의 어떤 내용도 반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2008년 11월 17일, 맥크리디는 '인사이드 에디션'과의 인터뷰에서 클레멘스와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며, 그들의 관계가 10년 이상 지속되었고 클레멘스가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떠나기를 거부하자 관계가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관계가 시작되었을 때 자신이 15세였다는 주장을 부인하며, 16세에 만났고 성적인 관계는 "몇 년 후에"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비비드 엔터테인먼트에서 곧 공개될 또 다른 섹스 테이프에서 그녀는 그와 처음 성관계를 가졌을 때 자신이 21세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데일리 뉴스'가 맥크리디와의 관계를 보도한 지 며칠 후, 그들은 클레멘스의 또 다른 혼외 관계를 보도했는데, 이번에는 프로 골프 선수 존 데일리의 전 부인인 폴렛 딘 데일리Paulette Dean Daly영어와의 관계였습니다. 데일리는 투수와의 관계의 성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를 거부했지만, 로맨틱했으며 재정적 지원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클레멘스가 최소한 세 명의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보고서들이 있었습니다. 2008년 4월 29일, '뉴욕 포스트'는 클레멘스가 두 명 이상의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한 맨해튼의 전직 바텐더는 이 이야기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고, 다른 한 명인 탬파의 여성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해 5월 2일, '데일리 뉴스'는 디트로이트의 한 스트리퍼가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하여 클레멘스와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또한 그가 구애하는 여성들에게 야구 경기 티켓, 보석, 여행을 제공했습니다.
9. Legacy and Hall of Fame Candidacy
9.1. Overall Legacy
로저 클레멘스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투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354승, 4,672개의 탈삼진, 7개의 사이 영 상, 1개의 MVP, 2번의 투수 삼관왕 등 그의 통계적 업적은 야구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두 차례의 20탈삼진 경기 기록은 그의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록입니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여러 차례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강렬한 승부욕과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은 타자들을 압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력 후반부를 뒤덮은 경기력 향상 약물(PED) 사용 의혹은 그의 유산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미첼 보고서의 지목과 이어진 위증 재판은 그가 경기장에서 보여준 경이로운 성과와는 별개로 스포츠의 윤리적 문제와 약물 시대의 상징으로 인식되게 했습니다. 비록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중과 야구계 내부에서는 여전히 그에 대한 의혹이 남아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역대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면서도, 논란이 그의 명예의 전당 입회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클레멘스의 유산은 그의 압도적인 야구 실력과 약물 논란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양상으로 남아있습니다.
9.2. 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Candidacy
2013년 그의 첫 번째 자격 연도에 클레멘스는 Baseball Writers' Association of America(BBWAA)로부터 37.6%의 득표율을 얻어 명예의 전당 입회에 필요한 75%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그는 이후 선거에서 득표율이 상승했지만 75%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2019년 59.5%, 2020년 61.0%, 2021년 61.6%를 기록했습니다. 2014년 그레그 매덕스와 톰 글래빈의 입회, 그리고 2015년 랜디 존슨의 입회로, 클레멘스는 현재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지 못한 유일한 300승 클럽 멤버입니다. 그는 최종 자격 연도인 2022년에 65.2%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투표 명단에서 제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멘스는 명예의 전당의 '오늘의 경기 위원회Today's Game Committee영어'를 통해 입회할 자격이 여전히 있습니다. 이 위원회는 명예의 전당 회원, 경영진, 베테랑 언론인 등 16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86년부터 2016년까지 야구에 눈에 띄는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 자격을 상실한 은퇴 선수들을 고려합니다. 가장 최근의 위원회 투표는 2022년 12월에 열렸으며, 입회를 위해서는 12표가 필요했습니다. 클레멘스는 16표 중 4표 미만을 얻어 입회에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10. Career Statistics
연 도 | 소 속 | 나 이 | 승 리 | 패 전 | 승 률 | 평 자 책 | 출 장 | 선 발 | 완 투 | 완 봉 | 세 이 브 | 홀 드 | 이 닝 | 피 안 타 | 피 홈 런 | 볼 넷 | 고 4 | 탈 삼 진 | 몸 맞 | 보 크 | 폭 투 | 실 점 | 자 책 | 타 자 수 | W H I P |
---|---|---|---|---|---|---|---|---|---|---|---|---|---|---|---|---|---|---|---|---|---|---|---|---|---|
1984 | BOS | 22 | 9 | 4 | .692 | 4.32 | 21 | 20 | 5 | 1 | 0 | 0 | 133.1 | 146 | 13 | 29 | 3 | 126 | 2 | 0 | 4 | 67 | 64 | 575 | 1.31 |
1985 | 23 | 7 | 5 | .583 | 3.29 | 15 | 15 | 3 | 1 | 0 | 0 | 98.1 | 83 | 5 | 37 | 0 | 74 | 3 | 3 | 1 | 38 | 36 | 407 | 1.22 | |
1986 | 24 | 24 | 4 | .857 | 2.48 | 33 | 33 | 10 | 1 | 0 | 0 | 254.0 | 179 | 21 | 67 | 0 | 238 | 4 | 3 | 11 | 77 | 70 | 997 | 0.97 | |
1987 | 25 | 20 | 9 | .690 | 2.97 | 36 | 36 | 18 | 7 | 0 | 0 | 281.2 | 248 | 19 | 83 | 4 | 256 | 9 | 3 | 4 | 100 | 93 | 1157 | 1.18 | |
1988 | 26 | 18 | 12 | .600 | 2.93 | 35 | 35 | 14 | 8 | 0 | 0 | 264.0 | 217 | 17 | 62 | 4 | 291 | 6 | 7 | 4 | 93 | 86 | 1063 | 1.06 | |
1989 | 27 | 17 | 11 | .607 | 3.13 | 35 | 35 | 8 | 3 | 0 | 0 | 253.1 | 215 | 20 | 93 | 5 | 230 | 8 | 0 | 7 | 101 | 88 | 1044 | 1.22 | |
1990 | 28 | 21 | 6 | .778 | 1.93 | 31 | 31 | 7 | 4 | 0 | 0 | 228.1 | 193 | 7 | 54 | 3 | 209 | 7 | 0 | 8 | 59 | 49 | 920 | 1.08 | |
1991 | 29 | 18 | 10 | .643 | 2.62 | 35 | 35 | 13 | 4 | 0 | 0 | 271.1 | 219 | 15 | 65 | 12 | 241 | 5 | 0 | 6 | 93 | 79 | 1077 | 1.05 | |
1992 | 30 | 18 | 11 | .621 | 2.41 | 32 | 32 | 11 | 5 | 0 | 0 | 246.2 | 203 | 11 | 62 | 5 | 208 | 9 | 0 | 3 | 80 | 66 | 989 | 1.07 | |
1993 | 31 | 11 | 14 | .440 | 4.46 | 29 | 29 | 2 | 1 | 0 | 0 | 191.2 | 175 | 17 | 67 | 4 | 160 | 11 | 1 | 3 | 99 | 95 | 808 | 1.26 | |
1994 | 32 | 9 | 7 | .563 | 2.85 | 24 | 24 | 3 | 1 | 0 | 0 | 170.2 | 124 | 15 | 71 | 1 | 168 | 4 | 0 | 4 | 62 | 54 | 692 | 1.14 | |
1995 | 33 | 10 | 5 | .667 | 4.18 | 23 | 23 | 0 | 0 | 0 | 0 | 140.0 | 141 | 15 | 60 | 0 | 132 | 14 | 0 | 9 | 70 | 65 | 623 | 1.44 | |
1996 | 34 | 10 | 13 | .435 | 3.63 | 34 | 34 | 6 | 2 | 0 | 0 | 242.2 | 216 | 19 | 106 | 2 | 257 | 4 | 1 | 8 | 106 | 98 | 1032 | 1.33 | |
1997 | TOR | 35 | 21 | 7 | .750 | 2.05 | 34 | 34 | 9 | 3 | 0 | 0 | 264.0 | 204 | 9 | 68 | 1 | 292 | 12 | 0 | 4 | 65 | 60 | 1044 | 1.03 |
1998 | 36 | 20 | 6 | .769 | 2.65 | 33 | 33 | 5 | 3 | 0 | 0 | 234.2 | 169 | 11 | 88 | 0 | 271 | 7 | 0 | 6 | 78 | 69 | 961 | 1.10 | |
1999 | NYY | 37 | 14 | 10 | .583 | 4.60 | 30 | 30 | 1 | 1 | 0 | 0 | 187.2 | 185 | 20 | 90 | 0 | 163 | 9 | 0 | 8 | 101 | 96 | 822 | 1.47 |
2000 | 38 | 13 | 8 | .619 | 3.70 | 32 | 32 | 1 | 0 | 0 | 0 | 204.1 | 184 | 26 | 84 | 0 | 188 | 10 | 1 | 2 | 96 | 84 | 878 | 1.31 | |
2001 | 39 | 20 | 3 | .870 | 3.51 | 33 | 33 | 0 | 0 | 0 | 0 | 220.1 | 205 | 19 | 72 | 1 | 213 | 5 | 0 | 14 | 94 | 86 | 918 | 1.26 | |
2002 | 40 | 13 | 6 | .684 | 4.35 | 29 | 29 | 0 | 0 | 0 | 0 | 180.0 | 172 | 18 | 63 | 6 | 192 | 7 | 0 | 14 | 94 | 87 | 768 | 1.31 | |
2003 | 41 | 17 | 9 | .654 | 3.91 | 33 | 33 | 1 | 1 | 0 | 0 | 211.2 | 199 | 24 | 58 | 1 | 190 | 5 | 0 | 5 | 99 | 92 | 878 | 1.21 | |
2004 | HOU | 42 | 18 | 4 | .818 | 2.98 | 33 | 33 | 0 | 0 | 0 | 0 | 214.1 | 169 | 15 | 79 | 5 | 218 | 6 | 0 | 5 | 76 | 71 | 878 | 1.16 |
2005 | 43 | 13 | 8 | .619 | 1.87 | 32 | 32 | 1 | 0 | 0 | 0 | 211.1 | 151 | 11 | 62 | 5 | 185 | 3 | 1 | 3 | 51 | 44 | 838 | 1.01 | |
2006 | 44 | 7 | 6 | .538 | 2.30 | 19 | 19 | 0 | 0 | 0 | 0 | 113.1 | 89 | 7 | 29 | 1 | 102 | 4 | 0 | 3 | 34 | 29 | 451 | 1.04 | |
2007 | NYY | 45 | 6 | 6 | .500 | 4.18 | 18 | 17 | 0 | 0 | 0 | 0 | 99.0 | 99 | 9 | 31 | 0 | 68 | 5 | 0 | 7 | 52 | 46 | 420 | 1.31 |
MLB 통산 : 24년 | 354 | 184 | .658 | 3.12 | 709 | 707 | 118 | 46 | 0 | 0 | 4916.2 | 4185 | 363 | 1580 | 63 | 4672 | 159 | 20 | 143 | 1885 | 1707 | 20240 | 1.17 |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11. See also
- 휴스턴 애스트로스 수상자 및 리그 선두
- 보스턴 레드삭스 수상자 목록
- 보스턴 레드삭스 팀 기록 목록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연간 완봉 선두 목록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통산 몸에 맞는 볼 선두 목록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통산 승리 선두 목록
- 미첼 보고서에 명시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목록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단일 경기 탈삼진 선두 목록
- 데이턴 (오하이오주) 출신 인물 목록
- 토론토 블루제이스 팀 기록 목록
-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동문 목록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타이틀 선두
- 토론토 블루제이스 수상자 및 리그 선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