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앤서니 어빈은 그의 출생과 성장 과정, 그리고 개인적인 신념과 철학이 그의 삶과 선수 경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1.1. 출생 및 가족 관계
앤서니 리 어빈은 1981년 5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슈케나지 유대인 혈통이며,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이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산타 클라리타의 발렌시아에서 성장했다. 2017년 7월, 그는 "나는 미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유대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2. 학력
어빈은 산타 클라리타에 거주하는 동안 캐니언즈 아쿠아틱 클럽에서 수영했으며, 하트 고등학교 수영팀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 입학하여 노트 손턴 주니어 코치 밑에서 수영 선수로 활동했으며, 2010년 영어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버클리에서 스포츠, 문화, 교육 분야의 대학원 학위를 추구했다.
1.3. 개인적 신념 및 철학
어빈은 자신을 "선불교 신자"라고 묘사하며 좌선을 수행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틱을 "계속 긁고 싶어 하는 가려움"이라고 표현했으며, 젊은 성인이 되어서는 그 증상으로 인해 부정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어빈은 자신의 수영 성공을 투렛 증후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수영이 어렸을 때 안면 틱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 증상 덕분에 어린 나이부터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고, 이는 올림픽 결승전에서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2. 선수 경력
앤서니 어빈은 오랜 기간에 걸쳐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수영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아왔다.

2.1. 2000 시드니 올림픽
2000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미국 올림픽 선발전에서 어빈은 50m와 100m 자유형 두 종목에 출전했다. 100m 자유형 결승에서 그는 49.29초로 5위를 기록하며 4x100m 자유형 계영 팀에 합류할 자격을 얻었다. 50m 자유형 결승에서는 21.80초로 게리 홀 주니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어빈은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첫 결승전인 4x100m 자유형 계영에서 어빈은 게리 홀 주니어, 닐 워커, 제이슨 레작과 팀을 이루었다. 결승에 진출하기 전까지 미국 팀은 올림픽에서 이 종목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어빈은 첫 번째 영자로 48.89초를 기록했는데, 이는 마이클 클림의 세계 기록인 48.18초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미국 팀은 3분 13.86초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는 3분 13.67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50m 자유형 결승에서는 어빈이 게리 홀 주니어와 21.98초로 동률을 이루며 공동 금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 획득 후, 기자 짐 그레이는 어빈에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2012년 인터뷰에서 어빈은 이 순간을 언급하며 "나는 흑인으로서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금메달을 따고 나서 나이 든 백인들이 흑인으로서 어떤 기분인지 묻는 것과 같다. 그것이 나의 흑인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2.2. 세계 선수권 대회 및 팬퍼시픽 선수권 대회 (2001-2003)
어빈은 2001년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50m 자유형과 100m 자유형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또한 4x100m 자유형 계영에도 출전했지만, 미국 팀은 실격 처리되었다. 2002년 팬퍼시픽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는 50m 자유형과 4x100m 자유형 계영에서 모두 은메달을 획득했다.
2.3. 선수 경력 중단 및 개인적 어려움
2003년, 어빈은 22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수영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이후 몇 년 동안 그는 기타를 배우고 불교를 공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했으며, 자신이 올림픽 수영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약물 남용을 시작했고, 때로는 며칠 동안 소파에서 거의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한때 그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2005년, 어빈은 2004년 쓰나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을 이베이를 통해 경매에 내놓아 수익금을 기부했다.
2.4. 복귀 및 2012 런던 올림픽
2011년, 어빈은 다시 훈련을 시작하며 수영계에 복귀했다. 19세에 마지막 올림픽에 출전한 지 12년 만인 2012년, 그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2012년 미국 올림픽 수영 선발전에서 남자 50m 자유형 2위를 기록하며 31세의 나이로 두 번째 미국 올림픽 팀에 선발되었다. 그의 기록인 21.60초는 컬런 존스의 21.59초에 단 0.01초 뒤진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그는 50m 자유형 결승에서 21.78초로 5위를 기록했다. 어빈은 존스, 리아 닐과 함께 미국 올림픽 수영팀에 두 명 이상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가 포함된 최초의 사례를 만들며 역사를 썼다.
2.5. 후기 경력 (2013-2021)

2013년 미국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어빈은 50m 자유형에서 21.70초로 2위, 100m 자유형에서 48.49초로 3위를 기록하며 2013년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세계 선수권 대회 첫 종목인 4x100m 자유형 계영에서 어빈은 네이선 에이드리언, 라이언 록티, 지미 파이겐과 함께 팀을 이루어 프랑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어빈은 세 번째 영자로 47.44초를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 팀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팀은 최종 3분 11.44초를 기록했다. 그의 유일한 개인 종목인 50m 자유형에서는 준결승에서 21.42초의 개인 최고 기록으로 2번 시드를 받아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에서는 21.65초로 6위를 기록했다.
2014년 골드 코스트에서 열린 팬퍼시픽 선수권 대회에서 어빈은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어빈은 50m 자유형에 출전하여 21.40초의 기록으로 결승에서 1위를 차지했다. 35세의 나이로 그는 마이클 펠프스의 기록을 깨고 올림픽 수영 개인 종목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또한 예선에서 수영하며 미국 팀의 4x100m 자유형 계영 금메달 획득에도 기여했다.
2017년 7월 6일, 어빈은 2017년 매카비아 게임의 성화 점화식에 참여했다. 그는 50m 자유형 (22.05초), 100m 자유형 (49.76초), 4x100m 혼계영 (미국 팀 3분 41.82초)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스라엘과 미국 올스타 팀 간의 특별 4x50m 계영 경기에서는 미국 올림픽 챔피언인 어빈, 레니 크라이젤버그, 제이슨 레작이 알렉스 블라바트닉과 함께 1분 48.23초를 기록하며 이스라엘 올림픽 선수들을 꺾었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2021년 6월에 열린 2020년 미국 올림픽 수영 선발전에서 어빈은 50m 자유형에 출전했다. 그는 예선에서 22.61초를 기록하며 전체 23위에 그쳐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에티하드 아레나에서 열린 2021년 FINA 세계 쇼트 코스 수영 선수권 대회 기간 동안, 어빈은 독일의 플로리안 벨브록과 함께 어린 수영 선수들을 위한 수영 클리닉을 진행했다.
2.6. 개인 최고 기록
2017년 9월 21일 기준 앤서니 어빈의 개인 최고 기록은 다음과 같다.
3. 개인 생활 및 사회적 활동
앤서니 어빈은 그의 다문화적 배경, 건강 문제 극복, 그리고 사회적 발언 및 활동을 통해 주목받았다.
3.1. 인종 및 문화적 배경
어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인 혈통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슈케나지 유대인 혈통이고,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이다. 그는 자신의 다문화적 배경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차례 "미국인이라는 것과 유대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3.2. 건강 및 극복 과정
어빈은 어린 시절부터 투렛 증후군으로 인한 틱을 겪었다. 그는 수영이 어린 시절 안면 틱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 증상 덕분에 어린 나이부터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고, 이는 올림픽 결승전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 그에게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그는 투렛 협회의 청소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투렛 증후군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선수 경력 중단 기간 동안 어빈은 약물 및 알코올 의존과 자살 충동을 겪는 등 심각한 개인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는 이 시기를 극복하고 다시 수영으로 복귀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3.3. 사회적 활동 및 발언
2017년 브라질에서 열린 대회에 앞서 국가 연주 시 무릎 꿇기 시위에 참여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2004년 쓰나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2000년 올림픽 금메달을 경매에 내놓는 등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선수 경력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는 수영계뿐만 아니라 롤링 스톤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4. 저서 및 미디어
앤서니 어빈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담은 회고록을 출판했다.
4.1. 회고록 "Chasing Water"
2016년 아카식 북스를 통해 어빈의 회고록인 《Chasing Water: Elegy of an Olympian》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어빈과 콘스탄틴 마르키데스가 공동으로 저술했으며, 2018년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으로부터 벅 도슨 작가상을 수상했다.
5. 수상 및 평가
앤서니 어빈은 그의 뛰어난 선수 경력과 사회적 기여로 여러 상을 수상하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5.1. 주요 수상 경력
2003년, 어빈은 남부 캘리포니아 유대인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8년에는 그의 회고록 《Chasing Water》가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으로부터 벅 도슨 작가상을 수상했다.
5.2. 역사적 의의 및 영향
어빈은 올림픽 수영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는 또한 35세의 나이로 올림픽 수영 개인 종목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단거리 선수로서 결코 유리한 체격 조건을 갖지 않았고, 경기의 핵심인 출발이 약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최고 속도와 가속력을 무기로 삼아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이러한 성과는 스포츠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흑인 수영 선수들에게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6. 관련 항목
- 올림픽 수영 남자 메달리스트 목록
- 수영 자유형 50m 세계 기록 추이
-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 목록
-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남자 수영 메달리스트 목록
- 유대인 스포츠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