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기 및 배경
아널드 테일러는 1945년 7월 1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뮤리엘과 조 테일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백인 남아프리카인이었다. 그의 삶은 국가가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제도적으로 시행하던 시기와 겹쳤다. 테일러는 권투 선수로 활동하기 전 제과 기술자 자격을 취득했으며, 낮에는 요하네스버그의 지역 제과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권투 훈련을 하는 생활을 했다.
2. 프로 권투 경력
아널드 테일러는 광범위한 프로 권투 경력을 통해 여러 국내 타이틀을 획득하고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의 끈기와 투지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1. 데뷔 및 국내 타이틀 획득
테일러는 1967년 5월 20일, 트란스발주에서 레이 버틀과의 6라운드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프로 데뷔를 했다. 같은 해 6월 30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버틀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9라운드 KO승을 거두며 트란스발 밴텀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12월 11일에는 논 타이틀 경기에서 버틀을 8라운드 판정으로 제압했다.
1968년 2월 19일, 그는 고작 네 번째 프로 경기에서 앤드리스 스테인을 12라운드 판정으로 꺾고 남아프리카 밴텀급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1일, 데니스 애덤스와의 경기에서 1라운드 KO패를 당하며 이 타이틀을 잃고 첫 프로 경력 패배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허비 클라크와의 세 차례 경기(1번 KO승, 1번 6라운드 실격승, 1번 판정승)와 스와질란드에서 에드워드 음봉와를 상대로 거둔 첫 해외 경기 승리(1968년 9월 7일), 레소토에서 앤서니 모로디를 상대로 거둔 승리 등 8연승을 달성했다.
1969년 5월 12일에는 허비 클라크와의 세 번째 경기에서 12라운드 판정승을 거두며 남아프리카 라이트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경기는 그의 자연 체중보다 약 6.8 kg (15 lb) (약 6.8 kg) 더 무거운 체급에서 치러졌다. 불과 12일 뒤인 5월 24일, 그는 체중을 감량하여 데니스 애덤스와의 남아프리카 페더급 타이틀전을 치렀고, 8라운드 KO승을 거두며 이전에 당했던 패배를 설욕하고 세 번째 국내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는 페더급 타이틀을 반납하고 라이트급 타이틀 방어에 집중하기로 했으나, 7월 4일 앤드리스 스테인과의 재대결에서 8라운드 KO패를 당하며 라이트급 타이틀을 잃었다.
두 번의 승리와 한 번의 패배를 기록한 뒤, 1969년 12월 6일, 그는 레이 버틀의 동생인 마이크 버틀과 남아프리카 밴텀급 타이틀을 놓고 재대결을 펼쳤다. 테일러는 3주 전 마이크 버틀을 5라운드 KO로 이긴 바 있었다. 재대결에서는 6라운드 KO승을 거두며 밴텀급 타이틀을 되찾았다.
2.2. 세계 챔피언 시기
1970년대에 들어서 테일러는 더 높은 수준의 상대들과 맞붙기 시작했다. 1970년 4월 11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전 세계 밴텀급 챔피언이자 같은 체급의 호주 선수인 조니 페임촌과 맞붙어 10라운드 판정패를 기록했다. 다음 경기인 8월 15일에는 레이 버틀과의 재대결에서 9라운드 KO승을 거두며 남아프리카 페더급 타이틀을 되찾았다. 이 승리를 시작으로 그는 19연승을 기록했는데, 이 중 5경기는 1971년 상반기에 거주했던 호주에서, 1경기는 짐바브웨에서 치러졌다. 16연승을 달성한 후 그는 첫 세계 타이틀 도전 기회를 얻었다.
1973년 11월 3일, 테일러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멕시코의 라인 및 WBA 밴텀급 세계 챔피언 로메오 아나야와 맞붙았다. 이 경기는 스탠리 크리스토둘루가 심판을 맡았으며, 많은 이들에게 권투 역사상 손꼽히는 명경기로 평가받는다. 한 남아프리카 스포츠 기자는 이 경기를 "남아프리카 권투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라고 묘사했다. 테일러는 5라운드에 한 번, 8라운드에 세 번 다운을 당하고 이마에 출혈이 생기는 등 고전했다. (WBA는 이후 한 라운드에 세 번 다운될 경우 자동 KO패로 선언하는 규칙을 도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일러는 아나야에게도 상처를 입혔고, 14라운드에 아나야의 턱에 강력한 오른손 펀치를 적중시켜 그를 쓰러뜨렸다. 세계 챔피언이 될 순간임을 직감한 테일러는 중립 코너에서 트레이너들에게 "그는 끝났어!"라고 외쳤다. 아나야는 2분 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테일러는 WBA 밴텀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세계 타이틀 획득 후 두 번의 논 타이틀 경기에서 승리(이 중 하나는 미래의 카를로스 사라테의 도전자가 될 폴 페러리를 상대로 거둔 승리)한 뒤, 테일러는 1974년 7월 3일 대한민국의 홍수환을 상대로 유일한 1차 방어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콰줄루나탈주 더반에서 열렸으며, 역시 권투계의 또 다른 명경기로 꼽힌다. 테일러는 이 경기에서도 네 번의 다운을 당했다. 초반 세 번의 다운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10라운드부터 15라운드까지 끊임없이 홍수환을 링 코너와 로프 쪽으로 몰아붙이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14라운드에 네 번째 다운을 당했고, 결국 15라운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하며 타이틀을 잃었다.
2.3. 은퇴 및 말년
세계 타이틀을 상실한 후 테일러의 권투 경력은 비교적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는 이후 4연승을 거두었으나, 연달아 두 번의 패배를 당한 후 은퇴를 결심했다. 그의 마지막 6경기 중 주목할 만한 경기는 1975년 6월 27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아나야와의 재대결에서 8라운드 KO승을 거둔 것과, 1976년 11월 24일 버논 솔라스에게 8라운드 KO패를 당하며 치른 마지막 경기였다. 그의 마지막 두 경기는 각각 노르웨이와 잉글랜드에서 열렸다.
3. 사망
아널드 테일러는 1981년 11월 22일에 사망했다. 그는 장녀 샤메인의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 사고를 당해 도로 위에서 쓰러졌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4. 프로 통산 전적 요약
아널드 테일러는 프로 권투 통산 40승(17KO), 8패(3KO), 1무, 1무효의 전적을 기록했다. 그의 경력은 여러 차례의 다운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투지로 다시 일어서는 모습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는 밴텀급, 페더급, 라이트급 등 여러 체급에서 국내 타이틀을 획득하며 다양한 체급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번호 | 결과 | 전적 | 상대 | 유형 | 라운드 | 날짜 | 장소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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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패 | 40-8-1 (1무효) | 버논 솔라스 | 기권패 | 8 (10) | 1976년 11월 24일 | 앵글로-아메리칸 스포팅 클럽, 메이페어, 런던, 잉글랜드 | |
49 | 패 | 40-7-1 (1무효) | 스베인 에리크 폴센 | 판정패 | 10 | 1976년 10월 21일 | 메세할렌, 오슬로, 노르웨이 | |
48 | 승 | 40-6-1 (1무효) | 데이브 니덤 | 판정승 | 10 | 1976년 5월 8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47 | 승 | 39-6-1 (1무효) | 로메오 아나야 | KO승 | 8 (10) | 1975년 6월 27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46 | 승 | 38-6-1 (1무효) | 로타르 아벤드 | 기권승 | 3 (10) | 1975년 5월 5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45 | 승 | 37-6-1 (1무효) | 존 미첼 | TKO승 | 4 (10) | 1975년 2월 22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44 | 패 | 36-6-1 (1무효) | 홍수환 | 만장일치 판정패 | 15 | 1974년 7월 3일 | 웨스트 리지 테니스 스타디움, 더반, 콰줄루나탈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WBA 및 더 링 밴텀급 타이틀 상실 |
43 | 패 | 36-5-1 (1무효) | 로렌조 트루히요 | 판정패 | 10 | 1974년 5월 31일 | 쇼그라운즈 홀, 포트엘리자베스, 이스턴케이프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42 | 승 | 36-4-1 (1무효) | 폴 페러리 | 판정승 | 10 | 1974년 3월 18일 | 굿우드 쇼그라운즈, 케이프타운, 웨스턴케이프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41 | 승 | 35-4-1 (1무효) | 가이 코드로 | 판정승 | 10 | 1974년 2월 16일 | 랜드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40 | 승 | 34-4-1 (1무효) | 로메오 아나야 | KO승 | 14 (15) | 1973년 11월 3일 | 랜드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WBA 및 더 링 밴텀급 타이틀 획득 |
39 | 승 | 33-4-1 (1무효) | 빌리 와이스 | 판정승 | 10 | 1973년 6월 16일 | 포르투갈 홀, 터프폰테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38 | 승 | 32-4-1 (1무효) | 지미 벨 | 판정승 | 10 | 1973년 4월 28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37 | 승 | 31-4-1 (1무효) | 이반 암스트롱 | KO승 | 4 (10) | 1972년 10월 28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36 | 승 | 30-4-1 (1무효) | 한지 판 루이언 | KO승 | 6 (10) | 1972년 5월 13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35 | 승 | 29-4-1 (1무효) | 한지 판 루이언 | 판정승 | 12 | 1972년 3월 27일 | 웸블리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페더급 타이틀 유지 |
34 | 승 | 28-4-1 (1무효) | 우고 폴리 | KO승 | 4 (10) | 1972년 1월 29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33 | 승 | 27-4-1 (1무효) | 크리스 넬 | 기권승 | 7 (10) | 1971년 11월 27일 | 글래미스 스타디움, 하레레, 짐바브웨 | |
32 | 승 | 26-4-1 (1무효) | 루이스 아이사 | 판정승 | 10 | 1971년 10월 30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31 | 승 | 25-4-1 (1무효) | 알베르토 장가레이 | 판정승 | 10 | 1971년 8월 30일 | 페스티벌 홀, 멜버른, 빅토리아주, 호주 | |
30 | 승 | 24-4-1 (1무효) | 메모 에스피노사 | 판정승 | 10 | 1971년 8월 3일 | 페스티벌 홀, 멜버른, 빅토리아주, 호주 | |
29 | 승 | 23-4-1 (1무효) | 투로리 조지 | 판정승 | 10 | 1971년 6월 14일 | 페스티벌 홀, 멜버른, 빅토리아주, 호주 | |
28 | 승 | 22-4-1 (1무효) | 윌리 코르도바 | 판정승 | 10 | 1971년 5월 17일 | 페스티벌 홀, 멜버른, 빅토리아주, 호주 | |
27 | 승 | 21-4-1 (1무효) | 윌리 코르도바 | 판정승 | 10 | 1971년 5월 3일 | 페스티벌 홀, 멜버른, 빅토리아주, 호주 | |
26 | 승 | 20-4-1 (1무효) | 크리스 넬 | TKO승 | 10 (10) | 1970년 12월 29일 | 원형극장, 더반, 콰줄루나탈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25 | 승 | 19-4-1 (1무효) | 크리스 넬 | 기권승 | 7 (8) | 1970년 9월 21일 | 시청, 더반, 콰줄루나탈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24 | 승 | 18-4-1 (1무효) | 레이 버틀 | TKO승 | 8 (12) | 1970년 8월 15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페더급 타이틀 유지 |
23 | 패 | 17-4-1 (1무효) | 조니 페임촌 | 판정패 | 10 | 1970년 4월 11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22 | 승 | 17-3-1 (1무효) | 마이크 버틀 | TKO승 | 6 (12) | 1969년 12월 6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밴텀급 타이틀 획득 |
21 | 승 | 16-3-1 (1무효) | 마이크 버틀 | TKO승 | 5 (8) | 1969년 11월 15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20 | 패 | 15-3-1 (1무효) | 존 오브라이언 | 판정패 | 10 | 1969년 8월 30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19 | 패 | 15-2-1 (1무효) | 앤드리스 스테인 | 기권패 | 8 (12) | 1969년 7월 4일 | 앨런 포드 스타디움, 더반, 콰줄루나탈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라이트급 타이틀전 |
18 | 승 | 15-1-1 (1무효) | 데니스 애덤스 | 기권승 | 8 (12) | 1969년 5월 24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페더급 타이틀 유지 |
17 | 승 | 14-1-1 (1무효) | 허비 클라크 | 판정승 | 12 | 1969년 5월 12일 | 시청, 더반, 콰줄루나탈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라이트급 공석 타이틀 획득 |
16 | 승 | 13-1-1 (1무효) | 허비 클라크 | 실격승 | 6 (10) | 1969년 4월 11일 | 시청, 더반, 콰줄루나탈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클라크의 깨물기로 인한 실격패 |
15 | 승 | 12-1-1 (1무효) | 앙리 네시 | 판정승 | 10 | 1969년 2월 15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14 | 승 | 11-1-1 (1무효) | 콜린 레이크 | 실격승 | 3 (10) | 1968년 11월 2일 | 엘리스 파크 테니스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13 | 승 | 10-1-1 (1무효) | 로버트 트로트 | TKO승 | 3 (6) | 1968년 10월 7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12 | 승 | 9-1-1 (1무효) | 앤서니 모로디 | 판정승 | 6 | 1968년 10월 5일 | 레소토 국립 경기장, 마세루, 레소토 | |
11 | 승 | 8-1-1 (1무효) | 에드윈 음봉웨 | 판정승 | 6 | 1968년 9월 7일 | 스와질란드 국립 경기장, 음바바네, 스와질란드 | |
10 | 승 | 7-1-1 (1무효) | 로버트 트로트 | 판정승 | 8 | 1968년 8월 26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9 | 승 | 6-1-1 (1무효) | 허비 클라크 | TKO승 | 9 (10) | 1968년 8월 12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8 | 패 | 5-1-1 (1무효) | 데니스 애덤스 | KO패 | 1 (12) | 1968년 6월 18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밴텀급 타이틀전 |
7 | 승 | 5-0-1 (1무효) | 게리 조이 맥브라이드 | 판정승 | 10 | 1968년 6월 3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6 | 승 | 4-0-1 (1무효) | 바비 데이비스 | 판정승 | 10 | 1968년 4월 29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5 | 승 | 3-0-1 (1무효) | 앤드리스 스테인 | 판정승 | 12 | 1968년 2월 19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페더급 타이틀 획득 |
4 | 승 | 2-0-1 (1무효) | 레이 버틀 | 판정승 | 8 | 1967년 12월 11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3 | 무효 | 1-0-1 (1무효) | 로버트 트로트 | 무효 | 4 | 1967년 11월 25일 | 엘리스 파크 럭비 스타디움,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
2 | 승 | 1-0-1 | 레이 버틀 | TKO승 | 9 (10) | 1967년 6월 30일 | 시청, 요하네스버그, 하우텡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남아프리카 트란스발 '백인' 밴텀급 공석 타이틀 획득 |
1 | 무 | 0-0-1 | 레이 버틀 | 판정무 | 6 | 1967년 5월 20일 | 피에트 포트히터 고등학교 운동장, 모코파네, 노스웨스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
5. 유산 및 평가
아널드 테일러의 권투 경력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투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명경기들로 기억된다. 특히 로메오 아나야와의 세계 타이틀전과 홍수환과의 방어전은 권투 역사상 손꼽히는 드라마틱한 명승부로 평가받으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그의 끈질긴 경기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홍수환과의 경기는 테일러에게는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잃은 순간이었지만, 대한민국 권투계에는 역사적인 역전승이자 국민적 자부심을 안겨준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테일러는 여러 체급에서 타이틀을 획득하며 다재다능함을 입증했고, 그의 경기는 남아프리카 권투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6. 외부 링크
- [https://boxrec.com/id/29984 BoxRec 프로 전적]
- [http://www.cyberboxingzone.com/boxing/taylor-a.htm CBZ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