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싼마오는 어린 시절부터 정규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나,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1.1. 출생 및 어린 시절
싼마오는 1943년 3월 26일 중국 충칭시에서 변호사 천쓰칭과 먀오진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그녀에게는 언니 천톈신이 있었다. 가족은 저장성 출신으로, 제2차 중일 전쟁 이후 난징시로 이주했다. 싼마오가 여섯 살 때, 중국 공산당의 국공 내전 승리로 인해 가족은 대만으로 이주했다. 그녀는 대만 학교 시스템의 획일적이고 제한적인 교육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루쉰, 바진, 빙신, 라오서, 위다푸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다. 또한 『몽테크리스토 백작』, 『돈키호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작품들을 탐독했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업 중에 『홍루몽』을 읽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위대한 예술가, 특히 파블로 피카소와 결혼하고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독서에 몰두한 탓에 싼마오의 중학교 성적은 특히 수학에서 좋지 않았다. 한 선생님이 그녀의 눈 주위에 검은 원을 그려 넣고 수업 중에 모욕을 준 사건 이후, 싼마오는 결국 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그녀의 아버지 천쓰칭은 집에서 그녀에게 영어와 고전 문학을 가르쳤고, 피아노와 그림을 가르칠 개인 교사를 고용했다.
1.2. 교육
싼마오는 1965년부터 1969년까지 대만의 중국문화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첫사랑이 끝난 후, 20세에 스페인 마드리드로 건너가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마드리드에서 그녀는 훗날 남편이 될 스페인 해양 엔지니어 호세 마리아 케로 이 루이스를 만났다.
이후 싼마오는 독일로 이주하여 하루에 최대 16시간씩 독일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9개월 만에 독일어 교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도예를 공부하기도 했다. 26세에 대만으로 돌아왔고, 독일인 교사와 약혼했지만, 그가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 결혼하지 못했다.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싼마오는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가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3. 필명과 이름의 유래
작가로서 사용한 필명 '싼마오'(三毛싼마오중국어)는 장러핑의 유명한 만화 『싼마오 유랑기』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필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싼마오 본인도 "장러핑의 만화 주인공에서 따왔다", "주역에서 유래했다", "3마오(毛)전의 가치밖에 없다는 의미" 등 다양한 설명을 했다.
본명은 천마오핑(陳懋平천마오핑중국어)이었으나, 어린 시절부터 '마오'(懋마오중국어)라는 한자가 너무 복잡하여 쓰는 것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법적으로 이름을 천핑(陳平천핑중국어)으로 개명했다. 그녀의 영어 이름은 에코(Echo에코영어) 또는 에코 챈(Echo Chan에코 챈영어)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 에코에서 유래했다.
2. 작가 활동
싼마오는 해외에서의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기행문과 자전적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번역과 강연 활동을 통해 문학적 지평을 넓혔다.
2.1. 해외 경험과 집필 시작
싼마오는 24세부터 세계 각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마드리드에서 호세 마리아 케로 이 루이스를 다시 만난 후, 1973년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서사하라에서 호세와 결혼하여 정착했다. 사하라 사막에서의 기상천외한 신혼 생활을 담백하고 위트 있게 그려낸 첫 작품 『사하라 이야기』(撒哈拉的故事사하라더고사중국어)(1976년 출간)는 출간 즉시 대만, 홍콩, 중국 대륙에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은 기행문이자 회고록의 성격을 띠며, 싼마오를 독특한 목소리와 시각을 가진 자전적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사하라 이야기』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그녀의 초기작들이 『비 오는 계절은 다시 오지 않아』(雨季不再來위지부재래중국어)라는 제목으로 묶여 출간되었고, 이 또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글을 썼고, 서사하라와 카나리아 제도에서의 경험은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2.2. 주요 작품
싼마오는 1976년부터 1991년 사망할 때까지 20권 이상의 책을 출판했다. 그녀의 책들은 주로 해외 유학과 거주 경험을 다루고 있으며, 대만뿐만 아니라 홍콩과 중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
- 『사하라 이야기』(撒哈拉的故事사하라더고사중국어)
- 『비 오는 계절은 다시 오지 않아』(雨季不再來위지부재래중국어)
- 『흐느끼는 낙타』(溫柔的夜원러우더예중국어, 또는 『온유한 밤』)
- 『허수아비의 수기』(夢裡花落知多少멍리화뤄즈둬샤오중국어, 또는 『꿈속에 꽃이 얼마나 지는지』)
- 『너에게 말 한 필을 보낸다』(我的寶貝워더바오베이중국어, 또는 『나의 보물』)
- 『나의 행복한 천국』(我的快樂天堂워더콰이러톈탕중국어)
- 『뒷모습』(背影베이잉중국어)
- 『고원의 백합』(高原的百합화가오위안더바이허화중국어)
- 『마음을 나누다』(談心탄신중국어)
- 『학교 소란기』(鬧學記나오쉐지중국어)
2.3. 번역 활동
싼마오는 작가 활동 외에도 번역가로서 스페인어권 작품을 중국어로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유명 만화 『마팔다』를 스페인어에서 중국어로 번역했다.
2.4. 교육 및 강연 활동
1980년 남편의 죽음 이후 대만으로 돌아온 싼마오는 1981년 11월 대만 출판사들의 의뢰로 중남미를 여행하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는 모교인 중국문화대학교에서 문학 창작을 가르치고 강연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에는 글쓰기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3. 개인적인 삶
싼마오의 개인적인 삶은 자유로운 영혼과 깊은 사랑, 그리고 비극적인 상실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남편 호세와의 결혼 생활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1. 결혼과 남편
싼마오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해양 공학을 전공하던 스페인인 호세 마리아 케로 이 루이스를 만났다. 그들은 1973년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서사하라에서 결혼했다. 호세는 싼마오의 자유로운 영혼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동반자였다. 그들은 사하라 사막에서 함께 생활하며 싼마오의 대표작 『사하라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독특한 경험들을 쌓았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1979년 9월 30일, 호세는 다이빙 사고로 익사했다. 이 사건은 싼마오에게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그녀는 오랜 타국 생활을 접고 1980년 대만으로 돌아왔다.

4. 죽음
싼마오는 남편의 죽음 이후 깊은 상실감에 시달렸으며,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죽음은 중화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4.1. 자살과 그 원인
1991년 1월 4일, 싼마오는 47세의 나이로 타이베이시에 위치한 타이베이 재향군인 총병원에서 실크 스타킹으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그녀는 당시 자궁내막증식증으로 입원 중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많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중화권 전역에서 대중적인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그녀의 자살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제기되었다. 암 진단에 대한 두려움, 영화 『곤곤홍진』의 시나리오로 금마장 영화제에서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12년 전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일부 팬들은 그녀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싼마오는 진바오산 묘지에 안장되었다.
5. 평가 및 영향력
싼마오는 문학적 성과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거머쥐었으며, 그녀의 삶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후에도 그녀를 기리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5.1. 문학적 성과와 대중적 인기
싼마오의 작품은 대만, 홍콩, 중국 대륙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보수적인 문화 규범으로부터 독립을 갈망하는 젊은 대만 및 중국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유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꿈을 찾아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 인물로, 지금까지도 중국 독자들의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다. 2007년에 실시된 '현대 중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00인' 조사에서 루쉰, 차오쉐친, 바진, 진융, 이백에 이어 6위에 오르기도 했다. 대만의 황관출판사에서는 27권으로 구성된 싼마오 전집이 출간되어 있다.
5.2. 사후 평가 및 추모
싼마오 사후에도 그녀에 대한 추모와 재평가는 계속되었다. 2019년 3월 26일, 그녀의 76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구글 두들이 제작되기도 했다. 같은 해, 싼마오는 뉴욕 타임스의 '간과된 인물들'(Overlooked오버룩드영어) 부고 기사에 실리며 『사하라 이야기』의 작가로서 다시금 조명받았다. 그녀의 작품은 세대를 거쳐 지속되는 힘을 인정받았으며, 보수적인 문화 규범에서 벗어나 독립을 열망하는 대만과 중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후에 『사하라 이야기』의 영어판은 황관문화(皇冠文化황관원화중국어)와의 계약을 통해 블룸즈버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5.3. 비판 및 논란
싼마오의 죽음 이후, 일부 팬들은 그녀의 사망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6. 영화 작업
싼마오는 작가로서 영화 작업에도 참여하여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연도 | 영어 제목 | 원제 | 역할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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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레드 더스트 | 滚滚红尘군군훙천중국어 | 시나리오 작가 | 임호와 공동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