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삶과 선수 경력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리트비노프는 1958년 1월 23일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크라스노다르 지방에 위치한 추케로바 발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해머던지기 훈련을 시작했으며, 로스토프나도누의 SKA 로스토프 클럽에서 훈련을 받으며 선수로서 성장했다. 리트비노프는 키 1.8 m에 몸무게 106 kg의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해머던지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 선수 경력
세르게이 리트비노프는 1980년대 해머던지기 종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활동하며 여러 주요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선수 경력은 특히 같은 소련 출신의 유리 세디흐와의 오랜 라이벌 관계로 인해 더욱 빛났다.
2.1. 유리 세디흐와의 라이벌 관계
리트비노프의 선수 경력 내내 유리 세디흐는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두 선수는 1980년대 해머던지기 종목의 발전을 이끌며 수차례 세계 기록을 경신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리트비노프는 세 번의 세계 기록을 수립했지만, 번번이 세디흐에게 기록을 빼앗기는 등 라이벌 관계는 계속되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리트비노프는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세디흐는 올림픽 기록인 81.8 m를 던져 금메달을 차지하며 리트비노프의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후에도 세디흐는 1984년에 86.34 m, 1986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86.74 m로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리트비노프를 앞서나갔다. 리트비노프 또한 1986년에 그의 개인 최고 기록인 86.04 m를 달성했으나, 이 기록은 세디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리트비노프와 세디흐는 서로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해머던지기 기술과 기록의 한계를 확장했다. 이러한 경쟁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리트비노프가 세디흐를 꺾고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절정에 달했다.
2.2. 주요 국제 대회
리트비노프는 올림픽과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의 불참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84.8 m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올림픽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리트비노프는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1983년 헬싱키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1987년 로마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도 다시 금메달을 획득하며 2회 연속 세계 챔피언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는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도 메달을 획득했다. 1982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1986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소련 해체 이후인 199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는 러시아 대표로 출전하여 7위를 기록했다. 리트비노프의 주요 국제 대회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대회 | 장소 | 순위 | 기록 |
---|---|---|---|---|
1980 | 올림픽 | 모스크바, 소련 | 2위 (은메달) | 80.64 m |
1982 | 유럽 선수권 대회 | 아테네, 그리스 | 3위 (동메달) | 78.66 m |
1983 | 세계 선수권 대회 | 헬싱키, 핀란드 | 1위 (금메달) | 82.68 m |
1984 | 우정 경기대회 | 모스크바, 소련 | 3위 (동메달) | 81.3 m |
1986 | 굿윌 게임 | 모스크바, 소련 | 2위 (은메달) | 84.64 m |
1986 | 유럽 선수권 대회 | 슈투트가르트, 서독 | 2위 (은메달) | 85.74 m |
1987 | 세계 선수권 대회 | 로마, 이탈리아 | 1위 (금메달) | 83.06 m |
1988 | 올림픽 | 서울, 대한민국 | 1위 (금메달) | 84.8 m |
1993 | 세계 선수권 대회 | 슈투트가르트, 독일 | 7위 | 78.56 m |
2.2.1. 세계 기록 및 개인 최고 기록
세르게이 리트비노프는 해머던지기 역사상 세 번의 세계 기록을 수립하며 그의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첫 번째 세계 기록은 1980년 5월 16일에 기록한 81.66 m였으며, 이는 유리 세디흐가 불과 8일 전에 세운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록은 같은 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세디흐가 81.8 m를 던지면서 다시 깨졌다.
이후 1982년 6월 4일에 리트비노프는 83.98 m를 던져 세디흐의 기록을 2m 이상 경신하며 두 번째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 그리고 1983년 6월 21일에는 자신의 기록을 다시 한 번 84.14 m로 끌어올리며 세 번째이자 마지막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그의 개인 최고 기록은 1986년에 기록한 86.04 m로, 이는 당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또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그가 세운 84.8 m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올림픽 기록으로 남아있다.
3. 코치 경력
선수 생활 은퇴 후, 세르게이 리트비노프는 육상 코치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해머던지기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했다. 특히, 벨라루스의 저명한 해머던지기 선수인 이반 치한과 자신의 아들인 세르게이 리트비노프 주니어를 지도하며 그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코칭 방식과 노하우는 후배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크게 기여했으며, 해머던지기 종목의 발전에 지속적으로 이바지했다.
4. 개인 생활
세르게이 리트비노프는 개인적인 삶에 대해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아들인 세르게이 리트비노프 주니어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머던지기 선수로 활동하며 엘리트 스포츠인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이는 그가 아들의 스포츠 경력에 깊이 관여했으며, 가족 내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대대로 이어졌음을 시사한다.
5. 사망
세르게이 리트비노프는 2018년 2월 19일에 60세의 나이로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방의 소치에서 사망했다. 러시아 육상 연맹의 보고에 따르면, 그는 코칭 훈련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으며, 구급대원들이 현장에서 그를 소생시키지 못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육상계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q=소치|position=right
6. 유산
세르게이 리트비노프는 해머던지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1980년대에 유리 세디흐와 함께 이 종목의 기술적, 기록적 발전을 이끌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세운 84.8 m의 올림픽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그의 뛰어난 기량을 증명한다.
선수 은퇴 후에는 코치로서 이반 치한과 그의 아들을 포함한 여러 유망주들을 지도하며 다음 세대 해머던지기 선수 양성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코칭은 해머던지기 종목의 지속적인 발전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또한, 그의 개인 최고 기록인 86.04 m는 역대 해머던지기 선수 중 두 번째로 높은 기록으로, 그의 탁월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이다. 리트비노프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챔피언으로서, 스포츠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7. 수상 및 영예
세르게이 리트비노프는 그의 경력 동안 수많은 메달과 영예를 얻었다.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해머던지기 은메달
- 1982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해머던지기 동메달
- 198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해머던지기 금메달
- 1984년 우정 경기대회: 해머던지기 동메달
- 1986년 굿윌 게임: 해머던지기 은메달
- 1986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해머던지기 은메달
- 1987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해머던지기 금메달
- 1988년 서울 올림픽: 해머던지기 금메달
8. 같이 보기
- 해머던지기
- 유리 세디흐
- 이반 치한
- 올림픽 육상 메달리스트 목록 (남자)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 목록 (남자 해머던지기)
- 소련의 올림픽 참가 선수 목록
- 러시아의 올림픽 참가 선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