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모크타르 다하리는 1953년 11월 13일, 당시 슬랑오르 주 스타팍(현재의 쿠알라룸푸르에 해당)에서 아미나 샤리칸과 다하리 아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초기 생애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축구에 대한 깊은 열정과 재능을 키워나가는 과정이었다.
1.1. Birth and Childhood
모크타르 다하리의 아버지 다하리 아벵은 대형 트럭 운전기사였으나,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수입을 벌지 못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그는 6남매 중 둘째였다. 모크타르가 11세 되던 해, 그의 가족은 쿠알라룸푸르의 캄풍 판단으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부터 모크타르는 축구 외에도 배드민턴, 세팍타크로, 하키 등 다양한 스포츠에 흥미를 보였으며, 뛰어난 운동 신경을 자랑했다.
1.2. Education and Early Interests
캄풍 판단으로 이사한 후, 모크타르는 빅토리아 학교에 입학하여 중등 교육을 받았다. 이 시기부터 그는 학교 축구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졸업 후에는 지역 팀인 슬랑오르 FA의 유소년팀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2. Playing Career
모크타르 다하리의 선수 경력은 말레이시아 축구의 황금기를 상징하며, 그가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보여준 활약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탁월한 득점력과 리더십으로 팀을 수많은 승리로 이끌었으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1. Club Career
모크타르 다하리는 슬랑오르 FA 유소년팀에서 뛰며 번리 유스컵 우승에 기여했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슬랑오르 FA 성인팀에 합류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축구 리그는 아마추어 리그였기 때문에, 그는 낮에는 슬랑오르 주 개발공사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축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다.
슬랑오르 FA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1972년에 그는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큰 활약을 펼쳤다. 이후 그는 슬랑오르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1972년부터 1986년까지 총 10차례의 말레이시아컵 우승을 포함하여 수많은 클럽 타이틀을 획득했다. 슬랑오르 FA에서 그는 총 177골을 기록하며 클럽 역사상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팀에 대한 깊은 충성심을 "나는 슬랑오르를 위해 살고 죽는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슬랑오르 FA 외에도 켈라브 술탄 술라이만, PKNS, 탈라스코, 쾅익 은행 등 여러 팀에서 뛰었으며, 1982년에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보카 주니어스와의 친선 경기에 참가하여 마라도나와 함께 등 번호 10번을 달고 경기에 임하기도 했다. 그는 1986년 말레이시아컵 우승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으나, 1987년 1월 한 시즌 더 뛰기 위해 현역으로 복귀했다.
2.2. International Career
모크타르 다하리는 19세였던 1972년, 스리랑카와의 자카르타 창립 기념 축구 대회 경기를 통해 말레이시아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는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5골을 넣는 활약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1977년과 1979년에 금메달을 획득했고, 1973년에는 동메달, 1975년과 1981년에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국제 축구 대회인 메르데카 국제축구대회에서도 1973년, 1974년, 1976년, 1979년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4회 우승에 기여했다. 1976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여 중국과의 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며 말레이시아가 5위를 차지하는 데 일조했다.
말레이시아 국가대표팀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으나, 말레이시아의 올림픽 보이콧 동참으로 아쉽게도 대회에 불참하게 되었다.
1975년에는 말레이시아 리그 선발팀 소속으로 아스널 FC와 친선 경기를 치러 2골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 활약으로 잉글랜드 축구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스페인의 명문 클럽 레알 마드리드 CF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슬랑오르와 말레이시아에 대한 애착심과 애국심을 이유로 이 제의를 거절했다. 1978년에는 보비 롭슨이 이끌던 잉글랜드 B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하프라인 부근에서 조 코리건을 제치고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2-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이 경기 이후 잉글랜드 축구 선수 고든 힐은 그를 "영웅 다하리"라 칭송하기도 했다.
그는 1981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으나, 1984년 메르데카 대회 참가 요청을 받고 잠시 복귀하기도 했다. 1985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대한민국과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1988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대표팀 시범 경기를 뛴 후 국가대표팀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2.3. Playing Style and Impact
모크타르 다하리는 필드 위에서 보여준 뛰어난 기술과 강력함으로 '슈퍼모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특히 엄청난 스피드와 정확한 슈팅 능력으로 유명했다. 관중들은 그의 플레이에 열광하며 "슈퍼모흐"를 연호했고, 수많은 젊은 세대의 축구 팬들은 그를 우상으로 삼아 그의 움직임을 모방하려 노력했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한 경기력을 넘어 말레이시아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그의 애국심은 다른 선수들과 팬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23세의 나이에 그는 월드 사커 잡지에 의해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선정되기도 했다.
2.4. Retirement and Comeback
모크타르 다하리는 1986년 5월, 슬랑오르 FA가 말레이시아컵에서 우승한 직후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 그는 클럽 회장에게 자신의 상징적인 등 번호 10번 유니폼을 건네며 클럽에 보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은퇴를 번복하고 1987년 1월, 슬랑오르 FA에서 한 시즌 더 뛰기 위해 현역으로 복귀했다.
3. Coaching Career
선수 생활 은퇴 후 모크타르 다하리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말레이시아 축구의 미래를 이끌었다.
3.1. Transition to Coaching
선수 시절 부상 문제에 시달리던 모크타르는 은퇴 후 젊은 세대 선수들이 더 훌륭한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지역 코치가 되었다. 그는 과거 슬랑오르 FA의 팀 동료였던 레두안 압둘라에게 자신의 삶과 경력에 대한 책을 쓰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3.2. Coaching Philosophy and Influence
모크타르는 선수 겸 감독으로서 RHB 은행의 전신인 쾅익 은행 팀에서 활동했다. 그는 또한 때때로 친정팀인 슬랑오르 FA의 코치로도 활동하며 젊은 선수들에게 축구 기술을 전수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의 지도 철학은 젊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직접 훈련시킨 선수 중에는 훗날 리더노믹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가 된 로샨 티란과 같은 인물도 있다. 로샨 티란은 모크타르의 지도 아래에서 뛴 경험에 대해 종종 강연을 하기도 한다.
4. Personal Life
모크타르 다하리의 개인적인 삶은 그의 직업 활동만큼이나 모범적이고 헌신적이었다. 그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대로 가족에게 충실하며, 축구 외적인 활동에서도 건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모크타르는 독실한 무슬림이었으며, 논란이나 스캔들을 피하고 흡연을 하지 않는 등 자신을 철저히 관리했다. 그는 훈련 중에는 방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할 정도로 자기 절제와 건강 관리를 중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전에도 그는 배드민턴, 세팍타크로, 하키 등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 그는 슬랑오르 주 개발공사에서 오후에 일하고 저녁에 축구를 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수입이 많지 않았다. 이후 그는 자신과 가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쾅익 은행(현재의 RHB 은행)으로 이직했다. 모크타르는 친구를 통해 텡쿠 자리나 텡쿠 이브라힘을 만났다. 10년간의 교제 끝에 1979년 2월 24일 결혼했으며, 장녀 누르 아제라(1982년생), 장남 모드 레자(1980년생), 차녀 누르 아리나(1984년생) 세 자녀를 두었다.
5. Illness and Death
모크타르 다하리의 죽음은 말레이시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의 사인은 한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5.1. Diagnosis and Treatment
모크타르는 1989년부터 목에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그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MND, Motor Neurone Disease)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이 사실은 그와 그의 아내에게만 알려졌다. 그는 병세를 치료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런던으로 건너가기도 하는 등 3년간 병마와 싸웠다.
5.2. Death and Aftermath
모크타르 다하리는 병세가 악화되면서 1991년 7월 11일, 슬랑오르 주 수방자야 의료 센터에서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언론은 그의 사인을 근이영양증으로 보도했다. 그의 유해는 슬랑오르 주 암팡자야의 타만 케라맛 페르마이 무슬림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실제 사인과 삶의 여정은 사망 후 약 19년이 지난 2010년 8월 30일,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슈퍼모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진실》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협조를 받아 제작되었다.
6. Career Statistics
모크타르 다하리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여러 중요한 기록을 세웠다. 그는 슬랑오르 FA에서 177골을 기록하여 클럽 역사상 최다 득점자로 남아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총 167번의 경기에 출전하여 125골을 기록했으며, 이 중 국제 A매치(국가대표팀 간의 공식 경기)에서 142경기에 출전하여 89골을 기록했다. 이 89골은 그를 말레이시아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로 만들었다.
그는 1980년에 85골을 기록하며 페렌츠 푸슈카시의 84골 기록을 넘어섰고, 거의 24년간 세계 남자 국가대표팀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유지했다. 이 기록은 2004년 이란의 알리 다에이가 90골을 기록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또한 그는 22세 273일의 나이로 남자 국가대표팀에서 50골을 달성한 가장 어린 선수였다. 1979년 5월 2일부터 2004년 6월 16일까지는 가마모토 구니시게의 75골 기록을 넘어 아시아 역대 최다 득점자였다. 그의 89골은 현재도 동남아시아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 남자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6.1. International Goals
다음은 모크타르 다하리가 말레이시아 국가대표팀에서 기록한 국제 A매치 득점 기록이다.
No. | 날짜 | 장소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1 | 1972년 6월 5일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스리랑카 | 3-0 | 3-0 | 1972년 자카르타 기념 토너먼트 |
2 | 1972년 6월 9일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라오스 | 2-1 | 2-1 | 1972년 자카르타 기념 토너먼트 |
3 | 1972년 6월 15일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미얀마 | 2-0 | 2-2 | 1972년 자카르타 기념 토너먼트 |
4 | 1972년 7월 19일 | 페락 스타디움, 이포, 말레이시아 | 크메르 공화국 | 6-1 | 6-1 | 1972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5 | 1972년 11월 20일 | 방콕, 태국 | 태국 | 2-0 | 2-0 | 1972년 킹스컵 |
6 | 1972년 11월 28일 | 방콕, 태국 | 태국 | 1-0 | 1-0 | 1972년 킹스컵 |
7 | 1973년 8월 1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태국 | 2-0 | 2-2 | 1973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8 | 1973년 8월 4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인도 | 4-0 | 4-0 | 1973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9 | 1973년 8월 12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쿠웨이트 | 1-1 | 3-1 | 1973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10 | 3-1 | |||||
11 | 1973년 9월 7일 | 칼랑 스타디움, 싱가포르 | 싱가포르 | 2-0 | 3-0 | 1973년 동남아시아반도 경기대회 |
12 | 1973년 9월 23일 | 서울, 대한민국 | 태국 | 4-1 | 5-1 | 1973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
13 | 1973년 11월 1일 | 사이공, 베트남 공화국 | 베트남 공화국 | 1 | 5-1 | 1973년 베트남 공화국 독립컵 |
14 | 2 | |||||
15 | 1973년 11월 3일 | 사이공, 베트남 공화국 | 싱가포르 | 2-0 | 2-1 | 1973년 베트남 공화국 독립컵 |
16 | 1973년 12월 20일 | 방콕, 태국 | 크메르 공화국 | 1-0 | 3-2 | 1973년 킹스컵 |
17 | 2-1 | |||||
18 | 3-2 | |||||
19 | 1973년 12월 23일 | 방콕, 태국 | 태국 | 1-0 | 1-0 | 1973년 킹스컵 |
20 | 1973년 12월 25일 | 방콕, 태국 | 대한민국 | 1-2 | 1-2 | 1973년 킹스컵 |
21 | 1974년 6월 7일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 2-3 | 3-4 | 1974년 자카르타 기념 토너먼트 |
22 | 3-3 | |||||
23 | 1974년 7월 27일 | 페락 스타디움, 이포, 말레이시아 | 홍콩 | 1-0 | 1-0 | 1974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24 | 1974년 8월 1일 | 페락 스타디움, 이포, 말레이시아 | 태국 | 1-0 | 1-0 | 1974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25 | 1974년 9월 7일 | 테헤란, 이란 | 필리핀 | 2-0 | 11-0 | 1974년 아시안 게임 축구 |
26 | 3-0 | |||||
27 | 7-0 | |||||
28 | 9-0 | |||||
29 | 10-0 | |||||
30 | 1974년 12월 10일 | 방콕, 태국 | 태국 | 2-0 | 2-0 | 1974년 킹스컵 |
31 | 1974년 12월 20일 | 방콕, 태국 | 크메르 공화국 | 2-0 | 3-0 | 1974년 킹스컵 |
32 | 3-0 | |||||
33 | 1975년 3월 16일 | 방콕, 태국 | 대한민국 | 2-1 | 2-1 | 1976년 AFC 아시안컵 예선 |
34 | 1975년 6월 16일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대한민국 | 1-1 | 1-1 (5-4 승부차기 승) | 1975년 자카르타 기념 토너먼트 |
35 | 1975년 7월 29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대한민국 | 1-3 | 1-3 | 1975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36 | 1975년 8월 4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태국 | 1-0 | 1-0 | 1975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37 | 1975년 8월 6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방글라데시 | 3-0 | 3-0 | 1975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38 | 1975년 8월 8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홍콩 | 2-0 | 3-1 | 1975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39 | 1975년 8월 10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미얀마 | 2-1 | 2-1 | 1975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40 | 1975년 12월 9일 | 방콕, 태국 | 태국 | 1-1 | 1-1 (3-4 승부차기 패) | 1975년 동남아시아반도 경기대회 |
41 | 1975년 12월 13일 | 방콕, 태국 | 미얀마 | 1-0 | 1-0 | 1975년 동남아시아반도 경기대회 |
42 | 1975년 12월 16일 | 방콕, 태국 | 태국 | 1-2 | 1-2 | 1975년 동남아시아반도 경기대회 |
43 | 1976년 2월 15일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파푸아뉴기니 | 1-0 | 10-1 | 1976년 올림픽 예선 |
44 | 7-0 | |||||
45 | 1976년 2월 21일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싱가포르 | 2-0 | 6-0 | 1976년 올림픽 예선 |
46 | 6-0 | |||||
47 | 1976년 6월 5일 | 타브리즈, 이란 | 중국 | 1-0 | 1-1 | 1976년 AFC 아시안컵 |
48 | 1976년 8월 7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대한민국 | 1-0 | 2-1 | 1976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49 | 1976년 8월 12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인도 | 2-0 | 5-1 | 1976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50 | 3-0 | |||||
51 | 1976년 8월 14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4-0 | 7-1 | 1976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52 | 5-0 | |||||
53 | 1976년 8월 17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미얀마 | 1-0 | 3-1 | 1976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54 | 1976년 8월 22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일본 | 1-0 | 2-0 | 1976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55 | 2-0 | |||||
56 | 1976년 9월 11일 | 동대문운동장, 서울, 대한민국 | 대한민국 | 4-1 | 4-4 | 1976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
57 | 1976년 9월 13일 | 서울, 대한민국 | 싱가포르 | 3-0 | 2-0 | 1976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
58 | 4-0 | |||||
59 | 1977년 7월 18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태국 | 2-0 | 3-0 | 1977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60 | 1977년 7월 26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대한민국 | 1-1 | 1-1 | 1977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61 | 1977년 7월 29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1-1 | 5-1 | 1977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62 | 1977년 11월 21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필리핀 | 2-0 | 5-0 | 1977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
63 | 4-0 | |||||
64 | 1977년 11월 23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브루나이 | 3-0 | 7-0 | 1977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
65 | 1977년 11월 25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미얀마 | 2-0 | 9-1 | 1977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
66 | 3-0 | |||||
67 | 4-0 | |||||
68 | 7-1 | |||||
69 | 8-1 | |||||
70 | 1977년 11월 26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태국 | 2-0 | 2-0 | 1977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
71 | 1978년 7월 14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 1-0 | 6-0 | 1978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72 | 4-0 | |||||
73 | 1978년 7월 16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태국 | 1-0 | 2-0 | 1978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74 | 1978년 7월 19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1-0 | 1-0 | 1978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75 | 1979년 5월 2일 | 방콕, 태국 | 스리랑카 | 1-0 | 3-1 | 1980년 AFC 아시안컵 예선 |
76 | 3-1 | |||||
77 | 1979년 5월 5일 | 방콕, 태국 | 인도네시아 | 4-1 | 4-1 | 1980년 AFC 아시안컵 예선 |
78 | 1979년 6월 29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미얀마 | 1-0 | 4-1 | 1979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79 | 2-0 | |||||
80 | 3-0 | |||||
81 | 1979년 9월 23일 | 세나얀 스타디움,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싱가포르 | 2-0 | 2-0 | 1979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
82 | 1979년 9월 30일 | 세나얀 스타디움,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 1-0 | 1-0 | 1979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
83 | 1980년 10월 15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모로코 | 2-0 | 2-0 | 1980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84 | 1980년 10월 20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태국 | 1-0 | 2-2 | 1980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85 | 1980년 10월 27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쿠웨이트 | 1-1 | 2-1 | 1980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86 | 1980년 10월 30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뉴질랜드 | 1-0 | 2-0 | 1980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87 | 1981년 4월 5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 1-0 | 1-1 | 1981년 오벌틴 컵 |
88 | 1981년 9월 9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1-0 | 2-0 | 1981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89 | 1981년 9월 15일 | 메르데카 스타디움,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인도 | 2-1 | 2-2 | 1981년 메르데카 토너먼트 |
7. Honours and Awards
모크타르 다하리는 선수 생활 동안 수많은 팀 및 개인 수상 경력을 쌓으며 말레이시아 축구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7.1. Club Honours
슬랑오르 FA
- 말레이시아 1부 리그: 1980, 1984
- 말레이시아컵: 1972, 1973, 1975, 1976, 1978, 1979, 1981, 1982, 1984, 1986
- 말레이시아 채리티 실드: 1985, 1987
7.2. International Honours
말레이시아
- 메르데카 국제축구대회: 1973, 1974, 1976, 1979
- 킹스컵: 1972, 1978
-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 축구: 금메달 1977, 1979; 은메달 1975, 1981; 동메달 1973
- 아시안 게임 축구: 동메달 1974
7.3. Individual Awards and Records
- 올해의 말레이시아 스포츠 선수: 1976
- 월드 사커: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1976
- AFC 아시안 올스타: 1982
- AFC 센추리 클럽: 1999
- IFFHS 남자 20세기 말레이시아 최고 선수 (1901-2000)
- IFFHS 남자 말레이시아 역대 드림팀: 2022
- OCM 명예의 전당: 2004
- 전직 주 및 국가 축구 선수 협회 말레이시아 명예: 2011
- 《포포투》 선정 역대 말레이시아 선수 Top 25 (1위): 2014
- 골닷컴 선정 역대 말레이시아 베스트 XI: 2020
기록
- 슬랑오르 역대 최다 득점자: 177골
-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89골
- 동남아시아 남자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89골
- 아시아-태평양 남자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89골
- 20세기 남자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1901-2000): 89골
- 남자 국가대표팀에서 50골을 기록한 최연소 선수: 22세 273일
- 1980년 10월 27일부터 2004년 6월 16일까지 페렌츠 푸슈카시의 84골을 넘어선 남자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 1979년 5월 2일부터 2004년 6월 16일까지 가마모토 구니시게의 75골을 넘어선 아시아 역대 최다 득점자
7.4. National and State Orders
모크타르 다하리는 말레이시아 국가와 슬랑오르 주, 파항 주로부터 여러 명예로운 훈장과 작위를 수여받았다.
- Malaysia영어 :
- 국가 수호자 훈장 회원 (AMN): 1977년
- Pahang영어 :
- 파항 왕관 훈장 기사 동료 (DIMP) - 다토 작위: 2000년 (사후 수여)
- Selangor영어 :
- 공로 훈장 (PJK): 1977년
- 술탄 살라후딘 압둘 아지즈 샤 훈장 기사 동료 (DSSA) - 다토 작위: 2001년 (사후 수여)
8. Legacy and Memorials
모크타르 다하리의 사망 이후에도 그의 유산은 말레이시아 사회에 깊이 남아있으며, 그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기념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8.1. Places and Institutions Named After Him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여러 장소와 기관들이 있다.
- 모크타르 다하리 커뮤니티 광장 (Dataran Komuniti Mokhtar Dahari): 쿠알라룸푸르 캄풍 판단에 위치한 커뮤니티 홀로, 모크타르가 생전에 거주하며 종종 축구를 하던 곳이다.
- 모크타르 다하리 풋살장 (Gelanggang Mokhtar Dahari): 푸트라자야 풋살 단지에 위치한 풋살 경기장이다.
- 모크타르 다하리 국립 축구 아카데미 (Akademi Bola Sepak Negara Mokhtar Dahari): 2014년 4월 10일 파항 주 감방에 설립된 국가 축구 아카데미이다.
- 페르시아란 모크타르 다하리 (Persiaran Mokhtar Dahari): 2014년에 샤알람과 푼착 알람을 연결하는 샤알람-바투 아랑 고속도로의 이름이 모크타르 다하리 고속도로로 변경되었다.
8.2. Cultural Impact
모크타르 다하리의 삶과 업적은 대중문화와 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을 미 미쳤다.
- 2014년 11월 13일, 구글은 그의 61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특별한 구글 두들을 제작했다.
- 아위가 모크타르 다하리 역을 맡아 이스타나 부다야에서 그의 전설적인 축구 경력을 다룬 '슈퍼모흐'라는 제목의 뮤지컬 공연이 상연되었다.
9. Filmography
다음은 모크타르 다하리가 출연하거나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작품이다.
연도 | 제목 | 역할 |
---|---|---|
1983 | 《Mekanik》 | 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