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마르코 페차이올리(Marco Pezzaiuoli독일어, 1968년 11월 16일 ~ )는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재 축구 지도자이다. 그는 TSG 호펜하임, 세레소 오사카, 벵갈루루 FC 등 여러 클럽에서 감독직을 역임했으며, 독일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2009년 UEFA U-17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독일 U-17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수석 코치로 활동했으며, 이 기간 동안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현재는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클럽인 갈라타사라이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2. 개인사 및 배경
마르코 페차이올리의 개인적인 배경은 그의 다문화적 뿌리와 독일 내에서의 독특한 성씨 문제로 특징지어진다.
2.1. 출생 및 가족 관계
페차이올리는 1968년 11월 16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만하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인 레스토랑 주인이었고, 어머니는 네덜란드인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K리그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코치로 활동하던 중 한국인 패션 디자이너와 만나 결혼했다.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2.2. 개인적 배경
페차이올리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성씨인 Pezzaiuoli페차이올리이탈리아어는 이탈리아계이다. 이로 인해 독일어권에서는 그의 성씨가 발음하기 어려워 뉴스나 축구 중계 등에서 종종 잘못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3. 선수 경력
마르코 페차이올리의 선수 경력은 짧았으나, 이후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되었다.
3.1. 초기 경력 및 은퇴
페차이올리는 독일 축구 리그 시스템의 5부 리그에 해당하는 페어반츠리가 바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SV 98 슈베칭겐과 VfR 만하임에서 뛰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1991년 23세의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으며, VfR 만하임이 그의 마지막 소속 클럽이었다.
4. 지도자 경력
마르코 페차이올리는 선수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유소년 코치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경험을 쌓았다.
4.1. 지도자 경력 초기
페차이올리는 1991년부터 코치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4.1.1. 칼스루에 SC
1991년부터 페차이올리는 칼스루에 SC의 유스 코치로 활동했다. 1999-2000 시즌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요아힘 뢰브 아래에서 유스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그는 칼스루에 SC에서 두 차례 임시 감독을 맡았다. 첫 번째는 2000년 4월 20일 요아힘 뢰브 감독이 사임한 후였으며, 이후 슈테판 쿤츠가 다음 시즌에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두 번째 임시 감독직은 2002년 9월 25일 쿤츠 감독이 해임된 후였다. 그는 2002년 10월 1일 로렌츠-귄터 쾨스트너가 부임하기 전까지 팀을 이끌었다. 2002-2003 시즌에는 전술 코치로도 활동했으며, 쾨스트너 감독 부임 후에는 어시스턴트 코치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구단 내부 문제로 인해 2003년 3월에 사임했다.
4.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년 여름, 페차이올리는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이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어시스턴트 코치로 합류했다. 당시 코칭스태프에는 조제 카를루스 세종 등도 함께했다. 그는 수원에서의 첫 해인 2004년에 K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2006년에는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4.2. 클럽 감독 활동
페차이올리는 초기 지도자 경력 이후 여러 클럽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이끌었다.
4.2.1.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2006년 9월 20일, 페차이올리는 당시 오버리가 (레기오날리가) 소속이던 아인트라흐트 트리어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시즌 종료까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는 부임 후 첫 경기에서 EGC 비르게스에게 6대5로 패배했다. 팀의 성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다섯 경기 만인 2006년 10월 30일에 해임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세 경기를 패배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아인트라흐트 바트 크로이츠나흐에게 2대1로 패한 경기였다.
4.2.2. TSG 호펜하임
2010년 7월 1일, 페차이올리는 랄프 랑니크 감독 아래 TSG 호펜하임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합류했다. 2011년 1월 2일, 랑니크 감독이 구단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사임하자, 페차이올리가 후임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2011년 2월 4일에는 2013년까지의 정식 계약을 체결하며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부임 후 여덟 경기 중 단 한 경기만 승리하는 등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결국 2011년 4월 12일 구단은 그가 시즌 종료와 함께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 후 사흘 뒤인 2011년 5월 17일, 홀거 스타니슬라프스키가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페차이올리는 이후 어시스턴트 코치로 잔류하지 않고 팀을 떠났다.
4.2.3. 세레소 오사카
2014년 6월 16일, 페차이올리는 란코 포포비치의 후임으로 세레소 오사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그는 J리그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기록하지 못하며 팀을 재건하는 데 실패했다. 천황배에서는 카탈레르 도야마를 1대0으로 꺾고 승리했으며, J리그컵 8강 2차전에서는 가와사키 프론탈레 원정에서 승리했지만, 합계 점수에서 밀려 탈락했다. 결국 성적 부진으로 인해 2014년 9월 8일, 그는 세레소 오사카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4.2.4. 벵갈루루 FC
2021년 2월 12일, 페차이올리는 인도 슈퍼리그 소속 클럽인 벵갈루루 FC의 감독으로 3년 성과 기반 계약을 맺고 부임했다. 벵갈루루에서의 첫 비공식 경기는 2021년 4월 7일 FC 고아와의 친선 경기였으며, 클레이튼 실바의 득점으로 1대0 승리를 거두었다. 그의 첫 공식 경기는 2021 AFC컵 예선 1라운드 네팔 아미 클럽과의 경기였으며, 5대0 대승을 기록했다. 2022년 6월 8일, 벵갈루루 FC는 페차이올리와의 결별을 공식 발표했다.
4.3. 독일 청소년 대표팀 지도
2006년 2006 FIFA 월드컵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어시스턴트 코치직에 지원했으나, 한스-디터 플리크에게 밀려 낙선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독일 U-16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는 독일 U-17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이 기간 동안 2009 UEFA U-17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그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독일 U-15 대표팀 감독, 그리고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독일 U-18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4.4. 기타 지도자 역할
2014년 10월 20일, 페차이올리는 광저우 헝다의 U-17 감독 겸 유스 디렉터로 부임하여 2017년 11월 30일까지 재직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활동했다. 현재 그는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클럽인 갈라타사라이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5. 주요 업적 및 수상
- K리그 우승 (2004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어시스턴트 코치)
- UEFA U-17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2009년, 독일 U-17 대표팀 감독)
6. 지도자 통계
팀 | 재임 시작 | 재임 종료 | 경기 수 | 승 | 무 | 패 | 승률 |
---|---|---|---|---|---|---|---|
칼스루에 SC | 2000년 4월 20일 | 2000년 6월 30일 | 7 | 2 | 2 | 3 | 28.57% |
칼스루에 SC | 2002년 9월 25일 | 2002년 10월 1일 | 1 | 0 | 1 | 0 | 0.00% |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 2006년 9월 20일 | 2006년 10월 30일 | 5 | 2 | 0 | 3 | 40.00% |
TSG 호펜하임 | 2011년 1월 2일 | 2011년 5월 17일 | 18 | 5 | 3 | 10 | 27.78% |
세레소 오사카 | 2014년 6월 16일 | 2014년 9월 8일 | 9 | 0 | 4 | 5 | 0.00% |
벵갈루루 FC | 2021년 2월 12일 | 2022년 6월 8일 | 19 | 7 | 5 | 7 | 36.84% |
총계 | 59 | 17 | 16 | 26 | 28.81% |
7. 영향력 및 평가
마르코 페차이올리는 선수 육성 및 유스 시스템 구축에 강점을 가진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칼스루에 SC에서 유스 코치, 코디네이터, 전술 코치 등 다양한 유스 관련 직책을 역임하며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기여했다. 특히 독일 U-17 대표팀을 이끌고 2009 UEFA U-17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그의 유스 지도 역량을 명확히 보여주는 성과이다. 이 시기 그는 마리오 괴체, 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베른트 레노, 슈코드란 무스타피 등 이후 독일 축구의 주축이 된 유망주들을 지도했다. 광저우 헝다에서도 U-17 감독 겸 유스 디렉터로 활동하며 유소년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반면,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TSG 호펜하임, 세레소 오사카와 같은 성인 클럽에서의 감독직은 재임 기간이 짧고 성적 부진으로 인해 해임되는 경우가 많아, 성인 팀 감독으로서의 안정적인 성과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는 그의 강점이 주로 유소년 및 개발 단계의 팀 지도에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