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돈 카를로스 페이스 주니어는 미국 인디애나주 워싱턴에서 돈 카를로스 페이스 준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과 군 경력 초기는 다음과 같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페이스는 1918년 8월 26일 인디애나주 워싱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입학에 필요한 의학적 기준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대신 조지타운 대학교에 입학했다.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그는 델타 파이 엡실론 외교 서비스 친목회의 회원이었다.
1.2. 군 경력 초기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이 다가오던 1940년, 미국 의회는 선택 훈련 및 복무법을 통과시켰다. 페이스는 징병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미국 육군사관학교 입학을 좌절시켰던 동일한 치과 문제로 인해 다시 거부되었다. 그러나 페이스는 징병 위원회의 결정에 성공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고, 조지타운 대학교 졸업 후 1941년 6월 25일 입대했다. 장교 후보생 학교를 수료한 후, 그는 1942년 2월 26일 미국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2.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페이스 중위는 미국 제82공수사단에 배속되어 전쟁 기간 동안 이 사단에서 복무했다. 그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82사단장 매튜 리지웨이 준장의 부관으로, 그리고 사단의 참모 장교로 복무했다.

그는 전쟁 중 북아프리카 전역 (Operation Torch영어), 이탈리아 전역 (Operation Husky영어), 프랑스 (Operation Overlord영어), 네덜란드 (Operation Market Garden영어), 그리고 독일 (Operation Varsity영어)에서의 모든 사단 전투 강하에 참여했다. 이 복무 기간 동안 페이스는 청동성 훈장을 두 번 수훈했으며, 맥스웰 D. 테일러 소장의 참모진에서 중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1945년 6월 16일에 중령 계급을 받았다.
그의 주요 계급 진급 이력은 다음과 같다.
계급 | 진급일 |
---|---|
입대 | 1941년 6월 25일 |
소위 | 1942년 2월 27일 |
중위 | 1942년 7월 15일 |
대위 | 1943년 2월 24일 |
소령 | 1944년 5월 10일 |
중령 | 1945년 6월 16일 |
3. 한국 전쟁 참전 및 장진호 전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페이스는 중국 주둔 군사 임무에서 복무하다가 철수했다. 그의 다음 임무는 일본에 주둔한 미국 제7보병사단의 대대장이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페이스와 7보병사단은 대한민국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페이스는 미국 제32보병연대 제1대대장이었다.
미국 제31보병연대 전투단 (31 RCT)은 압록강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북쪽으로 진격하는 부대의 일부였다. 31 RCT는 1950년 11월 27일 밤 중국 인민지원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았을 때 장진호 동쪽 제방에 있었다. 이 공격은 1950년 12월 13일까지 계속된 장진호 전투의 시작이었다.
3.1. 지휘관으로서의 역할
12월 1일, 유일한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필사적인 호송대 이동 중, 31 RCT 지휘관 앨런 D. 맥린 대령이 전사했다. 이에 따라 연대 전체의 지휘권은 페이스 중령에게 넘어갔다. 같은 날, 페이스는 인민지원군의 도로 차단 지점에 대한 공격을 지휘하다가 파편 수류탄에 부상을 입었다. 페이스는 2.5톤 트럭의 운전석에 실렸고, 러셀 L. 바니 일병이 운전하는 이 트럭은 마지막 도로 차단 지점을 통과한 유일한 차량이었다.
3.2. 전사 및 실종
바니 일병이 운전하는 동안, 트럭은 인민지원군의 소화기 사격에 다시 피격되었고, 이때 페이스는 추가로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바니 일병은 어느 시점에 트럭을 버려야 했고, 페이스의 시신은 차량 안에 남겨졌다. 바니 일병은 유엔군 전선으로 복귀하여 그의 증언을 보고했다. 호송대 차량 중 안전 지역에 도달한 차량이 없었기에, 인민지원군에 의해 살해되어 버려진 모든 호송대 차량과 함께 페이스는 전투 중 실종으로 분류되었다.
이후 페이스의 분류는 전사, 유해 미수습으로 변경되었다. 62년 동안 이 분류에 남아있던 페이스의 유해는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사령부 (Joint Prisoners of War, Missing in Action Accounting Command, JPAC영어) 현장 수색팀에 의해 장진호 근처에서 수습되었다. 그의 유해는 DNA 감식을 통해 2012년 10월 11일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사무소에 의해 신원이 확인되었다고 대중에 발표되었다. 그는 2013년 4월 17일 알링턴 국립묘지에 완전한 군 예우를 갖춰 안장되었다.
4. 명예 훈장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페이스에게 사후 명예 훈장을 수여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 훈장은 1951년 6월 21일 워싱턴 D.C.에서 당시 합동참모본부 의장이었던 오마 브래들리 장군이 페이스의 부인 바버라 페이스에게 수여했다. 육군부의 공식 훈장 및 인용문은 1951년 8월 2일자 일반 명령 제59호로 발표되었다.
명예 훈장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이름으로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북한 하가루리 (장진호)에서 적군에 맞서 미국 제7보병사단 미국 제32보병연대 제1대대장으로 복무하며 임무를 초월한 뛰어난 용맹과 대담함을 보여준 (보병) 중령 돈 카를로스 페이스 주니어(군번: O-46673)에게 (사후) 명예 훈장을 수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적이 그의 대대에 광적인 공격을 시작했을 때, 페이스 중령은 주저 없이 심한 적의 포화에 자신을 노출시키며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적이 진지를 돌파했을 때, 페이스 중령은 직접 반격을 이끌어 진지를 회복했습니다. 그의 대대가 다른 미군 부대와 합류하기 위한 공격 중, 페이스 중령은 얼어붙은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그의 부대 선두 요소들을 위해 경로를 정찰하고 직접 지휘했으며, 부상병을 실은 차량들이 그의 모든 부대가 적의 사격을 통과할 때까지 이동하는 것을 지휘했습니다. 이를 완료한 후 그는 직접 저수지를 건넜습니다. 그가 합류한 부대의 지휘를 맡은 그는 남쪽에 있는 아군 요소들과 합류하기 위한 공격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페이스 중령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육체적으로 지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조직하여 시작했지만, 곧 적의 사격에 의해 저지되었습니다. 그는 적의 소화기 및 자동화기 사격 아래 앞으로 달려나가 병사들을 일으켜 세웠고,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아가는 사격 공격을 직접 이끌었습니다. 그들이 급커브에 도달했을 때, 도로 차단 지점의 적 사격이 다시 종대를 묶어놓았습니다. 페이스 중령은 병사들을 조직하여 우익의 적 진지에 대한 공격을 지휘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다른 병사들 무리의 선두에 서서 직접적인 적의 사격에 맞서 권총을 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며 적의 도로 차단 지점에 대한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도로 차단 지점에서 약 30 yd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을 때 그는 치명상을 입었지만, 도로 차단 지점이 점령될 때까지 공격을 계속 지휘했습니다. 5일간의 작전 내내 페이스 중령은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장 위험한 위치에 매번 나타난 것은 그의 병사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가 병사들의 선두에서 직접 가한 피해는 여러 차례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페이스 중령의 임무를 초월한 뛰어난 용맹과 숭고한 자기희생은 그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주며 미 육군의 최고 전통에 부합합니다.
:(이 훈장은 1951년 2월 23일자 제10군단 사령부 일반 명령 제32호에 발표된 1950년 11월 27일 전투에서의 용맹에 대한 이전의 은성 훈장 (첫 번째 참나무 잎 클러스터) 수여를 대체합니다.)
5. 주요 훈장 및 표창
돈 카를로스 페이스 주니어 중령이 수훈한 주요 훈장 및 표창은 다음과 같다.
- 명예 훈장
- 은성 훈장
- 청동성 훈장 (3회)
- 퍼플 하트 (2회)
- 전투보병휘장 (별 포함)
- 강하조장 휘장 (4개의 전투 강하 별 포함)
- 대통령 부대 표창
- 미국 방위 공로 훈장
- 미국 전역 훈장
- 유럽-아프리카-중동 전역 훈장 (화살촉 장식 및 6개의 전역 별 포함)
- 제2차 세계 대전 승리 훈장
- 점령군 훈장
- 국방근무훈장
- 한국 근무 훈장 (3개의 전역 별 포함)
- 붉은 별 훈장 (소련)
- 유엔 한국 근무 훈장
- 대한민국 종군기장
-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
6. 사후 평가 및 추모
돈 카를로스 페이스 주니어는 그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사후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1976년, 페이스는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있는 미 육군 장교 후보생 학교 명예의 전당에 사후 헌액되었다. 그는 2013년 4월 17일 알링턴 국립묘지에 완전한 군 예우를 갖춰 안장되었다. 그의 유해는 62년간 전투 중 실종 상태였다가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사령부의 노력으로 신원이 확인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희생과 용기는 미국 육군의 역사에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으며, 그의 이름은 한국 전쟁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