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대런 깁슨은 1987년 10월 25일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St Columb's College의 학생이었으며, 어린 시절 Derry and District League에서 주니어 축구를 했다. 이후 인스티투트에서 뛰다가 2004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유소년 경력을 시작했다.
2. 클럽 경력
대런 깁슨은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데뷔를 한 후, 여러 클럽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주로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강한 중거리 슈팅이 장점이었다.
2.1. 유소년 경력
깁슨은 북아일랜드 데리에 위치한 지역 팀인 인스티투트에서 유소년 축구를 시작했다. 2004년, 그는 잉글랜드의 명문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깁슨은 2005년 10월 26일, 풋볼 리그 컵 바넷과의 경기에서 리 마틴과 교체되어 출전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성인 팀에 데뷔했다. 2005-06 시즌 동안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저브 팀에서 정기적으로 뛰며 팀의 3관왕 달성에 기여했고, 19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2006년 5월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최고의 유소년 선수에게 주어지는 권위 있는 지미 머피 상을 수상했다.
2006-07 시즌에는 벨기에의 로열 앤트워프로 임대되어 2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007년 10월에는 EFL 챔피언십 소속의 울버햄프턴 원더러스로 임대되어 2007-08 시즌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2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는데, 2007년 12월 8일 번리를 상대로 득점을 올렸다.
2008년 11월 15일, 깁슨은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열흘 뒤인 11월 25일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 대런 플레처와 교체되어 출전하며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2008년 12월, 그는 2008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쿼드에 포함되었고, 비록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9년 1월 4일, 깁슨은 FA 컵 3라운드 사우샘프턴과의 3-0 승리 경기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이자 자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첫 골을 기록했다. 2009년 3월 1일, 그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 풋볼 리그 컵 결승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 폴 스콜스와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하여 연장전 시작 직전 라이언 긱스와 교체될 때까지 90분 내내 뛰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4-1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5월 24일, 그는 2008-09 프리미어리그 시즌의 마지막 경기인 헐 시티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자신의 첫 리그 골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깁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2012년까지 3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2009년 11월 25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베식타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0-1로 패하며 유럽 대항전 홈 4년 무패 기록이 깨지자, 깁슨을 포함한 젊은 선수들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패배 6일 후인 12월 1일, 깁슨은 리그 컵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 팀의 2-0 승리를 이끌며 비판에 응답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경기 시작 3분 만에 장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첫 UEFA 주관 대회 득점을 기록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 경기에서 3-2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총합 4-4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바이에른에 밀려 탈락했다.
2010-11 시즌의 첫 골은 9월 22일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터졌다. 2011년 2월,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 조반니 트라파토니는 깁슨에게 경력 발전을 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깁슨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샬케와의 경기에서 득점하며 팀의 4-1 승리(총합 6-1)에 기여했지만, 바르셀로나에 1-3으로 패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교체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2011년 여름, 선덜랜드는 깁슨 영입을 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이적료에 합의했으나, 깁슨이 개인 조건에 동의하지 않아 이적이 불발되었다. 결국 그는 2011-12 시즌에 단 두 차례만 경기에 출전한 뒤, 2012년 1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났다.
2.3. 에버턴
2012년 1월 13일, 깁슨은 이적료가 공개되지 않은 채 에버턴과 계약했다. 그는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아래 필 네빌, 팀 하워드, 루이 사아에 이어 에버턴으로 이적한 네 번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선수가 되었다. 그는 이적 다음 날인 1월 14일 애스턴 빌라와의 1-1 무승부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데뷔했다. 같은 달 말, 깁슨은 리그 선두를 달리던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1-0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에버턴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에버턴에서 첫 시즌 동안 깁슨은 리그 11경기에 출전했으며, 단 한 번도 패배를 기록하지 않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까지 포함하면 그는 28경기 연속 리그 무패 기록을 이어갔다.
이 무패 행진은 2012-13 시즌 에버턴의 세 번째 리그 경기인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과의 0-2 패배에서 끝이 났다. 깁슨은 이 경기에서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전 부상으로 교체되었다. 2012년 12월 22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2-1 승리 경기에서 그는 프로 경력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으나, 5일 뒤 축구 협회에 의해 퇴장과 그에 따른 징계가 철회되었다. 2013년 4월 13일, 깁슨은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의 홈 경기에서 2-0 승리를 이끄는 득점을 기록하며 시즌 첫 골을 넣었다. 에버턴에서 첫 두 시즌 동안 그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깁슨이 출전한 경기에서 에버턴은 52%의 승률을 기록했으며, 그가 출전하지 않은 경기에서는 25%에 불과했다. 그는 특히 토트넘,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자신의 친정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공격과 수비의 핵심 연결 고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깁슨은 2013-14 시즌 동안 단 한 차례의 리그 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는 2013년 10월 국가대표팀 경기 도중 입은 심각한 십자인대 부상 때문이었다. 2016년 11월 8일, 깁슨은 블랙풀과의 EFL 트로피 경기에서 에버턴 U-23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2.4. 선덜랜드
2017년 1월, 깁슨은 전 에버턴 팀 동료였던 브라이언 오비에도와 함께 선덜랜드로 이적했다. 그는 18개월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2월 4일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4-0 승리 경기에서 52분 잭 로드웰과 교체되어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총 12경기에 출전했지만, 선덜랜드는 EFL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었다.
2018년 3월, 깁슨은 음주 상태로 운전한 혐의로 기소된 후 클럽으로부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약 2주 뒤인 3월 31일, 선덜랜드는 깁슨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고 발표했다.
2.5. 이후 경력
깁슨은 선덜랜드와 계약을 해지한 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 위건 애슬레틱**
2018년 8월 3일, 위건 애슬레틱은 깁슨을 자유 계약으로 영입했다. 그는 다음 날인 8월 4일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3-2 승리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10월 6일, 프레스턴 노스 엔드와의 4-0 패배 경기에서 벤 피어슨에게 파울을 저질러 퇴장당했다. 그는 2018-19 시즌을 끝으로 위건에서 방출되었다.
- 솔퍼드 시티**
2020년 2월 6일, 깁슨은 솔퍼드 시티와 6개월 계약을 맺었다. 그는 2월 19일 풋볼 리그 트로피 준결승 뉴포트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풀타임을 뛰고 승부차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2020년 5월 17일, 코로나19로 인해 리그 2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솔퍼드 시티에서 방출되었다. 그러나 2020-21 시즌을 앞두고 재차 솔퍼드 시티에 합류했으며, 당시 감독이었던 그레이엄 알렉산더는 그의 복귀를 기뻐했다. 10월 17일, 깁슨은 포트 베일과의 경기에서 다리가 골절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2020-21 시즌이 끝난 후, 그는 솔퍼드 시티를 떠난다고 발표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깁슨은 북아일랜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을 선택하며 국제 무대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아일랜드의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성인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3.1. 국가대표 자격 논쟁
깁슨은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와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IFA) 사이의 분쟁의 중심에 섰다. 이 분쟁은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선수들이 아일랜드 공화국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FIFA 규정 제5조는 "특정 국가에 거주하는지에 따라 국적이 결정되지 않는 영구적인 국적을 가진 사람은 해당 국가의 협회 대표팀에서 뛸 자격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벨파스트 협정 체결 이후 북아일랜드의 헌법적 지위로 인해, 아일랜드 섬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본인이 원하고 최소한 부모 중 한 명이 아일랜드 또는 영국 시민이거나 영주권자인 경우, 아일랜드 공화국 시민권을 출생 시부터 가질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다. 결과적으로 깁슨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양쪽으로부터 국가대표팀에서 뛸 것을 제의받았다.
이 문제는 FIFA에 회부되었고, 북아일랜드 의회에서도 논의되었다. 2010년 이 문제는 북아일랜드 출신자들이 아일랜드 공화국 또는 북아일랜드 중 한 곳을 대표할 자격이 있다는 선언으로 해결되었다. 이 논쟁을 계기로 토니 케인, 마이클 오코너, 마크 윌슨 등 A매치 출전 경력이 없는 일부 선수들은 처음 선택한 대표팀이 아닌 다른 대표팀(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 아일랜드에서 북아일랜드)으로 소속을 변경하기도 했다.
깁슨은 처음에는 북아일랜드 U-16 대표팀에서 뛰며 빅토리 실드 스쿼드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테스트에 참여한 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충성심을 바꾸었다. 깁슨이 아일랜드 공화국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를 하기 전, 북아일랜드 감독 나이젤 워딩턴은 그에게 다시 북아일랜드로 돌아올 것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3.2. 연령별 대표팀
깁슨은 아일랜드 U-17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아일랜드를 대표했다. 2005-06 시즌 동안 그는 아일랜드 U-19와 아일랜드 U-21 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다. 또한 2006년 11월 14일, 스코틀랜드 B와의 0-0 무승부 경기에서 아일랜드 B 대표팀으로도 출전했다.
3.3. 성인 국가대표팀
2007년 깁슨은 UEFA 유로 2008 예선을 위한 아일랜드 공화국 성인 스쿼드에 여러 차례 포함되었다. 그는 2007년 8월 22일 덴마크와의 4-0 승리 경기에서 앤디 리드와 교체되어 하프타임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 54분, 깁슨은 페널티 지역 밖에서 슈팅을 날렸고, 덴마크 골키퍼 예스퍼 크리스티안센이 쳐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이 공을 셰인 롱이 이어받아 아일랜드의 세 번째 골을 기록했다. 깁슨은 2007년 9월 8일 슬로바키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두 번째 A매치 출전을 기록했다. 유로 2008 예선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으며, 그는 61분 에이든 맥기디와 교체되어 출전했다.

2008년 10월 15일 키프로스와의 홈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아일랜드 공화국 국가대표팀에서 첫 선발 출전했다. 스티븐 리드가 부상으로 아일랜드 스쿼드에서 이탈하자, 깁슨은 아일랜드 미드필더진의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은 리암 밀러와 앤디 리드보다 깁슨을 선택한 이유로 그의 자신감을 언급했다. 2011년 2월 8일, 깁슨은 2011 네이션스 컵 첫 경기인 웨일스와의 3-0 승리 경기에서 장거리 슈팅으로 국가대표 첫 골을 기록했다.
깁슨은 유로 2012 아일랜드 스쿼드에 선발되었으나, 아일랜드가 3연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모든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벤치에 머물렀다. 2012년 9월 1일, 깁슨은 2014 FIFA 월드컵 예선 카자흐스탄과의 경기를 위한 아일랜드 스쿼드에 포함되었으나, 유로 2012에서의 출전 시간 부족에 대한 실망감을 이유로 스쿼드에서 제외되었다. 2013년 3월 8일에는 스웨덴과 오스트리아와의 월드컵 예선 소집도 거부했다.
2013년 9월 30일, 깁슨은 임시 감독 노엘 킹에 의해 독일과 카자흐스탄과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위한 아일랜드 공화국 스쿼드에 다시 소집되었다. 그러나 그는 독일과의 0-3 패배 경기에 선발 출전한 뒤, 다음 경기인 카자흐스탄전에서 무릎 부상 의심으로 들것에 실려 나갔으며, 이 부상으로 인해 시즌 잔여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었다. 2014년 9월 3일, 깁슨은 오만과의 2-0 승리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장기적인 무릎 부상에서 회복한 후 아일랜드 공화국 대표팀에 복귀했다. 10월 11일, 그는 UEFA 유로 2016 예선 지브롤터와의 7-0 승리 경기에서 90분 풀타임을 뛰며 1년여 만에 첫 경쟁적인 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했다.
4. 개인 생활 및 논란
대런 깁슨은 선수 경력 외적으로도 여러 논란과 법적 문제에 얽히며 비판을 받았다.
4.1. 법적 문제 및 품행
2015년 8월, 깁슨은 그레이터 맨체스터 앨트링엄에서 부주의 운전, 음주 운전, 뺑소니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5년 9월 그는 음주 운전, 부주의 운전, 사고 현장 미정차 혐의를 인정했으며, 12개월 사회 봉사 명령과 20개월 운전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8년 3월, 선덜랜드는 깁슨이 법적 혈중 알코올 농도 초과 운전 혐의로 체포된 후 그를 출전 정지시켰다. 2개월 후, 그는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부상으로 인한 지속적인 고통과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술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2년의 사회 봉사 명령과 40개월의 운전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항소 후 운전 면허 정지 기간은 27개월로 단축되었다.
5. 경력 통계
5.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내셔널 컵 | 리그 컵 | 유럽 | 기타 | 총합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2005-06 | 프리미어리그 | 0 | 0 | 0 | 0 | 1 | 0 | 0 | 0 | - | 1 | 0 | |
2006-07 | 프리미어리그 | 0 | 0 | - | - | 0 | 0 | - | 0 | 0 |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0 | 0 | - | 0 | 0 | 0 | 0 | 0 | 0 | 0 | 0 | ||
2008-09 | 프리미어리그 | 3 | 1 | 3 | 2 | 6 | 0 | 2 | 0 | 0 | 0 | 14 | 3 |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15 | 2 | 1 | 0 | 3 | 2 | 4 | 1 | 0 | 0 | 23 | 5 | |
2010-11 | 프리미어리그 | 12 | 0 | 3 | 0 | 2 | 1 | 3 | 1 | 0 | 0 | 20 | 2 |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1 | 0 | 0 | 0 | 1 | 0 | 0 | 0 | 0 | 0 | 2 | 0 | |
총합 | 31 | 3 | 7 | 2 | 13 | 3 | 9 | 2 | 0 | 0 | 60 | 10 | ||
로열 앤트워프 (임대) | 2006-07 | 벨기에 2부 리그 | 25 | 1 | 2 | 0 | - | - | 6 | 0 | 33 | 1 | ||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임대) | 2007-08 | 챔피언십 | 21 | 1 | 3 | 0 | - | - | - | 24 | 1 | |||
에버턴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11 | 1 | 4 | 0 | - | - | - | 15 | 1 | |||
2012-13 | 프리미어리그 | 23 | 1 | 3 | 0 | 0 | 0 | - | - | 26 | 1 | |||
2013-14 | 프리미어리그 | 1 | 0 | 0 | 0 | 1 | 0 | - | - | 2 | 0 | |||
2014-15 | 프리미어리그 | 9 | 0 | 0 | 0 | 1 | 0 | 4 | 0 | - | 14 | 0 | ||
2015-16 | 프리미어리그 | 7 | 0 | 3 | 0 | 1 | 0 | - | - | 11 | 0 | |||
2016-17 | 프리미어리그 | 0 | 0 | 0 | 0 | 1 | 0 | - | - | 1 | 0 | |||
총합 | 51 | 2 | 10 | 0 | 4 | 0 | 4 | 0 | - | 69 | 2 | |||
에버턴 U23 | 2016-17 | - | - | - | - | 1 | 0 | 1 | 0 | |||||
선덜랜드 | 2016-17 | 프리미어리그 | 12 | 0 | 0 | 0 | - | - | - | 12 | 0 | |||
2017-18 | 챔피언십 | 15 | 0 | 0 | 0 | 3 | 0 | - | - | 18 | 0 | |||
총합 | 27 | 0 | 0 | 0 | 3 | 0 | - | - | 30 | 0 | ||||
위건 애슬레틱 | 2018-19 | 챔피언십 | 18 | 0 | 0 | 0 | 0 | 0 | - | 0 | 0 | 18 | 0 | |
솔퍼드 시티 | 2019-20 | 리그 2 | 3 | 0 | - | - | - | 1 | 0 | 4 | 0 | |||
2020-21 | 리그 2 | 4 | 0 | 0 | 0 | 2 | 0 | - | 0 | 0 | 6 | 0 | ||
총합 | 7 | 0 | 0 | 0 | 2 | 0 | 0 | 0 | 1 | 0 | 10 | 0 | ||
경력 총합 | 180 | 7 | 22 | 2 | 22 | 3 | 13 | 2 | 8 | 0 | 245 | 14 |
5.2. 국가대표팀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아일랜드 공화국 | 2007 | 2 | 0 |
2008 | 2 | 0 | |
2009 | 4 | 0 | |
2010 | 5 | 0 | |
2011 | 4 | 1 | |
2012 | 2 | 0 | |
2013 | 2 | 0 | |
2014 | 4 | 0 | |
2016 | 2 | 0 | |
총합 | 27 | 1 |
5.3. 국가대표팀 득점
No. | 날짜 | 경기장 | 출전 | 상대팀 | 스코어 | 결과 | 대회 |
---|---|---|---|---|---|---|---|
1 | 2011년 2월 8일 | 아비바 스타디움, 더블린, 아일랜드 | 14 | 웨일스 | 1-0 | 3-0 | 2011 네이션스 컵 |
6. 수상 경력
6.1.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프리미어리그: 2010-11
- 풋볼 리그 컵: 2008-09, 2009-10
- FIFA 클럽 월드컵: 2008
아일랜드 공화국
- 네이션스 컵: 2011
6.2. 개인
- 지미 머피 올해의 유소년 선수: 2005-06
- FAI 올해의 젊은 국제 선수: 2009
- FAI 올해의 국제 골: 2011 (vs. 웨일스)
7. 유산 및 평가
대런 깁슨은 선수 경력 동안 강한 중거리 슈팅 능력과 중요한 순간 득점을 통해 팀에 기여했지만, 미드필더로서의 패스 능력과 시야는 좋지 않다는 비판도 받았다. 특히 에버턴 시절에는 그가 출전한 경기에서 팀 승률이 훨씬 높게 나타나며 공격과 수비의 핵심적인 연결 고리로 평가받았다.
7.1. 긍정적 평가
깁슨은 특히 강한 중거리 슈팅을 바탕으로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을 터뜨려 팀을 위기에서 구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에버턴으로 이적한 후 첫 두 시즌 동안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그가 출전한 경기에서 에버턴의 승률은 52%에 달했으나, 그가 결장한 경기에서는 25%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그는 공격과 수비 사이의 중요한 연결 고리로 찬사를 받았다. 또한, 유소년 시절 지미 머피 올해의 유소년 선수 상과 FAI 올해의 젊은 국제 선수 등 개인상을 수상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7.2. 비판 및 논란
깁슨은 경기 외적으로도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음주 운전 및 뺑소니 사고와 같은 법적 문제는 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이로 인해 선덜랜드와의 계약이 해지되는 등 선수 경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부상으로 인한 고통과 가족과의 떨어져 지내는 어려움 때문에 술에 의존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한, 2011년 4월 깁슨은 트위터 계정을 개설했으나, 팀 동료 리오 퍼디낸드의 트윗을 통해 소개된 직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의 경기력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면서 계정 개설 97분 만에 폐쇄되는 일도 있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2012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것에 실망하여 국가대표팀 소집을 거부하는 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그의 경력은 잠재력과 중요한 순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경기 외적인 문제와 기복 있는 경기력으로 인해 아쉬운 평가를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