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Youth Career
라이언 긱스의 어린 시절과 축구 선수로서의 초기 성장기는 그의 혼혈 혈통, 맨체스터로의 이주,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인상적인 유소년 경력을 통해 형성되었다.
1.1. Childhood and Background
긱스는 1973년 11월 29일 카디프의 세인트 데이비드 병원에서 럭비 유니언 선수인 대니 윌슨과 린 긱스(현재 린 존슨) 사이에서 라이언 조지프 윌슨으로 태어났다. 그는 혼혈이며, 친할아버지는 시에라리온 크리올 혈통이다. 어린 시절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긱스는 어린 시절 카디프 서부 교외의 엘리에서 자랐지만, 어머니의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펜더베인 지역 집 밖의 길거리에서 축구와 럭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1980년, 긱스가 6살이던 해에 그의 아버지는 럭비 유니언에서 럭비 리그로 전향하여 스윈턴 라이언스에 입단했고, 온 가족은 북쪽으로 이주하여 그레이터맨체스터주 솔퍼드의 스윈턴에 정착했다. 이 이주는 카디프의 조부모님과 매우 가까웠던 긱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으나, 그는 주말이나 방학 때 가족과 함께 종종 카디프로 돌아갔다.
1.2. Youth Football and Early Recognition
솔퍼드로 이사한 후, 긱스는 맨체스터 시티 스카우트 데니스 스코필드가 코치하는 지역 팀인 딘스 FC에서 뛰었다. 스코필드는 긱스를 맨체스터 시티에 추천했고, 그는 맨체스터 시티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한편, 긱스는 솔퍼드 보이즈에서 계속 뛰었고, 1987년 안필드에서 열린 그라나다 스쿨스 컵 결승전에 진출했다. 긱스는 솔퍼드 팀의 주장을 맡아 블랙번을 꺾고 우승했으며,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고, 리버풀 FC의 수석 스카우트 론 예이츠로부터 트로피를 받았다. 긱스는 학창 시절 럭비 리그도 병행하여 뛰었다.
딘스에서 뛰던 긱스를 지역 신문 판매상이자 올드 트래퍼드 관리인이었던 해럴드 우드가 꾸준히 관찰했다. 우드는 알렉스 퍼거슨에게 직접 긱스에 대해 이야기했고, 퍼거슨은 스카우트를 보냈다. 긱스는 1986년 크리스마스 기간에 시험 기회를 얻었다. 긱스는 더 클리프에서 솔퍼드 보이즈와 유나이티드 U-15 팀 간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는데, 퍼거슨이 그의 사무실 창문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1987년 11월 29일(긱스의 14번째 생일) 퍼거슨은 유나이티드 스카우트 조 브라운과 함께 긱스의 집을 방문하여 2년 계약의 아마추어 유소년 계약을 제안했다. 그들은 유소년 훈련생 계약(YTS)을 면제하고 3년 안에 프로가 될 기회를 제공하여 긱스가 계약하도록 설득했다. 라이언 윌슨이라는 이름으로, 긱스는 1989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독일과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유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부모님의 별거 2년 후인 16세에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 위해 성을 긱스로 바꾸었다.
2. Club Career: Manchester United
라이언 긱스는 1991년 프로 데뷔 이후 2014년 은퇴할 때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무려 23년 동안 활약하며 수많은 우승과 기록을 세웠다.
2.1. Debut and Early Development (1990-1995)
긱스는 1990년 11월 29일(그의 17번째 생일) 첫 프로 계약을 제안받았고, 이틀 후인 1990년 12월 1일에 계약을 수락하여 프로 선수로 전향했다. 당시 유나이티드는 1986년 11월 알렉스 퍼거슨 감독 부임 이후 첫 주요 트로피인 FA컵을 막 우승한 참이었다. 긱스는 1991년 3월 2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부상당한 데니스 어윈을 대신해 교체 출전하며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첫 선발 출전 경기에서는 1991년 5월 4일 맨체스터 더비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첫 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콜린 헨드리의 자책골로 기록되기도 했다.
긱스는 1991-92 시즌 초반부터 1군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했지만, 유소년 시스템에서도 계속 활동하며 '퍼거슨의 아이들'로 구성된 팀의 주장을 맡아 1992년 FA 유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긱스는 퍼거슨 감독 체제에서 1군으로 성장한 수많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소년 선수들의 길을 열었다. 긱스는 당시 유나이티드 1군 선수단 중 가장 어린 선수였지만, 브라이언 롭슨과 같은 선배 선수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롭슨은 긱스에게 자신과 케빈 키건의 에이전트인 해리 스웨일스와 계약할 것을 추천했다.
그 시즌에 긱스는 프리미어리그 창설 전 구 1부 디비전의 마지막 해에 리즈 유나이티드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한 팀에서 뛰었다. 유나이티드는 시즌 대부분을 선두로 달렸으나 4월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웨스트요크셔주 팀에 추월당했다. 긱스는 1992년 4월 12일 노팅엄 포레스트를 꺾고 리그컵 결승전에서 우승하며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 경기에서 긱스는 브라이언 매클레어의 유일한 골을 어시스트했다. 준결승전에서는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했다. 시즌 말, 그는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로 선정되었는데, 이 상은 1년 전 그의 동료 리 샤프에게 돌아갔던 상이다.
1992-93 시즌이 시작되면서, 새로 창설된 프리미어리그의 첫 시즌에 긱스는 샤프를 밀어내고 유나이티드의 주전 레프트 윙어가 되었다. 그는 스티브 맥마나만과 함께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떠오르는 두 명의 최고의 젊은 윙어로 인정받았으며, 1950년대의 스탠리 매튜스 시대의 윙어를 연상시키는 선수로 주목받았다. 긱스는 유나이티드가 26년 만에 첫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등장과 에리크 칸토나의 합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유나이티드의 지배를 예고했다. 퍼거슨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20세가 될 때까지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1993-94 시즌에 BBC의 데스 라이넘의 매치 오브 더 데이에서 첫 인터뷰를 허락했다. 유나이티드는 그 시즌에 더블을 달성했으며, 긱스는 칸토나, 폴 인스, 마크 휴즈와 같은 선수들과 함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긱스는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서도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뛰었지만, 3-1로 애스턴 빌라에 패했다.
경기장 밖에서는 신문들이 긱스가 "폭발적인 스피드, 삐죽삐죽한 검은 머리, 그리고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왼발과 축구공 사이의 눈부시게 끈끈한 관계"로 십대 시절에 등장하여 "홀로 축구의 이미지를 혁신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그는 어린 나이의 축구 선수에게는 보통 주어지지 않는 많은 기회를 얻었다. 예를 들어, 1994년에 방영된 자신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라이언 긱스's 축구 기술을 진행하고, 이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책도 출판했다. 긱스는 프리미어리그의 전 세계 시장 개척 시도의 일환이었으며, 수많은 축구 잡지와 남성 잡지 표지에 등장하여 유명해졌고, 1990년대 중후반에 축구 선수들이 팝 스타와 동등한 셀레브리티 아이돌이 되기 시작하는 시대를 주도했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긱스는 십대들의 우상이 되었고 한때는 "프리미어십의 첫 포스터 보이" 또는 "소년 천재"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는 조지 베스트 이후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첫 번째 축구 스타로 칭송받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베스트와 보비 찰턴은 긱스를 가장 좋아하는 어린 선수라고 묘사하며 그를 보기 위해 더 클리프 훈련장을 찾기도 했다. 베스트는 한때 "언젠가 사람들이 내가 또 다른 라이언 긱스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1993-94 시즌이 끝날 무렵, 긱스는 두 번째 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로비 파울러, 웨인 루니, 델리 알리와 같이 연속으로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두 번 수상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긱스는 훌륭한 골을 많이 넣었으며, 그의 골 중 다수는 다양한 BBC 올해의 골 상 후보에 올랐다. 그의 최고의 골 중에는 1994년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 1994년 토트넘전, 1995년 에버턴전, 1996년 코번트리전, 그리고 1999년 FA컵 준결승 재경기에서 아스널을 상대로 한 단독 드리블 골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연장전에서 긱스는 파트리크 비에이라의 패스 미스를 가로챈 후, 하프라인에서부터 토니 애덤스, 리 딕슨, 마틴 키오운을 포함한 아스널의 모든 수비진을 제치고 드리블한 후, 데이비드 시먼의 키를 넘기는 왼발 슈팅을 날렸다. 그는 유명하게도 골 세레머니 중 유니폼을 벗어 던지며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이 골은 또한 FA컵 준결승 재경기에서 기록된 마지막 골이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음 시즌부터 FA컵 준결승은 단판 승부로 결정되며, 필요한 경우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린다.
2.2. Premier League Dominance and Treble (1995-2000)
1994-95 시즌은 긱스가 부상으로 인해 프리미어리그 29경기 출전과 단 1골에 그쳤다. 시즌 후반에 그는 컨디션을 회복했지만, 유나이티드가 주요 트로피를 차지하는 데는 너무 늦었다. 시즌 마지막 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이기지 못하면서 블랙번 로버스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내주었다。 일주일 후, 긱스는 FA컵 결승전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했지만, 유나이티드는 1-0으로 패했다. 1994-95 시즌의 긍정적인 면은 긱스가 IFK 예테보리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개막전에서 두 골을 기록한 것(4-2 승리였지만, 유나이티드는 결국 8강 진출에 실패)과 렉섬과의 FA컵 4라운드 승리에서 한 골을 넣은 것으로, 그 시즌 모든 대회에서 4골을 기록했다.
1995-96 시즌에 긱스는 완벽한 컨디션을 회복했으며, 유나이티드의 두 번째 더블 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5년 9월 9일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기록한 그의 골은 '시즌의 골'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맨체스터 시티의 게오르기 킨클라제의 골에 밀렸다. 그 시즌 11월, 긱스는 사우샘프턴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 유나이티드가 4-1로 승리하며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게 했다. 뉴캐슬은 12월 23일 10점 차 선두를 달렸지만, 유나이티드는 3월 중순에 그들을 추월했다. 긱스는 또한 1996년 5월 11일 리버풀과의 FA컵 결승전에서도 출전했지만, 에리크 칸토나가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 이때 긱스는 개리 네빌, 필립 네빌, 니키 버트,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와 같은 새로운 핵심 젊은 동료들을 맞이했다. 베컴은 안드리 칸첼스키스를 대신해 라이트 윙을 맡았고, 버트는 폴 인스를 대신해 중앙 미드필더를 맡아 긱스와 로이 킨과 함께 새로운 유나이티드 미드필더진을 완성했다.
다음 시즌, 긱스는 유럽 무대에서 빛날 첫 번째 실제 기회를 얻었다. 유나이티드가 4시즌 만에 세 번째 리그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그는 28년 만에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하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준결승 양쪽 다리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유나이티드의 유럽 영광에 대한 희망은 좌절되었다. 이 시즌 말, 유벤투스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이탈리아 언론에 긱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1997-98 시즌에는 유나이티드가 3월과 4월 초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아스널에 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을 내주면서, 1989년 이후 두 번째로 트로피 없이 시즌을 마쳤다. 다음 시즌, 긱스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결장했지만, 건강할 때는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고, 그 시즌 유나이티드의 두 컵 결승전 모두에 출전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숙적 아스널과의 FA컵 준결승전에서 기록한 연장전 골로 유나이티드가 2-1 승리를 거둔 것과,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유벤투스와의 홈 경기에서 기록한 90분 동점골이었다.
1998-99 시즌의 최고점은 긱스가 테디 셰링엄의 동점골을 도우며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하는 길을 연 199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었다. 긱스는 또한 그 해 말 파우메이라스를 1-0으로 꺾고 인터콘티넨털컵을 차지한 경기에서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2.3. Veteran Status and Adaptability (2000-2005)
데니스 어윈이 2002년 5월에 떠난 후 긱스는 유나이티드의 최장기 재직 선수로 등극했으며, 20대임에도 불구하고 클럽의 핵심적인 존재가 되었다. 긱스는 1999년 트레블 우승 이후 4년 동안 계속해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유나이티드는 트레블 이후 4시즌 중 3시즌에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에 올랐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3번, 준결승에 1번 진출했다. 2001년 4월에는 5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긱스는 2001-02 시즌 초반 올드 트래퍼드에서 셀틱과의 기념 경기로 10주년을 기념했는데, 에리크 칸토나가 깜짝 출연한 이 경기에서 4-3으로 패했다. 하지만 이 시즌은 긱스의 데뷔 이후 유나이티드가 겪은 가장 실망스러운 시즌 중 하나였다. 초겨울의 부진한 경기력은 결국 리그 타이틀을 잃게 만들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독일의 약체 바이어 레버쿠젠에게 원정 다득점으로 예상치 못하게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1년 후인 2002년 8월 23일, 그는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첼시와의 무승부 경기에서 통산 100번째 골을 기록했다.
2002-03 시즌은 긱스에게 잊고 싶은 시즌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진한 경기력을 변호해야 했고, 자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부진에는 1월 7일 리그컵 준결승 1차전 블랙번 로버스와의 홈 경기에서 74분 만에 야유를 받으며 교체된 것과 2월 16일 아스널과의 FA컵 경기에서 2-0으로 패하며 커리어 최악의 골 기회 미스를 한 것이 포함되었다. 당시 아스널 팬들은 "긱스에게 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주일 후인 2월 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고 경영자 피터 케니언은 긱스가 올드 트래퍼드를 떠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지금은 제안을 고려할지 말할 때가 아니며, 우리는 현재 시즌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라커룸의 불화가 긱스의 이적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긱스는 2월 25일 유벤투스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중 하나를 펼쳤다. 8분 만에 디에고 포를란과 교체 투입된 긱스는 2골을 기록했는데, 그 중 한 골은 나중에 그의 가장 위대한 골이자 가장 뛰어난 챔피언스리그 순간 중 하나로 칭송받았다.
시즌 내내 긱스가 이탈리아 클럽 인터 밀란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고, 브라질 스트라이커 아드리아누가 트레이드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긱스는 유나이티드에 만족한다고 말하며 이러한 소문을 잠재웠다.
그는 2004년 5월 22일 네 번째 FA컵 우승에 참여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4번 트로피를 들어 올린 단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다른 한 명은 로이 킨)이 되었다. 그는 또한 세 번(1995, 2005, 2007) 준우승 메달을 받았다. 2004년 9월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출전함으로써 그는 보비 찰턴 경과 빌 풀크스에 이어 유나이티드에서 600경기를 뛴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5년에 긱스의 경기력은 향상되었고, 그의 경력 내내 그를 괴롭혔던 햄스트링 부상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았다. 그는 이를 요가를 시작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2.4. Later Years and Milestones (2005-2014)

긱스는 최고 경영자 데이비드 길이 30세 이상 선수와 1년 이상 계약하지 않는 기존 정책을 완화하면서 유나이티드와 2년 계약 연장을 체결했다. 긱스는 햄스트링 문제 외에는 부상 없이 경력을 이어갔다.
긱스는 2006-07 시즌 첫 골을 2006년 8월 26일 왓퍼드와의 2-1 승리 경기에서 기록했으며, 이 골은 결승골이 되었다. 긱스는 유나이티드의 다음 경기인 9월 9일 토트넘 홋스퍼와의 홈 경기에서 1-0 승리의 결승골을 기록했는데, 8분 만에 헤딩골을 넣었다. 긱스는 12월 6일 벤피카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는데, 그의 프리킥은 네마냐 비디치의 골로 이어졌고, 이후 긱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여 득점했다.
2007년 2월, 긱스는 시즌 마지막 세 골을 기록했다。 2월 4일 토트넘과의 원정 경기에서 4-0 승리의 마지막 골을 넣었는데, 이로써 유나이티드는 첼시와의 격차를 6점으로 벌렸다. 2월 20일, 긱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 릴과의 경기에서 빠른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기록했고, 이는 릴 선수들의 항의 퇴장을 유발했다. 긱스는 나중에 규칙을 어긴 것이 없음에도 상황에 놀랐다고 말했다. 2월 24일, 긱스는 풀럼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했는데, 유나이티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막판 결승골로 승리하며 첼시와의 격차를 9점으로 벌렸다.
2007년 5월 6일, 첼시가 런던 라이벌 아스널과 1-1 무승부에 그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잉글랜드 챔피언이 되었다. 이로써 긱스는 앨런 한센과 필 닐이 보유했던 8회 우승 기록을 깨고 9회 우승이라는 새로운 리그 타이틀 기록을 세웠다(두 선수 모두 리버풀에서 모든 우승을 차지했다). 2007 FA컵 결승전에서 긱스의 골은 연장전 14분 만에 스티브 베넷 주심이 골키퍼 페트르 체흐에게 파울을 범했다고 판단하여 무효화되었다.
긱스는 2007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활약하여 전반에 골을 넣어 경기를 1-1 무승부로 만들었고, 이후 에드빈 판 데르 사르 골키퍼가 첼시의 첫 세 페널티킥을 모두 막아내며 레드 데블스의 승리로 이끌었다. 이 골은 긱스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첫 프로 골이었다.

2007-08 시즌에는 알렉스 퍼거슨이 긱스와 신입 선수 나니, 안데르송 사이의 로테이션 시스템을 채택했다. 긱스는 2007년 12월 8일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유나이티드의 100번째 리그 골을 기록했으며, 유나이티드는 4-1로 승리했다. 더 많은 기록이 달성되었다. 2008년 2월 20일, 그는 리옹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100번째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2008년 5월 11일에는 박지성과 교체 출전하여 보비 찰턴 경의 유나이티드 통산 758경기 출전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긱스는 이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자신과 유나이티드의 10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열흘 후인 2008년 5월 21일, 긱스는 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를 상대로 폴 스콜스와 87분 교체 출전하여 유나이티드 통산 최다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유나이티드는 연장전 끝에 1-1 무승부를 기록한 후 승부차기에서 6-5로 첼시를 꺾고 우승했으며, 긱스는 승부차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008-09 시즌 초반, 알렉스 퍼거슨 경은 긱스를 그가 선호하는 윙 포지션 대신 공격수 뒤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인터뷰에서 "(긱스는) 매우 귀중한 선수이며, 올해 11월이면 35세가 되지만 35세에도 그는 유나이티드의 핵심 선수가 될 수 있다. 25세의 라이언은 측면 돌파로 수비수를 흔들었지만, 35세에는 더 깊은 곳에서 플레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긱스는 코칭 라이선스를 따기 시작했으며, 퍼거슨은 그가 올레 군나르 솔샤르처럼 은퇴 후 코칭 스태프로 일하기를 원한다고 암시했다.

연초의 추측에 이어, 2009년 2월 긱스는 2009년 6월에 만료될 예정이었던 현재 계약에 1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후,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료 4명과 함께 PFA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 올랐다. 2009년 4월 26일, 긱스는 2008-09 시즌 동안 단 12경기만 선발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상을 수상했다. 이는 그의 경력에서 처음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이었다. 시상식 전, 알렉스 퍼거슨은 긱스의 오랜 기여를 고려할 때 그가 상을 받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하며 긱스의 수상을 지지했다. 긱스는 2009년 4월 29일 아스널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0 승리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800번째 출전을 기록했다. 2009년 5월 1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스널과의 0-0 무승부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유나이티드와 긱스 모두에게 11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이었다.
긱스는 2009년 항저우 그린타운과의 프리시즌 친선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09년 9월 12일, 긱스는 유나이티드에서 700번째 선발 출전을 기록했다. 긱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 첫 경기에서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유나이티드 통산 150번째 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클럽 역사상 9번째 선수였다. 2009년 11월 28일, 36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긱스는 프래턴 파크에서 포츠머스와의 4-1 승리 경기에서 마지막 골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 100번째 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이 기록에 도달한 17번째 선수였다.
2009년 11월 30일, 36번째 생일 다음 날, 긱스가 2010-11 시즌 말까지 유효한 1년 추가 계약을 제안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그의 첫 경기와 첫 골로부터 20주년이 되는 해를 넘기게 되는 계약이었다. 같은 날, 긱스는 2009년 BBC 올해의 스포츠인상 후보에 올랐고, 결국 수상했다. 2009년 12월 12일, 긱스는 개리 스피드의 535경기 프리미어리그 필드 플레이어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2009년 12월 18일, 긱스는 유나이티드와 1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여 2011년 6월까지 클럽에 머물게 되었고, 그의 첫 프로 계약 및 1군 데뷔 20주년을 넘기게 되었다. 이는 같은 클럽에서 끊임없이 20년을 채운 드문 사례이다. 2009년 12월 31일,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0년간의 선수(Player of the Decade)로 선정되었다.

2010년 4월 24일, 긱스는 토트넘 홋스퍼와의 홈 경기에서 3-1 승리 중 두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경력에서 처음으로 페널티 킥을 성공시켰다.
2010년 8월 16일, 긱스는 새 시즌 개막전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3-0 홈 승리에서 유나이티드의 세 번째 골을 넣어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모든 시즌에서 득점 기록을 이어갔다. 그는 구 1부 디비전의 마지막 두 시즌에도 골을 넣었으므로, 이제 21시즌 연속 톱 디비전에서 득점한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2011년 1월 17일, 긱스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토트넘과의 득점 없는 무승부 경기에서 유나이티드 통산 600번째 리그 출전을 기록했다. 긱스는 2월 1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여 2012년 6월까지 클럽에 머물게 되었다. 2011년 3월 6일, 긱스는 리버풀과의 경기에 출전하여 보비 찰턴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그 최다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4월 26일, 샬케 04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긱스는 웨인 루니의 패스를 받아 첫 골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득점자가 되었다. 긱스는 또한 2011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에게 3-1로 패했다.
긱스는 2011-12 시즌 첫 선발 출전을 벤피카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 기록했다. 그는 이스따디우 다 루스에서 1-1 무승부에서 유나이티드의 동점골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득점자 기록을 다시 세웠다. 그는 또한 16개의 다른 챔피언스리그 캠페인에서 득점한 최초의 선수로, 15개 시즌에서 동률을 이루었던 라울을 넘어섰다. 그러나 라울은 14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1월 19일, 긱스는 유나이티드의 1-0 승리 경기에서 자유 경기장에서 열린 스완지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그의 고향 웨일스에서 처음으로 리그 경기를 치렀다. 긱스는 12월 21일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린 풀럼과의 5-0 승리 경기에서 유나이티드의 세 번째 골을 기록하며 지난 22시즌 연속 톱 리그에서 득점 기록을 유지했다。 2012년 2월 10일,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2012년 2월 26일, 긱스는 노리치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900번째 출전을 기록했다. 그는 애슐리 영의 크로스를 받아 90분 만에 결승골을 기록하며 이 기록을 자축했다. 경기 후, 알렉스 퍼거슨은 BBC 스포츠에 "한 클럽에서 900경기를 뛰는 선수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3월까지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군에서 140명 이상의 다른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2012년 10월 19일, 그의 39번째 생일을 한 달여 앞두고 긱스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선수 은퇴 후 감독직으로 전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현 시즌이 끝난 후에도 계속 선수 생활을 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긱스는 2012-13 시즌 첫 프리미어리그 골을 2013년 2월 10일 에버턴과의 2-0 홈 승리 경기에서 기록하며, 21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한 최고 디비전에서 23시즌 연속 득점 기록을 이어갔다.
그는 2013년 3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새로운 1년 계약을 체결하여 2014년 6월까지 올드 트래퍼드에 머물게 되었다. 3월 5일, 긱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2-1로 홈에서 패배한 경기에서 통산 1,000번째 공식 경기에 출전했다. 7월 4일, 긱스는 데이비드 모예스 신임 감독에 의해 즉시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긱스는 모예스 감독이 2014년 4월에 해고된 후 클럽의 임시 선수 겸 감독이 되었다.
10월 2일, 샤흐타르 도네츠크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한 긱스는 라울을 제치고 유럽 대회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가 되었으며, 그는 이 기록을 "특별하다"고 묘사했다. 11월, 긱스는 4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여러 언론 매체와 축구 인사들로부터 현역 프로 축구 선수로서 이정표를 달성한 것에 대한 찬사를 받았다.
긱스는 2014년 5월 19일 클럽 웹사이트에 올린 공개 서한에서 프로 축구 선수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 후 긱스는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이룬 업적과 그의 긴 경력에 대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3. International Career
라이언 긱스는 웨일스 국가대표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지만, 주요 국제 대회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이후 2012년 올림픽에서는 영국 단일팀의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다.
3.1. Wales National Team
웨일스 출신 부모님 밑에서 카디프에서 태어난 긱스는 국제 무대에서 웨일스를 대표했다. 어린 시절 긱스는 잉글랜드 스쿨보이즈 팀의 주장을 맡았는데, 이는 통념과는 달리 그가 성인 잉글랜드 대표팀에 뛸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소년 수준에서의 자격은 학교의 위치에만 전적으로 달려있었다. 긱스의 경우 솔퍼드의 무어사이드 고등학교였다), 그가 웨일스 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긱스는 2002년에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거나 부모님이 관련이 없는 나라에서 뛰기보다는 주요 챔피언십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내 경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스쿨보이즈 팀에서 1년 동안 긱스는 9번 출전했으며 모두 주장으로 뛰었고, 7승 2패를 기록했다. 승리 중에는 4-0으로 웨일스 동료들을 꺾은 경기도 있었는데, 이들 중 다수는 다음 해 웨일스 유소년 팀으로 올라갔을 때 함께 뛸 선수들이었다.
1991년 5월, 긱스는 폴란드와의 바르샤바 원정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웨일스 U-21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 해 후반에 성인 대표팀에 소집되면서 그의 유일한 U-21 대표팀 출전이 되었다.
긱스는 1991년 10월 독일과의 원정 경기에서 에리크 영과 84분 교체 출전하며 17세 322일의 나이로 웨일스 성인 대표팀 역사상 최연소 선수로 국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기록은 1998년 6월 라이언 그린이 17세 226일의 나이로 몰타를 상대로 출전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웨일스는 경기 전까지 UEFA 유로 1992 본선 진출을 놓고 경쟁 중이었지만, 독일이 4-1로 승리하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상대로 남은 경기를 모두 이기면서 웨일스를 제치고 본선에 진출했다.
긱스의 웨일스 성인 대표팀 첫 골은 1993년 3월 31일 카디프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3-0 승리 중 한 골이었다. 이 경기에서 이언 러시는 웨일스 역사상 24번째 골을 기록했다.
1991년 독일과의 국제 데뷔전 이후, 긱스는 웨일스 친선 경기 18경기에 연속으로 불참하다가 2000년 3월 핀란드와의 경기에서 마침내 웨일스 친선 경기 데뷔전을 치렀다. 이때 그는 이미 25번의 A매치 출전을 기록하고 있었다. 비경쟁 경기에서 그가 계속해서 결장한 주된 이유는 불필요한 부상에 대한 보호 조치였다. 자서전에서 긱스는 "그 당시, 일주일에 두 경기를 뛸 때마다 항상 부상을 당하는 것 같아서, [알렉스 퍼거슨]과 나는 앉아서 경기별로 검토했다. 만약 국제 경기가 친선 경기라면, 내가 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웨일스 대표팀에서 정기적으로 빠지고 친선 경기에 routinely 결장한 것은 비판을 받았다.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웨일스가 2-0으로 패했을 때, 긱스는 데이비드 베컴, 개리 네빌, 웨인 루니를 포함한 현재 및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 동료들과 맞붙었다. 2005년 10월 12일 아제르바이잔과의 2006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긱스는 2-0 승리에서 드물게 두 골을 기록했지만, 웨일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6년 9월, 그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했으며, 웨일스는 2-0으로 패했다. 브라질 감독 둥가는 긱스의 활약을 칭찬하며, 카카, 호나우지뉴와 같은 스타 선수들과 함께 5회 월드컵 우승팀에서 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긱스는 2007년 5월 30일 더 베일 오브 글래모건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제 축구 은퇴를 발표하며 16년간의 국제 경력에 막을 내렸다. 그는 유나이티드에서의 경력에 집중하는 것을 주요 은퇴 이유로 들었다. 그의 웨일스 마지막 경기이자 주장으로서의 경기는 6월 2일 카디프에서 열린 체코와의 유로 2008 예선전이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64번째 A매치 출전을 기록했고, 웨일스가 0-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맨 오브 더 매치 상을 받았다. 11월, 그는 웨일스 축구 협회의 웨일스 올해의 선수상 최종 후보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지만, 결국 크레이그 벨라미가 수상했다.
2010년 3월 26일 웨스턴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긱스는 부상당한 에런 램지를 대신해 조국의 유로 2012 예선 캠페인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나중에 BBC 라디오 맨체스터와의 인터뷰에서 비상시에만 웨일스 대표팀에 복귀할 것이라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3.2. Great Britain Olympic Team

2012년 6월 28일, 긱스는 크레이그 벨라미 및 마이카 리처즈와 함께 2012 런던 올림픽에 참가할 영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3명의 와일드카드 선수 중 한 명으로 확정되었다. 그는 이후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7월 29일 아랍에미리트와의 3-1 승리 경기에서 헤딩골을 기록하며 38세 243일의 나이로 하계 올림픽 축구 대회에서 가장 나이 많은 득점자가 되었다. 이는 이집트의 후세인 헤가지가 88년 동안 보유했던 기록을 깬 것이다. 또한 같은 경기에 출전함으로써 그는 가장 나이 많은 필드 플레이어 올림픽 축구 선수가 되었다.
4. Managerial Career
라이언 긱스는 선수 생활 말년에 선수 겸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임시 감독을 거쳐 웨일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정식 부임했으나, 사생활 논란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4.1. Manchester United
긱스는 2013년 7월 4일 데이비드 모예스 신임 감독의 코칭 스태프의 일원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 겸 코치로 임명되었다. 모예스 감독이 10개월도 채 되지 않아 2014년 4월 22일 해임되자, 긱스는 클럽의 임시 선수 겸 감독을 맡아 2013-14 시즌 마지막 네 경기에서 2승 1무 1패의 기록을 남겼다. 마지막 경기인 사우샘프턴과의 1-1 무승부 후,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끄는 압박감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을 터뜨렸다고 인정했다. 루이 판 할이 2014년 5월 19일 모예스 감독의 정식 후임으로 발표되면서, 긱스는 판 할의 수석 코치로도 임명되었다.
긱스는 제임스 윌슨과 톰 로런스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데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칭찬받았는데, 그는 헐 시티와의 3-1 승리 경기에서 로런스 대신 자신을 교체 투입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루이 판 할을 포함하여 긱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잠재적인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포르투갈 출신 코치 조제 모리뉴의 임명 이후, 긱스는 2016년 7월 2일 29년간 몸담았던 클럽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4.2. Wales National Team
긱스는 2018년 1월 15일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4년 계약을 체결하며, 전년도 11월 선덜랜드 감독직을 맡기 위해 떠난 크리스 콜먼의 뒤를 이었다. 그의 첫 지휘봉을 잡은 경기는 2018 차이나컵에서 중국을 상대로 6-0 승리였으며, 이 경기에서 개러스 베일은 이언 러시가 보유했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그 해 말, 웨일스는 UEFA 네이션스리그에 참가하여 덴마크에 이어 6점을 얻어 2위로 마쳤다. 2019년, 웨일스는 예선전을 느리게 시작하여 3경기에서 단 3점만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해 남은 기간 동안 무패 행진을 이어갔고, 헝가리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며 UEFA 유로 2020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는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연기되었으며, 긱스가 다음으로 국가대표팀을 지휘한 경기는 무관중 경기로 진행된 UEFA 네이션스리그 캠페인 동안이었다. 그의 마지막 지휘봉을 잡은 경기는 불가리아를 상대로 1-0 승리였다.
2020년 11월 3일, 긱스가 폭행 혐의로 체포된 후, 그의 수석 코치인 롭 페이지가 임시 감독이 되었다. 2022년 6월 20일, 긱스는 예정된 재판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되었고, 페이지가 그의 후임으로 지명되었다.
5. Playing Style and Characteristics
라이언 긱스는 기술적이고 역동적인 왼발 미드필더로,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포지션에서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축구 선수를 보면서 울었던 적이 두 번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첫 번째는 디에고 마라도나였고 두 번째는 라이언 긱스였다"고 말하며 긱스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긱스는 기술적이고 역동적인 왼발 미드필더로, 일반적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전통적인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뛰었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양쪽 측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격 역할(왼쪽 또는 오른쪽 윙어 또는 공격 삼각편대에서 측면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딥 라잉 포워드, 심지어 스트라이커까지)에서도 활용되었다. 경력 후반에는 속도와 운동 능력이 저하되면서 종종 수비형 미드필더 또는 중앙 미드필더로, 혹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도 기용되었다. 때로는 풀백으로도 배치되었다. 빠르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였던 그는 전성기 시절 스피드, 가속력, 힘, 볼 컨트롤, 감각, 드리블 기술, 공 소유 시의 교묘함, 그리고 시야가 주요 특징이었다. 그는 경력이 진행될수록 크로스와 패스 능력을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켰으며, 이는 그를 뛰어난 어시스트 공급자로 만들었고, 후년에는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더 많이 맡아 미드필드에서 경기를 조율하고 팀 동료들에게 기회를 창출하며 직접 골도 넣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빠르고 활기찬 선수였던 그는 전술적 지능, 움직임, 체력, 활동량, 그리고 일관성으로도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또한 그는 정확한 프리킥 키커였다. 축구 기술 외에도 긱스는 경력 전반에 걸친 리더십과 장수함으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4시즌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퇴장당한 적이 없으며, 웨일스 대표팀에서 2001년 9월 5일 노르웨이와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단 한 번 퇴장당했다. 당시 긱스는 86분에 두 번째 경고를 받았다. 2003년 11월, 그는 아스널과의 배틀 오브 올드 트래퍼드 경기 중 부적절한 행동으로 FA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이 사건으로 유나이티드 선수 2명과 아스널 선수 6명이 기소되었다). 긱스는 7500 GBP의 벌금을 받았지만 출전 정지는 피했다. 같은 주, 긱스는 유로 2004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러시아 선수 바딤 에프세예프의 얼굴을 고의로 팔꿈치로 가격하여 국제 경기에서 두 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 반칙은 주심 루실리오 바티스타가 놓쳤지만, 긱스는 나중에 비디오 증거를 통해 기소되었다.
6. Public Image and Endorsements
라이언 긱스는 뛰어난 축구 실력 외에도 매력적인 외모와 카리스마로 1990년대 영국 축구의 아이콘이자 스타덤을 선도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긱스는 리복, ITV 디지털, 카고메 토마토 주스, 콘, 셀콤 등 다양한 광고에 출연했다. 1996년 리복 광고에서는 그가 직접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팅, 톰 존스, 리처드 애튼버러, 조지 베스트와 같은 인물들이 그를 흉내 내는 모습을 담기도 했다.
BBC 스포츠의 한 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긱스는 베컴이 유나이티드 1군에서 자리를 잡기 전의 데이비드 베컴이었다. 그의 얼굴을 축구 잡지 표지에 실으면, 그 해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장했다. 왜일까? 남자들은 '새로운 베스트'에 대해 읽기 위해 구매했고, 여자들은 침실 벽에 그의 얼굴을 붙이고 싶어 구매했다. 베컴이 프레스턴 노스 엔드로 임대될 무렵, 긱스는 100만 파운드짜리 축구화 계약(리복), 극동 지역의 수익성 높은 후원 계약(후지), 그리고 유명인 여자친구들(대니 베어, 다비니아 테일러)을 가지고 있었다."
긱스는 EA 스포츠의 FIFA 비디오 게임 시리즈에 등장했으며, 2003년에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미드필더 에드가 다비즈와 브라질 국가대표 풀백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함께 FIFA 풋볼 2003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긱스는 FIFA 16과 FIFA 17 얼티밋 팀 레전드에도 포함되었다.
7. Personal Life
라이언 긱스의 개인적인 삶은 그의 가족 관계와 사회 활동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진 스캔들과 논란으로 인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7.1. Family and Relationships
긱스는 전 럭비 유니언 및 웨일스 국제 럭비 리그 선수인 대니 윌슨의 아들이다. 긱스는 라이언 조지프 윌슨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십대 시절 부모님의 별거 후 어머니의 성으로 성을 바꾸었다. 긱스는 아버지로부터 균형 감각과 운동 능력을 물려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바베이도스 국가대표 축구 선수 커티스 허트슨의 먼 사촌이기도 하다.
긱스는 오랜 연인인 스테이시 쿡과 2007년 9월 7일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에게는 솔퍼드에서 태어난 두 자녀가 있으며, 선수가 자란 곳과 가까운 그레이터맨체스터주 워슬리에 살았다. 긱스와 쿡은 2017년에 이혼했다. 그의 아들 자흐 긱스 또한 축구 선수이다.
긱스는 동생 로드리의 아내인 나타샤와 8년 동안 불륜 관계를 유지했다. 이 불륜으로 인해 긱스의 가족 일부는 라이언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라이언이 웨일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된 후, 그의 아버지 대니는 그를 "부끄럽다"고 말하며 "그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다"고 했다. 나타샤는 긱스와 결혼을 앞두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긱스가 500 GBP를 지불하여 낙태했다. 이후 로드리와 나타샤는 2013년에 이혼했다. 로드리는 현재 새로운 파트너와 딸을 두고 있으며, 나타샤도 새로운 파트너의 아들을 출산했다. 긱스는 로드리에게 사과하며 화해했지만, 라이언과 로드리의 형제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더욱이, 긱스가 동생 로드리 긱스의 장모이자 나타샤의 어머니인 로레인 레버(당시 49세)와 지속적인 불륜 관계를 가졌다는 보도도 터져 나오며 긱스의 이미지는 더욱 추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긱스는 여러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 것에 경각심을 표하고 에이즈 검사를 권유하는 '브라더스 포 라이프(Brothers for Life)' 공익광고의 모델이었으며, 광고의 마지막 부분에는 '올바르게 살아라(Do the right thing)'라는 문구와 함께 등장했다.
7.2. Activism
2006년 8월,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어린이 단체의 '유나이티드 포 유니세프' 파트너십을 통한 그의 활동을 인정받아 유니세프 UK의 대사로 임명되었다. 긱스는 태국의 유니세프 프로젝트를 방문하여 BBC에 "축구 선수로서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슬프게도 매년 수천 명의 어린이가 지뢰를 밟아 이런 일을 겪는다"고 말했다.
8. Post-Playing Career Activities
선수 은퇴 후 라이언 긱스는 축구 관련 사업과 자문 역할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고 있다.
8.1. Business Ventures
2010년 10월, 긱스는 "아마도 [자신의] 경력을 [올드 트래퍼드]에서 마칠 것이며, 하위 리그로 내려가서 낮은 수준에서 뛰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직으로 전환하고 싶다고 말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웨일스의 감독직을 "두 가지 궁극적인 직업"이라고 묘사했으며, UEFA 'A' 코칭 라이선스를 절반 정도 이수했다고 밝혔다.
개리 네빌은 2011년 자신의 기념 경기에 앞서 수익금을 올드 트래퍼드 근처의 서포터스 클럽과 호텔 건립에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래퍼드 구의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2년에 호텔 건립을 승인했다. 2013년, 긱스와 네빌은 GG 호스피탈리티라는 환대 사업 회사를 설립했으며, 맨체스터와 런던을 시작으로 영국 전역에 축구 테마 호텔과 카페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사업은 2013년 11월 런던 스트랫퍼드에 문을 연 카페 풋볼이라는 축구 테마 레스토랑이었다. 2011년에 네빌이 발표했던 서포터스 클럽의 가명이었던 호텔 풋볼은 2014년 말에 개장할 예정이었다.
2014년, 긱스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인 개리 네빌, 폴 스콜스, 니키 버트, 필 네빌과 함께 솔퍼드 시티를 2014-15 시즌을 앞두고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클럽을 풋볼 리그로 승격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그룹은 92년 아카데미 졸업생 팀과 솔퍼드 시티가 특별 친선 경기를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9월 22일, 이 그룹은 억만장자 피터 림에게 클럽 지분 50%를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
8.2. Football Advisory and Development Roles
2017년 9월, 긱스는 개리 네빌을 비롯한 전 유나이티드 팀 동료들과 함께 그레이터맨체스터에 '유니버시티 아카데미 92'라는 대학을 제안했다. 이 대학은 "전통적인 학위보다 더 폭넓은 과정"을 제공하고 "고등 교육을 받지 않을 수도 있는" 학생들을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11월, 긱스가 베트남 축구 인재 육성 기금(PVF)과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되었다. 2년 계약에는 연간 두 차례의 베트남 방문이 포함되었다.
9. Controversies and Legal Issues
라이언 긱스는 선수 및 감독 경력 동안 대중의 주목을 받은 여러 논란과 법적 문제에 직면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의 공적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9.1. Privacy Injunction (Gagging Order)
2011년 5월, 영국 외 언론 매체들은 긱스가 모델 이머전 토머스와의 불륜 의혹과 관련하여 익명화된 비밀 유지 명령('개고기법')을 얻은 축구선수 'CTB'의 정체라고 보도했다. 긱스는 이른바 '슈퍼 금지 명령'을 받은 개인들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온 것에 대해 트위터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했다. 포브스 잡지의 한 블로거는 긱스가 '스트라이샌드 효과'를 알지 못했다고 언급하며, 트위터에 대한 소송이 보도된 후 그의 이름 언급이 크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2011년 5월 22일, 스코틀랜드 신문 선데이 헤럴드는 긱스의 얼굴을 "CENSORED"라는 단어로 가린 채 표지에 그의 사진을 게재했다. 선데이 헤럴드의 편집장 리처드 워커는 런던 고등법원의 판결이 스코틀랜드에서는 효력이 없으며, 종이 신문이 잉글랜드나 웨일스에서 판매될 때만 효력이 있다고 밝혔다. 5월 23일, 이 비밀 유지 명령은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법이 "오늘날 사람들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에 맞춰" 검토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같은 날, 자유민주당 소속 존 헤밍 의원은 의회 특권을 사용하여 긱스를 'CTB'로 명시했다.
9.2. Assault Allegations and Trial
2020년 11월 3일, 긱스는 전 여자친구인 케이트 그레빌과 그녀의 여동생 엠마에 대한 두 건의 폭행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혐의를 부인했다.
2021년 4월, 그는 케이트 그레빌에게 실제 신체적 상해를 입힌 폭행 혐의와 엠마 그레빌에 대한 단순 폭행, 그리고 케이트에 대한 강압적 통제 행동 혐의로 기소되었다. 4월 28일, 그는 법원에 출두하여 혐의를 부인했다.
그의 재판은 2022년 8월 8일에 시작되었다. 7명의 여성과 4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8월 31일에 모든 혐의에 대해 평결에 도달하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2023년 7월 18일, 재판을 다시 시작하기 2주 전, 검찰은 혐의를 철회하면서 긱스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사는 케이트 그레빌이 재판에서 증언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10. Achievements and Records
라이언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수많은 클럽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수상과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0.1. Club Honours
- 프리미어리그: 1992-93, 1993-94, 1995-96, 1996-97, 1998-99, 1999-2000,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 FA컵: 1993-94, 1995-96, 1998-99, 2003-04
- EFL컵: 1991-92, 2005-06, 2008-09,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1, 2013
- UEFA 챔피언스리그: 1998-99, 2007-08
- UEFA 슈퍼컵: 1991
- 인터콘티넨털컵: 1999
- FIFA 클럽 월드컵: 2008
10.2. Individual Awards
- 브라보상: 1993
-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1991-92, 1992-93
- PFA 올해의 선수상: 2008-09
- PFA 올해의 팀: 1992-93 프리미어리그, 1997-98 프리미어리그, 2000-01 프리미어리그, 2001-02 프리미어리그, 2006-07 프리미어리그, 2008-09 프리미어리그
- PFA 세기의 팀: 1997-2007
- PFA 공로상: 2016
- BBC 올해의 스포츠인상: 2009
- BBC 웨일스 올해의 스포츠인상: 1996, 2009
- BBC 올해의 골: 1998-99
- 웨일스 올해의 축구 선수: 1996, 2006
- GQ 올해의 스포츠맨: 2010
- 맷 버스비 경 올해의 선수: 1997-98
- 지미 머피 올해의 영 플레이어: 1990-91, 1991-92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 2005-06
- 프리미어리그 10주년 어워드: 1992-93 ~ 2001-02 올스타 팀
- 프리미어리그 10주년 어워드: 1992-93 ~ 2001-02 국내 팀
- 프리미어리그 20주년 어워드: 1992-93 ~ 2011-12 베스트 플레이어
- 프리미어리그 20주년 어워드: 1992-93 ~ 2011-12 팬 및 전문가 선정 올스타 팀
- 프리미어리그 20주년 어워드: 1992-93 ~ 2011-12 최다 선수 출전 (596경기)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1993년 9월, 2006년 8월, 2007년 2월
- UEFA 챔피언스리그 10주년 드림팀 (1992 ~ 2002): 2002
-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어시스트 기록자: 2006-07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5
- 인터콘티넨털컵 맨 오브 더 매치 상: 1999
- 골든 풋: 2011
- 글로브 사커 어워즈 선수 경력상: 2019
- 원 클럽 어워드: 2020
- FWA 공로상: 2007
- IFFHS 레전드
10.3. Records
- 선수로서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을 13회 기록하여 최다 우승 기록 보유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중 13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모두 보유한 유일한 선수
- 프리미어리그 선수 최다 출전 기록: 632회 (개러스 배리가 경신)
- 프리미어리그 선수 최다 어시스트 기록: 162개
- UEFA 챔피언스리그 선수 최다 어시스트 기록: 41개
- 22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에 출전한 유일한 선수
- 21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한 유일한 선수
- 17개의 다른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득점한 최초의 선수 (1996-97 시즌부터 2006-07 시즌까지 11시즌 연속 포함. 리오넬 메시와 카림 벤제마는 18회로 더 나은 기록을 보유)
- 챔피언스리그/유러피언컵 본선 역사상 영국 선수 최다 득점자, 전체 14위 (예선 라운드 제외)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최다 출전 기록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최다 선발 출전 기록: 794경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프리미어리그 100골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
- 단일 클럽에서 프리미어리그 100골을 기록한 두 번째 미드필더 (첫 번째는 맷 르 티시에)
-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4명 중 한 명 (나머지는 폴 스콜스, 개리 네빌, 웨스 브라운). 두 번의 우승 결승전에 모두 출전한 유일한 선수.
-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득점자 (37세 289일): 2011년 9월 14일 벤피카전
- 10개 이상의 1부 리그 메달을 획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2명 중 한 명 (다른 한 명은 폴 스콜스)
- 하계 올림픽 축구 대회 최고령 득점자 (38세 243일): 2012년 7월 29일 아랍에미리트전
10.4. State and Civic Honours
- 대영 제국 훈장: 2007년 축구 공로로 OBE 수훈
- 솔퍼드 대학교에서 축구 및 개발도상국 자선 활동 기여로 명예 문학 석사 학위 수여: 2008
- 솔퍼드 시티 명예 시민권: 2010년 1월 7일. 솔퍼드 시티의 22번째 명예 시민이다.
11. Career Statistics
라이언 긱스의 선수 및 감독으로서의 경력 통계는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일스, 그리고 영국 올림픽 대표팀에서 보여준 뛰어난 활약과 기여를 잘 보여준다.
11.1. Club
구단 | 시즌 | 리그 | FA컵 | 리그컵 | 유럽 | 기타1 | 합계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90-91 | 1부 디비전 | 2 | 1 | 0 | 0 | 0 | 0 | 0 | 0 | 0 | 0 | 2 | 1 |
1991-92 | 1부 디비전 | 38 | 4 | 3 | 0 | 8 | 3 | 1 | 0 | 1 | 0 | 51 | 7 | |
1992-93 | 프리미어리그 | 41 | 9 | 2 | 2 | 2 | 0 | 1 | 0 | - | 46 | 11 | ||
1993-94 | 프리미어리그 | 38 | 13 | 7 | 1 | 8 | 3 | 4 | 0 | 1 | 0 | 58 | 17 | |
1994-95 | 프리미어리그 | 29 | 1 | 7 | 1 | 0 | 0 | 3 | 2 | 1 | 0 | 40 | 4 | |
1995-96 | 프리미어리그 | 33 | 11 | 7 | 1 | 2 | 0 | 2 | 0 | - | 44 | 12 | ||
1996-97 | 프리미어리그 | 26 | 3 | 3 | 0 | 0 | 0 | 7 | 2 | 1 | 0 | 37 | 5 | |
1997-98 | 프리미어리그 | 29 | 8 | 2 | 0 | 0 | 0 | 5 | 1 | 1 | 0 | 37 | 9 | |
1998-99 | 프리미어리그 | 24 | 3 | 6 | 2 | 1 | 0 | 9 | 5 | 1 | 0 | 41 | 10 | |
1999-2000 | 프리미어리그 | 30 | 6 | - | 0 | 0 | 11 | 1 | 3 | 0 | 44 | 7 | ||
2000-01 | 프리미어리그 | 31 | 5 | 2 | 0 | 0 | 0 | 11 | 2 | 1 | 0 | 45 | 7 | |
2001-02 | 프리미어리그 | 25 | 7 | 1 | 0 | 0 | 0 | 13 | 2 | 1 | 0 | 40 | 9 | |
2002-03 | 프리미어리그 | 36 | 8 | 3 | 2 | 5 | 0 | 15 | 4 | - | 59 | 14 | ||
2003-04 | 프리미어리그 | 33 | 7 | 5 | 0 | 0 | 0 | 8 | 1 | 1 | 0 | 47 | 8 | |
2004-05 | 프리미어리그 | 32 | 5 | 4 | 0 | 1 | 1 | 6 | 2 | 1 | 0 | 44 | 8 | |
2005-06 | 프리미어리그 | 27 | 3 | 2 | 1 | 3 | 0 | 5 | 1 | - | 37 | 5 | ||
2006-07 | 프리미어리그 | 30 | 4 | 6 | 0 | 0 | 0 | 8 | 2 | - | 44 | 6 |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31 | 3 | 2 | 0 | 0 | 0 | 9 | 0 | 1 | 1 | 43 | 4 | |
2008-09 | 프리미어리그 | 28 | 2 | 2 | 0 | 4 | 1 | 11 | 1 | 2 | 0 | 47 | 4 |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25 | 5 | 1 | 0 | 2 | 1 | 3 | 1 | 1 | 0 | 32 | 7 | |
2010-11 | 프리미어리그 | 25 | 2 | 3 | 1 | 1 | 0 | 8 | 1 | 1 | 0 | 38 | 4 |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25 | 2 | 2 | 0 | 1 | 1 | 5 | 1 | 0 | 0 | 33 | 4 | |
2012-13 | 프리미어리그 | 22 | 2 | 4 | 1 | 1 | 2 | 5 | 0 | - | 32 | 5 | ||
2013-14 | 프리미어리그 | 12 | 0 | 0 | 0 | 2 | 0 | 7 | 0 | 1 | 0 | 22 | 0 | |
합계 | 672 | 114 | 74 | 12 | 41 | 12 | 157 | 29 | 19 | 1 | 963 | 168 |
1 FA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 인터콘티넨털컵, FIFA 클럽 월드컵 포함.
11.2. International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웨일스 | 1991 | 2 | 0 |
1992 | 3 | 0 | |
1993 | 6 | 2 | |
1994 | 1 | 1 | |
1995 | 3 | 0 | |
1996 | 3 | 1 | |
1997 | 3 | 1 | |
1998 | 1 | 0 | |
1999 | 3 | 1 | |
2000 | 4 | 1 | |
2001 | 5 | 0 | |
2002 | 5 | 0 | |
2003 | 7 | 1 | |
2004 | 3 | 0 | |
2005 | 6 | 3 | |
2006 | 5 | 0 | |
2007 | 4 | 1 | |
합계 | 64 | 12 | |
영국 올림픽 대표팀 | 2012 | 4 | 1 |
합계 | 4 | 1 |
:득점 및 결과는 웨일스 및 영국 대표팀의 골을 먼저 표시하며, 점수 열은 각 긱스의 골 이후의 점수를 나타낸다.
No.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웨일스 득점 | ||||||
1 | 1993년 3월 31일 | 내셔널 스타디움, 카디프, 웨일스 | 벨기에 | 1-0 | 2-0 | 1994 FIFA 월드컵 예선 |
2 | 1993년 9월 8일 | 내셔널 스타디움, 카디프, 웨일스 | 체코슬로바키아 | 1-1 | 2-2 | 1994 FIFA 월드컵 예선 |
3 | 1994년 9월 7일 | 내셔널 스타디움, 카디프, 웨일스 | 알바니아 | 2-0 | 2-0 | UEFA 유로 1996 예선 |
4 | 1996년 6월 2일 | 산마리노 스타디움, 세라발레, 산마리노 | 산마리노 | 4-0 | 5-0 | 1998 FIFA 월드컵 예선 |
5 | 1997년 10월 11일 | 보두앵 국왕 경기장, 브뤼셀, 벨기에 | 벨기에 | 2-3 | 2-3 | 1998 FIFA 월드컵 예선 |
6 | 1999년 9월 4일 | 디나모 스타디움, 민스크, 벨라루스 | 벨라루스 | 2-1 | 2-1 | UEFA 유로 2000 예선 |
7 | 2000년 3월 29일 | 밀레니엄 스타디움, 카디프, 웨일스 | 핀란드 | 1-2 | 1-2 | 친선 경기 |
8 | 2003년 3월 29일 | 밀레니엄 스타디움, 카디프, 웨일스 | 아제르바이잔 | 4-0 | 4-0 | UEFA 유로 2004 예선 |
9 | 2005년 10월 8일 | 윈저 파크, 벨파스트, 북아일랜드 | 북아일랜드 | 3-2 | 3-2 | 2006 FIFA 월드컵 예선 |
10 | 2005년 10월 12일 | 밀레니엄 스타디움, 카디프, 웨일스 | 아제르바이잔 | 1-0 | 2-0 | 2006 FIFA 월드컵 예선 |
11 | 2-0 | |||||
12 | 2007년 3월 28일 | 밀레니엄 스타디움, 카디프, 웨일스 | 산마리노 | 1-0 | 3-0 | UEFA 유로 2008 예선 |
영국 올림픽 대표팀 득점 | ||||||
1 | 2012년 7월 29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영국 | 아랍에미리트 | 1-0 | 3-1 | 2012 하계 올림픽 |
11.3. Managerial record
팀 | 시작일 | 종료일 | 기록 | ||||
---|---|---|---|---|---|---|---|
경기 수 | 승리 | 무승부 | 패배 | 승률 %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임시) | 2014년 4월 22일 | 2014년 5월 11일 | 4 | 2 | 1 | 1 | 50.00 |
웨일스 | 2018년 1월 15일 | 2020년 11월 3일 | 25 | 12 | 5 | 8 | 48.00 |
합계 | 29 | 14 | 6 | 9 | 4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