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다카히토 친왕비 유리코(崇仁親王妃百合子타카히토 신노히 유리코일본어)는 일본의 황족으로, 다이쇼 천황과 데이메이 황후의 넷째 아들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비이다. 1923년 6월 4일 高木百合子다카기 유리코일본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2024년 11월 15일 101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그녀는 나루히토 천황의 마지막 생존 대고모였으며, 서거 전까지 황실의 최고령 구성원이자 다이쇼 시대에 태어난 마지막 생존 황족이었다.
유리코 비는 일본 적십자사 명예 부총재를 비롯한 여러 자선 단체의 명예 총재를 역임하며 전통 문화 보존 및 모자 보건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등 다양한 공적 활동을 펼쳤다. 그녀는 또한 황실 회의의 예비 의원 및 의원으로 활동하며 황실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도쿄 대공습으로 거처를 잃고 피난 생활을 하는 등 격동의 시대를 보냈으며, 전후에는 황실의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가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유리코 비의 초기 생애는 화족 가문의 배경과 가쿠슈인 여자학원에서의 교육을 통해 형성되었다.
2.1. 출생과 가족
유리코 비는 1923년 6월 4일 도쿄시 아카사카구 다카기정(현 도쿄도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에 위치한 자작 다카기 가문의 저택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카기 마사나리(1894년~1948년) 자작이었고, 어머니는 이리에 구니코(1901년~1988년)였다.
다카기 가문은 과거 가와치국의 작은 영지였던 단난번의 영주였던 다카기 씨족의 후예이다. 아버지 다카기 마사나리를 통해 그녀는 에도 막부 말기 저명한 로주였던 홋타 마사요시의 고손녀였다. 어머니 이리에 구니코는 귀족 야나기하라 가문의 후손으로, 쇼와 천황의 재종사촌이었다. 쇼와 천황의 할머니이자 다이쇼 천황의 측실이었던 야나기하라 나루코는 구니코의 고모할머니였다. 구니코의 남동생인 이리에 스케마사는 쇼와 천황의 시종장을 지냈다.
유리코 비의 아버지 다카기 마사나리 자작은 곤충학자였으나, 화족 제도가 폐지되고 소장했던 귀한 장서와 표본을 전쟁으로 잃은 충격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48년 7월 8일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1일 도쿄도와 야마나시현 경계의 오쿠타마정 나나쓰이시산에서 목을 매 자살한 백골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의 유서에는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한 생활고가 담겨 있었으며, 이는 생활력을 잃은 옛 화족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태되는 모습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2.2. 교육
유리코 비는 1928년(쇼와 3년) 가쿠슈인 유치원에 입학했으며, 1931년(쇼와 6년) 4월에는 여자 가쿠슈인 본과에 입학했다. 1941년(쇼와 16년)에 여자 가쿠슈인 본과를 졸업했다.
3. 결혼과 황실 생활
유리코 비는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과의 결혼을 통해 황실에 입성했으며,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황실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3.1. 결혼


1941년 3월 29일, 유리코는 재종숙부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과의 약혼이 발표되었다. 약혼식은 1941년 10월 3일에 거행되었고, 결혼식은 같은 해 10월 22일에 열렸다. 이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기 약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결혼 후 유리코는 '미카사노미야 비 전하'로 불리게 되었다.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그들의 거주지였던 아오야마 히가시교엔이 전소되면서, 부부와 첫째 자녀는 피난처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유리코 비는 당시 한 살이던 장녀 고노에 야스코 내친왕을 안고 방공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전쟁 말기의 분위기를 "총알이 날아다닐 것 같은 격렬한 논쟁과 긴장감으로 매우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이후 가나가와현 하야마정 잇시키의 임시 거처로 이사했다. 1947년에는 도쿄도 시나가와구 가미오사키 조자마루에 위치한 저택을 미카사노미야 가문이 구입하여 이후 13년간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이 부지는 1985년에 '와카스기 홈즈'라는 이름의 아파트로 개발되었다. 전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유리코 비는 가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유리코 비는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마지막 몇 달 동안 자주 병문안을 갔다. 2016년 10월 22일, 그들은 병실에서 75번째 결혼 기념일을 축하했다. 다카히토 친왕은 5일 후인 2016년 10월 27일 유리코 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거했다. 유리코 비는 남편의 장례식을 상주로서 이끌었다.
3.2. 황실에서의 역할

유리코 비는 다양한 자선 단체의 명예 총재를 역임했으며, 특히 일본 전통 문화 보존과 관련된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그녀는 일본 적십자사에서도 활발한 역할을 수행하며 명예 부총재를 지냈다.
1948년, 그녀는 은사재단 모자애육회의 총재로 취임하여 2010년 9월 사임할 때까지 60년 이상 모자 보건 향상에 힘썼다. 그녀는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 각지에서 모자 보건 문제와 관련된 자선 행사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
황실에서는 1963년부터 1967년까지, 그리고 2007년부터 2015년, 2019년부터 2023년 9월까지 황실 회의의 예비 의원을 지냈으며, 1991년부터 2007년까지는 황실 회의 의원으로 활동했다. 1956년 8월부터 10월까지는 스리랑카(당시 실론) 건국 2500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미카사노미야 친왕과 함께 전후 첫 해외 방문을 했으며, 이란과 이라크에도 들렀다. 1970년 11월에는 도쿄 미나토구 아카사카 어용지에 신축된 미카사노미야 저택으로 이주했다. 1989년 5월에는 이방자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6년 남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서거함에 따라 93세의 나이로 미카사노미야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황족으로서 공무를 수행하면서도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자취를 알 수 있도록 사진 앨범을 만들고, 다섯 자녀의 육아 일지를 작성하는 등 시간에 쫓기면서도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고 밝혔다. 또한 건강을 위해 매일 오전 15분가량 체조 TV 프로그램에 맞춰 운동을 했으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궁정 정원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휠체어를 타고 아카사카 어용지 내를 산책했다. 여러 신문과 잡지를 읽는 것을 일과로 삼았으며, TV로 뉴스나 야구 중계를 시청하는 것을 즐겼다.
4. 자녀

유리코 비는 남편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과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2022년 기준으로 9명의 손주와 7명의 증손주를 두었다. 두 딸은 결혼 후 황족 신분을 떠났으며, 세 아들은 모두 그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손주들 중에서는 세 명의 손녀만이 황실에 남아있고, 다른 두 손녀는 결혼 후 황족 신분을 잃었다.
이름 | 출생일 | 사망일 | 결혼일 | 배우자 | 자녀 |
---|---|---|---|---|---|
고노에 야스코 (미카사노미야 야스코 내친왕) | 1944년 4월 26일 | 생존 | 1966년 12월 16일 | 고노에 다다테루 | 고노에 다다히로 (1남) |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 | 1946년 1월 5일 | 2012년 6월 6일 (66세) | 1980년 11월 7일 | 도모히토 친왕비 노부코 |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여왕, 미카사노미야 요코 여왕 (2녀) |
가쓰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 | 1948년 2월 11일 | 2014년 6월 8일 (66세) | 없음 | 없음 | |
센 마사코 (미카사노미야 마사코 내친왕) | 1951년 10월 23일 | 생존 | 1983년 10월 14일 | 센 소시쓰 16세 | 기쿠치 아키후미, 사카타 마키코, 센 다카후미 (2남 1녀) |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 | 1954년 12월 29일 | 2002년 11월 21일 (47세) | 1984년 12월 6일 | 노리히토 친왕비 히사코 |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여왕,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 (3녀) |
2024년 8월에는 둘째 딸 마사코 센의 장남인 외손주 기쿠치 아키후미가 39세의 나이로 급성 호흡 부전으로 사망했다.
5. 공적 활동
유리코 비는 황실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공적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했다.
5.1. 자선 및 사회 공헌 활동
그녀는 특히 일본 전통 문화 보존과 관련된 여러 자선 단체의 명예 총재를 역임했다. 1948년부터 2010년 9월까지 은사재단 모자애육회의 총재로서 모자 보건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일본 적십자사의 명예 부총재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에 대한 봉사 정신을 실천했다. 그녀는 모자 보건 문제와 관련된 공식 행사에 자주 참석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5.2. 문화 활동
유리코 비는 일본 전통 문화 계승 및 보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9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민족의상문화보급협회의 명예 총재를 지냈으며, 주구지 봉찬회 명예 총재도 역임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녀는 일본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6. 말년과 건강

유리코 비는 고령에 접어들면서 여러 건강 문제를 겪었다. 1999년부터 심장 박동기를 사용했으며, 2007년에는 결장암 수술을 받았다. 2019년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식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2020년 9월, 97세의 나이로 심부전과 폐렴 증상으로 입원했으나 2주 후 퇴원했다. 2021년 3월에는 부정맥으로 성 루카 국제 병원에 입원했으나, 위중하지 않은 상태였고 증상이 완화되어 며칠 내에 퇴원했다. 2022년 7월에는 99세의 나이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성 루카 국제 병원에 입원했다.
2023년 6월 4일에는 10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센테나리안이 되었다. 2024년 3월 초에는 경미한 뇌경색과 흡인성 폐렴으로 성 루카 국제 병원에 입원했다. 3월 11일에는 집중 치료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질 정도로 회복세를 보였으나, 3월 18일에는 다시 심부전과 뇌경색 증상이 재발하여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이후에도 성 루카 국제 병원에서 치료를 계속 받았다. 3월 25일에는 심부전과 뇌경색 증상이 크게 호전되어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2024년 6월 4일, 병원에서 101세 생일을 맞이했으며, 며느리인 노리히토 친왕비 히사코와 손녀인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여왕, 미카사노미야 요코 여왕,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여왕이 병문안을 왔다. 8월 16일에는 폐렴 진단을 받고 다시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9월 9일에는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동으로 돌아왔다.
2024년 11월 7일 실시된 검사에서는 심장과 신장을 포함한 전반적인 신체 기능 저하가 확인되며 용태가 악화되었다. 3월 입원 이후 휠체어에 앉는 등의 재활 치료를 계속해왔다. 11월 9일, 건강 악화 발표 후 여러 직계 가족들이 병문안을 왔다. 11월 11일, 궁내청은 유리코 비의 건강이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의식이 저하된 상태라고 발표했다. 나루히토 천황과 마사코 황후도 그녀의 상태에 대해 보고받고 우려를 표했다. 11월 14일에는 궁내청의 니시무라 야스히코 궁무 주관이 유리코 비가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7. 서거와 장례

2024년 11월 15일 오전 6시 32분(일본 표준시), 다카히토 친왕비 유리코는 도쿄 성 루카 국제 병원에서 101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서거 당시 그녀의 손녀인 아키코 여왕, 요코 여왕, 쓰구코 여왕, 그리고 며느리인 히사코 비가 곁을 지켰다. 궁내청은 그녀의 사망 원인을 "노쇠"라고 발표했으나, 일본 언론들은 폐렴을 사망 원인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녀의 시신은 이후 도쿄의 미카사노미야 저택으로 옮겨졌다.
유리코 비의 서거로 황실은 애도 기간에 들어갔다. 나루히토 천황은 공식 일정을 취소했으며, 천황과 황후, 상황 아키히토와 상황후 미치코,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 일가,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 일가는 5일간의 복상 기간을 가졌다. 미카사노미야 가문과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 가문 등 직계 후손들은 30일간 복상했다.
11월 16일, 미카사노미야 저택에서 황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적인 의식인 '어선입(御舟入)'이 거행되었다. 11월 24일 오후 2시에는 관을 제단으로 옮기는 '정침이구의 의(正寝移柩の儀)'가, 오후 6시부터는 빈소가 마련되어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 키코 비, 아이코 내친왕,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및 내각 각료들이 참석했다. 나루히토 천황과 마사코 황후, 상황 아키히토와 상황후 미치코는 빈소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으나, 11월 24일 빈소 직전에 저택을 방문하여 조의를 표했다. 11월 25일 오후 5시에는 영혼을 권사에 안치하는 '영대안치의 의(霊代安置の儀)'가 거행되며 빈소가 마무리되었다.
본 장례식에 해당하는 '렴장의 의(斂葬の儀)'는 2024년 11월 26일 도쿄 분쿄구의 도시마가오카 묘지에서 481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오전 9시 30분에는 장례 행렬이 출발하는 '영차발인의 의(霊車発引の儀)'가, 오전 10시부터는 '장장의 의(葬場の儀)'가, 오후 4시 30분부터는 납골에 해당하는 '묘소의 의(墓所の儀)'가 진행되었다. 빈소와 장례식의 상주는 손녀인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여왕이 맡았다. 그녀의 시신은 오치아이 화장장에서 화장되었고, 유골은 도시마가오카 묘지의 미카사노미야 가문 묘소에 남편의 유골 옆에 안치되었다. 부장품으로는 가족 사진, 고인이 보관했던 다섯 자녀의 유치, 어머니 이리에 구니코가 손바느질한 기모노, 그리고 만년에 즐겨 풀었던 한자 퍼즐 등이 함께 안치되었다.
일본 정부는 그녀의 장례 비용으로 약 3.25 억 JPY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약 3.20 억 JPY이 예비비에서 충당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10월에 지급된 황족비의 절반인 약 1016.00 만 JPY이 국고로 반환될 예정이다. 3월부터 11월까지의 입원 비용은 공적 자금인 '황실비'에서 지불되었다. 유리코 비의 장례 의식은 전전의 '황실 상례령'을 거의 그대로 따랐으며, 2025년 11월 15일 도시마가오카 묘지에서 거행될 '묘소 1주년 제사의 의(墓所一周年祭の儀)'까지 1년간 지속될 예정이다. 천황, 황후, 상황, 상황후는 관례에 따라 장례 의식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으나, 칙사 등을 파견하고 11월 16일 '어선입' 전과 11월 24일 '정침이구의 의' 후에 각각 미카사노미야 저택을 방문하여 조의를 표했다. 천황과 황후는 11월 27일 '렴장 후 1일 묘소제 의(斂葬後一日墓所祭の儀)' 후 미카사노미야 가문 묘소에서 참배했다.
8. 평가 및 유산
유리코 비는 101년이라는 긴 생애 동안 제2차 세계 대전과 전후 혼란기를 포함한 일본의 격동적인 시대를 직접 경험하며 황실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는 특히 모자 보건과 전통 문화 보존을 위한 공적 활동에 헌신하며 사회에 기여했다. 1948년부터 2010년까지 은사재단 모자애육회 총재를 역임하며 모자 보건 향상에 기여한 점은 그녀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활동으로 평가된다.
그녀는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황실에서 가장 오래 산 여성 황족이었으며, 다이쇼 시대에 태어난 마지막 생존 황족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녀의 장수와 지속적인 공적 활동 참여는 황실의 안정성과 전통 계승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유리코 비의 삶은 황실의 변화와 일본 사회의 발전을 함께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9. 영예
유리코 비는 일본 국내외에서 다양한 훈장과 명예 직위를 받았다.
9.1. 일본 국내
보관대수장 약장 - 보관대수장(훈일등 보관장): 1941년 10월 22일 수여.
- 적십자 장식장의 부인
- 적십자 메달 수훈자
9.2. 해외
9.3. 명예 직위
- 황실 회의 예비 의원 (총 4회 역임: 1963년 9월 16일~1967년 9월 15일, 2007년 9월 16일~2015년 9월 15일, 2019년 9월 16일~2023년 9월)
- 일본 적십자사 명예 부총재
- 은사재단 모자애육회 총재 (1948년 4월~2010년 9월 30일)
- 민족의상문화보급협회 명예 총재 (1979년 3월~2010년 3월)
- 주구지 봉찬회 명예 총재
- 황실 회의 의원 (4회 연속 역임: 1991년 9월 16일~2007년 9월 15일)
10. 족보
유리코 비의 가계는 다카기 가문과 황실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다카기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무가 출신으로, 에도 시대에는 가와치국 단난번 1만 석의 다이묘였다.
유리코 비의 어머니 구니코 이리에는 이리에 다메모리 자작의 둘째 딸이다. 이리에 가문은 후지와라 북가의 지류인 레이제이 가문에서 파생되었으며, 중세의 위대한 와카 시인인 후지와라노 슌제이와 후지와라노 데이카를 조상으로 둔 가도의 명문가이다. 구니코의 남동생 이리에 스케마사는 쇼와 천황의 시종장을 지냈다.
유리코 비의 부계 조상으로는 다카기 마사요시 (단난 다카기 가문 13대 당주), 마쓰다이라 데루토시 (고자키번 9대 번주), 홋타 마사요시 (사쿠라번 5대 번주이자 로주) 등이 있다. 모계 조상으로는 레이제이 다메타다, 야나기하라 노부코, 야나기하라 사키미쓰 백작 (다이쇼 천황의 외삼촌), 다테 하쓰네 (다테 무네나리 백작의 딸) 등이 있다. 이러한 가계는 유리코 비가 일본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과 황실의 혈통을 모두 잇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