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김태균(金泰均)은 1982년 5월 29일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주로 내야수 중 1루수 및 지명타자로 활약했으며, KBO 리그의 한화 이글스와 NPB의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뛰었다. 현재는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단장 어드바이저와 KBS N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KBO 리그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통산 타율 NaN 경 0.320 이상, 300개 이상의 홈런, 1,300개 이상의 타점을 기록했다. 주요 업적으로는 2001년 신인왕, 3차례의 KBO 골든글러브 (2005년, 2008년, 2016년) 수상이 있으며,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올스타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그의 등번호 52번은 한화 이글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구단 역사상 네 번째 영구 결번 선수가 되었다.
2. 초기 생애 및 아마추어 경력
김태균은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재능을 보이며 아마추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1. 어린 시절 및 학창 시절
김태균은 1982년 5월 29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권유로 천안남산초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천안북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야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갈고닦았다. 북일고 재학 시절, 그는 야구 유망주에게 수여되는 박찬호 야구 장학금을 받으며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학창 시절 그의 일상은 묵묵한 맹훈련으로 채워진 야구에 전념하는 나날이었다.
2.2. 아마추어 야구 경력
2000년, 김태균은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동갑내기인 이대호, 추신수 (대회 MVP), 정근우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30타수 13안타, 타율 NaN 경 0.433, 3홈런, 11타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또한 그는 2001년 야구 월드컵에 참가하여 6위에 머물렀으며, 7타수 2안타 타율 NaN 경 0.286, 2볼넷을 기록했다. 2003년 야구 월드컵에서는 8위를 기록했으나, 34타수 13안타 타율 NaN 경 0.382, 3홈런, 9타점, 10득점, 6볼넷을 올리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3. 프로 경력
김태균은 KBO 리그와 NPB를 오가며 뛰어난 타격 능력을 선보였다.
3.1. 한화 이글스 시절 (1기)
김태균은 2001년 KBO 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계약금은 1.60 억 KRW, 연봉은 2000.00 만 KRW였다. 입단 첫 해인 2001년 4월 17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1루수로 출전하며 KBO 리그에 데뷔했다. 그는 88경기에 출전하여 3할대 타율과 20홈런을 기록하며 그 해 신인왕에 올랐는데, 이는 한화 이글스 선수로는 최초의 신인왕 수상이었다.
2002년에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며 타율 NaN 경 0.255, 7홈런으로 부진했다. 이후 등번호를 다시 52번으로 교체했는데, 이 번호는 그의 상징이 되었다. 2003년에는 31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4번 타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2005년에는 타율 NaN 경 0.317, 146안타, 23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첫 KBO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를 수상했다. 2007년 KBO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는 9개의 홈런을 쳐내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 시즌은 김태균에게 특히 빛나는 한 해였다. 그는 타율 5위, 홈런 1위 (31개), 타점 4위 (92개), 장타율 1위 (NaN 경 0.622)를 기록하며 홈런왕과 최고 장타율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또한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를 수상했으며, 유효표 346표 중 332표를 얻어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후, KBO 리그 개막 초반 한때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기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4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중 홈으로 쇄도하다 포수 최승환과의 충돌을 피하려다 넘어지며 머리를 강타, 뇌진탕으로 병원에 후송되었다. 이 후유증으로 한동안 2군에서 재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19홈런을 쳐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활약을 일찍부터 주시하던 지바 롯데 마린스는 그가 FA 자격을 취득하자 영입을 추진했다. 2009년 11월 13일, 김태균은 최장 3년 총액 7.00 억 JPY (약 90.00 억 KRW)에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하며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3.2.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2009년 11월 FA를 신청한 김태균은 국내외 여러 구단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11월 13일 일본 진출을 결정하고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했다. 등번호는 한화 이글스 시절과 같은 52번으로 정해졌고, 유니폼 백네임은 TAEKYUN영어으로 표기되었다. 그의 응원가로는 다비치의 '8282'를 개사한 곡과 한화 이글스 시절 사용했던 응원가 두 곡이 쓰였다.
그는 일본 진출 첫 해인 2010년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1위이자 최다 득표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한국 선수가 리그 최다 득표 선수로 뽑힌 최초의 사례이자, 일본 진출 첫 해에 팬 투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경우였다. 또한 그는 2010년 올스타전 2차전에서 홈런 더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10년 시즌 개막부터 4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3월 20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개막전에서 와쿠이 히데아키에게 헛스윙 삼진을 당하며 첫 타석을 기록했다. 3월 22일 세이부 라이온스의 노가미 료마를 상대로 첫 안타를 기록했고, 3월 2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희생플라이를 쳐 첫 타점을 올렸다. 4월 2일 오릭스 버펄로스의 곤도 가즈키를 상대로 중월 2점 홈런을 치며 일본 무대 첫 홈런을 기록했다. 6월 7일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마스부치 다쓰요시를 상대로 좌월 만루 홈런을 터뜨리며 일본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전반기인 6월까지 18홈런, 65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선두 경쟁에 크게 기여했으나, 7월 이후 타율 NaN 경 0.250, 3홈런, 27타점으로 크게 부진하며 9월부터는 주로 6번이나 7번 타자로 출전했다. 결국 첫 시즌을 타율 NaN 경 0.268, 21홈런, 92타점으로 마쳤다. 포스트시즌에서는 7번 타자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6번 타자)로 출전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와 일본 시리즈를 포함한 총 15경기에서 타율 NaN 경 0.310을 기록했으나, 모든 안타가 단타였고 장타율도 NaN 경 0.310, 6타점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팀의 2010년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개인 첫 우승을 경험했다.
2010년 8월, 그는 KBS N 스포츠 아나운서 김석류와의 결혼을 발표했고, 12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일본 롯데리아는 그의 활약을 기대하며 김치가 들어간 햄버거인 '김치 태균 버거'를 홈 구장인 지바 마린 스타디움 내 점포에서 한정 판매했다. 홈 경기에서 홈런을 쳤을 때, 그의 등번호와 같은 52개 한정으로 통상 가격 400 JPY의 8분의 1인 50 JPY로 가격을 인하하여 판매했다. 2010년 5월 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 그가 홈 구장 첫 홈런이자 시즌 6호 홈런을 치자 '김치 태균 버거'의 첫 가격 인하가 실시되었고, 52개가 8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그러나 5회 말 그의 연타석 홈런이 터지며 다시 '김치 태균 버거'의 가격 인하가 실시되었는데, 이미 이 날 준비했던 버거가 모두 팔려나가 통상 가격 410 JPY의 치즈 버거를 급하게 52개 한정으로 50 JPY에 인하 판매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 기획의 발안은 당시 팀 동료였던 이구치 다다히토 감독이었다.
2011년 시즌 초부터 전년도 후반기와 같은 부진이 이어졌다. 5월 19일 손목 부상으로 등록이 말소되었고, 6월 초 복귀했으나 이번에는 허리 통증으로 6월 19일 다시 등록이 말소된 후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7월 27일에는 그 해를 끝으로 팀을 떠날 것이 확실시되었고, 11월 19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 시즌 계약을 맺지 않을 것이 공식 발표되었다.
3.3. 한화 이글스 시절 (2기)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태균은 12월 12일 한화 이글스와 역대 최고 연봉인 15.00 억 KRW에 계약하며 복귀했다. 이는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연봉 10.00 억 KRW 이상 선수였다. 그의 등번호는 52번으로 유지되었다.
2012년에는 전반적으로 장타력이 감소하여 홈런 수가 줄었으나, 9월까지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는 최종적으로 타율 NaN 경 0.363을 기록하며 생애 첫 KBO 리그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또한 이 해 볼넷 부문에서도 리그 1위에 올랐다.
2013년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시즌 초반 팀이 심각한 부진에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상대 팀의 집중 견제로 인해 성적 부진에 시달려 시즌 중후반에는 타율 3할 초반대, 홈런은 7개에 그쳤다. 여기에 허리 부상까지 겹쳤으나, 10월 2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우규민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며 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 해에도 출루율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그는 주력 타자로서 활약을 이어갔다. 2014년과 2016년에는 각각 타율 NaN 경 0.365를 기록하며 두 시즌 모두 타격왕 경쟁에서 2위를 차지했다. 특히 2016년에는 136타점을 기록하며 이 부문에서도 리그 2위에 올랐고, 볼넷 부문에서 다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서는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장 기록인 86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다.
2018년에는 KBO 리그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으며, 동시에 통산 2,000안타를 기록하며 KBO 역사상 11번째로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2019년 시즌 후 세 번째 FA 자격을 취득한 그는 한화와 1년 총액 10.00 억 KRW에 재계약하며 잔류했다. 2020년 6월 6일, 김태균은 KBO 리그 역사상 최연소로 통산 3,500루타 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양준혁, 이승엽, 박용택에 이어 KBO 리그에서 통산 3,500루타를 달성한 네 번째 선수이자 최초의 우타자였다. 또한 그는 양준혁보다 약 두 달 빠른 38세 2개월 9일의 나이로 이 기록을 달성하며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2020년 10월 21일, 김태균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10월 22일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은퇴 경기는 따로 치르지 않고 2021년에 은퇴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은퇴 후에는 2021년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의 정민철 단장을 보좌하는 스페셜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게 되었다.
2021년 5월 29일, 그는 은퇴 경기를 위해 특별 엔트리에 등록되어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경기 시작 전 수비 위치에 서서 딸들의 시구를 지켜본 후, 경기 시작 직후 벤치로 물러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등번호 52번은 한화 이글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네 번째 영구 결번이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김태균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여러 국제 대회에서 활약하며 국위 선양에 기여했다.
4.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
- 2006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선출되었다. 본선 미국전을 포함해 총 3경기에 출전하여 1타수 무안타, 2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 2009년**: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출전을 고사한 이승엽을 대신하여 전 경기에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한국에서는 단기전에 약하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그는 9경기에서 타율 NaN 경 0.345 (29타수 10안타), 3홈런, 11타점, 9득점, 8볼넷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그의 활약은 팀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는 1루수 부문에서 만장일치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또한 이 대회에서 홈런, 타점, 득점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당시 그의 11타점은 WBC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주요 경기에서는 3월 16일 멕시코와의 본선 경기(펫코 파크)에서 선발 1루수로 출전하여 5타수 2안타, 3타점, 1홈런, 2득점을 기록했으며, 특히 4회에는 올리버 페레스를 상대로 1점 홈런을 쳤다. 3월 18일 일본과의 본선 경기(펫코 파크)에서는 선발 1루수로 2타수 1안타, 2볼넷을 기록했고, 8회에는 와쿠이 히데아키에게 고의사구를 얻어냈다. 3월 22일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 경기(다저 스타디움)에서는 선발 1루수로 4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을 기록했으며, 2회에는 카를로스 실바를 상대로 좌월 2점 홈런을 기록했다. WBC 이후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 대표팀의 투수진은 한국의 에이스급보다 한 수 위였다"고 평가하며, 특히 이와쿠마 히사시를 인상 깊은 선수로 꼽았다. 팀의 4강 진출로 그는 병역 특례를 받았다.
- 2013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했다.
- 2017년**: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까지 4회 연속으로 WBC에 출전했다. 예선 3경기 (이스라엘전, 네덜란드전 선발 3번 타자, 대만전 박건우 교체 출전 7번 타자)에 나와 이스라엘전 3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 네덜란드전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대만전 10회 초에는 2점 홈런을 기록하며 1타수 1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총 3경기에서 8타수 1안타 (1홈런) 타율 NaN 경 0.125, 1볼넷,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4.2. 기타 국제 대회
-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획득했다.
- 2001년 야구 월드컵**: 6위를 기록했다.
- 2003년 야구 월드컵**: 8위를 기록했다.
-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이었다. 일본 시리즈 종료 후 팀에 합류했으며, 대만전에서 4타석에 나와 4볼넷을 기록했다.
5. 수상 및 영예
김태균은 선수 생활 동안 KBO 리그, NPB,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 다양한 수상과 영예를 얻었다.
5.1. KBO 리그 수상 경력
- 최우수 신인상: 2001년
- KBO 골든글러브: 2005년 (1루수), 2008년 (1루수), 2016년 (지명타자)
- KBO 홈런왕: 2008년
- KBO 타율왕: 2012년
- KBO 장타율왕: 2008년
- KBO 출루율왕: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 프로야구 '스포츠서울' 올해의 기록상: 2017년
5.2. NPB 수상 경력
- 홈런 더비 우승: 2010년 (올스타전 2차전)
5.3. 국제 대회 수상 경력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올스타 팀 (1루수 부문)
-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6. 선수로서의 특징 및 평가
김태균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우타 거포로 평가받았다. 그의 타격 메커니즘은 배트를 크게 뒤로 빼고 약간 클로즈드 스탠스(닫힌 타격 자세)로 서서, 스텝을 거의 밟지 않고 몸의 회전으로 강하게 휘두르는 것이 특징이었다.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로부터도 "엄청난 파워를 가진 선수다. 20-80 스케일에서 파워는 75"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한 우측 방향으로의 타구 생산에도 능했으며, 매년 IsoD가 1할 안팎을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했다.
그는 좌투수에게 특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10년에는 우투수보다 타석 수가 절반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타율 NaN 경 0.323, 9홈런을 기록했다. 또한 2010년 속구 계열 구종에 대해서는 타율 NaN 경 0.347로 강세를 보였으나, 변화구에 대해서는 커브 계열에 2할대, 떨어지는 구종에 NaN 경 0.180으로 약점을 드러냈다. 2009년 WBC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몸쪽 공을 받아쳐 초대형 홈런을 날렸듯이, 몸쪽 공에 강하여 2010년에는 몸쪽 타율 NaN 경 0.327, 10홈런을 기록했다. 반면 바깥쪽 공에는 NaN 경 0.213으로 약해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화 이글스 시절부터는 기복이 심한 편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1루 수비에서는 어깨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포구와 송구의 정확성이 모두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특히 1루와 2루 사이로 향하는 타구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7. 기록 및 통산 성적
7.1. KBO 리그 통산 기록
연도 | 소속 | 나이 | 출장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도실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루타 | 병살타 | 몸맞 | 희타 | 희플 | 고4 | |
---|---|---|---|---|---|---|---|---|---|---|---|---|---|---|---|---|---|---|---|---|---|---|---|---|---|---|
2001 | 한화 | 19 | 88 | 289 | 245 | 51 | 82 | 13 | 2 | 20 | 54 | 2 | 0 | 40 | 72 | .335 | .436 | .649 | 1.085 | 159 | 4 | 4 | 0 | 0 | 2 | |
2002 | 20 | 105 | 344 | 298 | 25 | 76 | 11 | 0 | 7 | 34 | 2 | 1 | 41 | 103 | .255 | .347 | .362 | .709 | 108 | 13 | 2 | 1 | 2 | 2 | ||
2003 | 21 | 133 | 573 | 479 | 67 | 153 | 24 | 2 | 31 | 95 | 3 | 2 | 79 | 106 | .319 | .424 | .572 | .996 | 274 | 13 | 9 | 4 | 2 | 6 | ||
2004 | 22 | 129 | 556 | 473 | 76 | 153 | 26 | 1 | 23 | 106 | 2 | 1 | 70 | 99 | .323 | .412 | .529 | .940 | 250 | 11 | 6 | 0 | 7 | 3 | ||
2005 | 23 | 124 | 529 | 461 | 73 | 146 | 33 | 2 | 23 | 100 | 3 | 1 | 60 | 73 | .317 | .401 | .547 | .947 | 252 | 20 | 6 | 0 | 2 | 5 | ||
2006 | 24 | 124 | 511 | 423 | 66 | 123 | 27 | 0 | 13 | 73 | 2 | 0 | 82 | 89 | .291 | .405 | .447 | .852 | 189 | 18 | 2 | 0 | 4 | 1 | ||
2007 | 25 | 118 | 491 | 393 | 62 | 114 | 13 | 0 | 21 | 85 | 2 | 1 | 90 | 70 | .290 | .420 | .483 | .903 | 190 | 13 | 2 | 0 | 6 | 4 | ||
2008 | 26 | 115 | 484 | 410 | 81 | 133 | 27 | 1 | 31 | 92 | 2 | 0 | 64 | 67 | .324 | .417 | .622 | 1.039 | 255 | 8 | 5 | 0 | 5 | 4 | ||
2009 | 27 | 95 | 389 | 336 | 63 | 111 | 15 | 0 | 19 | 62 | 0 | 0 | 45 | 71 | .330 | .417 | .545 | .961 | 183 | 12 | 6 | 0 | 2 | 4 | ||
2012 | 한화 | 30 | 126 | 513 | 416 | 61 | 151 | 24 | 0 | 16 | 80 | 3 | 1 | 81 | 69 | .363 | .474 | .536 | 1.010 | 223 | 11 | 11 | 0 | 5 | 8 | |
2013 | 31 | 101 | 430 | 345 | 41 | 110 | 24 | 0 | 10 | 52 | 0 | 3 | 73 | 67 | .319 | .444 | .475 | .920 | 164 | 14 | 8 | 0 | 4 | 7 | ||
2014 | 32 | 118 | 508 | 422 | 66 | 154 | 30 | 0 | 18 | 84 | 0 | 2 | 70 | 73 | .365 | .463 | .564 | 1.027 | 238 | 18 | 11 | 0 | 5 | 1 | ||
2015 | 33 | 133 | 524 | 408 | 61 | 129 | 28 | 0 | 21 | 104 | 3 | 1 | 98 | 80 | .316 | .457 | .539 | .996 | 220 | 19 | 12 | 1 | 5 | 12 | ||
2016 | 34 | 144 | 652 | 529 | 94 | 193 | 39 | 0 | 23 | 136 | 1 | 0 | 108 | 97 | .365 | .475 | .569 | 1.044 | 301 | 11 | 9 | 0 | 6 | 10 | ||
2017 | 35 | 94 | 407 | 356 | 51 | 121 | 22 | 0 | 17 | 76 | 0 | 0 | 43 | 56 | .340 | .413 | .545 | .958 | 194 | 13 | 4 | 0 | 4 | 7 | ||
2018 | 36 | 73 | 271 | 254 | 25 | 80 | 11 | 0 | 10 | 34 | 0 | 1 | 13 | 56 | .315 | .358 | .476 | .834 | 121 | 7 | 4 | 0 | 0 | 1 | ||
2019 | 37 | 127 | 500 | 433 | 47 | 132 | 21 | 0 | 6 | 62 | 3 | 0 | 54 | 94 | .305 | .382 | .395 | .777 | 171 | 15 | 5 | 0 | 8 | 5 | ||
2020 | 38 | 67 | 254 | 219 | 14 | 48 | 11 | 0 | 2 | 29 | 0 | 0 | 30 | 42 | .219 | .316 | .297 | .613 | 65 | 8 | 2 | 1 | 2 | 3 | ||
2021 | 39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KBO 통산: 18년 | 2014 | 8225 | 6900 | 1024 | 2209 | 399 | 8 | 311 | 1358 | 28 | 14 | 1141 | 1384 | .320 | .421 | .516 | .936 | 3557 | 228 | 108 | 7 | 69 | 85 |
7.2. NPB 통산 기록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몸맞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10 | 지바 롯데 | 141 | 614 | 527 | 68 | 141 | 22 | 0 | 21 | 226 | 92 | 0 | 0 | 0 | 9 | 74 | 1 | 4 | 140 | 24 | .268 | .357 | .429 | .786 |
2011 | 31 | 119 | 104 | 7 | 26 | 5 | 0 | 1 | 34 | 14 | 0 | 0 | 0 | 1 | 12 | 0 | 2 | 23 | 4 | .250 | .336 | .327 | .663 | |
NPB 통산: 2년 | 172 | 733 | 631 | 75 | 167 | 27 | 0 | 22 | 260 | 106 | 0 | 0 | 0 | 10 | 86 | 1 | 6 | 163 | 28 | .265 | .353 | .412 | .765 |
7.3. 주요 개인 기록 및 마일스톤
- KBO 리그:**
- 프로 첫 홈런: 2001년 5월 19일 대전 삼성 라이온즈전
- 프로 첫 만루홈런: 2003년 6월 10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
- 개인 통산 1,000안타: 2009년 4월 21일 목동 키움 히어로즈전 (역대 56번째)
- KBO 리그 통산 200홈런: 2012년 7월 8일 대전 SK 와이번스전 (투수 윤희상 상대)
- KBO 리그 최초 한 시즌 300출루: 2016년 10월 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 (투수 안규영 상대)
- KBO 리그 최장 86경기 연속 출루: 2016년 ~ 2017년
- KBO 리그 통산 300홈런: 2018년
- KBO 리그 통산 2,000안타: 2018년 (역대 11번째)
- KBO 리그 최연소 통산 3,500루타: 2020년 6월 6일
- 일본 프로 야구 (NPB):**
- 첫 출전·첫 선발 출전: 2010년 3월 20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차전 (세이부 돔), 개막전 4번·1루수로 선발 출전
- 첫 타석: 상동, 1회 초 와쿠이 히데아키에게 헛스윙 삼진 (다음 날 호아시 가즈유키에게 2삼진을 당하여 개막 6연타석 삼진)
- 첫 안타: 2010년 3월 22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3차전 (세이부 돔), 5회 초 노가미 료마에게 우전 안타
- 첫 타점: 2010년 3월 27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 (지바 마린 스타디움), 3회 말 다르빗슈 유에게 희생플라이
- 첫 홈런: 2010년 4월 2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1차전 (교세라 돔 오사카), 5회 초 곤도 가즈키에게 중월 투런 홈런
- 첫 만루 홈런: 2010년 6월 7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4차전 (메이지 진구 구장), 7회 초 마스부치 다쓰요시에게 좌월 만루 홈런
- 기타:**
- 한일 통산 200홈런: 2010년 6월 16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 (도쿄 돔), 8회 후쿠다 사토시에게 투런 홈런
8. 개인 생활
김태균은 2010년 12월 전 KBS N 스포츠 아나운서인 김석류와 결혼했다. 슬하에 김효린, 김하린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야구 외적으로도 다양한 홍보대사 활동을 펼쳤다.
- 2009년 4월: 충청남도 천안시 홍보대사
- 2009년 5월: 네오위즈 게임즈 슬러거 홍보대사
- 2013년, 2014년 5월: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 2013년 7월: 착한운전 마일리지 홍보대사
9. 은퇴 후 활동
현역에서 은퇴한 김태균은 새로운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부터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단장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며 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동시에 KBS N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팬들에게 야구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2021년 5월 29일, 그의 등번호 52번은 한화 이글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장종훈, 정민철, 송진우에 이어 네 번째 영구 결번으로, 김태균이 한화 이글스에 기여한 바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영예이다.
10. 미디어 출연 및 기타 활동
김태균은 야구 선수 활동 외에도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과 소통했다.
- 텔레비전 프로그램:**
- 전국방방쿡쿡: 출연진 (2021년, 1회~12회)
- 슈퍼맨이 돌아왔다: 두 자녀와 동반 출연 (2021년 10월 24일 ~ 2022년 6월 3일)
- 빽 투 더 그라운드: 참가자 (2022년)
- 내일은 천재: 출연진 (2022년)
- 지옥법정: 고정 출연 (2023년)
- 라디오 프로그램:**
-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 한화 이글스 팀 동료 정민철과 출연 (2008년 8월 14일), 단독 출연 (2009년 12월 26일)
- 기타 텔레비전 출연:**
- KBS2 여유만만: LG 트윈스의 봉중근, 정성훈, 이택근, 거리의 시인들 노현태와 출연 (2009년 12월 22일)
- SBS 절친 노트 3: LG 트윈스의 봉중근과 출연 (2010년 1월 15일)
11. 논란 및 비판
김태균은 선수 생활 중 논란의 대상이 된 발언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2013년 6월, 한국의 한 인터넷 야구 프로그램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에 대한 질문을 받자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 셰인 유먼을 꼽았다고 보도되었다. 그는 그 이유로 유먼의 검은 얼굴 때문에 하얀 치아와 하얀 공이 겹쳐 보여 치기 어렵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은 방송 후 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누리꾼들로부터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태균은 한화 이글스 구단을 통해 투구 폼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것이 기자에게 잘못 전달되었다고 해명하며 사과했다. 이후 김태균과 셰인 유먼은 2015년 한화 이글스에서 한때 팀 동료로 함께 뛰기도 했다.
또한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동을 마친 2011년 이후, 김태균은 일본에서의 경험에 대해 "일본에서는 야구가 재미없었다"거나 "홈런을 쳐도 코치들이 하이파이브를 해주지 않았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퍼시픽 리그 TV의 '마린에 모인 우리' 영상 등 경기 중계 화면에는 그가 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포옹하는 장면이 포착되어, 후자의 발언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