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福田 聡志후쿠다 사토시일본어는 1983년 9월 12일 일본 오사카부 기시와다시에서 태어난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투수이다. 그는 센트럴 리그 소속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으며, 2006년 프로에 데뷔하여 2015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후쿠다 사토시의 프로 경력은 201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정점을 찍었으나, 2015년 불법 야구 도박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그의 선수 경력은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이 스캔들로 인해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계약 해지되었고, 일본 야구 기구(NPB)로부터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아 야구계에서 퇴출되었다. 은퇴 후 그는 요코하마시에서 트레이닝 센터를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며, 2024년에는 실업 야구팀에 입단하며 다시 야구 활동을 재개했다.
2. 생애 초반 및 아마추어 경력
후쿠다 사토시는 프로 야구 선수로 입단하기 전부터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뛰어난 야구 실력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2.1. 출생 및 성장기
후쿠다 사토시는 1983년 9월 12일 일본 오사카부 기시와다시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2.2. 고등학교 및 대학교 경력
후쿠다 사토시는 와카야마현립 이토 고등학교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3학년 봄에는 현 대회 결승에서 이치와카야마 상업고등학교의 다무라 료헤이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두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긴키 대회 첫 경기에서 시가현립 야하타 상업고등학교의 니시카와 준지와 맞붙어 패배했고, 고시엔 출전 경험은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도호쿠 복지대학교에 진학하여 야구팀에서 고속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대학교 3학년 때에는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 선수와 최우수 투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구위와 제구력이 저하되었으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불펜 보강을 위해 그를 희망입단틀 제도로 지명했다. 당시 그의 등번호는 대학 선배인 사사키 가즈히로를 기려 '22'번을 받았다.
3. 프로 경력
후쿠다 사토시는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2015년까지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3.1. 드래프트 및 초기 활동 (2006년 ~ 2009년)
후쿠다 사토시는 2006년 4월 2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7월 1일 2군으로 강등된 이후 시즌 종료까지 1군에 재승격하지 못했다.
2007년 5월 1일 1군에 등록되었고, 같은 날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선발 등판을 가졌으나 5이닝 5실점으로 승패 없이 물러났다. 같은 달 8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는 8이닝 1실점의 호투로 선발 첫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선발과 중간 계투를 오가며 활약하며 5승을 올렸다.
2008년에는 2경기, 2009년에는 9경기에 등판하는 데 그쳤으며, 이 기간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다. 2008년 시즌 종료 후에는 중간 계투로 두각을 나타낸 오치 다이스케에게 등번호 22번을 양보하고 59번으로 변경했다. 또한 2008년 오프 시즌에는 도미니카 윈터 리그에 참가하여 기량을 연마했다.
3.2. 전성기 및 주요 활약 (2010년 ~ 2012년)
2010년 7월 4일 중간 계투로 시즌 첫 등판을 가졌고, 7월 6일 시즌 첫 승리를 기록했다. 8월 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는 5 2/3이닝 무실점으로 선발 첫 승리를 올렸다. 이 해 그는 18경기(선발 6경기)에 등판하여 3승 4패 평균자책점 3.68의 성적을 기록했다. 2011년에는 6경기 등판에 그쳤다.
2012년 5월 16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 미야구니 료스케가 1회 만에 강판되자 긴급 등판하여 3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당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후쿠다가 긴급 등판 시 더 좋은 피칭을 한다"고 평가했다. 이후 시즌 내내 롱 릴리프, 승리조 등 다양한 상황에서 기용되었고, 등판 수, 투구 이닝, 승리 수, 탈삼진, 평균자책점, WHIP 등 모든 지표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구원 투수로서 8승을 기록하며 이 해 센트럴 리그에서 가장 많은 구원승을 거두었다. 2012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3경기에서 3 2/3이닝 1실점, 2012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3경기에서 2 2/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시즌 내내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연봉이 3배 인상되었고, 등번호 또한 29번으로 변경되었다.
3.3. 하락세 및 마지막 활동 (2013년 ~ 2015년)
2013년 후쿠다 사토시는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인해 시즌 초반 출전이 지연되었고, 6월 4일에야 1군에 합류했다. 그러나 전년도와 비교하여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4년에는 오른쪽 팔꿈치 수술의 영향으로 12경기 등판에 그쳤으며, 평균자책점은 개인 최악인 9점대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1군 등판 기록 없이 시즌을 마감했다.
4. 야구 도박 스캔들
후쿠다 사토시는 2015년 불법 야구 도박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마감하게 되었다.
4.1. 스캔들 발발 및 조사
2015년 10월 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은 후쿠다 사토시가 야구 도박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는 구단이 선수들의 불법 야구 도박 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던 중 드러난 것으로, 후쿠다는 팀 동료 가사하라 쇼키의 지인을 통해 야구 도박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와 요미우리 자이언츠 자신의 경기, 메이저리그(MLB) 등 국내외 다양한 야구 경기에 돈을 걸었으며, 도박 마작과 바카라 등 다른 도박 행위도 함께 했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 야구 기구(NPB)에 고발되었고, 후쿠다와 가사하라는 즉시 근신 처분을 받았다.
4.2. 징계 및 파장
스캔들 조사 결과에 따라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2015년 11월 9일 후쿠다 사토시와 함께 가사하라 쇼키, 마쓰모토 류야 등 세 명의 선수와 계약 해지 방침을 결정했다. 이어서 11월 10일, 일본 야구 기구(NPB) 구마자키 가쓰히코 커미셔너는 이 세 선수에게 세계 야구 소프트볼 연맹(WBSC) 산하 모든 리그에서 활동을 금지하는 무기한 실격 처분을 내렸다. 이는 검은 안개 사건 이후 처음으로 야구 도박으로 인한 징계였다. 이 처분으로 인해 후쿠다, 가사하라, 마쓰모토는 추후 징계 해제가 되지 않는 한 프로 야구계에서 일체의 활동을 할 수 없으며, NPB와 제휴된 해외 프로 리그에서도 계약할 수 없게 되었다. 단, 경기 조작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영구 실격이 아닌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았다. 리그 규정에 따라 후쿠다는 5년 후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있음을 커미셔너에게 입증할 경우 모든 WBSC 공인 리그에 재입장을 신청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은 1000.00 만 JPY의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구단 대표인 하라사와 아쓰시는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5. 은퇴 후 활동
프로 야구계에서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은 후 후쿠다 사토시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2015년 안에 요코하마시 쓰즈키구에 트레이닝 짐을 개설했다. 2021년 3월 인터뷰 시점에는 대표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에는 아케보노 운수 주식회사 야구부에 입단하여 선수로 복귀하며 다시 한번 야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6. 선수로서의 특징
후쿠다 사토시는 독특한 투구 폼에서 나오는 평균 구속 약 144 km/h, 최고 구속 155 km/h의 빠른 공을 구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주무기는 고속 슬라이더였다.
7. 상세 정보
7.1. 연도별 투수 성적
연도 | 구단 | 경기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사구 | 승리 | 패배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2006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2 | 0 | 0 | 0 | 0 | 3 | 2 | 0 | 6 | .600 | 118 | 24.2 | 20 | 2 | 22 | 1 | 3 | 20 | 5 | 0 | 15 | 15 | 5.47 | 1.70 |
2007 | 15 | 11 | 0 | 0 | 0 | 5 | 5 | 0 | 0 | .500 | 276 | 59.2 | 77 | 3 | 25 | 1 | 3 | 46 | 3 | 0 | 36 | 35 | 5.28 | 1.71 | |
2008 | 2 | 0 | 0 | 0 | 0 | 0 | 0 | 0 | 0 | ---- | 12 | 2.1 | 3 | 0 | 1 | 0 | 0 | 3 | 0 | 0 | 2 | 2 | 7.71 | 1.71 | |
2009 | 9 | 6 | 0 | 0 | 0 | 2 | 0 | 0 | 0 | 1.000 | 185 | 44.0 | 41 | 6 | 17 | 2 | 3 | 31 | 1 | 0 | 24 | 17 | 3.48 | 1.32 | |
2010 | 18 | 6 | 0 | 0 | 0 | 3 | 4 | 0 | 0 | .429 | 182 | 44.0 | 36 | 4 | 17 | 0 | 3 | 22 | 0 | 1 | 19 | 18 | 3.68 | 1.20 | |
2011 | 6 | 2 | 0 | 0 | 0 | 0 | 1 | 0 | 0 | .000 | 75 | 17.2 | 22 | 2 | 6 | 0 | 0 | 12 | 0 | 0 | 9 | 9 | 4.58 | 1.58 | |
2012 | 50 | 0 | 0 | 0 | 0 | 8 | 1 | 0 | 17 | .889 | 236 | 61.2 | 32 | 2 | 26 | 0 | 0 | 51 | 2 | 0 | 11 | 11 | 1.61 | 0.94 | |
2013 | 17 | 0 | 0 | 0 | 0 | 1 | 1 | 0 | 0 | .500 | 89 | 18.0 | 25 | 3 | 10 | 1 | 1 | 14 | 0 | 0 | 12 | 10 | 5.00 | 1.94 | |
2014 | 12 | 0 | 0 | 0 | 0 | 0 | 0 | 0 | 2 | .000 | 71 | 14.0 | 23 | 2 | 6 | 0 | 1 | 6 | 0 | 0 | 16 | 15 | 9.64 | 2.07 | |
통산: 9년 | 151 | 25 | 0 | 0 | 0 | 22 | 15 | 0 | 25 | .595 | 1244 | 286.0 | 279 | 24 | 130 | 5 | 14 | 205 | 11 | 1 | 144 | 132 | 4.15 | 1.43 |
7.2. 연도별 수비 성적
연도 | 구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2006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2 | 1 | 6 | 0 | 0 | 1.000 |
2007 | 15 | 1 | 19 | 0 | 1 | 1.000 | |
2008 | 2 | 0 | 1 | 0 | 0 | 1.000 | |
2009 | 9 | 1 | 5 | 0 | 1 | 1.000 | |
2010 | 18 | 3 | 9 | 1 | 1 | .923 | |
2011 | 6 | 0 | 4 | 0 | 1 | 1.000 | |
2012 | 50 | 3 | 8 | 0 | 1 | 1.000 | |
2013 | 17 | 2 | 4 | 0 | 0 | 1.000 | |
2014 | 12 | 0 | 2 | 0 | 0 | 1.000 | |
통산 | 151 | 11 | 58 | 1 | 5 | .986 |
7.3. 주요 기록
- 투수 기록**
- 첫 등판**: 2006년 4월 1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차전 (도쿄 돔), 7회 초 2아웃에 2번째 구원 등판, 0.1이닝 무실점
- 첫 승리**: 2006년 4월 2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차전 (도쿄 돔), 5회 초 무아웃에 3번째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상동, 5회 초 무라타 슈이치를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
- 첫 홀드**: 2006년 4월 9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3차전 (나고야 돔), 8회 말 2아웃에 4번째 구원 등판, 0.1이닝 무실점
- 첫 선발**: 2007년 5월 1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4차전 (나고야 돔), 5이닝 5실점
- 첫 선발 승리**: 2007년 5월 8일, 대 한신 타이거스 8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8이닝 1실점
- 타격 기록**
- 첫 안타**: 2009년 5월 7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6차전 (도쿄 돔), 6회 말 후지에 히토시에게 좌전 안타를 기록
7.4. 등번호
- 22** (2006년 ~ 2008년)
- 59** (2009년 ~ 2012년)
- 29** (2013년 ~ 2015년)
8. 평가
후쿠다 사토시에 대한 평가는 그의 뛰어난 선수 시절 활약과 불법 도박 스캔들로 인한 추락이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8.1. 긍정적 평가
후쿠다 사토시는 도호쿠 복지대학교 시절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최우수 선수와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하는 등 아마추어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후에도 2012년에는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불펜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구원 투수로서 센트럴 리그 최다 구원승을 달성하고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하는 등 전성기에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평가받았다. 당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그의 위기 상황에서의 담대하고 효과적인 피칭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8.2. 비판 및 논란
후쿠다 사토시의 프로 경력은 불법 야구 도박 스캔들로 인해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는 구단 내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불법 도박을 일삼았으며, 자신의 소속팀 경기와 고교 야구, 해외 리그 경기에까지 돈을 걸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회와 스포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행위는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의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 것이며, 경기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팬들의 신뢰를 배신한 행위로 강력히 비판받았다.
그의 도박 연루는 일본 야구 기구(NPB)로부터 무기한 실격이라는 중징계로 이어졌고, 이는 프로 야구 역사상 검은 안개 사건 이후 도박으로 인한 가장 엄중한 처벌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비록 경기 조작에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이 참작되어 영구 실격은 면했지만, 그의 행동은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명예를 실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본 프로 야구계 전체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 미쳤다는 점에서 심각한 논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