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수 경력
크리스 우즈는 1976년 노팅엄 포레스트에 입단하며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이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미국 등 다양한 리그의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의 선수 경력은 초기 클럽에서의 성장부터 전성기, 그리고 말년까지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1. 초기 클럽 경력
우즈는 1976년 17세의 나이로 노팅엄 포레스트의 수습 선수로 입단하여, 처음에는 존 미들턴의 백업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피터 실턴의 백업 골키퍼가 되었다. 실턴이 1977-78 풋볼 리그 컵에서 스토크 시티 소속으로 이미 출전하여 컵 타이(cup-tied컵 타이영어) 규정에 묶이게 되면서, 우즈는 노팅엄 포레스트가 1978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 진출하는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이 결승전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는 리버풀을 재경기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우즈는 두 번의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컵 대회 경기들이 우즈의 노팅엄 포레스트에서의 유일한 1군 출전 기록이 되었고, 팀은 이후 풋볼 리그와 리그 컵을 다시 우승하고 유러피언컵까지 차지했다.
1979년 7월,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는 19세의 우즈를 영입하기 위해 25.00 만 GBP를 지불했다. QPR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그는 다음 두 시즌 동안 63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풋볼 리그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1981년 3월, 노리치 시티는 우즈를 22.50 만 GBP에 영입했다. 1985년, 우즈는 웸블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선덜랜드를 1대0으로 꺾고 자신의 두 번째 리그 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노리치 시티는 같은 시즌 말에 강등되었다. 시즌 종료 후, 잉글랜드의 감독 보비 롭슨은 우즈를 미국 투어에 동행시켰다. 우즈는 다음 해 풋볼 리그 2부 디비전 우승 메달을 획득하며 팀의 승격에 기여했다. 2002년, 그는 노리치 시티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83-84 시즌에는 노리치 시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1.2. 레인저스 및 셰필드 웬즈데이에서의 활약
1986년 여름, 그레이엄 수네스 감독은 레인저스로 이적한 우즈를 60.00 만 GBP에 영입했다. 그는 수네스 감독이 영입한 테리 부처, 그레이엄 로버츠와 같은 잉글랜드 출신 선수들과 함께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우즈는 레인저스에서의 첫 시즌에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우승과 스코틀랜드 리그 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1986년 11월부터 1987년 1월까지, 그는 1196분 연속 무실점이라는 영국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1987년 1월 31일 아이브록스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컵 경기에서 해밀턴 아카데미컬의 애드리언 스프롯이 70분에 득점하며 깨졌다.
우즈는 1987-88 시즌에도 레인저스에서 스코틀랜드 리그 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라이벌 셀틱은 리그와 스코틀랜드 컵 더블을 달성했다. 1989년 레인저스는 리그 타이틀을 되찾았지만, 우즈는 균형과 시력에 영향을 미치는 감염으로 인해 시즌의 절반을 결장해야 했다. 우즈는 1989-90 시즌과 1990-91 시즌에도 스코틀랜드 리그 우승을 추가했다. 1991년 오프 시즌, 레인저스의 새로운 감독 월터 스미스는 앤디 고람을 영입하며 우즈를 대체했다. 이는 UEFA가 외국인 선수 수를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하여, 레인저스가 유럽 대회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이 아닌 선수를 3명만 출전시킬 수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1991년 8월, 우즈는 셰필드 웬즈데이의 트레버 프랜시스 감독의 부름을 받고 120.00 만 GBP에 이적했다. 셰필드 웬즈데이는 막 리그 컵 우승과 잉글랜드 1부 리그 승격을 이룬 상태였다.
우즈는 1993년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서 아스널에게 2대1로 패배했다. 몇 주 후, 우즈는 1993 FA 컵 결승전에서도 아스널과 다시 맞붙었지만, 재경기 끝에 연장전 막판 앤디 리니건의 헤딩골로 2대1로 패하며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교롭게도 리니건과 우즈 모두 노리치 시티의 전 선수였다. 두 결승전에서의 패배는 셰필드 웬즈데이가 1993-94 시즌 유럽 대회에 진출할 기회를 놓치게 했다.
1995-96 시즌에 이르러 우즈는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케빈 프레스먼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주었고, 레딩으로 짧은 임대 이적을 다녀오기도 했다.
1.3. 말년 선수 경력 및 은퇴
1996년, 우즈는 미국의 콜로라도 래피즈에 합류했다. 같은 해 10월, 당시 사우샘프턴 감독이었던 그레이엄 수네스는 데이브 비산트의 백업으로 우즈를 콜로라도 래피즈에서 임대 영입하며 완전 이적을 고려했다. 사우샘프턴에서의 그의 두 번째 리그 출전은 에버턴에게 7대1로 대패한 경기였고, 네 번째 리그 출전에서는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 중 다리가 부러져 재활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잉글랜드로 돌아와 선덜랜드와 번리에서 짧은 기간 활약한 뒤, 1998년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2. 국가대표 경력
크리스 우즈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특히 피터 실턴의 중요한 백업 골키퍼로서 많은 주요 대회에 동행했다.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실턴의 백업 시절부터 주전으로 도약한 시기를 거쳐 마무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겪었다.
2.1. 피터 실턴의 백업 시절
우즈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피터 실턴의 백업으로 활약했다. 그는 1985년 6월 1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노리치 시티 소속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후 5년간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거의 제외되지 않았다. 우즈는 1986년 FIFA 월드컵에 멕시코에 갔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고, 잉글랜드는 8강에서 탈락했다. 레인저스 소속이던 우즈는 다섯 번째 A매치 출전이자 두 번째 선발 출전으로 유고슬라비아와의 웸블리 경기에서 2대0 승리를 거두며 잉글랜드의 유로 1988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1987년, 우즈는 실턴을 대신해 두 차례 교체 출전했으며, 튀르키예와의 유럽 선수권 대회 예선과 햄던 파크에서 스코틀랜드와의 러우스 컵 무승부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독일에서 열린 1988년 유럽 선수권 대회를 앞두고도 두 차례 더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다.
1988년 유럽 선수권 대회 조별 리그 첫 두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잇따라 패배하면서, 소련과의 마지막 조별 경기는 사실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보비 롭슨 감독은 실턴을 휴식시킬 여유가 있었고, 우즈는 생애 첫 주요 국제 대회 본선 경기에 출전하여 3대1 패배를 기록했다. 이는 그의 13번째 A매치 출전이었다.
이 시기 데이비드 시먼이라는 새로운 골키퍼가 노령의 실턴을 이을 잠재적인 후계자로 떠올랐고, 리야드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첫 A매치 출전을 기록했다. 하지만 롭슨 감독은 여전히 우즈를 실턴의 주요 백업으로 간주했으며, 실턴은 당시 100번째 A매치 출전을 기록하고 보비 무어의 108회 출전 기록을 경신하려 하고 있었다. 데이브 비산트도 두 차례 교체 출전하며 롭슨 감독의 눈길을 끌었지만, 실턴이 출전할 수 없는 경우 우즈는 여전히 롭슨 감독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잉글랜드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롭슨 감독은 처음에는 우즈와 시먼을 실턴의 백업으로 선발했으나, 월드컵 며칠 전 시먼이 손 부상을 당하면서 롭슨은 시먼을 제외하고 비산트로 대체했다. 잉글랜드는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서독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우즈는 이 월드컵에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롭슨 감독은 준결승 패배 후 이탈리아와의 3위 결정전에서도 실턴을 출전시켜 그의 125번째이자 마지막 잉글랜드 국가대표 경기를 기록하게 했다. 롭슨 감독은 대회를 마치고 사임했고, 후임인 그레이엄 테일러 감독은 즉시 우즈를 주전 골키퍼로 임명했다.
2.2. 주전 골키퍼로의 도약
1991년 여름까지 우즈는 24번의 A매치 출전을 기록했고, 잉글랜드는 1992년 유럽 선수권 대회 예선에서 6경기 무패, 3번의 무실점, 단 3골만을 허용하며 꾸준히 진전을 보였다.
그는 1992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 잉글랜드의 주전 골키퍼로 참가했으며, 덴마크와 프랑스를 상대로 첫 두 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이 두 경기에서 득점을 하지 못했기에, 마지막 조별 경기인 개최국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승리가 절실했다. 하지만 스웨덴이 2대1로 승리하면서 잉글랜드는 탈락했고, 우즈는 잉글랜드의 주전 골키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한 이 대회에서 큰 실망을 겪었다.
2.3. 국가대표 경력의 마무리
그는 이듬해 1994년 월드컵 예선에서도 팀에 남아 있었지만, 잉글랜드는 예선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우즈는 노르웨이와의 홈 경기(1대1 무승부)에서 셰틸 레크달의 장거리 슈팅에 동점골을 허용했으며, 네덜란드와의 홈 경기(2대2 무승부)에서는 85분에 페터르 판 포선에게 페널티킥을 내주었다. 1993년 6월, 잉글랜드는 오슬로에서 노르웨이에게 중요한 경기를 패배했다. 이후 1993년 여름 보스턴에서 미국에게 패배한 여름 투어 후, 테일러 감독은 우즈를 주전에서 제외하고, 다른 두 골키퍼를 시험한 뒤 데이비드 시먼을 주전으로 기용했다. 우즈의 43경기 국가대표 경력은 처음 시작했던 미국과의 경기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이후 네 번의 국제 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올랐지만 출전하지는 않았다.
3. 코치 경력
선수 생활 은퇴 후 크리스 우즈는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골키퍼 코치로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다양한 수준의 팀에서 골키퍼들의 훈련과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3.1. 클럽 골키퍼 코치
2013년 7월, 우즈는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을 따라 에버턴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했다. 모예스 감독이 2014년 4월에 경질된 이후에도 우즈는 잠시 자리를 유지했지만, 모예스의 정식 후임인 루이 판 할 감독이 임명되면서 프란스 후크로 교체되었다. 2015년 6월, 그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코치가 되었고, 2018년 5월 마누엘 페예그리니 신임 감독이 부임하면서 해당 자리에서 물러났다.
3.2.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클럽 코치직과 병행하여, 2011년 우즈는 미국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여 당시 에버턴의 골키퍼였던 팀 하워드와 함께 일했다. 2021년 8월에는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유사한 직책을 맡았다.
4. 수상 및 업적
크리스 우즈는 선수 경력 동안 다수의 클럽 대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여러 차례 인정을 받았다.
4.1. 클럽 수상
- 리그 컵:
- 노팅엄 포레스트: 1977-78
- 노리치 시티: 1984-85
- 유러피언컵:
- 노팅엄 포레스트: 1978-79
-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 레인저스: 1986-87, 1988-89, 1989-90, 1990-91
- 스코틀랜드 리그 컵:
- 레인저스: 1986-87, 1987-88, 1988-89, 1990-91
4.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1985-86 풋볼 리그 2부 디비전
- 노리치 시티 올해의 선수: 1983-84
- 노리치 시티 명예의 전당 헌액: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