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마누엘 페예그리니는 그의 유년기 학업과 선수 경력 전반을 통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훗날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1. 유년기 및 학업
페예그리니는 산티아고의 칠레 교황 가톨릭 대학교에 진학하여 1979년에 토목공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공학적 지식은 훗날 그가 '기술자'라는 별명을 얻고, 전술가로서의 명성을 쌓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그는 1985년 알가로보 지진 이후 칠레 중부 지역의 재건 프로젝트에 자신의 토목 공학자 경험을 활용하여 돕고자 했다.
1.2. 선수 경력
페예그리니는 청소년 시절 아우닥스 이탈리아노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CF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보냈으며, 그의 선수 경력 전부를 이 클럽에서 수비수로 뛰었다. 그는 칠레 1부 리그에서 총 451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으며, 여기에는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의 최대 라이벌인 콜로-콜로를 상대로 기록한 골도 포함된다.
1970년대는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게 있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시기 중 하나로, 1969년 이후로 코파 칠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1979년, 페예그리니가 속한 팀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본선 진출권을 확보하며 침체기를 벗어났다.
그는 1986년 5월 7일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칠레 국가대표팀에 한 차례 출전했다. 1987년 2월, 그는 코파 칠레에서 트라산디노와의 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당시 그는 17세의 이반 사모라노에게 공중볼 경합에서 밀려 골을 허용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기량 저하를 깨닫고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페예그리니는 "그 소년이 나중에 어떤 선수가 될지 알았다면 2년 더 뛰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2. 감독 경력
마누엘 페예그리니는 선수 은퇴 후 칠레, 아르헨티나, 스페인, 잉글랜드,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클럽들을 지휘하며 성공적인 감독 커리어를 쌓았다.
2.1. 초기 경력
감독으로서 페예그리니는 주로 칠레,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에서 팀을 지휘했다. 1988 시즌 중 CF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시즌 중반에 유럽으로 축구 코칭 연수를 떠났다. 그해 팀의 부진으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칠레 2부 리그로 강등되었지만, 1989년에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로 복귀했고 그 이후로 계속 1부 리그에 머물렀다.
1990년 아르투로 살라가 칠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자, 그는 페예그리니를 자신의 수석 코치 겸 U-20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CD 팔레스티노,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오히긴스 감독을 맡았다.
1993년에는 칠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 중 하나인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곳에서 알베르토 아코스타와 네스토르 고로시토 같은 유명 선수들을 지휘하며 1994년 권위 있는 코파 인테라메리카나와 1995년 코파 칠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1994년과 1995년에는 칠레 축구 협회가 프리메라 디비시온과 병행하여 주관하는 캄페오나토 나시오날(Campeonato Nacional) 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쳤다.
1998년 잠시 팔레스티노로 돌아왔으나, 곧바로 에콰도르 클럽 LDU 키토의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그는 1999년에 클럽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이는 에콰도르 팀의 감독들이 그를 따르는 전통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페예그리니는 또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다른 남아메리카 감독들의 주목을 받았다.
2.2. 비야레알
페예그리니는 2004년 7월 1일 스페인 라리가의 비야레알 CF 감독직을 맡았다. 그가 부임한 첫 시즌에 비야레알은 리그 3위를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고, UEFA컵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2004년에는 UEFA 인터토토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인 2005-06 시즌에는 비야레알이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스널에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같은 해 라리가에서는 7위를 기록했다. 이후 두 시즌 동안 비야레알은 리그 5위와 2위를 각각 기록했으며, 특히 2위는 클럽 역사상 최고 성적이었다. 2006-07 시즌에는 주축 선수인 후안 로만 리켈메와 불화가 생기며 그를 명단에서 제외하는 등 논란이 있었지만, 2007-08 시즌에는 로베르 피레스와 산티 카소를라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여 FC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리그 2위를 차지하며 '기술자'로서의 역량을 증명했다. 2008-0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시 한번 아스널을 만나 총합 1-4로 패배하며 8강에서 탈락했다.
2007년 말 비야레알은 페예그리니에게 2011년까지 연장 계약을 제안했다. 2009년 5월 31일, 라리가 마지막 경기를 마친 후 그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협상설에 대해 "레알 마드리드에서 아무도 나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비야레알과 계약되어 있고, 오늘 리그를 마쳤으니 내일 휴가를 떠날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6월 1일, 비야레알 구단은 페예그리니가 더 이상 팀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고, 레알 마드리드가 그를 영입하려면 400.00 만 EUR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2.3. 레알 마드리드
2009년 6월 1일, 페예그리니는 2년 계약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회장실 발코니에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클럽을 지휘하게 된 흥분과 자부심을 몇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의 두 번째 임기에서 첫 감독으로 부임했다.
페예그리니는 부임 직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 세계 최고의 팀이 되려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밀란으로부터 카카를 영입했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8000.00 만 GBP에, 리옹으로부터 카림 벤제마를 3000.00 만 GBP에, 리버풀로부터 사비 알론소를 3000.00 만 GBP에 영입하는 등 총 2.00 억 GBP에 달하는 거액의 이적료를 지출했다.
2009년 7월, 페예그리니는 감독으로서 처음으로 피스컵에 출전했지만, 준결승에서 유벤투스에 1-2로 패하며 탈락했다. 8월 29일,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와의 라리가 첫 경기에서는 3-2로 승리했다.
그러나 2009년 10월 27일, 레알 마드리드는 코파 델 레이 16강전에서 3부 리그 팀인 알코르콘에 총합 1-4로 패배하며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다. 스페인 일간지 '마르카'는 이 경기를 "알코르코나소"라 부르며 페예그리니를 조롱하는 기사를 많이 실었다. 2010년 3월 10일,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리옹에 총합 2-1로 패배하며 또다시 탈락했다. 이 패배 이후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페예그리니에게 라리가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 경질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페예그리니가 이끈 레알 마드리드 팀은 2009-10 라리가에서 96점이라는 당시 클럽 역사상 최다 승점(후에 주제 무리뉴가 이끈 2011-12 시즌 팀에 의해 경신됨)을 기록했지만, 99점을 얻은 숙적 바르셀로나에 3점 뒤진 채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0년 5월 26일, 레알 마드리드 이사회는 페예그리니를 경질하고 무리뉴를 후임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무리뉴를 영입할 기회가 없었다면 그를 유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예그리니는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논란의 '갈락티코스' 정책으로 인해 팀을 제대로 구축할 수 없었던 좌절감을 토로했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나는 발언권이 없었다. 그들은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특정 포지션에 필요한 최고의 선수들이 아니었다. 10명의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있지만 피아노 연주자가 없다면 오케스트라는 소용이 없다. 레알 마드리드는 최고의 기타리스트들을 가졌지만, 내가 그들에게 피아노를 쳐달라고 하면 잘 하지 못할 것이다. 페레스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선수들을 팔았다. 우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는데, 이는 우승할 수 있도록 제대로 구성된 스쿼드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4. 말라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경질된 후, 페예그리니는 2010년 7월 22일 멕시코 국가대표팀의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 (당시 2010년 FIFA 월드컵 16강 탈락 후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사임한 상태였다.) 그러나 페예그리니는 결국 리버풀과 일본의 감독직 제안을 거절하고, 해임된 헤수알두 페헤이라 감독의 후임으로 3년 계약을 맺고 라리가 클럽 말라가에 둥지를 틀었다. 11월 5일, 그는 구단주인 압둘라 빈 나세르 알 타니와의 기자회견에서 말라가의 새 감독으로 공식 소개되었으며, 다음날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1-0으로 패배하는 것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2010년 11월 11일, 그는 코파 델 레이에서 에르쿨레스를 상대로 3-2 승리를 거두며 말라가 감독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 승리로 말라가는 16강에 진출했으며, 나흘 뒤 리그 데뷔전에서도 레반테를 1-0으로 꺾으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그 시즌 말라가는 최종 11위를 기록했다.
말라가에서 첫 풀 시즌을 보낸 후, 그는 팀을 리그 4위로 이끌며 클럽 역사상 최고 기록인 58점을 달성했다. 그의 지휘 아래 말라가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예선 라운드에 진출했다. 2012년 8월 10일, 페예그리니는 재정 문제와 산티 카소를라, 살로몬 론돈 등 핵심 선수들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클럽에 남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말라가는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밀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안데를레흐트와 한 조가 되었다. 조별 리그에서 3승 3무를 기록하며 무패로 토너먼트 단계에 진출했다. 말라가는 16강에서 포르투를 총합 2-1로 꺾고 8강에 진출했으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8강전에서 추가 시간에 2골을 허용하며 아쉽게 패배하여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두 팀을 챔피언스리그 데뷔 시즌에 8강으로 이끈 유일한 감독이 되었다.
2013년 5월 22일, 말라가의 시즌 종료 시상식에서 페예그리니는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말라가는 리그 6위를 기록했지만, UEFA 재정적 페어플레이 규정 위반으로 인해 유럽 대항전 출전이 금지되었다. 2018년 10월, 말라가에 그의 이름을 딴 원형교차로가 생기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2.5. 맨체스터 시티

2013년 5월 30일, 페예그리니는 프리미어리그 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새 감독이 되기로 구두 합의했다고 밝혔다. 2013년 6월 14일, 맨체스터 시티는 3년 계약으로 페예그리니를 새로운 1군 팀 감독으로 선임했음을 확인했다. 페예그리니는 "이 매우 흥미로운 기회를 받아들이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면서 페예그리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감독직을 맡은 유럽 외 지역 출신으로는 다섯 번째, 칠레 출신으로는 첫 번째 감독이 되었다.
페예그리니는 부임 초반 11월 말까지 4번의 리그 패배를 기록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뉴캐슬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노리치 시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팀의 잠재력을 드러냈다. 2013년 11월 10일 선덜랜드전에서 4번째 리그 패배를 당한 후, 시티는 토트넘 홋스퍼를 상대로 6-0 승리, 유럽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3-2 승리, 리그 선두 아스널을 상대로 6-3 승리 등 모든 대회에서 20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했다.
숨가쁜 크리스마스 기간이 지나도 시티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풋볼 리그 컵 준결승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총합 9-0 승리(대회 기록)와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5-1로 완파하며 시티는 경기당 3골 이상을 기록하는 평균 득점력을 유지했다. 20경기 중 단 두 경기만이 무승부였는데, 사우샘프턴과 블랙번 로버스와의 FA컵 경기로 모두 1-1로 끝났다. 일부 상대 팀들은 시티를 세계 최고의 팀이라고 공공연히 묘사했으며, 언론에서는 전례 없는 쿼드러플 달성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페예그리니는 2013년 12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 1월 18일 시티는 34경기 만에 모든 대회에서 100골을 돌파하여 프리미어리그 시대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 이는 첼시의 2012-13 시즌 기록보다 8경기 빠른 기록이었다. 2014년 1월 말까지 그들은 모든 대회에서 115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유럽 내 모든 클럽 중 가장 많은 득점이었다. 이러한 득점률을 유지한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버즈비의 아이들'이 1957-58 시즌에 기록한 143골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었다.
2014년 3월 2일, 페예그리니의 맨체스터 시티는 웸블리에서 열린 2014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서 선덜랜드를 3-1로 꺾고 우승하며 유럽 축구에서 첫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5월 11일, 맨체스터 시티는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사미르 나스리와 뱅상 콤파니의 골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2-0으로 꺾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로써 페예그리니는 유럽 외 지역 출신 감독으로는 최초로 잉글랜드 리그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웠다.

2014년 10월 29일, 시티는 리그컵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0-2로 패배하며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다. 2015년 1월 24일, 페예그리니의 팀은 챔피언십 팀인 미들즈브러에 0-2로 패배하며 FA컵에서 탈락했다.
2014-15 프리미어리그 새해 첫날 공동 선두를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 시티는 시즌 후반기 폼이 하락하며 36점 중 18점만을 획득했다. 시티는 또한 바르셀로나에 총합 1-3으로 패배하며 2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했다.
2015년 8월 7일, 맨체스터 시티는 페예그리니가 1년 계약 연장에 서명하여 2016년 6월까지 클럽에 남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페예그리니는 "맨체스터 시티를 지휘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 계약에 동의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6년 2월 1일, 맨체스터 시티는 페예그리니가 6월에 계약 만료로 떠날 것이며, 펩 과르디올라가 2016-17 시즌부터 감독직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페예그리니는 맨체스터 시티를 떠날 당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5번째로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2.6. 허베이 화샤 싱푸
2016년 8월 27일, 페예그리니는 리톄의 후임으로 중국 슈퍼리그 클럽 허베이 화샤 싱푸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6년 9월 10일 광저우 헝다와의 홈 경기에서 첫 경기를 지휘했지만, 허베이는 0-3으로 패배했다. 2018년 5월 19일, 허베이 화샤 싱푸는 페예그리니가 클럽을 떠났음을 확인했다. 페예그리니의 허베이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충칭 당다이 리판과의 2-1 승리였다.
2.7.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18년 5월 22일, 프리미어리그 클럽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는 페예그리니를 3년 계약으로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다. 8월 12일 리버풀과의 원정 경기에서 웨스트햄 감독 데뷔전을 치렀지만 0-4로 패배했다. 8월 28일 윔블던과의 EFL컵 경기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2018-19 시즌 초반 4연패를 당한 후, 9월 16일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리그 첫 승을 기록했다. 2019년 1월, 웨스트햄은 리그 원 최하위권에 있던 윔블던에 2-4로 패배하며 FA컵 4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페예그리니 부임 첫 시즌, 웨스트햄은 10위로 시즌을 마쳤는데, 이는 2016년 이후 첫 톱10 진입이었다.
웨스트햄은 페예그리니 감독 시절 펠리피 안데르송을 3600.00 만 GBP에, 세바스티앵 알레를 4500.00 만 GBP에 영입하며 두 차례에 걸쳐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이적료로 총 1.55 억 GBP를 지출했으며, 2019-20 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는 7100.00 만 GBP를 사용했다. 그러나 2019-20 시즌 첫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그는 자신의 친정팀인 맨체스터 시티에 0-5로 대패했다. 2019년 9월, 리그 원 소속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에 0-4로 패하며 EFL컵에서도 탈락했다. 그는 2019년 12월 28일 레스터 시티에 1-2로 홈 패배를 당한 후 경질되었다. 이는 웨스트햄의 4연속 홈 패배였으며, 팀은 리그 17위로 시즌 5승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웨스트햄에서 그의 총 승률은 38.98%였다.
2.8. 레알 베티스
2020년 7월 9일, 스페인 클럽 레알 베티스는 페예그리니가 2020-21 시즌부터 팀의 감독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전 달 경질된 루비의 후임으로 임시 감독을 맡았던 알렉시스 트루히요의 뒤를 이었다. 2022년 4월 23일, 레알 베티스를 이끌고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발렌시아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3. 감독 스타일
페예그리니는 그의 감독 경력 내내 공격적인 전술 스타일, 침착한 태도, 그리고 뛰어난 선수 관리 능력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그의 축구 철학은 초공격적인 포제션 축구를 지향한다. 공수 전환 시의 빈틈 없는 진형을 유지하며, 짧고 긴 패스를 섞어 빠르고 넓은 공격을 전개한다. 공격수에게는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과 패스 옵션을 확보하기 위한 민첩한 공간 침투가 요구된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4-2-3-1과 4-4-2 포메이션을 유연하게 활용했다. 그의 지도 아래 맨체스터 시티는 정교한 패스 플레이, 크로스, 솔로 돌파, 세트피스 등 모든 공격 경로에서 골을 터뜨리는 무자비함을 보여줬고, 이에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맨체스터 시티의 스타일을 "아름다운 기하학으로 인한 죽음"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팀의 시스템과 조화를 통해 강점을 극대화하는 '기술자'적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4. 개인 생활
마누엘 페예그리니의 아들인 마누엘 페예그리니 푸치(Manuel Pellegrini Pucci)는 정형외과 의사이며, 2022년부터 아우닥스 이탈리아노의 의료진으로 일하고 있다.
한편, 2022년 9월 26일 기준으로 페예그리니는 영국 국세청(HMRC)의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영국 국세청이 주장하는 탈세액은 81.66 만 GBP에 달한다.
5. 수상 경력
마누엘 페예그리니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다양한 트로피와 개인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그의 뛰어난 축구 경력을 증명한다.
5.1. 선수 시절
- 코파 칠레: 1979
5.2. 감독 시절
-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1993
- 코파 칠레: 1995
- 세리에 A: 1999
- 프리메라 디비시온: 2000-01 (클라우수라)
- 코파 메르코수르: 2001
- 프리메라 디비시온: 2002-03 (클라우수라)
- UEFA 인터토토컵: 2004
- 프리미어리그: 2013-14
- 풋볼 리그 컵: 2013-14, 2015-16
- 코파 델 레이: 2021-22
- 미겔 무뇨스 트로피: 2007-08, 2021-22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상: 2013년 12월, 2014년 1월, 2014년 12월, 2015년 8월
- 말라가 주 의회: 황금 방패
6. 감독 통계
다음은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의 팀별 통계 자료이다. (2025년 3월 1일 기준)
팀 | 시작일 | 종료일 | 기록 | ||||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 1988년 1월 1일 | 1989년 1월 31일 | 38 | 11 | 13 | 14 | 28.95% |
팔레스티노 | 1990년 1월 1일 | 1991년 12월 31일 | 90 | 31 | 31 | 28 | 34.44% |
오히긴스 | 1992년 1월 1일 | 1993년 12월 31일 | 76 | 30 | 22 | 24 | 39.47% |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 | 1994년 1월 1일 | 1996년 6월 30일 | 124 | 72 | 29 | 23 | 58.06% |
팔레스티노 | 1998년 1월 1일 | 1998년 12월 31일 | 21 | 4 | 7 | 10 | 19.05% |
LDU 키토 | 1999년 1월 1일 | 2000년 6월 30일 | 76 | 35 | 16 | 25 | 46.05% |
산로렌소 | 2001년 2월 15일 | 2002년 6월 30일 | 78 | 38 | 20 | 20 | 48.72% |
리버 플레이트 | 2002년 7월 1일 | 2003년 12월 31일 | 77 | 42 | 14 | 21 | 54.55% |
비야레알 | 2004년 7월 1일 | 2009년 6월 1일 | 259 | 123 | 72 | 64 | 47.49% |
레알 마드리드 | 2009년 6월 1일 | 2010년 5월 26일 | 48 | 36 | 5 | 7 | 75.00% |
말라가 | 2010년 11월 5일 | 2013년 6월 14일 | 129 | 53 | 30 | 46 | 41.09% |
맨체스터 시티 | 2013년 6월 14일 | 2016년 6월 30일 | 167 | 100 | 28 | 39 | 59.88% |
허베이 화샤 싱푸 | 2016년 8월 27일 | 2018년 5월 19일 | 52 | 21 | 12 | 19 | 40.38%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 2018년 5월 22일 | 2019년 12월 28일 | 64 | 24 | 11 | 29 | 37.50% |
레알 베티스 | 2020년 7월 9일 | 현재 | 237 | 111 | 61 | 65 | 46.84% |
총계 | 1536 | 732 | 371 | 433 | 47.66% |
7. 평가 및 영향
마누엘 페예그리니는 '기술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분석적이고 철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특히 비야레알과 말라가와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클럽들을 이끌고 UEFA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빅 대회에서 역사적인 성과를 내며 자신의 전술적 역량을 입증했다. 이들 클럽에 대한 그의 기여는 단순한 성적을 넘어, 팀의 정체성과 팬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재임 기간은 그의 커리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곳에서 겪었던 '갈락티코스' 정책과의 충돌은 페예그리니의 확고한 축구 철학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는 스타 선수들의 개별 능력에 의존하기보다, 균형 잡힌 팀 구성과 조직적인 전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공을 추구하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그의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이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기록적인 득점으로 이어지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지휘 아래 맨체스터 시티는 역동적이고 화끈한 공격 축구를 선보였고, 이는 많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클럽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비유럽권 감독으로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감독이라는 기록은 그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보여준다.
종합적으로 페예그리니는 단순한 승리만을 좇기보다는, 팀의 성장과 선수단의 조화를 중요시하며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뚝심 있게 지켜온 감독으로 평가된다. 그의 커리어는 재정적 지원이 풍부한 빅 클럽부터 상대적으로 소규모 클럽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의 적응력과 리더십을 증명한다.
8. 같이 보기
- 원클럽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