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지나 해스펠은 1956년 10월 1일 켄터키주 애슐랜드에서 지나 체리 워커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 공군에서 복무했으며, 그녀에게는 네 명의 형제가 있다. 해스펠은 고등학교를 영국에서 다녔다.
그녀는 켄터키 대학교에서 3년간 수학한 후, 졸업 학년에는 루이빌 대학교로 편입하여 1978년 5월 언어 및 저널리즘 분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부터 1981년까지 매사추세츠주 포트 데븐스에서 민간인 도서관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1982년에는 노스이스턴 대학교에서 법률 보조원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CIA에 채용될 때까지 법률 보조원으로 활동했다.
2. CIA 초기 경력
해스펠은 1985년 1월 보고관으로 CIA에 입사하여 30년 이상 비밀 작전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녀의 경력 대부분은 비밀리에 진행되었으며, CIA 부국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는 공개된 기록이 거의 없었다.
2.1. 해외 파견 근무
해스펠의 첫 해외 현장 근무는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에티오피아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중앙 유라시아와 튀르키예에서도 근무했으며,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과 중앙 유라시아에서 여러 차례 파견 근무를 수행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지부장을 역임했다. 또한 영국 런던과 2011년 뉴욕의 CIA 지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2.2. 대테러 센터 역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해스펠은 CIA 대테러 센터의 부그룹장으로 활동했다.
3. 고문 프로그램 관련 논란
지나 해스펠은 9·11 테러 이후 CIA가 운영한 비밀 구금 및 심문 프로그램, 특히 이른바 "강화 심문 기법"의 사용과 관련된 역할로 인해 광범위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기법들이 행정부의 권한을 확장하고 고문의 정의를 좁게 해석한 비밀 법률 의견에 근거하여 합법적이라고 간주했다.
3.1. 태국 비밀 감옥 운영
2002년 10월부터 12월 사이, 해스펠은 태국에 위치한 CIA의 비밀 감옥인 '디텐션 사이트 그린'(Detention Site GREEN), 코드명 '캣츠 아이'(Cat's Eye)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이 감옥은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의 "예외적 송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되었으며, 알카에다 관련 용의자들을 구금하고 워터보딩과 같은 고문 기법을 사용했다. 전직 CIA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해스펠은 아부 주바이다 심문 이후에 지부장으로 부임했지만, 압드 알라힘 알나시리에 대한 워터보딩이 진행되는 동안 책임자였다.
2019년 1월 8일, 마이애미 헤럴드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재판 전 심리에서 부분적으로 수정된 기록을 인용하여, 해스펠이 2003년부터 2004년까지 관타나모 만 해군 기지 내 CIA 비밀 구금 시설의 "기지 책임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보도했다. 모하메드의 변호사는 해스펠의 역할이 공정한 재판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3.2. 고문 및 가혹 행위 관여
해스펠은 태국 비밀 감옥에서 수감자들에게 워터보딩을 포함한 "강화 심문 기법"을 사용하여 고문이 이루어진 과정에 관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8년 8월, 조지 워싱턴 대학교 산하 국가안보문서보관소가 정보공개 소송을 통해 공개한 CIA 기밀 해제 문서에 따르면, 해스펠이 태국 비밀 감옥의 기지 책임자로 재직하는 동안 승인하거나 직접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CIA 전문들은 수감자들에 대한 고의적인 신체적 고문 행위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워터보딩, 좁은 공간에 감금, 벽에 머리 부딪히기, 수면 및 의복 박탈 등이 포함되며, 해스펠이 이를 직접 관찰했다는 증언도 있다. 심문관들은 알나시리에게 "어린 소녀", "버릇없는 부잣집 사우디", "겁쟁이"와 같은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기도 했다.
초기 보도에서는 해스펠이 아부 주바이다에 대한 워터보딩을 감독했다고 알려졌으나, 2018년 3월 미국 관리들은 그녀가 주바이다가 고문받은 후에야 기지 책임자가 되었으므로 주바이다의 고문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녀는 알나시리에 대한 고문에는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알카에다 조달책인 아부 주바이다는 2002년 CIA에 체포된 후 '선진 심문 기법'의 고문을 받은 첫 번째 인물이다. 그는 47시간 동안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 구금된 후 매일 24시간 동안 특별 심문 프로그램에 따라 고문당했다. CIA는 주바이다가 자백하지 않자 그를 총 266시간 동안 관처럼 생긴 상자 안에 넣어 구금했으며, 이후 너비 53 cm, 깊이 76 cm의 더 작은 상자 안에도 29시간 더 구금했다. CIA는 주바이다에게 총 83회에 달하는 워터보딩을 실시했으며, 머리를 수차례 벽에 내리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주바이다는 2006년부터 관타나모 만 해군 기지에 수감되어 있다.
3.3. 심문 영상 테이프 파기
해스펠은 자신이 운영하던 비밀 감옥 및 다른 CIA 비밀 시설에서 수감자 고문을 보여주는 92개의 심문 영상 테이프 파기에 관여했다. 2005년, 당시 국가비밀공작국(NCS) 국장이었던 호세 로드리게스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해스펠이 태국 비밀 감옥에서 촬영된 수십 개의 비디오 테이프를 파기하라는 전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감시가 증가함에 따라 이루어졌다.
해스펠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테이프 파기 지시가 CIA 요원들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의 정보 유출이 만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된 CIA 문서에 따르면, 태국 비밀 감옥에서 비디오를 재녹화하는 새로운 기록 보관 방식에 대한 지시는 2002년 10월 말, 해스펠이 부임한 직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직 CIA 분석가 게일 헬트(Gail Helt)는 일부 논란이 된 고문 기록이 파기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4. 법적 및 윤리적 문제 제기
2014년 12월, 인권 집행을 위해 소송을 활용하는 비정부 기구인 유럽 헌법 인권 센터(ECCHR)는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미국 정보기관의 고문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 후 미확인 CIA 요원들에 대한 형사 고발을 요청했다. 2017년 6월 7일, ECCHR은 독일 검찰총장에게 테러 용의자 고문을 감독했다는 주장에 대해 해스펠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고발은 사우디 국적의 아부 주바이다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해스펠은 일부 비판자들로부터 "전쟁 범죄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2018년 5월 9일, 해스펠의 인준 투표를 하루 앞두고 뉴욕 타임스는 9·11 테러의 주범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상원 위원회에 자신의 정보를 담은 6개 문단을 제출해 투표 전에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4. CIA 내 주요 리더십 직책
해스펠은 CIA 내에서 여러 주요 리더십 직책을 역임했다.
4.1. 국가비밀공작국(NCS) 리더십
해스펠은 국가비밀공작국(NCS)의 부국장, 해외 정보 및 비밀 작전 담당 부국장, 그리고 국가비밀공작국장의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2005년에는 국가비밀공작국장 호세 로드리게스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2013년, 당시 중앙정보국장이었던 존 O. 브레넌은 해스펠을 전 세계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국가비밀공작국의 국장 대행으로 지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송환, 구금 및 심문 프로그램에 대한 관여로 비판을 받으면서 이 직책에 영구적으로 임명되지 못했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을 비롯한 일부 상원의원들은 그녀의 영구 임명에 반대했다.
4.2. CIA 부국장
2017년 2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스펠을 CIA 부국장으로 임명했다. 이 직책은 상원 인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날 발표된 공식 성명에서 미국 하원 상설 정보위원회 위원장인 데빈 누네스는 "CIA에 30년 이상 봉사하고 광범위한 해외 경험을 가진 지나 해스펠은 하원 정보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왔으며, 그녀의 헌신, 솔직함, 그리고 정보 공동체에 대한 깊은 헌신으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직책에 적합한 인물이며, 위원회는 앞으로 그녀와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7년 2월 8일,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여러 의원들은 트럼프에게 해스펠의 부국장 임명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은 동료인 론 와이든과 마틴 하인리히 상원의원의 말을 인용하여 "이 개인이 CIA 심문 비디오 테이프의 무단 파기에 연루되었다는 보고에 특히 우려한다. 이 비디오 테이프는 두 명의 CIA 수감자에 대한 CIA의 고문 사용을 기록하고 있다. 동료인 와이든 상원의원과 하인리히 상원의원은 새로 임명된 부국장이 이 직책에 '부적합'한 이유에 대한 기밀 정보가 있으며, 이 정보의 기밀 해제를 요청했다. 나도 그들의 요청에 동참한다"고 말했다.
2017년 2월 15일, 스펜서 애커맨은 아부 주바이다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안되었고 이후 전 세계 CIA 비밀 감옥의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사용된 "강화 심문" 프로그램의 설계자들인 심리학자 브루스 제시엔과 제임스 엘머 미첼에 대해 보도했다. 제시엔과 미첼은 심리학자들이 고안한 고문으로 인해 술레이만 압둘라 살림, 모하메드 아흐메드 벤 수드, 오바이드 울라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해스펠과 그녀의 동료 제임스 코차나에게 자신들을 대신하여 증언해 줄 것을 요청했다.
5. CIA 국장 재임
5.1. 지명 및 인준
2018년 3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스펠을 CIA 국장으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가 새로운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이루어진 인사였다. 해스펠은 상원의 인준을 받으면 CIA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장이 될 예정이었다. (2017년 1월에는 메로에 파크가 3일간 국장 대행을 맡은 적이 있다.) 한때 해스펠을 CIA에서 감독했던 로버트 베어는 그녀가 "영리하고, 강인하며, 유능하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해외 연락 기관들은 한결같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녀의 지명에 반대하며 "워터보딩의 치어리더를 CIA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어떻게 그 사람이 CIA를 책임질 수 있을지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워터보딩 당시 그녀의 기쁨을 읽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후 해스펠이 심문받는 사람들을 조롱했다는 주장은 철회되었다.) 폴의 보좌관인 더그 스태포드는 "여러 차례 보도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비밀 감옥을 감독했고 고문 증거를 파기했다. 이는 그녀가 CIA를 운영하는 것을 영원히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상원의원이자 전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은 해스펠에게 2001년부터 2009년까지 CIA 구금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이른바 "강화 심문 기법"의 사용을 지시했는지 여부, 그리고 2005년 심문 비디오 테이프 파기에서의 역할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베트남 전쟁 포로 시절 고문을 당했던 매케인 상원의원은 고문에 대한 강경한 반대자였다. 매케인은 또한 해스펠에게 2014년 CIA의 고문에 관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를 기밀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당시 매케인은 입원 중이어서 그녀의 인준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
50명 이상의 전직 고위 미국 정부 관료들, 여기에는 6명의 전직 CIA 국장(존 브레넌, 리언 파네타, 마이클 모렐, 마이클 헤이든)과 3명의 전직 국가정보국장이 포함되며, 이들은 그녀의 지명을 지지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그러나 4월에는 109명의 퇴역 장군과 제독들이 해스펠의 기록과 CIA의 고문 사용 및 증거 파기에 대한 그녀의 연루 의혹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서한에 서명하며 그녀의 지명에 반대했다. 워싱턴 포스트 사설 위원회는 5월 10일, 해스펠이 CIA의 현재는 폐지된 고문 프로그램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지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2018년 5월 9일, 해스펠은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인준 청문회에 출석했다. 5월 14일, 해스펠은 마크 워너 상원의원에게 서한을 보내, 돌이켜보면 CIA가 심문 및 구금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 직후 워너는 상원 정보위원회가 그녀의 지명을 전체 상원에 회부할지 여부를 표결할 때 해스펠을 지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녀는 5월 16일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10대 5로 인준이 승인되었으며, 두 명의 민주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다음 날인 5월 17일, 해스펠은 전체 상원에서 54대 45의 찬성표로 인준되었다. 이는 대부분 당론에 따른 투표였다. 폴 상원의원과 제프 플레이크 상원의원만이 공화당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6명의 민주당 의원(조 돈넬리, 조 맨친, 워너, 하이디 하이트캠프, 빌 넬슨, 진 셰이힌)이 찬성표를 던졌다.
5.2. 재임 기간 주요 활동

해스펠은 2018년 5월 21일 공식적으로 취임하여 CIA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장이 되었다.
2019년 1월 29일,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해스펠은 CIA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018년 3월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사건 이후 61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한 결정에 대해 "만족한다"고 보고했다. 해스펠은 또한 CIA가 2018년 12월 러시아 과두정치인 올레그 데리파스카와 관련된 세 러시아 기업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미국 재무부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북한과 미국의 최근 관계에 대해 해스펠은 "우리 분석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징후를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2019년 5월까지 해스펠은 많은 여성을 고위직에 임명했다.
2020년 12월, 그녀는 프랑크푸르트의 한 서버 농장에 대한 CIA 급습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거나 체포되었다는 소셜 미디어 주장의 대상이 되었으나, 여러 팩트 체크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주장을 반박했으며, 해스펠이 사망했거나 급습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CIA는 2021년 1월 19일, 트럼프에서 조 바이든으로의 대통령직 이양 하루 전, 트윗을 통해 36년간의 봉사를 마치고 그녀의 은퇴를 발표했다. 바이든은 1월 11일 윌리엄 J. 번스를 해스펠의 후임으로 지명했으며, 번스는 2021년 3월 19일 새로운 국장으로 취임했다.
6. CIA 퇴직 후 활동
CIA에서 은퇴한 후, 해스펠은 2021년 7월부터 법률 회사 킹 앤 스팔딩에 자문역으로 합류했다.
7. 수상 및 인정
해스펠은 대테러 분야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조지 H. W. 부시 상, 도노반 상, 정보 공로 훈장, 그리고 대통령 공로 훈장을 포함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
8. 개인사
해스펠은 1976년 미국 육군에서 복무했던 제프 해스펠과 결혼했으나, 1985년에 이혼했다. 그녀는 2001년부터 2018년까지 버지니아주 애쉬번(Ashburn)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