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조지 보아텡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이며 그의 성장 배경은 그의 커리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1. Childhood and youth development
조지 보아텡은 1975년 9월 5일 가나 은카카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일부를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보냈는데, 축구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위가 많은 축구장에서 맨발로 축구를 하는 것을 선호했다. 10세 때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그는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16세에 그는 페예노르트에 입단하여 골키퍼, 왼쪽 윙어, 중앙 공격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청소년 시절에는 네덜란드 U-21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2. Club career
조지 보아텡의 클럽 경력은 네덜란드에서 시작하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뒤, 그리스와 말레이시아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2.1. Excelsior
보아텡은 1994-95 시즌에 엑셀시오르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9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2.2. Feyenoord
엑셀시오르에서의 초기 경험을 마친 후, 보아텡은 1995-96 시즌부터 1997-98 시즌까지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했다. 그는 3시즌 동안 68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다재다능한 선수로서 페예노르트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기량을 연마했다. 페예노르트와의 계약 기간이 6개월 남은 시점에서 4년 연장 계약을 제안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잉글랜드 무대로의 이적을 결정했다.
2.3. Coventry City
1996년 4월 리버풀과 뉴캐슬 유나이티드 간의 4-3 경기를 지켜본 후 잉글랜드 축구의 수준에 매료된 보아텡은 1997년 12월 코번트리 시티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적료는 25.00 만 GBP였다. 당시 감독이었던 고든 스트라찬은 그와 3년 6개월 계약을 맺었다. 보아텡은 1998년 5월 2일 블랙번 로버스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한 홈 경기에서 코번트리 시티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1999년 2월 27일에는 애스턴 빌라 원정 경기에서 존 알로이지와 함께 각자 2골씩을 넣으며 4-1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는 코번트리 시티가 빌라 파크에서 거둔 사상 첫 리그 승리였다. 그는 코번트리 시티에서 총 46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2.4. Aston Villa
1999년 7월, 보아텡은 애스턴 빌라로 이적했으며 이적료는 450.00 만 GBP에 달했다. 이적 과정에서 코번트리 시티의 브라이언 리처드슨 회장은 애스턴 빌라의 존 그레고리 감독이 보아텡에게 불법적으로 접근했다고 비난했으나, 그레고리 감독은 리처드슨 회장이 먼저 애스턴 빌라에 500만 파운드에 보아텡을 영입할 수 있다고 제안하며 협상이 재개되었다고 주장했다.
보아텡은 애스턴 빌라 소속으로 총 131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2000년 FA컵 결승전에 출전했으나 팀은 첼시에게 1-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2년 4월 20일 레스터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상대 선수 폴 디코브의 축구화가 벗겨지자 이를 관중석으로 던지는 사건이 있었다. 보아텡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했고, 그레이엄 테일러 감독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는 2001-02 시즌에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핵심 선수로 활약했지만, 시즌 종료 직후 이적을 요청했다. 애스턴 빌라에서 그는 103번의 리그 경기에 나서 4골을 기록했다.
2.5. Middlesbrough
2002년 여름, 보아텡은 리버풀로의 이적 가능성이 무산되고 풀럼과의 협상도 지지부진해지면서, 결국 500.00 만 GBP의 이적료로 미들즈브러로 이적했다. 그는 처음에 미들즈브러가 상대하기 쉬운 팀이라고 생각해 이적을 망설였지만,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동료였던 야프 스탐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수석 코치였던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에 대해 극찬한 것을 듣고 이적을 결심했다.
2002년 11월, 보아텡은 첼시의 잔프랑코 졸라와 리즈 유나이티드의 닉 밤비와의 충돌 이후 잉글랜드 축구 협회로부터 두 차례 징계를 피했다. 그는 2004년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 출전하여 미들즈브러가 구단 역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004년 10월 16일, 블랙번 로버스 원정 경기에서 4-0 승리 당시 득점하며 2001년 9월 이후 첫 골을 기록했다. 2004-05 시즌에는 부상으로 12경기를 결장했지만, 팀이 UEFA컵 진출권이 주어지는 7위를 차지하는 데 복귀하여 힘을 보탰다. 2006년 UEFA컵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 팀은 세비야에게 4-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6년 6월, 거의 1년간의 협상 끝에 보아텡은 미들즈브러와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듬해 7월에는 개러스 사우스게이트가 은퇴하고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를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2007-08 시즌에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12월에 훌리오 아르카, 3월에 엠마누엘 포가테츠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주며 영구적인 주장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미들즈브러 소속으로 그는 182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다.
2.6. Hull City
2008년 7월 10일, 당시 새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헐 시티는 보아텡과 2년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적료는 비공개였으나, 7월 16일에 메디컬 테스트를 완료한 후 약 100.00 만 GBP의 이적료로 이적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2010년 2월 6일, 보아텡은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헐 시티 소속으로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는 2009년 11월 이후 헐 시티의 첫 승리였다. 2010년 프리미어리그 강등 이후 헐 시티와의 계약이 종료되었고, 그는 팀의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스티븐 헌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헐 시티에서 보아텡은 52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7. Later career
헐 시티를 떠난 후 셀틱과 협상을 가졌던 보아텡은 2010년 7월 그리스의 슈코다 크산티와 2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슈코다 크산티에서 19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넣었다.
2011년 7월 27일, 보아텡은 풋볼 리그 챔피언십 소속의 노팅엄 포레스트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그는 전 미들즈브러 감독이었던 스티브 맥클라렌과 재회했으며, 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동료이자 미들즈브러 팀 동료였던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는 당시 노팅엄 포레스트의 1군 코치로 있었다. 그는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총 7경기에 출전했으며, 8월 20일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추가 시간에 동점골을 터뜨려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2012년 11월 15일, 보아텡은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여 T-팀과 계약하기 위해 논의했고, 4일 뒤인 11월 19일 1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그는 전 헐 시티 동료였던 케일럽 폴란과 다시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 그는 T-팀에서 15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3. International career
조지 보아텡은 가나에서 태어나고 네덜란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국가대표팀 선택의 기로에 놓였으나, 최종적으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선택했다.
3.1. Youth national team
보아텡은 가나 축구 협회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는 네덜란드를 대표했다. 그는 U-21 대표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1998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네덜란드가 4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U-21 대표팀에서 그는 총 18경기에 출전했다.
3.2. Senior national team
보아텡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4번의 성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으며, 모든 경기는 친선 경기였다. 그는 2001년 11월 10일 덴마크와의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데뷔전을 치렀고, 풀타임 90분을 소화했다. 2005년 11월 12일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이탈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3-1로 패배하는 경기에 교체 투입되며 3년 6개월 만에 다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4. Managerial career
선수 은퇴 후, 조지 보아텡은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감독 및 코치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4.1. Kelantan
2014년, 보아텡은 말레이시아 케란탄 FA의 새로운 수석 코치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시메 다르비에게 4-0으로 패한 후 경질된 스티브 다르비의 후임이었다. 2014년 5월 6일, 말레이시아 FA컵 준결승 1차전에서 펠다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3-0으로 뒤지다가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그의 감독 데뷔전에서 좋은 시작을 알렸다. 말레이시아컵에서 케다에게 합산 4-3으로 패해 탈락한 후, 보아텡은 케란탄 팬들에게 사과했다. 다음 시즌에 그가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케란탄의 안누아르 무사 회장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2015년 3월 24일, 그는 기술 이사로 전환되었고, 수석 코치 자리는 모흐드 아즈라이 코르 압둘라가 맡았다. 2015년 5월 11일, 보아텡은 다시 감독 또는 코치로 활동하기 위해 케란탄 기술 이사직을 사임했다.
4.2. Youth coaching roles
2018년 9월 5일, 보아텡은 EFL 챔피언십 클럽인 블랙번 로버스의 U-13 수석 코치로 계약하여 아카데미의 다양한 연령대 팀을 지도했다. 2019년 7월 29일, 그는 블랙번 로버스를 떠나 애스턴 빌라 U-18 프로 개발 코치로 부임했다. 2020년 9월에는 애스턴 빌라 U-23 팀의 프로 개발 코치로 승진했다. 2022년 8월 26일, 그는 그해 겨울에 열릴 202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의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 애스턴 빌라에서의 직책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4.3. Ghana national team
2022년 5월, 가나 축구 협회는 보아텡이 가나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수석 코치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2022년 FIFA 월드컵 준비에 기여했다.
4.4. Coventry City
2024년 7월 1일, 보아텡은 그의 전 소속 클럽인 코번트리 시티로 복귀하여 1군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2024년 11월 28일, 프랭크 램파드가 감독으로 부임한 후 그는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5. Personal life
5.1. Religious beliefs
조지 보아텡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그의 신앙이 자신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처치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저와 제 가족은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말씀(성경)을 듣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밝혔다.
6. Statistics
6.1. Club career statistics
클럽 | 시즌 | 리그 | FA컵 | 리그컵 | 대륙 대회 | 합계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엑셀시오르 | 1994-95 | 에이르스터 디비시 | 9 | 0 | 0 | 0 | 0 | 0 | 0 | 0 | 9 | 0 |
페예노르트 | 1995-96 | 에레디비시 | 24 | 1 | 0 | 0 | 0 | 0 | 0 | 0 | 24 | 1 |
1996-97 | 에레디비시 | 26 | 0 | 0 | 0 | 0 | 0 | 0 | 0 | 26 | 0 | |
1997-98 | 에레디비시 | 18 | 0 | 0 | 0 | 0 | 0 | 2 | 0 | 20 | 0 | |
합계 | 68 | 1 | 0 | 0 | 0 | 0 | 2 | 0 | 70 | 1 | ||
코번트리 시티 | 1997-98 | 프리미어리그 | 14 | 1 | 5 | 0 | 0 | 0 | 0 | 0 | 19 | 1 |
1998-99 | 프리미어리그 | 32 | 4 | 3 | 1 | 3 | 1 | 0 | 0 | 38 | 6 | |
합계 | 46 | 5 | 8 | 1 | 3 | 1 | 0 | 0 | 57 | 7 | ||
애스턴 빌라 | 1999-2000 | 프리미어리그 | 33 | 2 | 5 | 0 | 7 | 1 | 0 | 0 | 45 | 3 |
2000-01 | 프리미어리그 | 33 | 1 | 3 | 0 | 1 | 0 | 4 | 0 | 41 | 1 | |
2001-02 | 프리미어리그 | 37 | 1 | 1 | 0 | 2 | 0 | 8 | 0 | 48 | 1 | |
2002-03 | 프리미어리그 | 0 | 0 | 0 | 0 | 0 | 0 | 1 | 0 | 1 | 0 | |
합계 | 103 | 4 | 9 | 0 | 10 | 1 | 13 | 0 | 135 | 5 | ||
미들즈브러 | 2002-03 | 프리미어리그 | 28 | 0 | 0 | 0 | 0 | 0 | 0 | 0 | 28 | 0 |
2003-04 | 프리미어리그 | 35 | 0 | 2 | 0 | 6 | 0 | 0 | 0 | 43 | 0 | |
2004-05 | 프리미어리그 | 25 | 3 | 0 | 0 | 0 | 0 | 4 | 0 | 29 | 3 | |
2005-06 | 프리미어리그 | 26 | 2 | 4 | 0 | 2 | 0 | 12 | 1 | 44 | 3 | |
2006-07 | 프리미어리그 | 35 | 1 | 6 | 1 | 0 | 0 | 0 | 0 | 41 | 2 |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33 | 1 | 3 | 0 | 2 | 0 | 0 | 0 | 38 | 1 | |
합계 | 182 | 7 | 15 | 1 | 10 | 0 | 16 | 1 | 223 | 9 | ||
헐 시티 | 2008-09 | 프리미어리그 | 23 | 0 | 2 | 0 | 0 | 0 | 0 | 0 | 25 | 0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29 | 1 | 1 | 0 | 1 | 0 | 0 | 0 | 31 | 1 | |
합계 | 52 | 1 | 3 | 0 | 1 | 0 | 0 | 0 | 56 | 1 | ||
슈코다 크산티 | 2010-11 | 그리스 슈퍼리그 | 19 | 2 | 0 | 0 | 0 | 0 | 0 | 0 | 19 | 2 |
노팅엄 포레스트 | 2011-12 | EFL 챔피언십 | 5 | 1 | 1 | 0 | 1 | 0 | 0 | 0 | 7 | 1 |
T-팀 | 2012-13 | 말레이시아 슈퍼리그 | 15 | 2 | 5 | 2 | 0 | 0 | 0 | 0 | 20 | 4 |
커리어 합계 | 499 | 23 | 41 | 4 | 25 | 1 | 31 | 1 | 596 | 29 |
6.2. International career statistics
연도 | 출전 | 득점 |
---|---|---|
2001 | 1 | 0 |
2002 | 1 | 0 |
2003 | 0 | 0 |
2004 | 0 | 0 |
2005 | 1 | 0 |
2006 | 1 | 0 |
합계 | 4 | 0 |
6.3. Managerial statistics
팀 | 국가 | 시작일 | 종료일 | 경기 수 | 승 | 무 | 패 | 승률 |
---|---|---|---|---|---|---|---|---|
케란탄 | 말레이시아 | 2014년 4월 25일 | 2015년 3월 24일 | 20 | 2 | 1 | 17 | 10.00% |
7. Honours
조지 보아텡은 선수로서 소속 클럽에서 여러 주요 대회에 참여하여 우승과 준우승을 경험했다.
7.1. Club honours
- 애스턴 빌라
- UEFA 인터토토컵: 2001 우승
- FA컵 준우승: 1999-2000 시즌
- 미들즈브러
- 풋볼 리그 컵: 2003-04 우승
- UEFA컵 준우승: 2005-06 시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