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움베르투 코엘류는 포르투갈 포르투의 세도페이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토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며, 키는 185 cm였다.
2. 선수 경력
움베르투 코엘류는 선수 시절 주로 SL 벤피카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1. 클럽 경력
1968년, 코엘류는 18세의 나이로 리스본에 기반을 둔 명문 구단 SL 벤피카의 1군 팀에 합류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입단 4년 만에 이미 101경기의 프리메이라리가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벤피카에서 그는 리그 5회 우승(1968-69, 1970-71, 1971-72, 1972-73, 1974-75)과 2회 준우승(1969-70, 1973-74)을 달성했다. 또한 타사 드 포르투갈에서 3회 우승(1968-69, 1969-70, 1971-72)과 3회 준우승(1970-71, 1973-74, 1974-75)을 경험했다. 특히 1971-72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팀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1975년부터 2시즌 동안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해외 리그 경험을 쌓았다.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 첫 시즌에 6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리그 1에서 14위에 그쳤다. 이후 1977년에는 북미 사커 리그의 라스베이거스 퀵실버스에서도 잠시 뛰었다.
1977년 벤피카로 복귀하여 7년간 활약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리그 3회 우승(1980-81, 1982-83, 1983-84)과 3회 준우승(1977-78, 1978-79, 1981-82)을 추가했으며, 타사 드 포르투갈 3회 우승(1979-80, 1980-81, 1982-83)을 기록했다. 또한 1980년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81년 준우승에 기여했다.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는 1980-81년 유러피언컵위너스컵 4강, 1982-83년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벤피카에서 총 496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했으며, 그 중 355경기는 리그 경기였다. 총 76골을 기록하며 공격형 수비수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코엘류는 1968년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합류했다. 1968년 10월 27일, 197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루마니아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며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5년 동안 64번의 A매치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으며, 이 중 30경기에서 팀의 주장을 맡았다. 그는 한때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의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A매치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 번호 | 날짜 | 경기장 | 상대 | 득점 | 결과 | 대회 |
|---|---|---|---|---|---|---|
| 1 | 1970년 5월 10일 | 이스타디우 나시오날 (리스본, 포르투갈) | 이탈리아 | 1-2 | 1-2 | 친선 경기 |
| 2 | 1972년 3월 29일 | 이스타디우 다 루스 (리스본, 포르투갈) | 키프로스 | 1-0 | 4-0 | 1974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
| 3 | 1972년 6월 14일 | 이스타디우 두 아루다 (헤시피, 브라질) | 이란 | 0-3 | 0-3 | 브라질 독립컵 |
| 4 | 1972년 6월 18일 | 이스타디우 두 아루다 (헤시피, 브라질) | 칠레 | 0-1 | 1-4 | 브라질 독립컵 |
| 5 | 1980년 12월 17일 | 이스타디우 다 루스 (리스본, 포르투갈) | 이스라엘 | 1-0 | 3-0 | 1982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
| 6 | 1980년 12월 17일 | 이스타디우 다 루스 (리스본, 포르투갈) | 이스라엘 | 3-0 | 3-0 | 1982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
1972년 브라질 독립컵에서는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1983년 4월 27일 소련과의 UEFA 유로 1984 예선에서 0-5로 패배한 경기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다. 포르투갈은 이 대회 본선에 진출했지만, 그는 당시 심한 부상을 입어 출전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곧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2.3. 선수 시절 수상 경력
선수 시절 움베르투 코엘류는 다음과 같은 영예와 개인상을 받았다.
- 벤피카
- 프리메이라리가: 1968-69, 1970-71, 1971-72, 1972-73, 1974-75, 1980-81, 1982-83, 1983-84
- 타사 드 포르투갈: 6회 우승
-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1980
-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 브라질 독립컵 준우승: 1972
- 개인상
- 올해의 포르투갈 축구 선수: 1974
3. 감독 경력
움베르투 코엘류는 선수 은퇴 후 감독으로 변신하여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으며, 특히 포르투갈과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3.1. 초기 지도자 경력
선수 생활을 마친 코엘류는 포르투갈 리그의 SC 살게이루스와 SC 브라가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이 두 팀을 포르투갈 최상위 리그에서 이끌었다.
3.2.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10년 이상의 지도자 공백기를 거쳐 1997년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포르투갈은 유럽 내에서 변방에 가까운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코엘류의 지도 아래 UEFA 유로 2000에서 4강에 진출하며 포르투갈 축구의 황금기를 예고했다. 이는 그의 지도력을 널리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지만, 대회 후 재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3.3. 모로코 국가대표팀
2000년 10월, 코엘류는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2002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세네갈에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2002년 5월에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3.4.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2003년 1월, 대한축구협회의 제안을 받아 거스 히딩크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팀에 생소한 포백 시스템을 도입하고, 세세한 패스를 중시하는 등 새로운 전술을 시도하며 초기에 큰 기대를 모았다. 5월 31일 일본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 강팀과의 경기에서 패배하며 축구팬들의 비난이 점차 커졌다.
특히 2004년 AFC 아시안컵 지역 예선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1라운드에서는 베트남에 5-0, 오만에 1-0, 네팔에 16-0으로 승리하며 3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오만에서 개최된 2라운드에서는 베트남에 0-1로 패하고, 오만에는 선제골을 넣고도 1-3으로 역전패하며 충격을 안겼다. 다행히 네팔에 7-0으로 승리하며 아시안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약체 팀들에게 패배한 것은 코엘류 감독의 입지를 위태롭게 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2라운드 경기에 위원을 단 한 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의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코엘류 감독은 재신임되었다. 이후 11월 불가리아 2군과의 친선 경기에서도 0-1로 패배하며 다시 자질 논란이 불거졌지만, 일본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홍콩에 3-1, 중국에 1-0, 일본에 0-0을 기록하며 2승 1무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퇴 압력은 계속되었고, 2004년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이 시작되었다. 첫 경기인 레바논전을 앞두고 코엘류 감독은 작년에 자신과 대표팀에게 수모를 안겼던 오만과의 평가전을 강력하게 요청했고, 이 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 듯했다. 레바논과의 1차전에서도 2-0으로 승리하며 안정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3월 31일 몰디브와의 원정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레바논과 승점 1점 차이로 조 1위를 간신히 유지하게 되자 축구팬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당시 K리그의 선수 차출 거부, 훈련 시간 부족 등 외부적인 요인이 복합되어 벌어진 사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코엘류 감독은 결국 2004년 4월 19일 자진 사퇴 형식으로 대한민국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그의 후임으로는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했다. 그의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재임 기간은 약 1년 2개월이었다.
3.5. 그 외 국가대표팀 및 클럽팀 경력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직 사임 후, 코엘류는 잠시 포르투갈에서 축구 해설자로 활동했다. 2005년 7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의 알샤바브 감독으로 취임했다.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K리그의 울산 현대 호랑이와 맞대결을 벌이며 다시 대한민국을 방문했지만, 1차전에서 0-6으로 대패한 후 경질되었다.
2008년 6월에는 튀니지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201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을 겸한 2010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나이지리아에 밀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2009년 11월 18일 모잠비크와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한 것이 결정타가 되어 해임되었다. 이 패배로 튀니지는 1998년 대회부터 이어온 월드컵 3회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이 끊기게 되었다.
3.6. 감독 수상 경력
감독으로서 움베르투 코엘류는 다음과 같은 주요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 EAFF E-1 풋볼 챔피언십: 2003
4. 행정가 경력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움베르투 코엘류는 포르투갈 축구 연맹에서 행정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연맹의 부회장직을 맡으며 포르투갈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5. 개인 생활
코엘류는 1975년 파리로 이주한 직후 그의 미래의 아내인 로렌스를 만났다. 로렌스는 RTL의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은 1980년과 1986년에 두 딸을 낳았다.
6. 유산 및 평가
움베르투 코엘류는 선수와 감독, 그리고 행정가로서 포르투갈 축구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경력은 성공과 도전, 그리고 논란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6.1. 기여 및 긍정적 평가
선수로서 코엘류는 SL 벤피카에서 8번의 프리메이라리가 우승과 6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포함하여 수많은 국내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의 수비 능력과 더불어 공격적인 기여는 당대 최고의 스토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했다.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며 국가대표팀의 상징적인 선수로 활약했다.
감독으로서 그는 UEFA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며 침체되어 있던 포르투갈 축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을 활용한 성공적인 지도력의 방증으로 평가된다. 또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축구 역사에 첫 동아시아컵 우승 트로피를 안기기도 했다.
6.2. 비판 및 논란
코엘류의 지도자 경력에는 여러 비판과 논란이 따라붙었다. 특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의 행보는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베트남과 오만 같은 약체 팀들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몰디브와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그의 전술적 역량과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의 미흡한 지원 및 K리그 구단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등 외부적인 요인이 존재했지만, 팬들은 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코엘류에게 물었다. 그는 결국 몰디브전 무승부 이후 자진 사퇴 형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모로코, 알샤바브, 튀니지 등 다른 팀에서도 부진한 성적과 월드컵 예선 탈락 등으로 인해 해임되는 경우가 많아, 안정적인 장기 집권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특히 튀니지 대표팀 감독 시절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모잠비크에게 패하며 튀니지의 월드컵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을 끊어낸 것은 지도자로서의 실패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그의 감독 경력은 포르투갈 대표팀에서의 성공 외에는 전반적으로 기복이 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