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1.1. 어린 시절과 교육
오카노 마사유키는 1972년 7월 25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고호쿠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저명한 서예가이자 문화공로자인 테시마 유케이이며, 숙부는 스교 마히카리의 총재인 오카다 아키미쓰이다.
오카노는 요코하마 시립 고마바야시 초등학교와 요코하마 시립 히요시다이 니시 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졸업 후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나고 싶어 했으나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다. 대신 친척의 권유로 시마네현 마쓰에시에 위치한 전원 기숙사 학교인 마쓰에 니혼 대학 고등학교(현 리쇼 대학 쇼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이 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으나, 오카노가 직접 축구부를 창단하고 '양키'라고 불리던 문제아들을 모아 팀을 만들었다. 그의 노력으로 이 팀은 시마네현 3위까지 오르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1.2. 대학 시절 및 프로 입단 전
고등학교 졸업 후 오카노는 니혼 대학에 스포츠 추천으로 입학하여 당시 2부 리그에 속해 있던 축구부에 입단했다. 하지만 축구 특기생이 아니었기에 입학이 곧 축구부 입부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엄격한 기숙사 생활의 반동으로 "축구부에 들어가지 못하면 축구 동아리에서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내겠다"고 생각했지만, "운동부 축구부원 2명 모집. 입부 테스트 실시"라는 포스터를 보고 마음을 다잡아 지원했다. 명문 고등학교 출신이나 전국 대회 경험자들이 즐비한 경쟁 속에서 오카노는 입부 테스트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세탁 담당, 잡무, 축구부 기숙사 생활 관리 등 주로 허드렛일을 맡는 부원으로 생활하며 대학 수업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1학년 때 천황배 예선에서 코치 나가시마 히로아키의 발탁을 계기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전방에 볼을 공급하는 미드필더 스타일이었으나, 어느 날 육상부 선수들과 훈련하던 중 큰 농구화를 신고도 100m 달리기에서 10.7 s를 기록하며 육상부 선수들을 능가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빠른 발을 활용하는 플레이 스타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 예선에서 그는 훗날 가시마 앤틀러스의 전신인 스미토모 금속 축구단과 경기를 치렀고, 이 경기에서 지쿠와 대결하기도 했다. 당시 경기는 니혼 대학이 전반 3-0으로 앞섰으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지쿠가 투입되면서 4-5로 역전패했다.
오카노는 밤에는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훈련을 병행했다. 1993년 천황배 간토 지역 대회 쓰쿠바 대학과의 경기에서는 "경기가 있다는 것을 잊고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고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이와 고, 모치즈키 시게요시, 후지타 도시야 등 강호 선수들을 상대로 5명 드리블 돌파 후 골을 포함해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활약으로 J리그 6개 클럽(가시마, 가시와 레이솔, 감바 오사카, 우라와 레즈 등)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중 우라와 레즈가 "가장 열성적이었다"고 하며, "대학을 그만두고라도 와달라"는 열의에 감동하여 니혼 대학을 3학년 때 중퇴하고 우라와 레즈에 입단했다. 당시 동기 입단 선수로는 야마다 노부히사, 이와세 겐, 스기야마 고이치 등이 있다.
2. 주요 활동 및 업적
오카노 마사유키는 선수 경력 전반에 걸쳐 일본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특히 중요한 순간마다 팀의 승리를 이끄는 활약을 펼쳤다.
2.1. 클럽 경력
오카노는 1994년 우라와 레즈에 입단한 이래 여러 클럽을 거치며 꾸준히 활약했다.
2.1.1. 우라와 레즈
1994년 우라와 레즈에 입단한 오카노는 첫 시즌부터 J리그 35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1996년에는 페널티킥을 전담하는 등 커리어 하이인 11골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 J리그 베스트 11과 신설된 J리그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네덜란드의 아약스에서 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2001 시즌에는 치타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해 5라운드 FC 도쿄전 이후 거의 벤치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이후 2004년 친정팀 우라와 레즈로 완전 이적하여 2008 시즌 초반까지 활약했다. 이 시기 우라와 레즈는 2006년 J1리그 우승, 2005년 천황배와 2006년 천황배 우승, 2006년 일본 슈퍼컵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07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팀의 우승에 기여하며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2007년 새해 첫날 열린 천황배 결승전에서는 교체 출전하여 나가이 유이치로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우라와 레즈의 천황배 2연패에 공헌했다. 2008년 10월 26일 알비렉스 니가타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추가 시간에 교체 출전하여 J1 통산 300경기 출전을 달성한 34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구단의 젊은 선수 위주 정책으로 인해 오랜 기간 팀을 지켰던 우치다테 히데키와 함께 11월 26일 계약 종료가 발표되며 우라와 레즈를 떠나게 되었다.
2.1.2. 비셀 고베
2001년 9월부터 비셀 고베로 임대 이적했으며, 2002년 12월 완전 이적이 발표되었다. 비셀 고베에서는 주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2.1.3. TSW 페가수스
2009년 2월, 홍콩 퍼스트 디비전 리그 소속의 TSW 페가수스로 이적했다. 2월 7일 홍콩 리그 데뷔전에서 첫 골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 6월 리그 시즌 종료와 함께 팀을 떠났다.
2.1.4. 가이나레 돗토리
2009년 7월 31일, 일본 풋볼 리그 소속의 가이나레 돗토리로 이적했다. 그는 2010년 가이나레 돗토리의 일본 풋볼 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의 J2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13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오카노는 1995년 1월에 개최된 1995년 킹 파흐드컵 일본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대회에서는 출전하지 못했다. 같은 해 9월 20일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국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96년에는 1996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같은 해 8월 25일 우루과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1997년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 참가했으나, 최종 예선에서는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아시아 3위 결정전인 이란과의 경기에서 연장전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치기도 했으나, 연장 후반 13분에 극적인 골든골을 터뜨려 일본을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로 이끌며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활약으로 1998년 1월, 우라와 레즈의 대주주인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으로부터 그가 원했던 차종인 미쓰비시 파제로 에볼루션을 선물 받았다.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 후반 16분부터 교체 출전하여 29분간 활약했다. 이후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했으며, 이 대회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였다. 그는 1999년까지 일본 국가대표팀에서 총 25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및 별명
오카노 마사유키는 압도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플레이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의 빠른 발은 '폭발적인 스피드'라고 불렸으며, 긴 머리를 휘날리며 경기장을 누비는 모습과 발 기술이 다소 투박하다는 평가 때문에 '야인(野人)'(Yajin)'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별명은 그의 거침없고 저돌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강한 인상을 대변했다.
4. 경력 통계
오카노 마사유키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다음과 같은 통계를 기록했다.
4.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내셔널컵 | 리그컵 | 아시아 | 합계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우라와 레즈 | 1994 | J1리그 | 35 | 3 | 3 | 0 | 2 | 0 | - | 40 | 3 | |
1995 | 44 | 5 | 3 | 0 | - | - | 47 | 5 | ||||
1996 | 30 | 11 | 3 | 2 | 13 | 2 | - | 46 | 15 | |||
1997 | 23 | 4 | 2 | 1 | 0 | 0 | - | 25 | 5 | |||
1998 | 34 | 7 | 2 | 1 | 0 | 0 | - | 36 | 8 | |||
1999 | 11 | 0 | 0 | 0 | 4 | 0 | - | 15 | 0 | |||
2000 | J2리그 | 26 | 6 | 4 | 1 | 2 | 0 | - | 32 | 7 | ||
2001 | J1리그 | 8 | 0 | 0 | 0 | 1 | 0 | - | 9 | 0 | ||
합계 | 211 | 36 | 17 | 5 | 22 | 2 | 0 | 0 | 250 | 43 | ||
비셀 고베 | 2001 | J1리그 | 11 | 3 | 2 | 0 | 0 | 0 | - | 13 | 3 | |
2002 | 24 | 1 | 1 | 0 | 5 | 0 | - | 30 | 1 | |||
2003 | 23 | 0 | 2 | 0 | 6 | 1 | - | 31 | 1 | |||
합계 | 58 | 4 | 5 | 0 | 11 | 1 | 0 | 0 | 74 | 5 | ||
우라와 레즈 | 2004 | J1리그 | 15 | 1 | 2 | 0 | 8 | 2 | - | 25 | 3 | |
2005 | 20 | 1 | 4 | 0 | 7 | 0 | - | 31 | 1 | |||
2006 | 8 | 0 | 2 | 0 | 6 | 0 | - | 16 | 0 | |||
2007 | 11 | 0 | 1 | 0 | 1 | 0 | 6 | 0 | 19 | 0 | ||
2008 | 4 | 0 | 0 | 0 | 3 | 0 | 0 | 0 | 7 | 0 | ||
합계 | 58 | 2 | 9 | 0 | 25 | 2 | 6 | 0 | 98 | 4 | ||
TSW 페가수스 | 2008/09 | 퍼스트 디비전 | 9 | 1 | 4 | 0 | 1 | 0 | - | 14 | 1 | |
가이나레 돗토리 | 2009 | 풋볼 리그 | 7 | 1 | 1 | 0 | - | - | 8 | 1 | ||
2010 | 16 | 0 | 0 | 0 | - | - | 16 | 0 | ||||
2011 | J2리그 | 13 | 0 | 1 | 0 | - | - | 14 | 0 | |||
2012 | 20 | 0 | 0 | 0 | - | - | 20 | 0 | ||||
2013 | 10 | 0 | 1 | 0 | - | - | 11 | 0 | ||||
합계 | 66 | 1 | 3 | 0 | 0 | 0 | 0 | 0 | 69 | 1 | ||
커리어 합계 | 402 | 44 | 38 | 5 | 59 | 5 | 6 | 0 | 505 | 54 |
4.2. 국가대표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일본 | 1995 | 3 | 0 |
1996 | 11 | 1 | |
1997 | 5 | 1 | |
1998 | 5 | 0 | |
1999 | 1 | 0 | |
합계 | 25 | 2 |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득점 | 결과 | 대회 |
---|---|---|---|---|---|---|
1 | 1996년 8월 25일 | 나가이 육상 경기장, 오사카시, 일본 | 우루과이 | 5-3 | 5-3 | 친선 경기 |
2 | 1997년 11월 16일 | 탄 스리 다토 하지 하산 유노스 경기장, 조호르바루, 말레이시아 | 이란 | 3-2 | 3-2 |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플레이오프 |
5. 수상 경력
오카노 마사유키는 선수 생활 동안 개인과 팀으로서 다양한 수상 경력을 쌓았다.
5.1. 클럽 수상
- 우라와 레즈
- AFC 챔피언스리그: 2007
- J1리그: 2006
- J1리그 2nd 스테이지: 2004
- 천황배: 2005, 2006
- 일본 슈퍼컵: 2006
- 가이나레 돗토리
- 일본 풋볼 리그: 2010
5.2. 개인 수상
- J리그 베스트 11: 1996
- J리그 페어플레이상: 1996
- J리그 공로 선수상: 2014
- 사이타마현 특별 공로상: 1997
5.3. 기타 수상
- DDT 프로레슬링
- 아이언맨 헤비메탈급 챔피언십: 1회 (제1515대)
6. 은퇴 후 활동
오카노 마사유키는 2013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 곧바로 가이나레 돗토리의 단장으로 취임하며 행정가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2014년 말에는 J리그 공로 선수상을 수상했다.
2015년 2월 15일, 그는 가이나레 돗토리 선수들이 자주 이용했던 식당 '하시야' 여주인의 며느리인 우치마 도모미(우치마 야스미치의 아내)가 2013년 12월 발병한 항문암 치료비를 모금하는 '우치마 씨를 지원하는 모임'의 발기인으로 활동하며 사회 공헌에도 힘썼다.
2017년 4월 27일에는 가이나레 돗토리의 대표이사 겸 단장으로 취임하며 구단 경영에 더욱 깊이 관여했다. 2024년 12월 23일, 가이나레 돗토리 대표이사 겸 단장직에서 물러나 남카쓰 SC의 사업 본부장으로 취임했다. 또한, 2025년 1월에는 그의 친정팀인 우라와 레즈의 브랜드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7. 유산 및 영향
오카노 마사유키는 그의 독특한 축구 경력과 은퇴 후 활동을 통해 스포츠계와 대중문화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는 대중 매체에서 재조명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7.1.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2017년 12월 11일 TV 아사히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격레어 씨를 데려왔다.'에 출연하여 "축구 경험이 전혀 없는 양키들을 모아 축구부를 만들고 강팀으로 성장시킨, 드라마 'ROOKIES' 같은 경험을 했음에도 그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는 '격레어 씨'로 소개되었다. 그는 축구부가 없던 전원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불량 학생들로 가득한 축구부를 창단하여 현 내 유수의 강팀으로 만든 마쓰에 니혼 대학 고등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큰 반향을 얻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스즈키 오사무가 각본을 쓰고 류세이 료가 주연을 맡은 텔레비전 드라마 '격아츠!! 양키 축구부'가 2018년 9월에 방영되었다.
8. 개인사
오카노 마사유키는 신장 175 cm, 체중 71 kg이다. 그의 가족 관계는 위에서 언급된 조부 테시마 유케이와 숙부 오카다 아키미쓰 외에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