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돈 레오 조나단(Don Leo Jonathan영어, 본명: 돈 히튼, Don Heaton영어, 1931년 4월 29일 ~ 2018년 10월 13일)은 미국-캐나다 국적의 저명한 프로레슬링 선수였습니다. "모르몬 거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2세대 프로레슬러로 활동한 그는 미국과 캐나다를 주 무대로 삼아 세계 각지에서 폭넓은 경력을 쌓았습니다. 조나단은 1950년대 초 데뷔하여 몬트리올 및 오마하 지역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을 여러 차례 획득하며 초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캐나다의 밴쿠버 지역에서 NWA 올스타 레슬링의 간판스타로 활약하며 NWA 캐나다 태그팀 챔피언십을 무려 18회나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같은 거물급 선수들과 대결하며 명성을 높였고, 일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호주 등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수중 탐사 및 발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으며, 미국 해군 복무와 방광암 투병 등 다양한 삶의 궤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업적은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과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명예의 전당 헌액으로 기려졌습니다.
2. Early life and background
돈 레오 조나단은 미국 유타주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프로레슬링 경력을 시작하기 전에도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2.1. Birth, family, and education
돈 레오 조나단은 1931년 4월 29일 미국 유타주 허리케인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부 자료에서는 솔트레이크시티 출신으로도 언급됩니다.) 그는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소금 호수 방울뱀"이라는 별명을 가진 프로레슬러 돈 들로운 히튼(Don DeLaun Heaton)으로, 경기장에 애완용 방울뱀 '콜드 칠스'를 데리고 나와 성경 구절을 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조나단은 어린 시절부터 프로레슬링 선수인 아버지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격투기를 익히기도 했습니다.
2.2. Pre-wrestling career
프로레슬링 선수로 데뷔하기 전, 조나단은 미국 해군에서 선원으로 복무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강인한 신체적, 정신적 기반을 다지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3. Professional wrestling career
돈 레오 조나단은 1949년 프로레슬링에 데뷔한 이래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남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하고 거물급 선수들과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3.1. Debut and early career
돈 레오 조나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9년에 프로레슬링 선수로 데뷔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미국 태평양 연안에서 미국 북동부까지 다양한 지역을 돌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1953년 11월 24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킬러 코왈스키를 꺾고 몬트리올 버전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첫 주요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이후 1955년 캐나디안 애슬레틱 프로모션스가 주최하는 몬트리올 버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을 두 차례 더 차지하며 총 3회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3.2. Main career in Canada and the United States
1960년대 초, 조나단은 캐나다 밴쿠버의 위성 도시인 랭리에 정착하며 밴쿠버를 그의 주된 활동 무대로 삼았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토론토의 메이플 리프 레슬링에서 진 키니스키와 팀을 이루어 1959년 NWA 캐나디안 오픈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으며, 위니펙의 알렉스 터크 프로모션스에서는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십을 두 차례 차지했습니다. 그는 특히 NWA 올스타 레슬링에서 1970년부터 1977년 사이에 NWA 퍼시픽 코스트 헤비급 챔피언십을 5회 획득했습니다. 또한 1966년 도미닉 데누치와 함께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했으며, 1964년부터 1978년 사이에 NWA 캐나다 태그팀 챔피언십을 무려 18회나 획득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의 태그팀 파트너로는 긴지 시부야, 로이 맥클라티, 진 키니스키, 짐 헤이디, 헤이스택 칼훈, 도미닉 데누치, 로키 존슨, 스카이 하이 존스, 패디 배럿, 조니 코스타스, 존 톨로스, 던컨 맥태비쉬, 스티븐 리틀 베어, 지미 스누카, 존 앤슨, 더치 새비지, 빅 존 퀸 등이 있었습니다. 그는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에도 도전하며 키니스키, 도리 펑크 주니어, 잭 브리스코와 같은 챔피언들과 맞섰으며, 올스타 레슬링에서 키니스키 및 더치 새비지와 대립하고 팀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1972년 5월 31일, "세기의 경기"라고 불린 대결에서 조나단은 앙드레 더 자이언트(Le Géant Jean Ferré프랑스어)를 실격으로 꺾었습니다. 같은 해 9월 7일에는 "거인들의 전쟁"이라 불린 재경기에서 앙드레에게 실격패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961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지역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을 3회 획득했습니다. 이 타이틀은 당시 A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의 구 버전으로 간주되었으나, 번 가니에의 통합 이전의 것이었기 때문에 AWA 공식 세계 챔피언으로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조나단은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1957년 페퍼 고메즈를 꺾고 NWA 텍사스 헤비급 챔피언십을 획득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WWA에서 1963년 9월 24일 프레드 블래시와 팀을 이루어 WWA US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1973년 WWWF에 악역으로 등장하여 페드로 모랄레스의 챔피언십에 도전했으며, 1974년 1월 14일에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브루노 산마르티노의 WWE 챔피언십 첫 방어전 상대로 나섰습니다. 경력 후반부에는 1978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 영화 《파라다이스 앨리》에 레슬러 중 한 명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3.3. International activities
돈 레오 조나단은 미국과 캐나다 외에도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여러 국제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1958년 9월 일본 프로레슬링에 처음으로 참전했습니다. 10월 2일 구라마에 국기관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역도산의 인터내셔널 헤비급 챔피언십 첫 방어전 상대였습니다.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 중계 방송의 시작 시기였으며, 조나단은 스카이 하이 리와 함께 오픈카 퍼레이드에 참여하여 방송 홍보에도 기여했습니다. 1967년 5월에서 6월 사이에는 더치 새비지, 립 호크, 스웨드 한센 등과 함께 다시 일본 프로레슬링을 찾아 자이언트 바바와 안토니오 이노키 등과 대결했습니다. 1970년 4월에 개막한 제12회 월드 리그전에서는 이노키에게 예선 리그에서 패했지만, 외국인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으로 결승에 진출하여 바바와 우승을 다투었습니다.
1972년 3월에 개막한 국제 프로레슬링의 제4회 IWA 월드 시리즈에도 참가하여 당시 몬스터 로시모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대결했습니다. 예선 리그에서 로시모프에게 선두를 내주었으나, 패자 부활전에서 김일과 호르스트 호프만을 꺾고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습니다. 준결승에서 스트롱 코바야시에게 패했지만, 3위 결정전에서 바론 폰 라시크를 꺾고 대회 3위를 기록했습니다.
1973년 1월부터는 전년도 10월에 창단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했습니다. 조나단은 바바의 미국 수련 시절에 함께 "거인 콤비"를 결성했던 깊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1월 24일 일본대학 강당에서 열린 바바의 "세계 헤비급 쟁패전"(PWF 헤비급 챔피언십 초대 챔피언 결정전) 상대 중 한 명으로 기용되었습니다. 1975년 12월에는 《오픈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도리 펑크 주니어, 압둘라 더 부처, 미스터 레슬링, 더 디스트로이어, 러셔 기무라, 그레이트 쿠사츠 등 호화 멤버들과 공식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는 1970년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원정하여 1975년 장 윌킨스로부터 EWU 월드 슈퍼 헤비급 챔피언십을 획득했습니다. 또한 1977년 9월 1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오토 반츠를 꺾고 C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을 차지했으며, 이듬해 1978년 7월 15일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반츠에게 타이틀을 내줄 때까지 챔피언 자리를 지켰습니다. 호주에서는 짐 바넷이 주최하던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에서 안토니오 프리제와 팀을 이루어 1969년 I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놓고 스컬 머피 & 브루트 버나드와 같은 팀들과 경쟁했습니다.
3.4. Retirement and later honors
돈 레오 조나단은 1980년에 프로레슬링 링에서 은퇴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1980년 3월 10일 밴쿠버에서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로디 파이퍼와 팀을 이루어 더 쉽허더스와 버디 로즈를 꺾은 경기였습니다.
은퇴 후에도 그는 스포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영예를 안았습니다. 2005년 11월 5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서리에서 열린 탑 랭크드 레슬링 주최 행사에서 스포츠에 대한 그의 공헌을 기리는 특별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2006년 5월 20일에는 뉴욕주 암스테르담의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컬리플라워 앨리 클럽으로부터 아이언 마이크 마주르키 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1995년 스탬피드 레슬링 명예의 전당,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4. Wrestling style and signature moves
돈 레오 조나단은 그의 거대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운동 신경과 다채로운 레슬링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공중제비를 넘을 수 있을 정도로 유연했으며, "루 테즈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실력자였습니다. 경기 중 자이언트 바바나 점보 츠루타가 키락을 시도할 때 그들을 쉽게 들어 올리거나, 코너 최상단에 있는 상대에게 드롭킥을 날려 장외로 떨어뜨리는 등 예상치 못한 기술을 구사했습니다. 그의 괴력에 대한 일화는 무수히 많으며, 사냥으로 잡은 300 kg에 달하는 무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산을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의 주요 기술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이잭 백브레이커
- 자이언트 스윙
- 선셋 플립
- 스탬프 홀드
5. Personal life
돈 레오 조나단은 프로레슬링 경력 외에도 다양한 개인적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1963년부터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 거주했으며, 로즈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프로레슬링 은퇴 후, 그는 수중 발명 및 탐사 분야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았습니다. 특히 수중 사업 운영에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또한 방광암 투병을 이겨내고 생존했습니다.
2016년 7월, 조나단은 WWE를 상대로 제기된 집단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으로 지명되었습니다. 이 소송은 레슬러들이 WWE 재직 중 외상성 뇌 손상을 입었으며, 회사가 이러한 부상 위험을 은폐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소송은 콘스탄틴 키로스 변호사가 주도했으며, 그는 WWE를 상대로 한 여러 다른 소송에도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조나단이 사망하기 한 달 전인 2018년 9월, 미국 지방법원 판사 버네사 린 브라이언트에 의해 해당 소송은 기각되었습니다.
6. Death
돈 레오 조나단은 2018년 8월 말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랭리의 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는 끝내 퇴원하지 못하고 2018년 10월 13일 87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7. Championships and accomplishments
돈 레오 조나단은 그의 오랜 프로레슬링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수많은 챔피언십 타이틀과 영예를 획득했습니다.
단체 | 챔피언십 | 획득 횟수 | 비고 |
---|---|---|---|
알렉스 터크 프로모션스 | NWA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십 (위니펙 버전) | 2회 | w / 위퍼 빌리 왓슨, 짐 헤이디 |
아메리칸 레슬링 어소시에이션 |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 (오마하판) | 3회 | |
캐치 레슬링 어소시에이션 | C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 | 1회 | |
컬리플라워 앨리 클럽 | 아이언 마이크 마주르키 상 | 2007년 | |
유러피언 레슬링 유니온 | EWU 월드 슈퍼 헤비급 챔피언십 | 1회 | |
그랜드 프릭스 레슬링 | GPW 헤비급 챔피언십 | 1회 | |
인터내셔널 레슬링 어소시에이션 (몬트리올) | I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 (몬트리올 버전) | 3회 | |
메이플 리프 레슬링 | NWA 캐나디안 오픈 태그팀 챔피언십 (토론토 버전) | 1회 | w / 진 키니스키 |
미드웨스트 레슬링 어소시에이션 (오하이오) | MWA 아메리칸 태그팀 챔피언십 | 1회 | w / 레이 스턴 |
NWA 올스타 레슬링 | NWA 캐나디안 태그팀 챔피언십 (밴쿠버 버전) | 18회 | w / 긴지 시부야, 로이 맥클라티, 진 키니스키, 짐 헤이디, 헤이스택 칼훈 (2), 도미닉 데누치, 로키 존슨, 스카이 하이 존스, 패디 배럿, 조니 코스타스, 존 톨로스, 던컨 맥태비쉬, 스티븐 리틀 베어, 지미 스누카, 존 앤슨, 더치 새비지, 빅 존 퀸 |
NWA 올스타 레슬링 | NWA 퍼시픽 코스트 헤비급 챔피언십 (밴쿠버 버전) | 5회 | |
NWA 올스타 레슬링 |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밴쿠버 버전) | 1회 | w / 도미닉 데누치 |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및 박물관 | TV 시대 | 2006년 헌액 | |
사우스웨스트 스포츠 | NWA 브래스 너클스 챔피언십 (텍사스 버전) | 1회 | |
사우스웨스트 스포츠 | NWA 텍사스 헤비급 챔피언십 | 2회 | |
스탬피드 레슬링 | NWA 캐나디안 헤비급 챔피언십 (캘거리 버전) | 2회 | |
스탬피드 레슬링 | 스탬피드 레슬링 명예의 전당 | 1995년 헌액 | |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 I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 2회 | w / 안토니오 프리제 |
월드 와이드 레슬링 어소시에이츠 | WWA 인터내셔널 텔레비전/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십 | 2회 | w / 프레드 블래시, 로드 레슬리 칼튼 |
월드 와이드 레슬링 어소시에이츠 | NWA "비트 더 챔프" 텔레비전 챔피언십 | 2회 |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명예의 전당 | 1996년 헌액 |
8. Legacy and reception
돈 레오 조나단은 그의 거대한 체격과 타고난 운동 능력, 뛰어난 레슬링 기술로 프로레슬링 역사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루 테즈를 뛰어넘는다"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선수였습니다. 특히 자이언트 바바와의 우정은 깊어서 바바가 주최한 전일본 프로레슬링 행사에 여러 차례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메이저 단체의 빅 타이틀과는 인연이 적었던 이유로는, 그의 프로레슬링 경력 외에 잠수사 사업 운영과 같은 사이드 비즈니스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조나단은 그의 말년, 2016년 WWE를 상대로 제기된 외상성 뇌 손상 관련 집단 소송에 참여하여 프로레슬링 산업 내 선수 안전 및 기업의 책임에 대한 중요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비록 소송은 기각되었지만, 이는 선수들의 인권과 건강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기술력, 업적, 그리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참여는 그를 단순한 레슬러가 아닌, 프로레슬링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