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네팔은 남아시아의 내륙국으로, 북쪽으로는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 남쪽, 동쪽, 서쪽으로는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하지만, 갠지스 평원의 일부도 포함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비옥한 평원, 아고산대 삼림 언덕, 그리고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한 세계 10대 최고봉 중 8개가 위치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수도는 카트만두이며, 국가 최대 도시이기도 하다. 네팔은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 다문화 국가이며, 네팔어가 공식 언어이다.
네팔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베다 시대 문헌에 처음 이름이 기록되었다.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붓다가 네팔 남부 룸비니에서 탄생했으며, 힌두교가 주요 종교이다. 18세기 고르카 왕국에 의해 통일되었고, 이후 샤 왕조와 라나 가문의 통치를 거쳤다. 영국과의 동맹 관계를 맺었으나 식민 지배를 받지는 않았고, 청나라와 영국령 인도 사이의 완충국 역할을 했다. 1951년 의회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으나 두 차례 중단되었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네팔 내전 끝에 2008년 세속 공화국이 수립되어 세계 마지막 힌두교 군주제가 막을 내렸다. 2015년 제정된 신헌법에 따라 7개 주로 구성된 연방 의회 공화국 체제를 갖추었다. 네팔은 1955년 국제 연합(UN)에 가입했으며, 1950년 인도, 1960년 중국과 우호 조약을 체결했다. 남아시아 지역 협력 연합(SAARC)의 창립 회원국이며 사무국을 유치하고 있고, 비동맹 운동 및 벵골만 기술 경제 협력체(BIMSTEC)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2. 국명
네팔이라는 국명의 정확한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여러 학설과 전설이 전해진다. 고대 인도의 베다 시대 문헌에서 '네팔'이라는 이름이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 네팔은 담요 수출지로 언급되었다. 굽타 제국 시기 알라하바드의 사무드라굽타 비문에도 네팔은 변경 국가로 언급된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네(Ne)'라는 고대 힌두 현자가 네팔을 보호했기 때문에 '네팔'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네(Ne)'는 '네 무니(Ne Muni)' 또는 '네미(Nemi)'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팔(pal)'은 팔리어로 '보호하다'라는 뜻이므로, '네팔'은 '네에 의해 보호받는 곳'으로 해석될 수 있다. 파슈파티 푸라나에 따르면, 네팔은 히말라야 중심부에서 '네'에 의해 보호받는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네팔 마하트미아(네팔 순례 지역에 관한 30장으로 구성된 지역 문헌으로, 스칸다 푸라나의 일부라고 주장됨)에 따르면, '네미'는 파슈파티나트 신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는 임무를 받았다.
불교 신화에서는 문수보살이 나가(뱀)의 원시 호수를 말려 네팔 계곡을 만들고, 아디붓다 '네'가 그곳에 정착할 공동체를 돌볼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네'의 소중한 곳으로서 계곡은 '네팔'이라 불리게 되었다. 약 1380년대에 편찬된 고대 고팔라 왕조의 계보인 고팔라라즈밤샤발리에 따르면, 네팔은 아비라 부족의 네팔 분파 창시자인 소몰이꾼 '네파(Nepa)'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기록에서 '네파'가 조사 끝에 파슈파티나트 사원의 조티를링가를 발견한 지점에 우유를 공급한 소의 이름도 '네'였다고 한다.
초기 유럽 방문객들은 '네 무니' 어원설을 신화에 기반한 것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인도학자 크리스티안 라센은 '네팔라(Nepāla)'가 '산기슭'을 의미하는 '니파(Nipa)'와 '거주지'를 의미하는 '알라야(alaya)'의 짧은 접미사인 '-알라(-ala)'의 합성어라고 제안하여, '네팔라'는 "산기슭의 거주지"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인도학자 실뱅 레비는 라센의 이론을 지지할 수 없다고 보았으나, 자신만의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고 '네와르인|네와라(Newara)'가 산스크리트어 '네팔라'의 속어이거나, '네팔라'가 현지 민족명의 산스크리트화된 형태일 것이라고만 제안했다. 이 견해는 어원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일부 지지를 받았다. 또한 '네파(Nepa)'가 '소(Ne)'와 '지킴이(Pa)'로 구성된 티베트-버마어 어간이라는 설도 제기되었는데, 이는 계곡의 초기 주민들이 '고팔라스(소몰이꾼)'와 '마히스팔라스(물소 몰이꾼)'였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수니티 쿠마르 차터지는 '네팔'이 티베트-버마어 어원에서 유래했다고 믿었는데, '네(Ne)'의 의미는 불확실하며(여러 가능성이 존재), '팔라(pala)' 또는 '발(bal)'의 의미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았다.
국제연합(UN)에서 네팔의 공식 국명은 다음과 같이 변천했다.
- ~ 2006년 8월 22일: 네팔 왕국(Kingdom of Nepal영어)
- 2006년 8월 22일 ~ 2008년 8월 4일: 네팔(Nepal영어)
- 2008년 8월 4일 ~ 2020년 12월 14일: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영어)
- 2020년 12월 14일 ~ 현재: 네팔(Nepal영어)
2020년 9월 27일, K.P. 샤르마 올리 내각은 공식 국명을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에서 정체명을 포함하지 않는 '네팔'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2020년 12월 14일 국제연합에서 승인되었다.
3. 역사
네팔의 역사는 고대 문명의 태동기부터 현대 공화국 수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왕조와 정치 체제의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발전해왔다. 지리적으로 인도 아대륙과 티베트 고원 사이에 위치하여 두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으며,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를 형성했다.
3.1. 고대와 중세

네팔 지역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으며, 카트만두 계곡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유물은 약 11,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베다 시대 문헌에 네팔이 담요 수출지로 언급되며, 아타르바베다 파리시슈타와 후기 베다 시대의 아타르바시르샤 우파니샤드에 그 이름이 등장한다. 초기 거주민으로는 키라타족, 카트만두 계곡의 네와르족, 테라이 평원의 토착 타루족, 그리고 극서부 구릉지의 카스 파하리족 등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카트만두 계곡은 원래 호수였으나 문수보살이 산을 갈라 물을 빼내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네(Ne)'라는 성인이 이 땅을 다스렸기 때문에 '네팔(Nepal)'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역사 기록이 부족하여 초기 왕조인 고팔라 왕조, 마히샤팔라 왕조, 키라타 왕조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부족하다.
기원전 6세기경, 현재 네팔 영토인 카필라바스투에서 샤카족의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붓다는 이후 불교를 창시했다. 기원전 3세기,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 아소카왕은 붓다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순례하고 아소카 석주를 세웠으며, 이 석주의 비문은 네팔 역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여겨진다. 4세기경에는 굽타 제국의 영향권에 들었으며, 이 시기 카트만두 계곡을 중심으로 리차비 왕조가 성립되었다. 리차비 왕조는 기념물을 건립하고 여러 비문을 남겼으며, 이 시기의 역사는 주로 이 비문들을 통해 재구성된다. 641년, 토번 제국의 송첸캄포는 나렌드라데바를 군대와 함께 리차비로 돌려보내 네팔을 복속시켰고, 이후 네팔 일부와 리차비는 토번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놓였다. 리차비 왕조는 8세기 말에 쇠퇴하고 타쿠리 왕조가 들어섰으며, 11세기 중반까지 통치했으나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은 부족하여 '암흑기'로 불리기도 한다.

11세기 서부 네팔에서는 카스 왕국이 강력한 제국으로 부상하여 서부 네팔 대부분과 티베트 서부, 인도 우타라칸드 주 일부를 포함하는 영토를 다스렸다. 14세기경 제국은 바이세 라지야(22개 국가)로 분열되었다. 남동부 네팔에서는 심라웅가르 왕조가 1100년경 미틸라 지역을 합병하여 200년 이상 강력한 왕국으로 존속했으며, 한때 카트만두를 지배하기도 했다. 이후 300년간의 무슬림 통치를 거쳐 미틸라는 마카완푸르 현의 센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동부 구릉지대에서는 키라트 토후국 연합이 카트만두와 벵골 사이 지역을 다스렸다.

카트만두 계곡에서는 고대부터 네팔 역사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말라족이 14세기 중반까지 카트만두와 파탄에 자리를 잡았다. 말라족은 처음에는 티르훗의 종주권 하에 계곡을 다스렸으나, 티르훗이 쇠퇴하면서 14세기 후반에 독립적인 통치를 확립했다. 14세기 후반, 자야스티티 말라는 카스트 제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토착 비아리안 불교도 인구를 힌두교의 네 바르나 체계를 본떠 카스트로 나누어, 네팔 전역의 모든 토후국에서 토착 비힌두 부족 인구의 산스크리트화와 힌두화에 영향력 있는 모델을 제공했다. 15세기 중반까지 카트만두는 강력한 제국이 되었으며, 커크패트릭에 따르면 티베트의 디가르치 또는 시가체에서 인도의 티르훗과 가야까지 확장되었다. 15세기 후반, 말라 왕자들은 왕국을 계곡의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와 동쪽의 바네파 등 네 곳으로 분할했다. 이 형제 왕국들 간의 위신 경쟁은 네팔 중부 예술과 건축의 번영을 가져왔고, 유명한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파탄 더르바르 광장, 박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분열과 불신은 18세기 후반 몰락을 초래했고, 궁극적으로 네팔을 현대 국가로 통일하는 계기가 되었다.

14세기 중반 카트만두 계곡이 한 차례 파괴적인 약탈을 당한 것을 제외하고, 네팔은 11세기에 시작된 인도의 이슬람 침공으로부터 대체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무굴 제국 시기에는 인도에서 네팔로 상류층 힌두교도들이 유입되었다. 그들은 곧 카스인들과 섞였고, 16세기까지 네팔에는 바이시 22개 주와 서중부 네팔 동쪽의 차우비시 라지야(24개 주)를 포함하여 약 50개의 라지푸트 통치 토후국이 존재했다. 인도 문화가 수 세기 동안의 무굴 통치와 그 뒤를 이은 영국 통치의 영향을 받았던 시기에 네팔이 순수한 힌두교의 진정한 보루로 남아 있다는 견해가 등장했다. 바이시 주 중 하나였던 고르카 왕국은 네팔 구릉지에서 최초의 힌두교 기반 법률을 성문화한 후, 정의로 명성이 높은 영향력 있고 야심찬 왕국으로 부상했다.
3.2. 통일 왕국 (고르카 왕조)

18세기 중반, 고르카의 왕 프리트비 나라얀 샤는 오늘날의 네팔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 산악 왕국들의 중립을 확보하며 임무에 착수했다. 몇 차례의 유혈 전투와 포위 공격, 특히 키르티푸르 전투 끝에 그는 1769년 카트만두 계곡을 정복했다. 고르카의 지배는 서쪽의 쿠마온 왕국과 가르왈 왕국부터 동쪽의 시킴까지 네팔의 통제하에 들어갔을 때 절정에 달했다. 산악 통로와 티베트 내륙 팅그리 계곡의 통제권을 둘러싼 티베트와의 분쟁은 청나라 황제로 하여금 청-네팔 전쟁을 일으키게 했고, 네팔군은 북쪽 국경으로 후퇴해야 했다. 네팔 왕국과 영국 동인도 회사 간의 네팔 접경 국가 통제권을 둘러싼 경쟁은 결국 영국-네팔 전쟁(1815-16)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영국은 네팔군을 과소평가하여 예상보다 많은 군사 자원을 투입할 때까지 참패를 당했다. 이로써 구르카는 용맹하고 무자비한 군인이라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전쟁은 수가울리 조약으로 끝났고, 네팔은 최근 점령지를 할양했다.

왕실 내부의 파벌주의는 불안정한 시기를 초래했다. 1846년, 당시 왕비가 급부상하던 군사 지도자 장 바하두르 쿠와르를 타도하려던 음모가 발각되었다. 이는 코트 학살로 이어졌고, 왕비에게 충성하는 군인과 행정가들 사이의 무력 충돌로 전국적으로 수백 명의 왕자와 족장들이 처형되었다. 비르 나르싱 쿠와르는 승리하여 라나 왕조를 창건했고, 장 바하두르 라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왕은 명목상의 인물이 되었고, 총리직은 강력하고 세습되었다. 라나 가문은 확고한 친영국파였으며, 1857년 인도 항쟁(그리고 이후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 영국을 지원했다. 1860년, 영국은 항쟁 기간 동안 인도에서 영국 통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 군사적 지원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처로 서부 테라이 지역 일부를 네팔에 선물했다 (이는 '나야 물룩(새로운 나라)'으로 알려짐). 1923년, 영국과 네팔은 1816년 수가울리 조약을 대체하는 우호 조약을 공식적으로 체결했다.

남편의 장례식 장작더미에서 미망인이 자신을 희생하는 힌두교 관습인 사티는 1919년에 금지되었고, 노예제는 1924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라나 통치는 폭정, 방탕, 경제적 착취, 종교적 박해로 특징지어졌다. 민주화 운동과 정당들이 라나 가문의 독재를 비판하면서 네팔의 정치적 상황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3.2.1. 라나 가문 통치 시기
1846년 코트 학살을 통해 장 바하두르 라나가 총리직에 오르면서 라나 가문의 세습 총리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국왕은 명목상의 존재로 전락하고, 총리가 국가의 실권을 장악했다. 라나 가문은 강력한 친영국 정책을 펼치며, 1857년 인도 항쟁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영국을 지원했다. 그 대가로 영국은 서부 테라이 지역 일부를 네팔에 할양하기도 했다. 1923년에는 영국과 우호 조약을 체결하여 수가울리 조약을 대체하고 네팔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라나 가문의 통치는 약 100년간 지속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네팔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정체되었다. 카스트 제도에 기반한 사회 질서가 강화되었고, 교육과 산업 발전은 더디었다. 경제적으로는 소수의 라나 가문과 귀족층에게 부가 집중되었으며, 일반 민중의 삶은 어려웠다. 종교적으로는 힌두교가 우대받았으나, 다른 종교에 대한 박해도 있었다. 사티와 노예제가 이 시기에 폐지되는 등 일부 사회 개혁도 이루어졌으나, 전반적으로 라나 통치는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점차 국민들의 불만을 야기했고, 20세기 중반 민주화 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3.3. 왕정 복고와 민주화 운동

1940년대 후반, 네팔 내에서 새롭게 등장한 민주화 운동 세력과 정당들은 라나 가문의 독재 정치를 비판했다. 네팔 활동가들이 참여했던 인도 독립 운동의 성공에 이어, 인도의 지원과 트리부반 국왕의 협력으로 네팔 의회당은 1951년 라나 정권을 무너뜨리고 의회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10년간 국왕과 정부 간의 권력 다툼이 이어졌고, 마헨드라 국왕(재위 1955-1972)은 1960년 민주주의 실험을 중단시키고 정당 활동이 금지된 판차야트 체제를 도입하여 네팔을 통치했다. 이 체제 하에서 정치인들은 투옥되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판차야트 통치는 국가 현대화, 개혁 도입, 사회 기반 시설 개발 등을 추진했지만, 자유를 억압하고 강력한 검열을 시행했다. 1990년, 민중 운동은 비렌드라 국왕(재위 1972-2001)으로 하여금 헌법 개혁을 수용하고 다당제 민주주의를 수립하도록 강요했다. 이로써 판차야트 체제는 종식되고 네팔은 다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으나, 이후에도 정치적 불안정은 계속되었다.
3.4. 공화국 수립 이후

1996년, 마오주의 정당은 왕정 의회 제도를 인민 공화국으로 대체하기 위한 폭력적인 시도를 시작했다. 이는 장기간의 네팔 내전으로 이어져 16,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왕궁에서의 학살로 국왕과 왕세자가 모두 사망하자,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 갸넨드라가 왕위를 계승했고, 이후 마오주의 반란을 직접 진압하려는 목적으로 모든 행정권을 장악했다.
2006년 평화적인 민주 혁명이 성공한 후 마오주의 정당은 주류 정치에 합류했다. 네팔은 세속 국가가 되었고, 2008년 5월 28일에는 세계 유일의 힌두교 왕국으로서의 오랜 지위를 끝내고 연방 공화국을 선포했다. 두 차례의 제헌 의회 선거를 거치는 등 10년간의 불안정과 내부 갈등 끝에, 2015년 9월 20일 신헌법이 공포되어 네팔은 7개 주로 구성된 연방제 민주 공화국이 되었다. 이후에도 네팔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한 과제를 안고 있으며, 과거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2015년 신헌법 제정은 네팔 현대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연방제 도입을 통해 지역 균형 발전과 다양한 민족 집단의 정치 참여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4. 지리

네팔은 대략 사다리꼴 모양으로, 길이는 약 800 km, 너비는 약 200 km이며, 면적은 14.75 만 km2이다. 북위 26°에서 31° 사이, 동경 80°에서 89° 사이에 위치한다. 네팔을 형성한 결정적인 지질학적 과정은 7,500만 년 전, 당시 남쪽 초월대륙 곤드와나의 일부였던 인도판이 남서쪽, 그리고 나중에는 남쪽과 남동쪽의 해저 확장으로 인해 북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동시에, 북동쪽에 있던 광대한 테티스해의 해양 지각이 유라시아판 아래로 섭입하기 시작했다. 지구 맨틀의 대류에 의해 일어난 이 두 과정은 인도양을 만들었고, 결국 인도 대륙 지각이 유라시아 대륙 아래로 밀고 들어가 히말라야 산맥을 융기시켰다. 솟아오르는 산맥은 강의 흐름을 막아 거대한 호수들을 형성했고, 이 호수들은 약 10만 년 전에야 터져나가면서 카트만두 계곡과 같은 구릉 지대에 비옥한 계곡을 만들었다. 서부 지역에서는 강물이 너무 강해 막히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들을 깎아냈다. 히말라야 산맥 남쪽 바로 아래에는 판 이동으로 인해 거대한 골짜기가 형성되었고, 이 골짜기는 강물이 운반해 온 퇴적물로 빠르게 채워져 현재의 인더스-갠지스 평원을 이루고 있다. 네팔은 거의 전적으로 이 충돌대에 위치하며, 2400 km 길이의 히말라야 산맥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중앙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네팔 최남단의 작은 지역은 인더스-갠지스 평원까지 뻗어 있고, 북서부의 두 개 현은 티베트 고원까지 이어진다.

네팔은 크게 히말(Himal), 파하드(Pahad), 테라이(Terai)라는 세 가지 주요 지형대로 나뉜다. (이 세 가지 구분은 네팔 담론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며, 파란색과 흰색 봉우리는 히말을, 그 아래 녹색 언덕은 파하드를, 맨 아래 노란색 띠는 테라이 지대를 상징하는 국장에도 표현되어 있다.) 히말은 대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눈 덮인 산악 지역으로 네팔의 북부를 이룬다. 중국과의 국경에 있는 8848.86 m 높이의 에베레스트 산(네팔어: 사가르마타)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를 포함한다. 세계의 "8천 미터급 봉우리" 중 7개가 네팔 또는 티베트와의 국경에 있다: 로체, 마칼루, 초오유, 칸첸중가,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파하드는 일반적으로 눈이 없는 산악 지역이다. 산들은 해발 800 m에서 4000 m까지 다양하며, 1200 m 이하의 아열대 기후에서 3600 m 이상의 고산 기후로 점차 변화한다. 해발 1500 m에서 3000 m에 이르는 저지 히말라야 산맥이 이 지역의 남쪽 한계이며, 이 산맥 북쪽으로는 아열대 강 계곡과 "언덕"이 번갈아 나타난다. 계곡의 인구 밀도는 높지만, 2000 m 이상에서는 현저히 낮고, 겨울에 가끔 눈이 내리는 2500 m 이상에서는 매우 낮다. 인도와 접경하는 남부 저지대 평야 또는 테라이는 인더스-갠지스 평원의 북쪽 가장자리의 일부이다. 테라이는 일부 구릉지를 포함하는 저지대 지역이다. 이 평야는 코시강, 간다키강(나라야니강), 카르날리강 등 세 개의 주요 히말라야 강과 영구 설선 아래에서 발원하는 작은 강들에 의해 형성되고 물을 공급받는다. 이 지역은 아열대에서 열대 기후를 보인다. 시왈릭 언덕 또는 추리아 산맥이라고 불리는 최외곽 구릉지대는 해발 700 m에서 1000 m에 이르며, 갠지스 평원의 한계를 표시한다. 네팔의 내부 테라이 계곡(네팔어: 비트리 타라이 우파티야카)이라고 불리는 넓고 낮은 계곡들이 여러 곳에서 이 구릉지대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인도판은 아시아에 대해 연간 약 50 mm의 속도로 계속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로 인해 네팔은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 되었으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주기적인 지진은 개발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침식은 인도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매우 중요한 퇴적물 공급원이다. 특히 삽타코시강은 네팔에서 막대한 양의 토사를 운반하지만, 비하르 주에서 경사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심각한 홍수와 유로 변경을 일으켜 '비하르의 슬픔'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우기에는 심각한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인명 피해와 질병이 발생하고, 농경지가 파괴되며, 국가의 교통 기반 시설이 마비된다.
4.1. 기후
네팔은 고도에 따라 대체로 일치하는 다섯 가지 기후대를 가지고 있다. 열대 및 아열대 기후대는 해발 1200 m 미만에 위치하며, 온대 기후대는 1200 m에서 2400 m 사이, 한랭 기후대는 2400 m에서 3600 m 사이, 아극 기후대는 3600 m에서 4400 m 사이, 그리고 극지 기후대는 4400 m 이상에 해당한다. 네팔은 여름, 몬순, 가을, 겨울, 봄의 다섯 계절을 경험한다. 히말라야 산맥은 겨울철 중앙아시아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며, 몬순 바람 패턴의 북쪽 한계를 형성한다. 몬순은 네팔 기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6월부터 9월까지 지속되며 전국 강수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도와 지형의 영향으로 지역별 강수량과 기온 차이가 크며, 동부 지역이 서부 지역보다 강수량이 많은 경향이 있다.
4.2. 생물 다양성

네팔은 그 크기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많은 종류의 동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네팔 전체는 주목할 만한 생물 문화적 다양성을 지닌 동부 히말라야 생물 다양성 핵심 지역의 서쪽 부분을 형성한다. 네팔에서 발견되는 극적인 고도 차이(테라이 평원의 해수면으로부터 60 m, 에베레스트 산 8848 m)는 다양한 생물 군계를 만들어낸다. 네팔 동부는 서부 지역에 비해 강우량이 많아 생물 다양성이 더 풍부하며, 서부 지역에서는 고도가 높은 곳에서 북극 사막 유형의 조건이 더 흔하게 나타난다. 네팔은 전체 포유류 종의 4.0%, 조류 종의 8.9%, 파충류 종의 1.0%, 양서류 종의 2.5%, 어류 종의 1.9%, 나비 종의 3.7%, 나방 종의 0.5%, 거미 종의 0.4%가 서식하는 곳이다. 35개의 산림 유형과 118개의 생태계에서 네팔은 현화식물 종의 2%, 양치식물의 3%, 지의식물의 6%를 보유하고 있다.

네팔의 산림 면적은 5.96 만 km2로 국토 총면적의 40.36%이며, 추가로 4.38%가 관목 지대로 총 산림 면적은 44.74%로, 2000년대 초반 이후 5% 증가했다. 2019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는 7.23/10으로, 172개국 중 세계 45위를 차지했다. 남부 평야의 테라이-두아르 사바나 및 초원 생태 지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풀 일부와 살라나무 숲, 열대 상록수림, 열대 강변 낙엽수림이 포함되어 있다. 낮은 구릉지대(해발 700 m - 2000 m)에서는 아열대 및 온대 낙엽 혼합림이 흔하며, 주로 저지대에는 살라나무, 칠라우네(스키마 왈리키), 카투스(카스타놉시스 인디카), 그리고 치르소나무가 우점하는 아열대 소나무숲이 일반적이다. 중간 구릉지대(해발 2000 m - 3000 m)는 참나무와 진달래가 우점한다. 아고산 침엽수림은 해발 3000 m에서 3500 m 범위를 차지하며, 특히 서쪽에서는 참나무, 동히말라야 전나무, 히말라야 소나무, 히말라야 솔송나무가 우점하고 진달래도 흔하다. 서쪽 해발 3500 m 이상, 동쪽 해발 4000 m 이상에서는 침엽수가 진달래가 우점하는 고산 관목과 초원으로 바뀐다.
주목할 만한 나무로는 전통 약초에 널리 사용되는 수렴성 아자디라크타 인디카(님나무)와 모헨조다로의 고대 인장에 그려져 있으며 팔리어 대장경에 고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기록된 보리수(피팔나무)가 있다.

낮은 히말라야 지역의 아열대 상록 활엽수림 대부분은 테티스해 제3기 식물상에서 유래했다. 인도판이 유라시아판과 충돌하여 히말라야를 형성하고 융기시키면서, 건조 및 반건조 지중해 식물상은 밀려 올라가 다음 4~5천만 년 동안 더 고산 기후에 적응했다. 히말라야 생물 다양성 핵심 지역은 신생대에 인도와 유라시아 종의 대량 교환 및 혼합이 일어난 장소였다. 포유류 1종(히말라야들쥐), 조류와 파충류 각 2종, 양서류 9종, 어류 8종, 나비 29종이 네팔 고유종이다.
네팔에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지정 멸종위기종 107종이 서식하며, 그중 88종이 동물, 18종이 식물, 1종이 "균류 또는 원생생물" 그룹이다. 여기에는 벵골호랑이, 레서판다, 아시아코끼리, 히말라야사향노루, 야생물소, 남아시아강돌고래 등 멸종위기종과, 가비알, 벵골느시 등 심각한 멸종위기종, 그리고 디클로페낙 처리된 소의 사체를 섭취하여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른 흰등독수리가 포함된다. 최근 수십 년간 만연하고 생태학적으로 파괴적인 인간의 잠식은 네팔 야생동물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1973년 국립공원 및 야생동물 보호법 1973 제정으로 처음 설립된 국립공원 및 보호 지역 시스템이 대폭 확장되었다. '독수리 식당'과 수의학적 디클로페낙 사용 금지 조치로 흰등독수리 수가 증가했다. 공동체 산림 관리 프로그램은 전체 산림 면적의 4분의 1을 관리하는 데 인구의 3분의 1이 직접 참여하여 지역 경제를 돕고 인간-야생동물 갈등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번식 프로그램과 공동체 지원 군사 순찰, 밀렵 및 밀수 단속 강화로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호랑이와 코끼리, 그리고 취약종인 코뿔소 등의 밀렵이 사실상 사라졌고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네팔에는 10개의 국립공원, 3개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1개의 수렵 보호구역, 3개의 보전지역 및 11개의 완충지대가 있으며, 총면적은 2.90 만 km2로 전체 국토 면적의 19.67%를 차지한다. 한편 10개의 습지가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어 있다. 네팔은 지속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5. 행정 구역
네팔은 7개 주로 구성된 연방 공화국이다. 각 주는 8개에서 14개의 현으로 구성된다. 현은 다시 도시형 지방 자치체(대도시, 부대도시, 시)와 농촌형 지방 자치체로 나뉜다. 총 753개의 지방 자치체가 있으며, 이 중 6개는 대도시, 11개는 부대도시, 276개는 시로 총 293개의 도시형 지방 자치체가 있고, 460개의 농촌형 지방 자치체가 있다. 각 지방 자치체는 여러 개의 구(ward)로 구성되며, 총 6,743개의 구가 있다.
지방 정부는 해당 관할 구역 내에서 행정권, 입법권 및 제한적인 사법권을 행사한다. 주는 단원제 의회 웨스트민스터 체제의 통치 구조를 갖는다. 지방 및 주 정부는 일부 절대적 권한과 주 또는 연방 정부와 공유하는 일부 권한을 행사한다. 현 조정 위원회는 해당 현의 모든 선출직 지방 정부 공무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로, 매우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주 | 주도 | 현 (개수) | 면적 (km2) | 인구 (2011년) | 인구 (2021년) | 인구 밀도 (명/km2, 2021년) | 인간개발지수 (HDI) |
---|---|---|---|---|---|---|---|
코시주 | 비랏나가르 | 14 | 25,905 | 4,534,943 | 4,972,021 | 192 | 0.553 |
마데시주 | 자낙푸르 | 8 | 9,661 | 5,404,145 | 6,126,288 | 634 | 0.485 |
바그마티주 | 헤타우다 | 13 | 20,300 | 5,529,452 | 6,084,042 | 300 | 0.560 |
간다키주 | 포카라 | 11 | 21,856 | 2,403,757 | 2,479,745 | 113 | 0.567 |
룸비니주 | 데우쿠리 | 12 | 19,707 | 4,499,272 | 5,124,225 | 260 | 0.519 |
카르날리주 | 비렌드라나가르 | 10 | 30,213 | 1,570,418 | 1,694,889 | 56 | 0.469 |
수두르파슈침주 | 고다와리 | 9 | 19,539 | 2,552,517 | 2,711,270 | 139 | 0.478 |
네팔 | 카트만두 | 77 | 147,181 | 26,494,504 | 29,192,480 | 198 | 0.579 |
5.1. 주요 도시
네팔의 수도는 카트만두이며, 이는 네팔 최대의 도시이자 문화 및 경제 중심지이다. 카트만두는 오랜 역사와 함께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며, 수많은 사원과 고대 건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주요 도시로는 포카라, 비랏나가르, 랄릿푸르, 바랏푸르, 비르간지, 다란, 헤타우다, 네팔군지 등이 있다. 포카라는 아름다운 호수와 히말라야 전망으로 유명한 관광 도시이며, 비랏나가르는 동부 네팔의 산업 중심지이다. 랄릿푸르는 카트만두와 인접한 역사 도시로, 정교한 예술과 공예로 유명하다. 이러한 주요 도시들은 각기 다른 지리적, 경제적, 문화적 특성을 지니며 네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교통 체증, 환경 오염, 식수 부족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순위 | 도시명 | 주 | 인구 |
---|---|---|---|
1 | 카트만두 | 바그마티주 | 845,767 |
2 | 포카라 | 간다키주 | 518,452 |
3 | 바랏푸르 | 바그마티주 | 369,377 |
4 | 랄릿푸르 | 바그마티주 | 299,843 |
5 | 비르간지 | 마데시주 | 268,273 |
6 | 비랏나가르 | 코시주 | 244,750 |
7 | 단가디 | 수두르파슈침주 | 204,788 |
8 | 고라히 | 룸비니주 | 201,079 |
9 | 이타하리 | 코시주 | 198,098 |
10 | 헤타우다 | 바그마티주 | 195,951 |
6. 정치

네팔은 다당제를 채택한 의원내각제 공화국이다. 2015년부터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으로 불려왔으나, 네팔 정부는 국가의 공식 명칭으로 '네팔'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연방 의회에서 인정된 7개의 전국 정당이 있으며, 주요 정당으로는 네팔 공산당 (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 의회당, 네팔 공산당 (마오주의 센터), 라스뜨리야 스와딴뜨라당, 라스뜨리야 쁘라자딴뜨라당, 네팔 인민사회주의당, 자나마트당 등이 있다.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두 주요 정당 중, CPN(UML)은 좌파로, 네팔 의회당은 중도파로 간주된다. 1950년대와 1990년대의 짧은 민주주의 실험 기간 동안 대부분 네팔 의회당이 의회 다수석을 차지했으며, 1990년대에는 CPN(UML)이 경쟁 상대였다. 2006년 마오주의 정당이 정치 과정에 참여한 후 세 번째로 큰 정당으로 부상했다. 2017년 네팔 총선 이후 CPN(UML)과 CPN(마오주의 센터)가 합당하여 결성된 네팔 공산당(NCP)이 연방 정부와 7개 주 중 6개 주에서 여당이 되었으나, 이후 다시 분당되었다. 2022년 네팔 총선 이후 제2대 네팔 연방의회는 헝 의회로 구성되었고, 2022년 12월 푸시파 카말 다할이 이끄는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2024년 7월 15일, K.P. 샤르마 올리가 네 번째로 네팔 총리로 취임했으며,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가 이끄는 네팔 의회당과 올리가 이끄는 UML 간의 새로운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양당 대표는 2027년 차기 총선까지 각각 18개월씩 총리직을 번갈아 맡기로 했다.

1930년대 수도에서는 활발한 지하 정치 운동이 일어나 1936년 네팔 쁘라자 빠리샤드가 탄생했으나, 4대 순교자 처형 후 7년 만에 해체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네팔인들이 정당으로 조직되기 시작하여 네팔 의회당과 네팔 공산당이 탄생했다. 공산주의가 자리를 잡으려 하는 동안 네팔 의회당은 1951년 라나 정권 전복에 성공하여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1962년 마헨드라 국왕이 시작한 무정당 판차야트 체제에서는 왕정 충성파들이 번갈아 정부를 이끌었고, 정치 지도자들은 지하에 머물거나 망명하거나 투옥되었다. 1970년대 공산주의 봉기는 초기에 진압되었고, 이는 흩어져 있던 공산주의 파벌들이 연합좌파전선 아래 결국 합쳐지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 민중 운동에서 연합좌파전선과 네팔 의회당이 공동으로 시민 저항을 벌여 판차야트 체제를 전복시킨 후, 전선은 CPN(UML)이 되었고 다당제 민주주의를 채택했으며, 짧은 집권 기간 동안 현재까지 인기 있는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2006년 평화 혁명 이후 마오주의 정당이 주류 정치에 참여하면서 공식 노선으로 다당제 민주주의를 채택했다. 2006년과 2015년 사이의 과도기에는 새로 형성된 민족 중심 민족주의 운동, 특히 마데시 운동의 지속적인 시위가 있었다.
6.1. 정부 구조
네팔은 네팔 헌법에 따라 통치된다. 헌법은 네팔을 다양한 지리적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열망을 가진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 다문화적 특성을 지니며, 네팔의 국가 독립, 영토 보전, 국익 및 번영에 대한 충성의 유대로 헌신하고 단결된 국가로 정의한다. 네팔 정부는 세 개의 부서로 구성된다.
- 행정부: 통치 형태는 다원주의에 기반한 다당제, 경쟁적, 연방 민주 공화국 의회 제도이다. 대통령은 하원에서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의 원내대표를 총리로 임명하며, 총리가 행정권을 행사하는 각료회의를 구성한다.
- 입법부: 네팔의 입법부인 네팔 연방의회는 하원과 상원으로 구성된다. 하원은 혼합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 275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5년이다. 상원은 주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된 59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영구적인 의회이다. 상원 의원의 3분의 1은 2년마다 6년 임기로 선출된다.
- 사법부: 네팔은 대법원장이 이끄는 최고 법원인 네팔 대법원, 각 주에 하나씩 있는 주 차원의 최고 법원인 7개의 고등 법원, 각 현에 하나씩 있는 77개의 지방 법원으로 구성된 단일 3심 독립 사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 지방 자치 의회는 분쟁을 해결하고 소송 가능한 범죄가 아닌 경우 구속력 없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 지방 사법 기관을 소집할 수 있다. 지방 사법 기관의 조치와 절차는 지방 법원의 지도를 받거나 파기될 수 있다.

6.2. 사법 및 치안

네팔 헌법은 국가의 최고 법이며, 이에 위배되는 다른 모든 법률은 위배되는 범위 내에서 자동적으로 무효가 된다. 구체적인 법 규정은 민법 및 형법으로 성문화되어 있으며, 각각 민사소송법 및 형사소송법이 수반된다. 네팔 대법원은 법 해석의 최고 권위 기관이며, 필요한 경우 의회에 새로운 법률을 개정하거나 제정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 사형은 폐지되었다. 네팔은 혼인 강간을 인정하고 낙태권을 지지한다. 그러나 성선택적 낙태 증가로 인해 제약이 도입되었다. 네팔은 제네바 협약, 생물학 무기, 화학 무기 및 핵무기 금지 조약/협약, ILO 기본 협약, 핵확산방지조약, 파리 기후 협정의 서명국이다. 일부 법 규정은 사회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감수성에 따라 차별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네팔 시민과 결혼한 외국인에 대한 성별 기반 차별이 존재한다. 그러나 2017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관할권에서 발생한 외국인과의 동성결혼은 네팔 시민의 부양가족으로서 "비관광 비자" 취득 자격에 대해 현재 네팔에서 인정된다. 이는 법률이 네팔 시민과 결혼한 외국인의 권리에 관한 규정에서 성별 특정 구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부계 혈통은 법적 문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며 요구된다. 많은 법률이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네팔 경찰은 주요 법 집행 기관이다. 네팔 내무부 장관이 임명하고 보고하는 경찰청장의 지휘 하에 있는 독립적인 조직이다. 법과 질서 유지 외에도 네팔 교통 경찰이 수행하는 도로 교통 관리도 담당한다. 별도의 준군사 경찰 조직인 네팔 무장경찰대는 일상적인 보안 문제에서 네팔 경찰과 협력하여 활동하며, 군중 통제, 반란 진압, 대테러 작전 및 무력 사용이 필요할 수 있는 기타 내부 문제에 투입될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네팔 경찰의 중앙수사국은 범죄 수사 및 법의학 분석을 전문으로 한다. 권한 남용 조사위원회는 부패, 뇌물 수수 및 권한 남용 관련 사건을 조사하고 기소하는 독립적인 수사 기관이다. 2016년 인구 10만 명당 2.16명으로 네팔의 고의적 살인율은 평균보다 훨씬 낮지만, 경찰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범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네팔은 2019년 세계 평화 지수(GPI)에서 163개국 중 76위를 차지했다. 네팔의 여권은 지속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약한 여권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7. 대외 관계

네팔은 국방을 외교에 의존한다. 이웃 국가들 사이에서 중립 정책을 유지하며, 역내 다른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세계 무대에서는 비동맹주의 정책을 추구한다. 네팔은 남아시아 지역 협력 연합(SAARC), 국제 연합(UN), 세계무역기구(WTO), 벵골만 다자 기술 경제 협력체(BIMSTEC), 아시아 협력 대화(ACD) 등의 회원국이다. 167개국 및 유럽 연합(EU)과 양자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30개국에 대사관, 6개국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반면 25개국이 네팔에 대사관을 두고 있으며, 80개국 이상이 비상주 외교 공관을 유지하고 있다. 네팔은 1958년 이후 42개 임무에 119,000명 이상의 인력을 파견하여 UN 평화유지 활동에 주요 기여국 중 하나이다. 네팔 국민은 정직, 충성, 용맹함으로 명성이 높아 지난 200년간 인도 및 영국 군대에서 전설적인 구르카 전사로 복무했으며,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인도-파키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이는 네팔이 해당 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으며, 빅토리아 십자 훈장과 파람 비르 차크라 등 최고 군사 훈장을 수상했다.
네팔은 두 거대 이웃 국가인 인도 및 중국과 "균형 잡힌 관계" 정책을 추구하며, 1950년 인도-네팔 평화 우호 조약은 인도와 훨씬 더 긴밀한 관계를 규정한다. 네팔과 인도는 인적 교류가 자유로운 개방 국경, 종교적, 문화적, 혼인 관계를 공유한다. 인도는 네팔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네팔은 모든 석유 및 가스와 여러 필수품을 인도에 의존한다. 네팔인은 인도에서 재산을 소유할 수 있으며, 인도인은 네팔에서 자유롭게 거주하고 일할 수 있다. 인도와 네팔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지만, 영토 분쟁, 경제 문제, 그리고 강대국-소국 관계에 내재된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왔다. 네팔은 1955년 8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1960년 평화 우호 조약을 체결했으며, 이후 관계는 평화 공존 5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네팔은 중국과 인도 간의 분쟁에서 중립을 유지한다. 네팔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지지하며, 네팔 내 티베트 난민들의 반중국 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국 국민은 비자 없이 국경을 넘어 30km까지 여행할 수 있다. 중국은 국경 분쟁이나 심각한 내정 간섭이 없고, 기반 시설 개발 지원 및 비상 상황 시 원조 등으로 네팔에서 호의적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5년 인도가 부과한 경제 봉쇄 당시 중국이 네팔을 도운 이후 호감도가 더욱 높아졌다. 이후 중국은 네팔에 제3국 무역을 위한 항구 접근을 허용했고, 네팔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참여했다.
네팔은 남아시아 지역 협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카트만두에 상설 사무국을 둔 남아시아 지역 협력 연합(SAARC)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네팔은 독립 방글라데시를 최초로 인정한 국가 중 하나이며, 양국은 무역 및 수자원 관리 분야에서 더 큰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항구는 거리가 더 가까워 네팔의 제3국 무역에 대한 인도의 독점을 대체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네팔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최초의 남아시아 국가이며, 양국은 강력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 네팔은 UN에서 팔레스타인 인정을 지지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등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인정한다. 네팔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에는 가장 관대한 공여국 및 개발 파트너인 미국, 영국, 덴마크, 일본, 노르웨이 등이 포함된다.
7.1. 인도와의 관계
네팔은 역사적으로 인도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1950년 체결된 인도-네팔 평화 우호 조약은 양국 관계의 근간을 이루며, 국경 개방, 상호 국민의 자유로운 이동 및 경제 활동 보장 등을 포함한다. 인도는 네팔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주요 원조 공여국이며, 네팔은 석유, 가스를 비롯한 필수품 대부분을 인도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칼라파니 등 국경 문제, 인도의 네팔 내정 간섭 의혹, 2015년과 같은 경제 봉쇄 사태 등으로 인해 때때로 긴장 관계를 보이기도 한다. 네팔 내에서는 인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하며, 이는 네팔의 대중국 관계 강화 노력의 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7.2. 중국과의 관계
네팔은 북쪽으로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국과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를 이어왔다. 1960년 중국-네팔 평화 우호 조약을 체결한 이후, 양국 관계는 평화 공존 5원칙에 기반하여 발전해왔다. 네팔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일관되게 지지하며, 자국 내 티베트 독립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네팔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특히 일대일로 구상 참여를 통해 네팔의 도로, 철도, 수력 발전소 등 기반 시설 건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5년 인도의 대네팔 경제 봉쇄 사태 당시 중국이 연료 등 물자를 공급하면서 네팔 내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국경 문제, 특히 일부 지역에서의 월경 및 구조물 건설 의혹이 제기되면서 양국 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한다. 네팔은 인도와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추구하며 국익을 도모하고 있다.
7.3.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 네팔은 1969년 5월 영사 관계 수립에 합의하고, 1974년 5월 15일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대한민국은 1972년 6월 카트만두에 주카트만두 총영사관을 설치하였고, 외교 관계 수립 후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네팔은 2007년 3월 7일 주한 네팔 대사관을 서울에 개설하였다.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특히, 대한민국은 네팔에 대한 주요 공적개발원조(ODA) 공여국 중 하나로, 수력 발전, 보건, 교육, 농촌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봉사단 파견 및 초청 연수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많은 네팔 근로자들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의 송금은 네팔 경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한국의 등산객들에게 네팔 히말라야는 인기 있는 관광지이며, 양국 간 문화 교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7.4. 기타 국가와의 관계
네팔은 비동맹 중립 외교 정책을 바탕으로 인도, 중국 등 주변 강대국 외에도 다양한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미국, 영국, 일본,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네팔의 주요 개발 협력 파트너 국가들로서, 경제 발전, 사회 기반 시설 구축, 보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원조와 기술 지원을 제공해왔다. 영국과는 역사적으로 구르카 용병을 통해 깊은 인연을 맺어왔으며, 현재도 영국군에 네팔 청년들이 복무하고 있다. 미국은 네팔의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증진을 위한 지원을 지속하고 있으며, 재난 구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일본 역시 네팔의 주요 공여국 중 하나로, 교육, 보건, 농업 분야 등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네팔은 유럽 연합(EU) 및 그 회원국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무역, 투자, 개발 협력 등 다방면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국제 연합(UN)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서 국제 평화 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8. 군사

대통령은 네팔군의 최고 사령관이며, 일상적인 관리는 국방부에서 담당한다. 2018년 군사비 지출은 3억 9,850만 달러로, GDP의 약 1.4%에 해당한다. 거의 전적으로 지상 보병 부대인 네팔 육군의 병력은 10만 명 미만이며, 모집은 모병제로 이루어진다. 항공기는 주로 수송, 순찰, 수색 및 구조에 사용되는 헬리콥터가 소수 있다. 네팔 육군 산하의 군사정보국이 군사 정보 기관 역할을 하며, 국가수사국은 국내외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독립 기관이다. 네팔 육군은 주로 중요 자산의 일상적인 보안, 국립공원의 밀렵 방지 순찰, 반란 진압, 자연재해 시 수색 및 구조 임무를 수행하며, 주요 건설 프로젝트도 맡는다. 군 입대에 차별적인 정책은 없으나, 엘리트 파하리 전사 계급 출신 남성들이 주를 이룬다. 쿠크리는 네팔군의 상징적인 무기이다.
9. 경제

네팔은 최저개발국 중 하나로, 1인당 명목 GDP는 세계 165위, 구매력 평가(PPP) 기준 1인당 GDP는 162위를 기록하고 있다(2019년 IMF 업데이트 기준). 2019년 네팔의 국내총생산(GDP)은 341.86 억 USD였다. 네팔은 2004년 4월 23일부터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다.
1,680만 명의 네팔 노동력은 세계에서 37번째로 큰 규모이다. 1차 산업은 GDP의 27.59%, 2차 산업은 14.6%, 3차 산업은 57.81%를 차지한다. 2018년 네팔의 해외 송금액은 81.00 억 USD로 세계 19위이며 GDP의 28.0%를 차지했는데, 이는 주로 인도, 중동, 동아시아에서 일하는 거의 대부분 비숙련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주요 농산물에는 곡물(보리, 옥수수, 기장, 벼, 밀), 유지 작물, 감자, 콩류, 사탕수수, 황마, 담배, 우유, 물소 고기 등이 있다. 주요 산업에는 관광, 카펫, 섬유, 담배, 시멘트, 벽돌 및 소규모 제분소(쌀, 황마, 설탕, 유지 작물) 등이 있다. 네팔의 국제 무역은 1951년 민주주의 수립과 함께 크게 확장되었으며, 자유화는 1985년에 시작되어 1990년 이후 가속화되었다. 2016/17 회계연도까지 네팔의 대외 무역액은 1.06 조 NPR로, 1990/91년의 456.00 억 NPR에서 23배 증가했다. 네팔 무역의 60% 이상이 인도와 이루어진다. 주요 수출품은 기성복, 카펫, 콩류, 수공예품, 가죽, 약초, 종이 제품으로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주요 수입품은 다양한 완제품 및 반제품, 원자재, 기계 및 장비, 화학 비료, 전기 및 전자 장치, 석유 제품, 금, 기성복 등이다. 2019년 물가 상승률은 4.5%였다. 2019년 7월 외환 보유고는 95.00 억 USD로 7.8개월치 수입에 해당한다.
네팔은 빈곤 감소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 국제 빈곤선(1인당 하루 1.9 USD) 이하 인구를 2010년 15%에서 2018년 9.3%로 낮추었으나, 인구의 거의 32%가 1인당 하루 1.9 USD에서 3.2 USD 사이로 생활하는 등 취약성은 여전히 매우 높다. 네팔은 영양, 아동 사망률, 전기, 바닥 개선 및 자산과 같은 분야에서 개선을 이루었다. 현재 추세라면 네팔은 20년 안에 빈곤을 퇴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 부문은 특히 취약한데, 경작지의 28%만이 관개 시설을 갖추고 있어 몬순 강우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농업은 노동력의 76%를 고용하고, 서비스업은 18%, 제조업 및 수공예 산업은 6%를 차지한다. 민간 투자, 소비, 관광 및 농업이 경제 성장의 주요 기여 요인이다.
정부 예산은 약 137.10 억 USD(2019/20 회계연도)이며, 대부분 외국 원조로 충당되는 사회 기반 시설 개발 예산 지출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네팔은 영국, 인도, 일본, 미국, EU, 중국,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으로부터 외국 원조를 받는다. 네팔 루피는 수년간 인도 루피에 1.6의 환율로 고정되어 있다. 1인당 소득은 1004 USD이다. 네팔 국민 간의 부의 분배는 많은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과 일치한다: 상위 10% 가구가 국가 자산의 39.1%를 통제하고 하위 10%는 2.6%만 통제한다. 유럽 연합(EU)(46.13%), 미국(17.4%), 독일(7.1%)이 주요 수출 파트너이며, 주로 네팔 기성복(RMG)을 구매한다. 네팔의 수입 파트너에는 인도(47.5%), 아랍에미리트(11.2%), 중국(10.7%), 사우디아라비아(4.9%), 싱가포르(4%)가 포함된다.
내륙의 험준한 지리, 부족한 천연자원, 열악한 사회 기반 시설 외에도 1950년 이후의 비효율적인 정부와 장기간의 내전 또한 국가의 경제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채무 노예제는 심지어 채무자의 자녀까지 포함하며 서부 구릉지와 테라이 지역에서 지속적인 사회 문제로 남아 있으며, 2016년 세계 노예 지수(The Global Slavery Index)에 따르면 약 234,600명 또는 인구의 0.82%가 노예 상태인 것으로 간주된다.
2022년, 네팔은 외화 보유고 감소 후 비필수품 수입을 제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관광 지출과 해외 네팔인 노동자들의 송금이 감소했고, 이는 결국 국가 외화 보유고를 낮추었다.
9.1. 산업 구조
네팔의 산업 구조는 전통적으로 농업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몇 년간 서비스업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8/19년 기준, 1차 산업(농업, 임업, 어업)은 국내총생산(GDP)의 27.59%를 차지하며, 여전히 많은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2차 산업(제조업, 건설업, 광업)은 GDP의 14.6%를 차지하며, 주로 소규모 경공업과 건설업이 중심이다. 3차 산업(서비스업)은 GDP의 57.81%를 차지하며, 관광업, 도소매업, 운수업, 금융업, 통신업 등이 포함된다. 노동력 분포를 보면, 농업이 전체 노동력의 약 76%를 고용하고 있으며, 서비스업이 18%, 제조업 및 수공예 산업이 6%를 차지한다. 이러한 산업 구조는 네팔 경제가 농업 중심에서 점차 서비스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농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산업 다각화와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9.2. 주요 산업
네팔의 주요 산업은 전통적으로 농업이며, 쌀, 옥수수, 밀, 사탕수수, 감자 등이 주요 작물이다. 특히 테라이 평원 지역은 곡창지대로서 농업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관광업 또한 네팔 경제의 핵심 산업 중 하나로, 히말라야 산맥의 장엄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전 세계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등산, 트레킹, 래프팅 등 다양한 야외 활동과 함께 카트만두 계곡의 고대 사원과 왕궁, 룸비니의 불교 성지 등이 주요 관광 자원이다. 섬유 산업과 수공예품 산업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특히 카펫, 파슈미나, 전통 공예품 등은 주요 수출품목이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와 수력 발전 분야도 성장 잠재력이 높은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주요 산업들은 네팔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지만, 인프라 부족, 기술력 부족, 정치적 불안정 등 여러 가지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9.3. 대외 무역 및 투자
네팔의 대외 무역은 주로 인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전체 교역량의 60% 이상을 인도가 차지한다. 주요 수출품목으로는 기성복, 카펫, 콩류, 수공예품, 가죽 제품, 약초, 종이 제품 등이 있으며, 이들 품목이 전체 수출의 약 90%를 차지한다. 주요 수입품목은 다양한 완제품 및 반제품, 원자재, 기계류 및 장비, 화학 비료, 전기전자 제품, 석유 제품, 금, 기성복 등이다. 네팔의 주요 수출 대상국은 유럽 연합(EU)(주로 독일), 미국 등이며, 이들 국가는 주로 네팔의 기성복을 구매한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인도 외에 아랍에미리트,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등이다.
네팔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정치적 불안정, 열악한 사회 기반 시설, 복잡한 행정 절차 등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수력 발전, 관광업, 농업 분야에서의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참여를 통해 인프라 투자 유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네팔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 국제 무역 규범을 준수하며 교역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9.4. 관광

관광업은 네팔에서 가장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로, 백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전체 GDP의 7.9%에 기여한다. 2018년에는 육로로 도착하는 인도 관광객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외국인 방문객 수가 백만 명을 넘어섰다. 네팔의 남아시아 방문객 점유율은 약 6%이며, 평균 지출액은 훨씬 적어 네팔은 전체 수입의 1.7%를 차지한다. 주요 관광지로는 포카라,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룸비니,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에베레스트 산 소재지), 카트만두 계곡의 7개 유적지(집합적으로 하나로 등재), 치트완 국립공원이 있다. 네팔 등산 수입의 대부분은 네팔 쪽에서 접근이 더 용이한 에베레스트 산에서 발생한다.
네팔은 1951년 서양인에게 공식적으로 개방되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 히피 트레일의 인기 있는 목적지가 되었다. 1990년대 내전으로 중단되었던 이 산업은 이후 회복되었지만, 고급 관광을 위한 적절한 시설 부족(이른바 "인프라 병목 현상"), 네팔 항공이 직면한 문제 증가, 제대로 개발되고 마케팅된 소수의 관광지로 인해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화 및 생태 관광객이 원주민 가정에 유료 손님으로 머무는 홈스테이 관광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9.5. 해외 노동 및 송금

실업률과 불완전 고용률이 노동 가능 인구의 절반을 초과하여, 수백만 명이 주로 인도, 걸프 지역, 동아시아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다. 대부분 비숙련, 저학력이며 사채업자에게 빚을 진 이 노동자들은 인력 회사에 의해 사기를 당하고, 사기 계약 하에 착취적인 고용주나 전쟁 지역으로 보내진다. 그들은 여권을 압수당하고, 고용주가 휴가를 주거나 계약을 종료할 때 돌려받는다. 대부분은 최저 임금을 받지 못하며, 많은 이들이 임금 전체 또는 일부를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많은 네팔인들이 극도로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며, 평균적으로 매일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다. 여성에 대한 제한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국외로 나가기 위해 인신매매범에게 의존하며, 폭력과 학대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많은 네팔인들이 노예와 같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네팔은 발이 묶인 노동자들을 구조하고, 사망한 노동자들의 빚진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며, 외국에서 체포된 사람들의 법적 비용으로 수십억 루피를 지출하고 있다. 수백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기업가적 기술 부족으로 인해 송금액은 주로 부동산과 소비에 사용된다.
9.6. 빈곤과 개발 과제
네팔은 상당한 빈곤 감소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의 빈곤과 소득 불균형 문제에 직면해 있다. 국제 빈곤선(1인당 하루 1.9 USD) 이하 인구 비율은 2010년 15%에서 2018년 9.3%로 감소했으나, 인구의 약 32%가 하루 1.9 USD에서 3.2 USD 사이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등 취약 계층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농업 부문은 몬순 강우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관개 시설이 부족하여 특히 취약하다.
주요 개발 과제로는 만성적인 전력 부족, 열악한 교통 및 통신 인프라, 낮은 교육 수준 및 의료 서비스 접근성, 높은 실업률 등이 있다. 특히 지리적 제약으로 인한 고립, 과거 장기간의 정치적 불안정 및 내전의 후유증도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외국 원조에 상당 부분 의존하며 사회 기반 시설 개발 예산을 집행하고 있으나, 종종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 다각화, 인적 자원 개발, 거버넌스 개선, 그리고 기후 변화 대응 등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네팔 정부는 2022년까지 최저개발국(LDC) 지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개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0. 사회 기반 시설
네팔은 산악 지형과 내륙국이라는 지리적 제약으로 인해 사회 기반 시설 발달이 더딘 편이다. 에너지, 교통, 통신 등 주요 분야에서 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크며, 전반적인 인프라 수준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 원조와 자체 예산을 투입하여 인프라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재원 부족, 기술력 부족, 정치적 불안정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1. 에너지

네팔의 에너지 대부분은 바이오매스(80%)와 수입 화석 연료(16%)에서 나온다. 최종 에너지 소비의 대부분은 주거 부문(84%)이 차지하고, 그 다음이 교통(7%), 산업(6%) 순이며, 교통 및 산업 부문은 최근 몇 년간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일부 갈탄 매장지를 제외하고 네팔에는 알려진 석유, 가스 또는 석탄 매장량이 없다. 모든 상업용 화석 연료(주로 석유, LPG, 석탄)는 수입되며, 국가 총 수출 수입의 129%를 지출한다. 에너지 수요의 약 1%만이 전기로 충족된다. 네팔 강의 연중 흐르는 특성과 국가 지형의 가파른 경사는 수력 발전 프로젝트 개발에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한다. 추정치에 따르면 네팔의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수력 발전 잠재력은 약 42,000 MW이다. 네팔은 약 1,100 MW만 개발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유수식 발전소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실제 발전량은 건조한 겨울철에 훨씬 낮으며, 이 시기에는 최대 수요가 1,200 MW에 달할 수 있어 네팔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인도에서 최대 650 MW를 수입해야 한다. 주요 수력 발전 프로젝트는 지연과 차질을 겪고 있다. 네팔의 전기 보급률(76%)은 역내 다른 국가들과 비슷하지만 농촌(72%)과 도시(97%) 지역 간에 상당한 격차가 있다. 전력 부문의 상황은 높은 요금, 높은 시스템 손실, 높은 발전 비용, 높은 간접비, 과잉 인력, 낮은 국내 수요로 인해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10.2. 교통
네팔은 세계의 주요 육상, 항공, 해상 운송로에서 고립되어 있지만, 국내에서는 항공 운송이 비교적 나은 상태로, 47개의 공항이 있으며 그중 11개는 포장된 활주로를 갖추고 있다. 항공편은 빈번하며 상당한 교통량을 지원한다. 국토 북부 3분의 2를 차지하는 구릉 및 산악 지형은 도로 및 기타 기반 시설 건설을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게 만들었다. 2016년 기준으로 포장도로는 1.19 만 km가 조금 넘고, 비포장도로는 1.61 만 km, 철도는 남부에 단 59 km만 있었다. 2018년 기준으로 모든 현청 소재지(시미코트 제외)가 도로망에 연결되었다. 대부분의 농촌 도로는 우기에는 운행이 불가능하며, 국도조차 정기적으로 운행이 불가능해진다. 네팔은 도로망 건설, 유지 보수 및 확장을 위해 중국, 인도, 일본과 같은 국가의 원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카트만두행 물품의 유일한 실질적인 항구는 인도의 콜카타이다. 국영 항공사인 네팔 항공은 경영 부실과 부패로 인해 상태가 좋지 않으며 EU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도로 시스템 개발의 열악한 상태는 시장, 학교, 보건소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네팔은 아시아에서 도로 기반 시설이 가장 열악하다.
10.3. 통신
네팔 통신청(Nepal Telecommunications Authority)의 2019년 8월 MIS 보고서에 따르면, 음성 전화 가입률은 유선 전화의 경우 총인구의 2.70%, 이동 전화의 경우 138.59%였다. 전체 음성 전화의 98%가 이동 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약 14.52%가 유선 광대역에 접속하고 있었으며, 추가로 52.71%가 모바일 데이터 가입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 중 약 1,500만 명이 3G 이상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동 음성 전화 및 광대역 시장은 국영 네팔 텔레콤(55%)과 민간 다국적 기업 엔셀(40%) 등 두 통신 회사가 장악하고 있었다. 유선 광대역이 차지하는 21%의 시장 점유율 중 약 25%는 다시 네팔 텔레콤이 차지했고, 나머지는 민간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가 차지했다. 농촌과 도시 지역 간 보급률에 상당한 격차가 있지만, 이동 서비스는 국토 면적의 90%를 차지하는 75개 현에 도달했으며, 광대역 접속은 2020년까지 인구의 9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10.4. 대중 매체
2019년 기준으로, 국영 방송국 3곳과 국영 및 지역 라디오 방송국이 운영되고 있다. 민영 TV 채널 117개와 FM 라디오 방송국 736개가 운영 허가를 받았으며, 이 중 최소 314개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라디오 보유 가구 비율은 50.82%, 텔레비전은 36.45%, 케이블 TV는 19.33%, 컴퓨터는 7.28%였다. 네팔 언론 위원회 분류에 따르면, 2017년 현재 독창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833개 간행물 중 10개의 전국 일간지와 주간지가 A+ 등급을 받았다. 2019년 국경 없는 기자회는 네팔의 언론 자유 순위를 세계 106위로 평가했다.
11. 인구

네팔 시민은 네팔인 또는 네팔리라고 불린다. 네팔인은 인도, 티베트, 북부 미얀마 및 중국 윈난성에서 아삼주를 경유한 세 가지 주요 이주 흐름의 후손이다. 초기 거주민 중에는 동부 지역의 키라트족, 카트만두 계곡의 네와르족, 테라이 평원의 토착 타루족, 극서부 구릉지의 카스 파하리족이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상당수 인구가 테라이로 이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네팔인은 여전히 중앙 고지대에 거주하며 북부 산악 지역은 인구가 희박하다.
네팔은 125개의 독특한 민족 집단이 123개의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며,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외에도 다수의 토착 및 민속 종교를 따르는 다문화 다민족 국가이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네팔의 인구는 2,650만 명으로, 1950년 900만 명에서 거의 세 배 증가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평균 가구 규모는 5.44명에서 4.9명으로 감소했다. 이 조사에서는 또한 약 190만 명의 부재 인구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1년보다 백만 명 이상 많은 수치이다. 이들 대부분은 해외에 고용된 남성 노동자이다. 이는 2001년 99.8이었던 성비가 94.2로 하락한 것과 관련이 있다. 2001년과 2011년 사이의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1.35%로, 1961년과 2001년 사이의 평균 2.25%에 비해 낮아졌으며, 이 또한 부재 인구 때문으로 여겨진다.
네팔은 세계에서 도시화가 가장 덜 된 10개국 중 하나이자, 도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10개국 중 하나이다. 2014년 기준으로 인구의 약 18.3%가 도시 지역에 거주했다. 도시화율은 테라이, 내부 테라이의 둔 계곡, 중간 구릉지의 계곡에서 높지만, 고지 히말라야에서는 낮다. 마찬가지로, 중부 및 동부 네팔의 도시화율은 서부보다 높다. 수도인 카트만두는 "사원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 최대 도시이자 문화 및 경제의 중심지이다. 네팔의 다른 대도시로는 포카라, 비랏나가르, 랄릿푸르, 바랏푸르, 비르간지, 다란, 헤타우다, 네팔군지 등이 있다. 교통 체증, 오염, 식수 부족은 급성장하는 도시, 특히 카트만두 계곡이 직면한 주요 문제 중 일부이다.
11.1. 민족과 카스트

네팔은 125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 집단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주요 민족 집단으로는 체트리족(16.6%), 바훈족(힐 브라만, 12.2%), 마가르족(7.1%), 타루족(6.6%), 타망족(5.8%), 네와르족(5.0%), 카미족(4.8%), 네팔 무슬림(4.4%), 야다브족(4.0%), 라이족(2.3%) 등이 있다 (2011년 인구 조사 기준). 이 외에도 구룽족, 다마이족, 리부족, 셰르파족 등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체트리, 바훈, 카미 등은 전통적인 카스트 제도의 일부로, 이들을 통칭하여 파르바테 힌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네팔 국내에서는 이 명칭이 널리 사용되지는 않는다. 이들은 인도-이란어파의 네팔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국민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최대 지배적인 민족이다.
카스트 제도는 네팔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습과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카스트는 직업, 사회적 지위, 결혼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달리트(불가촉천민) 계층은 여전히 심각한 차별과 배제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는 카스트 차별 철폐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실질적인 변화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민족 집단 간의 조화와 카스트 제도의 사회적 영향 극복은 네팔 사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11.2. 언어

네팔은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는 다언어 국가로, 인도아리아어군, 중국티베트어족, 그리고 여러 고립어에서 유래된 언어들이 공존한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네팔어가 전체 인구의 44.6%가 사용하는 제1언어이며, 공용어이자 다양한 민족 집단 간의 링구아 프랑카 역할을 한다. 그 외 주요 언어로는 마이틸리어(11.7%), 보즈푸리어(6.0%), 타루어(5.8%), 타망어(5.1%), 네와르어(3.2%), 바지카어(3.0%), 마가르어(3.0%), 도텔리어(3.0%), 우르두어(2.6%), 아와디 (1.89%), 순와르어 등이 있다. 네팔에는 최소 4개의 토착 수화도 존재한다.
산스크리트어의 후손인 네팔어는 데바나가리 문자로 표기된다. 남부 테라이 지역에서는 마이틸리어, 아와디어, 보즈푸리어와 같은 지역 언어가 사용되며, 네팔 무슬림 사이에서는 우르두어가 흔히 사용된다. 고지 히말라야 지역과 그 북쪽에서는 티베트어의 다양한 변종이 사용되며, 종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표준 문어체 티베트어가 널리 이해된다. 테라이와 구릉지대의 지역 방언들은 대부분 문자화되지 않았으나, 많은 언어를 데바나가리 문자나 로마자로 표기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네팔 헌법은 모든 모국어를 국어로 인정하고 있으며, 각 주는 하나 이상의 추가 공용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1.3. 종교
네팔은 2012년 헌법(제1부 제4조)에 의해 선포된 세속 국가로, 여기서 세속주의는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종교, 문화의 보호와 함께 종교적, 문화적 자유를 의미한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네팔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는 힌두교(인구의 81.3%)이며, 그 다음은 불교(9%)였다. 나머지는 이슬람교(4.4%), 키란트교(3.1%), 기독교(1.4%), 프라크리티 또는 자연 숭배(0.5%) 순이었다. 인구 비율로 볼 때, 네팔은 세계에서 힌두교도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네팔은 최근까지 공식적으로 힌두 왕국이었으며, 시바는 국가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역사적으로 많은 정부 정책이 소수 종교를 무시하거나 소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네팔 사회는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 간의 종교적 관용과 조화를 누리고 있으며, 종교적 동기에 의한 폭력 사건은 극히 드물다. 네팔 헌법은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을 다른 종교로 개종시킬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네팔은 또한 2017년에 더 엄격한 개종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네팔은 인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힌두교도를 보유하고 있다.
11.4. 교육
네팔은 1951년 식자율 5%, 약 300개 학교에 1만 명의 학생이 등록된 상태로 현대에 접어들었다. 2017년까지 35,601개 학교에 7백만 명 이상의 학생이 등록되었다. 전체 식자율(5세 이상 인구 대상)은 2001년 54.1%에서 2011년 65.9%로 증가했다. 순 초등 취학률은 2017년까지 97%에 도달했으나, 중등 교육(9-12학년) 취학률은 60% 미만이었고, 고등 교육 취학률은 약 12%였다. 전체 식자율에는 상당한 성별 격차가 있지만, 모든 교육 단계에서 여학생 취학률이 남학생을 앞질렀다. 네팔에는 11개의 대학과 4개의 독립 과학 아카데미가 있다. 네팔은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109위를 차지했다.
적절한 기반 시설과 교재 부족, 높은 학생 대 교사 비율, 학교 운영 위원회의 정치화, 학생과 교사 모두의 당파적 노동조합화 등이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헌법에는 무상 기초 교육이 보장되어 있지만, 효과적인 시행을 위한 자금 지원이 부족하다. 정부는 여학생 및 장애 학생, 순교자 자녀, 소외 계층 및 빈곤층 자녀를 위한 장학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수만 명의 네팔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며, 그중 절반은 돌아오지 않는다.
11.5. 보건
네팔의 보건 의료 서비스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두에서 제공된다. 2017년 기준 출생 시 기대 수명은 71세로 추정되며, 이는 세계 153위이다. 이는 1990년대 54세, 1950년 35세에서 크게 향상된 수치이다. 전체 사망의 3분의 2는 비전염성 질환으로 인한 것이며, 심장 질환이 주요 사망 원인이다. 앉아서 생활하는 방식, 불균형한 식단, 담배 및 알코올 소비가 비전염성 질환 증가에 기여한 반면, 많은 사람들이 교육, 인식 부족 및 의료 서비스 접근성 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위생과 영양 부족으로 인해 전염성 및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네팔은 모자 보건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 어린이의 95%가 요오드 첨가 소금을 섭취하고 있으며, 6-59개월 어린이의 86%가 비타민 A 예방 접종을 받고 있다. 발육 부진, 저체중, 소모증이 크게 감소했지만, 5세 미만 어린이의 영양실조는 43%로 매우 높다. 여성과 어린이의 빈혈은 2011년과 2016년 사이에 각각 41%와 53%로 증가했다. 저체중 출생은 27%이고 모유 수유는 65%이다. 네팔은 모성 사망률을 1990년 901명에서 229명으로 낮추었으며, 영아 사망률은 1990년 139.8명에서 출생아 1,000명당 32.2명으로 감소했다. 피임 보급률은 53%이지만, 인식 부족과 쉬운 접근성 부족으로 인해 농촌과 도시 지역 간의 격차가 크다.
보건 분야의 발전은 비정부기구(NGO) 및 국제비정부기구(INGO)와의 협력을 통한 강력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공 보건 센터는 72가지 필수 의약품을 무료로 제공한다. 또한 2016년에 시작된 공공 건강 보험 계획은 연간 2500 NPR의 보험료로 한 가족 5명에게 최대 5.00 만 NPR의 건강 치료를 보장하며,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 센터에서의 4회 산전 방문 및 병원 분만에 대한 지원금 지급을 통해 네팔은 가정 분만율을 2006년 81%에서 2016년 41%로 낮추었다. 학교 급식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의 교육 및 영양 지표를 개선했다. 야심 찬 "1가구 1화장실" 프로그램에 따른 화장실 건설 보조금으로 화장실 보급률은 1990년 6%에서 2019년 99%에 도달했다.
11.6. 이민자와 난민
네팔은 이민자와 난민을 받아들이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티베트인과 부탄인이 네팔 난민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티베트 난민은 1959년부터 도착하기 시작했으며, 매년 더 많은 사람들이 네팔로 넘어오고 있다. 부탄 로창파 난민은 1980년대부터 도착하기 시작하여 2000년대에는 11만 명 이상에 달했다. 그들 대부분은 제3국에 재정착했다. 2018년 말, 네팔에는 총 20,800명의 확인된 난민이 있었으며, 그중 64%가 티베트인, 31%가 부탄인이었다. 인접 국가, 아프리카, 중동에서 박해나 전쟁을 피해 온 경제 이민자 및 난민들은 난민 캠프 대신 도시에 아파트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도시 난민"이라고 불리며,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그들의 제3국 재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2018/19년에는 약 2,000명의 이민자(그중 절반은 중국인)가 노동 허가를 신청했다. 정부는 인도 이민자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한데, 이는 그들이 네팔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데 허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네팔 내 재외 인도인 수를 6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12. 문화
네팔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며 독특하고 풍부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전통 사회 구조, 관습, 예술, 음식, 스포츠 등 여러 측면에서 고유한 특징을 나타낸다. 지리적으로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위치하여 양쪽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발전시켜 왔다.
12.1. 사회와 관습

전통적인 네팔 사회는 때때로 사회 계층 구조로 정의된다. 네팔 카스트 제도는 남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많은 사회 계층화와 사회적 제약을 구현한다. 사회 계급은 종종 자티 또는 "카스트"라고 불리는 백 개 이상의 동족혼 세습 집단에 의해 정의된다. 네팔은 1963년에 불가촉천민 제도를 불법으로 선언했으며, 이후 다른 차별 금지법과 사회 복지 사업을 제정했다. 도시 네팔의 직장과 교육 기관에서는 카스트 관련 신분 확인이 거의 중요성을 잃었다.
가족 가치는 네팔 전통에서 중요하며,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가부장적 대가족이 네팔의 일반적인 형태였지만, 도시 지역에서는 핵가족이 흔해지고 있다. 압도적 다수의 네팔인은 부모나 다른 가족 연장자에 의해 중매결혼을 하며, 본인의 동의 여부와는 관계없을 수 있다. 결혼은 평생 지속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혼율은 극히 낮아 천 건의 결혼 중 한 건 미만이 이혼으로 끝난다. 조혼은 특히 농촌 지역에서 흔하며, 많은 여성이 18세 이전에 결혼한다.

많은 네팔 축제는 종교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축제로는 가디마이 축제, 다사인, 티하르, 티즈, 차트, 마기, 사켈라, 홀리, 네팔 새해 등이 있다.
가디마이 축제는 가디마이 사원에서 5년마다 열리는 힌두교 축제로, 세계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축제로 묘사된다. 이 행사에는 가디마이 여신을 달래기 위해 물소, 염소, 양, 닭, 오리, 비둘기, 돼지, 쥐, 흰쥐 등 동물과 새를 대규모로 도살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비평가들은 이 축제 의식이 야만적이고 비위생적이며 낭비적이라고 말하지만, 힌두교 신자들은 깊은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사인 축제는 네팔의 주요 힌두교 종교 축제이다. 신선한 피를 바치면 두르가 여신을 달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축제 기간 동안 수천 마리의 물소, 염소, 양, 돼지, 닭, 오리가 도살된다. 수많은 동물 복지 운동가들이 동물 학대와 대량 학살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네팔 정부는 동물 희생 장면 촬영을 금지하려고 시도했다. 축제를 목격한 한 동물 복지 단체는 "우리는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공격을 받았다. 장비와 카메라를 빼앗기고 산산조각 났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축제 참가자들이 공공장소에서 배변하는 것을 보았고 인간의 배설물 사이를 걸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우, 마체테를 든 네팔 사람들이 거리에서 동물 복지 운동가들을 쫓아갔다.
21세기 네팔에서는 여전히 마녀사냥이 발생하고 있다. 희생자는 대개 가난한 노인 여성, 자유분방한 젊은 여성, 과부, 하층 카스트 여성 또는 이들의 조합이다. 가해자는 대개 이웃이나 같은 마을 주민이며, 때로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다. 정치인, 교사, 경찰관, 군 장교 및 기타 존경받는 지역 사회 구성원들도 다양한 사건에 연루된 바 있다. 처형은 화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많은 희생자가 고문과 폭행으로 인한 부상으로 사망한다. 살인이 아닌 마녀사냥에는 보통 구타와 배설물 강제 섭취가 포함된다.
12.2. 국가 상징
네팔의 국장은 눈 덮인 히말라야, 숲이 우거진 언덕, 비옥한 테라이 평원을 묘사하며, 진달래 화환으로 둘러싸여 있고, 꼭대기에는 국기가, 전경에는 그 아래 네팔의 평면 흰색 지도와 성 평등을 의미하는 남성과 여성의 오른손이 맞잡고 있다. 하단에는 네팔 민속에서 라마에게 귀속되는 애국적인 산스크리트어 인용문인 국가 표어가 데바나가리 문자로 쓰여 있다: "어머니와 조국은 천국보다 위대하다".
네팔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직사각형이 아닌 국기이다. 헌법에는 이중 페넌트 깃발의 기하학적 구성에 대한 지침이 포함되어 있다. 공식 설명에 따르면, 국기의 진홍색은 전쟁에서의 승리 또는 용기를 상징하며, 국화인 만병초의 색이기도 하다. 국기의 파란색 테두리는 네팔 국민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의미한다. 국기의 달은 네팔인의 평화롭고 차분한 성격을 상징하며, 태양은 네팔 전사들의 공격성을 나타낸다.
대통령은 국가 통합의 상징이다. 순교자들은 애국심의 상징이다. 영국-네팔 전쟁의 지휘관들인 아마르 싱 타파, 박티 타파, 발바드라 쿤와르는 전쟁 영웅으로 간주된다. 네팔의 위신에 탁월한 공헌을 한 네팔 역사 속 16명에게 "국가 영웅"이라는 특별 칭호가 수여되었다. 현대 네팔의 창시자인 프리트비 나라얀 샤는 높은 존경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국부"로 여겨진다.
네팔의 국수(國獸)는 소, 국조(國鳥)는 히말라야모날, 국화(國花)는 만병초, 국가 스포츠는 배구이다. 국가 색은 진홍색이다.
12.3. 예술과 건축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건축 사례는 네팔 남서부 카필라바스투 안팎의 초기 불교 건축물인 스투파와 기원전 250년경 아소카왕이 카트만두 계곡에 건설한 스투파들이다. 네팔과 독점적으로 관련된 특징적인 건축은 늦어도 리차비 시대부터 카트만두 계곡의 네와르 장인들에 의해 개발되고 정제되었다. 아마도 서기 650년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당나라 중국 여행서는 당시 네팔 건축이 주로 목재로 지어졌으며 예술성이 풍부하고 목조 및 금속 조각도 훌륭하다고 묘사한다. 궁궐 중앙에 있는 웅장한 7층탑을 묘사하는데, 구리 기와 지붕, 난간, 창살, 기둥, 들보가 정교하고 귀중한 돌로 장식되어 있으며, 바닥 네 귀퉁이에는 네 개의 황금 마카라 조각상이 입에서 분수처럼 물을 뿜어내고 있는데, 이는 탑 꼭대기의 홈통에 연결된 구리 파이프로 공급된다. 후대의 중국 연대기에는 네팔 왕궁이 여러 지붕을 가진 거대한 구조물로 묘사되어 있어, 중국인들은 아직 탑 건축에 익숙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탑 건축은 현재 중국 건축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전형적인 탑 사원은 목재로 지어지며, 각 부분은 기하학적 무늬나 신, 여신, 신화 속 존재 및 짐승의 이미지로 정교하게 조각된다. 지붕은 대개 점토 기와로 덮여 있고 때로는 금도금되며, 맨 위 지붕에 이를 때까지 점차 비율이 줄어들고, 맨 위 지붕 자체는 황금 장식으로 꾸며진다. 기초는 대개 정교하게 조각된 돌로 된 직사각형 테라스로 구성되며, 입구는 대개 전통적인 인물 석상으로 보호된다. 신과 짐승의 조각, 문과 창문의 장식, 건물 꼭대기 장식, 그리고 일상용품에서 볼 수 있는 청동 및 구리 공예는 동등한 화려함을 자랑한다. 네팔 회화 전통 중 가장 잘 발달된 것은 티베트 불교의 탕카 또는 파우바 회화 전통으로, 불교 승려와 네와르 장인들에 의해 네팔에서 실천된다. 서기 4세기에 지어진 창구 나라얀 사원은 아마도 네팔 목조 공예의 최고봉일 것이며,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의 더르바르 광장은 2천 년에 걸쳐 정제된 네팔의 목조, 금속, 석조 공예의 정점이다.
외부 세계를 한 방향으로만 볼 수 있게 하는 "앙키지얄" 창문은 고대와 현대의 공공 및 사적 건물 구조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네팔 목조 공예의 한 예이다. 많은 문화권에서는 집 벽에 규칙적인 무늬, 신과 짐승의 형상, 종교적 상징을 그리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벽을 평범하게 칠하며, 종종 점토나 체르노젬을 노란 흙이나 석회암과 대조시킨다. 종교 건물과 주거 건물의 지붕은 태양과 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상당히 돌출되어 있다. 주거 건물의 목재는 종교 건물의 목재와 마찬가지로 정교하게 조각된다.
네팔의 문화유산 약탈은 이를 막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네팔 문화유산 복원 캠페인 자원봉사자들이 유물 회수를 돕고 있다. 2022년 바라캇 갤러리 런던 지점은 카트만두 인근 성지에서 가져온 16세기 목조 토라나(의례용 문)와 17세기 석조 무릎 꿇은 신자상을 반환했다. 2023년에는 시카고 미술 연구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댈러스 미술관, 루빈 미술관 등에서 약탈된 것으로 의심되는 네팔 유물이 발견되었고, 크리스티 경매, 본햄스 경매 등 경매장에서도 등장했다.
12.4. 문학과 공연 예술

네팔 문학은 현대 왕국으로 통일되기 전까지 남아시아 나머지 지역의 문학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교육받고 때로는 그곳에 기반을 둔 브라만 사제들이 산스크리트어로 쓴 문학 작품에는 종교 문헌과 왕, 신, 악마가 등장하는 기타 환상 문학이 포함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네팔어 문헌은 13세기의 것이지만, 금석문 자료를 제외하고 17세기 이전의 네팔어 문학은 발견되지 않았다. 네와르 문학은 거의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팔 문학의 현대사는 바누박타 아차리아(1814-1868)와 함께 시작되는데, 그는 처음으로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언어인 네팔어로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작품을 창작했으며, 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고대 힌두 서사시를 번역한 바누박타 라마야나이다. 19세기 말까지 모티람 바타는 아차리아의 작품을 인쇄본으로 출판했으며, 그의 노력을 통해 네팔어 문학을 독자적으로 대중화하고 현대로 이끌었다. 20세기 중반까지 네팔 문학은 더 이상 힌두 문학 전통에 국한되지 않았다. 서양 문학 전통의 영향을 받은 이 시기의 작가들은 동시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문학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많은 작가들은 진정한 네팔 시로 네팔 시 전통을 계속 풍요롭게 했다. 네와르 문학 또한 최고의 문학 전통으로 부상했다. 1951년 민주주의 도래 이후 네팔 문학은 번성했다. 다른 많은 언어로 된 문학 작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네팔 문학은 계속 현대화되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내전 이후 네팔의 경험과 세계 문학 전통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마루니, 라케, 사켈라, 카우다, 타망 셀로 등은 네팔 구릉 지역의 전통 음악과 춤의 예이다. 네팔 영화 산업은 "콜리우드"로 알려져 있다. 네팔 아카데미는 1957년에 설립된 네팔 예술 문화 진흥을 위한 최고의 기관이다.
12.5. 전통 의상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네팔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 가장 널리 착용했던 전통 의상은 드레이프 형태였다. 여성의 경우, 이는 결국 사리 형태로 발전했는데, 이는 유명한 6야드 길이의 단일 긴 천으로 하체를 덮는 너비였다. 사리는 허리에 묶고 한쪽 끝을 매듭지어 하체를 감싼 다음 어깨 위로 넘긴다. 더 현대적인 형태로는 특히 테라이 지역에서 머리를 덮거나 때로는 얼굴을 가리는 베일로 사용되었다. 속치마 또는 페티코트와 결합되어 더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허리띠에 넣어 입었다. 블라우스 또는 촐로와 함께 착용하는데, 이는 주요 상체 의복 역할을 하며, 사리 끝부분은 어깨를 넘어 상체 윤곽을 가리고 배꼽 부분을 덮는다. 촐로-사리는 공식 행사, 관공서 환경, 축제 모임에서 선택되는 복장이 되었다. 더 전통적인 형태로는 전통 복장의 일부로서, 또는 집안일이나 노동을 할 때 일상생활에서 착용하는 형태로, 보통 사리보다 길이와 너비가 짧은 파리야 또는 군뉴 형태로 나타나며, 하체를 모두 감싼다.
남성의 경우, 이와 유사하지만 더 짧은 길이의 천인 도티가 하체 의복 역할을 했다. 이 역시 허리에 묶고 감싼다. 아리아인들 사이에서는 다리 각각을 한 번 감싼 후 다리 사이로 올려 등 뒤에서 넣어 입기도 한다. 도티 또는 그 변형은 보통 랑가우티 위에 착용하며, 타루족, 구룽족, 마가르족뿐만 아니라 마데시족 등 여러 민족의 전통 의상에서 하체 의복을 구성한다. 바느질이나 재단 없이 만들어지는 다른 형태의 전통 의상으로는 파투카(남녀 모두 허리띠로 허리에 단단히 감는 긴 천으로, 대부분의 전통 네팔 의상의 일부이며, 남성이 착용할 때는 보통 쿠크리를 꽂음), 파치야우라나 마제트로와 같은 스카프, 네와르의 '가'와 티베트의 카타와 같은 숄, 굼토(결혼식 베일), 그리고 전통의 일부로 머리에 쓰거나 태양이나 추위를 막기 위해 머리에 두르는 다양한 종류의 터번(페타, 파그리 또는 시르파우라고 불림)이 있다.
서기 1천년 초까지 남아시아 사람들의 평상복은 완전히 꿰매지 않은 형태였다. 서기 48년경 중앙아시아에서 쿠샨 왕조가 도래하면서 중앙아시아 스타일의 재단되고 꿰매진 의복이 대중화되었다. 가장 간단한 형태의 꿰맨 옷인 보토(기본적인 조끼)는 아동을 위한 보편적인 남녀 공용 의복이며, 전통적으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성인복을 받을 때까지 입는 유일한 옷이다. 때로는 군뉴-촐리 의식과 같은 통과 의례에서 성인복을 받기도 한다. 남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보토를 계속 착용한다. 남성용 상체 의복은 보통 보토와 같은 조끼이거나, 쿠르타와 유사한 셔츠인 다우라(목이 막힌 더블 브레스티드 긴 셔츠로, 다섯 개의 주름과 몸에 묶는 데 사용되는 여덟 개의 끈이 있음)이다. 수루왈은 단순히 바지 한 벌로 번역되며, 도티, 카차드(마가르족) 또는 룽기(타루족)의 대안이자 최근에는 대체품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무릎 위는 훨씬 넓지만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져 발목에 꼭 맞으며, 허리끈으로 허리에 묶는다. 사리와 함께 입는 현대적인 촐로는 보통 반소매이고 싱글 브레스티드이며 배꼽 부분을 덮지 않는다. 다우라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차우반디 촐로는 긴소매이고 더블 브레스티드이며 주름과 끈이 있고 파투카까지 내려와 배꼽 부분을 덮는다.
다우라-수루왈과 군뉴-촐로는 2011년 편애를 없애기 위해 폐지될 때까지 각각 남성과 여성의 국민 복장이었다. 많은 파하리 민족의 전통 복장은 남성의 경우 다우라-수루왈 또는 이와 유사한 것에 파투카, 다카 토피, 코트를 착용하고, 여성의 경우 군뉴-촐로 또는 이와 유사한 것에 파투카와 때로는 스카프를 착용한다. 다른 많은 민족의 경우, 남성 전통 복장은 셔츠나 조끼에 도티, 카차드 또는 룽기를 짝지어 입는다. 고지 히말라야에서는 전통 복장이 주로 티베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셰르파 여성은 팡기 앞치마와 함께 추바를 입고, 셰르파 남성은 추바 아래에 테퉁이라는 뻣뻣한 높은 칼라와 긴소매 셔츠를 입는다. 셰르파의 티베트 샤모 갸이세 모자, 파하리 남성의 다카 토피, 타망족의 둥근 모자 등은 더 독특한 머리 장식이다.
결혼한 힌두 여성은 티카, 신두르, 포테, 빨간 팔찌를 착용한다. 금과 은, 때로는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가 흔하다. 금 장신구에는 힌두교도들이 포테와 함께 착용하는 망갈수트라와 틸라하리, 림부족이 착용하는 삼야풍(머리에 쓰는 거대한 금꽃)과 네세이(거대한 납작한 금 귀걸이), 마가르족이 착용하는 시르풀리, 시르반디, 찬드라 등이 있다. 타루 여성은 머리에 쓰는 망기야, 이마에 쓰는 티쿨리, 목에 두르는 칸세리와 티카하말라 등 최대 6 kg의 은 장신구를 착용할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네팔의 패션은 크게 변했다. 도시 환경에서는 사리가 더 이상 일상복이 아니라 공식적인 행사를 위한 복장으로 변모했다. 전통적인 쿠르타 수루왈은 젊은 여성들이 거의 입지 않으며, 청바지를 점점 더 선호한다. 도티는 주로 샤먼과 힌두 사제들의 제의복으로 축소되었다.
12.6. 음식

네팔 요리는 다양한 지역 및 전통 요리로 구성된다. 토양 유형, 기후, 문화, 민족 집단 및 직업의 다양성으로 인해 이러한 요리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향신료, 허브, 채소 및 과일을 사용하여 실질적으로 다양하다. 콜럼버스 교환은 감자, 토마토, 옥수수, 땅콩, 캐슈넛, 파인애플, 구아바,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고추를 남아시아에 가져왔고, 이 모든 것이 주식이 되었다. 네팔에서 재배되는 곡물, 파종 시기 및 지역은 몬순 시기와 고도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쌀과 밀은 주로 테라이 평야와 관개가 잘 된 계곡에서 재배되며, 옥수수, 기장, 보리, 메밀은 주로 비옥도가 낮고 건조한 구릉지에서 재배된다.
전형적인 네팔 식사는 평범하게 조리된 곡물에 풍미 있고 짭짤한 요리를 곁들인 것이다. 후자에는 렌틸콩, 콩류, 채소가 포함되며, 일반적으로 생강과 마늘로 양념하고, 더 섬세하게는 고수, 커민, 강황, 계피, 카다멈, 짐부 등의 조합으로 양념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큰 접시 또는 탈리에 담겨 나오며, 중앙에는 조리된 곡물을 놓고 풍미 있는 반찬을 위한 작은 그릇을 놓는다. 이들은 밥과 렌틸콩처럼 실제로 섞거나, 빵과 조리된 채소처럼 하나를 다른 하나로 접어서 결합한다. 찐 밥을 중심으로 한 달밧이 가장 흔한 예이며, 유제품과 때로는 고기도 포함된다. 밀가루로 만든 무교병인 차파티는 특히 테라이 지역에서 때때로 밥을 대체하며, 옥수수, 기장 또는 메밀가루를 물에 넣고 계속 저으면서 걸쭉하고 거의 고체가 될 때까지 밀가루를 첨가하여 준비하는 딘도는 구릉지와 산악 지역의 주요 대체품이다. 볶은 보리나 쌀보리로 만든 가루인 참파는 고지 히말라야의 주요 주식이다. 네팔 전역에서 발효시킨 후 햇볕에 말린 잎채소인 군드룩은 겨울철 신선한 채소를 대체하는 별미이자 필수품이다.

네팔 음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각각 지리적, 문화적 역사에 따라 독특한 채식 요리가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아시아 역사 초기에 많은 종교 교단, 특히 우파니샤드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에서 아힘사(모든 생명체에 대한 폭력 회피)의 등장은 네팔 힌두교도 및 불교도 인구 일부와 자이나교도 사이에서 채식주의가 널리 퍼지는 데 주목할 만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그룹 사이에서는 육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불편함을 느낀다. 네팔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낮지만, 동물 희생이 두드러진 특징인 샥티파의 확산으로 인해 채식주의 비율은 인도만큼 높지 않다.
네팔 요리는 북쪽과 남쪽 이웃 국가들의 요리와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토마토 기반의 기름기 적은 카레를 사용하는 네팔 요리는 크림 기반의 인도 요리보다 가볍고, 네팔 모모 만두는 북쪽 이웃 국가들의 만두보다 향신료가 강하다. 네팔에서 가장 풍부하고 영향력 있는 요리 중 하나인 네와르 요리는 매우 비옥하고 번영했던 카트만두 계곡에서 네와르 문화가 발전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요리보다 정교하고 다양하다. 전형적인 네와르 요리는 곡물, 고기, 채소 카레, 처트니, 피클 등 12가지 이상의 요리로 구성될 수 있다. 콴티(발아 콩 수프), 츠웰라(다진 쇠고기), 차타마리(쌀가루 크레이프), 바라(튀긴 렌틸콩 케이크), 카칠라(양념한 생 다진 쇠고기), 사마야바지(납작한 쌀을 중심으로 함), 라카마리, 요무리가 가장 널리 알려진 요리 중 일부이다. 박타푸르에서 유래한 달콤한 요구르트인 주주 다우도 유명하다. 타칼리 요리는 재료, 특히 허브와 향신료의 다양성으로 티베트 요리와 인도 요리를 완벽하게 융합한 또 다른 잘 알려진 음식 전통이다. 테라이에서는 박기야가 안에 단 것을 넣은 쌀가루 만두로, 타루족과 마이틸족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테라이의 다양한 공동체에서는 몬순 홍수에 대비하여 시다라(타로 잎과 섞은 햇볕에 말린 작은 생선)와 비리야(타로 잎과 섞은 렌틸콩 반죽)를 만들어 저장한다. 셀로티, 카사르, 피니, 차쿠 등이 대표적인 단 음식이다. 쌀 필라프나 키르라는 달콤한 쌀죽이 보통 잔치의 주요 요리이다. 차와 버터밀크(요구르트에서 버터를 저어 만든 후 남은 발효유)는 흔한 무알코올 음료이다. 거의 모든 자나자티 공동체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빚는다. 락시(전통 증류주), 잔드(쌀 맥주), 통바(기장 맥주), 창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2.7. 스포츠와 여가
단디 비요와 카바디와 같은 네팔 토착 스포츠는 최근까지 비공식적인 국민 스포츠로 여겨졌으며, 여전히 농촌 지역에서 인기가 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디 비요의 표준화와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카바디는 프로 스포츠로서 네팔에서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네팔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는 고대 보드 게임인 바그찰은 분필로 그린 판에 조약돌로 즐길 수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 루도, 뱀과 사다리, 캐롬은 인기 있는 오락이다. 체스도 즐겨 한다. 배구는 2017년 네팔의 국민 스포츠로 선언되었다. 인기 있는 어린이 놀이로는 술래잡기의 변형, 공기놀이, 사방치기, 수건 돌리기, 일곱 돌 등이 있으며, 구슬치기, 팽이, 굴렁쇠, 골목 크리켓도 소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자전거 타이어 튜브에서 자른 고무줄 또는 레인저 밴드는 네팔 어린이들을 위한 다목적 스포츠 장비로, 묶거나 사슬로 연결하여 피구, 실뜨기, 제기차기, 다양한 줄넘기 놀이에 사용된다.
축구와 크리켓은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이다. 네팔은 남아시아 지역 축구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SAFF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없으나, 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FIFA 세계 랭킹에서는 보통 하위권에 속한다. 네팔은 크리켓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ODI 지위를 보유하고 있고, ICC ODI 및 T20I 랭킹에서 꾸준히 상위 20위 안에 든다. 네팔은 육상 및 무술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많은 메달을 획득했으며 아시안 게임에서도 일부 메달을 획득했다. 네팔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다. 농구, 배구, 풋살, 레슬링, 경쟁적인 보디빌딩, 배드민턴과 같은 스포츠도 인기를 얻고 있다. 축구, 크리켓, 육상, 무술, 배드민턴, 수영 분야의 여성 선수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네팔은 또한 장애인 개인을 위한 여러 토너먼트에 선수와 국가대표팀을 파견하며, 특히 남성 및 여성 시각 장애인 크리켓에서 두드러진다.
국내 유일의 국제 경기장은 다사라트 경기장으로, 남성 및 여성 축구 국가대표팀이 홈 경기를 치른다. 국가대표팀 결성 이후 네팔은 트리부반 대학교 국제 크리켓 경기장에서 크리켓 홈 경기를 치렀다. 네팔 경찰, 무장 경찰대, 네팔 육군은 국가대표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관이며, 유망한 선수들은 더 나은 스포츠 기회를 제공받기 위해 군에 입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 스포츠는 인프라 부족, 자금 부족, 부패, 연고주의, 정치적 간섭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로 스포츠 선수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선수는 극소수이다.
12.8. 공휴일과 역법
네팔은 세계에서 공휴일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연간 36일의 공휴일이 있다. 네팔의 주요 공휴일은 대부분 종교적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공휴일로는 다사인(가장 큰 힌두교 축제), 티하르(빛의 축제), 붓다 자얀티(부처님 오신 날), 시바라트리(시바 신의 밤), 홀리(색의 축제), 가이 자트라(소의 축제), 인드라 자트라(카트만두 계곡의 축제) 등이 있다. 또한, 네팔 민주주의의 날, 네팔 공화국의 날, 국제 노동절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날도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각 민족 고유의 축제일들이 지역적으로 기념된다.
네팔의 공식 달력은 비크람 삼밧(Vikram Samvat)으로, 서력보다 약 56.7년 앞선다. 비크람 삼밧은 태양력을 기반으로 하며, 네팔의 새해는 보통 4월 중순에 시작된다. 이 외에도 전통적으로 네와르족이 사용하는 네팔 삼밧(Nepal Sambat, 태음태양력)과 티베트 달력 등이 일부 지역이나 공동체에서 사용된다. 공문서나 일상생활에서는 비크람 삼밧이 주로 사용되지만, 국제 교류나 관광 분야에서는 서력도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축제일과 역법 체계는 네팔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