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수 경력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는 1986년 고향 팀 페루자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2005년 같은 팀에서 은퇴하기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활약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1.1. 이탈리아 초기 경력
라바넬리는 1986-87 시즌, 18세의 나이로 당시 세리에 C2에 속해 있던 페루자에서 1군 무대에 데뷔하여 리그 26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87-88 시즌에는 32경기에서 23골을 넣으며 세리에 C2 득점왕에 올랐다. 1988-89 시즌에는 팀이 세리에 B로 승격했고, 라바넬리는 이 시즌 13골을 기록했다. 당시 팀 동료였던 안젤로 디 리비오가 많은 어시스트를 제공하며 그의 득점력에 기여했다. 1989-90 시즌에는 아벨리노로 이적했으나 7경기에 출전해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고, 그 해 10월 카세르타나로 임대되어 27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1990-91 시즌에는 잠시 아벨리노로 복귀했다가 곧바로 레자나로 이적하여 16골을 기록하며 팀이 세리에 A 승격에 근접하는 데 기여했다. 1991-92 시즌에는 득점 수가 8골로 줄었지만, 그의 플레이는 유벤투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1.2. 유벤투스
1992년, 어린 시절부터 팬이었던 유벤투스로 이적한 라바넬리는 로베르토 바조, 잔루카 비알리, 파올로 디 카니오, 피에를루이지 카시라기, 안드레아스 묄러,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같은 쟁쟁한 공격수들과 함께 강력한 공격진을 구축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흰머리가 많아 '하얀 깃털'(Penna Bianca이탈리아어)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는 이전에 유벤투스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로베르토 베테가도 사용했던 별명이다. 그의 흰머리는 8세 때부터 시작된 유전적 특징 때문이었으며, 이로 인해 '은빛 여우'(銀狐일본어)라고도 불렸다. 1990년대 중반 유럽 최고의 득점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초기에는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체제에서 여러 공격수들과의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4-95 시즌에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지휘 아래 잔루카 비알리와 함께 로베르토 바조 또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공격 삼각편대를 이루며 팀의 국내 더블(리그와 컵 대회 우승)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즌에 그는 세리에 A 15골을 포함하여 총 30골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6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1994년 9월 27일 UEFA컵 경기에서는 CSKA 소피아를 상대로 홀로 5골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1995년 발롱도르 순위에서 12위에 오르는 등 개인적인 인정도 받았다. 1995-96 시즌에는 총 18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특히 1996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아약스를 상대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팀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유벤투스에서 총 160경기에 출전하여 69골을 기록했지만, 구단은 그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기로 결정했다.

1.3. 미들즈브러
1996년, 라바넬리는 브라이언 롭슨 감독이 이끄는 프리미어리그의 미들즈브러로 700.00 만 GBP에 이적했다. 이는 당시 영국 축구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이적료였다. 그는 이적하자마자 리버풀과의 프리미어리그 1996-97 시즌 개막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리그에서 16골을 넣으며 득점 순위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팀은 그가 합류한 첫 해에 2부 리그로 강등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바넬리는 그 시즌 팀이 FA컵과 리그컵 결승에 모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두 결승전 모두 선발 출전했으나, FA컵 결승에서는 첼시에 0-2로 패했고, 리그컵 결승 재경기에서는 레스터 시티에 0-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레스터와의 리그컵 본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에밀 헤스키의 동점골로 재경기가 치러지게 되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바넬리는 구단의 훈련 방식과 시설, 그리고 도시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며 동료들과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미들즈브러에 머무는 동안 그는 북요크셔의 작은 마을 허턴러드비에 거주했으며, 폴 머슨, 고든 매퀸 등 다른 미들즈브러 선수들도 이 근처에 살았다. 팀이 강등되자, 그는 팀을 떠났고, 토트넘의 제안을 거절하고 마르세유를 선택했다.
1.4. 마르세유
미들즈브러가 강등된 후, 라바넬리는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이적했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두 시즌 반 동안 총 84경기에 출전하여 31골을 기록했다. 1998-99 시즌, 마르세유는 리그 1에서 보르도에 1점 차로 뒤지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에는 UE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파르마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듬해인 1999-200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여 스타드 벨로드롬에서 열린 슈투름 그라츠와의 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다.
1.5. 라치오
1999년 12월, 라바넬리는 라치오와 계약하며 이탈리아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주로 교체 선수로 활약하며 두 시즌 동안 총 42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다. 라치오에서 그는 세리에 A (1999-2000), 코파 이탈리아 (1999-2000), 그리고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0) 우승컵을 추가하며 자신의 우승 기록을 늘렸다.
1.6. 더비 카운티
2001년 7월, 라바넬리는 더비 카운티로 자유 이적하며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34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으나, 2002년 팀의 프리미어리그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더비 카운티의 재정 문제로 인해 그의 급여 지급이 지연되었고, 그는 몇 년에 걸쳐 체불된 급여를 받았다.
1.7. 던디
더비 카운티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라바넬리는 스코틀랜드의 던디로 이적하여 짧은 기간 동안 활약했다. 던디 소속으로 그가 득점한 유일한 경기는 클라이드와의 리그컵 경기였으며,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던디는 고액 주급자들을 대거 방출하면서 그를 방출했다.
1.8. 페루자 복귀
스코틀랜드에서의 짧은 경험을 마친 라바넬리는 2004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프로 경력을 시작했던 고향 팀 페루자로 복귀했다. 이는 고인이 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는 팀이 세리에 A 강등을 피하도록 돕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강등을 막지 못했다. 다음 시즌인 2004-05 시즌에도 팀에 남아 24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고, 시즌 종료 후 36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 국가대표팀 경력
라바넬리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아리고 사키, 체사레 말디니, 디노 초프 감독의 지도 아래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총 22번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다.
그는 1995년 3월 25일 살레르노에서 열린 UEFA 유로 1996 예선 에스토니아와의 경기에서 사키 감독의 지휘 아래 국제 무대에 데뷔했으며, 이 경기에서 자신의 첫 국가대표팀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라바넬리는 UEFA 유로 1996에 참가한 이탈리아 선수단의 일원이었으며, 토너먼트에서 두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개막전(2-1 승)과 체코와의 두 번째 경기(1-2 패)에 나섰으나, 이탈리아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98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는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6월 2일 스웨덴과의 경기에도 선발 출전했으나, 기관지염을 앓아 월드컵 참가를 포기해야 했다. 이에 체사레 말디니 감독은 그 대신 엔리코 키에사를 최종 명단에 발탁했다.
3. 선수 특징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는 뛰어난 득점 능력과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상징적인 골 세리머니로 기억되는 선수이다.
3.1. 경기 방식
라바넬리는 빠르고, 역동적이며,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근면한 왼발잡이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타고난 골 결정력뿐만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과 공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의 수비 가담 능력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특히 공수 전환 시에는 깊숙한 위치까지 내려와 공을 되찾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기술적으로나 재능 면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유벤투스 시절 동안 기술과 움직임을 상당히 발전시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득점력이 풍부한 골잡이였으며, 공중 경합에도 능했고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을 구사했다. 또한,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기회를 창출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 그의 다양한 기술과 결합되어 완성형 공격수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그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심지어 윙어와 같은 지원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으며, 공중볼을 받아 헤딩으로 떨궈주거나 동료 스트라이커들에게 어시스트를 제공하며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3.2. 골 세리머니
라바넬리의 상징적인 골 세리머니는 그가 득점 후 유니폼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동작이었다. 그는 1993년 3월 7일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골을 넣은 후부터 이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그는 선수가 득점 후 상의를 탈의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경고를 주는 FIFA의 새로운 규정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4.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는 감독으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지만, 선수 시절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4.1. 유벤투스 (유소년 팀)
라바넬리는 2011년 7월부터 2013년까지 유벤투스 유소년팀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4.2. 아작시오
2013년 6월 8일, 라바넬리는 프랑스 리그 1 소속의 아작시오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여 2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는 단 5개월 만인 2013년 11월 2일, 경질되었다. 당시 팀은 발랑시엔과의 홈 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며 리그 1에서 5연패를 당했고, 12경기에서 1승 4무 7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19위(뒤에서 두 번째)에 머물렀다.
아작시오의 알랭 오르소니 회장은 "라바넬리를 경질하는 것은 여러 이유로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저는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를 정말 존경했고, 그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만큼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스태프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축구가 어떤지 다들 알고 있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으면, 유일한 해결책은 스태프를 교체하는 것이다"라고 그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경질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4.3. 아르세날 키이우
2018년 6월 22일, 라바넬리는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의 아르세날 키이우와 계약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부진한 성적을 이어갔고, 결국 3개월 만인 2018년 9월 22일 자진 사퇴했다.
5. 은퇴 후 활동
선수 및 감독 은퇴 후,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는 주로 방송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5.1. 방송 경력
그는 스카이 이탈리아, 폭스 스포츠, 그리고 메디아셋 등 여러 매체에서 축구 평론가로 활동하며 경기 분석과 전문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6. 사생활
라바넬리는 잔루카 비알리를 자신의 어린 시절 우상으로 여겼다. 유벤투스에서 팀 동료가 되기 전, 비알리가 페루자의 스타디오 레나토 쿠리에서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르러 왔을 때, 라바넬리는 그에게 자신의 우상이라고 고백했고, 비알리는 그에게 축구화를 선물해주었다. 라바넬리는 비알리가 자신에게 형과 같은 존재였으며, 함께 뛰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또한, 옷차림 등 여러 면에서 비알리를 따라 하려 했다고 한다.
그의 머리카락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8세 때부터 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이 특징은 그의 별명인 '하얀 깃털'(Penna Bianca이탈리아어) 또는 '은빛 여우'(銀狐일본어)의 유래가 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수비수 루카 라바넬리가 파브리치오 라바넬리의 아들이라고 잘못 보도하기도 했으나, 루카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아니라고 한다.
또한, 라바넬리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미드필더인 폴 포그바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7. 통계
파브리치오 라바넬리의 선수 및 감독 경력에 대한 상세한 수치 데이터는 다음과 같다.
7.1. 클럽 통계
| 구단 | 시즌 | 리그 | 컵 | 리그컵 | 대륙 | 기타 | 합계 | |||||||||
|---|---|---|---|---|---|---|---|---|---|---|---|---|---|---|---|---|
| 리그명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페루자 | 1986-87 | 세리에 C2 | 26 | 5 | - | - | - | 26 | 5 | |||||||
| 1987-88 | 세리에 C2 | 32 | 23 | - | - | - | 32 | 23 | ||||||||
| 1988-89 | 세리에 B | 32 | 13 | - | - | - | 32 | 13 | ||||||||
| 합계 | 90 | 41 | 0 | 0 | 0 | 0 | 0 | 0 | 90 | 41 | ||||||
| 아벨리노 | 1989-90 | 세리에 B | 7 | 0 | - | - | - | 7 | 0 | |||||||
| 카세르타나 | 1989-90 | 세리에 C1 | 27 | 12 | - | - | - | 27 | 12 | |||||||
| 레자나 | 1990-91 | 세리에 B | 34 | 16 | - | - | - | 34 | 16 | |||||||
| 1991-92 | 세리에 B | 32 | 8 | - | - | - | 32 | 8 | ||||||||
| 합계 | 66 | 24 | 0 | 0 | 0 | 0 | 0 | 0 | 66 | 24 | ||||||
| 유벤투스 | 1992-93 | 세리에 A | 22 | 5 | 3 | 1 | - | 8 | 3 | - | 33 | 9 | ||||
| 1993-94 | 세리에 A | 30 | 9 | 2 | 0 | - | 6 | 3 | - | 38 | 12 | |||||
| 1994-95 | 세리에 A | 33 | 15 | 9 | 6 | 0 | 0 | 11 | 9 | - | 53 | 30 | ||||
| 1995-96 | 세리에 A | 26 | 12 | 2 | 1 | 0 | 0 | 7 | 5 | - | 36 | 18 | ||||
| 합계 | 111 | 41 | 16 | 8 | 0 | 0 | 32 | 20 | 0 | 0 | 159 | 69 | ||||
| 미들즈브러 | 1996-97 | 프리미어리그 | 33 | 16 | 7 | 6 | 8 | 9 | - | - | 48 | 31 | ||||
| 1997-98 | 1부 리그 | 2 | 1 | 0 | 0 | 0 | 0 | - | - | 2 | 1 | |||||
| 합계 | 35 | 17 | 7 | 6 | 8 | 9 | 0 | 0 | 0 | 0 | 50 | 32 | ||||
| 마르세유 | 1997-98 | 리그 1 | 21 | 9 | 1 | 0 | 3 | 0 | - | - | 25 | 9 | ||||
| 1998-99 | 리그 1 | 29 | 13 | 1 | 1 | 1 | 0 | 7 | 1 | - | 38 | 15 | ||||
| 1999-2000 | 리그 1 | 14 | 6 | 0 | 0 | 0 | 0 | 4 | 1 | - | 18 | 7 | ||||
| 합계 | 64 | 28 | 2 | 1 | 4 | 0 | 11 | 2 | 0 | 0 | 81 | 31 | ||||
| 라치오 | 1999-2000 | 세리에 A | 16 | 2 | 5 | 2 | 0 | 0 | 0 | 0 | - | 21 | 4 | |||
| 2000-01 | 세리에 A | 11 | 2 | 4 | 2 | 0 | 0 | 6 | 2 | - | 21 | 6 | ||||
| 합계 | 27 | 4 | 9 | 4 | 0 | 0 | 6 | 2 | 0 | 0 | 42 | 10 | ||||
| 더비 카운티 | 2001-02 | 프리미어리그 | 31 | 9 | 1 | 1 | 2 | 1 | - | - | 34 | 11 | ||||
| 2002-03 | 1부 리그 | 19 | 5 | 0 | 0 | 0 | 0 | - | - | 19 | 5 | |||||
| 합계 | 50 | 14 | 1 | 1 | 2 | 1 | 0 | 0 | 0 | 0 | 53 | 16 | ||||
| 던디 | 2003-04 |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 5 | 0 | 0 | 0 | 1 | 3 | - | - | 6 | 3 | ||||
| 페루자 | 2003-04 | 세리에 A | 15 | 6 | 2 | 0 | - | 1 | 0 | - | 18 | 6 | ||||
| 2004-05 | 세리에 B | 24 | 3 | 0 | 0 | - | 0 | 0 | 3 | 0 | 27 | 3 | ||||
| 합계 | 39 | 9 | 2 | 0 | 0 | 0 | 1 | 0 | 3 | 0 | 42 | 9 | ||||
| 경력 합계 | 521 | 190 | 37 | 20 | 15 | 13 | 50 | 24 | 3 | 0 | 626 | 247 | ||||
7.2. 국가대표팀 통계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골 |
|---|---|---|---|
| 이탈리아 | 1995 | 6 | 4 |
| 1996 | 8 | 4 | |
| 1997 | 5 | 0 | |
| 1998 | 3 | 0 | |
| 1999 | 0 | 0 | |
| 합계 | 22 | 8 | |
:아래의 점수 열에서 왼쪽의 점수가 이탈리아의 점수이며, 점수 열은 라바넬리의 득점 상황을 나타낸다.
|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최종결과 | 대회 |
|---|---|---|---|---|---|---|
| 1 | 1995년 3월 25일 | 이탈리아 살레르노 아레키 | 에스토니아 | 4-1 | 4-1 | UEFA 유로 1996 예선 |
| 2 | 1995년 9월 6일 | 이탈리아 우디네 프리울리 | 슬로베니아 | 1-0 | 1-0 | 유로 1996 예선전 |
| 3 | 1995년 11월 11일 | 이탈리아 바리 산 니콜라 | 우크라이나 | 1-1 | 3-1 | 유로 1996 예선전 |
| 4 | 2-1 | |||||
| 5 | 1996년 1월 24일 | 이탈리아 테르니 리베로 리베라티 | 웨일스 | 2-0 | 3-0 | 친선경기 |
| 6 | 1996년 10월 5일 | 몰도바 키시너우 스타디오눌 레푸블리칸 | 몰도바 | 1-0 | 3-1 | 1998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
| 7 | 3-1 | |||||
| 8 | 1996년 10월 9일 | 이탈리아 페루자 레나토 쿠리 | 조지아 | 1-0 | 1-0 | 1998년 월드컵 예선전 |
7.3. 감독 통계
2018년 9월 22일 기준
| 구단 | 국적 | 취임 | 해임 | 기록 | |||||||
|---|---|---|---|---|---|---|---|---|---|---|---|
| 전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률 | ||||
| 아작시오 | 프랑스 | 2013년 6월 8일 | 2013년 11월 2일 | 13 | 1 | 4 | 8 | 8 | 19 | -11 | 7.69 |
| 아르세날 키이우 | 우크라이나 | 2018년 6월 22일 | 2018년 9월 22일 | 9 | 1 | 1 | 7 | 5 | 19 | -14 | 11.11 |
| 합계 | 22 | 2 | 5 | 15 | 13 | 38 | -25 | 9.09 | |||
8. 수상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는 선수 경력 동안 다수의 팀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개인적으로도 득점왕에 오르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 유벤투스**
- 세리에 A: 1994-95
- 코파 이탈리아: 1994-95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5
- UEFA 챔피언스리그: 1995-96
- UEFA컵:
- 우승: 1992-93
- 준우승: 1994-95
- 미들즈브러**
- 풋볼 리그컵 준우승: 1996-97
- FA컵 준우승: 1996-97
- 마르세유**
- UEFA컵 준우승: 1998-99
- 라치오**
- 세리에 A: 1999-2000
- 코파 이탈리아: 1999-2000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0
- 개인**
- 코파 이탈리아 최다 득점자: 1994-95 (6골)
- 세리에 C2 최다 득점자: 1987-88 (23골)
9. 평가 및 영향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는 1990년대 중반 유럽 축구계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특히 그의 전성기였던 유벤투스 시절에는 팀의 국내 및 유럽 대항전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얀 깃털' 또는 '은빛 여우'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일찍부터 흰 머리카락과 함께 독특하고 강렬한 플레이 스타일은 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뛰어난 득점력과 함께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수비 가담 능력까지 겸비한 '완성형 공격수'로 평가받았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축구의 전술적 흐름 속에서 그가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그의 감독 경력은 선수 시절만큼 빛나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축구계에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평론가로 활동하며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어린 시절 잔루카 비알리를 동경하고 폴 포그바의 우상이었던 일화는 그가 여러 세대에 걸쳐 축구 선수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라바넬리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며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독보적인 존재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