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수 경력
엔리코 키에사는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으며, 여러 클럽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과시하며 이탈리아 축구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경력은 초기 아마추어 시절부터 세리에 A에서의 전성기, 그리고 말년까지 다양한 클럽을 거쳤다.
1.1. 초기 경력
제노바에서 태어난 키에사는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아마추어 클럽 폰테데치모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1988년 삼프도리아에 입단하여 1989년 4월 16일 로마와의 1988-89 시즌 리그 경기에서 0-1로 패했지만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후 그는 바로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세리에 C2의 테라모(1990-91 시즌)와 세리에 C1의 키에티(1991-92 시즌)로 임대되어 경험을 쌓았다. 1992년에 삼프도리아로 복귀했지만, 이 시즌에는 26경기에 출전하여 1골에 그쳤으며, 1993년 2월 7일 안코나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첫 골을 기록했다. 1993-94 시즌에는 세리에 B의 모데나로 임대되어 36경기에서 14골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어서 1994-95 시즌에는 크레모네세로 임대되어 세리에 A에서 14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다.
1.2. 삼프도리아 재입단과 전성기
크레모네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키에사는 1995-96 시즌을 앞두고 다시 삼프도리아로 복귀했다. 그는 이 시기 로베르토 만치니와 강력한 공격 듀오를 형성하며 놀라운 득점력을 선보였다. 만치니의 많은 도움을 받아 득점을 양산한 그는 12월 바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다음 경기인 유벤투스전에서도 2골을 넣는 등 27경기에서 무려 22골을 터뜨렸다. 이러한 활약으로 이탈리아 스포츠 잡지 구에린 스포르티보(Guerin Sportivo)가 선정하는 1996년 올해의 선수상인 구에린 금상(Guerin d'Oro)을 수상했으며, 처음으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는 영예를 안았다.
1.3. 파르마
1996-97 시즌을 앞두고 키에사는 당시 신흥 강호로 떠오르던 파르마의 강력한 제안을 받아 이적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키에사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길 원했고, 이로 인해 기존의 주축 선수였던 잔프랑코 졸라와 경쟁 관계가 형성되면서 졸라가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키에사는 파르마 이적 첫 시즌인 1996-97 시즌에 세리에 A에서 14골을 기록하며 팀이 유벤투스에 이어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고 이듬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7-98 시즌에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21골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파르마에서 그의 전성기는 1998-99 시즌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는 팀과 함께 UEFA컵,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를 모두 우승하며 "트레블"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UEFA컵에서는 준결승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1, 2차전 합계 3골을 기록하고, 결승전에서 마르세유를 상대로 득점을 올리는 등 대회 통산 8골로 득점왕에 등극했다. 파르마에서 3시즌 동안 120경기에 출전하여 55골을 기록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자랑했지만, 잦은 부상 문제로 인해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1.4. 피오렌티나
1999년, 키에사는 약 280.00 억 ITL (약 1446.00 만 EUR)에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당시 피오렌티나는 선수단 보강을 통해 팀을 강화하고, 주장이자 상징적 존재였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잔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적 첫 시즌인 1999-2000 시즌에는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해 리그에서 6골에 그쳤으며,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등과의 주전 경쟁을 겪었다.
그러나 2000-01 시즌에는 바티스투타가 로마로 떠난 공백을 메우며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지휘 아래 루이 코스타의 지원을 받으며 30경기에서 22골을 기록, 리그 득점 순위 5위 안에 들었다. 이 시즌 피오렌티나는 재정난과 부상에 시달렸지만, 키에사의 활약에 힘입어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전 소속팀 파르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차전 홈 경기에서는 누누 고메스의 득점을 도우며 합계 2-1 승리에 기여했다.
2001-02 시즌은 키에사와 피오렌티나 모두에게 비극적인 시즌이었다. 키에사는 시즌 초반 5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달리는 등 최고의 출발을 보였으나, 베네치아와의 5번째 경기에서 무릎 인대 중상을 입어 시즌 아웃되었다. 주포 키에사를 잃은 피오렌티나는 공격력 약화로 인해 시즌이 끝날 무렵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피오렌티나는 강등과 심각한 재정 문제로 인해 파산 직전까지 갔고, 키에사는 구단의 재정난을 고려하여 본인의 급여를 받지 않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부상은 그가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할 꿈을 좌절시켰으며, 그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피오렌티나의 강등과 파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큰 후회를 남겼다.
1.5. 라치오와 시에나
피오렌티나의 강등과 재정난으로 인해 키에사는 2002-03 시즌에 라치오로 이적했다. 그러나 라치오에서는 단 12경기에 출전하여 2골에 그치며 피오렌티나 시절의 활약을 이어가지 못했다.
2003년, 그는 시에나에 입단했다. 시에나에서 키에사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이자 클럽의 세리에 A 역사에서 핵심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이적 후 첫 세 시즌 동안 인상적으로 세리에 A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시에나의 잔류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2006-07 시즌에는 세리에 A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아 만돌리니 신임 감독은 키에사가 여전히 팀에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2007-08 시즌에 그에게 최소 15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2007-08 시즌에도 단 2경기에 출전하여 무득점에 그쳤다. 시에나에서 총 129경기에 출전하여 32골을 기록했다.
1.6. 은퇴 전 경력
2008년 시에나를 떠난 키에사는 레가 프로 세콘다 디비시오네의 필리네로 이적했다. 그는 필리네에서 5골을 기록하며 팀이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다음 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선수 생활이었던 2009-10 시즌에는 다리 골절 부상을 입어 대부분의 시즌을 재활로 보냈고, 결국 이 부상으로 인해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2. 국가대표팀 경력
키에사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총 17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다.
그는 1996년 5월 29일 크레모나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친선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자축했다. 같은 해 아리고 사키 감독은 그를 UEFA 유로 1996 이탈리아 선수단에 선발했으며, 이는 로베르토 바조, 잔루카 비알리, 주세페 시뇨리와 같은 쟁쟁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이뤄낸 성과였다. 키에사는 조별 리그 2경기에 출전했는데, 체코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지만 1-2로 패배했다. 이어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이탈리아는 결국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98년 FIFA 월드컵에도 체사레 말디니 감독에 의해 파브리치오 라바넬리의 대체 선수로 발탁되어 참가했다. 그는 1998년 월드컵 조별 리그 1차전 칠레와의 2-2 무승부 경기에 출전했으며, 노르웨이와의 16강전 1-0 승리 경기에서는 교체로 출전했다. 이탈리아는 8강전에서 개최국이자 최종 우승팀인 프랑스에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탈락했다.
디노 초프 감독 시절, 키에사는 1998년 12월 16일 이탈리아 축구 연맹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FIFA 월드 스타즈와의 친선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6-2 승리에 기여했다. 또한 1999년 6월 5일 볼로냐에서 열린 UEFA 유로 2000 예선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4-0 승리 중 한 골을 기록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체제였던 2001년 4월 25일 페루자에서 열린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친선경기(1-0 승리)였다.
키에사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함께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교체 투입 득점 기록(5골)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23년 기준으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데뷔 후 첫 두 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한 마지막 선수로 남아있다.
3. 경기 방식
엔리코 키에사는 199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받고 역동적인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뛰어난 골 결정력을 지닌 선수였다. 그는 빠르고, 강인하며, 성실하고 우아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다.
주로 중앙 공격수로 기용되었지만, 넓은 시야, 다재다능함, 뛰어난 기술, 빠른 속도에서의 세밀한 볼 컨트롤, 그리고 전술적 지능 덕분에 다른 공격수를 지원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측면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이러한 능력은 그가 동료들에게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키에사는 뛰어난 주력과 체력, 그리고 탁월한 공격 본능을 겸비했다. 페널티 박스 안팎에서 강력하고 정확한 양발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역습 상황에서 특히 빛을 발했으며, 공격적으로 공간을 침투하여 공을 받은 즉시 슈팅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또한 강력하거나 감아차는 프리킥으로도 명성이 높았으며, 미셸 플라티니와 알바로 레코바와 함께 세리에 A 역대 프리킥 득점 공동 9위(13골)에 이름을 올렸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키에사를 기회 포착 능력, 예측력, 그리고 뛰어난 슈팅 능력을 겸비한 "완전체형 공격수"로 평가하며, 루이지 리바와 파올로 로시를 결합한 선수 같다고 묘사했다. 그는 공중볼 경합에서도 뛰어난 아크로바틱 능력을 보여주며 환상적인 발리슛을 구사했다.
축구 선수로서 득점 능력 외에도, 그는 헌신적인 태도, 프로페셔널리즘, 그리고 경기장 안에서의 올곧은 행동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잦은 부상으로 인해 선수 경력에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4.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엔리코 키에사는 잠시 동안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2010년 6월, 그는 필리네의 2010-11 시즌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었다. 그러나 그의 감독 경력은 매우 짧았다. 필리네 구단이 7월에 이탈리아 리그에서 제명되면서, 그의 감독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다.
5. 개인 생활
엔리코 키에사는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페데리코 키에사를 두었다. 그의 아들 페데리코 키에사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다.
6. 평가와 유산
엔리코 키에사는 1990년대 중반 이탈리아 세리에 A를 대표하는 가장 재능 있고 역동적인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강점은 뛰어난 득점력과 함께 경기장에서의 헌신적이고 프로다운 태도였다. 특히 파르마 시절 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를 동시에 우승으로 이끈 그의 활약은 클럽 축구 경력의 정점으로 꼽힌다. 그의 양발을 활용한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 빠른 판단력, 그리고 프리킥 능력은 그를 당대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올려놓았다. 루이지 리바와 같은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적인 인물로부터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잦은 부상으로 인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2001-02 시즌 피오렌티나에서의 심각한 무릎 인대 부상은 그의 선수 생활에 큰 전환점이자 개인적인 후회로 남아있다. 그는 당시 부상이 없었다면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고, 나아가 당시 재정난에 시달리던 피오렌티나의 강등과 파산을 막는 데 더 기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하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는 한 선수의 부상이 팀과 개인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비록 부상으로 인해 잠재력을 완전히 꽃피우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중요한 공격수로 기억되고 있다.
7. 경력 통계
7.1. 클럽
구단 | 시즌 | 리그 | 컵 | 유럽 | 기타 | 합계 | ||||||
---|---|---|---|---|---|---|---|---|---|---|---|---|
리그명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삼프도리아 | 1988-89 | 세리에 A | 1 | 0 | 0 | 0 | - | - | 1 | 0 | ||
1989-9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합계 | 1 | 0 | 0 | 0 | 0 | 0 | 0 | 0 | 1 | 0 | ||
테라모 | 1990-91 | 세리에 C | 31 | 5 | - | - | - | 31 | 5 | |||
키에티 | 1991-92 | 세리에 C | 24 | 6 | - | - | - | 24 | 6 | |||
삼프도리아 | 1992-93 | 세리에 A | 26 | 1 | - | - | - | 26 | 1 | |||
모데나 | 1993-94 | 세리에 B | 36 | 15 | 1 | 0 | - | - | 37 | 15 | ||
크레모네세 | 1994-95 | 세리에 A | 34 | 14 | 4 | 0 | - | - | 38 | 14 | ||
삼프도리아 | 1995-96 | 세리에 A | 27 | 22 | - | - | - | 27 | 22 | |||
파르마 | 1996-97 | 세리에 A | 29 | 14 | 0 | 0 | 2Appearances in UEFA CupUEFA컵 출장 경기 기록영어 | 2 | - | 31 | 16 | |
1997-98 | 33 | 10 | 7 | 5 | 8Appearances in UEFA Champions League챔피언스리그 출장 경기 기록영어 | 6 | - | 48 | 21 | |||
1998-99 | 30 | 9 | 8 | 1 | 8Appearances in UEFA CupUEFA컵 출장 경기 기록영어 | 8 | - | 46 | 18 | |||
합계 | 92 | 33 | 15 | 6 | 18 | 16 | - | 125 | 55 | |||
피오렌티나 | 1999-2000 | 세리에 A | 24 | 7 | 4 | 1 | 11Appearances in UEFA Champions League챔피언스리그 출장 경기 기록영어 | 4 | - | 39 | 12 | |
2000-01 | 30 | 22 | 6 | 5 | 2Appearances in UEFA CupUEFA컵 출장 경기 기록영어 | 0 | - | 38 | 27 | |||
2001-02 | 5 | 5 | 0 | 0 | 2Appearances in UEFA Champions League챔피언스리그 출장 경기 기록영어 | 1 | 1Appearance in Supercoppa Italiana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출장 경기 기록영어 | 0 | 8 | 6 | ||
합계 | 59 | 34 | 10 | 6 | 15 | 5 | 1 | 0 | 85 | 45 | ||
라치오 | 2002-03 | 세리에 A | 12 | 2 | 6 | 1 | 11Appearances in UEFA CupUEFA컵 출장 경기 기록영어 | 4 | - | 29 | 7 | |
시에나 | 2003-04 | 세리에 A | 30 | 10 | 1 | 0 | - | - | 31 | 10 | ||
2004-05 | 36 | 11 | 0 | 0 | - | - | 36 | 11 | ||||
2005-06 | 38 | 11 | 2 | 1 | - | - | 40 | 12 | ||||
2006-07 | 23 | 0 | 2 | 0 | - | - | 25 | 0 | ||||
2007-08 | 2 | 0 | 0 | 0 | - | - | 2 | 0 | ||||
합계 | 129 | 32 | 5 | 1 | - | - | 134 | 33 | ||||
경력 합계 | 471 | 164 | 41 | 14 | 44 | 25 | 1 | 0 | 557 | 203 |
7.2. 국가대표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 ||
---|---|---|
연도 | 출장 | 골 |
1996 | 5 | 3 |
1997 | 1 | 0 |
1998 | 5 | 3 |
1999 | 5 | 1 |
2001 | 1 | 0 |
합계 | 17 | 7 |
8. 수상 경력
8.1. 클럽
;삼프도리아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989-90
;파르마
- 코파 이탈리아: 1998-99
- UEFA컵: 1998-99
;피오렌티나
- 코파 이탈리아: 2000-0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준우승: 2001
;필리네
- 레가 프로 세콘다 디비시오네: 2008-09
- 수페르코파 디 레가 세콘다 디비시오네: 2008-09
8.2. 개인
- 구에린 금상: 1996
- UEFA컵 득점왕: 1998-99 (8골)
9. 같이 보기
- 페데리코 키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