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캐시 크라이너는 어린 시절부터 알파인 스키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가족의 지원 아래 캐나다 알파인 스키의 유망주로 성장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캐서린 크라이너는 1957년 5월 4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팀민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마거릿(Margaret, 애칭 페기)과 해럴드 O. 크라이너(Harold O. Kreiner, 1920-1999) 부부의 여섯 자녀 중 막내였다. 그녀의 아버지 해럴드 O. 크라이너는 팀민스에서 의사로 활동했으며, 캐시가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그녀의 코치 역할을 맡았다. 그는 또한 1966년 칠레 포르티요에서 열린 FIS 알파인 세계 스키 선수권 대회와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캐나다 알파인 스키팀의 팀 닥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캐시 크라이너는 팀민스 스키 클럽 소속으로 활동하며 어린 시절부터 스키 선수로서의 기량을 갈고닦았다.
1.2. 초기 활동
크라이너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캐나다 국가대표 'B'팀에 합류하여 1년간 활동했으며, 1971년 여름에는 'A'팀으로 승격되었다. 그녀는 1972년 1월 중순, 14세의 나이로 스위스 그린델발트에서 열린 1971-72 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 활강 경기에서 6위를 기록하며 첫 월드컵 톱 10에 진입했다. 3주 후, 그녀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1972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회전 경기에서 14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1973년에는 미국 알래스카주 알리에스카 리조트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전 경기에서 3위를 차지하며 생애 첫 월드컵 포디움에 올랐다. 16세가 되던 1974년에는 서독 프론텐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전 경기에서 우승하며 첫 월드컵 우승을 기록했다.
2. 주요 활동 및 성과
캐시 크라이너는 선수 경력 동안 세 차례의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특히 1976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정점에 올랐다. 월드컵 서킷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며 캐나다 알파인 스키의 위상을 높였다.
2.1. 올림픽 경력
크라이너는 세 차례의 동계 올림픽에 캐나다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 1972년 동계 올림픽 (삿포로): 14세의 나이로 참가하여 회전에서 14위, 활강에서 33위를 기록했다.
- 1976년 동계 올림픽 (인스브루크):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그녀는 여자 대회전 종목에 출전했다. 2월 13일, 1번 주자로 출발한 크라이너는 1분 29.13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금메달은 당시 3관왕을 노리던 서독의 로지 미터마이어가 은메달에 머물게 하며 미터마이어의 전 종목 석권을 저지했다. 또한, 이 메달은 1976년 인스브루크 동계 올림픽에서 캐나다가 획득한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크라이너는 올림픽 우승 당시 18세로, 자신의 우승에 스스로도 놀라 대부분의 짐을 이미 집으로 보낸 상태였고, 시상식을 위해 유니폼을 빌려 입어야 했다고 전해진다. 같은 대회에서 그녀는 활강에서 19위, 회전에서는 1차 시기에서 실격(DNF1) 처리되었다.
- 1980년 동계 올림픽 (레이크플래시드):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의 화이트페이스 산에서 열린 1980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활강에서 5위, 대회전에서 9위를 기록했으며, 회전에서는 15위를 차지했다.
2.2. 월드컵 경력
크라이너는 월드컵 서킷에서 10시즌 동안 활약하며 총 1승, 7회의 포디움(대회전 6회, 활강 1회), 그리고 47회의 톱 10 기록을 세웠다.
시즌 | 나이 | 종합 순위 | 회전 | 대회전 | 슈퍼대회전 | 활강 | 복합 |
---|---|---|---|---|---|---|---|
1972 | 14 | 31 | - | - | 미개최 | 15 | 미시상 |
1973 | 15 | 24 | 17 | 12 | 16 | ||
1974 | 16 | 10 | 13 | 8 | 20 | ||
1975 | 17 | 12 | 25 | 8 | 15 | ||
1976 | 18 | 23 | - | 8 | - | - | |
1977 | 19 | 13 | - | 4 | 19 | 미시상 | |
1978 | 20 | 25 | 21 | 18 | 15 | ||
1979 | 21 | 71 | - | - | 42 | ||
1980 | 22 | 31 | - | 20 | 20 | 12 | |
1981 | 23 | 27 | - | 30 | 15 | 17 |
월드컵 점수는 1979년까지는 톱 10, 이후에는 톱 15위 이내의 선수에게만 부여되었다.
월드컵 포디움 기록
시즌 | 날짜 | 장소 | 종목 | 순위 |
---|---|---|---|---|
1973 | 1973년 3월 7일 | Anchorage영어, 알래스카주, 미국 | 대회전 | 3위 |
1974 | 1974년 1월 6일 | 프론텐, 서독 | 대회전 | 1위 |
1975 | 1975년 3월 7일 |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캐나다 | 대회전 | 3위 |
1976 | 1976년 동계 올림픽 | |||
1976년 3월 19일 | 퀘벡주, 캐나다 | 대회전 | 3위 | |
1977 | 1977년 1월 20일 | 아로자, 스위스 | 대회전 | 2위 |
1977년 3월 6일 | 선밸리, 아이다호주, 미국 | 대회전 | 2위 | |
1981 | 1980년 12월 12일 | 발디제르, 프랑스 | 활강 | 2위 |
1980-81 시즌은 그녀의 마지막 시즌이었으며, 이 시즌에 캐나다 국가대표팀과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유일한 활강 월드컵 포디움에 올랐다. 그녀의 마지막 대회전 포디움은 1977년 3월 선밸리에서 기록되었다.
2.3. 세계 선수권 대회 결과
1948년부터 1980년까지 동계 올림픽은 FIS 알파인 세계 스키 선수권 대회를 겸했으므로, 올림픽 챔피언은 동시에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캐시 크라이너는 1976년 동계 올림픽 대회전 우승을 통해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 선수권 금메달을 동시에 획득했다.
연도 | 나이 | 회전 | 대회전 | 슈퍼대회전 | 활강 | 복합 |
---|---|---|---|---|---|---|
1972 | 14 | 14 | - | 미개최 | 33 | - |
1974 | 16 | 15 | DNF | 7 | - | |
1976 | 18 | DNF1 | 1 | 19 | - | |
1978 | 20 | 17 | 21 | 12 | 4 | |
1980 | 22 | 15 | 9 | 5 | 4 |
1954년부터 1980년까지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복합 종목은 활강, 대회전, 회전 세 종목의 결과를 합산하여 순위를 매기는 "페이퍼 레이스"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3. 개인 생활
캐시 크라이너는 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이자 캐나다 국가대표팀 소속이었던 데이브 필립스와 결혼했다.
4. 평가
캐시 크라이너는 캐나다 알파인 스키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업적을 남겼으며, 그녀의 성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4.1. 긍정적 평가
크라이너는 1976년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캐나다 올해의 여성 선수상을 수상하며 그 해 캐나다 최고의 여성 스포츠인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18세의 어린 나이에 캐나다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02년에는 온타리오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헌액은 그녀가 캐나다 스포츠계에 미친 지대한 영향과 역사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4.2. 지역적 상징성
크라이너는 그녀의 고향인 팀민스에서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남아있으며, 이는 지역 사회에 큰 자부심과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녀의 성공은 팀민스 지역의 스포츠 발전과 젊은 스키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5. 영향
캐시 크라이너의 올림픽 금메달은 캐나다 알파인 스키 역사상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녀는 캐나다 스키 신동의 상징이자, 후배 선수들에게 올림픽 무대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녀의 활약은 캐나다 알파인 스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스포츠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6. 관련 항목
- 로리 크라이너: 캐시 크라이너의 언니로, 역시 캐나다 국가대표 알파인 스키 선수로 활동했으며 두 차례 올림픽에 참가했다. 1972년 동계 올림픽 대회전에서 4위를 기록하며 메달을 아깝게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