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미겔 포를란 노게라(Miguel Porlán Noguera스페인어, 1961년 10월 12일 ~ )는 '첸도'(Chendo스페인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우측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선수 경력의 전부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원클럽맨으로, 17시즌 동안 총 497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며 구단의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도 활약하며 두 차례의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첸도는 단순히 오랜 시간 한 팀에 헌신한 것을 넘어, 그의 겸손함과 끈기 있는 플레이로 팀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적인 선수로 평가받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2. 생애 초반 및 배경
첸도의 어린 시절과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기까지의 초기 경력은 그의 축구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무르시아 지방 토타나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였다.
2.1. 출생 및 유년기
미겔 포를란 노게라는 1961년 10월 12일, 스페인 무르시아 지방의 토타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잠재력은 일찍이 레알 마드리드의 주목을 받았다. 15세의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합류하며 명문 구단에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2.2.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및 초기 성인 경력
첸도는 15세에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한 후, 5년간 유소년팀에서 훈련을 받으며 기량을 갈고닦았다. 그는 1982년 4월 11일, 카스테욘과의 원정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꿈에 그리던 1군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다음 시즌인 1982-83 시즌에는 2번의 리그 경기에 더 출전하며 점진적으로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의 유소년 시절부터 성인 팀 초기까지의 꾸준한 성장은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하는 발판이 되었다.
3. 클럽 경력
첸도는 17시즌 동안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면서 구단의 역사적인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독수리 오형제' 시대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팀의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3.1. 주전 도약 및 전성기
1983-84 시즌 초, 주전 우측 수비수였던 후안 호세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첸도에게 주전으로 뛸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활약했으며, 후안 호세가 복귀한 후에도 경쟁을 통해 다시 주전 자리를 꿰차며 시즌 전체 26경기에 출전했다.
1984-85 시즌은 첸도가 레알 마드리드의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해였다. 그는 25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했고, 유럽대항전에서도 11경기를 소화했다. 이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헝가리의 페헤르바르를 상대로 UEFA컵 결승전에서 합계 3-1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차지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합계 4-3으로 꺾고 코파 데 라 리가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첸도는 이 두 결승전 모두 선발로 출전하며 팀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록 리그에서는 5위에 그치며 바르셀로나에 17점 차로 뒤졌지만, 국내외 컵대회 우승을 통해 그의 기량과 팀 내 위상을 증명했다.
이후 8시즌 동안 첸도는 리그 5연패를 달성한 '독수리 오형제' 시대의 부동의 우측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320번의 공식 경기 중 297번을 선발로 출전하며 팀의 수비를 굳건히 책임졌고, 이 기간 동안 팀은 수많은 국내외 타이틀을 획득했다.
3.2. 후기 경력 및 은퇴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첸도의 출전 기회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난도, 루이스 엔리케, 파코 요렌테 등 새로운 선수들의 등장과 함께 그는 3순위 선수로 밀려나 이 기간 동안 34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이후에도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 카를로스 세크레타리오, 크리스티안 파누치 등에게 밀려 주로 후보 선수로 활약했다. 비록 1995-96 시즌에 23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은 리그 6위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 시기에 그는 경기장 안에서의 활약보다는 마누엘 산치스와 같이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벤치 주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베테랑으로서 팀에 기여했다.
1998년 5월 20일, 레알 마드리드가 유벤투스를 꺾고 7번째 유러피언컵을 들어 올린 후, 첸도는 37세의 나이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의 마지막 시즌은 구단의 유럽 정상 복귀와 함께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3.3. 은퇴 후 활동
현역 은퇴 후 첸도는 곧바로 레알 마드리드 구단 내부에서 '경기 고문'이라는 직책을 맡으며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직책을 유지하며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구단의 운영에 기여했다.
그의 은퇴 후 활동 중에는 흥미로운 일화도 있었다. 2010년 5월 16일, 구티와 벤치에서 언쟁을 벌였다는 소식이 디아리오 아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또한, 2011년 5월, 그의 고향인 무르시아 지역이 지진 피해를 입자, 레알 마드리드는 무르시아 선발팀과의 자선 경기를 개최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조제 모리뉴의 제안으로 첸도는 리카르두 카르발류의 등번호 2번 유니폼을 입고 10분간 피치에 나서 현역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는 단순한 자선 경기를 넘어, 고향에 대한 그의 애정과 레알 마드리드 구단에 대한 헌신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4. 국가대표 경력
첸도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며 FIFA 월드컵과 같은 주요 국제 대회에서 자국을 대표했다.
4.1. 국가대표 데뷔 및 주요 국제 대회 참가
첸도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총 26번의 국제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986년 1월 22일 카나리아 제도 라스팔마스에서 열린 소련과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스페인은 2-0으로 승리했다.
그는 두 차례의 FIFA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의 토마스의 백업 선수로 뛰었으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총 5번의 월드컵 본선 경기에 출전했다. 월드컵 무대에서의 그의 경험은 스페인 대표팀의 수비 안정화에 기여했으며,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5. 개인사
첸도의 사적인 삶에는 축구 경력만큼이나 극적인 순간이 있었다. 특히 가족과 관련된 비극적인 사건은 그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5.1. 비극적인 사건
1986년 7월 2일, 24세의 첸도는 킨타나르 데 라 오르덴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인해 태어난 지 갓 한 달 된 그의 아들 미겔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첸도와 그의 배우자 마리아 델 빌라르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그의 처남은 오른팔과 팔꿈치에 골절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그의 삶에 큰 상처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첸도는 이후에도 묵묵히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였다.
6.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
첸도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우측 수비수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기술적인 능력과 전술적 이해도를 바탕으로 팀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6.1. 플레이 스타일
첸도는 주로 우측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특유의 빠른 발을 활용한 공격 가담과 뛰어난 수비 커버링 능력이 돋보였다. 그는 경기 중 종종 측면에서 공격에 참여하여 팀의 찬스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동시에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데 능했다. 특히, 디에고 마라도나와 같은 당대 최고의 공격수를 막는 중요한 임무를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수비수로서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 일화에 따르면, 그는 훈련 중 마라도나에게 '알까기'(caño스페인어)를 성공시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기술적 능력과 더불어, 전술적인 이해도가 높아 팀의 수비 조직력에 크게 기여했다.
6.2. 평가 및 유산
첸도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17시즌 동안 497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며 모든 전문 경력을 한 클럽에서만 보낸 진정한 원클럽맨으로 평가받는다. 구단 역사상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이어 두 번째로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마친 인물로 기록되며, 그의 구단에 대한 헌신과 충성심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독수리 오형제' 시대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7번의 라리가 우승, 2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겸손하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그의 태도는 '겸손한 영웅'이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 은퇴 후에도 20년 넘게 구단의 '경기 고문'으로 활동하며 구단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었다. 첸도는 단순한 선수를 넘어,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인물로 깊이 기억되고 있다.
7. 통계
첸도의 선수 경력 동안 기록한 주요 통계는 다음과 같다.
클럽 | 시즌 | 리그 | 코파 데 라 리가 | 코파 델 레이 | 유럽 | 기타 | 합계 | ||||||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
레알 마드리드 | 1981-82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1982-83 | 2 | 0 | 0 | 0 | 0 | 0 | 0 | 0 | 0 | 0 | 2 | 0 | |
1983-84 | 21 | 0 | 0 | 0 | 5 | 0 | 0 | 0 | 0 | 0 | 26 | 0 | |
1984-85 | 25 | 0 | 6 | 0 | 1 | 0 | 11 | 0 | 0 | 0 | 43 | 0 | |
1985-86 | 30 | 0 | 0 | 0 | 5 | 0 | 10 | 0 | 0 | 0 | 45 | 0 | |
1986-87 | 40 | 0 | 0 | 0 | 6 | 0 | 8 | 0 | 0 | 0 | 52 | 0 | |
1987-88 | 31 | 1 | 0 | 0 | 7 | 0 | 8 | 0 | 0 | 0 | 46 | 1 | |
1988-89 | 26 | 0 | 0 | 0 | 7 | 0 | 5 | 0 | 0 | 0 | 38 | 0 | |
1989-90 | 37 | 1 | 0 | 0 | 5 | 0 | 4 | 0 | 0 | 0 | 46 | 1 | |
1990-91 | 36 | 0 | 0 | 0 | 0 | 0 | 5 | 0 | 0 | 0 | 40 | 0 | |
1991-92 | 37 | 0 | 0 | 0 | 7 | 0 | 10 | 0 | 0 | 0 | 54 | 0 | |
1992-93 | 12 | 0 | 0 | 0 | 4 | 0 | 2 | 0 | 0 | 0 | 16 | 0 | |
1993-94 | 12 | 0 | 0 | 0 | 0 | 0 | 0 | 0 | 1 | 0 | 13 | 0 | |
1994-95 | 10 | 1 | 0 | 0 | 0 | 0 | 2 | 0 | 0 | 0 | 12 | 1 | |
1995-96 | 23 | 0 | 0 | 0 | 2 | 0 | 4 | 0 | 0 | 0 | 27 | 0 | |
1996-97 | 16 | 0 | 0 | 0 | 2 | 0 | 0 | 0 | 0 | 0 | 18 | 0 | |
1997-98 | 4 | 0 | 0 | 0 | 1 | 0 | 1 | 0 | 0 | 0 | 6 | 0 | |
합계 | 363 | 3 | 6 | 0 | 52 | 0 | 70 | 0 | 1 | 0 | 497 | 3 |
8. 우승 기록
미겔 포를란 노게라, 즉 첸도는 선수 경력 동안 레알 마드리드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 우승 기록들을 달성했다.
레알 마드리드
- 라리가: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1994-95, 1996-97
- 코파 델 레이: 1988-89, 1992-93
- 코파 데 라 리가: 1985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88, 1989, 1990, 1993, 1997
- UEFA 챔피언스리그: 1997-98
- UEFA컵: 1984-85, 1985-86
- 코파 이베로아메리카나: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