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반 및 아마추어 경력
와타나베 지로는 1955년 3월 16일 일본 오카야마현 오다군 야카게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을 오사카부에서 보냈다. 그의 혈액형은 B형이다. 그는 나미쇼 고등학교(현 오사카체육대학 나미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테몬 가쿠인 대학 문학부 영미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영부에서 활동했으며, 대학 시절에는 일본권법부에서 활약하여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라테 유단자이기도 했던 와타나베는 대학 졸업 후 체급별 복싱에 관심을 가져 오사카 제이켄 체육관에 아마추어 선수로 입문했다. 그의 아마추어 전적은 4전 4승 무패였다.
2. 프로 복싱 경력
와타나베 지로는 쇼토칸 가라테 배경을 바탕으로 1979년 프로 복싱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데뷔 초부터 강력한 KO 능력을 선보이며 주목받았고, 이후 세계 챔피언으로 등극하여 여러 차례 타이틀을 방어했다. 그의 복싱 경력은 세계 타이틀 획득과 방어전, 그리고 논란이 된 통합 시도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2.1. 초기 프로 경기
와타나베는 1979년 3월 27일 고향인 오카야마에서 게이조 미야자키를 상대로 3라운드 KO 승을 거두며 프로 데뷔했다. 이후 유키히로 가와히라와 노보루 이시이를 상대로 1라운드 KO 승리를 추가하며 연승을 이어갔다. 이시이와의 즉각적인 재대결에서는 이시이가 더 강하게 저항했으나, 와타나베는 6라운드 KO로 다시 승리했다.
그는 KO승 3회를 추가했는데, 이 중 2회는 1라운드 KO였다. 여기에는 전 세계 챔피언 로열 고바야시의 형이자 미래의 WBC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 될 고지 고바야시를 상대로 한 KO승도 포함된다. 이후 와타나베는 나고야에서 진현춘을 상대로 처음으로 판정까지 가는 경기를 치렀으며, 6라운드 판정승을 거두었다.
두 번의 판정승을 더 거둔 후, 와타나베는 한국으로 건너가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김철호에게 도전했으나, 첫 세계 타이틀 도전에서 15라운드 판정패를 당했다. 와타나베는 일본으로 돌아와 1981년 남은 4경기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이 중 3경기는 KO승이었다. 그가 이긴 선수 중 한 명은 당시 슈퍼플라이급 세계 랭킹 1위였던 티토 아벨라였는데, 와타나베는 그를 4라운드 KO로 쓰러뜨렸다.
2.2. WBA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십
1982년 4월 8일, 파나마 출신의 WBA 슈퍼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라파엘 페드로사가 오사카로 와서 와타나베를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했다. 와타나베는 15라운드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1982년 그의 남은 경기들은 모두 타이틀 방어전이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전 세계 챔피언 구스타보 발라스를 9라운드 KO로, 전 2회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오구마 쇼지를 12라운드 KO로 꺾었다.
1983년은 와타나베에게 또 다른 바쁜 해였다. 그는 루이스 이바녜스를 8라운드 KO로, 멕시코의 로베르토 라미레스를 15라운드 판정으로, 권순천을 11라운드 테크니컬 디시전으로 이겼다. 권순천과의 경기에서 와타나베는 상당한 점수 리드를 쌓고 있었으나, 10라운드에서 두 선수의 머리가 충돌하여 와타나베의 머리에 부상이 발생했다. 피가 많이 흘러 11라운드에서 주치의가 경기를 중단시켰는데, 헤드 버트로 인한 부상으로 판정되어 경기는 점수판으로 넘어갔고 와타나베가 승자로 선언되었다.
1984년에는 또 다른 베네수엘라 도전자 셀소 차베스를 15라운드 KO로 물리쳤다.
2.3.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십 및 통합
1984년 7월 5일, 와타나베는 태국의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파야오 푼타랏과 통합 타이틀전을 치렀다. 그러나 WBA는 이 통합전 개최를 인정하지 않고 와타나베에게 랭킹 1위 도전자 카오사이 갤럭시와의 방어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WBA 타이틀을 박탈했다. 이로 인해 와타나베는 WBA 타이틀을 박탈당했지만, 파야오와의 경기에서 12라운드 판정승을 거두며 WBC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경기 후 와타나베는 해당 체급의 첫 라인이얼 챔피언이 되었다. 일본 소스에 따르면, 이 통합전은 파야오에게 와타나베가 도전하는 변칙적인 형태였고, WBA와 WBC의 15라운드/12라운드 규칙 차이가 주된 문제였다. WBA는 와타나베가 링에 오르는 순간 타이틀을 박탈하지 않고 경기 종료 후 박탈 조치하여, 잠시나마 WBA와 WBC의 통합 챔피언 기록이 남게 되었다. 이 경기는 2-1의 미묘한 판정으로 와타나베가 승리했으며, 파야오 측은 판정에 불만을 제기했다. 와타나베 본인도 나중에 "권투 실력으로는 상대가 한 수 위였다"고 회고했다.
통합전 직후 파야오 푼타랏과의 재대결이 있었고, 와타나베는 다시금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며 11라운드 KO 승리를 거두었다. 1985년 5월 9일, 그는 훌리오 소토 솔라노에게 12라운드 판정승을 거두며 타이틀을 방어했다. 이어서 가쓰오 가쓰마(KO 7라운드)와 윤석환(KO 5라운드)에게 승리했다. 특히 1985년 12월 13일 한국 대구에서 열린 윤석환과의 방어전에서는 6차례 다운을 뺏으며 5라운드 KO 승리를 거두어, 일본인 세계 챔피언 최초로 해외에서 세계 왕좌 방어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WBC 챔피언으로서 총 4차례의 방어에 성공했다. 이 기간 동안 달성한 세계 타이틀전 12연승은 구시켄 요코의 14연승에 이어 일본 복서 중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2.4. 복싱 은퇴
1986년 3월 30일, 와타나베는 이타미시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5차 방어전에서 힐베르토 로만(Gilberto Roman스페인어, 멕시코)에게 12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세계 왕좌를 잃었다. 이 경기는 그의 마지막 프로 경기가 되었다.
로만에게 패배한 후, 와타나베는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기에 복귀를 목표로 훈련을 계속했다. 그러나 당시 같은 체육관의 연습생이었던 다쓰요시 조이치로와의 스파링에서 다쓰요시의 재능과 감각에 놀랐고, 이것이 그의 은퇴 계기가 되었다. 현역 시절에는 일절 흡연하지 않았으나, 은퇴와 현역 지속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밤길에서 문득 담배 자판기를 발견하여 담배를 구입했다. 그 담배를 피운 후 "아, 이제 끝났구나"라고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나중에 회고했다. 그는 많은 다른 복서들과 달리 은퇴 후 예전 인기를 되찾으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권투계를 떠났다.
와타나베의 WBA 타이틀 후임은 카오사이 갤럭시가 차지했다. 갤럭시는 에우세비오 에스피날을 상대로 공석이 된 타이틀을 획득했고, 이후 슈퍼플라이급에서 19연속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7년 이상 왕좌에 군림하다가 은퇴했다.
1999년 8월, 와타나베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복싱 위대한 챔피언들을 기념하는 행사에 파이팅 하라다, 장정구, 구시켄 요코, 솟 치탈라다, 그리고 전 라이벌 김철호와 파야오 푼타랏 등과 함께 참석한 것이 목격되었다.
3. 은퇴 후 활동 및 법적 논란
와타나베 지로는 복싱 은퇴 후 다양한 활동을 펼쳤지만, 동시에 여러 차례 법적 문제와 논란에 휘말리며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조직 폭력배와의 연루 의혹은 그의 명성과 사회적 지위에 큰 타격을 주었다.
3.1. 초기 활동
은퇴 후 와타나베는 사업가로 변신하여 오사카에서 수입업체를 운영했다. 또한 복싱 해설가, 강연가, 텔레비전 탤런트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대중적인 인물로 활동했다. 그는 복싱 매거진에 복서 지망생을 위한 연재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 연재에서 그는 "복서로서 재능이 없다고 깨달으면 그만둬야 한다. 복싱 세계는 약한 자에게 더 가혹하고 힘들다"와 같은 현실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기차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동체 시력을 훈련하라"는 독특한 훈련법이나, "땀으로 젖은 티셔츠는 다른 연습생에게 불쾌감을 주므로 갈아입으라"는 등의 마음가짐을 언급하며 일반적인 입문서와는 차별화된 내용을 선보였다.
3.2. 법적 사건 및 체포
와타나베는 은퇴 후 여러 차례 법적 사건에 연루되었다.
- 1995년 8월, 그는 금융기관의 융자 상환과 관련된 공갈미수 사건으로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 처분으로 풀려났다. 당시 그는 채무자들에게 "때려 죽이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 1999년 10월, 살인 사건에 사용된 자동소총 거래에 연루되어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 및 기소되었다. 시마다 신스케가 정상 참작 증인으로 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7월 그는 실형을 선고받고 4년 6개월간 복역 후 2004년에 출소했다.
- 2007년 6월 4일, 그는 지인의 폭행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를 강요한 혐의(증인 등 위협죄)로 오사카부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일주일 후 불기소로 풀려났다.
- 2007년 6월 30일에는 하가 겐지와 연루된 미공개 주식 사기 사건에 관련하여 공갈미수 혐의로 체포 및 기소되었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오사카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3년 4월 1일 상고가 기각되어 2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변호인 측 증인이 위증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3.3. 야쿠자 연루 의혹 및 대중적 이미지
하가 겐지 사건 당시, 와타나베 지로가 지정폭력단 야마구치구미 계열의 교쿠신 연합회 관계자였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러한 보도와 법적 문제들로 인해 그의 대중적 이미지는 크게 손상되었다. 2007년 7월 27일, JBC는 와타나베를 앞으로 역대 세계 챔피언 명단에 포함하지 않을 방침이며, 무기한 라이선스 정지 처분을 내려 복싱계에서 사실상 영구 추방되었다. 교쿠신 연합회는 2019년에 해산되었으나, 와타나베의 현재 동향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2011년에는 시마다 신스케의 연예계 은퇴 소동과 관련하여, 그 은퇴의 원인이 된 이메일 상대가 와타나베였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2012년 11월 30일, 그는 야쿠자 관계자임을 숨기고 골프장을 이용한 혐의(사기죄)로 야마구치구미 최고 간부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12월 28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3.4. 명예훼손 소송
2016년 2월 4일, TV 아사히의 『호도 스테이션』에서 한 전직 형사가 "기요하라 가즈히로가 오사카를 거점으로 하는 전 세계 챔피언 프로 복서로부터 폭력단원을 소개받았다"고 증언한 내용을 보도했는데, 와타나베는 이 보도가 자신의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TV 아사히에 1000.00 만 JPY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6월 29일 오사카 지방법원은 와타나베의 과거 경력을 바탕으로 "시청자가 보도된 인물이 와타나베라고 연상하기 어렵지 않다"며 TV 아사히에게 150.00 만 JPY의 지급을 명령했다.
4. 복싱 스타일 및 일화
와타나베의 현역 시절 복싱 스타일은 "파이팅 컴퓨터"라고 불릴 정도로 영리한 경기 운영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경기의 극적인 요소가 부족하고 큰 볼거리가 적은 경기도 많았다.
파이팅 하라다가 십수 킬로그램의 감량을 이야기했을 때, 와타나베는 "그렇게 체중이 늘어난 것은 평소 절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니, 자랑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로만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 와타나베는 육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복귀를 목표로 훈련을 계속했다. 그러나 당시 같은 체육관의 연습생이었던 다쓰요시 조이치로와의 스파링에서 다쓰요시의 비범한 재능과 감각에 놀라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현역 시절에는 절대 흡연하지 않았지만, 은퇴와 현역 지속을 고민하던 중 밤길에서 우연히 담배 자판기를 발견하여 담배를 사서 피웠다. 그 담배를 피운 후 "아, 이제 끝났구나"라고 중얼거리며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고 나중에 회고했다.
5. 평가 및 영향
와타나베 지로는 일본 복싱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세계 챔피언이지만, 그의 은퇴 후의 삶과 법적 논란은 그의 복싱 업적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경력은 성공과 비판이 공존하는 복잡한 인물상을 보여준다.
5.1. 복싱 업적
와타나베 지로는 WBA와 WBC 두 단체의 슈퍼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을 지낸 뛰어난 복서였다. 그는 WBA 타이틀을 6차례, WBC 타이틀을 4차례 성공적으로 방어했으며, 특히 한국에서 일본인 세계 챔피언 최초로 해외 방어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의 12연속 세계 타이틀전 승리는 일본 복싱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그는 체계적이고 영리한 "파이팅 컴퓨터" 스타일로 경기를 운영하며, 기술적인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는 해당 체급의 초대 직선 챔피언으로 인정받으며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5.2. 비판 및 논란
와타나베는 복싱계에서 은퇴한 이후 사업가로 변신하여 활동했으나, 여러 차례 법적 문제에 연루되면서 대중적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공갈협박, 총기 불법 소지, 사기 등 중대 범죄 혐의로 체포되고 실형을 선고받은 점은 그의 도덕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야쿠자 조직과의 연루 의혹은 그의 이미지를 더욱 실추시켰고, 결국 JBC로부터 영구 제명되는 등 권투계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는 그가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지 못했으며, 그의 행동이 복싱 스포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주요 원인이다. 그의 삶은 링 위에서의 빛나는 성공과 링 밖에서의 어두운 면모가 극명하게 대비되며, 그의 복싱 업적만큼이나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6. 프로 복싱 전적
번호 | 결과 | 전적 | 상대 | 유형 | 라운드, 시간 | 날짜 | 장소 | 비고 |
---|---|---|---|---|---|---|---|---|
28 | 패 | 26-2 | 힐베르토 로만 | UD | 12 | 1986년 3월 30일 | Sports Centre, Itami Japan영어 |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상실 |
27 | 승 | 26-1 | 윤석환 | TKO | 5 (12), 2:34 | 1985년 12월 13일 | Municipal Stadium, Daegu South Korea영어 |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4차) |
26 | 승 | 25-1 | 가쓰마 가즈오 | TKO | 12 (12), 1:26 | 1985년 9월 17일 | Osaka-Jo Hall, Osaka Japan영어 |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3차) |
25 | 승 | 24-1 | 훌리오 소토 솔라노 | UD | 12 | 1985년 5월 9일 | Korakuen Hall Japan영어 |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2차) |
24 | 승 | 23-1 | 파야오 푼타랏 | TKO | 11 (12) 1:54 | 1984년 11월 29일 | Prefectural Gymnasium, Kumamoto Japan영어 |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1차) |
23 | 승 | 22-1 | 파야오 푼타랏 | SD | 12 | 1984년 7월 5일 | Osaka-Jo Hall, Osaka Japan영어 |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획득; WBA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박탈 |
22 | 승 | 21-1 | 셀소 차베스 | TKO | 15 (15) | 1984년 3월 15일 | Osaka-Jo Hall, Osaka Japan영어 | WBA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6차) |
21 | 승 | 20-1 | 권순천 | TD | 11 (12), 3:00 | 1983년 10월 6일 | Prefectural Gymnasium, Osaka Japan영어 | WBA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5차) |
20 | 승 | 19-1 | 로베르토 라미레스 | MD | 15 | 1983년 6월 23일 | Miyagi Sports Center, Sendai Japan영어 | WBA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4차) |
19 | 승 | 18-1 | 루이스 이바녜스 | KO | 8 (15), 1:22 | 1983년 2월 14일 | Municipal Gym, Tsu Japan영어 | WBA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3차) |
18 | 승 | 17-1 | 오구마 쇼지 | TKO | 12 (15) | 1982년 11월 11일 | City Gymnasium, Hamamatsu Japan영어 | WBA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2차) |
17 | 승 | 16-1 | 구스타보 발라스 | RTD | 9 (15), 3:00 | 1982년 7월 29일 | Prefectural Gymnasium, Osaka Japan영어 | WBA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1차) |
16 | 승 | 15-1 | 라파엘 페드로사 | UD | 15 | 1982년 4월 8일 | Prefectural Gymnasium, Osaka Japan영어 | WBA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획득 |
15 | 승 | 14-1 | 티토 아벨라 | KO | 4 (10), 1:46 | 1981년 11월 25일 | Prefectural Gymnasium, Osaka Japan영어 | |
14 | 승 | 13-1 | 알리바바 룩클롱얀 | KO | 5 (10), 2:25 | 1981년 10월 10일 | Korakuen Hall Japan영어 | |
13 | 승 | 12-1 | 이광석 | UD | 10 | 1981년 8월 9일 | Korakuen Hall Japan영어 | |
12 | 승 | 11-1 | 베를린 올리베티 | KO | 2 (10), 2:22 | 1981년 6월 29일 | Prefectural Gymnasium, Osaka Japan영어 | |
11 | 패 | 10-1 | 김철호 | UD | 15 | 1981년 4월 22일 | Changchung Gymnasium, Seoul South Korea영어 |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도전 |
10 | 승 | 10-0 | 팍타이 리포비탄 | PTS | 10 | 1980년 12월 15일 | Prefectural Gymnasium, Osaka Japan영어 | |
9 | 승 | 9-0 | 착텝 츄와타나 | PTS | 10 | 1980년 9월 2일 | Korakuen Hall Japan영어 | |
8 | 승 | 8-0 | 조진현 | PTS | 6 | 1980년 6월 14일 | Aichi Prefectural Gym, Nagoya Japan영어 | |
7 | 승 | 7-0 | 고지 고바야시 | KO | 1 (6), 2:15 | 1980년 2월 21일 | Prefectural Gymnasium, Osaka Japan영어 | 전일본 플라이급 신인왕 |
6 | 승 | 6-0 | 가와히라 요시히코 | KO | 4 (6), 1:47 | 1980년 1월 19일 | City Gymnasium, Yokkaichi Japan영어 | |
5 | 승 | 5-0 | 다카기 신지 | KO | 1 (6), 1:46 | 1979년 12월 1일 | Budokan, Okayama City Japan영어 | 서일본 플라이급 신인왕 |
4 | 승 | 4-0 | 이시이 노보루 | KO | 6 (6), 2:16 | 1979년 11월 1일 | Prefectural Gymnasium, Osaka Japan영어 | |
3 | 승 | 3-0 | 이시이 노보루 | KO | 1 (4), 1:25 | 1979년 7월 28일 | Sakuranomiya Skating Rink, Osaka Japan영어 | |
2 | 승 | 2-0 | 가와히라 요시히코 | KO | 1 (4), 2:35 | 1979년 5월 19일 | Suzuyo Gym, Shimizu Japan영어 | |
1 | 승 | 1-0 | 미야자키 게이조 | KO | 3 (4), 2:50 | 1979년 3월 27일 | Budokan, Okayama City Japan영어 | 프로 데뷔전 |
7. 같이 보기
- 슈퍼플라이급 복싱 챔피언 목록
- 일본 복싱 세계 챔피언 목록
- 일본의 복싱
- 남자 복서 목록
- 세계 복싱 협회 세계 챔피언 목록
- 세계 복싱 평의회 세계 챔피언 목록
- 통일 세계 챔피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