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년기 및 초기 경력
1.1. 출생 및 유년기
제이로이드 타파리 새뮤얼은 1981년 3월 29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산페르난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잉글랜드 런던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1.2. 유소년 클럽 경력
새뮤얼은 어린 시절 런던에 기반을 둔 선랩이라는 선데이 리그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1994년에는 이 팀에서 존 테리, 저메인 데포와 같은 미래의 잉글랜드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그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찰턴 애슬레틱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활약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는 폴 콘체스키, 바비 자모라, 피츠 홀 등과 같은 날 방출되기도 했다. 1997년 7월, 새뮤얼은 아스톤 빌라의 유소년 훈련생으로 입단하여 1997-98 시즌과 1998-99 시즌을 유소년 팀에서 보냈다.
2. 클럽 경력
새뮤얼은 아스톤 빌라에서의 데뷔를 시작으로 여러 클럽을 거치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여러 팀에서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1. 애스턴 빌라
아스톤 빌라 유소년 팀에서 훈련생으로 활동하던 새뮤얼은 1999년 9월 21일 빌라 파크에서 열린 리그 컵 2라운드 2차전 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가레스 배리와 교체되어 51분간 뛰며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아스톤 빌라의 5대0 승리로 끝났다. 2000년 3월 25일, 잉글랜드 국가대표 선수인 가레스 사우스게이트의 부상으로 인해 더비 카운티와의 홈 경기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중앙 수비수로 출전하여 2대0 승리에 기여했다.
2001년 10월 25일부터 12월 3일까지 1부 리그 소속의 질링엄으로 임대되어 7번의 선발 출전과 1번의 교체 출전을 기록했다. 아스톤 빌라로 복귀한 후, 당시 주전 라이트백이던 마크 딜레이니가 부상을 당하자 그의 자리를 메웠다. 딜레이니가 복귀한 후에는 자신이 선호하던 레프트백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그는 2013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다재다능함이 주전 선수로 발돋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단 한 포지션에서만 뛸 수 있다면 경기에 나서기 어렵지만, 여러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라고 말했다.
2003-04 시즌에는 아스톤 빌라가 프리미어리그에서 6위를 차지하는 동안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2003년 9월 20일, 그는 전 소속팀인 찰턴 애슬레틱을 상대로 약 19 yd 거리에서 첫 프로 경력 골을 터뜨려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2004년 3월 27일 더 밸리에서 열린 찰턴과의 원정 경기에서도 득점하며 같은 점수로 승리했다. 같은 시즌 1월 27일, 볼턴 원더러스와의 리그 컵 준결승 2차전에서 2대0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하는 골을 넣었으나, 볼턴이 합계 5대4로 결승에 진출했다.
아스톤 빌라에서의 마지막 시기에는 데이비드 오리어리와 마틴 오닐 감독이 빌프레드 부마를 선호하면서 팀 내 입지를 잃게 되었다. 그는 아스톤 빌라에서 총 198경기에 출전했다.
2.2. 볼턴 원더러스

2007년 7월 1일, 새뮤얼은 볼턴 원더러스와 4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는 새미 리 감독의 볼턴 부임 후 첫 영입이었다. 그는 2008-09 시즌 볼턴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으며, 볼턴 소속으로 총 71경기에 출전했다.
2011년 3월 24일, 새뮤얼은 부상당한 마크 허드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챔피언십 소속의 카디프 시티로 시즌 종료 시까지 임대되었다. 그는 2010-11 시즌 동안 부상으로 인해 볼턴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며, 시즌 종료 후 볼턴에서 방출되면서 4년간의 볼턴 생활을 마감했다.
2.3. 트라이얼 기간
볼턴 원더러스에서 방출된 후, 새뮤얼은 2011년 7월 19일 옛 아스톤 빌라 팀 동료인 사이먼 그레이슨이 감독을 맡고 있던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는 같은 날 로치데일과의 경기에 포함되어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되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테스트에서 탈락했다.
2011년 7월 30일, 새뮤얼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레알 사라고사와의 프리시즌 마지막 경기에 79분간 출전했으며, 웨스트햄은 2대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웨스트햄은 그에게 영구 계약을 제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4. 이란 리그

2011년 12월 31일, 새뮤얼은 이란 프로 리그 소속의 에스테글랄에 입단했으며, 현지 관습에 따라 양을 희생하는 환영식을 받았다. 그는 이전 볼턴 팀 동료였던 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과 재회했다. 이란에서는 주로 미드필더로 뛰었으며, 아스톤 빌라 공식 웹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전진하여 골을 넣을 수 있는 역할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에스테글랄에서의 첫 시즌에 하즈피 컵을 우승했으며, 1년 후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에스테글랄은 2013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새뮤얼은 FC 서울과의 준결승 2차전 홈 경기에서 2대2 무승부를 기록하는 골을 넣었다. 하지만 에스테글랄은 합계 4대2로 패배하여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3년 7월 12일, 새뮤얼은 에스테글랄과의 계약을 2014년까지 연장했다. 그러나 2014년 6월, 5개월간의 임금 체불 문제로 인해 구단을 떠났다. 그는 테헤란에 머물면서 2014년 6월 23일 새로 승격한 페이칸과 2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은 7월 1일부터 발효되었다.
2.5. 이저턴
잉글랜드로 돌아온 후, 새뮤얼은 체셔 리그 1부 (12부 리그) 소속의 이저턴에서 훈련했으며, 이 팀에는 에밀 헤스키, 대니 웨버, 에머슨 보이스, 네이선 엘링턴과 같은 전 프리미어리그 선수들도 함께 훈련하고 있었다. 새뮤얼은 해외에서 뛸 수 있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가족 가까이에 머물기 위해 이저턴을 선택했으며, 구단주는 그를 2017-18 시즌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했다.
새뮤얼의 사망 후, 그의 팀 동료였던 엘링턴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새뮤얼이 말년에 감비아에서 대규모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새뮤얼은 2004년 3월 아스톤 빌라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중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다. 당시 감독이던 스벤예란 에릭손이 그를 선발했다면 스웨덴과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할 수도 있었다. 그는 이전에 잉글랜드 U-18, U-20, U-21 대표팀에서 활약한 바 있다.
이후 새뮤얼은 2006 FIFA 월드컵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가대표로 뛰기를 원했으나, FIFA에 의해 신청이 거부되었다. 당시 규정은 21세 미만의 선수만이 국제적인 소속을 변경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7일, 바비 자모라와 새뮤얼이 트리니다드 토바고 여권을 취득하여 소카 워리어스 (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가대표팀의 별명)로 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9월 5일 온두라스와의 월드컵 예선 원정 경기 (4대1 패배)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 데뷔전을 치렀다. 나흘 후 미국과의 홈 경기 (1대0 패배)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했으며, 이 경기에서 옐로카드를 받았다.
4. 개인 생활
제이로이드 새뮤얼은 엠마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으며, 이전 관계에서 얻은 자녀 한 명도 있었다. 2006년에 태어난 그의 아들 라카일(Lakyle)은 맨체스터 시티의 아카데미 소속이며, 2023년 FIFA U-17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새뮤얼의 삶과 죽음은 2022년 ITVBe 다큐멘터리 '더 풋볼러, 히즈 와이프, 앤 더 크래시(The Footballer, His Wife, and the Crash)'에서 다뤄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새뮤얼이 이란에 패션 디자이너인 헬리아 사히미(Helia Sahimi)라는 비밀리에 두 번째 아내를 두었으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다.
5. 사망
2018년 5월 15일 아침, 새뮤얼은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 체셔의 하이 리에서 자신의 레인지로버 차량이 밴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상대 차량의 운전자는 중상을 입었다.
2019년 11월에 열린 부검에서 새뮤얼이 음주 운전 한도를 두 배 초과한 상태였고, 그의 차량이 도로의 반대편으로 벗어나 정면 충돌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날 밤 아스톤 빌라는 미들즈브러와의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경기에 검은색 완장을 착용하여 새뮤얼을 추모했다. 그가 사망 당시 소속되어 있던 이저턴 FC는 애도의 표시로 그 주에 남아있던 모든 경기를 취소했다.
새뮤얼의 시신은 심하게 불타서 치아 기록과 헤어브러시에 남아있던 DNA와 일치하는 혈액 샘플을 통해서만 신원이 확인될 수 있었다. 부검에 앞서 그의 여동생은 새뮤얼의 아내가 그의 죽음을 위조했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의 DNA와 대조할 수 있도록 샘플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시관은 해당 샘플이 새뮤얼의 아내의 소유임을 명시했다.
6. 수상 경력
- UEFA 인터토토컵: 2001
- 하즈피 컵: 2011-12
- 이란 프로 리그: 2012-13
7. 경력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대륙 대회 | 기타 (EFL컵 및 플레이오프 경기 포함) | 합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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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아스톤 빌라 | 1999-2000 | 프리미어리그 | 9 | 0 | 0 | 0 | 0 | 0 | 1 | 0 | 10 | 0 |
2000-01 | 3 | 0 | 1 | 0 | 3 | 0 | 0 | 0 | 7 | 0 | ||
2001-02 | 23 | 0 | 1 | 0 | 2 | 0 | 0 | 0 | 26 | 0 | ||
2002-03 | 38 | 0 | 1 | 0 | 1 | 0 | 4 | 0 | 44 | 0 | ||
2003-04 | 38 | 2 | 1 | 0 | 0 | 0 | 6 | 1 | 45 | 3 | ||
2004-05 | 35 | 0 | 1 | 0 | 0 | 0 | 2 | 0 | 38 | 0 | ||
2005-06 | 19 | 0 | 2 | 0 | 0 | 0 | 3 | 0 | 24 | 0 | ||
2006-07 | 4 | 0 | 1 | 0 | 0 | 0 | 0 | 0 | 5 | 0 | ||
합계 | 169 | 2 | 8 | 0 | 6 | 0 | 16 | 1 | 199 | 3 | ||
질링엄 (임대) | 2001-02 | 1부 리그 | 8 | 0 | 0 | 0 | 0 | 0 | 0 | 0 | 8 | 0 |
볼턴 원더러스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20 | 0 | 0 | 0 | 4 | 0 | 1 | 0 | 25 | 0 |
2008-09 | 38 | 0 | 1 | 0 | - | 1 | 0 | 40 | 0 | |||
2009-10 | 13 | 0 | 0 | 0 | - | 0 | 0 | 13 | 0 | |||
2010-11 | 0 | 0 | 0 | 0 | - | 0 | 0 | 0 | 0 | |||
합계 | 71 | 0 | 1 | 0 | 4 | 0 | 2 | 0 | 78 | 0 | ||
카디프 시티 (임대) | 2010-11 | 챔피언십 | 6 | 0 | 0 | 0 | - | 1 | 0 | 7 | 0 | |
에스테글랄 | 2011-12 | 이란 프로 리그 | 13 | 1 | 1 | 0 | 4 | 0 | - | 18 | 1 | |
2012-13 | 25 | 2 | 3 | 1 | 7 | 3 | - | 35 | 6 | |||
2013-14 | 22 | 1 | 3 | 1 | 9 | 1 | - | 34 | 3 | |||
합계 | 60 | 4 | 7 | 2 | 20 | 4 | - | 87 | 10 | |||
페이칸 | 2014-15 | 이란 프로 리그 | 27 | 0 | 1 | 0 | - | - | 28 | 0 | ||
경력 합계 | 341 | 6 | 17 | 2 | 30 | 4 | 19 | 1 | 407 |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