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장쥐안쥐안은 1981년 1월 2일 중화인민공화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키는 169 cm이다. 그녀는 양궁을 시작하기 전부터 운동에 재능을 보였으며, 어린 시절에는 투포환, 창던지기, 원반던지기와 같은 육상 종목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러한 초기 운동 경험은 그녀가 양궁 선수로서 필요한 신체적 능력과 집중력을 기르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2. 개인 생활
장쥐안쥐안은 2009년에 결혼하여 2010년에 자녀를 출산했다. 선수 생활 은퇴 후에도 그녀는 양궁계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2015년 기준으로 그녀는 고향인 칭다오에 위치한 양궁 센터의 부국장으로 재직하며 행정가로서 양궁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3. 양궁 경력

장쥐안쥐안은 2001년에 데뷔한 이래 여러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하여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3.1. 세계 양궁 선수권 대회
3.1.1. 2001 베이징
장쥐안쥐안은 2001년 자국 베이징에서 열린 2001년 세계 양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3.2. 올림픽
장쥐안쥐안은 두 차례의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며 세계적인 양궁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3.2.1. 2004년 하계 올림픽 (아테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장쥐안쥐안은 여자 개인전에 출전하여 랭킹 라운드에서 72발 합계 663점을 기록하며 전체 5위를 차지했다. 1회전에서는 프랑스의 오로라 트라얀을 135대 122로 꺾고 32강에 진출했으며, 2회전에서는 폴란드의 이워나 마르친키에비치를 166대 157로 물리치며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16강전에서 당시 랭킹 21위이자 최종 동메달리스트인 영국의 앨리슨 윌리엄슨에게 161대 165로 패배하며 개인전 10위로 대회를 마쳤다.
단체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결승전에서는 대한민국의 박성현이 마지막 발에서 10점을 쏴야 승리하는 상황에서 장쥐안쥐안이 여유를 가지고 춤을 추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성현이 거짓말처럼 10점을 명중시키면서 중국 팀은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3.2.2. 2008년 하계 올림픽 (베이징)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쥐안쥐안은 랭킹 라운드에서 635점을 기록하며 27번 시드를 받았다. 개인전에서는 낮은 시드에도 불구하고 강호들을 차례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1회전에서는 우크라이나의 테티아나 베레즈나를 109대 97로, 2회전에서는 6번 시드의 위안수치를 110대 105로 제압했다. 16강전에서는 11번 시드의 나탈리아 에르디니예바에게 110대 98로 승리했고, 8강전에서는 대한민국의 주현정을 106대 101로 꺾었다. 준결승에서는 2006년 아시안 게임 우승자인 대한민국의 윤옥희를 115대 109로 제압했다. 이때 장쥐안쥐안이 기록한 115점은 앞서 박성현이 세운 올림픽 기록과 동률을 이루는 점수였다.
결승전 상대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2관왕을 차지하고 이 대회에서도 2연속 2관왕에 도전하던 대한민국의 박성현이었다. 접전 끝에 장쥐안쥐안은 110대 109, 단 1점 차이로 박성현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그녀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케토 로사베리제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여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비한국인 선수가 되었으며,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올림픽 개인전 7연패를 저지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단체전에서는 천링, 궈단과 함께 출전했다. 랭킹 라운드에서 팀 합계 3위를 기록하여 8강에 직행했다. 8강전에서 인도 팀을 211대 206으로 꺾었고, 준결승에서는 영국 팀을 208대 202로 물리치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이 종목에서 모든 금메달을 획득해 온 대한민국 팀이었다. 중국 팀은 215점을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대한민국 팀이 224점이라는 압도적인 점수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가져갔고, 중국 팀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3.3. 아시안 게임
장쥐안쥐안은 아시안 게임에서도 꾸준히 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최정상급 선수임을 입증했다.
3.3.1. 2002년 아시안 게임 (부산)
장쥐안쥐안은 2002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 2002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3.3.2. 2006년 아시안 게임 (도하)
2006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6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여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4. 평가 및 논란
장쥐안쥐안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개인전 금메달은 대한민국의 올림픽 양궁 개인전 7연패를 저지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양궁 강국인 대한민국의 독주를 막아낸 의미 있는 성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금메달 획득 과정에서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경기 중 대한민국 선수들이 활을 쏠 때마다 자국 관중들이 심한 소음을 내어 집중력을 분산시켰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장쥐안쥐안의 금메달을 '반쪽 금메달'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은 이후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이 훈련 과정에서 소음 적응 훈련을 추가로 시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5. 후기 활동
선수 경력 이후 장쥐안쥐안은 대중적인 활동에도 참여했다. 2015년 2월 22일, 그녀는 난징에서 열린 중국의 인기 TV 프로그램 '미션 임파서블'에 세계 7대 양궁 선수 중 한 명으로 초대되어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양궁 대회를 다루는 최초의 중국 TV 프로그램으로, 장쑤 방송 공사를 통해 방영되었으며 2억 5천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양궁 선수 페터 슈테허와 함께 떨어지는 링에 화살을 쏘는 도전에 참여했으며, 15번의 기회 중 각각 7개의 링을 맞추며 슈테허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6. 유산
장쥐안쥐안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개인전 금메달은 양궁 역사에 중요한 유산으로 남았다. 특히 이 금메달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독주를 7연패에서 저지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양궁계에 새로운 경쟁 구도를 제시하며 다른 국가들에게도 올림픽 금메달의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이 경기 외적인 환경 요인, 특히 관중 소음에 대한 적응 훈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훈련 과정에 반영하게 만드는 등, 양궁 훈련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