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이토이 요시오는 투수로서의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프로 입단 전부터 뛰어난 운동 능력과 강한 어깨를 인정받았다.
1.1. 출생 및 가족
이토이 요시오는 1981년 7월 31일 교토부 요사군 이와타키 정(현재의 요사노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트라이애슬론 선수였고, 어머니는 전 배구 국체 선수였다. 외할아버지는 교토부립 미네야마 고등학교의 고등학교 체육 교사였으며, 노무라 가쓰야를 가르치기도 했다.
1.2. 학창 시절 및 대학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가족과 함께 고시엔 구장을 방문하여 마유미 아키노부의 홈런을 보고 프로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중학교 시절에는 경식 야구부가 아닌 옛 이와타키 정에 있던 하시다테 중학교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 3학년 때 중요한 대회에서 경기 전 연습 중 감독에게 꾸중을 듣고 귀가하는 해프닝이 있었고, 이로 인해 강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해 인근 미야즈시의 교토부립 미야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금이 가 있던 무릎뼈가 발견되어 수술을 받았다. 2학년이 되어서야 재활을 통해 겨우 뛸 수 있게 되었고, 2학년 봄 연습 경기에서 복귀 등판했지만 어깨 통증으로 다시 수술을 받았다. 실질적으로 3학년 때 4개월밖에 뛰지 못했지만 투수로서 한신 타이거스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드래프트 회의에서의 지명이 확실치 않자 4년 후를 기약하며 긴키 대학에 진학했다.
긴키 대학 야구부에서는 1학년 가을부터 3학년 봄까지 간사이 학생 야구 연맹 리그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2년 가을 리그에서 데뷔한 후, 4학년 봄 리그에서는 에이스로서 두 차례의 완봉승을 포함한 5연승(무패)을 기록하며 리그 MVP, 최우수 투수,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는 대활약을 펼쳤다.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첫 경기에서 마하라 다카히로와 맞붙었으나 2회 도중 7실점하며 5회 콜드패를 당했다. 대학 통산 성적은 19경기 등판 9승 2패, 평균자책점 1.49를 기록했다. 동기 선수로는 다나카 마사히코와 나카무라 마사토가 있다.
2. 프로 경력
이토이 요시오는 투수로 프로에 입단했으나, 뛰어난 야수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전향에 성공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2.1. 드래프트 및 선수 전환
투수로서의 잠재력과 야수로서의 재능을 동시에 인정받아 프로에 입단했으며, 이후 외야수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2.1.1. 투수 시절 및 프로 입단
2003년 11월 19일 2003년 일본 프로 야구 신인 선수 선택 회의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자유 획득 범위 제도로 입단했다. 계약금 1.00 억 JPY, 연봉 1500.00 만 JPY에 등번호는 26번을 배정받았다.
187cm의 장신으로 최고 구속 151 km/h의 직구를 던지는 파워 피처였으나,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부상에 시달리며 프로 데뷔 후 2년간 2군에서만 36경기에 등판해 8승 9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4.86을 기록하는 등 1군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
2.1.2. 외야수로의 전향
투수로서의 성장이 더디자, 그의 뛰어난 타격 센스, 50 m를 5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 그리고 강한 어깨에 주목한 다카다 시게루 당시 닛폰햄 GM의 권유로 2006년 4월 25일 공식적으로 외야수로 전향했다. 다카다 GM은 이토이에게 "투수로는 쓸모없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이는 야수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팀 동료였던 신조 쓰요시도 야수 전향을 조언했다.
전향 후 불과 5개월 만인 2006년 9월 이스턴 리그 월간 MVP를 수상하며 월간 타율 3할 9푼 7리를 기록했고, 2군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할 6리, 8홈런, 8도루를 기록했다. 정규 시즌 중 1군 출장은 없었지만 11월 2006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28인 엔트리에 포함되어 차이나 스타즈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장하며 1군 첫 경기를 치렀다.
2.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닛폰햄 파이터스 소속 시절, 이토이 요시오는 야수로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에는 야수 전향 2년 차에 개막전 1군 엔트리에 들었으나, 곧 2군으로 내려갔다. 9월에 다시 1군에 승격하여 9월 10일 프로 첫 안타와 첫 도루를 동시에 기록했지만, 도루 과정에서 다리를 다쳐 다시 등록 말소되었다. 2군에서는 가네코 요헤이에 이어 이스턴 리그 2위인 12홈런을 포함해 타율 3할 1푼 9리, 장타율 5할 7푼 9리, 14도루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08년에는 좌익수로서 첫 개막전 선발 출장을 했으나, 3월 30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입은 근육통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강행하다가 부상이 악화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1군 복귀 후에는 프로 첫 홈런을 포함해 5홈런을 때려냈다. 최종적으로 63경기 출장, 타율 2할 3푼 9리, 45안타, 21타점, 13도루를 기록했다. 2008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에서는 1번 타자로 발탁되어 수비에서도 좋은 송구를 보여주었다. 오프 시즌에는 770.00 만 JPY 인상된 추정 연봉 1800.00 만 JPY에 재계약했다.
2009년에는 "7번 중견수"로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자리를 꿰찼고, 모리모토 히초리를 제치고 주전 중견수로 정착했다. 타순은 주로 7번이나 2번이었지만, 이나바 아쓰노리가 결장한 12경기에서는 3번 타자를 맡기도 했다. 특히 6월에는 월간 타율과 안타 수 모두 리그 2위를 기록하며 4경기에서 결승타를 때려 팀의 선두 유지를 이끌었다. 6월 11일부터 30일까지 11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고, 월간 9개의 2루타는 리그 최고, 6도루는 리그 공동 최고를 기록하며 개인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수상 기자회견에서는 "불안했지만 필사적으로 연습했다. 기용해 준 감독, 코치, 그리고 전향을 제안해 준 다카다 감독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7월에는 감독 추천으로 2009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했다. 시즌 내내 주전 자리를 지키며 팀의 2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개인 최다인 131경기에 출장하여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고, 타율 3할 6리(리그 7위), 15홈런, 24도루(리그 7위), 출루율 3할 8푼 1리(리그 6위), 장타율 5할 2푼(리그 4위), OPS 0.901(리그 3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베스트 나인 (외야수 부문 리그 2위)과 골든 글러브상 (외야수 부문 리그 1위)을 처음으로 동시에 수상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3배 이상 인상된 추정 연봉 6000.00 만 JPY에 사인하며 "투수로 들어와 야수가 되었을 때는 1군이 목표였다. 활약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기쁨을 표했다.
2010년에는 전년도 5번 타자였던 터멜 슬레지의 퇴단으로 주로 "5번 중견수"로 클린업 트리오의 한 축을 담당했다. 6월 1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한 경기 4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이치로나 이구치 다다히토 등 강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NPB 역사상 10번째 기록을 세웠다. 7월 1일에는 선수 간 투표로 2년 연속 2010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 선출되었다. 홈 최종전인 9월 26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9회말 끝내기 안타를 때려 승리를 이끌었다. 이 해 2년 연속 15홈런을 기록했으며, 타율 3할 9리, 64타점, 26도루를 기록했고, 76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개인 첫 4할대 출루율인 4할 7푼을 기록했다. 2년 연속으로 퍼시픽 리그 외야수 부문 1위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연봉 1.00 억 JPY의 대기록을 달성했으며, 등번호를 그 해까지 쓰보이 도모치카가 사용했던 7번으로 변경했다.
2011년에는 타순이 이나바 아쓰노리를 대신해 3번으로 승격되었다. 상대 투수들의 견제가 심해져 리그 공동 1위인 19개의 몸에 맞는 볼을 기록했고, 8월에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몸에 맞는 볼을 맞아 골절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계속 출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반까지 리그 타율 선두를 지켰고, 최종적으로 개인 최고이자 리그 2위인 타율 3할 1푼 9리를 기록했으며, 11홈런을 때려 3년 연속 타율 3할-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출루율은 12개 구단 전체 선수 중 유일하게 4할을 넘어 개인 첫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31도루는 개인 최다이자 팀 내 최고 기록이었다. 수비에서도 3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으며, 2년 만에 2번째 베스트 나인을 리그 외야수 부문 1위로 획득했다. 12월 13일, 9000.00 만 JPY 인상된 추정 연봉 1.90 억 JPY에 사인하며 야수 전향 선수로서는 이시이 다쿠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상대 팀이 우익수 앞 안타 시 1루 주자의 3루 진루를 막기 위해, 당시 우익수였던 양다이강과 이토이를 비교하여 "중견수 수비력은 같지만, 이토이의 강한 어깨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 따라 우익수로 전향했다. 2012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는 이나바 아쓰노리에 이어 양 리그 전체 2위 득표를 얻어 처음으로 팬 투표로 선출되며 4년 연속 출장했다. 그러나 부상을 안고 뛰었으며, 전반기에는 2홈런에 그치고 5월 16일부터 8월 3일까지 홈런이 나오지 않는 등 부진했다. 8월 25일 경기 전 훈련 중 왼쪽 옆구리 부상을 입어 다음 날 등록 말소되었다. "패배할 수 없는 싸움 중에 부상으로 한심했다"며 부상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로 9월 7일 3번 우익수로 복귀해 7회 우전 안타를 때려냈다. 9월에는 타율 3할 8푼, 15타점으로 리그 2위, 출루율 4할 7푼 3리, 장타율 6할 8리로 리그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5개의 선제 타점과 1개의 역전 타점을 기록해 팀의 3년 만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3년 만에 2번째 월간 MVP를 획득했다. 최종적으로 시즌 타율은 4년 연속 3할을 넘는 3할 4푼(리그 3위)을 기록했고, 출루율 4할 4푼으로 2년 연속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수비에서는 골든 글러브상을 4년 연속 획득했으며, 2년 연속 리그 외야수 부문 1위 득표로 2년 연속 3번째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2012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호조를 유지하며 파이널 스테이지 첫 경기와 2차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 팀의 2012년 일본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개인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1월 17일, 18일 열린 사무라이 재팬 매치 2012 "일본 대표 VS 쿠바 대표"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등번호 1번을 달았다. 2차전에서는 개인 첫 사무라이 재팬의 4번 타자로 발탁되어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계약 협상에서는 1000.00 만 JPY 인상된 추정 연봉 2.00 억 JPY 제안을 보류했다. 구단은 "이토이의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2차 협상부터는 대리인을 대동했으나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2.3. 오릭스 버펄로스
오릭스 버펄로스 이적 후, 이토이 요시오는 팀의 핵심 타자로 활약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입지를 굳혔다.
2013년 1월 23일, 기사누키 히로시, 오비키 게이지, 아카다 쇼고와의 트레이드로 야기 도모야와 함께 오릭스 버펄로스로 이적한다고 발표되었다. 이 대형 트레이드는 야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던 다르빗슈 유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토이 씨 트레이드라니, 말도 안 돼"라고 트윗하며 놀라움을 표했다. 닛폰햄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도 "이보다 슬픈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토이는 1월 26일 기자회견에서 "간사이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TV로 자주 봤다.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하겠다"고 오릭스에서의 목표를 밝혔다. 등번호는 닛폰햄 시절과 같은 7번이 되었다. 2월 20일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나이가 많은 마쓰이 가즈오가 7번을 달았기 때문에 등번호는 9번이 되었다. 야마모토 고지 사무라이 재팬 감독은 대회 전부터 이토이를 키맨으로 지목했으며, 3월 2일 1차 라운드 A조 개막전(대 브라질전)에서는 4번 타자(우익수)로 기용되어 4회 우전 적시타를 때려 팀 승리에 기여했다. 3월 3일 중국전에서는 5회 만루 찬스에서 펜스 직격 중월 3점 2루타를 때렸고, 10일 2차 라운드 네덜란드전에서는 4회 우월 3점 홈런을 때리는 등 일본 대표팀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대회에서는 7경기 모두 4번, 5번 등으로 출장하여 타율 2할 8푼 6리, 1홈런, 7타점, 2도루, OPS 1.024의 좋은 기록을 남겼다.
시즌에서는 안정적인 컨디션을 유지하며 5년 연속 타율 3할, 골든 글러브상 수상을 달성했으며, 개인 최다인 157안타, 17홈런, 33도루(리그 3위)를 기록했다. 2013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는 팬 투표에서 유일하게 40만 표를 넘는 약 43만 표를 얻어 개인 첫 양 리그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5년 연속 출장했다.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개인 최고인 추정 연봉 2.50 억 JPY에 인센티브를 포함한 계약을 갱신했으며,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생각은) 큰 가슴 근육 속에 숨겨두겠다"고 농담하며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일시적으로 접었음을 밝혔다.
2014년에는 개막부터 호조를 보였고, 5월 10일 닛폰햄전에서는 6회에 선제 3점 홈런을 때려냈다. 이어 7회에도 개인 첫 2타석 연속 홈런을 때려 팀 승리를 결정지었다. 6월 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프로 첫 4번 타자를 맡아 8호 결승 2점 홈런을 때렸다. 이 경기 이후 4번 타자로 출장했고, 8월 14일부터는 다시 3번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경기에서 4번 타자로 출장했다. 시즌 막판까지 1위를 달리던 도루는 과거 퍼시픽 리그에서 시즌 50경기 이상 4번 타자를 맡아 도루왕을 차지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퍼시픽 리그 최초의 "4번 타자 도루왕"이 될지 주목받았다. 7월 18일, 19일 열린 2014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는 전년도를 넘는 48만 7246표를 얻어 2년 연속 팬 투표 양 리그 최다 득표를 기록했으며, 선수 간 투표에서도 양 리그 최다 득표로 선출되며 6년 연속 출장했다. 최종적으로 개인 최고 타율 3할 3푼 1리로 첫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고, 출루율 4할 2푼 4리로 2년 만에 3번째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2년 만에 4번째 베스트 나인과 6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에도 선정되어, NPB 역사상 최초로 "6년 연속 타율 3할, 20도루, 골든 글러브상"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시즌 종료 후 2014년 미일 야구에는 일본 대표의 3번 타자로 출장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1.00 억 JPY 인상된 추정 연봉 3.50 억 JPY에 인센티브를 포함한 계약에 사인했다.
2015년, 오릭스 주장에 취임했다. 1군 공식전에서는 5월 20일 통산 1000안타, 7월 30일 통산 100홈런, 9월 2일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만신창이 상태로 출장을 계속한 결과, 7월 2일 오른쪽 팔꿈치 인대 및 오른쪽 발목 힘줄 손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대로 전반기를 마쳤지만, 외야수 부문 팬 투표에서 3위에 선정된 2015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는 지명 타자로 출장했다. 후반기부터 복귀하여 7월 30일 닛폰햄전(교토)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고향 교토에서 공식 경기에 출장해 1회말 8호 선제 2점 홈런, 5회말에는 승리를 결정짓는 9호 3점 홈런을 때려 이 홈런으로 1군 공식전 통산 100호 홈런을 달성했다. 동시에 한 경기 개인 최다 타점도 기록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많은 추억이 담긴 구장에서 (통산 100홈런을) 달성할 수 있어 기쁘다.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컨디션을 끌어올려 8월에는 타율 2할 9푼 3리, 6홈런, 18타점, 출루율 4할 9푼을 기록했고, 9~10월에는 타율 3할 3푼, 출루율 4할 3푼 4리, 12타점으로 회복했지만 타율은 3할을 넘지 못해 2008년부터 이어오던 연속 3할 달성 기록이 끊겼다. 시즌 종료 후에는 추정 연봉 2.80 억 JPY (7000.00 만 JPY 삭감)에 계약을 갱신했다。또한 PRP 치료(자신에게서 채취한 혈소판으로 왼쪽 무릎 조직의 수복 및 재생을 도모하는 자가 다혈소판 혈장 요법)를 받아 왼쪽 무릎 회복을 도모했다.
2016년에는 개막전부터 1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4월 13일 닛폰햄전에서는 5회말 타석에서 자신과 팀의 시즌 첫 홈런을 때려냈고, 전날 팀이 기록한 2리그제 도입 후 최악의 개막 13경기 연속 홈런 없음 기록도 멈췄다. 다음 날 같은 경기에서는 2경기 연속 홈런(솔로 홈런)으로 팀의 유일한 득점을 올려 팀에 시즌 첫 연승을 안겼다. 2016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도 전년에 이어 퍼시픽 리그 외야수 부문 팬 투표에서 3위에 올라 8년 연속 출장했다. 8년 연속 출장은 이 해 출장 선수 중 가장 긴 기록이었다. 8월 13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 1회 타석에서 1군 공식전 4000타수(NPB 통산 타율 규정 타수)에 도달했다. 9월 15일 닛폰햄전 1회초 루이스 멘도사로부터 초구에 13호 선두 타자 홈런을 때린 것을 시작으로, 공식전에서 개인 첫 3타수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동일 선수에 의한 1회초 선두 타자 초구 홈런을 포함한 한 경기 3홈런"이라는 NPB 역사상 최초의 쾌거도 달성했다. 다음 경기인 9월 17일, 18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도 홈런을 때려 개인 첫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주루 면에서는 5월 8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1군 공식전 통산 200도루를 기록했다. 35세 생일인 7월 3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시즌 개인 최다인 34도루를 기록했고, 8월 하순부터는 1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9월 6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전 7회초 2루 도루에 성공하며 시즌 50도루에 도달했다. NPB 1군 공식전에서 35세 이상 선수가 시즌 50도루를 달성한 사례는 후쿠모토 유타카가 1983년에 35세로 달성한 이후 33년 만에 역대 2번째였다. 시즌 막판에는 무서운 기세로 도루 수를 늘려온 가네코 유시와 치열한 도루왕 경쟁을 펼쳤다. 최종적으로 53도루를 기록하며 가네코와 공동으로 개인 첫 도루왕을 획득했다. 시즌 종료 시 35세 2개월의 나이로 도루왕을 획득한 것은 당시 역대 최고령 기록이었다 (2021년 오기노 다카시가 36세 0개월로 경신하기 전까지). 또한 "34세에 개막을 맞이한 시즌의 도루왕 획득"이라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4번째 쾌거를 달성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골든 글러브상(퍼시픽 리그 외야수 부문)을 수상했다. 골든 글러브상 선정은 통산 7번째로, 센트럴-퍼시픽 양 리그 현역 선수 중 가장 많았다.
3월 28일에 취득했던 국내 FA권을 11월 7일 행사하겠다고 표명했다. 11월 10일자로 NPB에서 FA 선언 선수로 공시되었다. 이미 시즌 중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한신 타이거스 등 다른 구단들이 이토이 영입에 관심을 보인다는 보도가 잇따랐고, 오릭스도 추정 연봉 총액 18.00 억 JPY 규모의 4년 계약을 제시하며 잔류를 설득했다.
2.4. 한신 타이거스
한신 타이거스 이적 후, 이토이 요시오는 베테랑 선수로서 팀에 기여했으나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점차 출장 기회가 줄어들며 은퇴를 맞이했다.
2016년 11월 21일, 한신 타이거스가 계약 합의를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4년, 연봉 총액은 추정 18.00 억 JPY 이상이었다. 등번호는 전년도까지 니시오카 쓰요시가 사용했던 7번을 양도받았고, 니시오카는 등번호 5번으로 변경했다.
2017년, 가네모토 도모아키 감독으로부터 일찌감치 주전 중견수 자리를 약속받았으나, 1월 자율 훈련 중 오른쪽 무릎 관절염이 재발했다. 스프링 캠프에서는 1군 "오키나와조"에 참가했지만, 본대와는 다른 메뉴로 재활에 집중했다. 3월 15일 오릭스전에서 복귀했다. 3월 31일 시즌 개막전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3번 중견수"로 이적 후 공식전 첫 출장하여, 사구를 고른 뒤 3회 무사 1, 2루에서 좌중간을 넘는 2점 적시 2루타를 때려냈다. 4회 1사 2루에서도 쐐기 우익선 적시타, 7회에도 좌전 안타를 때려 3안타 맹타상으로 활약하며 이적 첫 경기에서 수훈 선수 인터뷰를 했다. 4월 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한신 이적 후 첫 홈런을 기록했다. 이 홈런은 전날 난투극이 벌어져 가네모토 감독이 격노한 상황에서 "절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홈런을 쳤다"고 후에 밝혔다. 7월 1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고시엔 구장) 5회말 타석에서 체인지업을 헛스윙하다가 오른쪽 옆구리 부상을 입어 교체되었다. 다음 날 오른쪽 옆구리 근육 좌상으로 판명되어 등록 말소되었다. 8월 17일 1군에 복귀했다. 8월 3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고시엔 구장)에서는 10회말 2사에서 맞이한 4번째 타석에서 프로 데뷔 후 첫 끝내기 홈런을 우익석으로 날렸다. 그대로 시즌 최종전 및 클라이맥스 시리즈까지 전 경기에 출장했다. 1군 복귀 시점인 8월 17일 타율은 2할 6푼 7리였지만, 9월 16일까지 타율 2할 9푼 7리까지 상승하며 8번째 3할 타율을 노렸다. 최종적으로 타율 2할 9푼으로 시즌을 마쳐,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한 2009년 이후 개인 두 번째로 3할을 밑도는 기록을 남겼지만, 리그 타격 10걸에 들었다. 또한 출루율은 리그 7위인 3할 8푼 1리를 기록했다. 주전으로 정착한 이후 가장 적은 114경기 출장에도 불구하고 개인 2위인 17홈런, 개인 5위인 62타점, 리그 공동 4위인 21도루를 기록했다. 12월 14일, 팀의 마지막 계약 갱신에서 1.20 억 JPY 인상된 개인 최고 추정 연봉 4.00 억 JPY에 인센티브를 포함한 4년 계약 중 2년차 계약을 갱신했다.
2018년, 개막전 선발로 나서 3월 3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도쿄 돔)에서 "3번 우익수"로 출장했다. 5월 25일 요미우리전(고시엔)에서 프로 통산 150홈런을 스가노 도모유키로부터 때려냈다. 또한 그 3연전의 최종전인 27일부터는 4번 타자로 기대를 모았던 윌린 로사리오의 부진으로 한신 이적 후 처음으로 "4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6월 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메트라이프 돔)에서는 노다 쇼고로부터 역전 만루 홈런을 때리는 등 한신 타이거스 타선을 이끌었다. 2018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선수 간 투표에서 선출되었으나, 6월 3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8회 가자바 렌으로부터 몸에 맞는 볼을 맞아 오른쪽 비골이 골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전에 출장했으며, 7월 21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전열에 복귀했다. 9월 2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노무라 유스케로부터 프로 통산 1500안타를 기록했지만, 8회말 1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대타 아라이 다카히로의 타구를 다이빙 캐치하려다 왼쪽 어깨 회전근개 부상을 입어 29일 등록 말소되며 시즌을 마쳤다. 이로 인해 119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타율은 2년 만에 개인 8번째 3할을 넘었고, 출루율은 4할 2푼(개인 2위), OPS는 0.900(개인 3위)을 기록했다. 한신 선수 중 OPS 0.900 이상을 기록한 것은 2010년 크레이그 브라젤 이후 처음이었다.
2019년, 3월 29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3번 우익수"로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들었으나, 8월 9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2루 도루를 시도하다가 슬라이딩 중 왼쪽 발을 부상당했다. "왼쪽 발목 관절염"으로 진단되어 다음 날인 8월 10일 등록 말소되었다. 이로 인해 103경기 출장에 그쳤고, 홈런과 타점 모두 규정 타석 도달 이후 최악의 기록을 남겼지만, 타율은 3할 1푼 4리(리그 3위), 출루율은 4할 3푼(리그 2위)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고질적인 오른쪽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타격 부진에 빠졌지만, 9월 월간 타율 3할 5푼 2리, 10월에는 2할 9푼으로 점차 회복세를 보였다. 이적 후 가장 적은 86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오프 시즌에는 2.15 억 JPY 삭감된 추정 연봉 1.85 억 JPY에 사인했다.
2021년, 3월 26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이로써 2008년부터 3개 구단에 걸쳐 이어오던 개막전 선발 연속 기록은 13년 만에 중단되었다. 9월 11일 히로시마전(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약 1년 반 만에 도루를 기록하며 통산 300도루를 달성했다. 비록 승부처에서 강한 모습은 보였지만, 주로 대타로 기용되었으며, 시즌 통산 77경기 출장, 타율 2할 8푼, 3홈런, 18타점에 그쳤다. 오프 시즌에는 1.00 억 JPY 삭감된 추정 연봉 8500.00 만 JPY에 인센티브를 포함한 계약을 갱신했다.
2022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6번 좌익수로 2년 만에 개막전 선발 출장한 3월 2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팀의 시즌 첫 홈런을 때려냈다. 5월 13일, 전날 허리 부상을 입었음을 밝혔다. 이후 1군에 복귀했으나, 8월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등록 말소되었다. 9월 12일,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9월 15일, 유튜브 채널 "이토이 요시오 초인 채널"을 개설했다고 발표했다. 9월 2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고시엔 구장)이 은퇴 경기가 되었으며, 자신은 5회말 대타로 등장했다. 모리시타 마사토로부터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3. 선수로서의 특징
이토이 요시오는 투수에서 야수로 성공적으로 전향한 대표적인 선수로, 5툴 플레이어로서 타격, 수비, 주루에서 모두 뛰어난 능력을 선보였다.
3.1. 타격
이토이 요시오는 사구가 매우 많고 8타석에 1번꼴로 볼넷을 골라내는 뛰어난 선구안을 가지고 있으며, 카운트에 따라 타구 방향을 조절하는 기교도 겸비했다. 타격 시에는 일본인답지 않은 타구 속도와 비거리를 보여주는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넓은 삿포로 돔에서도 좌측 방향으로 홈런을 날릴 수 있는 기술을 갖췄다. 타자 전향 초기인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좌투수에 대해 타율 2할 7푼 8리로 약점을 보였지만, 2011년부터는 좌투수 상대 통산 타율 3할 4푼으로 약점을 극복했다. 2022년 은퇴 시점까지 시즌 최다 홈런은 19개였지만, 코치였던 후지이 아키히토는 "40세에도 30홈런은 칠 수 있다"고 극찬할 정도로 뛰어난 타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타율과 출루율에서는 2016년 시즌 중 NPB 통산 성적 규정을 충족했으며, 통산 타율 2할 9푼 6리 5모는 역대 32위(2022년 시즌 종료 기준)를 기록했다.
3.2. 수비
1루 도달까지 기본적으로 4초를 끊고, 번트 안타로 1루 도달 3.54초를 기록한 적도 있는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수비 범위와 원투 120 m, 투수 시절 최고 구속 151 km/h를 기록한 강한 어깨, 그리고 제구력을 겸비했다. 대학 시절 50 m 달리기를 5.76초에 주파한 기록이 있다. 중견수 수비에서는 후방 타구에 강하며, 2010년에는 UZR 0.9를 기록했다. 2012년에는 우익수 수비에서 UZR 25.9를 기록했다. 한편, 스스로 "내야수 같다"고 말할 정도로 실책이 많아 2010년부터 3년 연속 외야수 리그 최다 실책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실책 수를 1개로 줄여 외야수로서 리그 4위의 수비율 0.995를 기록했지만, 2014년에는 우익수 수비에서 UZR -10.2를 기록하기도 했다.
3.3. 주루
견제구에 베이스로 돌아가는 동작 하나에서도 날카로운 센스와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도루 실패율이 낮다. 또한 스타트를 판단하는 감각도 뛰어나다. 2015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11도루로 숫자가 줄었지만, 이 해 오프 시즌에 PRP 주사를 맞고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는 주루법을 익히면서 2016년 9월 6일 50도루에 도달했다. NPB에서 35세 이상 선수가 시즌 50도루를 달성한 사례는 후쿠모토 유타카가 1983년에 35세 11개월에 54도루를 달성한 것뿐으로, 이토이는 33년 만에 역대 2번째 쾌거를 달성했다。후쿠모토, 오이시 다이지로의 34세 11개월을 넘는 35세 2개월의 나이로 수상하며 역대 최고령 도루왕이 되었다 (2021년 오기노 다카시가 36세 0개월로 경신하기 전까지). 이러한 배경에는 그 해 취임한 니시무라 도쿠후미 헤드 코치와 다카하시 요시히코 타격 코치로부터 "더 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상한선을 정하지 않고 뛰게 된 영향이 있었다.
4. 국제 대회 경력
이토이 요시오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여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4.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차 라운드 3경기 모두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으며, 처음 2경기에서는 4번 타자를 맡았다. 그는 일본 대표팀에서 가장 꾸준한 타자 중 한 명으로, 모든 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했다. 2차 라운드에서는 부진했던 조노 히사요시를 대신해 중견수로 출장하며 타격의 꾸준함을 이어갔다. 대만전에서는 2루타를 때려냈고(당시 일본 대표팀의 두 번째 장타였으며, 첫 번째 장타도 이토이가 기록했다), 네덜란드전에서는 3점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 푸에르토리코에 3대1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대회 최종 성적은 7경기 출장, 타율 2할 8푼 6리, 1홈런, 7타점, 2도루, OPS 1.024를 기록했다.
5. 은퇴 후 활동
선수 은퇴 후, 이토이 요시오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야구계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부터 마이니치 방송과 홋카이도 TV의 야구 해설가, 데일리 스포츠의 야구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2023년부터 한신 타이거스의 "스페셜 앰배서더"(SA)를 맡고 있다. 2022년 9월 15일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이토이 요시오 초인 채널"을 개설하여 유튜버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6. 개인사 및 인간 관계
이토이 요시오는 '초인'이라는 별명처럼 독특한 성격과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6.1. 별명 및 성격
그의 애칭은 "초인"과 "요피" 등이다. 매우 천연스러운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프로 4년차 시절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인터뷰어에게 "우중간(右中間)이 뭔가요?"라고 물어본 일화가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감독이었던 이치다 마사시는 "천연스러운 행동을 하지만, 저렇게 보여도 섬세하다"고 평가했다.
고등학교 시절, 스포츠 짐에서 돌아오던 중 전철에서 잠들어 집에서 전철로 2시간 거리인 교토역까지 지나쳐 버려 결국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 다음 날 훈련을 쉬어야 했던 일화는 고등학교 시절 이토이의 가장 큰 웃음거리로 남아있다.
오릭스 이적 후인 2015년에는 당시 모리와키 히로시 1군 감독의 지명을 받아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장을 맡았다. 그러나 팀은 우승 후보로 꼽혔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와키 감독이 시즌 도중 휴양(후에 사임)하는 등 부진에 빠졌다. 이토이 자신도 "(전년도의 좋은 성적에서) 장타를 늘리는 것을 의식한 데다 주장이라는 직함이 부담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개막부터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2016년에는 전년도 도중부터 1군 감독 대행을 맡았던 후쿠라 준이치 신임 감독의 방침으로 주장을 두지 않았지만, 이토이는 " (2015년을 끝으로) 주장에서 해고당했다"고 받아들였다.
닛폰햄 시절부터 타석에 들어설 때 SMAP의 'SHAKE'를 등장곡으로 사용했으며, 오릭스 시절에는 홈구장인 교세라 돔 오사카나 홋토못토 필드 고베에서 "둘이서 할 수 있어~♪"라는 후렴구 가사를 "이토이라면 할 수 있어~♪"로 바꿔 팬들이 합창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SMAP이 2016년 말 해체되고 이토이 자신도 한신으로 이적하며 전환기를 맞았지만, 이토이는 이적 후에도 'SHAKE'를 등장곡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으며, "이토이라면 할 수 있어~♪"라는 콜도 한신 팬들에게 계승되었다.
2021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팬 투표 결과 "FIGHTERS LEGENDS BEST NINE"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오릭스에서 한신으로 이적할 당시, 이토이는 이적이 결정되었을 때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어떤 때든 따뜻한 성원을 보내주신 오릭스 팬 여러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그 마음을 담아 이번 결단에 이른 것은 야구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함으로써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와 무엇보다 가네모토 감독의 열정에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적이 공식 발표되기 직전인 2016년 11월 23일에는 퇴단이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릭스 팬 감사 이벤트에 참석했다.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 (내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흔들고 수건을 들어주는 팬들을 보며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했다"며 자신의 배트에 "고마워요"라고 적어 팬들에게 나눠주고 마지막에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4년간 함께한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같은 해 11월 25일 열린 한신 입단 기자회견에는 약 200명의 취재진이 모였다. 이토이는 12대의 TV 카메라 앞에서 한신 타이거스의 이미지를 "기자가 많다. 열광적인 팬들과 언론의 이미지가 대부분이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팀이 정상에 서기 위해, 가네모토 감독을 헹가래 칠 수 있도록 팀에 하나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26일 마이니치 방송의 정보 프로그램 '세야넨!'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2017년 공약으로 "수훈 선수 인터뷰 7회"를 내걸었다.
2017년부터 한신 타이거스에서 2년간 팀 동료였던 니시오카 쓰요시와는 자신과 같은 퍼시픽 리그 구단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한신 타이거스 이적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이토이의 한신 타이거스 이적 시, 니시오카는 자신이 2016년까지 한신에서 사용했던 등번호 7번을 이토이에게 양도할 의사를 밝히며 등번호를 5번으로 변경했다. 니시오카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한 2003년부터 12년간 등번호 7번을 착용했지만, 이토이가 한신에서도 7번 착용을 희망한다는 것을 알고 "이토이 씨는 나보다 실적이 있다"는 이유로 등번호를 양보하기로 결정했다. 이토이의 이적 협상 중에는 이토이 본인에게 연락하여 "등번호를 7번으로 한다면 기분 좋게 (한신에) 와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오릭스 재적 시 원래 시력이 1.2였음에도 불구하고 라식 수술을 받았다. 그 덕분에 돔 상단 스폰서 간판 글씨가 잘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시력은 2.0으로 안정되었다.
벤치프레스로 150 kg을 기록하는 등 괴력의 선수로 알려져 있었지만, 프로 입단 초부터 근육질이었던 것은 아니며, 대학 시절에는 오히려 마른 체형이었다. 야수로 전향했을 때 배트가 무겁게 느껴진 것이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한 이유다. 웨이트 트레이닝 시작 1개월 만에 원래 입던 정장이 맞지 않을 정도로 근육량 증가에 성공했고, 이에 재미를 붙여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했다. 본인 말로는 "야구와는 거리가 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던) 시기도 있다", "(나 같은 웨이트 트레이닝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6.2. 가족 관계
이토이 요시오의 아버지는 트라이애슬론 선수였고, 어머니는 전 배구 국체 선수였다. 외할아버지는 교토부립 미네야마 고등학교의 고등학교 체육 교사였으며, 노무라 가쓰야를 가르치기도 했다.
7. 수상 및 영예
이토이 요시오는 선수 경력 동안 다양한 개인 타이틀과 상을 수상하며 일본 프로 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7.1. 개인 타이틀
- 수위 타자 : 1회 (2014년)
- 최고 출루율 : 3회 (2011년, 2012년, 2014년)
- 도루왕 : 1회 (2016년)
7.2. 주요 수상
- 베스트 나인 : 5회 (외야수 부문: 2009년, 2011년, 2012년, 2014년, 2016년)
- 골든 글러브상 : 7회 (외야수 부문: 2009년 ~ 2014년, 2016년)
- 월간 MVP : 3회 (야수 부문: 2009년 6월, 2012년 9월, 2019년 6월)
-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 : 1회 (2012년)
- 올스타전 감투상 : 1회 (2013년 1차전)
7.3. 기록
이토이 요시오는 선수 경력 동안 다양한 개인 기록과 연속 기록을 달성했다.
;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2007년 3월 27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1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8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석: 위와 동일, 3회초 톰 데이비로부터 유격수 플라이
- 첫 안타: 2007년 9월 10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9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5회초 다카기 고지로부터 우전 안타
- 첫 도루: 위와 동일, 5회초 2루 도루 (투수: 다카기 고지, 포수: 사토자키 도모야)
- 첫 타점: 2008년 3월 25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차전(삿포로 돔), 1회말 니시구치 후미야로부터 유격수 적시 내야 안타
- 첫 홈런: 2008년 6월 27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7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3회초 라몬 오르티스로부터 중월 솔로
; 이정표 기록
- 1000안타: 2015년 5월 20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1차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1회초 나카타 겐이치로부터 좌전 안타 ※역대 279번째
- 100홈런: 2015년 7월 30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6차전(와카사 스타디움 교토), 5회말 야기 쇼고로부터 좌월 3점 홈런 ※역대 275번째
- 1000경기 출장: 2015년 9월 2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1차전(라쿠텐 코보 스타디움 미야기), 3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 ※역대 473번째
- 200도루: 2016년 5월 8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8차전(QVC 마린 필드), 1회초 홈 스틸 (투수: 오미네 유타, 포수: 다무라 다쓰히로) ※역대 73번째, 1루 주자 T-오카다와 중도
- 250도루: 2017년 5월 28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9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1회초 2루 도루 (투수: 이마나가 쇼타, 포수: 도바시 야스아키) ※역대 45번째
- 150홈런: 2018년 5월 25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0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5회말 스가노 도모유키로부터 우월 솔로 ※역대 167번째
- 1500안타: 2018년 9월 2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2차전(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2회초 노무라 유스케로부터 우전 안타 ※역대 124번째
- 300 2루타: 2019년 4월 28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5차전(나고야 돔), 1회초 야나기 유야로부터 중월 2루타 ※역대 71번째
- 100 몸에 맞는 볼: 2019년 6월 2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2차전(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1회초 아두와 마코토로부터 ※역대 21번째
- 1500경기 출장: 2019년 8월 7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16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3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 ※역대 195번째
- 1000삼진: 2021년 6월 13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3차전(라쿠텐 생명 파크 미야기), 9회초 마쓰이 유키로부터 헛스윙 삼진 ※역대 72번째
- 300도루: 2021년 9월 1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8차전(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8회초 2루 도루 (투수: 케무나 마코토, 포수: 아이자와 쓰바사) ※역대 31번째
; 연령 관련 기록
- 35세 이상 선수의 시즌 50도루: 2016년(35세, 53도루) ※역대 2번째
- 35세 도루왕: 2016년 ※당시 최고령, 2021년 오기노 다카시가 경신
- 37세 이상 선수의 시즌 20도루: 2018년(37세, 22도루) ※역대 6번째, 센트럴 리그 역대 3번째, 1986년 후쿠모토 유타카(39세, 23도루) 이후 32년 만
- 37세 이상 20도루 이상 기록 선수의 도루 성공률: 2018년(37세, 0.880) ※역대 최고
; 연속 기록
- 6년 연속 타율 3할·20도루·골든 글러브상: 2009년 ~ 2014년 ※역대 단독 1위
- 6년 연속 타율 3할·20도루: 2009년 ~ 2014년 ※역대 1위 타이(마쓰이 가즈오와 동일)
- 6년 연속 타율 3할·골든 글러브상: 2009년 ~ 2014년 ※역대 2위(이치로의 7년 연속에 이어)
- 6년 연속 타율 3할: 2009년 ~ 2014년 ※역대 8위 타이
; 올스타전 기록
- 출장: 10회 (2009년 ~ 2018년)
- 팬 투표 선출: 6회 (2012년 ~ 2017년)
- 팬 투표 양 리그 최다 득표: 2회 (2013년, 2014년)
- 선수 간 투표 선출: 8회 (2010년 ~ 2014년, 2016년 ~ 2018년)
- 선수 간 투표 양 리그 최다 득표: 1회 (2014년)
- 감독 추천 선출: 1회 (2009년)
; 기타 기록
- 한 경기 4 2루타: 2010년 6월 15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최다 타이 기록·역대 10번째(4타석 연속은 역대 6번째)
- 전 구단 상대 홈런: 2013년 5월 11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7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1회말 다니모토 게이스케로부터 우월 3점 홈런 ※역대 26번째
- 1회초 선두 타자 초구 홈런을 포함한 한 경기 3홈런: 2016년 9월 15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4차전(삿포로 돔) ※역사상 최초
- 동일 개최 경기에서 2명의 선수가 1회초 선두 타자 초구 홈런: 2016년 9월 15일, 이토이가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4차전(삿포로 돔)에서, 구와하라 마사유키(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가 대 한신 타이거스 23차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기록 ※역사상 최초
8. 등번호
이토이 요시오는 선수 생활 동안 다음 등번호를 사용했다.
- '''26''' (2004년 ~ 2010년)
- '''7''' (2011년 ~ 2022년)
- '''1''' (2012년 사무라이 재팬 매치)
- '''9''' (2013년 WBC)
9. 연도별 타격 성적
연 도 | 소 속 | 경 기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자 | 희 생 번 | 희 생 플 | 볼 넷 | 고 4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
2007 | 닛폰햄 | 7 | 11 | 11 | 1 | 1 | 0 | 0 | 0 | 1 | 0 | 1 | 0 | 0 | 0 | 0 | 0 | 0 | 1 | 0 | .091 | .091 | .091 | .182 |
2008 | 63 | 205 | 188 | 19 | 45 | 14 | 1 | 5 | 76 | 21 | 13 | 3 | 5 | 0 | 10 | 1 | 2 | 53 | 6 | .239 | .285 | .404 | .689 | |
2009 | 131 | 496 | 425 | 74 | 130 | 40 | 3 | 15 | 221 | 58 | 24 | 6 | 18 | 1 | 46 | 8 | 6 | 93 | 6 | .306 | .381 | .520 | .901 | |
2010 | 138 | 583 | 488 | 86 | 151 | 33 | 3 | 15 | 235 | 64 | 26 | 8 | 13 | 1 | 71 | 2 | 10 | 94 | 7 | .309 | .407 | .482 | .889 | |
2011 | 137 | 578 | 489 | 72 | 156 | 30 | 0 | 11 | 219 | 54 | 31 | 6 | 9 | 2 | 59 | 2 | 19 | 91 | 5 | .319 | .411 | .448 | .859 | |
2012 | 134 | 597 | 510 | 72 | 155 | 21 | 3 | 9 | 209 | 48 | 22 | 9 | 0 | 1 | 75 | 2 | 11 | 86 | 9 | .304 | .404 | .410 | .813 | |
2013 | 오릭스 | 141 | 601 | 524 | 75 | 157 | 33 | 2 | 17 | 245 | 61 | 33 | 9 | 0 | 3 | 66 | 1 | 8 | 93 | 6 | .300 | .384 | .468 | .852 |
2014 | 140 | 590 | 502 | 73 | 166 | 36 | 2 | 19 | 263 | 81 | 31 | 9 | 0 | 4 | 70 | 7 | 14 | 73 | 7 | .331 | .424 | .524 | .948 | |
2015 | 132 | 565 | 484 | 61 | 127 | 22 | 0 | 17 | 200 | 68 | 11 | 4 | 0 | 1 | 72 | 2 | 8 | 78 | 10 | .262 | .366 | .413 | .779 | |
2016 | 143 | 616 | 532 | 79 | 163 | 24 | 1 | 17 | 240 | 70 | 53 | 17 | 0 | 2 | 75 | 5 | 7 | 84 | 13 | .306 | .398 | .451 | .849 | |
2017 | 한신 | 114 | 493 | 427 | 60 | 124 | 16 | 0 | 17 | 191 | 62 | 21 | 6 | 0 | 2 | 59 | 0 | 5 | 62 | 12 | .290 | .381 | .447 | .828 |
2018 | 119 | 509 | 419 | 60 | 129 | 24 | 0 | 16 | 201 | 68 | 22 | 3 | 0 | 5 | 77 | 4 | 8 | 63 | 9 | .308 | .420 | .480 | .900 | |
2019 | 103 | 444 | 382 | 45 | 120 | 22 | 1 | 5 | 159 | 42 | 9 | 5 | 0 | 3 | 52 | 7 | 7 | 63 | 10 | .314 | .403 | .416 | .819 | |
2020 | 86 | 311 | 269 | 25 | 72 | 16 | 1 | 2 | 96 | 28 | 2 | 1 | 0 | 1 | 38 | 0 | 3 | 50 | 5 | .268 | .363 | .357 | .720 | |
2021 | 77 | 119 | 106 | 8 | 22 | 5 | 0 | 3 | 36 | 18 | 1 | 0 | 0 | 3 | 9 | 0 | 1 | 37 | 4 | .208 | .269 | .340 | .609 | |
2022 | 62 | 182 | 163 | 12 | 37 | 3 | 0 | 3 | 49 | 22 | 0 | 0 | 0 | 1 | 16 | 2 | 2 | 29 | 3 | .227 | .302 | .301 | .603 | |
통산: 16년 | 1727 | 6900 | 5919 | 822 | 1755 | 339 | 17 | 171 | 2641 | 765 | 300 | 86 | 45 | 30 | 795 | 43 | 111 | 1050 | 112 | .297 | .388 | .446 | .834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10. 연도별 타격 성적 소속 리그 내 순위
연 도 | 연 령 | 리 | 그 | 타 율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본 루 타 | 타 점 | 도< 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
2007 | 26 | 퍼시픽 | - | - | - | - | - | - | - | - | - | - |
2008 | 27 | - | - | - | - | - | - | - | - | - | - | |
2009 | 28 | 7위 | - | 1위 | - | - | - | 7위 | 6위 | 4위 | 3위 | |
2010 | 29 | - | - | 6위 | 10위 | - | - | 5위 | 5위 | 6위 | 7위 | |
2011 | 30 | 2위 | - | - | - | - | - | 5위 | 1위 | 4위 | 2위 | |
2012 | 31 | 3위 | 2위 | - | - | - | - | 6위 | 1위 | 8위 | 4위 | |
2013 | 32 | 10위 | 9위 | 2위 | - | - | - | 3위 | 9위 | 9위 | 9위 | |
2014 | 33 | 1위 | 3위 | 1위 | - | 8위 | 5위 | 3위 | 1위 | 3위 | 3위 | |
2015 | 34 | - | - | - | - | 9위 | - | - | 10위 | - | - | |
2016 | 35 | 4위 | 5위 | - | - | - | - | 1위 | 5위 | 10위 | 4위 | |
'''2017 | 36 | 센트럴 | 10위 | - | - | - | - | - | 4위 | 7위 | 9위 | 9위 |
'''2018 | 37 | - | - | - | - | - | - | 3위 | 5위 | - | 10위 | |
'''2019 | 38 | 3위 | - | - | - | - | - | - | 2위 | - | - | |
2020 | 39 | - | - | - | - | - | - | - | - | - | - | |
2021 | 40 | - | - | - | - | - | - | - | - | - | - | |
2022 | 41 | - | - | - | - | - | - | - | - | - | - |
- '''굵은 글씨 연도'''는 규정 타석 도달 연도
- -는 10위 미만(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는 규정 타석 미달 시에도 -로 표기)
11. WBC에서의 타격 성적
연 도 | 대 표 | 시 합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본 루 타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사 | 희 타 | 희 비 | 볼 넷 | 고 4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
2013 | 일본 | 7 | 31 | 21 | 4 | 6 | 2 | 0 | 1 | 11 | 7 | 2 | 0 | 1 | 0 | 6 | 0 | 3 | 2 | 0 | .286 | .500 | .524 | 1.024 |
12. 연도별 수비 성적
연도 | 구 단 | 외야 | |||||
---|---|---|---|---|---|---|---|
시 합 | 척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
2007 | 닛폰햄 | 3 | 0 | 0 | 0 | 0 | .000 |
2008 | 61 | 112 | 4 | 2 | 1 | .983 | |
2009 | 125 | 234 | 7 | 2 | 2 | .992 | |
2010 | 138 | 302 | 4 | 5 | 0 | .984 | |
2011 | 136 | 286 | 9 | 7 | 1 | .977 | |
2012 | 131 | 266 | 8 | 5 | 0 | .982 | |
2013 | 오릭스 | 125 | 194 | 5 | 1 | 1 | .995 |
2014 | 139 | 223 | 5 | 3 | 3 | .987 | |
2015 | 88 | 119 | 3 | 0 | 0 | 1.000 | |
2016 | 118 | 174 | 4 | 6 | 0 | .967 | |
2017 | 한신 | 105 | 134 | 2 | 4 | 0 | .971 |
2018 | 117 | 165 | 4 | 3 | 1 | .983 | |
2019 | 96 | 130 | 0 | 2 | 0 | .985 | |
2020 | 75 | 68 | 1 | 2 | 0 | .972 | |
2021 | 16 | 18 | 0 | 0 | 0 | 1.000 | |
2022 | 38 | 42 | 0 | 1 | 0 | .977 | |
통산 | 1781 | 2467 | 56 | 43 | 9 | .983 |
- '''굵은 글씨 연도'''는 골든 글러브상 수상 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