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갈라스는 1977년 8월 17일 프랑스 아니에르쉬르센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망한 전 축구 선수 뤼도비크 키스탱과 럭비 유니언 선수 마티외 바스타로의 사촌이다. 갈라스는 10대 중반까지 클레르퐁텐의 프랑스 축구 아카데미에서 성장했다. 유소년 시절에는 AVG 풋볼(1987-1992)과 RCF 파리(1992-1993)에서도 뛰었다.
2. 클럽 경력
갈라스는 프랑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잉글랜드의 빅 클럽들을 거쳐 호주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1. 초기 경력 (SM 칸, 올랭피크 마르세유)
클레르퐁텐 아카데미를 졸업한 갈라스는 2부 리그 소속의 SM 캉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96년 캉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1997년 올랭피크 마르세유로 이적하여 4시즌 동안 뛰었다. 마르세유에서 뛰는 동안 로베르 피레스 등과 함께 활약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 데뷔하여 1999년 10월 스타드 벨로드롬에서 당시 유럽 챔피언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는 유럽 대회 첫 골을 기록했다.
2.2. 첼시 FC

2001년, 첼시 FC의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갈라스를 올랭피크 마르세유로부터 620.00 만 GBP에 영입했다. 그는 등번호 13번을 선택했는데, 이는 마르세유에 살던 집의 우편번호에 13이라는 숫자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라니에리 감독 체제에서 갈라스는 마르셀 드사이와 존 테리와 함께 센터백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특히 존 테리와의 파트너십은 16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때로는 레프트백으로도 뛰며 다재다능함을 선보였다. 첼시에서 뛰는 동안 갈라스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2001년 8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존 테리 대신 교체 출전하며 첼시 데뷔전을 치렀고, FA컵 토트넘 홋스퍼 FC전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첼시는 2002년 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스널에게 패배했다. 또한 첼시는 2001-0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라니에리 감독의 후임인 조제 모리뉴 감독 체제에서 갈라스는 첼시의 2년 연속 프리미어리그 우승(2004-05, 2005-06)과 풋볼 리그 컵 우승(2004-05)에 기여했다. 첼시는 또한 2004-0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리버풀 FC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갈라스가 걷어낸 공이 골라인을 넘었다고 판정됨)에서 1-0으로 패배했다.
2004-05 시즌 레프트백 웨인 브리지의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갈라스는 본래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어야 했다. 2005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첼시가 아틀레틱 빌바오로부터 아시에르 델 오르노를 800.00 만 GBP에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스는 종종 왼쪽 풀백으로 출전해야 했고, 이에 대해 점점 불만을 표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비 라인의 어느 위치에서든 뛸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다. 갈라스는 2005-06 프리미어리그 시즌 동안 리버풀, 토트넘 홋스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며 첼시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추가 시간 3분(93분)에 터뜨린 25 yd짜리 결승골은 "첼시 TV"가 선정한 "갈라스 선수의 최고의 순간"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갈라스와 첼시의 계약은 2007년 5월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는 구단이 충분한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계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했고,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벤투스 FC와 AC 밀란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첼시는 갈라스를 중요한 1군 선수로 간주했기 때문에 2006년 5월 그의 이적 요청을 거부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이후 갈라스는 첼시의 프리시즌 미국 투어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첼시는 칼리드 불라루즈를 영입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갈라스의 등번호 13번은 새로 합류한 미하엘 발라크에게 주어졌다.
2006년 9월 1일, 갈라스는 애슐리 콜이 첼시로 이적하는 거래의 일환으로 아스널 FC로 이적했으며, 아스널은 추가로 500.00 만 GBP를 받았다. 이적 후 첼시는 갈라스가 첼시를 떠나지 못하게 할 경우 고의로 자책골을 넣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갈라스는 첼시의 주장을 부인하며 첼시가 "품격이 부족하고", "거짓 비난 뒤에 숨고 있다"고 비난했다. 갈라스를 마르세유에서 첼시로 데려왔던 전 첼시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이러한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으며, PFA 회장 고든 테일러는 이 사건이 "나쁜 인상을 남겼다"며 첼시의 성명은 "대단히 과장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2.3. 아스널 FC
갈라스는 아스널과 4년 계약을 맺었으며, 최근 은퇴한 데니스 베르흐캄프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2006년 10월 아스널 공식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르센 벵거 감독은 보통 공격수나 미드필더에게 주어지는 10번을 수비수에게 준 이유를 설명했다: "3번은 그에게 불편했고, 다른 번호들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결국 10번을 수비수에게 주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공격수에게 주었다면 데니스(베르흐캄프)와의 비교로 인해 많이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데니스의 번호를 주는 것을 꺼렸지만, 특히 수비수에게 주는 것은 더욱 그랬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갈라스는 2006년 9월 9일 미들즈브러 FC와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홈 경기에서 레프트백으로 출전하며 아스널 데뷔전을 치렀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2006년 9월 23일 셰필드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첫 골을 기록했다. 2006년 11월 12일 리버풀 FC와의 경기에서도 한 골을 기록하며 아스널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2007년 8월 9일, 갈라스는 콜로 투레를 부주장으로 두고 아스널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지우베르투 시우바가 주장 완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일부 논란을 야기했다. 아스널 주장으로서의 첫 경기는 2007년 8월 12일 풀럼 FC와의 경기였으며, 아스널은 이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8월 19일 블랙번 로버스 FC와의 경기에서 사타구니 부상을 입었으나, 10월 20일 볼턴 원더러스 FC와의 2-0 승리 경기에서 복귀했다. 11월 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는 자책골을 기록하여 상대에게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추가 시간에 동점골을 넣어 2-2 무승부를 만들었다. 11월 24일 위건 애슬레틱 FC를 상대로 득점했으며, 12월 16일에는 친정팀 첼시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아스널에 승점 3점을 안겼다.
2008년 2월 23일 버밍엄 시티 FC와의 2-2 무승부 경기에서 그의 행동은 비판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마틴 테일러의 태클로 에두아르도 다 실바의 다리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이 발생했다. 아스널이 2-1로 앞선 추가 시간에 가엘 클리시가 페널티킥을 내주자, 갈라스는 항의하는 듯 버밍엄 진영으로 걸어갔고, 제임스 맥패든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갈라스는 다른 선수들이 경기장을 떠나는 동안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아르센 벵거 감독의 위로를 받았다.
2008년 3월 29일 볼턴 원더러스 FC와의 경기에서 갈라스는 득점을 기록하며 2-3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버밍엄 시티전에서의 행동으로 주장 교체에 대한 추측이 있었으나, 벵거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이 문제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8월, 갈라스는 2008-09 시즌에도 팀의 주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2008-09 시즌 동안 갈라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FC 트벤테를 상대로 두 골, FC 디나모 키이우를 상대로 동점골, 토트넘을 상대로 헤딩골을 포함하여 총 6골을 기록했다. 2008년 10월 29일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리그 골을 기록하며 4-4 무승부에서 아스널의 두 번째 골을 넣었다. 11월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1 승리 경기에서는 전 맨유 수비수 미카엘 실베스트르와 함께 뛰며 리오 퍼디난드와 네마냐 비디치 같은 맨유 수비수들을 능가하는 활약을 펼쳤다는 찬사를 받았다.
11월, 갈라스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팀 사기를 저해하는 팀 내 긴장감을 폭로하며, 팀이 성공하려면 아스널의 어린 선수들이 더 많은 용기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 경기인 맨체스터 시티 FC전에서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2주치 임금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24일, 아스널은 그가 주장직에서 영구적으로 해임되었음을 확인했고,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후임 주장이 되었다. 벵거 감독은 언론의 추측과는 달리 갈라스가 여전히 구단에서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확인했으며, 갈라스는 다음 날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갈라스는 인터뷰에서 한 선수가 자신에게 욕설을 했다고 밝히며, 그 선수가 자신보다 6살 어리다고 덧붙였다. 잉글랜드 언론은 문제의 선수가 다혈질 성격을 지닌 로빈 판 페르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으나, 벵거 감독은 갈라스가 팀 내부 문제를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에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3월 17일, 갈라스는 FA컵 8강전 헐 시티 AFC와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넣었다. 2009년 4월 10일, 2008-09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비야레알 CF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 내측 인대 부상을 입어 시즌 잔여 경기에 결장하게 되었다. 이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으며, 갈라스는 전반 43분 만에 교체되었다.
갈라스는 2009-10 시즌을 훌륭한 컨디션으로 시작하여 첫 세 경기에서 세 골을 기록했다. 그는 아스널의 유일한 여름 주요 영입 선수였던 벨기에인 토마스 페르말런과 파트너십을 형성했으며, 두 선수는 리그 첫 8경기에서 총 7골을 합작했다. 8월 22일 시즌 첫 홈 경기에서 포츠머스 FC를 상대로 기이한 골을 기록했다. 페르말런이 코너킥 상황에서 슬라이딩 슈팅을 시도했으나, 갈라스가 우연히 공을 얼굴에 맞히면서 공이 골문으로 튕겨 들어갔다.
2월 17일, 갈라스는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첼시에게 2-0으로 패배한 경기에서 아스널 소속으로 100번째 리그 경기를 치렀다. 그는 시즌 후반기에 부상에 시달려 두 달 넘게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놀랍게도 선발 출전했으나, 부상이 재발하여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들것에 실려 나갔다. 이 경기는 그의 아스널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새로운 계약 협상이 결렬된 후, 갈라스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자유 계약 신분으로 팀을 떠났다. 그는 아스널에서 총 142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기록했다. 아스널 회장 피터 힐-우드는 갈라스의 계약 요구가 비합리적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으며, 주당 8.00 만 GBP의 2년 계약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4. 토트넘 홋스퍼 FC

2010년 8월 20일, 토트넘 홋스퍼 FC의 감독 해리 레드냅은 갈라스가 팀에 합류할 것이라고 확인하며 이적을 "고민할 필요 없는 일"이라고 묘사했다. 이 이적은 8월 22일 확정되었고, 갈라스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1년 계약을 맺었다. 토트넘 구단 역사학자에 따르면, 갈라스는 첼시, 아스널, 토트넘 세 클럽에서 모두 뛴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클라이브 앨런은 토트넘과 첼시에서 뛰었고, 경력 초기에 아스널에서도 뛰었지만, 아스널에서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팀에서 첫 훈련을 마친 후, 갈라스는 토트넘이 프리미어리그 우승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갈라스는 9월 11일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1군 데뷔전을 치렀다. 11월 20일, 주전 주장인 레들리 킹과 마이클 도슨의 부상으로 인해 갈라스는 친정팀 아스널과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경기에서 토트넘의 주장 완장을 처음으로 찼다. 이 경기는 토트넘이 2-3으로 승리한 유명한 경기였으며, 1993년 이후 토트넘의 아스널 원정 첫 리그 승리였다. 2011년 2월 2일, 블랙번 로버스 FC와의 경기에서 세바스티앵 바송과 함께 수비 라인을 형성하며 1-0 승리에 기여했다. 갈라스는 2011년에도 토트넘에서 계속해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10-11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단계에서는 AC 밀란을 상대로 두 차례 뛰어난 활약을 펼쳐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CF와 맞붙게 되었다.
동료 수비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인해 토트넘 수비진에 빈번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스는 토트넘에서의 첫 시즌 동안 강력한 활약을 펼쳤고, 2011년 3월 2년 계약 연장을 통해 2012-13 시즌까지 구단에 남게 되었다. 토트넘에서의 데뷔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6경기에 출전했다.
2011-12 시즌 동안 갈라스는 여러 차례 부상을 당해 시즌 출전 시간이 제한되었고, 마이클 도슨과 레들리 킹과의 센터백 경쟁 속에서 토트넘에서 19경기 출전에 그쳤다. 다음 시즌인 2012-13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17경기에 출전했으며, 2012년 10월 20일 친정팀 첼시에게 4-2로 패배한 경기에서 토트넘에서의 첫 골이자 2년 만의 첫 골을 기록했다. 2013년 6월 7일, 프리미어리그는 그가 토트넘에서 방출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는 토트넘에서 총 6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5. 퍼스 글로리 FC
2013년 10월 23일, 갈라스는 퍼스 글로리 FC와 1년 계약을 맺으며 A리그에서 뛴 최초의 프랑스 선수가 되었다. 그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에밀 헤스키, 오노 신지와 같은 다른 국제적인 선수들의 합류에 이어 A리그에 입성했다. 갈라스는 6라운드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퍼스 글로리 데뷔전을 치렀다. 2014년 9월 3일 웰링턴 피닉스 FC와의 1-1 무승부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그는 2013-14 A리그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했으며, 퍼스 글로리에서 14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3. 국가대표 경력
갈라스는 프랑스 유소년 대표팀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활약하며 국제 무대에서 프랑스를 대표했다.
3.1. 프랑스 유소년 대표팀
갈라스는 프랑스 U-18 대표팀이 유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당시의 주역이었다. 그는 1997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니콜라 아넬카, 미카엘 실베스트르, 윌리 사뇰 등과 함께 프랑스 U-20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했다.
3.2. 프랑스 성인 대표팀

2002년 10월, 갈라스는 UEFA 유로 2004 예선 슬로베니아와의 경기에서 프랑스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 대표팀에 포함되어 카메룬을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결승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후 UEFA 유로 2004에 프랑스 대표로 참가하여 프랑스의 4경기 중 3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나, 결국 우승팀인 그리스에게 패배하여 탈락했다. 2005년 8월 코트디부아르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갈라스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하여 준우승을 차지할 때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월드컵 종료 후,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을 매너 없다고 비판하며, 프랑스가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전에서 상대 선수들의 거칠고 매너 없는 플레이를 조심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2006년 9월,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UEFA 유로 2008 예선 경기에서 프랑스가 3-1로 승리할 때 50번째 국가대표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프랑스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9년 11월, 갈라스는 2010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짓는 골을 기록했다. 이 골은 월드컵 플레이오프 아일랜드와의 연장전에서 나왔으며, 1-1 동점골이자 합계 2-1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 골은 팀 동료 티에리 앙리가 두 차례 핸드볼 반칙을 저지른 후 득점된 것이어서 논란이 되었다.
갈라스는 2010년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에 포함되었다. 이 대회는 니콜라 아넬카가 레몽 도메네크 감독에 의해 퇴출되고 팀이 훈련 거부를 하는 등 프랑스에게 재앙적인 대회였다. 팀의 고참 선수 중 한 명인 갈라스는 불화가 심한 팀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대회 후 갈라스는 도메네크 감독을 비판하며 프랑스의 조별 리그 탈락의 원인이 전 감독에게 있다고 비난했다.
2011년 6월 6일, 33세의 나이에 84번의 국가대표 출전과 5골을 기록한 갈라스는 월드컵 이후 1년 동안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자 즉시 국제 축구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과들루프 대표로도 뛸 자격이 있었으며, 그의 사촌 뤼도비크 키스탱은 과들루프 대표로 뛰었다.
4. 통계
4.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 | 기타 | 합계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캉 | 1995-96 | 디비전 2 | 16 | 0 | 0 | 0 | 3 | 0 | - | - | 19 | 0 | ||
1996-97 | 디비전 1 | 18 | 0 | 3 | 0 | 0 | 0 | - | - | 21 | 0 | |||
합계 | 34 | 0 | 3 | 0 | 3 | 0 | - | - | 40 | 0 | ||||
마르세유 | 1997-98 | 디비전 1 | 3 | 0 | 0 | 0 | 0 | 0 | - | - | 3 | 0 | ||
1998-99 | 디비전 1 | 30 | 0 | 0 | 0 | 3 | 0 | 9 | 0 | - | 42 | 0 | ||
1999-2000 | 디비전 1 | 22 | 0 | 0 | 0 | 2 | 0 | 7 | 1 | - | 31 | 1 | ||
2000-01 | 디비전 1 | 30 | 2 | 0 | 0 | 2 | 0 | - | - | 32 | 2 | |||
합계 | 85 | 2 | 0 | 0 | 7 | 0 | 16 | 1 | - | 108 | 3 | |||
첼시 | 2001-02 | 프리미어리그 | 30 | 1 | 4 | 1 | 4 | 0 | 3 | 0 | - | 41 | 2 | |
2002-03 | 프리미어리그 | 38 | 4 | 5 | 0 | 3 | 0 | 2 | 0 | - | 48 | 4 | ||
2003-04 | 프리미어리그 | 29 | 0 | 4 | 0 | 1 | 0 | 11 | 1 | - | 45 | 1 | ||
2004-05 | 프리미어리그 | 28 | 2 | 1 | 0 | 5 | 0 | 12 | 0 | - | 46 | 2 | ||
2005-06 | 프리미어리그 | 34 | 5 | 3 | 0 | 0 | 0 | 7 | 0 | 1 | 0 | 45 | 5 | |
합계 | 159 | 12 | 17 | 1 | 13 | 0 | 35 | 1 | 1 | 0 | 225 | 14 | ||
아스널 | 2006-07 | 프리미어리그 | 21 | 3 | 2 | 0 | 0 | 0 | 6 | 0 | - | 29 | 3 |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31 | 4 | 2 | 0 | 1 | 0 | 8 | 0 | - | 42 | 4 | ||
2008-09 | 프리미어리그 | 23 | 2 | 4 | 1 | 0 | 0 | 9 | 3 | - | 36 | 6 |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26 | 3 | 1 | 0 | 0 | 0 | 8 | 1 | - | 35 | 4 | ||
합계 | 101 | 12 | 9 | 1 | 1 | 0 | 31 | 4 | - | 142 | 17 | |||
토트넘 홋스퍼 | 2010-11 | 프리미어리그 | 27 | 0 | 1 | 0 | 0 | 0 | 8 | 0 | - | 36 | 0 |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15 | 0 | 1 | 0 | 0 | 0 | 2 | 0 | - | 18 | 0 | ||
2012-13 | 프리미어리그 | 19 | 1 | 0 | 0 | 0 | 0 | 5 | 0 | - | 24 | 1 | ||
합계 | 61 | 1 | 2 | 0 | 0 | 0 | 15 | 0 | - | 78 | 1 | |||
퍼스 글로리 | 2013-14 | A리그 | 15 | 1 | - | - | - | - | 15 | 1 | ||||
경력 합계 | 455 | 28 | 31 | 2 | 24 | 0 | 97 | 6 | 1 | 0 | 608 | 36 |
4.2. 국가대표 통계
4.2.1. 국가대표팀 및 연도별 출전 및 득점 기록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프랑스 | 2002 | 3 | 0 |
2003 | 8 | 0 | |
2004 | 15 | 0 | |
2005 | 11 | 1 | |
2006 | 15 | 1 | |
2007 | 7 | 0 | |
2008 | 10 | 0 | |
2009 | 9 | 2 | |
2010 | 6 | 1 | |
합계 | 84 | 5 |
4.2.2. 국제 경기 득점 기록
# | 일자 | 장소 | 상대팀 | 득점 | 결과 | 종류 |
---|---|---|---|---|---|---|
1 | 2005년 8월 17일 | 스타드 드 라 모송, 몽펠리에, 프랑스 | Côte d'Ivoire코트디부아르프랑스어 | 1-0 | 3-0 | 친선 경기 |
2 | 2006년 8월 16일 | 코셰보 시립 경기장, 사라예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Bosna i Hercegovina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어 | 1-1 | 1-2 | 친선 경기 |
3 | 2009년 10월 10일 | 스타드 뒤 루두루, 갱강, 프랑스 | Føroyar페로 제도페로어 | 3-0 | 5-0 | 2010 월드컵 지역 예선 |
4 | 2009년 11월 18일 | 스타드 드 프랑스, 생드니, 프랑스 | Poblacht na hÉireann아일랜드 공화국아일랜드어 | 1-1 | 1-1 | 2010 월드컵 지역 예선 |
5 | 2010년 5월 30일 | 스타드 7 노벰브르, 라데스, 튀니지 | تونس튀니지아랍어 | 1-1 | 1-1 | 친선 경기 |
5. 수상 경력
5.1. 팀 수상
- 캉
- 프랑스 2부 리그: 1995-96
- 첼시
- 프리미어리그: 2004-05, 2005-06
- 풋볼 리그 컵: 2004-05
- FA 커뮤니티 실드: 2005
- 프랑스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3
- FIFA 월드컵 준우승: 2006
5.2. 개인 수상
- 프랑스 1부 리그 올해의 신인: 1999
- PFA 올해의 팀: 2002-03 프리미어리그, 2005-06 프리미어리그
- ESM 올해의 팀: 2007-08
6. 지도자 경력
윌리암 갈라스는 현역 은퇴 후 헝가리의 축구 클럽 잘라에게르세그이 TE에서 유소년 팀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