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및 축구 입문
요르디 클라시는 1991년 6월 27일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그의 축구 선수로서의 초기 발자취는 특별한 인물과의 인연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아버지의 친구이자 전설적인 축구 선수였던 빌럼 판 하네험은 하를럼의 거리에서 축구를 하던 어린 클라시를 자주 보았고, 그에게서 큰 잠재력을 발견하여 첫 축구화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클라시는 하를럼의 HVV DSK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이후 같은 지역의 HFC EDO를 거쳤다. 2000년, 11세가 되던 해에 참가한 한 대회에서 페예노르트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이적이 결정되었다. 당시 아약스 또한 클라시에게 관심을 보이며 영입 제안을 했지만, 클라시는 아약스보다 거리는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처음부터 페예노르트가 '나의 클럽'으로 새겨져 있었다"며 페예노르트를 선택했다.
1.1. 유소년 경력
클라시는 9세 때인 2000년 여름 페예노르트 유스 아카데미에 입단하여 유소년 팀 단계를 밟아나갔다. 그는 매일 하를럼에서 로테르담까지 기차를 타거나,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아버지의 차를 타고 통학했다. 클라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인물로, 형제들과 특히 아버지의 이름은 그의 몸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페예노르트 유스팀에서 클라시는 작은 체격 때문에 과연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의문을 받았다. 하지만 육성 책임자 스텐리 브라르트는 그의 축구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클라시를 위한 특별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클라시는 결국 U-17 팀으로 승격했고, 그 팀에는 레로이 페르, 스테판 더 프레이, 루크 카스테그노스, 엘빈 뮐더르, 리키 판 하런 등 많은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클라시는 그곳에서 판 하런, 샤빌 이소피와 함께 중원을 구성했다. 2008-09 시즌에는 페예노르트 A1과 A2 팀 모두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클럽의 재정난으로 인해 A 유니오르 팀의 많은 선수들이 1군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클라시는 이 두 팀에서 모두 주장을 맡아 시즌 동안 두 개의 챔피언십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 클럽 경력
요르디 클라시는 페예노르트 유스 아카데미에서 성장하여 프로 무대에 데뷔한 후, 여러 클럽을 거치며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켜 나갔다.
2.1. SBV 엑셀시오르
2010년 여름, 클라시는 SBV 엑셀시오르로 임대 이적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2010년 8월 15일 페예노르트와의 로테르담 더비에서 선발 출전하여 3대2 승리에 기여하며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일주일 후에는 NEC 네이메헌을 상대로 프로 첫 골을 기록했다. 엑셀시오르에서 그는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며 리그 32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2. 페예노르트

2011년 여름, 클라시는 엑셀시오르 임대를 마치고 페예노르트로 복귀했다. 새로 부임한 감독 로날트 쿠만은 즉시 클라시를 1군 스쿼드에 포함시켰고, 프리시즌부터 그에게 주전 자리를 부여했다. 2011년 7월 31일, 그는 말라가 CF와의 친선 경기에서 페예노르트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FC 흐로닝언전에서 페예노르트에서의 첫 공식 골을 기록했으며, 좋은 플레이와 끈기 있는 모습으로 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2011-12 시즌 동안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에레디비시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성장했고, '데 텔레흐라프' 등이 주최하는 에레디비시 올해의 선수 랭킹에서 2위를 차지하며 '실버 부츠'를 수상했다. 이 상은 그에게 축구화를 선물했던 빌럼 판 하네험이 직접 수여했다.
2012-13 시즌에는 등번호를 16번에서 6번으로 변경했으며, 스테판 더 프레이에 이어 팀의 제2 주장을 맡았다. 더 프레이가 부상으로 이탈한 기간 동안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었다. 이 시즌 동안 클라시는 발목, 어깨, 코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리그 33경기에 출전하며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출전 시간을 기록했다. 2013년 7월 6일, 그는 페예노르트와 네 번째 계약을 맺으며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13-14 시즌에도 팀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본래의 기량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컨디션을 회복하여 3월 9일 FC 흐로닝언전부터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알헤메인 다흐블라트'와 '풋볼 인터내셔널'의 올해의 선수 랭킹에서 모두 2위를 기록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FC 포르투의 강한 관심을 받았으나, 이적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페예노르트가 6년 만에 UEFA 유로파리그 본선 조별 리그 진출을 확정하면서 클라시는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8월 29일, 그는 2018년까지 페예노르트와 계약을 연장했다. 클라시는 선수로서 팀 내에서 성장하는 것은 물론, 팀 전체와 함께 발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명실상부한 리더로 성장하여 경기장 안팎에서 팀을 이끌었으며, 시즌 초반 부진했던 팀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2014 FIFA 월드컵 참가로 단 1주일의 짧은 휴가 후 팀에 합류하는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점차 컨디션을 끌어올려, 10라운드 SC 캄뷔르 레이우아르던전에서는 '풋볼 인터내셔널' 주간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고, 19라운드 아약스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쳐 다시 한번 주간 최우수 선수에 뽑혔다. '알헤메인 다흐블라트'에서는 10월과 1월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 막판에는 팀의 부진과 함께 자신도 컨디션이 떨어졌지만, 시즌 전체적으로는 '알헤메인 다흐블라트'와 '풋볼 인터내셔널'의 올해의 선수 랭킹에서 모두 2위를 기록하며 높은 평가를 유지했다.
2.3. 사우샘프턴 FC

2015년 7월 15일, 클라시는 사우샘프턴 FC와 5년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이적료는 보너스를 포함하여 약 1500.00 만 EUR로 보도되었으며, 페예노르트가 받은 순수 이적료는 약 1280.00 만 EUR였다. 이 금액은 당시 페예노르트 구단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이적료였다. 엑셀시오르는 이적료의 5%를, 그리고 탤런트 풀은 18.33%를 받았다. 2017년 여름 클라시가 보너스 조건을 충족하면서 총 이적료는 1500.00 만 EUR에 달했고, 이는 페예노르트의 클럽 기록으로 보도되었다. 사우샘프턴으로 이적하면서 클라시는 페예노르트에서 자신을 1군으로 끌어올렸던 로날트 쿠만 감독과 다시 한번 함께하게 되었다.
2016년 여름, 프랑스인 클로드 퓌엘이 사우샘프턴의 지휘봉을 잡았다. 클라시는 2016년 11월 30일 EFL컵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2대0 승리를 이끌며 사우샘프턴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그의 창의적인 플레이는 사우샘프턴이 2017년 EFL컵 결승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나,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7년 4월 8일, 그는 프리미어리그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1대0 승리를 이끌며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우샘프턴에서 점차 출전 기회를 잃게 되었다.
2.4. 클럽 브뤼허
2017년 8월 30일, 클라시는 2017-18 시즌 동안 클럽 브뤼허로 임대 이적했다.
2.5. 페예노르트 (임대 복귀)
2018년 7월 25일, 클라시는 2018-19 시즌 동안 페예노르트로 다시 임대 복귀했다. 그는 페예노르트 복귀를 강력히 원했으며, 사우샘프턴은 클라시를 붙잡으려 했지만 선수의 의사를 존중했다。페예노르트 또한 카림 엘 아흐마디의 이적에 따라 그의 대체자로서 클라시의 복귀를 원했다. 등번호는 이전에 사용하던 6번이 이미 다른 선수에게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엘 아흐마디가 사용하던 8번을 선택했다.
2.6. AZ 알크마르

2019년 7월 22일, 클라시는 AZ 알크마르와 2년 계약을 맺고 자유 계약으로 이적했다. 그는 현재 AZ 알크마르에서 등번호 8번을 달고 활약하고 있다.
3. 국가대표 경력
요르디 클라시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각 연령별 팀을 거쳐 성인 대표팀까지 활약했다.
3.1. 네덜란드 U-21
SBV 엑셀시오르에서 프로 데뷔를 한 지 두 달 만인 2010년 11월, 클라시는 네덜란드 U-21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3.2. 네덜란드 대표팀
2012년 2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는 클라시에게 관심을 표명하며 그를 UEFA 유로 2012 예비 명단에 포함시켰다.
클라시는 루이 판 할 감독이 이끄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본선 23인 스쿼드에 포함되었다. 네덜란드는 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스페인과 개최국 브라질을 꺾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클라시는 이 대회에서 두 경기에 출전했다.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는 나이젤 더 용과 교체되어 출전했으며, 브라질과의 3위 결정전에는 선발 출전하여 네덜란드의 3대0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 17번의 국제 A매치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
요르디 클라시는 경기 조율 능력이 뛰어난 투지 넘치는 미드필더로, 골을 넣는 감각도 갖추고 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네덜란드의 사비'라는 별명을 얻게 했으며, 한때는 안드레아 피를로의 대체 자원으로도 각광받았다.
클라시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몸싸움에 밀리지 않는 강한 피지컬과 전진 수비 타이밍을 포착하는 넓은 시야를 겸비하고 있다. 또한, 밀집 지역에서도 공을 빼앗기지 않는 볼 컨트롤 기술과 수십 미터 떨어진 곳까지 정확하게 패스를 연결하는 킥 기술을 갖추고 있다.
빌럼 판 하네험은 클라시를 자신의 옛 동료인 빔 얀선에 비유하며 "그도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선수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기술을 갖추고 있어 몸싸움 없이도 공을 빼앗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앞을 보고 공을 앞으로 운반하려는 선수라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판 하네험은 클라시가 튀르키예와의 FIFA 월드컵 예선 데뷔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그는 플레이메이커가 아니라 황금 같은 연결 고리 선수이다. 그래서 그의 플레이는 주변 선수들의 능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옹호했으며, 실제로 며칠 뒤 헝가리와의 월드컵 예선에서는 클라시가 맹활약했다.
페예노르트 감독 로날트 쿠만 역시 클라시를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로 인정하면서도, "그의 존재는 팀이 콤팩트한 플레이로 공간을 좁혔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그럴 때 그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항상 자유로운 선수를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공간이 넓어지면 그는 아직 그것을 잘 메울 능력이 없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그의 플레이가 팀 상황에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5.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유럽 대회 | 기타 | 총합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엑셀시오르 (임대) | 2010-11 | 에레디비시 | 32 | 2 | 1 | 0 | - | 2 | 0 | 35 | 2 | |
페예노르트 | 2011-12 | 에레디비시 | 33 | 3 | 0 | 0 | - | - | 33 | 3 | ||
2012-13 | 33 | 2 | 2 | 0 | 4 | 0 | - | 39 | 2 | |||
2013-14 | 32 | 1 | 3 | 0 | 2 | 0 | - | 37 | 1 | |||
2014-15 | 31 | 2 | 1 | 0 | 12 | 0 | 2 | 0 | 46 | 2 | ||
총합 | 129 | 8 | 6 | 0 | 18 | 0 | 2 | 0 | 155 | 8 | ||
사우샘프턴 | 2015-16 | 프리미어리그 | 22 | 0 | 2 | 0 | 1 | 0 | - | 25 | 0 | |
2016-17 | 16 | 1 | 6 | 1 | 2 | 0 | - | 24 | 2 | |||
총합 | 38 | 1 | 8 | 1 | 3 | 0 | - | 49 | 2 | |||
클럽 브뤼허 (임대) | 2017-18 | 벨기에 프로 리그 | 20 | 0 | 5 | 1 | 0 | 0 | - | 25 | 1 | |
페예노르트 (임대) | 2018-19 | 에레디비시 | 33 | 1 | 5 | 0 | 2 | 0 | - | 40 | 1 | |
AZ | 2019-20 | 에레디비시 | 18 | 0 | 3 | 0 | 11 | 0 | - | 32 | 0 | |
2020-21 | 8 | 1 | 1 | 0 | 2 | 0 | - | 11 | 1 | |||
2021-22 | 30 | 1 | 4 | 0 | 8 | 1 | 4 | 1 | 46 | 3 | ||
2022-23 | 33 | 3 | 2 | 0 | 18 | 0 | - | 53 | 3 | |||
2023-24 | 28 | 2 | 3 | 0 | 8 | 0 | - | 39 | 2 | |||
2024-25 | 21 | 0 | 3 | 0 | 8 | 1 | - | 32 | 1 | |||
총합 | 138 | 7 | 16 | 0 | 55 | 2 | 4 | 1 | 213 | 10 | ||
커리어 총합 | 390 | 19 | 41 | 2 | 78 | 2 | 7 | 1 | 517 | 24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네덜란드 | 2012 | 2 | 0 |
2013 | 4 | 0 | |
2014 | 5 | 0 | |
2015 | 2 | 0 | |
2016 | 4 | 0 | |
총합 | 17 | 0 |
6. 수상 경력
페예노르트
- 요한 크라위프 스할: 2018
사우샘프턴
- EFL컵 준우승: 2016-17
클럽 브뤼허
- 벨기에 프로 리그: 2017-18
네덜란드
- FIFA 월드컵 3위: 2014
7. 개인적인 이야기 및 일화
- 클라시는 18세 때 오른쪽 팔에 가족의 이름과 함께 'You mean everyting in my life'라는 문신을 새겼다. 2012년 네덜란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이 문신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everyting'이라는 철자 오류가 지적되었고, 그는 몇 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철자 오류를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화제가 되었지만, 클라시는 "내 주의가 부족했다"며 문신을 해준 사람을 탓하지 않았고, 훗날 같은 사람에게 올바른 철자로 다시 새겼다.
- 클라시는 페예노르트의 문화인 '불언실행(不言實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큰소리를 내는 법이 거의 없다. 반면 그는 자신이 감정적인 사람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2012년 '풋볼 갈라'에서 '실버 부츠'를 수상했을 때의 연설, 2014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빌럼 판 하네험에게 영상 메시지를 받았을 때, 2013-14 시즌 페예노르트에서의 로날트 쿠만 감독과의 고별 행사, 그리고 2015년 프리시즌에 사우샘프턴 선수로서 페예노르트 스타디온에서 페예노르트와의 고별 경기를 치렀을 때 등 여러 차례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2015년 프리시즌, 사우샘프턴이 데 뤼터에서 훈련 캠프를 진행하던 중, 호텔로 돌아가는 데 사용될 마운틴바이크에 아약스 스티커가 붙어 있자 (데 뤼터 시설은 아약스도 전통적으로 사용한다) 클라시는 탑승을 거부했다. 결국 스태프가 스티커를 떼어낸 후에야 자전거를 탔다고 한다.
- 그의 성 'Clasie'는 첫 음절에 강세가 있지만, 일본에서는 'クラシー'(쿠라시)로 표기되기도 한다. 이 경우 본래 발음에는 없는 모음에 강세가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