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사 및 배경
오무라 사부로는 1976년 6월 1일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기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한신 타이거스의 팬이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힌 바 있다. 또한, 소년 야구 시절에는 이른바 '검은 안개 사건'으로 프로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되었던 모리야스 도시야키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2000년 8월에는 탤런트 나카지마 미치요와 결혼했다.
2. 프로 입단 전 경력
오카야마 시립 오카테루 중학교(오카야마 리틀 시니어)를 졸업한 후, PL가쿠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1994년 제66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1번 중견수'로 활약하며 팀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PL가쿠엔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2학년 선배로 이마오카 마코토, 1학년 선배로 마쓰이 가즈오, 동기로 우다카 신지, 1학년 후배로 후쿠도메 고스케, 2학년 후배로 마에카와 가쓰히코 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같은 해 1994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이는 지바 롯데에서 타자로는 하카마다 히데토시 (포수) 이후 17년 만의 1순위 지명이었다. 입단 당시 등번호는 그의 본명 '사부로'에 맞춰 36번으로 결정되었다. 등록명은 같은 해 본명 '스즈키 이치로'에서 등록명을 변경하며 재능을 꽃피운 이치로의 사례를 본받아, 본인의 강력한 희망으로 '사부로'로 결정되었다. 또한, 당시 팀에 동명이인 오무라 이와오가 소속되어 있었던 것도 등록명 변경의 배경이 되었다.
3. 프로 선수 경력
오무라 사부로는 1995년 프로 데뷔 후 2011년 시즌 중반까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으며,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거쳐 다시 지바 롯데로 복귀하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3.1.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1995-2011)

오무라 사부로는 1995년 프로 데뷔 후 2011년 시즌 중반까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 1995년 ~ 1999년**: 프로 첫 해인 1995년 6월에 1군에 처음으로 승격하여 피트 인카빌리아의 부진으로 좌익수로 선발 출장 기회를 얻었다. 고졸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시즌 동안 28경기에 출전했다. 1996년에는 당시 지바 롯데 외야진의 두터운 선수층으로 인해 1군 출장 기회가 9경기에 그쳤다. 1997년부터 등번호 2번을 부여받았고,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33경기에 출전했으나 타율 .179로 부진했다. 1998년에는 단 2경기 출장에 그치며 프로 첫 시즌 무안타를 기록했다. 1999년에는 1군에 정착하여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당시 프로 데뷔 후 최고 성적을 남겼다.
- 2000년**: 5월 18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에서 2회말 마쓰모토 아키라로부터 프로 데뷔 첫 홈런인 좌월 3점 홈런을 터뜨렸다. 그 해 이 홈런을 포함해 5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타격에서 성장을 보였고, 후반기에는 우익수 주전으로 정착했다. 출장 경기 수는 전년보다 줄었지만 타석 수가 크게 늘어 타율 .270을 기록했다.
- 2001년**: 오쓰카 아키라의 성장과 데릭 메이의 영입으로 외야수층이 두터워지면서, 캠프부터 내야수로 전향했다. 3월 24일 세이부 돔에서 열린 개막전에 '9번 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그러나 본인의 부진과 같은 2루수 사카이 다다하루의 호조가 겹쳐 5월 하순부터 다시 외야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 2002년**: 이 해부터 등록상 외야수로 복귀했다. 시즌 내내 '2번 중견수' 주전으로 활약하며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개인 첫 규정 타석에 도달하여 개인 최다인 131경기에 출전, 타율 .286, 9홈런, 13도루를 기록했다.
- 2003년**: '1번 우익수'로 개막전 선발 출장했으나, 부상으로 80경기 출장에 그쳤다. 하지만 개인 첫 두 자릿수 홈런(10개)을 기록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종신 명예 감독이자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감독이었던 나가시마 시게오로부터 "이 정도로 상반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타자는 본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 2004년**: 9시즌 만에 지바 롯데 감독으로 복귀한 보비 밸런타인이 등번호 2번을 희망했고, 구단이 이를 수락하면서 등번호를 3번으로 변경했다. 이 해에는 전년보다 많은 89경기에 출전했으나, 타율 .256, 5홈런으로 성적이 하락했다.
- 2005년**: 8월 13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발탁되어 2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는 등 31년 만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시즌 동안 107경기에 출전했고,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타율 .313, 14홈런, 50타점으로 모두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마린 건 타선'의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4번 타자, 연결의 4번"으로 평가받았다. 이 해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 2006년**: 8월 15일자로 FA 권리를 취득했다. 이 해에는 전년보다 많은 115경기에 출전했으나, 규정 타석에 미치지 못하고 타율 .218로 타격 부진에 빠졌다. 이로 인해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2년 계약으로 팀에 잔류했다.
- 2007년**: 개막 초반 부진했으나 5월부터 '4번 우익수'로 정착했다. 리그 7위인 득점권 타율 .310을 기록했으며, 팀 내 2위이자 개인 최고인 68타점을 올렸다. 6월 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는 9타수 연속 안타 기록을 세워 구단 기록인 호리 고이치의 8타수 연속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역대 3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퍼스트 스테이지 MVP를 수상했다. 시즌 오프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는 야구 일본 대표팀의 최종 후보로 선출되어 타이완에서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 예선 겸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8번, 9번 타순이었음에도 대한민국전에서 동점 적시타를, 타이완전에서는 동점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키는 등 주축급 활약을 보였다. 또한, 3경기 모두 당시 잘 지키지 않던 좌익수 수비를 견실하게 해내며 일본의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기여했다. 이 대회에서는 본명 '오무라 사부로'로 출전했다. 이 해 두 번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 2008년**: 타율 .289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봄에 왼쪽 허벅지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영향으로 105경기 출장에 그쳤고, 전년보다 타점이 10점 이상 줄어들며 규정 타석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프 시즌에는 메이저 리그 이적도 고려하며 FA 권리 행사를 검토했으나, 결국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잔류했다.
- 2009년**: 개막을 1군에서 맞이하여 시즌 내내 1군에 동행했다. 팀이 부진한 가운데서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2002년 이후 두 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전년보다 많은 119경기에 출전하여 규정 타석에 도달한 해 중 유일하게 3할 타율이자 개인 최고인 타율 .314(리그 3위), 개인 첫 시즌 20홈런(22개), 개인 최다 타이인 68타점을 기록했다. 반면, 수비와 주루에서는 노쇠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해이기도 했다.
- 2010년**: 이 해부터 선수 회장으로 취임했다. 시즌에서는 주로 6번 타자를 맡았고, 시즌 마지막 3연전부터 포스트 시즌까지는 4번 타자를 맡았다. 전년보다 타율이 크게 하락했으나, 개인 최다인 71타점을 기록했다. 홈런도 19개를 기록하며 전년에 이어 장타력이 건재함을 보여주었고, 통산 1000안타와 100홈런도 달성했다. 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과 두 번째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에서의 성적은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던 이전 출전 때보다 전체적으로 뛰어났음에도(타율 .300, 1홈런, 6타점, 9안타), 팀 동료인 이마에 도시야키가 시리즈 MVP를, 우수 선수상은 기요타 이쿠히로와 우치 다쓰야, 상대 팀인 오시마 요헤이가 각각 수상하여 선정되지 못했다.
- 2011년**: 개막 초에는 주로 7번 타자를 맡았으나, 김태균의 부상으로 4월 말부터 4번 타자로 출전하게 되었다. 수비에서는 당초 우익수를 맡았으나, 기요타 이쿠히로, 이시미네 쇼타 등이 선발 출장하면서 이후로는 좌익수로 이동했다. 5월 4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사구를 맞아 오른손 약지 타박상을 입었다. 본인은 경미한 부상이라고 주장했으나 직후 등록이 말소되었고, 그대로 1군 복귀 없이 6월 29일 구도 다카히토와 금전이 포함된 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이적의 배경에는 구단의 경비 절감과 젊은 선수 육성 방침이 있었다. 같은 해 4월 18일부터 QVC 마린필드에서 일본산 소 민스 커틀릿을 패티로 사용한 '사부로 버거'가 판매되었으나, 요미우리 이적과 함께 판매가 종료되었다.
3.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11)
2011년 6월 30일, 오무라 사부로는 지배하 선수로 등록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회견을 가졌다. 구단 방침에 따라 등록명은 본명인 '오무라 사부로'로 결정되었고, 등번호는 트레이드 상대인 구도 다카히토가 사용하던 0번을 부여받았다. 다음 날인 7월 1일 1군에 합류하여 즉시 출장 선수 등록되었고, 같은 날 도쿄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전 8회말에 대타로 출전, 요시미 가즈키로부터 좌측 관중석에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7월 2일 도쿄 돔에서 이적 후 처음으로 6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이후에는 상대 팀 선발 투수가 좌완 투수일 때 과거의 승부 강점을 인정받아 5번 또는 6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 외에는 주로 대타로 출전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오르지 않아 한때 2군으로 내려가기도 하는 등 총 48경기 출장에 그쳤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는 대타로 출전하여 홈런을 기록했으나, 팀은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일본 시리즈 종료 후, 출전 기회를 찾아 FA 권리를 행사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의 재적 기간은 불과 154일이었다.
3.3. 지바 롯데 마린스 복귀 및 선수 생활 말기 (2012-2016)

2011년 12월 23일, 오무라 사부로의 FA 권리 행사에 따라 지바 롯데 마린스로의 복귀가 결정 및 발표되었다. 오무라를 방출했던 구단 프런트가 퇴임하고 후임자가 그의 복귀에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지바 롯데 복귀에 대한 걸림돌은 사라졌다.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는 등록명을 다시 사부로로 되돌렸고, 등번호도 3번으로 결정되었다.
- 2012년**: 개막부터 5번 타자를 맡았고, 이후 부진한 조시 화이트셀을 대신하여 4번 타자로 기용되며 전반기 팀의 쾌진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여름에 컨디션이 하락했고, 화이트셀 복귀 후에는 6번이나 7번 등 하위 타순으로 내려갔다. 수비는 당초 좌익수를 맡았고, 화이트셀 이탈 후에는 주로 지명 타자로 출전했다. 이구치 다다히토나 화이트셀 등 다른 야수가 지명 타자로 출전할 경우에는 좌익수도 맡았다. 또한, 시즌 전부터 1루수 수비 연습을 시작하여 9월 21일 오릭스전에서 처음으로 1루수로 출전했다. 이 해 최종적으로 개인 최다인 137경기에 출전했으나, 타율 .239, 7홈런, 52타점으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득점권 타율은 .290을 기록했고, 리그 최고인 78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승부 강점을 보여주었다. 시즌 종료 후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 2013년**: 개막전은 '6번 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시즌 초반부터 부진이 이어져 대타 출장이 많아졌다. 6월 2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9회말 대타로 등장하여 12년 만의 끝내기 안타를 터뜨렸다. 컨디션이 오르지 않은 채 7월 말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말 1군에 복귀한 후 컨디션을 회복하여 주로 좌익수로 주전 자리를 되찾았다. 그러나 시즌 전체적으로는 73경기 출장에 타율 .245, 5홈런, 24타점으로 다시 한번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매년 높은 타율을 기록하던 득점권 타율이 .183으로 떨어지며 강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년에는 지명 타자 출장이 많았으나, 이 시즌에는 크레이그 브래젤이나 G.G. 사토의 합류로 좌익수 수비를 맡은 경기가 더 많았다.
- 2014년**: 8년 연속 이어오던 개막전 선발 출장을 놓쳤으나, 개막전 9회에 대타로 출전하여 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부진이 이어져 10타석 이상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4월 4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시즌 첫 적시타를 포함한 멀티 안타를 기록한 후 점차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5월에는 타격감이 절정에 달해 2005년부터 10년 연속 4번 타자도 맡았으며, 월간 MVP 후보에 오를 만큼 활약했다(타율 .324, 2홈런, 11타점, OPS .867). 한때 타율이 .330을 넘기도 했으나, 교류전에 들어서면서 점차 컨디션이 하락했고, 시즌 막바지에는 도중 합류한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의 활약과 본인의 부진이 겹치며 출전 기회가 급감했다. 최종적으로 타율 .248, 4홈런, 25타점으로 전년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득점권 타율은 .284로 전년보다 크게 상승했다. 또한 2년 만에 우익수 수비도 맡았다.
- 2015년**: 개막부터 부진이 이어져 주로 대타로 기용되었다. 6월 1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첫 홈런을 터뜨렸으나 이후에도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았다. 10월 4일 닛폰햄전에서 결승 2점 적시타를 터뜨리며 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며 시즌을 마쳤고, 최종적으로 36경기에서 타율 .217(46타수 10안타), 1홈런, 4타점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 2016년**: 8월 31일, 구단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2016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이가 들고, 이 해에는 단 한 번도 1군에 승격하지 못하면서 은퇴 시기를 깨달았다고 밝혔다. 은퇴에 앞서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2005년 31년 만의 일본 제일 등, 일본 제일을 두 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야구 인생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떤 때라도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 그리고 관계자를 비롯해 여러 형태로 지원해 주신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22년간 정말 감사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9월 25일 오릭스전(QVC 마린필드)에서 은퇴 경기를 가졌고, '4번 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9회초에는 지명 타자 해제 후 좌익수와 우익수 수비에 나섰다. 타격에서는 3타석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마지막 타석인 9회말 4번째 타석에서 히라노 요시히사로부터 우중간 2루타를 기록하며 스스로 은퇴의 꽃길을 장식했다. 경기 후 열린 은퇴식에서는 "저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이 지바 롯데 마린스를 일본 최고의 구단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꿈을 향해 용왕매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경기에서는 지바 롯데 구단 최초로 퍼블릭 뷰잉도 실시되었다. 또한, 은퇴식과 현역 생활을 돌아보는 기사 등을 통해 니시오카 쓰요시, 스즈키 다이치, 니시노 유시 등으로부터 한 명의 야구인으로서 정확한 조언을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이 전해졌으며, 은퇴 경기에는 요미우리 시절 팀 동료들( 아베 신노스케, 사카모토 하야토, 초노 요시노부, 우쓰미 데쓰야, 야마구치 데쓰야, 2014-2015년 지바 롯데에 재적했던 루이스 크루즈)이 응원하러 오는 등 그의 두터운 인망이 돋보이는 은퇴였다. 이후 12월 2일 자유 계약 공시되었다.
4. 선수로서의 특징
4.1. 타격
오무라 사부로는 내각구조차도 우익수 방향으로 밀어치는 기술을 주특기로 삼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통산 득점권 타율 .326을 기록하는 등 승부처에서의 강한 면모를 보였고, 투수의 좌우를 가리지 않는 능력도 강점이었다(좌투수 상대 타율 .292, 우투수 상대 타율 .285).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타구 방향을 정하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으며, 빠른 카운트에 강한 반면, 몰리면 약한 경향을 보였다.
4.2. 수비·주루
수비 실력은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외야에서 홈으로 던지는 정확한 송구는 '레이저 빔'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우익수 라인 방향의 타구 처리에 약점을 보이기도 했다.
주루에서는 우타자임에도 불구하고 1루까지 꾸준히 4.3초대를 기록하는 빠른 발을 자랑했으며, 특히 3루까지는 11.66초를 기록하는 준족이었다.
5. 수상 및 기록
5.1. 표창
- 골든 글러브상 : 2회 (2005년, 2007년)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 1회 (2005년)
- 월간 MVP : 1회 (2007년 6월)
- JA 전농 Go·Go상 : 1회 (최다 2·3루타상 : 2002년 8월)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닛폰 생명상 : 1회 (2007년, 타율 .347, 33안타, 3홈런, 23타점. 타점은 12개 구단 중 최고)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MVP : 1회 (2007년)
- 유캔 신조어·유행어 대상 TOP 10 (2005년, '보비 매직', 이마에 도시야키와 공동 수상)
5.2. 기록
5.2.1.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 1995년 6월 25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3차전(후쿠오카 돔), 8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석 : 상동, 2회초 시모야나기 쓰요시로부터 볼넷
- 첫 안타·첫 타점 : 1995년 6월 27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4차전(후쿠이 현영 야구장), 2회말 오노 가즈요시로부터 적시타
- 첫 도루 : 1995년 7월 6일, 대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14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5회말 2루 안착(투수 : 고이케 히데오, 포수 : 후루쿠보 겐지)
- 첫 홈런 : 2000년 5월 18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7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2회말 마쓰모토 아키라로부터 좌월 3점 홈런
5.2.2. 이정표 기록
- 통산 1000경기 출장 : 2007년 8월 15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6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4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 (역대 421번째)
- 통산 1000안타 : 2010년 4월 17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4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5회말 가네코 지히로로부터 좌중간 2점 홈런 (역대 257번째)
- 통산 100홈런 : 2010년 7월 20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4차전(삿포로 돔), 5회초 기다 마사오로부터 중월 솔로 홈런 (역대 261번째)
- 통산 1500경기 출장 : 2012년 5월 31일, 대 한신 타이거스 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4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 (역대 176번째)
- 통산 1000삼진 : 2012년 6월 11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4차전(도쿄 돔), 2회초 스기우치 도시야로부터 (역대 54번째)
5.2.3. 기타 기록
- 9타석 연속 안타 : 2007년 6월 3일 ~ 6일 (역대 6번째)
- 동일 시즌 2개 구단에서 홈런 : 2011년 (역대 4번째)
- 올스타전 출장 : 2회 (2002년, 2009년)
5.3. 등번호
- 36 (1995년 ~ 1996년)
- 2 (1997년 ~ 2003년)
- 3 (2004년 ~ 2011년 6월 29일, 2012년 ~ 2016년)
- 9 (2007년 제2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0 (2011년 6월 30일 ~ 2011년 시즌 종료)
- 86 (2023년 ~ , 지도자 경력)
5.4.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4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1995년 | 지바 롯데 | 28 | 61 | 48 | 4 | 9 | 2 | 0 | 0 | 11 | 2 | 3 | 4 | 1 | 1 | 11 | 0 | 0 | 17 | 0 | .188 | .333 | .229 | .563 |
1996년 | 9 | 1 | 1 | 1 | 1 | 0 | 0 | 0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000 | 1.000 | 1.000 | 2.000 | |
1997년 | 33 | 32 | 28 | 2 | 5 | 2 | 0 | 0 | 7 | 1 | 1 | 0 | 2 | 0 | 2 | 0 | 0 | 8 | 0 | .179 | .233 | .250 | .483 | |
1998년 | 2 | 1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00 | .000 | .000 | .000 | |
1999년 | 108 | 156 | 130 | 26 | 30 | 9 | 0 | 0 | 39 | 8 | 1 | 5 | 12 | 0 | 12 | 1 | 2 | 27 | 0 | .231 | .306 | .300 | .606 | |
2000년 | 95 | 314 | 263 | 42 | 71 | 13 | 1 | 5 | 101 | 23 | 8 | 2 | 15 | 1 | 35 | 0 | 0 | 41 | 4 | .270 | .355 | .384 | .739 | |
2001년 | 108 | 284 | 240 | 37 | 55 | 12 | 1 | 1 | 72 | 25 | 9 | 7 | 17 | 3 | 23 | 0 | 1 | 45 | 8 | .229 | .296 | .300 | .596 | |
2002년 | 131 | 512 | 441 | 67 | 126 | 33 | 2 | 9 | 190 | 43 | 13 | 1 | 20 | 6 | 36 | 0 | 9 | 93 | 4 | .286 | .348 | .431 | .778 | |
2003년 | 80 | 333 | 286 | 44 | 78 | 23 | 1 | 10 | 133 | 46 | 4 | 7 | 13 | 4 | 24 | 1 | 6 | 66 | 2 | .273 | .338 | .465 | .803 | |
2004년 | 89 | 295 | 258 | 31 | 66 | 16 | 3 | 5 | 103 | 33 | 2 | 2 | 5 | 2 | 26 | 0 | 4 | 54 | 12 | .256 | .331 | .399 | .730 | |
2005년 | 107 | 394 | 351 | 68 | 110 | 19 | 6 | 14 | 183 | 50 | 6 | 3 | 2 | 2 | 38 | 0 | 1 | 77 | 6 | .313 | .380 | .521 | .901 | |
2006년 | 115 | 344 | 298 | 38 | 65 | 13 | 1 | 9 | 107 | 38 | 6 | 2 | 2 | 8 | 34 | 0 | 2 | 84 | 6 | .218 | .295 | .359 | .654 | |
2007년 | 133 | 528 | 472 | 67 | 127 | 28 | 4 | 7 | 184 | 68 | 13 | 5 | 3 | 6 | 43 | 1 | 4 | 105 | 5 | .269 | .331 | .390 | .721 | |
2008년 | 105 | 390 | 346 | 43 | 100 | 22 | 2 | 6 | 144 | 56 | 6 | 4 | 0 | 4 | 36 | 1 | 4 | 70 | 5 | .289 | .359 | .416 | .775 | |
2009년 | 119 | 489 | 427 | 71 | 134 | 24 | 2 | 22 | 228 | 68 | 4 | 7 | 4 | 9 | 48 | 2 | 1 | 121 | 7 | .314 | .377 | .534 | .911 | |
2010년 | 125 | 513 | 452 | 58 | 118 | 15 | 2 | 19 | 194 | 71 | 2 | 1 | 2 | 1 | 56 | 0 | 2 | 118 | 14 | .261 | .344 | .429 | .774 | |
2011년 | 19 | 78 | 70 | 5 | 19 | 4 | 0 | 2 | 29 | 9 | 0 | 0 | 0 | 0 | 6 | 0 | 2 | 13 | 3 | .271 | .346 | .414 | .760 | |
요미우리 | 48 | 111 | 103 | 10 | 25 | 5 | 0 | 1 | 33 | 9 | 0 | 2 | 1 | 0 | 7 | 0 | 0 | 26 | 2 | .243 | .291 | .320 | .611 | |
'11 소계 | 67 | 189 | 173 | 15 | 44 | 9 | 0 | 3 | 62 | 18 | 0 | 2 | 1 | 0 | 13 | 0 | 2 | 39 | 5 | .254 | .314 | .358 | .672 | |
2012년 | 지바 롯데 | 137 | 560 | 476 | 52 | 114 | 28 | 0 | 7 | 163 | 52 | 0 | 0 | 0 | 4 | 78 | 1 | 2 | 105 | 12 | .239 | .346 | .342 | .688 |
2013년 | 73 | 216 | 184 | 17 | 45 | 9 | 0 | 5 | 69 | 24 | 0 | 1 | 1 | 4 | 27 | 0 | 0 | 42 | 6 | .245 | .335 | .375 | .710 | |
2014년 | 81 | 249 | 218 | 18 | 54 | 13 | 0 | 4 | 79 | 25 | 0 | 2 | 0 | 3 | 27 | 0 | 1 | 60 | 6 | .248 | .329 | .362 | .692 | |
2015년 | 36 | 52 | 46 | 2 | 10 | 1 | 0 | 1 | 14 | 4 | 0 | 0 | 0 | 0 | 6 | 0 | 0 | 14 | 1 | .217 | .308 | .304 | .612 | |
2016년 | 1 | 4 | 4 | 0 | 1 | 1 | 0 | 0 | 2 | 0 | 0 | 0 | 0 | 0 | 0 | 0 | 0 | 3 | 0 | .250 | .250 | .500 | .750 | |
통산 : 22년 | 1782 | 5917 | 5143 | 703 | 1363 | 292 | 25 | 127 | 2086 | 655 | 78 | 55 | 100 | 58 | 575 | 7 | 41 | 1190 | 103 | .265 | .340 | .406 | .746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성적.
5.5. 연도별 수비 성적
연도 | 1루 | 2루 | 유격 | 외야 | ||||||||||||||||||||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1995년 | - | - | 2 | 0 | 1 | 0 | 0 | 1.000 | 22 | 19 | 0 | 0 | 0 | 1.000 | ||||||||||
1996년 | - | - | 4 | 2 | 2 | 0 | 0 | 1.000 | 3 | 0 | 0 | 0 | 0 | ---- | ||||||||||
1997년 | - | - | - | 32 | 28 | 0 | 0 | 0 | 1.000 | |||||||||||||||
1998년 | - | - | - | 2 | 1 | 0 | 0 | 0 | 1.000 | |||||||||||||||
1999년 | - | - | - | 98 | 95 | 5 | 2 | 0 | .980 | |||||||||||||||
2000년 | - | - | - | 91 | 145 | 5 | 2 | 1 | .987 | |||||||||||||||
2001년 | - | 27 | 79 | 84 | 3 | 15 | .982 | - | 75 | 111 | 5 | 2 | 2 | .983 | ||||||||||
2002년 | - | - | - | 130 | 188 | 8 | 3 | 1 | .985 | |||||||||||||||
2003년 | - | - | - | 79 | 135 | 8 | 0 | 1 | 1.000 | |||||||||||||||
2004년 | - | - | - | 83 | 121 | 3 | 0 | 0 | 1.000 | |||||||||||||||
2005년 | - | - | - | 105 | 225 | 7 | 1 | 1 | .996 | |||||||||||||||
2006년 | - | - | - | 112 | 158 | 6 | 0 | 0 | 1.000 | |||||||||||||||
2007년 | - | - | - | 130 | 278 | 8 | 5 | 1 | .983 | |||||||||||||||
2008년 | - | - | - | 103 | 202 | 6 | 4 | 0 | .981 | |||||||||||||||
2009년 | - | - | - | 109 | 212 | 5 | 2 | 2 | .991 | |||||||||||||||
2010년 | - | - | - | 111 | 209 | 4 | 1 | 1 | .995 | |||||||||||||||
2011년 | - | - | - | 51 | 62 | 3 | 1 | 1 | .985 | |||||||||||||||
2012년 | 5 | 50 | 1 | 1 | 2 | .981 | - | - | 53 | 90 | 0 | 1 | 0 | .989 | ||||||||||
2013년 | - | - | - | 28 | 39 | 0 | 1 | 0 | .975 | |||||||||||||||
2014년 | - | - | - | 20 | 25 | 0 | 1 | 0 | .962 | |||||||||||||||
2015년 | - | - | - | 6 | 7 | 0 | 0 | 0 | 1.000 | |||||||||||||||
2016년 | - | - | - | 1 | 0 | 0 | 0 | 0 | ---- | |||||||||||||||
통산 | 5 | 50 | 1 | 1 | 2 | .981 | 27 | 79 | 84 | 3 | 15 | .982 | 6 | 2 | 3 | 0 | 0 | 1.000 | 1444 | 2350 | 73 | 26 | 11 | .989 |
- 굵은 글씨는 골든 글러브상 수상 연도.
6. 지도자 경력
오무라 사부로는 현역 은퇴 후 다양한 지도자 및 프런트 보직을 거쳤다.
- 2017년 3월 30일,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의 스페셜 어시스턴트로 취임했다.
- 2018년 7월 6일부터는 구단 스페셜 어시스턴트직을 수행하는 동시에 닛칸 스포츠 고교 야구 기사의 편성 부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 2020년 1월 8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팜 디렉터(2군 총괄)로 취임했다. 이 보직에서 1군과 2군 수뇌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드래프트 회의에서 조언을 제공하는 등 구단 운영에 참여했다.
- 2021년에도 팜 디렉터직을 이어갔으며, 2022년에는 스카우팅 어드바이저를 맡은 후 그 해를 끝으로 라쿠텐을 퇴단했다.
- 2022년 11월 13일, 2023년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 2군 감독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등록명은 현역 시절과 동일하게 사부로이며, 등번호는 그의 스승인 야마모토 고지가 과거 사용했던 86번을 부여받았다.
- 2025년부터는 2군 감독과 함께 2군 총괄 타격 코치직을 겸임하게 되었다.
7. 등록명 및 별칭
오무라 사부로는 프로 입단 시부터 '사부로'라는 등록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지바 롯데에 동명이인 오무라 이와오가 재적하고 있었던 점과, 같은 해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시즌 200안타를 달성하며 본명 '스즈키 이치로'에서 '이치로'로 등록명을 변경하여 성공을 거둔 이치로의 사례를 본받아 본인의 강력한 희망으로 결정된 것이다.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지바 마린 스타디움의 장내 아나운서였던 다니호 에미가 그의 이름을 호명할 때는 '사부로오오오오'와 같이 어미를 길게 늘이는 것이 관례였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에는 구단의 정책상 원칙적으로 퍼스트 네임이나 닉네임 형태의 선수명 등록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등록명은 본명인 '오무라 사부로'로 변경되었고 스코어보드 표기도 '오무라'가 되었다. 다만, '사부로'라는 애칭이 워낙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구단 내 동명이인 선수가 없었음에도 장내 아나운스에서는 풀네임으로 호명되었다.
2012년부터 지바 롯데로 복귀한 후에는 등록명을 다시 '사부로'로 되돌렸으며, 2023년 2군 감독 취임 후에도 이 등록명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현역 은퇴 후 지바 롯데의 스페셜 어시스턴트 및 라쿠텐의 팜 디렉터·스카우팅 어드바이저로 활동할 때는 본명인 '오무라 사부로' 명의를 사용했다. 반면, 닛칸 스포츠에서 기사에 참여할 때는 '사부로' 명의를 사용하기도 했다.
개인 블로그에서는 '사부티니'라는 별명을 사용했는데, 본인이 이탈리아를 좋아해서 지인이 이탈리아식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8. 영향 및 평가
오무라 사부로는 2005년 팀의 31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4번 타자, 연결의 4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나가시마 시게오 종신 명예 감독은 그의 타격에 대해 "이 정도로 상반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타자는 본 적이 없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선수 시절 두 차례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팀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6년 은퇴 경기에서는 니시오카 쓰요시, 스즈키 다이치, 니시노 유시 등 팀 동료들이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고, 아베 신노스케, 사카모토 하야토 등 요미우리 시절의 전 동료들도 경기장을 찾아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등 야구계에서의 두터운 인망을 보여주었다. 이는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며 그의 인기와 팀에 대한 기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