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와 육상 시작
에셀 캐서우드는 미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성장하며 스포츠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그녀는 유년기부터 다양한 스포츠에 능했으며, 특히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젊은 나이에 이미 전국 및 세계 기록을 세웠다.
1.1. 출생, 유년기 및 교육
에셀 메리 캐서우드는 1908년 4월 28일 미국 노스다코타주 핸나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 서스캐처원주 새스커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키 1.78 m, 체중 58 kg의 탄탄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에셀에게는 진저(Ginger영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제네르바(Generva영어) 캐서우드라는 자매가 있었는데, 진저는 서스캐처원 대학교의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하며 당대 최고의 여성 아이스하키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에셀이 1928년 올림픽 훈련을 하던 기간 동안 두 자매는 토론토에서 함께 살았으며, 이때 진저가 에셀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했다.
1.2. 초기 육상 활동과 기록
어린 시절부터 에셀 캐서우드는 야구, 농구, 육상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뛰어난 운동 재능을 보였다. 특히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토론토의 파크데일 여성 육상 클럽(Parkdale Ladies' Athletic Club영어)에서 활동했다. 1926년, 베드퍼드 로드 칼리지 학생이었던 그녀는 새스커툰 시 육상 경기 선수권 대회에서 높이뛰기 캐나다 기록과 동등한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노동절에는 당시 영국이 보유하고 있던 높이뛰기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1926년 9월 6일에는 1.58 m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그녀의 개인 최고 기록은 높이뛰기 1.6 m (1928년)와 창 던지기 36.17 m (1927년)이다.
2. 올림픽 경력
에셀 캐서우드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장식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여성 육상 선수의 올림픽 첫 참가라는 의미 있는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초대 챔피언이 되었고, 뛰어난 미모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1.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1928년 하계 올림픽은 여성 선수들의 육상 종목 참가가 처음으로 허용된 역사적인 대회였다. 에셀 캐서우드는 이 대회에 참가한 6명의 캐나다 여성 선수단인 '매치리스 식스(Matchless Six영어)'의 일원이었다. 그녀는 이 대회에서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하여 1.59 m의 높이를 뛰어넘어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에셀 캐서우드는 올림픽 여자 높이뛰기 종목의 초대 챔피언이 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녀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캠린 로저스가 여자 해머 던지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 전까지 96년 동안 올림픽 육상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일한 캐나다 여성 선수로 기록되었다.

2.2. 언론의 주목과 "새스커툰 릴리" 별칭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기간 동안 에셀 캐서우드는 그녀의 뛰어난 육상 능력뿐만 아니라 수려한 외모로 인해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새스커툰 릴리(Saskatoon Lily영어)"라는 매력적인 별명을 얻었으며, 뉴욕 타임스의 한 기자는 그녀를 1928년 올림픽에서 "가장 예쁜 여성 선수"로 칭하기도 했다. 이러한 언론의 관심은 그녀의 인기를 더욱 높였지만, 그녀의 운동선수로서의 진정한 가치와 성과를 조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3. 올림픽 이후의 삶
올림픽에서의 성공적인 활약 이후, 에셀 캐서우드의 삶은 큰 변화를 겪었다. 그녀는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고 개인적인 삶을 꾸려 나갔으며,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력을 모색했다.
3.1. 스포츠계 은퇴
에셀 캐서우드는 높이뛰기 외에도 창 던지기 종목에서 국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931년, 창 던지기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1년 전인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전에 선수 생활에서 은퇴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창 던지기에서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1932년 미국 올림픽 팀에 합류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결국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3.2. 개인 생활과 어려움
올림픽에서 '미녀 선수'로 각광받았던 캐서우드의 삶은 이후 미스터리하고 스캔들로 얼룩진 시기를 겪었다. 그녀의 사생활은 언론의 끊임없는 주목을 받았는데, 제임스 맥라렌(James McLaren영어)과의 비밀 결혼과 네바다주 리노에서의 신속한 이혼, 그리고 이후 바이런 미첼(Byron Mitchell영어)과의 재혼(1960년 이혼)은 언론의 집요한 추적을 야기했다. 그녀는 인터뷰를 거부하며 사생활 노출을 꺼렸고, 이로 인해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져 은둔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3.3. 이후의 경력과 캘리포니아 이주
1928년 올림픽에서 돌아온 후, 에셀 캐서우드는 영화 출연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 대신 그녀는 비즈니스 과정을 수료하며 직업 활동에 나섰다. 이후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4. 사망
에셀 메리 캐서우드는 1987년 9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그래스 밸리에서 향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 유산과 영예
에셀 캐서우드는 여성 스포츠의 선구자로서 캐나다 스포츠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는 사후에도 그 업적을 인정받아 다양한 방식으로 기려지고 있다.
5.1. 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
에셀 캐서우드는 그녀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여러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55년 캐나다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으며, 1966년에는 서스캐처원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그리고 1986년에는 새스커툰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되었다.
5.2. 국가 사적 인물 지정 및 기타 기림 활동
2022년 캐나다 정부는 에셀 캐서우드를 국가 사적 인물로 지정하여 그녀의 역사적 중요성과 캐나다 사회에 미친 영향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또한 그녀는 데이비드 콜리어(David Collier영어)가 그린 짧은 만화 전기 "에셀 캐서우드 이야기(The Ethel Catherwood Story영어)"의 주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그래픽 픽션, 만화, 그리고 실화 선집(An Anthology of Graphic Fiction, Cartoons, and True Stories영어)'에 수록되어 있다.
6. 같이 보기
- 육상
- 높이뛰기
- 1928년 하계 올림픽
- 여성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