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앙토니 앙리 반덴 보르(Anthony Henri Vanden Borre프랑스어, 1987년 10월 24일~)는 벨기에의 전 축구 선수이다. 주로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했으며, 오른쪽 윙어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었다. 벨기에,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콩고민주공화국의 여러 클럽에서 뛰었으며,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8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주목받았으나, 경기력의 기복과 '악동' 이미지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앙토니 앙리 반덴 보르는 1987년 10월 24일 자이르 (현 콩고민주공화국) 리카시에서 벨기에인 아버지와 콩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고향인 벨기에로 이주했으며, 8세 때 안데를레흐트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하여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뱅상 콤파니와 함께 안데를레흐트 유소년 팀에서 훈련하며 재능을 키웠다.
3. 클럽 경력
앙토니 반덴 보르는 벨기에의 RSC 안데를레흐트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프로 데뷔한 후,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콩고민주공화국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약했다.
3.1. 안데를레흐트
반덴 보르는 유소년 시절부터 친구인 뱅상 콤파니와 함께 안데를레흐트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는 16세 187일의 나이로 정규 리그에 데뷔하며 당시 폴 판 힘스트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데뷔한 선수가 되었다. 데뷔 한 달 후인 2004년 10월, 그는 안데를레흐트와 2007년까지 계약을 체결했다. 2005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첼시와의 경기에서 안데를레흐트의 가장 위협적인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며 페트르 체흐 골키퍼의 골대를 맞추는 등 주목을 받았다. 2005년 9월 21일, KSV 루셀라레와의 홈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며 프로 첫 공식 득점을 올렸다.
콤파니와 반덴 보르 모두 엄청난 축구 재능으로 평가받았지만, 반덴 보르는 콤파니보다 더 큰 스타가 될 재목으로 여겨졌다. 안데를레흐트의 상징적인 인물인 폴 판 힘스트는 반덴 보르를 "자신이 본 경력 중 가장 위대한 재능"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기술적 능력, 패스, 시야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콤파니가 경기마다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유지한 반면, 반덴 보르의 안데를레흐트 경력은 불규칙성, 집중력 부족, 부상 등으로 점철되었다. 자신의 이름 이니셜인 'AVB'를 머리에 새기는 등 여러 사소한 사건들로 인해 언론과 코치진으로부터 '악동'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안데를레흐트에 있는 동안 반덴 보르는 함부르거 SV, 아약스, 인터 밀란, 레알 베티스, 토트넘 홋스퍼, 유벤투스, 라치오 등 여러 클럽으로의 이적설이 있었으나, 2005-06 시즌 중 안데를레흐트와 2010년까지 계약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3.2. 이탈리아 경력
반덴 보르는 2007년 6월 1일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피오렌티나로 이적하며 이탈리아 경력을 시작했다.
3.2.1. 피오렌티나
반덴 보르는 2007년 6월 1일, 이적료 400.00 만 EUR에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여 2012년까지 4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 이적은 그의 에이전트에 따르면 2007년 3월 8일에 이미 합의된 바 있었다. 그는 10월 7일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잔파올로 파치니와 교체되어 투입되며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두 번의 출전 후, 반덴 보르는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에서 발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3.2.2. 제노아
2008년 1월 19일, 반덴 보르는 다시 이적하여 제노아에 공동 소유 계약으로 합류했다. 이 계약은 이적료 210.00 만 EUR에 이루어졌으며, 파파 와이고 은디아예가 같은 조건으로 피오렌티나로 이적하는 트레이드 형식이었다. 이적 후 반덴 보르는 제노아 합류가 경기를 뛸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고 말했다. 2008년 3월 8일, 그는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78분 교체 투입되며 제노아 데뷔전을 치렀으나 팀은 0-2로 패배했다. 벨기에 축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노아에 머물고 싶다고 말하며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2008년 6월, 제노아는 그가 클럽에서 8경기를 뛴 후 이적료 170.00 만 EUR에 그의 완전한 소유권을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제노아에서의 첫 풀 시즌 동안, 반덴 보르는 잔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 아래에서 25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이적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그는 곧 1군에서 제외되었다.
3.3. 잉글랜드 경력
2009년 8월 13일, 반덴 보르는 프리미어리그의 포츠머스에 한 시즌 임대 계약으로 합류하며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했다.
3.3.1. 포츠머스
반덴 보르는 2009년 8월 13일 포츠머스로 한 시즌 임대 이적했다. 그는 8월 19일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2009년 9월 22일, 풋볼 리그 컵 칼라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3-1 승리에 기여하며 포츠머스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2010년 2월 6일,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0-5로 패배하는 과정에서 자책골을 기록했다. 두 달 후인 2010년 4월 3일, 블랙번과의 0-0 무승부 경기에서 두 번의 경고를 받아 퇴장당했다. 이 퇴장 사건은 크리스 카마라가 '사커 새터데이'에서 경기를 보도하던 중 놓쳤던 레드카드로 축구계의 이야기로 회자되었다. 경기 후 그는 스티브 베넷 주심이 자신에게 웸블리에서 뛸 꿈을 앗아갔다고 비난했으나, 한 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포츠머스에서의 그의 시간은 어려웠고, 팀이 챔피언십으로 강등되면서 수비진에서 주전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시즌 종료 후, 스티브 코터릴 신임 감독은 반덴 보르가 팀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그는 독일의 FC 쾰른과 연결되기도 했다.
3.4. 헹크
포츠머스 임대에서 제노아로 복귀한 후, 반덴 보르는 이적 시장에서 케빈프린스 보아텡의 이적 거래의 일부로 포츠머스로의 복귀를 포함하여 이적설에 강하게 휩싸였다. 그러나 반덴 보르는 벨기에의 헹크로 임시 이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이적은 하포엘 텔아비브의 관심으로 인해 무산될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헹크와 6개월 계약을 이미 체결한 상태였다. 결국 제노아는 2011년 1월 5일 이적 시장 재개와 함께 반덴 보르를 자유 계약으로 풀어주었다. 반덴 보르는 2010년 9월 8일 헹크와 2년 계약(3년 연장 옵션 포함)을 체결했으며, 2011년 1월까지는 친선 경기와 리저브 팀 경기 외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헹크의 공식 선수가 된 지 일주일 후인 2011년 1월 22일, 그는 코르트레이크와의 3-2 승리 경기에서 78분 케빈 더 브라위너와 교체되어 투입되며 헹크 데뷔전을 치렀다. 벨기에 프로 리그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스탕다르 리에주와의 1-1 무승부 경기에서 두 번의 경고를 받아 플레이오프 I의 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플레이오프 I에서는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음 시즌, 반덴 보르는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캠페인에 참여하며 스쿼드에 포함되었다. 리그에서는 종종 1군에서 뛰었지만, 신임 감독 마리오 빈 밑에서 더 많은 징계를 받았다. 2012년 1월 15일 줄테 바레헴과의 경기에서 18분 경고를 받았고 78분 교체되었다. 그는 5경기 동안 출전하지 못하다가 복귀했다. 플레이오프 I에서 반덴 보르는 2012년 4월 14일 전 소속팀 안데를레흐트와의 3-1 승리 경기에서 헹크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그는 구단으로부터 새로운 계약을 제안받지 못했고, 헹크는 그를 잔류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방출된 후, 반덴 보르는 다시 한번 안데를레흐트와의 강한 연결설이 있었지만,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10월, 그는 우크라이나의 타브리야 심페로폴에 시즌 종료까지 합류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그의 우크라이나 생활은 짧게 끝났다.
3.5. 벨기에 복귀 및 기타 클럽
반덴 보르는 벨기에 무대로 다시 복귀한 후, 프랑스 리그 임대와 아프리카 클럽에서의 짧은 경력을 이어갔다.
3.5.1. 안데를레흐트 복귀
2013년, 5년 만에 안데를레흐트로 돌아온 반덴 보르는 시즌 종료까지 계약하며 헤르만 판 홀스베크 단장으로부터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그의 복귀는 팀 훈련에서 동료들의 환영을 받았다. 2013년 3월 4일 리저브 팀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른 후, 일주일 뒤인 3월 16일 헹크와의 1-1 무승부 경기에서 로날드 바르가스와 교체되어 투입되며 리그 복귀전을 치렀다.

2014년 11월 4일,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60분 만에 3-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두 골(한 골은 페널티킥)을 기록하며 안데를레흐트의 무승부를 이끌었다. 2020년에는 3년간 무소속으로 지낸 후, 감독이 된 뱅상 콤파니와 다시 한번 재회하며 안데를레흐트로 세 번째 복귀했다.
3.5.2. 몽펠리에 임대
2016년 7월 8일, 반덴 보르는 리그 1의 몽펠리에에 완전 이적 옵션이 포함된 한 시즌 임대 계약으로 합류했다. 몽펠리에에서 모든 대회를 통틀어 10경기에 출전한 후, 그는 2017년 1월 안데를레흐트로 복귀했다.
3.5.3. TP 마젬베
2017년 1월 10일, 29세의 나이로 축구 은퇴를 발표한 반덴 보르는 불과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2017년 3월 2일, 콩고민주공화국 클럽인 TP 마젬베와 계약하며 현역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그의 마젬베 생활은 4개월 만에 끝났다. 2018년 4월에는 과거 안데를레흐트와 헹크에서 지도를 받았던 프랑키 베르코테렌 감독이 이끄는 세르클러 브뤼허의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4. 국가대표 경력
앙토니 반덴 보르는 벨기에와 콩고민주공화국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벨기에 국가대표팀을 선택하여 활약했다.
4.1. 벨기에 대표팀
반덴 보르는 16세의 나이로 벨기에 국가대표팀을 선택했으며, 2004년 4월 28일 튀르키예와의 경기에서 에리크 데플랑드르와 교체 투입되어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벨기에는 2-3으로 패배했다. 그는 1911년 페르낭 니소가 기록한 16세 19일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선수가 되었다. 1년 후인 2005년 6월 4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0-0 무승부 경기에서 첫 선발 출전했다. 2006년 5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2014년 5월 13일, 그는 2014 FIFA 월드컵 벨기에 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4.2. 연령별 대표팀 및 올림픽
반덴 보르는 성인 대표팀 외에도 벨기에의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벨기에 U-16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9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으며,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벨기에 U-17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2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또한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2007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축구에도 참가했다. 올림픽에서는 벨기에 U-23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6경기에 출전했다.
5. 개인사
앙토니 반덴 보르는 자이르 리카시에서 벨기에인 아버지와 콩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에 벨기에로 이주했다.
6. 선수 경력 통계
앙토니 반덴 보르의 클럽 및 국가대표팀 통계는 다음과 같다.
아래 표에서 '기타' 열은 UEFA 챔피언스리그, UEFA컵, 벨기에 슈퍼컵 등 리그 및 국내 컵, 리그 컵을 제외한 다른 대회 출전 기록을 포함한다.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기타 | 총합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안데를레흐트 | 2003-04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 8 | 0 | 0 | 0 | - | 0 | 0 | 8 | 0 | |
2004-05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 19 | 0 | 0 | 0 | - | 7 | 0 | 26 | 0 | ||
2005-06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 22 | 3 | 0 | 0 | - | 8 | 0 | 30 | 3 | ||
2006-07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 20 | 0 | 3 | 0 | - | 6 | 1 | 29 | 1 | ||
합계 | 69 | 3 | 3 | 0 | - | 21 | 1 | 93 | 4 | |||
피오렌티나 | 2007-08 | 세리에 A | 2 | 0 | 1 | 0 | - | 2 | 0 | 5 | 0 | |
제노아 | 2007-08 | 세리에 A | 6 | 0 | 0 | 0 | - | - | 6 | 0 | ||
2008-09 | 세리에 A | 25 | 0 | 2 | 0 | - | - | 27 | 0 | |||
2009-10 | 세리에 A | 0 | 0 | 0 | 0 | - | 0 | 0 | 0 | 0 | ||
합계 | 31 | 0 | 2 | 0 | - | 0 | 0 | 33 | 0 | |||
포츠머스 (임대)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19 | 0 | 2 | 0 | 4 | 1 | - | 25 | 1 | |
헹크 | 2010-11 | 벨기에 프로 리그 | 16 | 0 | 0 | 0 | - | - | 16 | 0 | ||
2011-12 | 벨기에 프로 리그 | 26 | 1 | 1 | 0 | - | 1 | 0 | 28 | 1 | ||
합계 | 42 | 1 | 1 | 0 | - | 1 | 0 | 44 | 1 | |||
안데를레흐트 | 2012-13 | 벨기에 프로 리그 | 1 | 0 | 0 | 0 | - | 0 | 0 | 1 | 0 | |
2013-14 | 벨기에 프로 리그 | 27 | 0 | 1 | 0 | - | 3 | 0 | 31 | 0 | ||
2014-15 | 벨기에 프로 리그 | 20 | 1 | 3 | 1 | - | 6 | 2 | 29 | 4 | ||
2015-16 | 벨기에 프로 리그 | 2 | 0 | 0 | 0 | - | 0 | 0 | 2 | 0 | ||
합계 | 50 | 1 | 4 | 1 | - | 9 | 2 | 63 | 4 | |||
몽펠리에 (임대) | 2016-17 | 리그 1 | 10 | 0 | 0 | 0 | 0 | 0 | 0 | 0 | 10 | 0 |
TP 마젬베 | 2017 | 콩고민주공화국 리그 | 5 | 1 | 0 | 0 | - | - | 5 | 1 | ||
안데를레흐트 | 2020-21 | 벨기에 프로 리그 | 0 | 0 | 0 | 0 | - | 0 | 0 | 0 | 0 | |
커리어 총합 | 228 | 6 | 13 | 1 | 4 | 1 | 33 | 3 | 278 | 11 |
#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득점 | 결과 | 대회 |
---|---|---|---|---|---|---|
1. | 2006년 5월 11일 | 바그너 & 파트너스 스타디온, 시타르트, 네덜란드 | 사우디아라비아 | 2-1 | 2-1 | 친선 경기 |
7. 수상 경력
앙토니 반덴 보르가 선수 생활 동안 획득한 주요 클럽 및 개인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클럽
- 벨기에 프로 리그:
- 안데를레흐트: 2003-04, 2004-05, 2006-07, 2012-13, 2013-14
- 헹크: 2010-11
- 벨기에 슈퍼컵:
- 안데를레흐트: 2004, 2013
- 헹크: 2011
- FA컵 준우승:
- 포츠머스: 2009-10
8. 평가 및 논란
앙토니 반덴 보르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안데를레흐트의 상징' 폴 판 힘스트로부터 "지금까지 본 가장 위대한 재능"이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기대가 컸던 선수였다. 특히 기술적 능력, 패스, 시야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선수 경력은 경기력의 기복, 집중력 부족, 잦은 부상으로 인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는 여러 차례 경기 외적인 논란을 일으키며 '악동' 이미지를 얻었다. 자신의 이름 이니셜인 'AVB'를 머리에 새기는 등의 행동으로 언론과 코치진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포츠머스 임대 시절에는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퇴장당한 후 스티브 베넷 주심이 자신의 웸블리 출전 꿈을 앗아갔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헹크 시절에는 줄테 바레헴과의 경기에서 교체 지시에 불만을 품고 감독을 무시한 채 상대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불손한 태도를 보여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그의 뛰어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문제아'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요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