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압둘아지즈 알오마리는 빈곤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으며, 성장 과정에서 이슬람의 원리주의적 해석인 와하브파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1.1. Childhood and education
알오마리는 1979년 5월 2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시르 주에서 가난한 아랍 가정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이맘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 이슬람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며, 9.11 테러가 발생하기 직전 결혼하여 딸을 두었다. 그는 와하브파의 "심장부"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카심 주에 있는 모스크에서 이맘으로 가르쳤는데, 전문가들은 이 모스크를 "테러리스트 공장"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알오마리는 이 모스크에서 급진적인 성직자인 술레이만 알 알완에게 가르침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1.2. Early activities and extremist ties
왈리드 빈 아타시에 따르면, 알오마리는 알카에다 훈련 캠프에서 기초 훈련을 마친 후 칸다하르 공항에서 보안을 제공했던 미래의 납치범들 중 한 명이었다. 2000년 쿠알라룸푸르 알카에다 정상회담 당시, 미국 당국은 압둘아지즈 알오마리라는 이름의 인물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했다는 출입국 기록이 있지만, 동일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2. Involvement in the September 11 attacks
알오마리는 9.11 테러의 계획 및 실행에 깊이 관여했으며, 특히 아메리칸 항공 11편을 납치하여 세계 무역 센터에 충돌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2.1. Planning and preparation
알오마리는 궁극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이 구상한 미국에 대한 9.11 테러 계획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 테러는 상업용 비행기를 납치하여 건물에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알오마리는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에 충돌하게 될 아메리칸 항공 11편을 납치하는 역할을 맡았다. 납치 당시 알오마리의 나이는 22세였다. 2001년 가을, 테러 이후 알 자지라 방송은 알오마리가 작성했다고 주장하는 테이프를 방영했다. 이 테이프에는 그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언 비디오가 담겨 있었으며, 그는 "나는 완전한 양심을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으며, 임박한 종말을 예상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훈련시키고 도와준 모든 분들, 즉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에게 신의 은총이 있기를"이라고 낭독했다.
알오마리라는 이름의 인물은 2001년 2월 필리핀을 두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2.2. Entry into the United States and pre-attack movements
2001년 6월 29일, 알오마리와 동료 납치범 살렘 알하즈미는 두바이발 항공편을 통해 미국에 입국하여 뉴욕시에 도착했다. 알오마리는 논란이 많았던 비자 익스프레스 프로그램을 이용해 입국 허가를 받았다. 이들은 6월 30일에 살렘의 형제인 나와프 알하즈미에게 픽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그날 나와프가 조지 워싱턴 브리지에서 기록된 교통사고를 낸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알오마리는 뉴저지주 패터슨에서 다른 납치범 몇 명과 함께 지냈으며 (그곳에서 우편함을 빌리기도 했다), 이후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이사했다. 이 집의 임대 계약서에는 알오마리가 허용된 두 개의 차량 번호판을 기재했는데, 그 중 하나는 테러의 주모자인 모하메드 아타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알오마리는 베로비치의 플라이트세이프티 아카데미에서 동료 납치범인 모한드 알셰흐리와 사이드 알감디와 함께 훈련을 받았다. 또한 그는 뉴저지주 패세이익 카운티에 위치한 위조 문서를 판매하는 업체인 올 서비스 플러스에서 가짜 미국 신분증을 취득했으며, 또 다른 가짜 신분증은 칼리드 알미드하르에게 주어졌다. 이들에게 신분증을 제공한 직원은 그들이 "평범한 고객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아타는 8월 28일에 자신과 알오마리를 위한 아메리칸 항공 11편의 티켓을 구매했다. 9월 6일, 알오마리와 동료 납치범 사탐 알수카미는 플로리다에서 보스턴으로 비행하여 파크 인 호텔에 머물렀다.
2.3. Final days before the attack
2001년 9월 10일, 아타는 파크 인 호텔에서 알오마리를 픽업했고, 두 사람은 닛산 알티마 렌터카를 타고 메인주 사우스 포틀랜드로 향했다. 일부 소식통은 그들이 왜 포틀랜드로 갔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ABC 뉴스는 9월 11일 로건 국제공항으로 들어오는 아메리칸 항공 11편 납치범들의 입국 시간을 분산시키려는 아타의 마지막 순간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이 그 해 여름 포틀랜드에서 아타와 다른 납치범들을 보았다고 주장했지만, FBI는 이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9월 10일, 아타와 알오마리는 사우스 포틀랜드에 있는 컴포트 인 호텔의 233호실을 예약했다. 그들은 모닝콜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들의 짐에는 접이식 칼, 보잉 757 비행 시뮬레이터에 대한 비디오카세트, 호신용 스프레이, 아타의 유언장, 그리고 아타가 다른 18명의 납치범들에게 직접 쓴 지침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메리칸 항공 11편은 보잉 767이었다.)


그들은 오후 8시까지 두 시간 동안 호텔 방에 머물렀고, 그 후 알오마리는 인근 피자헛의 공중전화에서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을 납치할 마르완 알셰히의 전화로 4분간 통화했다. 5분 후, 피자리아 우노(Pizzeria Uno)라는 식당에서 두 사람은 ATM에서 80 USD를 인출했다. 그들은 다시 피자헛으로 돌아왔고, 오후 8시 50분에 두 번째 공중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월마트에 가기로 결정했지만 길을 잃고 주유소에 들러 길을 물었다. 주유소에서 녹화된 비디오에서 아타는 손에 종이를 들고 알오마리에게 보여준 후 떠났다. 월마트에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6 V 배터리 변환기를 구매했다. 월마트 직원은 몇 주 전에 아타가 그곳에서 상자 절단기를 샀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후 컴포트 인으로 돌아와 몇 시간을 머물렀다.
2.4. Day of the attacks
9월 11일 오전 5시 33분, 알오마리와 아타는 호텔에서 체크아웃했다. 알오마리는 피자리아 우노 ATM에서 현금을 추가로 인출한 후, 두 사람은 포틀랜드 국제 제트포트로 향했다. 오전 5시 40분경, 두 사람은 항공권 대리인과 대화했는데, 대리인은 그들에게서 아무런 의심도 느끼지 못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비행기에 탑승했고, 이 비행기는 오전 6시 45분에 로건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8명의 다른 납치범들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포틀랜드 경유 환승 비행이 왜 필요했는지, 특히 두 사람이 로건 공항에서 비행기를 거의 놓칠 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비행기인 아메리칸 항공 11편은 로스앤젤레스로 향할 예정이었다.
아타와 알오마리는 동료 납치범인 사탐 알수카미, 와일 알셰흐리, 왈리드 알셰흐리와 함께 아메리칸 항공 11편에 탑승했다. 공항에 있던 다른 납치범들은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에 탑승했다. 수사관들이 나중에 납치범임을 식별하는 데 사용될 알오마리의 여권은 앞서 언급된 두 남자의 짐에 있었는데, 이 짐은 실수로 포틀랜드 국제공항에 남겨져 로건으로 가는 환승 비행기에 실리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아마 자신들의 공격에 짐에 있던 접이식 칼과 호신용 스프레이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타와 알오마리는 아메리칸 항공 11편의 1등석 8열에 나란히 앉았다. 비행기는 오전 7시 59분에 로건 활주로를 이륙했다. 납치범들은 오전 8시 14분부터 비행기를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 승객들이 호신용 스프레이를 맞고 칼에 찔렸다. 아타는 이후 비행기의 조종을 맡았고, 오전 8시 37분에 비행기는 급격한 하강을 시작했다. 오전 8시 46분, 비행기는 세계 무역 센터 북쪽 타워에 충돌했으며,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93층부터 99층까지가 충돌의 영향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내부에서 사망했다.
3. Aftermath and identity controversy
테러 발생 직후 알오마리의 신원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FBI가 사우디아라비아 항공의 조종사인 압둘 라만 알오마리(Abdul Rahman al-Omari)를 아메리칸 항공 11편의 조종사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 인물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속히 밝혀졌고, FBI는 사과를 발표했다. 이후 모하메드 아타가 납치범들 중 조종사였음이 빠르게 확인되었다. FBI는 그때서야 압둘아지즈 알오마리를 납치범 중 한 명으로 지목했다.
FBI가 공개한 이름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한 남성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아있는 채로 발견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덴버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95년에 그곳에서 여권을 도난당했다고 진술했다. FBI는 이름, 출신지, 생년월일, 직업을 공개했지만, 사진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FBI가 나를 명단에 올렸을 때 믿을 수 없었다"며 "그들은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공개했지만, 나는 자살 폭탄 테러범이 아니다. 나는 여기 살아있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법도 전혀 모른다. 나는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FBI는 2001년 10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아타와 실제 알오마리의 9월 10일과 11일 동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발표하며 혼란을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