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반 및 선수 경력
알베르토 말레사니는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선수로서 빛나는 경력을 보내지 못했지만, 훗날 감독으로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전술적 감각과 축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 시기에 길렀다.
1.1. 출생 및 성장기
알베르토 말레사니는 1954년 6월 5일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나 가족 관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1.2. 선수 경력
말레사니는 선수 시절 주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발 기술과 전술적 감각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느린 발과 부족한 활동량으로 인해 기복 있는 경기력을 보였다. 그의 선수 경력은 짧고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대부분 이탈리아 하위 리그에서 보냈다. 1976-77 시즌에는 베로나 연고의 아마추어 팀인 아우다체 S. 미켈레 소속으로 세리에 D에서 세리에 C로 승격하는 데 기여하며 14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24세의 나이에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2.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축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간 알베르토 말레사니는 캐논에서 일하면서도 아약스의 '토탈 풋볼' 훈련 방식을 연구하는 등 지도자의 길을 준비했다. 그는 신혼여행 중에도 바르셀로나로 가서 요한 크루이프의 훈련 세션을 관찰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2.1. 초기 경력 및 키에보에서의 성공
1990년, 말레사니는 지도자 경력을 쌓기 위해 캐논 직장을 그만두고 이탈리아 세리에 C1 팀인 키에보의 알리에비 유스팀 코치로 부임했다. 1991년에는 1군 팀의 카를로 데 안젤리스 감독의 수석 코치를 맡았고, 1993년에는 마침내 1군 팀의 감독으로 승격했다. 그의 첫 1군 감독 시즌은 당시 무명이었던 키에보를 역사상 처음으로 세리에 B로 승격시키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는 세리에 B에서 세 시즌을 보낸 후, 세리에 A 승격을 아쉽게 놓친 1997년에 키에보를 떠났다.
2.2. 피오렌티나 및 파르마에서의 황금기
1997년 키에보를 떠난 알베르토 말레사니는 이탈리아 최상위 리그에서의 첫 감독직으로 피오렌티나에 부임했다. 피오렌티나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그는 1998년 파르마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파르마에서 말레사니는 그의 감독 경력 중 가장 큰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는 파르마를 이끌고 코파 이탈리아, UEFA컵,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성과를 기록했다. 또한 세리에 A에서 두 차례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01 시즌 도중에 경질되었다.
2.3. 이후 클럽 경력
파르마 이후 말레사니는 여러 팀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의 경력은 성공과 좌절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변화했다.
2.3.1. 헬라스 베로나, 모데나, 파나티나이코스 및 우디네세
파르마에서 경질된 후, 말레사니는 베로나와 모데나의 감독을 맡았으나, 두 팀 모두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이후 그는 해외로 진출하여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 감독이 되었다. 파나티나이코스 재임 시절, 그는 60%의 승률을 기록하며 자신의 경력 중 가장 높은 승률을 달성했지만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7년 1월, 말레사니는 지오반니 갈레오네의 후임으로 우디네세 감독으로 부임하며 이탈리아로 복귀했다. 그는 2006-07 세리에 A 시즌에서 팀을 10위로 이끌었고, 강등권과 7점 차이를 두었지만 다음 시즌 감독으로 재계약하지는 못했다. 2007년 11월 27일, 그는 루이지 카니의 후임으로 엠폴리의 새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삼프도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0-2로 패배하며 팀이 리그 최하위로 떨어진 후, 2008년 3월 31일 경질되었다.
2.3.2. 엠폴리, 시에나 및 볼로냐
2009년 11월 23일, 말레사니는 마르코 바로니의 후임으로 시에나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시에나를 세리에 B 강등에서 구하지 못했고, 2010년 5월 21일 팀을 떠났다.
2010년 9월 1일, 그는 볼로냐와 1년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세금 문제로 인한 승점 3점 감점과 구단주와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팀을 리그 16위로 이끌어 강등권에서 6점 차이로 세리에 A 잔류에 성공하는 뛰어난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2011년 5월 26일, 그의 후임으로 피에르파올로 비솔리가 임명되었다.
2.3.3. 제노아 연속 경질 및 팔레르모
2011년 6월 19일, 제노아는 알베르토 말레사니를 새 1군 감독으로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나폴리에 1-6으로 대패한 후, 12월 22일 경질되었다. 그는 2012년 4월 2일, 이전에 그를 대체했다가 몇 달 후 경질된 파스콸레 마리노의 후임으로 다시 제노아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두 번째 제노아 감독 재임 기간은 불과 20일에 그쳤다. 4월 22일 시에나와의 홈 경기에서 1-4로 패배하며 제노아가 강등권에 1점 차이로 뒤쳐지자, 경기 중 제노아 팬들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그는 다시 한번 경질되었다.
2013년 2월 5일, 말레사니는 팔레르모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불과 세 경기 만에, 2013년 2월 24일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2.3.4. 사수올로
2014년 1월 29일, 알베르토 말레사니는 세리에 A 팀인 사수올로의 새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발표되었다. 이는 그의 마지막 감독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2014년 3월 3일 경질되며 짧은 재임 기간을 보냈다.
3. 감독 스타일 및 철학
말레사니는 경력 전반에 걸쳐 '일 말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전술적으로 그는 아약스를 이끌었던 루이 판 할 감독의 혁신적인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공격적인 스타일을 사용했다. 이는 당시 세리에 A의 많은 감독들이 선호했던 아리고 사키와 네비오 스칼라의 균형 잡힌 수비 지향적 접근 방식과는 대조적이었다.
3.1. 전술적 특징
말레사니는 루이 판 할처럼 종종 3-4-3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파르마에서는 비대칭적인 3-4-1-2 포메이션을 사용하기도 했다. 수비에서는 로베르토 센시니와 같은 공격형 스위퍼를 기용하여 미드필드까지 전진하게 했고, 릴리앙 튀람과 같은 오른쪽 중앙 수비수는 종종 공격에 가담하여 풀백처럼 플레이하며 전환을 도왔다. 반면 파비오 칸나바로와 같은 순수한 맨 마킹형 스토퍼는 왼쪽 중앙 수비수로 주로 후방에 머물며 팀의 균형을 제공했다.
미드필드에서는 디노 바조와 같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를 기용하여 공수 양면에 기여하게 했고, 스테파노 피오레와 같은 공격형 플레이메이커를 엔리코 키에사와 에르난 크레스포 등의 스트라이커 뒤에 배치했다. 또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같은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와 디에고 푸제르와 같은 공격형 오른쪽 미드필더를 활용하여 오른쪽 중앙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가능하게 했다.
말레사니는 루이 판 할의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에서 사용했던 스위퍼 키퍼(sweeper keeper영어) 개념을 잔루이지 부폰에게도 적용했다. 부폰은 단순히 골문 밖으로 뛰어나와 위험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짧은 패스로 후방 빌드업을 시작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그의 파르마 팀은 높은 수비 라인을 유지하며 전방 압박을 가하고, 경기장의 첫 30~40미터를 예상 플레이와 기동성으로 커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한, 미드필드에서 공을 주로 소유하고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경기 운영을 지시하며 라인을 깨는 패스를 자주 시도하는 수직적인 패스 플레이를 구사했다. 공을 소유하지 않을 때는 압박 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제노아에서는 4-3-3 포메이션과 4-3-1-2 포메이션도 사용했다.
3.2. 지도 방식 및 성격
감독으로서의 자질 외에도, 말레사니는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과 강렬하고 논쟁적인 성격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언론과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의견을 매우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4. 논란 및 비판
알베르토 말레사니는 그의 감독 경력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언론 및 팬들과의 갈등, 그리고 그의 과격한 행동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4.1. 헬라스 베로나에서의 행동
2001년 11월 18일, 베로나와 키에보 간의 역사적인 첫 세리에 A 더비 경기에서 3-2로 승리한 후, 말레사니는 베로나 서포터들이 있는 관중석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는 등 과격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의 행동은 비판을 받았지만, 말레사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동료 감독들이 상투적인 표현을 사용한다고 비판하며 자신의 행동을 옹호했다. 그는 상대 감독인 루이지 델네리에게 자신이 승리하면 관중석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모두들 담배 피우고 가만히 서서 '조심해!'라고 하는 식이다! 제발 그만해! (...) 문제는 이렇다: 오늘날 축구계에서는 가짜가 되어야 하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봐라! [마네킹 흉내를 내며] 모니카, 나를 인터뷰해봐! 여기 있다! 자, 질문해봐! (...) 유럽에서 우승한 마지막 [이탈리아] 감독, 말해줘, 기억해둬, 아무도 그걸 말하지 않아! 2년 동안 아무도 그걸 말한 적 없어, 모니카! (...) 단 한 번도 틀에서 벗어난 목소리가 없었어,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래, 말레사니, 젠장, 달려, 감독들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 제발 그만해, 이건 수치스러운 일이야! (...) 관중 앞에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지지, 화내지 마, 내가 이기면 [베로나] 관중석 앞으로 가서 축하할 거야!'"
4.2. 파나티나이코스 언론 회견
2005년 12월 16일, 이라클리스와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한 후, 말레사니는 격앙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과 팬들로부터 팀의 부진한 경기력에 대한 비판에 지쳐있던 그는 자신의 노고와 헌신, 그리고 구단주인 지아니스 바르디노기아니스를 기자들 앞에서 변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왜 항상 바보 같은 녀석이 여기 와서 모두를 위해 젠장할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12년 동안 24명의 감독: 젠장할, 항상 감독이 여기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항상 감독? 오늘날 팬들은 팀을 비난하는 대신 팀을 도와줘야 한다, 선수들은 젊다, 우리는 팀을 만들었다-도와줘! 팀을 도울 용기를 가져라! 나는 하루 24시간 거기 있다, 젠장할, 나는 매일 하루 24시간 거기 있다!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젠장, 부끄러운 줄 알아라! 그리고 나는 비겨서 화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역겹기 때문에 화가 났다!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떻게-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축구가 뭐가 된 것인가, 젠장할 정글? 안 돼, 안 돼, 안 돼, 조용히 해! 그리고 웃어! 뭘 웃고 있나, 뭘? 뭘 쓰고 나서 즐기는가? 뭘 웃고 있나? 젠장, 뭘 웃고 있나? 뭘 웃고 있나? 사람들을 존중해라! 너희와는 거짓말을 하고 아첨꾼이 되어야 한다, 팬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렇지 않다, 젠장! 알겠나? 나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본다, 모두, 첫 번째부터 마지막까지, 왜냐하면 나는 젠장할 진지하고, 진지하게 일하러 간다! 안 돼, 안 돼, 이제 내가 말할 차례다, 끝났다! 젠장! 말? 무슨 말? 축구를 4개월 동안 하고 나서, 말! 제발, 젠장, 부탁이다! 부탁이다! 이제 그만할 때다, 모두 조용히 해라, 젠장, 조용히 해라!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 모두 건방지고, 비꼬고, 웃는다: '아, 저기 저 바보가 온다!' 여기서는 젠장할 진지하게 일을 한다! (...) 나를 죽여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내 양심은 깨끗하다, 젠장, 나는 하루 24시간 일한다, 젠장, 그만해라! 그만해라! 그리고 항상 젠장할 바보 같은 질문들! 팬들은 이랬다저랬다! 우리는 일한다, 바르디노기아니스 씨[정확한 표기는 바르디노기아니스]를 쉬게 해줘라, 바르디노기아니스 씨에게 감사해라! 젠장, 감사해라!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젠장, 바르디노기아니스 씨를 도와줘라! 팬들은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팬들이 뭘 놓고 다투는가, 젠장, 뭘 다투는가? 뭘 다투는가? 바르디노기아니스? 만약 그가 떠나면-그가 떠나면 젠장,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볼 것이다! 여기에서 뭘 다투는가, 바르디노기아니스? 제발, 젠장, 그만해라!"
4.3. 시에나 재임 중 사건
2010년 1월 9일, 산 시로 스타디움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3-4로 드라마틱하게 패배한 후, 말레사니는 인터 밀란의 3-3 동점골로 이어진 프리킥 상황에서의 파울 판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그는 세리에 A에서 작은 팀들은 보호받지 못하며, 큰 팀들이 이를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1월 24일, 칼리아리와의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후, 시에나의 마시모 메차로마 회장은 TV 기자들 앞에서 팀의 경기력에 대한 실망감을 표했다. 이 발언 이후, RAI의 진행자 엔리코 바리알레는 말레사니를 경기 후 인터뷰에 환영하며 그를 "일자리를 위협받는 감독"이라고 불렀고, 메차로마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라고 미리 알렸다. 말레사니는 특히 토론이 즉시 축구 외적인 주제에 집중된 것에 놀랐고 깊이 상처받았다. 그는 메차로마가 자신에 대해 좋게 말했으며, 자신이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무승부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4.4. 제노아 재임 중 언론 갈등
2011년 12월 1일, 말레사니는 기자들이 자신을 "무기력하다"(mollo몰로이탈리아어)고 부르는 것에 매우 불쾌해했다. 그 결과,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동기와 실력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의욕 상실, 무기력, 내가 무기력하다고? 뭐-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내가 무기력하다고? 내가 뭘 무기력하다고? 도대체 '무기력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이해할 수 없다. (...) 21년 동안 이 수준에서 버텨왔다면, 그렇게 무기력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도 약간의 존중을 보여라! 내가 무기력하다고? 그런 말을 할 때 너희가 무기력한 거야! (...) 왜냐하면 내가 무기력하다고 말하는 것이 너희에게 편하기 때문이야! (...) 만약 무기력하다면, 아무데도 갈 수 없어, 알겠나? 나는 무기력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무기력할 거야! (...) 문제가 뭐지? 왜 사람들이 '무기력하다'고 말하는 거지? 내가 무기력하다고? 우리가 미쳤나? (...) 내가 불평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나?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무기력한 사람'이 불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나? 아니, 그 말은 내가 무기력하지 않다는 뜻이야. (...) 나는 집에서도 싸우고, 모두와 싸워, 여기에서도 무기력하지 않아. 오히려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신경질적일지도 몰라. (...) 나는 원래 이렇다, 나는 용감한 사람이다,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다!"
5. 수상 기록
5.1. 클럽
;키에보
- 세리에 C1 (1): 1993-94
;파르마
- 코파 이탈리아 (1): 1998-99
- UEFA컵 (1): 1998-99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1999
6. 감독 통계
팀 | 국가 | 부터 | 까지 | 기록 | |||||||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률 % | ||||
키에보 | 이탈리아 | 1993년 6월 1일 | 1997년 6월 17일 | 161 | 56 | 66 | 39 | 182 | 149 | +33 | 34.78 |
피오렌티나 | 이탈리아 | 1997년 6월 17일 | 1998년 6월 30일 | 40 | 18 | 15 | 7 | 74 | 41 | +33 | 45.00 |
파르마 | 이탈리아 | 1998년 6월 30일 | 2001년 1월 8일 | 126 | 63 | 33 | 30 | 213 | 130 | +83 | 50.00 |
베로나 | 이탈리아 | 2001년 7월 4일 | 2003년 6월 10일 | 77 | 23 | 23 | 31 | 88 | 101 | -13 | 29.87 |
모데나 | 이탈리아 | 2003년 6월 10일 | 2004년 3월 22일 | 30 | 6 | 10 | 14 | 25 | 39 | -14 | 20.00 |
파나티나이코스 | 그리스 | 2005년 2월 17일 | 2006년 5월 15일 | 52 | 31 | 9 | 12 | 82 | 52 | +30 | 59.62 |
우디네세 | 이탈리아 | 2007년 1월 16일 | 2007년 6월 4일 | 19 | 6 | 5 | 8 | 30 | 32 | -2 | 31.58 |
엠폴리 | 이탈리아 | 2007년 11월 26일 | 2008년 3월 31일 | 20 | 5 | 4 | 11 | 22 | 32 | -10 | 25.00 |
시에나 | 이탈리아 | 2009년 11월 23일 | 2010년 5월 21일 | 26 | 6 | 7 | 13 | 29 | 47 | -18 | 23.08 |
볼로냐 | 이탈리아 | 2010년 9월 1일 | 2011년 5월 26일 | 40 | 13 | 11 | 16 | 42 | 56 | -14 | 32.50 |
제노아 | 이탈리아 | 2011년 6월 19일 | 2011년 12월 22일 | 18 | 8 | 3 | 7 | 26 | 29 | -3 | 44.44 |
제노아 | 이탈리아 | 2012년 4월 2일 | 2012년 4월 23일 | 3 | 0 | 2 | 1 | 3 | 6 | -3 | 0.00 |
팔레르모 | 이탈리아 | 2013년 2월 5일 | 2013년 2월 24일 | 3 | 0 | 3 | 0 | 2 | 2 | 0 | 0.00 |
사수올로 | 이탈리아 | 2014년 1월 29일 | 2014년 3월 3일 | 5 | 0 | 0 | 5 | 3 | 9 | -6 | 0.00 |
총계 | 620 | 235 | 191 | 194 | 821 | 725 | +96 | 37.90 |
7. 같이 보기
- UEFA컵 우승 감독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