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Andrea Stramaccioni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이탈리아어, 1976년 1월 9일 출생)는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이자 전 선수이다. 그는 선수 시절 수비수로 활약했으나, 1994-95 시즌 볼로냐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이후 그는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로마 유소년 팀에서 두 차례의 전국 타이틀을 획득하고, 인테르 밀란 프리마베라(U-19) 팀을 이끌고 2012년 권위 있는 넥스트젠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등 유소년 레벨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2012년 인테르 밀란 1군 팀의 감독으로 파격적으로 승격되었다. 인테르에서의 도전적인 시기를 거쳐 우디네세, 파나티나이코스, 스파르타 프라하, 에스테그랄, 알 가라파 등 여러 성인 클럽을 지휘했다. 그의 경력은 유소년 팀에서의 성공과 더불어 잦은 경질을 포함한 성인 팀에서의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특히 에스테그랄 감독 시절 대이란 제재로 인한 임금 체불 논란은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스트라마초니는 법학 학위 소지자이며, 최근에는 축구 해설가로도 활동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선수 경력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의 초기 생애와 학력, 그리고 이른 나이에 막을 내린 선수 경력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1. 출생 및 학력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는 1976년 1월 9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축구 경력 외에도 학업에 매진하여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에 법학을 졸업한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대학 중 하나인 라 사피엔차 대학교의 법학과 출신이다.
2.2. 선수 경력
스트라마초니는 현역 시절 수비수로 뛰었으며, 롬풀레아 유소년 팀에서 성장하여 1990년에 볼로냐의 프리마베라 팀으로 이적했다. 1994년 이탈리아 국내의 젊은 선수들이 참가하는 권위 있는 대회인 Torneo Città di Vignola토르네오 치타 디 비뇰라이탈리아어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장래가 촉망받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프로 계약을 앞두고 세리에 C 코파 이탈리아 엠폴리전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하여 오른쪽 무릎의 반월판과 인대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그의 선수 경력은 1994-95 시즌 볼로냐에서 일찍이 중단되었으며, 결국 그는 프로 선수로서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되었다.
3. 감독 경력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한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는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유소년 팀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으며 주목받았고, 이후 세리에 A와 같은 유럽 주요 리그의 성인 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시험했다.
3.1. 초기 지도자 생활 및 유소년 팀
스트라마초니는 초기 지도자 생활을 아마추어 및 유소년 팀에서 시작하여 경험을 쌓았으며, 특히 AS 로마와 인테르 밀란의 유소년 팀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다.
3.1.1. 초기 지도자 경험
축구 선수에서 은퇴한 후 스트라마초니는 여러 아마추어 유소년 팀에서 축구 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25세에 로마를 기반으로 한 유소년 팀인 AZ 스포르트(AZ Sport)를 이끌고 주(州) 단위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2005년까지 롬풀레아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으며, 이 기간 동안 여러 성과를 거두었다. 2003년에는 유소년 코치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한, 이 시기에 크로토네의 스카우트이자 상대 팀 분석가로도 활동하며 잔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3.1.2. AS 로마 유소년
2005년, 스트라마초니는 브루노 콘티의 추천으로 로마의 유소년 코치진에 합류했다. 그는 로마 유소년 팀에서 6년간 재직하며 3개의 다른 카테고리를 지도했고, 두 차례의 전국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7년에는 조바니시미 나치오날리(Giovanissimi Nazionali, U-15)에서 우승했고, 2010년에는 알리에비 나치오날리(Allievi Nazionali, U-17)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성공적인 지도력 덕분에 로마 구단은 그를 유소년 부문 최상위 팀인 프리마베라(Primavera) 감독으로 승격시키는 것을 고려했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다니엘레 데 로시의 아버지인 알베르토 데 로시를 유임시키기로 결정했다. 2009년 5월 9일, 스트라마초니는 UEFA A급 코치 라이선스를 획득하여 레가 프로 팀의 감독이나 세리에 A 및 세리에 B 클럽의 부감독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1부 리그에서 정식 감독으로 활동하기 위한 UEFA 프로 라이선스는 아직 없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1, 2부 리그에서는 임시 감독이나 부감독 역할만 수행할 수 있었다.
3.1.3. 인테르 밀란 프리마베라
2011년 중반 풀비오 페아가 사수올로의 감독으로 떠난 후, 인테르 밀란 유소년 부문에 공석이 생기자 로베르토 사마덴(2006년부터 인테르 유소년 아카데미 디렉터)은 스트라마초니에게 프리마베라(U-19) 팀 감독직을 제안했다. 스트라마초니는 이를 수락하며 인테르에 합류했다. 그가 인테르로 이적한 것은 니콜라스 부르디소의 이적 패키지 중 일부였으며, 이탈리아 U-17 축구 국가대표팀 등 여러 팀이 스트라마초니의 재능을 원하고 있었기에 인테르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스트라마초니는 2011-12 시즌 넥스트젠 시리즈에서 인테르 프리마베라 팀을 이끌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는 스포르팅 CP를 레이리아에 위치한 에스타디우 Dr. 마갈량이스 페소아에서, 마르세유를 런던의 그리핀 파크에서 꺾었다. 2012년 3월 25일 매치룸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는 아약스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한 후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가 인테르 프리마베라를 떠날 당시, 팀은 리그 B조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13승 4무 4패를 기록했고 43골을 넣고 19골을 실점했다.
3.2. 성인 팀 감독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는 유소년 팀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성인 팀 감독으로도 활약했지만, 여러 팀을 거치며 도전과 어려움을 동시에 겪었다.
3.2.1. 인테르 밀란

2012년 3월 26일,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인테르 밀란 감독이 해고되자 스트라마초니는 1군 팀의 임시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이는 인테르가 유벤투스에게 2-0으로 패배한 다음 날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그는 인테르의 시즌을 6위로 마무리했으며, 밀란을 상대로 한 밀라노 더비에서 승리하여 밀란의 세리에 A 우승을 좌절시켰다. 이러한 성과로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는 그를 2012-13 시즌에도 정식 감독으로 유임시켰고,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탈리아 축구 연맹(FIGC)은 그가 UEFA 프로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2013년 6월까지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의 인테르 1군 팀 감독 데뷔전은 제노아를 상대로 5-4 승리를 거둔 경기로, 이 경기에서는 9골, 양 팀 합쳐 2장의 레드카드, 4번의 페널티킥(그중 3번은 상대 팀에 주어짐), 그리고 디에고 밀리토의 해트트릭이 나오는 등 극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그는 36세의 나이로 인테르의 감독이 되었는데, 이는 인테르 역사상 6번째로 젊은 감독이자 65년 만에 가장 젊은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그는 대형 팀이나 성인 팀 감독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이처럼 큰 클럽을 맡게 되어 "무명의 감독"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2년 10월 7일, 스트라마초니는 밀란을 상대로 1-0으로 승리한 밀라노 더비에서 경기 종료 후 인테르 서포터들을 향해 "이건 당신들의 것, 당신들의 것, 이 더비는 당신들의 것"이라고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 달 뒤인 11월 3일, 그는 지난 시즌 우승팀이자 49경기 무패를 기록 중이던 유벤투스를 상대로 원정에서 3-1 승리를 이끌며 "우리는 유벤투스 스타디움에 49경기 무패 팀을 상대로 와서 공격적인 전술로 그들을 공략했다. 이 결과는 하나의 신호를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4개월간 인테르를 지휘한 후, 2012-13 세리에 A 시즌에서 9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15시즌 만에 처음으로 유럽 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2013년 5월 24일, 구단은 스트라마초니의 경질을 발표하고 발테르 마차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3.2.2. 우디네세
2014년 6월 4일, 스트라마초니는 우디네세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년 재임 기간 동안 팀을 이끌었으나, 팀은 16위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2015년 6월 1일, 계약이 만료된 후 그는 우디네세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2.3. 파나티나이코스

2015년 11월 8일, 스트라마초니는 수페르리가 엘라다 소속 클럽인 파나티나이코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2016-17 시즌 종료 시점까지 1년 반 계약을 체결했다.
파나티나이코스의 2016-17 시즌은 팬들의 기대를 훨씬 밑도는 부진한 성적으로 시작되었다. 올림피아코스에 0-3 패배, 크산티에 1-2 패배, 아약스에 홈에서 1-2 패배 및 원정에서 0-2 패배 등 여러 패배를 기록했다. 특히 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에서는 첫 5경기에서 단 1점만을 얻으며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리스 컵에서 OFI에 1-2로 패배하며 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구단주 야니스 알라푸조스는 2016년 12월 1일 스트라마초니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날 늦게 마리노스 오조우니디스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3.2.4. 스파르타 프라하
2017년 5월 28일, 스트라마초니는 체코 클럽 스파르타 프라하와 2년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합류했다. 그는 이전 클럽들에서 함께 일했던 다섯 개 국적의 코칭 스태프 전체를 데리고 왔다. 이는 체코 1부 리그에서 외국인이 감독을 맡은 네 번째 사례였다. 그러나 2017년 7월, 스파르타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UEFA 유로파리그 3차 예선에서 두 경기 모두 패배(원정 0-2, 홈 0-1)하며 탈락했다. 세 달 후, 체코 컵 4라운드에서는 바니크 오스트라바에 홈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연장전 2-2, 승부차기 2-4)하며 탈락했다. 2018년 3월 6일, 스트라마초니는 "시즌 후반기 실망스러운 시작과 전반적인 부진한 결과"를 이유로 스파르타 프라하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3.2.5. 에스테그랄

2019년 6월 13일, 스트라마초니는 이란 클럽 에스테그랄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전 이란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훌리오 벨라스코와의 대화 후 이란에서 감독직을 수락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부임 당시, 스트라마초니는 메이삼 테이모리, 파르샤드 모함마디 메르, 아르민 소흐라비안, 루홀라 바게리, 레자 카리미가 다가오는 시즌 자신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대신 그는 두 명의 전 세리에 A 선수인 셰이크 디아바테와 흐르보예 밀리치의 영입을 요청했다.
스트라마초니는 에스테그랄 감독으로서의 첫 공식 경기에서 마신 사지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12월 8일, 그의 팀은 트랙터를 4-2로 꺾었고, 이 승리로 에스테그랄은 페르시안 걸프 프로리그 역대 통산 1,000점 이상을 달성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하지만 12월 8일, 스트라마초니는 구단이 미국의 이란 제재로 인해 해외로 자금을 송금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코치진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자 에스테그랄 감독직을 사임했다. 그의 사임 소식에 많은 에스테그랄 팬들이 구단주인 이란 체육청년부 사무실 앞에서 구단 이사회와 스트라마초니의 결별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며 시위를 벌였다. 결국 2020년 1월 2일, 구단은 스트라마초니의 에스테그랄과의 협력 중단 및 복귀 협상이 실패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3.2.6. 알 가라파
2021년 7월, 스트라마초니는 카타르 클럽 알 가라파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2022년 10월 31일 알 가라파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4. 코칭 스타일 및 철학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의 축구 철학은 전술적 유연성과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는 주로 4-2-3-1 포메이션을 선호하지만, 경기 상황과 선수 구성에 따라 4-4-1-1 또는 4-3-1-2 포메이션으로 유연하게 변화를 주어 선수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허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스트라마초니는 완벽주의자이자 근면한 워커홀릭이며, 뛰어난 동기 부여 능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전술 스킴을 세밀하게 구성하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스카우트 및 상대 팀 분석 경험을 바탕으로 주제 무리뉴 감독이 사용하는 시스템과 유사하게 항상 체계적이고 기록적인 방식으로 작업했다.
5. 개인 생활
스트라마초니는 2011년부터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인 달릴라와 결혼했다. 그들은 슬하에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막내 자녀는 2022년에 카타르 도하에서 태어났다.
국제 축구 및 카타르 축구 전문가로서 스트라마초니는 RAI에 고용되어 2022년 FIFA 월드컵의 해설자로 활동했다. 그의 첫 해설이었던 아르헨티나 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 해설은 그 강렬함으로 인해 소셜 미디어에서 광범위한 관심을 받았다.
6. 수상 내역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는 선수와 감독 경력을 통틀어 여러 타이틀을 획득했다.
- 선수**
- 유소년 팀 감독**
- 성인 팀 감독**
7. 감독 통계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의 각 팀에서의 감독 경력에 대한 통계는 다음과 같다.
팀 | 부임일 | 해임일 | 기록 | ||||
---|---|---|---|---|---|---|---|
경기 수 | 승 | 무 | 패 | 승률 (%) | |||
인테르 밀란 | 2012년 3월 26일 | 2013년 5월 24일 | 65 | 31 | 11 | 23 | 47.69 |
우디네세 | 2014년 6월 4일 | 2015년 6월 30일 | 41 | 12 | 12 | 17 | 29.27 |
파나티나이코스 | 2015년 11월 9일 | 2016년 12월 1일 | 52 | 22 | 14 | 16 | 42.31 |
스파르타 프라하 | 2017년 5월 28일 | 2018년 3월 6일 | 23 | 10 | 7 | 6 | 43.48 |
에스테그랄 | 2019년 6월 13일 | 2019년 12월 8일 | 15 | 9 | 4 | 2 | 60.00 |
알 가라파 | 2021년 7월 2일 | 2022년 10월 31일 | 53 | 21 | 12 | 20 | 39.62 |
합계 | 275 | 115 | 71 | 89 | 41.82 |
8. 평가 및 유산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의 감독 경력에 대한 평가는 유소년 팀에서의 빛나는 성공과 성인 팀에서의 잦은 도전 및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8.1. 일반적인 평가
그는 어린 나이에 볼로냐 유소년 팀에서 심각한 부상으로 선수 경력을 마감한 후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유소년 팀 감독으로서 로마에서 두 차례의 전국 타이틀을, 인테르 프리마베라에서는 권위 있는 넥스트젠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뛰어난 재능을 입증했다. 특히 넥스트젠 시리즈 우승 직후 인테르의 1군 감독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한 것은 그의 유소년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성인 팀 감독으로서는 유소년 팀에서 보여준 안정적인 성공을 이어가지 못하고 여러 차례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8.2. 도전과 논란
스트라마초니의 성인 팀 감독 경력은 잦은 경질로 특징된다. 인테르 밀란에서는 초기 성공에도 불구하고 유럽 대회 진출에 실패하며 경질되었고, 이후 우디네세, 파나티나이코스, 스파르타 프라하, 알 가라파에서도 1년여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잦은 교체는 그의 전술적 한계나 팀 장악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에스테그랄 재임 시의 상황은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미국의 이란 제재로 인해 코치진의 임금 지급이 지연되자 사임을 선택했고, 이는 이란 내 에스테그랄 팬들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팬들은 스트라마초니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구단 경영진과 이란 스포츠 당국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감독의 이탈을 넘어, 국제 제재가 스포츠 영역에 미치는 영향과 팬들의 뜨거운 충성심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는다. 스트라마초니의 경력은 유망한 시작과 여러 도전, 그리고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복잡한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