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와 통치
아부 알 압바스 아마드 이븐 무함마드는 1526년 모로코의 페스 왕국에서 와타스 왕조의 술탄으로 즉위했다. 그의 통치 기간은 북아프리카에 대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던 시기와 겹쳤으며, 이는 그의 통치 전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1. 즉위와 초기 통치
1526년, 아부 알 압바스 아마드 이븐 무함마드는 와타스 왕조의 통치자로서 모로코의 술탄 자리에 올랐다. 당시 와타스 왕조는 북아프리카의 전략적 요충지인 모로코를 지배하고 있었으나, 북방의 강력한 해양 세력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속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이들 유럽 국가는 모로코 영토 내에 여러 요새 거점을 확보하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이는 와타스 왕조의 주권에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 이러한 대외적 압력은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의 초기 통치 단계부터 주요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1.2. 외교 정책 및 노력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의 외교 정책은 주로 모로코 영토 내에 요새를 건설하고 세력을 확장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력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베리아 반도의 강대국들에 대한 견제책으로 당시 이들의 경쟁자였던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1532년, 그는 프랑스 상인 에몽 드 몰롱을 통해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는 양국 간의 무역 관계를 활성화하고 외교적 유대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프랑수아 1세는 이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이듬해인 1533년, 피에르 드 피통 대령을 대사로 임명하여 모로코로 파견했다.
프랑스 대사 일행은 다섯 명의 귀족과 앞서 서한을 전달했던 에몽 드 몰롱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시계, 거울, 빗 등의 장신구와 매사냥 용 도구 등을 국왕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와 그의 대신이자 처남인 알리 이븐 라시드 알알라미에게 선물로 바쳤다. 프랑스 대사단은 라라슈에 상륙하여 국왕의 마할라로 안내된 후, 국왕 아흐마드와 함께 당시 와타스 왕조의 수도였던 페스에 한 달가량 머물면서 양국 간의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러한 외교적 교류에 화답하여 술탄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는 1533년 8월 13일 프랑수아 1세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프랑스의 협상 제안을 환영하며, 프랑스 상선에 대한 자유로운 항해권과 프랑스 상인들에 대한 보호를 승인했다. 이러한 조치는 모로코가 유럽 세력으로부터의 압력을 완화하고 새로운 교역 파트너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의 외교 정책은 모로코의 독립성과 경제적 이익을 수호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반영했다.
1.3. 개인 생활
아부 알 압바스 아마드 이븐 무함마드의 개인 생활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중요한 사건으로는 1541년에 사이다 알 후라와 결혼한 사실이 있다. 사이다 알 후라는 당대 북아프리카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 통치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결혼은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의 정치적 지위 강화에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결혼을 통해 아들 나시르 알카스리가 태어났다.
1.4. 갈등과 통치 말기
아부 알 압바스 아마드 이븐 무함마드의 통치 말기는 모로코 남부에서 새롭게 부상하던 사드 왕조와의 치열한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1545년,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는 결국 사드 왕조의 세력에 의해 포로로 잡히는 비극을 겪었다.
그가 포로가 되자, 그의 어린 아들인 나시르 알카스리가 형식적으로 술탄의 자리에 올랐으며, 알리 아부 하순이 섭정으로서 국정을 대리했다. 알리 아부 하순은 사드 왕조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외부 세력의 지원을 모색했고, 강력한 해상 군사력을 보유한 오스만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며 군사적 원조를 요청했다. 한편, 앞서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프랑스도 그의 포로 생활 이후인 1555년에 프랑수아 1세의 아들 앙리 2세의 통치 하에 모로코에 지원선을 보내는 등 외교적 노력을 계속했다.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는 1547년에 사드 왕조로부터 풀려나 다시 술탄의 자리에 복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복위는 잠시뿐이었다. 그는 불과 2년 후인 1549년에 사망했고, 이로써 와타스 왕조는 다시 알리 아부 하순의 섭정 체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의 통치 말년의 혼란은 와타스 왕조가 직면했던 내부 및 외부의 복합적인 위기를 잘 보여준다.
2. 유산과 평가
아부 알 압바스 아마드 이븐 무함마드의 통치는 16세기 모로코가 직면했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와타스 왕조가 주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기를 대변한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끊임없는 침략과 영토 확장에 맞서 모로코의 독립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프랑스와 같은 유럽의 다른 세력과의 외교 관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그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무역을 촉진하는 것을 넘어,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강대국들이 북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에 맞서 모로코의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와의 사절 교환 및 무역 협정은 그의 통치기에 이루어진 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이러한 노력은 모로코가 일방적으로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다자간 외교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진보적인 시도였다.
비록 그의 통치가 사드 왕조와의 내부 갈등과 포로 생활, 그리고 짧은 복위 기간으로 혼란스러웠지만, 아부 알 압바스 아마드 이븐 무함마드는 유럽 세력의 식민지적 야망에 저항하며 모로코의 정체성과 독립을 지키려 했던 인물로 기억될 수 있다. 그의 리더십은 후대 모로코 역사가들이 외세에 맞선 저항과 자주적인 외교의 중요성을 논할 때 종종 언급되는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