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슈테판 에펜베르크(Stefan Effenberg슈테판 에펜베르크독일어, 1968년 8월 2일 출생)는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스포츠 디렉터로, 최근에는 KFC 위어딩엔 05의 스포츠 디렉터로 활동했다. 그는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리더십, 넓은 패스 범위, 강력한 슈팅 능력, 그리고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했으나, 동시에 다혈질적이고 논란이 많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별명은 그의 강렬한 인상과 플레이 스타일을 반영하여 '호랑이'(Der Tiger데어 티거독일어)였다.
분데스리가에서 그는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두 번의 기간에 걸쳐 총 6시즌을 뛰며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에펜베르크는 은퇴 시점까지 분데스리가에서 109장의 옐로카드를 받아 역대 최다 기록을 보유했다.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그는 세 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1년에는 주장으로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30회 이상 독일 대표팀에 출전했으나,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로 인해 비교적 이른 시기에 국가대표팀 경력을 마감했다. 그는 UEFA 유로 1992와 199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2. 초기 생애와 선수 경력의 시작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1968년 8월 2일 함부르크의 니엔도르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유소년 시절 브람펠더 SV(~1974), 빅토리아 함부르크(1974~1986), 그리고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1986~1987)의 유소년 팀을 거쳤다.
1987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에펜베르크는 20세가 되기 전에 확고한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인상적인 활약은 분데스리가의 거인 FC 바이에른 뮌헨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3. 클럽 경력
에펜베르크는 선수 생활 동안 여러 독일 및 해외 클럽에서 활약하며 다양한 경험과 성공을 쌓았다. 특히 FC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두 번째 활동기는 그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3.1.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첫 번째 활동기)
에펜베르크는 1987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그는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하며 3시즌 동안 73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했다. 그의 활약은 곧바로 FC 바이에른 뮌헨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3.2. 바이에른 뮌헨 (첫 번째 활동기)
1990년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에펜베르크는 첫 두 시즌 동안 19골을 득점하며 공격적인 재능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클럽은 어떤 우승컵도 들어 올리지 못했으며, 에펜베르크는 감독 및 다른 선수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팬들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2시즌 동안 65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했다.
3.3. 피오렌티나
로타어 마테우스가 1992년 바이에른 뮌헨으로 복귀하자, 에펜베르크는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며 세리에 A 무대를 밟았다. 당시 피오렌티나에는 브라이언 라우드루프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같은 스타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에펜베르크의 첫 시즌인 1992-93 시즌에 팀은 세리에 A에서 세리에 B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에펜베르크는 강등에도 불구하고 팀에 남아 1993-94 시즌 세리에 B에서 한 시즌 만에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2시즌 동안 56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다.
3.4.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두 번째 활동기)
1994년 여름, 에펜베르크는 친정팀인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복귀했다. 그는 1998년 바이에른 뮌헨으로 재이적하기 전까지 4시즌 동안 118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23골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1994-95 시즌 DFB-포칼 우승을 차지하며 팀에 기여했다.
3.5. 바이에른 뮌헨 (두 번째 활동기)
1998년 바이에른 뮌헨으로 다시 돌아온 에펜베르크의 두 번째 활동기는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오트마어 히츠펠트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임명된 그는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세 번의 분데스리가 우승(1998-99, 1999-2000, 2000-01)을 연속으로 달성했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두 번 진출했는데, 첫 번째는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2-1로 패하며 '캄프 누의 비극'을 경험했다. 그러나 2001년, 에펜베르크는 주장으로서 발렌시아 CF와의 결승전에서 정규 시간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승부차기 승리(1-1, 승부차기 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우승으로 바이에른 뮌헨은 2000-0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에펜베르크는 이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그가 팀을 떠난 후 진행된 역대 최고의 선수 11인 투표에서 그의 이름을 포함시켰다. 이 시기에 그는 4시즌 동안 95경기에 출전하여 16골을 기록했으며, DFB-포칼 1회, DFB-리가포칼 3회, 인터콘티넨털컵 1회 우승을 추가했다.
3.6. 말년 경력
바이에른 뮌헨을 떠난 에펜베르크는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한 시즌을 보낸 후 2003년 4월 팀을 즉시 떠났다. 이후 그는 카타르의 알아라비 SC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함께 한 시즌을 뛰었고, 2005년 7월 22일 은퇴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그는 개인 통산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에는 독일 텔레비전의 해설가로도 간간히 출연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에펜베르크는 35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득점하며 독일 국가대표팀에 기여했으나,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여러 논란과 함께 비교적 짧게 마무리되었다.
4.1. 초기 국가대표팀 경력과 유로 1992
에펜베르크는 1991년 6월 5일 웨일스와의 UEFA 유로 1992 예선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그는 마지막 18분을 뛰었으나 독일은 0-1로 패했다. 그는 이후 UEFA 유로 1992 본선에서 꾸준히 활약했으며, 조별 리그 2차전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득점하여 2-0 승리에 기여했다. 독일은 이 대회 결승에 진출했으나 덴마크에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93년 US컵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독일 U-21 대표팀에서도 5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감독이었던 베르티 포크츠는 에펜베르크의 좋지 않은 태도 때문에 그를 팀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4.2. 1994년 FIFA 월드컵 논란
1994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에펜베르크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큰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경기가 열린 댈러스의 코튼볼은 35 °C의 무더위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 경기에서 에펜베르크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 교체 아웃되었는데, 독일은 전반 3-0으로 앞서다가 후반 2골을 내주며 1골 차로 추격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야유를 보내는 독일 팬들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하는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베르티 포크츠 감독은 격분하여 에펜베르크를 즉시 팀에서 제외했고,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결국 그는 대회 도중 강제로 귀국 조치되었다.
4.3. 말년 국가대표팀 출전
1994년 월드컵 사건 이후, 에펜베르크는 1998년이 되어서야 국가대표팀에 다시 소집되었다. 그는 9월 몰타에서 열린 몇 차례 친선 경기에 잠시 복귀하여 출전했다. 이 경기들은 마침 베르티 포크츠의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 두 경기가 되었다. 이 경기를 끝으로 에펜베르크는 다시는 독일 대표팀에 출전하지 않았다.
5.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감독 및 스포츠 디렉터로서도 활동했다.
2015년 10월 13일, 그는 SC 파더보른 07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2016년 3월 3일 해임되었다. 그는 15경기에서 2승 6무 7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이 기간 동안 3년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지도자 강습회에 불참하여 지도자 자격증이 무효화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9년 10월 10일, KFC 위어딩엔 05는 에펜베르크를 새로운 스포츠 디렉터로 선임했다. 그러나 팀이 시즌 중 훈련 캠프를 위해 이탈리아의 축구 경기장이 없는 호텔에 머무는 등 몇 달간의 어려움을 겪은 후, 그는 2020년 5월 이 자리에서 조기에 물러났다.
6. 플레이 스타일과 특징
에펜베르크는 선수로서 뛰어난 강점과 동시에 논란이 많은 기질을 모두 지닌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리더십, 넓은 패스 범위, 강력한 슈팅 능력, 그리고 압도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경기 중원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중원의 낮은 위치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선호했다.
반면, 그는 다혈질적이고 논란을 일으키는 성격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기질은 팬, 감독, 다른 선수들에게서 주목과 동시에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의 별명인 '호랑이'는 이러한 그의 강렬한 플레이 스타일과 동시에 거친 성격을 반영하며, 일부에서는 그의 헤어스타일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분데스리가에서만 총 109장의 옐로카드를 수집하여, 은퇴 당시 최다 경고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은 그의 논란의 여지가 많은 플레이 스타일과 성격을 잘 보여준다.
7. 논란과 사생활
에펜베르크는 선수 생활 및 은퇴 후에도 여러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서며 언론과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사생활 또한 공개적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7.1. 주요 논란
에펜베르크는 거친 언행으로 인해 여러 구설수에 올랐다.
- 1991년, UEFA컵에서 코르크 시티 FC와의 경기를 앞두고 그는 코르크 시티의 미드필더 데이브 배리에 대해 "(그의) 할아버지 같다"고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배리는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에펜베르크의 발언에 응수했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 1990년대 후반, 그의 아내 마르티나가 에펜베르크가 전 동료 토마스 슈트룬츠의 아내 클라우디아 슈트룬츠와 불륜 관계를 맺었다고 폭로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 그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는 전 동료 로타어 마테우스를 비롯한 여러 축구인들을 강하게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2001년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 2002년, 그는 잡지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는데 너무 게으르며, 이들에게 제공되는 복지 혜택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이 발언은 취약계층에 대한 무감각한 시선으로 비춰져 상당한 논란을 야기했다.
7.2. 개인 관계 및 가족
클라우디아 슈트룬츠와의 관계는 2004년 결혼으로 이어졌다. 에펜베르크는 첫 결혼에서 얻은 세 명의 자녀가 있었다. 결혼 후 에펜베르크 부부는 미국 플로리다주로 이주하여 생활했다.
8. 업적과 영예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다수의 우승과 개인 수상을 기록하며 뛰어난 선수 경력을 쌓았다.
8.1. 클럽 우승
- FC 바이에른 뮌헨
- 푸스발-분데스리가: 1998-99, 1999-2000, 2000-01
- DFB-포칼: 1999-2000
- UEFA 챔피언스리그: 2000-01
- 인터콘티넨털컵: 2001
- DFL-슈퍼컵: 1990
- DFB-리가포칼: 1998, 1999, 2000
- ACF 피오렌티나
- 세리에 B: 1993-94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DFB-포칼: 1994-95
8.2. 국제 우승
- 독일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1992
- US컵: 1993
8.3. 개인 우승
-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1990-91, 1991-92, 1994-95, 1995-96, 1996-97, 1997-98, 1999-2000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토너먼트 팀: 1992
- FIFA XI: 1997
- 유럽 스포츠 미디어 올해의 팀: 1998-99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2001
-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베스트 11: 2005
9. 유산과 평가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그의 축구 경력 동안 보여준 뛰어난 재능과 리더십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동시에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과 논란이 많은 행동으로 인해 비판적인 시각 또한 존재한다.
9.1. 긍정적 평가
에펜베르크는 필드 위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FC 바이에른 뮌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200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 주장으로서 보여준 리더십과 중요한 순간의 페널티킥 득점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결정력을 상징한다. 그는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로 선정되고,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최고의 선수 11인에 이름을 올리는 등 축구계에서 그의 실력과 기여는 높이 평가받았다. 그의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 강력한 슈팅은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인정받게 했다.
9.2. 비판
에펜베르크는 그의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논란의 중심에 자주 섰던 인물이다. 1994년 FIFA 월드컵 당시 팬들에게 손가락 욕설을 한 사건은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을 조기에 마감하게 한 결정적인 오점으로 남았다. 이 사건은 프로 선수로서의 부적절한 태도로 크게 비판받았다.
또한, 자서전을 통해 팀 동료였던 로타어 마테우스를 포함한 여러 축구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폭행하여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의 사생활 문제도 그의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02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업자들에 대해 "너무 게으르다"고 발언하고 복지 혜택 축소를 주장한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 부족을 드러내며 심각한 비판을 초래했다. 이러한 일련의 논란들은 그의 기술적인 능력과는 별개로, 공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감과 태도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10. 클럽 기록
클럽 | 시즌 | 리그 | 내셔널컵 | 리그컵 | 대륙 대회 | 기타 | 합계 | |||||||
---|---|---|---|---|---|---|---|---|---|---|---|---|---|---|
디비전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1987-88 | 분데스리가 | 15 | 1 | - | - | - | - | 15 | 1 | ||||
1988-89 | 29 | 3 | 2 | 0 | - | - | - | 31 | 3 | |||||
1989-90 | 29 | 6 | 3 | 0 | - | - | - | 32 | 6 | |||||
합계 | 73 | 10 | 5 | 0 | 0 | 0 | 0 | 0 | 0 | 0 | 78 | 10 | ||
FC 바이에른 뮌헨 | 1990-91 | 분데스리가 | 32 | 9 | 1 | 0 | - | 8 | 1 | 1 | 0 | |||
1991-92 | 33 | 10 | 1 | 0 | - | 4 | 1 | - | 38 | 11 | ||||
합계 | 65 | 19 | 2 | 0 | 0 | 0 | 12 | 2 | 1 | 0 | 80 | 21 | ||
피오렌티나 | 1992-93 | 세리에 A | 30 | 5 | 4 | 2 | - | - | - | 34 | 7 | |||
1993-94 | 세리에 B | 26 | 7 | 4 | 0 | - | - | - | 30 | 7 | ||||
합계 | 56 | 12 | 8 | 2 | 0 | 0 | 0 | 0 | 0 | 0 | 64 | 14 |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1994-95 | 분데스리가 | 30 | 7 | 5 | 2 | - | - | - | 35 | 9 | |||
1995-96 | 31 | 7 | 2 | 1 | - | 6 | 3 | 1 | 0 | |||||
1996-97 | 29 | 1 | 2 | 0 | - | 3 | 2 | - | 34 | 3 | ||||
1997-98 | 28 | 8 | 1 | 0 | - | - | - | 29 | 8 | |||||
합계 | 118 | 23 | 10 | 3 | 0 | 0 | 9 | 5 | 1 | 0 | 138 | 31 | ||
바이에른 뮌헨 | 1998-99 | 분데스리가 | 31 | 8 | 6 | 3 | 2 | 0 | 12 | 5 | - | 51 | 16 | |
1999-2000 | 27 | 2 | 5 | 0 | 1 | 0 | 11 | 2 | - | 44 | 4 | |||
2000-01 | 20 | 4 | - | - | 10 | 1 | - | 30 | 5 | |||||
2001-02 | 17 | 2 | 4 | 0 | 1 | 0 | 7 | 1 | - | 29 | 3 | |||
합계 | 95 | 16 | 15 | 3 | 4 | 0 | 40 | 9 | 0 | 0 | 154 | 28 | ||
VfL 볼프스부르크 | 2002-03 | 분데스리가 | 19 | 3 | 2 | 0 | - | - | - | 21 | 3 | |||
알아라비 | 2003-04 | 카타르 스타스 리그 | 15 | 4 | - | - | - | - | 15 | 4 | ||||
경력 합계 | 441 | 87 | 42 | 8 | 4 | 0 | 61 | 16 | 2 | 0 | 550 | 111 |
11. 국가대표팀 기록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골 |
---|---|---|---|
독일 | 1991 | 4 | 0 |
1992 | 12 | 2 | |
1993 | 11 | 3 | |
1994 | 6 | 0 | |
1995 | 0 | 0 | |
1996 | 0 | 0 | |
1997 | 0 | 0 | |
1998 | 2 | 0 | |
합계 | 35 | 5 |
12.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아래의 점수에서 왼쪽의 점수가 독일의 점수이다.
13. 감독 기록
팀 | 국적 | 시작일 | 종료일 | 기록 | ||||
---|---|---|---|---|---|---|---|---|
경기 수 | 승 | 무 | 패 | 승률 % | ||||
파더보른 07 | 독일독일어 | 2015년 10월 13일 | 2016년 3월 2일 | 15 | 2 | 6 | 7 | 13.33% |
합계 | 15 | 2 | 6 | 7 | 1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