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수 경력 이전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프로 입단 이전부터 야구에 대한 깊은 열정과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주목받는 아마추어 선수로 성장했다.
1.1. 유년기와 아마추어 야구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1984년 7월 7일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나 아카시시에서 성장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연식 야구팀인 "히바리다이 라이온즈"에서 야구를 시작했으며, 당시 투수이자 4번 타자로 활약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경식 야구팀인 "고베 드래건스"에서 뛰었으며, 팀의 1년 선배로는 구리야마 다쿠미가, 2년 선배로는 여자 야구 일본 대표팀 감독인 다치바나다 메구미가 있었다.
고베 국제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1학년 가을부터 등번호 1번을 달고 에이스 투수로 등판하며 추계 긴키 대회에서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이듬해 봄에는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고시엔 대회인 제73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에이스이자 5번 타자로 출전했다. 3학년 때는 여전히 등번호 1번이었으나 주로 외야수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효고현 대회에서는 준결승전에서 가네토 노리히토가 소속된 아마가사키 시립 고등학교를 상대로 9회말 2사에서 5점 차를 극복하고 끝내기 승리를 거두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오자키 마사야와 오타니 도모히사 등이 소속된 호토쿠가쿠엔 고등학교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고교 시절 통산 2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1.2. 드래프트와 프로 입단
2002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는 다카이 유헤이의 교섭권을 놓친 후 사카구치 도모타카를 1순위로 지명하여 그를 영입했다. 이로써 그는 고베 국제대학 부속고등학교 출신 선수 중 최초의 프로 야구 선수가 되었으며, 동시에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의 마지막 1순위 지명 선수로 기록되었다. 구단은 그의 4번 타자로서의 타격 능력, 뛰어난 준족, 그리고 강견의 신체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외야수로 전향시켰다.
2. 프로 경력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래,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베테랑으로서 팀에 기여하며 약 20년간의 긴 프로 경력을 쌓았다.
2.1.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시대 (2003-2004)
2003년, 사카구치는 웨스턴 리그에서 타율 .302를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그는 고졸 야수로서는 구단 역사상 8번째로 데뷔 1년차에 1군 경기에 첫 출전하는 영예를 안았고, 동시에 자신의 첫 안타도 기록했다. 하지만 2004년 시즌 이후 구단 통합으로 인해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가 해체되면서 그의 짧았던 긴테쓰 시대는 막을 내렸다.
2.2. 오릭스 버펄로스 시대 (2005-2015)
2005년부터 사카구치는 긴테쓰 버펄로스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구단 통합에 따른 조치로 오릭스 버펄로스 소속이 되었다. 그는 2군에서 타율 .285, 13도루를 기록했다. 2006년에도 2군에서 5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28, 12도루를 기록했으며, 오프시즌에는 하와이 윈터 리그에 파견되어 실력을 갈고닦았다.
2007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자, 당시 감독이었던 테리 콜린스는 히라노 게이이치의 이탈 상황에서 사카구치 외에 다른 1번 타자는 없다고 극찬했다. 그는 1번 중견수로 생애 첫 개막전 스타팅 멤버로 출전하여 첫 회에 그해 팀의 첫 안타를 기록했다. 5월 초 타격 부진으로 2군에 강등되기도 했으나, 시즌 종반에 다시 1군으로 승격한 후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9월 이후에는 3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며 맹타상도 수상했다. 2군에서는 4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17, 팀 내 1위인 10도루를 기록했다.
2008년에도 개막전 1번 타자로 선정되었고, 전반기에는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여름 이후 타율이 하락하고 삼진이 늘었지만, 주로 1번 또는 2번 타자로 터피 로즈와 함께 팀 내 최다인 142경기에 출전하며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하는 등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6개의 3루타와 13개의 도루(고토 미쓰타카와 동률)는 팀 내 1위였고, 안타수, 희생 번트수, 희생 플라이수는 모두 팀 내 2위를 기록했다. 특히 만루 상황에서는 9타석 7타수 6안타 11타점을 기록하며 '만루의 사나이'다운 면모를 보였다. 수비에서는 외야수로서 리그 3위인 7개의 보살을 기록하며 생애 첫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다만, 전체 타석의 절반 이상에서 3구 이내에 타격하는 스타일과 팀 내 4위의 삼진수를 기록하며 볼넷과 사구가 적어 출루율이 낮다는 점과, 좌완 투수를 상대로 타율 .232에 그쳤다는 점은 개선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2009년에는 시즌 도중 새로운 전용 응원가가 만들어졌다. 시범 경기에서는 타율 .349로 호조였으나, 개막 후 5월 초까지 타율 1할대에 머무는 부진을 겪으며 그해 새로 합류한 오무라 나오유키에게 1번 타자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회복하여 6월부터 다시 1번 타자로 복귀했다. 5월 이후 7월을 제외한 모든 월에서 월간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했으며, 8월에는 월간 타율 .386, 월간 40안타를 기록하며 이치로 이후 구단 역사상 2번째 기록을 세웠다. 최종적으로 팀 내 최다인 137경기에 출전하여 팀 내 규정 타석 도달자 중 유일하게 3할 타율(리그 2위인 .317)을 기록했고, 리그 2위인 167안타, 전년도 개인 최다 기록을 경신하는 팀 내 최다이자 리그 10위인 16도루를 기록했다. 리그 6위인 출루율 .381을 기록했으며, 좌완 투수를 상대로도 타율 .297을 기록하는 등 전년도의 약점을 개선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비에서는 외야수로서 리그 1위인 14보살과 리그 2위의 수비율을 기록하며 2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 하위권에 머물던 팀 내에서 맹활약했다. 이 해 그는 8명의 야수 골든 글러브 수상자 중 유일하게 닛폰햄 소속이 아닌 선수였다. 같은 해 오프시즌에는 등번호를 9번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12월 21일에는 한신·아와지 대지진 복구 15주년 자선 경기에 참가하여 지역 선수와 오릭스 블루웨이브 OB들로 구성된 "힘내라 고베 드림즈" 선수로 출전했다.
2010년에는 풀 이닝 출전을 목표로 1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나, 타격 부진으로 불과 12경기 만에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교류전 첫 경기인 5월 12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연장 10회초에 결승 적시타를 기록하며 팀의 야쿠르트전 2년 만의 승리를 이끌었다. 6월 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프로 야구 신기록인 10타자 연속 안타의 선두 타자로 나서 1이닝 2안타를 기록하는 등 교류전 타율 .389를 기록하며 MVP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7월에는 타율 .213, OPS .539로 다시 부진에 빠져 전반기 종료 직전 3년 만에 2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군 복귀 후 타율을 3할로 끌어올려 최종적으로 2년 연속 3할 타율, 3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 3년 연속 150안타를 달성했다. 3루타는 리그 1위인 10개를 기록했고, 8월에는 10개의 2루타와 6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8월 JA 전농 Go·Go상(최다 2·3루타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전 144경기에 풀 이닝 출전하여 퍼시픽 리그 최다 안타를 수상했다. 시즌 초반 부진했으나, 교류전에서 타율 .412를 기록하며 단숨에 3할 타율에 진입, 교류전 수위타자, 최다 안타,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닛폰 생명상을 수상했다. 시즌 막판까지 3할 타율을 유지하며 수위타자를 노릴 위치에 있었으나, 마지막 17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는 극심한 부진으로 최종 타율은 .297로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다 안타, 최다 3루타(공동 1위), 득점(리그 3위), 볼넷(리그 5위), 타율(리그 7위), 출루율(리그 8위)을 기록하며 1번 타자로서 맹활약했다. 수비에서도 무실책의 수비율 10할, 수비 기회 리그 3위, 보살 리그 5위를 기록하며 그의 준족과 강견을 유감없이 발휘, 4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또한 9월 JA 전농 Go·Go상(최다 2·3루타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2012년 시즌을 앞두고 3월 10일 열린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야구 경기의 대만전에서 처음으로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4회부터 교체 출전하여 2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개막전에서는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지만, 이 해에도 이전 몇 년과 마찬가지로 시즌 초부터 타격 부진과 수비 실책 등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5월 5일 닛폰햄전에서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며 2010년 9월 19일부터 이어오던 179경기 연속 풀 이닝 출장이 중단되었다. 이후에도 컨디션이 좀처럼 오르지 않던 중, 5월 1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1회초 사카모토 하야토의 플라이볼을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으나 이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를 강타하여 부상 퇴장당했다. 검사 결과 오른쪽 어깨 견쇄관절 탈구와 인대 파열 진단을 받아 장기 이탈이 불가피해졌다. 시즌 복귀는 절망적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9월 7일 웨스턴 리그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복귀했다. 그러나 타격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수비에서 충분히 던질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DH나 대타로 출전하며 2군 경기를 이어갔다. 정규 시즌 종료 직전인 10월 5일에 1군에 등록되어 같은 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 7회말 대타로 복귀, 오토나리 겐지를 상대로 쐐기타를 기록했다. 10월 7일 세이부전에서도 대타로 안타를 기록했으나, 1군 정착 후 최소인 40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고, 최하위로 처진 팀에게 사카구치의 이탈은 공수 양면에서 큰 타격이 되었다. 이 해 오프시즌에는 이토 히카루와 함께 오릭스의 부선수회장에 취임했으나, 신임 선수회장이었던 오비키 게이지가 트레이드되면서 선수회장에 취임했다.
2013년에는 선수회장으로서 경기에 출전했으나, 시즌 초부터 부진에 시달렸고 여름에도 좀처럼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 시즌 도중 요통으로 8월에 등록 말소되었다가 시즌 종반에 복귀했다. 최종적으로 97경기에 출전했으며, 규정 타석에는 6타석 부족했다.
2014년에는 8년 만에 개막전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지만, 1군 공식전 122경기에 출전하며 3년 만에 출전 경기 수가 100경기를 넘겼다. 그러나 8월 이후 가와바타 다카요시에게 선발 자리를 빼앗기는 등 시즌 전체적으로는 전년에 이어 부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적은 타석 수로 40타점을 기록하는 등 중요한 순간마다 승부 강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중 국내 FA 권리를 취득했지만, 시즌 종료 후 구단과 두 차례 협상한 결과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오릭스에 잔류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에도 1군 공식전 개막부터 선발 출전했다. 한때 3번 타자로 기용되기도 했다. "프로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준" 한신·아와지 대지진 발생 연도(1995년)의 오릭스 블루웨이브 복각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4월 18일 세이부전에서는 고향에 가까운 핫토모토 필드 고베에서 그해 유일한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5월 11일 출전 선수 등록에서 말소되었다. 말소 직후 오른쪽 팔꿈치 부상 등으로 인해 1군 복귀에 실패했다. 더 나아가 9월에는 구단으로부터 다음 해 계약에 대해 야구 협약상 감액 제한을 초과하는 대폭적인 연봉 삭감을 제시받았다. 사카구치는 이 제안에 동의하지 않고 자유 계약을 요청했고, 구단은 시즌 종료 직전인 10월 1일 사카구치의 퇴단을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사카구치의 영입 조사를 시작했다.

2.3.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대 (2016-2022)
2015년 11월 1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사카구치 도모타카의 영입에 합의했음을 발표했다. 추정 연봉은 3000.00 만 JPY로, 오릭스 시절 마지막 연봉(7500.00 만 JPY)에서 4500.00 만 JPY가 삭감된 금액이었다. 그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불길한 숫자"라며 일본 선수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등번호 42번을 본인의 의지로 착용하기로 결정했다. 야쿠르트 외에도 여러 구단에서 영입 제안이 있었지만, 사카구치는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준 팀에 가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야쿠르트 입단을 선택했다.
2016년 시범 경기에서 1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415, 6타점, 2도루를 기록하며 좋은 컨디션을 보여 외야 주전 자리를 확보했고, 시즌 내내 1군에 머물렀다. 주로 1번 또는 2번 타자로 팀 내 최다인 141경기에 출전했으며, 오릭스 시절 2011년 이후 5년 만에 리그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또한 6월 2일 닛폰햄전(삿포로 돔)에서 1군 공식전 통산 1000경기 출장을, 같은 달 8일 라쿠텐전(라쿠텐 코보 스타디움 미야기) 1회초 첫 타석에서는 통산 1000안타를 연이어 달성했다. 시즌 전체적으로는 타율 .295, 개인 최다인 63개의 볼넷을 기록하며 출루에 전념한 결과, 센트럴 리그 7위의 출루율(.375)을 기록했다. 한편, 이 해 센트럴 리그 규정 타석 도달자 27명 중 유일하게 홈런을 기록하지 못한 선수이기도 했다.
2017년에는 스프링 캠프 돌입 전 1월에 롤링스와 야구용품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 정규 시즌에는 1군 공식전 136경기에 출전했다. 리그 최하위로 처진 팀 상황에서도 규정 타석 도달 선수 중 팀 내 최고 타율인 .290, 4홈런, 출루율 .364를 기록하는 등 시즌 내내 활약했다. 또한 시즌 중 1군 공식전 통산 타수가 4000에 도달하여 NPB 통산 타율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 종료 후 계약 협상에서는 오릭스 시절 2012년 이후 5년 만에 연봉이 1.00 억 JPY를 넘는 '1억 엔 플레이어'로 복귀했다.
2018년에는 야쿠르트를 거쳐 MLB에서 6시즌 활약했던 아오키 노리치카가 스프링 캠프 도중 팀에 복귀했다. 아오키를 복귀 전과 같은 정중견수로 기용하려는 팀 구상 아래, 오가와 준지 감독은 유헤이에게 1루수 전향을 제안했지만, 그해 헤드 코치로 취임한 미야모토 신야가 유헤이의 신장이 낮은 점을 우려했고, 사카구치의 신장(181 cm)에 주목하여 그에게 중학교 이후 멀리했던 1루수 수비 훈련을 시작하게 했다. 정규 시즌에는 3월 30일 DeNA와의 개막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6번·1루수"로 선발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1군 공식전 98경기에서 1루 수비를 맡았다. 타격 면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는 등 시즌 내내 안타를 양산했다. 전반기에는 하위 타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7월경부터 1번 타자로 정착하여 2번 타자 아오키와의 테이블 세터 조합으로 강력한 타선을 이끌었다. 1군 공식전 전체적으로는 139경기에 출전했다. 타율은 센트럴 리그 9위인 .317로, 오릭스 시절 2010년 이후 8년 만에 3할을 넘겼다. 또한 개인 최고 출루율인 .406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추정 연봉 1.40 억 JPY를 기준으로 연봉이 변동되는 조건으로 2019년부터 3년 계약을 맺었다.
2019년에는 수비 중 옆구리에 송구에 맞거나, 타석에서 파울 타구가 눈에 맞는 등 시범 경기부터 사고가 잇따랐다. 한신 타이거스와의 정규 시즌 개막 3연전(교세라 돔 오사카)에는 "1번·1루수"로 선발 기용되었지만, 3월 31일 3차전 8회말 4번째 타석에서 시마모토 히로요시에게 왼손에 사구를 맞아 교체되었다. 이후 왼손 엄지 골절이 판명되어 다음 날인 4월 1일 출전 선수 등록에서 말소되었다. 5월 17일 1군에 복귀했지만, 골절의 영향으로 섬세한 감각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년도만큼 컨디션이 오르지 않았고, 6월 9일 다시 등록 말소된 이후에는 2군 생활에만 전념했다. 1군 공식전 전체적으로는 22경기에 출전했다. 1루수 수비는 10경기, 외야수 수비는 9경기에 나섰다. 타격 면에서는 타율 .125, 0홈런, 2타점으로 부진했다. 이 해에 3년 계약의 첫 해를 마쳤으나, 성적 등에 따라 연봉이 변동되는 조건에 따라 시즌 종료 후 12월 5일 추정 연봉 1.15 억 JPY(전년 대비 2500.00 만 JPY 삭감)의 조건으로 2년째 계약에 합의했다.
2020년에는 10월 19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역대 129번째로 통산 1500안타에 도달했다. 114경기에 출전하여 2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했으며, 개인 최다인 9홈런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출전했으나, 3월 28일 3경기 만에 부상으로 이탈했다. 2군 조정 후, 올림픽 중단 기간의 엑시비션 매치에서 타율 .438의 좋은 결과를 보여주며 8월 14일 리그 재개 시점에 1군에 합류했다. 후반기에도 9월에 사구로 부상을 입는 등 정규 시즌 출전은 25경기에 그쳤지만, 프로 입단 19년 만에 처음으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오릭스와의 2021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서 9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여 미야기 히로야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기록하는 등 총 4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20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22년에는 스프링 캠프부터 2군에서 컨디션을 조절했으나, 6월 9일 오릭스전에서 처음으로 1군에 승격하여 6번 좌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1볼넷과 2루타를 기록했다. 6월에는 타율 .350, 출루율 .458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였고,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뒤를 잇는 5번 타자로 출전한 경기도 있었다. 하지만 7월 이후 점차 성적이 하락하여 8월 8일 1군 등록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2군에서 계속 조정하다가 9월 29일 은퇴를 표명했다.
2.4. 은퇴
2022년 9월 29일,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20시즌 동안의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에서 뛰었던 마지막 현역 NPB 선수였다. 10월 3일,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인 DeNA전(진구 구장)에 2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여 1회초 첫 타석에서 현역 마지막 안타인 좌전 안타를 기록했다. 경기 후 열린 은퇴 세리머니에서는 함께 은퇴하는 우치카와 세이이치, 시마 모토히로와 합동으로 진행되었으며, 가족과 깜짝 손님으로 등장한 곤도 가즈키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3. 은퇴 후 활동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선수 은퇴 후에도 야구계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3년부터 그는 후지테레비, BS-TBS, TBS 채널, J SPORTS의 야구 해설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에 1월 24일에는 독립 리그인 규슈 아시아 리그 소속의 히노쿠니 살라만더스의 임시 코치로 취임했다고 발표되었다. 그는 2월 스프링 캠프부터 타격과 수비를 포함한 지도를 시작했으며, 시즌 개시 후에도 매달 여러 차례 지도를 이어갔다. 또한 이와 병행하여 초중학생 등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지도도 계획했으며, 2월 16일부터는 세키메디 베이스볼 학원 중등부의 임시 코치로도 활동했다. 히노쿠니 살라만더스의 임시 코치직은 시즌 종료 후인 10월 30일에 퇴임이 발표되었다.
4. 선수 특징 및 플레이 스타일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수비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다양한 기술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았다.
본인 스스로는 수비를 좋아하고 타격은 서툴다고 말했으며, 아마추어 시절 투수 역할도 싫어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감독이었던 아오키 나오타쓰는 그의 운동 능력은 높지만 투수로서 "조마조마한 투구가 많았다"고 평하며, "끈기는 없지만 밝고 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1루 도달 시간 3.71초의 빠른 발을 활용하여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내야 안타율 14.7%를 기록했다. 또한 교타자로서 쫓기는 상황에서도 커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치로와 유사한 타격 폼을 가지고 있었으며, 넓은 코스에 공을 보내는 기술이 뛰어났다. 특히 속구에 강하여 2010년에는 직구를 상대로 타율 .379를 기록했고, 150 km/h 이상의 빠른 공에는 타율 6할을 기록할 정도로 강했다. 반면 도루 시도 횟수가 적어 연간 20도루에 도달한 적이 없으며, 통산 도루 성공률도 약 68%로 낮은 편이었다.
외야 수비에서는 2010년 UZR 6.5를 기록할 정도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했으며, 오릭스 시절 2008년부터 4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시절 투수로서 140 km/h대의 직구를 던졌을 만큼 어깨가 강했고, 정확한 송구 능력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 야쿠르트 이적 후 2018년에는 외야수 등록 신분이었지만 사실상 1루수로 전향하여 뛰기도 했다.
사카구치는 매우 연습 열심인 선수로 알려져 있다. 현역 마지막 경기였던 2022년 10월 3일 경기 후 세리머니에서 야쿠르트의 다카쓰 신고 감독은 사카구치에 대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남자",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플레이하는 모습은 우리가 젊은 선수들에게 지도하는 것보다 그 어떤 것보다도 젊은 선수들에게 자극이 되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5. 개인 생활 및 대중적 이미지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야구 외적인 면에서도 독특한 관심사와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행동과 선택은 대중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5.1. 관심사와 성격
사카구치는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신조 쓰요시를 좋아했으며, 집에는 신조의 포스터를 붙여놓고 프로 입단 후 공언했던 빨간색 리스트밴드 착용도 신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2004년에는 신조 본인과 만나 그로부터 물려받은 배트를 집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신조의 영향과 더불어 프로 야구 재편 문제를 겪으며 팬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은 그는 팬 서비스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는 동기 입단한 오니시 히로아키를 친형처럼 따랐으며, 오니시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이적하면서 TV 프로그램 "세야넨!"(마이니치 방송)에서 오니시가 맡았던 "세야넨! 전속 홍보부장" 자리를 물려받아 "2대 세야넨! 전속 홍보부장"으로 지명되었다. 2008년 12월 13일 방송에는 두 사람이 함께 스튜디오에 생방송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오니시는 사카구치에 대해 "말썽꾸러기 악동 같지만 야구에 있어서는 남들보다 배는 열심"이라고 평했다.
오릭스 시절에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주전 외야수였던 다구치 소(2016년부터 2군 감독)가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이던 2006년에 그에게 직접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다구치가 현역에서 은퇴하는 2012년까지 오프시즌에 함께 자율 훈련을 실시했다. 참고로, 다구치가 오릭스에 복귀한 2010년부터 은퇴한 2011년까지는 팀 동료였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영화인 "귀를 기울이면"이며, 아이가 태어나면 집에 지브리 방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여성상은 가정적이고 요리를 잘하며 느긋한 성격의 사람이라고 밝혔다. 연예인 중에서는 스즈키 사리나를 꼽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길거리 음악가이기도 했다. 프로 입단 후에도 두 차례 길거리 공연을 했지만, 이와쿠마 히사시가 덴노지역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 난 후로는 더 이상 공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5.2. 대중적 이미지와 상징적인 등번호
오릭스 주전 선수 시절에는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콧수염을 길러 "야구계를 대표하는 패셔니스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10월에는 오리지널 사진집 편집 사이트 "PHO초+"를 통해 첫 공식 사진집을 발매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교통타임스사 발행의 헤어 패션 계간지 "카지카지H(헤어)" 2015년 봄호(같은 해 3월 24일 발매)를 통해 패션 모델로 데뷔했다. 그러나 같은 해 시즌 종료 후 야쿠르트로 이적하면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11월 30일에는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수염을 완전히 밀고 입단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회견에서 그는 "금발의 (오릭스) 시절은 잊었다. 야쿠르트는 상큼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 스타일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오릭스 퇴단을 결심한 것에 대해 사카구치는 "어깨를 다친 2012년 이후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지만, 올해(2015년)는 조금씩 감각이 돌아왔기 때문에 배트와 글러브만 들고 야구인으로서 처음부터 다시 승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면, 당시 구단 본부장이었던 세토야마 류조는 퇴단 발표 당시 "사카구치를 '공로자'로 인정하지만, (야구계는) 그것만으로 돈을 지불하는 세계가 아니다. (구단 운영 입장상) 엄격하게 나설 부분은 나서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사카구치는 이후 이적한 야쿠르트 입단 기자회견에서 "(구단에) 저를 거두어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계약을 했으니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야쿠르트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로 알려진 재키 로빈슨을 본받아, "로빈슨처럼 현역에서 은퇴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등번호를 이어받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활약하고 싶다"는 의지에서 로빈슨의 현역 시절과 같은 등번호 42번(MLB 전 구단 영구 결번)을 착용했다. 과거 사카구치와 같은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했던 이시카와 다케히로(DeNA 내야수)도 2010년 이후 한 자릿수(7번)였던 등번호를 "존경하는 선배(사카구치)와 같은 번호"라는 이유로 2020년 시즌부터 42번으로 변경했다.
오릭스 시절의 응원가는 "가사와 멜로디 모두 좋았다"며 마음에 들어 했다. 이 응원가는 2023년 10월부터 같은 등번호 9번이자 이름도 비슷한 노구치 도모야에게 계승되었다.
6. 수상 및 영예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프로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개인 타이틀과 수상 경력을 획득했다.
- 타이틀
- 최다 안타: 1회 (2011년)
- 수상
- 골든 글러브상: 4회 (외야수 부문: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 월간 MVP: 1회 (야수 부문: 2011년 6월)
- JA 전농 Go·Go상: 3회 (강한 어깨상: 2009년 9월, 최다 2·3루타상: 2010년 8월, 2011년 9월)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닛폰 생명상: 1회 (2011년)
- 니가타현 쓰바메시 연간 히어로상: 1회 (2017년)
- 수상 당시 상품을 제공한 트윈버드 공업이 증정한 보드에는 그의 이름 '智隆'이 '智降'으로 잘못 표기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7. 경력 기록 및 이정표
사카구치 도모타카는 프로 데뷔 후 여러 인상적인 기록들을 세웠다.
-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2003년 10월 7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28차전 (Yahoo!BB 스타디움),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석·첫 안타: 상동, 1회초 맥 스즈키로부터 내야 안타
- 첫 도루: 2006년 3월 25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1차전 (인보이스 세이부 돔), 9회초 2루 도루 (투수: 다자키 마사히로, 포수: 스미타니 긴지로)
- 첫 홈런·첫 타점: 2006년 7월 15일, 대 라쿠텐 골든이글스 10차전 (풀캐스트 스타디움 미야기), 8회초 야마무라 히로키로부터 우월 2점 홈런
- 주요 이정표
- 1000경기 출장: 2016년 6월 2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3차전 (삿포로 돔), 2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 (역대 477번째)
- 1000안타: 2016년 6월 8일, 대 라쿠텐 골든이글스 2차전 (라쿠텐 코보 스타디움 미야기), 1회초 라다메스 리즈로부터 우전 안타 (역대 283번째)
- 1500안타: 2020년 10월 19일, 대 한신 타이거스 21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4회초 조 건켈로부터 좌전 적시타 (역대 129번째)
- 1500경기 출장: 2021년 8월 15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13차전 (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 9회초 시미즈 쇼의 대타로 출장 (역대 197번째)
- 기타
- 올스타전 출장: 2회 (2011년, 2018년)
8. 등번호
사카구치 도모타카의 프로 경력 동안 사용했던 등번호는 다음과 같다.
- 27 (2003년 ~ 2004년)
- 52 (2005년 ~ 2009년)
- 9 (2010년 ~ 2015년)
- 42 (2016년 ~ 2022년)
9. 통계
사카구치 도모타카의 프로 경력 동안의 상세한 타격 및 수비 기록은 다음과 같다.
9.1. 타격 통계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03 | 긴테쓰 | 1 | 6 | 5 | 0 | 1 | 0 | 0 | 0 | 1 | 0 | 0 | 1 | 0 | 0 | 1 | 0 | 0 | 2 | 0 | .200 | .333 | .200 | .533 |
2004 | 7 | 5 | 4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 | 0 | 0 | .000 | .200 | .000 | .200 | |
2005 | 오릭스 | 6 | 6 | 6 | 1 | 1 | 1 | 0 | 0 | 2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167 | .167 | .333 | .500 |
2006 | 28 | 26 | 22 | 3 | 2 | 0 | 0 | 1 | 5 | 2 | 3 | 1 | 1 | 0 | 3 | 0 | 0 | 6 | 1 | .091 | .200 | .227 | .427 | |
2007 | 46 | 149 | 137 | 13 | 33 | 6 | 1 | 0 | 41 | 8 | 4 | 1 | 6 | 0 | 5 | 0 | 1 | 21 | 0 | .241 | .273 | .299 | .572 | |
2008 | 142 | 588 | 540 | 68 | 150 | 15 | 6 | 2 | 183 | 32 | 13 | 3 | 17 | 4 | 23 | 0 | 4 | 77 | 9 | .278 | .310 | .339 | .649 | |
2009 | 137 | 594 | 526 | 82 | 167 | 23 | 7 | 5 | 219 | 50 | 16 | 4 | 8 | 4 | 52 | 0 | 4 | 81 | 8 | .317 | .381 | .416 | .797 | |
2010 | 138 | 622 | 558 | 84 | 172 | 31 | 10 | 5 | 238 | 50 | 12 | 6 | 7 | 1 | 52 | 0 | 4 | 77 | 13 | .308 | .371 | .427 | .798 | |
2011 | 144 | 651 | 590 | 84 | 175 | 20 | 7 | 3 | 218 | 45 | 5 | 5 | 2 | 1 | 54 | 2 | 4 | 77 | 11 | .297 | .359 | .369 | .729 | |
2012 | 40 | 165 | 158 | 7 | 36 | 2 | 1 | 0 | 40 | 8 | 2 | 2 | 2 | 0 | 5 | 0 | 0 | 13 | 0 | .228 | .252 | .253 | .505 | |
2013 | 97 | 440 | 383 | 47 | 88 | 13 | 5 | 3 | 120 | 24 | 2 | 2 | 10 | 2 | 44 | 0 | 1 | 48 | 4 | .230 | .309 | .313 | .623 | |
2014 | 122 | 382 | 323 | 33 | 76 | 5 | 5 | 2 | 97 | 40 | 3 | 2 | 10 | 0 | 47 | 0 | 2 | 45 | 4 | .235 | .336 | .300 | .636 | |
2015 | 36 | 121 | 107 | 8 | 28 | 7 | 0 | 1 | 38 | 5 | 1 | 0 | 1 | 1 | 12 | 0 | 0 | 18 | 1 | .262 | .333 | .355 | .688 | |
2016 | 야쿠르트 | 141 | 607 | 526 | 74 | 155 | 14 | 5 | 0 | 179 | 39 | 7 | 4 | 5 | 5 | 63 | 0 | 8 | 66 | 5 | .295 | .375 | .340 | .716 |
2017 | 136 | 607 | 535 | 51 | 155 | 16 | 2 | 4 | 187 | 38 | 4 | 3 | 5 | 3 | 59 | 2 | 5 | 76 | 6 | .290 | .364 | .350 | .713 | |
2018 | 139 | 595 | 508 | 64 | 161 | 22 | 4 | 3 | 200 | 37 | 9 | 7 | 7 | 2 | 75 | 5 | 3 | 60 | 15 | .317 | .406 | .394 | .800 | |
2019 | 22 | 77 | 64 | 2 | 8 | 1 | 0 | 0 | 9 | 2 | 0 | 0 | 1 | 0 | 10 | 0 | 2 | 13 | 2 | .125 | .263 | .141 | .404 | |
2020 | 114 | 458 | 398 | 55 | 98 | 14 | 1 | 9 | 141 | 36 | 4 | 5 | 3 | 3 | 47 | 1 | 7 | 60 | 8 | .246 | .334 | .354 | .688 | |
2021 | 25 | 57 | 50 | 7 | 8 | 1 | 0 | 0 | 9 | 0 | 0 | 3 | 1 | 0 | 4 | 0 | 2 | 12 | 0 | .160 | .250 | .180 | .430 | |
2022 | 24 | 47 | 43 | 2 | 12 | 3 | 0 | 0 | 15 | 2 | 0 | 0 | 0 | 0 | 3 | 0 | 1 | 13 | 0 | .279 | .340 | .349 | .689 | |
통산: 20년 | 1545 | 6203 | 5483 | 686 | 1526 | 194 | 54 | 38 | 1942 | 418 | 85 | 49 | 86 | 26 | 560 | 10 | 48 | 766 | 87 | .278 | .349 | .354 | .703 |
9.2. 수비 통계
연도 | 구단 | 1루수 | 외야수 | ||||||||||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2003 | 긴테쓰 | - | 1 | 4 | 0 | 0 | 0 | 1.000 | |||||
2004 | - | 3 | 2 | 0 | 0 | 0 | 1.000 | ||||||
2005 | 오릭스 | - | 2 | 2 | 0 | 0 | 0 | 1.000 | |||||
2006 | - | 17 | 9 | 0 | 0 | 0 | 1.000 | ||||||
2007 | - | 43 | 84 | 2 | 1 | 0 | .989 | ||||||
2008 | - | 139 | 283 | 7 | 2 | 0 | .993 | ||||||
2009 | - | 137 | 247 | 14 | 2 | 1 | .992 | ||||||
2010 | - | 136 | 266 | 7 | 1 | 1 | .996 | ||||||
2011 | - | 144 | 289 | 7 | 0 | 3 | 1.000 | ||||||
2012 | - | 38 | 70 | 2 | 1 | 1 | .986 | ||||||
2013 | - | 97 | 169 | 4 | 3 | 1 | .983 | ||||||
2014 | - | 116 | 194 | 2 | 1 | 1 | .995 | ||||||
2015 | - | 34 | 68 | 1 | 0 | 0 | .995 | ||||||
2016 | 야쿠르트 | - | 133 | 286 | 9 | 0 | 3 | 1.000 | |||||
2017 | - | 136 | 259 | 7 | 1 | 1 | .996 | ||||||
2018 | 98 | 783 | 49 | 5 | 58 | .994 | 71 | 70 | 2 | 0 | 0 | 1.000 | |
2019 | 10 | 72 | 9 | 1 | 5 | .988 | 9 | 17 | 0 | 0 | 0 | 1.000 | |
2020 | 47 | 363 | 17 | 1 | 37 | .997 | 68 | 91 | 2 | 2 | 0 | .979 | |
2021 | - | 14 | 16 | 0 | 0 | 0 | 1.000 | ||||||
2022 | - | 10 | 11 | 0 | 0 | 0 | 1.000 | ||||||
통산 | 155 | 1218 | 75 | 7 | 100 | .995 | 1344 | 2431 | 66 | 14 | 12 | .9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