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비탈리 발렌티노비치 밀로노프(Виталий Валентинович МилоновVitaly Valentinovich Milonov러시아어)는 1974년 1월 23일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러시아의 정치인이다. 그는 2016년부터 국가 두마 의원으로 재직 중이며, 통합 러시아 당 소속이다. 입법자로서 그는 특히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밀로노프는 낙태와 전통적 가족 가치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극단적인 사회적, 정치적 발언과 행동은 국내외에서 지속적인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2. 어린 시절 및 교육
비탈리 발렌티노비치 밀로노프는 1974년 1월 23일 당시 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북서 공공 행정 아카데미에서 지방 정부 행정을 공부하여 2006년에 졸업했다. 이후 모스크바의 성 티혼 정교회 인문학 대학교에서 통신 강좌를 이수하며 학업을 마쳤다.
3. 정치 경력
비탈리 밀로노프는 1990년대 초 정치에 입문한 이래 다양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방 정부와 러시아 연방 차원에서 활동해 왔다. 그의 정치 경력은 기독교 민주주의 계열에서 시작하여 점차 통합 러시아 당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3.1. 초기 정치 활동
밀로노프의 정치 경력은 1991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되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그는 당시 러시아 기독교 민주 연합 (CDU) 의장이었던 비탈리 빅토로비치 사비츠키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밀로노프는 CDU 러시아의 정치 청년 지부인 "청년 기독교 민주당원"의 의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러시아의 정치인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와 친분을 맺고 그녀의 정치적 지원을 받았다. 스타로보이토바가 살해당한 후, 밀로노프는 한동안 정치에서 멀어졌으나, 2004년 지방 정부 수준에서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다치노예" 지역 사회의 의원으로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200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크라스넨카야 레치카 시 행정부 수장을 맡았다.
3.2. 상트페테르부르크 입법부 활동
2007년 밀로노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입법부 선거에 성공적으로 출마하여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첫 임기 동안 그는 정부 수립, 지방 정부, 그리고 영토 관리 구조 확립을 위한 위원회의 의장으로 활동했다. 2009년에는 법률 위원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1년에는 다시 입법부 의원으로 재선되었다. 이 기간 동안 밀로노프는 "미성년자에게 동성애 선전"을 범죄화하는 법안의 주요 후원자로서 활동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3.3. 러시아 연방 국가 두마 활동
2016년 선거에서 비탈리 밀로노프는 통합 러시아 당을 대표하여 국가 두마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국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4. 주요 견해 및 이념
비탈리 밀로노프는 극도로 보수적인 사회적,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며, 특히 성소수자 권리, 낙태, 전통적 가족 가치, 그리고 특정 외교 정책 사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종종 광범위한 논란을 야기했다.

4.1.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견해
밀로노프는 러시아 사회의 도덕적, 문화적 기반을 보수적인 가치로 굳건히 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는 특히 성소수자 권리와 낙태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관련 입법 활동을 주도했다.
4.1.1.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입장
밀로노프는 성소수자 권리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미성년자에게 동성애 선전 금지" 법안의 주요 후원자로 활동하는 것으로 구체화했다. 2013년, 그는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성소수자 선수들이 미성년자에게 동성애를 "선전"할 경우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가 연방 입법부가 승인하고 대통령이 서명한 법률을 중단시킬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2013년 11월에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 성소수자 영화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2014년 10월 30일, 밀로노프는 애플의 최고 경영자 팀 쿡의 동성애에 대해 플래시노드 웹사이트에서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 에볼라 바이러스, 에이즈, 임질? 그들 모두는 불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2014년 다큐멘터리 영화 증오 캠페인: 러시아와 게이 선전(Campaign of Hate: Russia and Gay Propaganda)에도 출연했다. BBC 다큐멘터리 레지 예이츠의 극한 러시아 - 게이 그리고 공격받다(Reggie Yates' Extreme, Russia - Gay and Under Attack)에서 동성애자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똥 한 조각은 위험하지 않지만, 거리에서 보는 것은 상당히 불쾌하다. 동성애는 역겹다. 동성애 혐오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발언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4.1.2. 낙태 및 가족 가치에 대한 입장
밀로노프는 낙태에 대해 급진적인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12년 그는 인간 태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이 법안은 신속하게 기각되었다. 그는 또한 러시아 국가 두마에서 행복한 독신 남성을 미화하는 영화를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러한 영화가 가족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신 자녀가 많은 아버지를 긍정적인 영웅으로 묘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4.2. 이민 및 외교 정책에 대한 견해
밀로노프는 이민 정책과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는 이민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을 제안하고, 특정 국제 분쟁에서 특정 국가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이민자 노동자를 30% 이상 고용하는 기업 및 조직에 대한 소득세를 30%로 인상하고, 러시아 세법 개정 결의안 초안을 상트페테르부르크 입법부에 제출할 계획을 세웠다.
외교 정책과 관련하여, 밀로노프는 2020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아르메니아를 지지했다. 그는 또한 키프로스 분쟁에서는 아사드 정권과 그리스를 지지했다. 밀로노프는 반튀르키예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다시 해방될 것"이라고 선언했고, 튀르키예에 대한 제재를 촉구했으며, 미혼 러시아 여성들의 튀르키예 여행을 금지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5. 논란 및 비판
비탈리 밀로노프는 그의 공적인 행동, 발언, 그리고 정책 발의로 인해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으며, 국내외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그의 극단적인 종교적, 사회적 견해와 외교 정책에 대한 단호한 입장은 빈번하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5.1. 반유대주의 논란
2014년 3월 19일, 밀로노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입법부에서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을 했다. 보도에 따르면, 밀로노프는 유대인들이 "어떤 성인이든 비방하며, 이는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호소부터 시작하여 크론슈타트의 성 요한에 대한 반유대주의 비난으로 끝나는 2천 년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19세기 종교 지도자인 성 요한이 흑백단 지지자였다는 주장에 대해 밀로노프는 이러한 주장이 "완전한 거짓말, 유황 냄새 나고 사탄주의의 깊은 역사를 가진 현대 신자유주의 우화"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5.2. 논란이 된 발언 및 행동
밀로노프는 자신의 극단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여러 발언과 행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정교 또는 죽음!'이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총을 든 사진을 게시한 후 극단주의자로 인식되었다. 그는 이에 대한 벌금 납부를 거부했고, 의원 면책 특권으로 인해 처벌받지 않았다.
2018년 3월, 밀로노프는 세르게이 및 율리아 스크리팔 독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매우 가능성이 높게" 책임이 있다는 영국 정부의 주장을 비난했다. 그는 당시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며, 영국이 공격의 책임이 있고 러시아를 비난하며 "환상"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될 무렵, BBC 뉴스 라디오 미국 방송에서 밀로노프와의 욕설이 섞인 인터뷰를 방송했다. 이 인터뷰에서 밀로노프는 영국, 유럽 연합, 그리고 미국이 침공을 유발했으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영향력 아래에 둘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2022년 9월 러시아 동원령 발동 이후, 밀로노프는 하사 계급으로 돈바스 전선에 동원되어 대전차 포병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의 오랜 호출 부호는 "구스타프"였다.
5.3. 국제 제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비탈리 밀로노프는 여러 국가로부터 국제적인 제재를 받았다. 그는 캐나다의 특별 경제 조치법(S.C. 1992, c. 17)에 의거하여 "국제 평화 및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반"과 관련하여 제재를 받았다. 또한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영국 정부로부터도 제재 대상에 포함되었다.
6. 개인 생활
비탈리 밀로노프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에바 리부르키나와 결혼했으나 현재는 이혼한 상태이다. 그들은 딸 마르파, 아들 니콜라이, 그리고 입양 아들 등 세 자녀를 함께 양육했다. 그의 종교적 배경을 보면, 1991년에는 침례교회에 가입했으나, 1998년에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 또한 밀로노프는 보드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비디오 게임 하스스톤을 자주 플레이한다.
7. 유산 및 평가
비탈리 밀로노프는 러시아 정치계에서 그의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견해와 거침없는 발언으로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특히 성소수자 권리, 낙태, 전통적 가족 가치에 대한 그의 강경한 입장은 러시아 사회에 대한 보수적 가치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동시에 국제사회와 러시아 내 인권 단체들로부터 강한 비판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7.1. 영향 및 대중적 인식
밀로노프의 활동은 러시아 사회 내에서 보수주의적 가치관을 강화하고, 특정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주도한 "미성년자에게 동성애 선전 금지" 법안은 러시아의 성소수자 인권 상황을 악화시킨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또한 그의 반유대주의 발언과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극단적인 옹호는 그를 러시아 극우 및 민족주의 세력의 상징적인 인물로 각인시켰다. 이러한 행동들은 러시아 대중과 언론 사이에서 그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만드는 동시에, 일부 보수층으로부터는 지지를 받는 양면적인 인식을 형성했다. 그는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권을 옹호하는 세력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전통적 가치와 강한 러시아를 지향하는 집단에게는 영웅적인 인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8. 같이 보기
- 러시아의 성소수자 권리
- 낙태
- 동방 정교회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러시아 국가 두마
- 통합 러시아
-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
-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사건
9. 외부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guam16BPXPY 스티븐 프라이와의 인터뷰]
- [https://www.bbc.co.uk/programmes/p01jtqcb BBC 다큐멘터리 '레지 예이츠의 극한 러시아 - 게이 그리고 공격받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ojotMRy4y6E 프랑스 언론인과의 인터뷰]